728x90

성주 선석산 선석사

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13호

위치: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217번

성주군에 유난히 명당자리가 많은 곳이다. 옛 임금과 왕자의 태실을 보관한 태봉이 3곳이나 있다하니 말이다 그 3곡중 유일하게 조선 세종의 왕자 태실이 이곳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마을 바로 옆 작은 봉우리에 위치하고 있다.
수양대군을 비롯한17왕자의 원손인 단종의 태가 안장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다한다. 이태실의 수호사찰이 선석사이다. 서진산으로도 불리는 선석산은 아래의 선석사로 인해 산 이름이 자연히 선석산으로 불리게 된 경우이다. 




신라 효소왕1년 69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을 하였다. 그때는 선석사 서편에 신광사란 이름으로 창건 되었으며 고려 공민왕 10년 1361년에 나옹선사가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 한다.
그때 절터를 닦다가 절 터 자리에 큰 바위가 나와 선석사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다. 지금도 대웅전 앞 왼쪽에 배의 돛대처럼 땅에 솟아 오른 바위를 볼 수 있다.
조선영조 원년인 1725년에 다시 옛 신광사 터로 절을 다시 옮겼다가 순조4년인 1804년에 서윤대사께서 현재 자리로 다시 옮겨와 대웅전 명부전 정법료 산신각 칠성각등을 건립하였다.
대웅전은 돌로 쌓아서 길게 다듬은 2층 기단위에 작은 규모의 대웅전을 올렸는데 1800년대 초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 주는 다포식 건물이다.
선석사는 대웅전과 함께 괘불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m옆 세종대왕자 태실 수호 사찰답게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며 아기의 건강을 기원하는 태실 법당 건립을 현재 추진중이라 한다.

선석사  안으로 들어서면 대웅전이 정면에 위치하고 그 앞 작은 바위가 빗돌처럼 올라온 것을 볼 수 있다.
그 바위가 1361년 나옹선사가 현재의 절터를 닦기 위해 바닥을 고르는 중 아래에 엄청 큰 바위가 나와 할 수 없이 그 위에 절을 짓고 선석사로 부르게 되었다한다.

대웅전으로 1800년 조선시대의 건축물 양식을 보여주며  다포식 건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113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의 단청이 아직도 화려한 모습으로 남아 있고 색이 퇘색 되었지만 기품이 있는 모습이다. 



선석의 이름을 간직한 비밀의 바윗돌.
배의 돛대 처럼 솟아 있다.  

세종대왕자태실지로 수호사찰인 선석사와 200m 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며 건강을 기원하는 태실법당을 추진하고 있다. 

교통편은 자가이용시 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서울 김천 방향~성주IC~왜관 성주 33번~무주 성주 30번~경산교 건너자마자 무주 김천 왜관 30분 좌회전~김천 구미 왜관~김천 초전 905번 지방도 좌회전~선석사 13.1㎞~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 직진~김천 남김천IC(선석사)~김천 구미 남김천IC 905번~어산 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선석사 갈림길~선석사







728x90

728x90

세종대왕자태실

국가 지정 사적제444호

위치=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번지

세종대왕자태실
 
선석산 아래 세종대왕자태실은 선석산 애래 위치한 이곳 태봉(胎峯 258.2m)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의 태실과 단종이 원손으로 있을 때 조성한 태실등 모두 19기가 모여 있다.




태실은 세종20(1438)년부터 24년 사이에 조성되었다. 석물은 화강암으로 사용을 하였어며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온전한 형체로 모습을 유지하며 남아 있다. 그러나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금성대군 이외 네왕자는 현재 태실의 경우 사각형 기단만 남아 있고 비석과 기간위의 석물은 모두 파괴되어 권력암투에서 밀려난 세력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수양대군(세조)의 태실로 태봉으로 봉하고 앞에다 가봉비를 세웠다.

세조인 수양대군 태실의 경우에는 왕위에 오른 후 태실을 옮기지 않았다. 그것은 세종이 평소에도 형제들 간의 우예를 강조하였기예 세조는 태실을 옮기지 않고 그 대신 임금의 태실을 태봉으로 봉하고 앞에다 가봉비를 세웠다한다.

