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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몰만한곳)신라 27대 선덕여왕릉.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낭산 도리천의 선덕여왕릉 여행과 세가지 예지력.


경주 문화재 여행에서 이번에는 26대 진평왕의 뒤를 이은 27대 선덕여왕릉을 찾았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선덕여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으로 김춘추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오늘날 신라예술의 금자탑이라는 첨성대와 분황사를 창건하였고 황룡사 9층 목탑 등을 건립한 현명했던 군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신라불교 예술의 많은 부분이 선덕여왕 시절의 문화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주 선덕여왕릉 주소: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 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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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 역사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선덕여왕은 꼭꼭 등장하여 드라마로 인해 선덕여왕은 아마 모르는 분이 없을 것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3가지 예지력으로 선덕여왕은 더욱 유명합니다. 첫 번째가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자 당나라 태종은 축하의 뜻으로 모란꽃이 그려진 그림과 씨앗을 보내왔습니다.



이를 본 선덕여왕은 “이 꽃은 향기가 없구나”하자 신하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였고 왕은 모란꽃 씨를 심게 했습니다. 모란이 꽃이 피자 신하들은 모란꽃의 향기가 없음을 알게 되었고 선덕여왕에게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선덕여왕은 모란꽃 그림을 보고 “꽃이라면 자고로 향기를 쫓아 벌과 나비가 몰려들기 마련인데 그림에는 벌과 나비가 없으며 이는 남편이 없는 나를 희롱한 것이다”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현 경주시 건천읍의 부산성 아래에 얽힌 여근곡 이야기입니다. 선덕여왕이 즉위하고 4년 후인 635년에 영묘사를 짓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영묘사가 있는 여근곡에서 난데없이 개구리가 밤낮없이 며칠 동안 개굴개굴하며 시끄럽게 울었습니다. 이 소식이 왕에게 전해졌습니다.



왕은 알천과 필탄 두 장수에게 병사 2천을 주어 부산성 아래 옥문지에 백제군사 매복 사실을 은밀히 알리며 습격하라 합니다. 신라군은 살금살금 여근곡에 도착해보니 우소가 이끄는 백제군이 정말 매복하고 있었습니다. 신라군은 이를 급습하여 백제군을 섬멸시켰습니다. 궁궐로 돌아와 그 사실을 보고하며 “어떻게 백제군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선덕여왕은 빙긋이 웃으며 “개구리가 맹렬하게 우는 것은 병사를 말하며 옥문은 여자의 음부를 뜻합니다. 이는 여자는 음이고 그 색은 흰색이며 흰색은 서쪽을 가리키며 남근이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어 적을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라 하였습니다.



세 번째 예지는 선덕여왕은 자신의 죽을 날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합니다. 하루는 신하들 앞에서 선덕여왕이 말하기를 “내가 언제 무슨 날에 죽으면 도리천에다 장사지내도록 하세요”하자 신하들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면 도리천을 알지 못하겠다며 왕에게 재차 물었습니다. 왕은 “도리천은 낭산 남