태실의 석물을 살펴보자.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지상으로 나온 맨 밑에는 사각형의 기단을 두었다. 그리고 그위에 편구형의 중동석을 올 였다. 맨 위에 보주형의 상륜을 가진 개천석을 올린 구조로 되어 있다. 기단석 아래 지하에는 편평한 판석형의 개석아래에 사각형의 석함을 둔 형태로 되어 있다.각 태실앞에 세워둔 태실비에는

전면에

(大)君名胎藏(우측)

皇明正統*年*月*日 입석(좌측)의 명문을 세로 2줄로 각자하여 태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하였다. 1977년 정비사업의 과정에서 도자기류 4점과 지석3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경주와 대구박물관 그리고 경북대학 박물관에 소장을 하고 있다.

태실을 오르는 산길 아래로 선석마을과 그리고 관광안내소 주차장, 뒤로 보이는 산이 선석산이다. 태실지를 감싸는 형국으로 좌청룡 우백호에 연꽃의 꽃술에 위치하는 천하의 명당자리라 한다.

태실지를 오르내리는 길은 소나무로 둘러져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을 한다고 관광 가이드분이 귀뜸을 해준다.

세종대왕태봉 가봉비문

태실구조도

세종대왕자태실 분포도




진양대군의 태실

단종의 태실로 끝에 구석에 따로 위치해 있다.
단종의 태실은 가천면의 태실지에서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을 하여 이곳으로 옮겼다하는데, 그래서 다른 태실의 석물에 비해 이끼가 전혀 끼지 않았다. 


왕자들의 태실



19기의 석물중 금성대군등 수양대군의 왕위즉위에 반대한 다섯왕자의 석물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있다.


왕자들의 태실



태실석물을 보면 지상으로 나온 맨 밑에는 사각형의 기단을 두었다. 그리고 그위에 편구형의 중동석을 올 였다. 맨 위에 보주형의 상륜을 가진 개천석을 올린 구조로 되어 있다. 기단석 아래 지하에는 편평한 판석형의 개석아래에 사각형의 석함을 둔 형태로 되어 있다.

태봉바위에서 본 태실이 안치되어 있는 태봉산으로 연꽃의 꽃술에 비유를 하는 명당

 
이자리에 올라 세종대왕자태실 자리를 잡았다하여 태봉바위로 불린다.

신라 효소왕1년(692)에 창건된 유서있는 사찰로 세종대왕자태실지 와는 500m 떨어져 있어 세종대왕자태실 수호사찰이다. 
세종대왕자태실지를 정리하고 인터넷에 탯줄을 검색하니 깜짝 놀랬습니다.
탯줄을 넣어 밀봉을 한후  도장을 만들어 준다는 업체가 있어서예...
세종대왕자태실도 지금쯤이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명당자리도 필요없고 각자 탯줄도장이나 탯줄 악세사리를 만들어서 몸에 지니고 다닐수 있어니까예. 참 세상....  








728x90

728x90

 

 

성주 선석산~영암산

만추에 찾는 세종대왕 자(子)태실 천하명당이 따로 없도다


영암산 쪽 전망대에서 본 선석산. 방금 지나온 능선이 선명하게 확인된다. 사진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좌측으로 금오산과 북삼읍 보손지도 보인다

이번 주 소개하는 산은 참외의 고장 경북 성주 선석산~영암산. 성주땅 북동쪽에 치우쳐 있는 두 산은 성주와 칠곡의 경계에 오똑 솟아 있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자면 국내 최초의 도립공원인 칠곡 금오산이 바로 코앞에 위치해 손에 잡힐 듯하다.



스케일이 큰 지도를 펴놓고 좀 더 넓게 살펴보면 두 산을 기점으로 동일 위도상으로 동쪽에는 팔공산이, 서쪽에는 민주지산이 포진해 있고 남서쪽에는 성주와 합천의 경계에 위치한 '석화성'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다.

선석산~영암산은 어떤 산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마늘의 고장 경북 의성 금성산~비봉산과 비교하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듯싶다.

우선 덩치가 작아 '나홀로 산행지'로 존재하기에는 2% 부족하다. 두 산을 한데 묶어 산행을 해야 제 맛이다.

산세가 각각 딴판인 점도 공통점이다. 의성의 간판인 금성산이 부드러운 육산인 반면 봉황이 날아가는 듯한 형상인 비봉산은 절벽을 이룬 암릉길로 멋도 있고 타는 재미도 있다.

선석산과 영암산도 마찬가지. 선석산이 무엇이든 품에 안을 것 같은 넉넉함을 갖춘 반면 영암산은 날카로운 바위와 벼랑으로 이뤄진 골산이다. 한 번의 산행에 두 종류의 산을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선석산이 숲이 좋고 산길이 산책로처럼 비교적 순해 여유있게 걸을 수 있는 반면 영암산은 한 발만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은 긴장감을 유지해야 된다.

이번 산행에서 놓쳐선 안 될 볼거리는 선석산 아래 위치한 세종대왕 자태실과 선석사.

세종대왕 자태실에는 세종대왕의 17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가 안장돼 있다. 왕실의 태는 국운과 직접 관련돼 소중하게 다뤄진 만큼 전통적으로 명당 중 명당에만 안장한다. 이런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는 선석산 태봉바위에서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인근의 천년 고찰 선석사는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로 현재 태실법당을 짓고 있다.

산행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세종대왕 자태실 관광안내소~불광교~선석사 갈림길~삼거리봉(선석산·비룡산 갈림길)~태봉바위~용바위~정상 직전 삼거리~선석산(742m)~잇단 선석사 갈림길~돌문이고개~(칠곡)보손지 갈림길~정상 직전 갈림길~영암산(782m) 정상석~북봉(784m)~김천시 남면 '월명성모의 집'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 산행 초입 길찾기에 유의하면 이후 능선길에선 이정표가 있어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선석산 산행 들머리에 위치한 세종대왕 자태실

수양대군(세조)의 태실

단종의 태실

세종대왕 자태실을 둘러본 후 관광안내소 옆 이정표 상의 '중암, 선나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 고샅길을 따라가면 어느새 임도급의 숲길로 이어진다. 숲길의 종착역은 사실상 들머리인 나무다리인 불광교. 가만히 보니 계곡합수점이다. 다리 옆 나무엔 '등산로'라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다.

불광교를 건너 물 마른 건천과 나란히 걷는 너른 직진형 돌길 대신 우측 급경사길로 오른다. 직진형 돌길로 올라가도 선석산으로 이어진다. 참고하길.

급경사길은 처음엔 사람 다닌 흔적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 흔적마저 사라져 사실상 개척산행이다. 25분쯤 뒤 소나무 아래 시야가 트이면서 선석산 산줄기 뒤로 암봉인 영암산이 보여 주변 지형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후 산길 주변으로 바위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길 흔적이 뚜렷해지면서 경사가 수그러진다. 15분 뒤 갈림길. 우측은 선석사에서 올라오는 길,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걷기 좋은 완만한 오름길. 7분여 뒤 또 갈림길. 나무에 '선석산' '비룡산' 방향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산행팀은 삼거리봉으로 명명하고 직진한다. 잠시 후 길 우측으로 아파트촌이 보인다. 금오산 금오동천의 산행기점으로 유명한 칠곡군 북삼읍이다. 읍이라도 인구가 많은지 상당히 번화하다.

여유로운 이 길은 성주(좌)와 칠곡(우)을 가르는 군경계이다. 5분쯤 뒤 '태봉바위'라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세종대왕 자태실 자리를 살펴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란다. 조그만 저수지 앞 볼록 솟은 동산이 세종대왕 자태실이다. 혹자는 이 지점이 연꽃의 한가운데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골짜기 양편의 산줄기가 여자의 양다리이며 태실이 위치한 자리가 여성의 음부에 해당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의 내로라하는 지관들이 낙점한 만큼 명당 중의 명당이 아니겠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실제로 문외한이 봐도 한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다.

5분 뒤 '용바위'를 만난다. 안내판에 따르면 선석산에서 가장 웅비해 예부터 용바위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얼핏 봐선 평범한 바위로 보이나 끄트머리에 서서 발밑을 내려다보면 수긍이 간다. 저 멀리 국내 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참외 비닐하우스가 호수처럼 장관을 이룬다.

용바위에서 2분이면 정상 직전 삼거리. 좌측은 앞서 사실상 들머리였던 불광교 하산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선석산 정상은 여기서 300m 남았다고 적혀 있지만 생각보다 힘들이지 않고 빨리 올라선다. 잡목에 둘러싸여 동쪽인 칠곡 약목면 이외에는 조망이 하나도 없다. 선석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고 선석산의 또 다른 이름인 서진산(棲鎭山) 대신 한자를 착각해 누진산(樓鎭山)이라 적혀 있다. '서(棲)' 자와 '누(樓)' 자의 착각인 듯 싶다. 난센스다.

하산은 이정표 뒤 '영암산 2.8㎞' 방향으로 내려선다. 호젓한 낙엽길이다. 안 보이던 붉은 단풍이 보이기 시작하고, 발밑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떨어져 천연 카펫을 걷는 기분이다.

츰 숲 사이로 암봉인 영암산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우측으론 명산으로 손꼽히는 근육질의 금오산 역시 숨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부담없이 한가롭게 거닐 수 있는 꼬불꼬불한 옛길인 데다 소나무와 울긋불긋 단풍의 색조화도 일품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환상의 숲길 구간이다. 좌측으로 선석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옛길도 열려 있다.

일순간 지금과 달리 길이 약간 넓어지고 '보손지 2.2㎞, 영암산 1.1㎞'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선석산과 영암산의 경계이자 칠곡 북삼읍과 성주 월항면을 잇는 일명 돌문이고개이다. 산 아래나 멀리서 보면 푹 꺼진 잘록이다. 성주 쪽은 아예 길이 없고, 오른쪽 북삼읍 보손지 쪽은 많은 산꾼들이 다니는지 길이 반듯하다.

5분쯤 뒤 놀랍게도 눈앞에 거의 직벽이 다가와 있어 순간 섬뜩해지지만 밧줄과 철계단 등 안전시설물이 설치돼 있어 그리 힘들지 않다. 보손지 갈림길을 지나 12분 뒤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하면 로프 구간(270m), 우측은 우회길(350m)이다.

몇 걸음 내려서니 우측으로 집채만한 병풍바위가 떡 버티고 있다. 우회길인 셈이다. 얼핏 봐도 높이 20m, 폭 30m쯤 된다. 돌계단을 따라 한 굽이 오르면 시야가 트이며 근육질 암릉의 위용을 드러낸다. 동시에 주변의 산세와 지형이 한눈에 펼쳐진다. 뒤돌아보면 선석산에서 방금 지나온 마루금이 손금처럼 보이고 좌측 칠곡 쪽에는 금오산을 배경으로 북삼읍 보손지와 약목면이, 진행 방향으론 밧줄이 요리조리 매여 있는 암봉이 우뚝 서 있다.

영암산 하산길에서 만난 단풍 터널.

정상석이 있는 영암산 정상까진 13분이면 닿는다. 밧줄을 잡고 두 개의 철계단을 오르면 된다. 안전시설물이 없다면 만만찮은 구간이지만 이 정도면 힘겹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대신 방심은 금물이다.

멀리서도 식별이 되는 멋진 소나무와 돌탑 그리고 정상석이 서 있는 정상에 서면 정면으로 금오산을 배경으로 하산할 마루금과 김천과 성주를 잇는 905번 지방도가 동시에 보인다.

하산은 직진. 암릉을 에돌아간다. 그 길도 아주 거칠다. 9분이면 암봉 앞에 선다. 좌우로 우회길을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직접 타고 오르는 수밖에. 바위가 발을 내딛기 쉽게 깨어져 있어 크게 문제는 없다.

여기서 다시 한 굽이 올라서면 북봉인 784봉.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보다 2m 높다.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이곳에 영암산이라고 표기돼 있다.

본격 하산길. 꽤 험로지만 뜻밖에도 단풍나무가 즐비하다. 이 길은 옛길이라기보다 905번 지방도로 하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간벌하며 조성한 등산로인 듯하다.
선석산에서 내려다본 세종대왕 자태실.


특이하게도 형형색색의 단풍은 등산로를 벗어나 우측 칠곡 쪽 사면에 치우쳐 있다. 단풍 명산이 부럽지 않다. 이따금 좌측 뒤로 북봉과 가운데 암봉 그리고 소나무가 식별되는 정상석이 있는 782봉이 한눈에 보이기도 한다. 좀 더 내려오면 중부내륙고속도로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35분 뒤 갈림길.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왔지만 어느 쪽으로 와도 10분 뒤에 '월명 성모의 집'에서 만난다. 784봉에서 47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성주 명물 참외씨 먹인 돼지 '참외포크' 일품

영암산은 생긴 모양에서 그 이름이 생겨났다 한다. 산 아래 성주땅에서 올려다보면 3개(782봉과 784봉 그리고 그 사이)의 암봉으로 이뤄져 정상부가 마치 방울을 닮았다는 것. 해서 '방울 영(鈴)', '바위 암(岩)' 자를 조합해 영암산으로 불린다.

선석사 대웅전과 그 왼쪽으로 튀어오른 선석사의 유래를 만든 바위 일부분이 남아 있다.


선석산은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인 선석사와 연관이 있다. 신라 효소왕 때(692년) 의상 대사가 현 사찰의 서편에 창건, 신광사로 명명했지만 고려 공민왕 때 나옹 선사가 주지로 오면서 절터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를 위해 터를 닦던 중 큰 바위가 나와 절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의미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로 명명했다 전해 온다. 그 때 발견된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뜰 앞에 묻힌 채 그 일부가 땅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빙산의 일각'만 나와 있는 셈이다.

산행 들머리의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전세계적으로 이런 형태의 유적은 유례가 없다. 세종 20년(1438년)에서 24년(1442년) 사이에 조성된 태실은 세종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모여 있다.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동생들인 금성대군 한남군 등 다섯 왕자의 태실은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돼 남아 있지 않다.

입구에 위치한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세조)의 경우 왕이 됐는데도 태를 옮겨가지 않은 이유는 유달리 형제애를 강조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에 따른 것. 태실을 옮기지 않은 대신 임금의 태실인 태봉(胎封)으로 봉하고 가봉비를 세워두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종의 태봉은 수양대군과 멀리 떨어져 있다.

태봉바위와 용바위에선 가야산이 거의 보이질 않지만 산속 안내판에는 보인다고 적혀 있다. 심지어 이웃한 용바위에선 낙동강도 손에 잡힌다고 표기돼 있지만 그렇지 않다. 참고하길.

맛집 한 곳 추천한다. 참외씨 먹인 돼지고기 전문점 '성주 포동이 숯불가든'(054-931-0770). 성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참외 산지. 일반적으로 참외씨는 칼슘 인 칼륨 등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된 건강식품. 특히 비타민E 함유량은 참기름의 26배, 옥수수 기름의 5배다. 실제로 성주 참외포크는 노화방지 물질인 비타민E 성분이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무려 68배나 높은 반면 콜레스테롤은 22%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맛은 어떨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육질이 두드럽고 쫄깃쫄깃하면서도 뒷맛은 아주 담백하다.





'성주 포동이 숯불가든'은 남편이 직접 참외포크를 생산하고, 부인인 강현순 씨가 식당을 경영한다. 국내 몇 안 되는 국산 돼지고기 판매점이기도 한 이곳은 최고의 고기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 이미 성주에선 가장 유명한 참외포크집으로 알려져 있다. 고기를 먹은 후엔 매생이 칼국수와 굴국밥이 준비돼 있다. 된장찌개를 원할 경우 비빔밥으로 나온다. 150g 1인분 8000원.


# 교통편

- 대중교통 당일치기 불가, 승용차 이용해야

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서울 김천 방향~성주IC~왜관 성주 33번~무주 성주 30번~경산교 건너자마자 무주 김천 왜관 30분 좌회전~김천 구미 왜관~김천 초전 905번 지방도 좌회전~선석사 13.1㎞~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 직진~김천 남김천IC(선석사)~김천 구미 남김천IC 905번~어산 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선석사 갈림길~세종대왕 자태실 관광안내소(주차장) 순. 날머리 '월명 성모의 집'에서 들머리 세종대왕 자태실 주차장에 위치한 차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택시(054-931-7673)를 불러야 한다. 1만5000원. 대중교통편으로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북대구터미널로 가서 갈아타야 하지만 오후부터 시외버스가 출발한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글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세종대왕 자태실 주차장에서 태실로 올라서는 계단길. 뒤로 선석산이 펼쳐진다.


선석마을의 주차장에서 중암 선나원 방향으로 올라간다.


태봉바위;와 용바위


선석산~영암산의 단풍





금성대군의 태실로 훼손되어 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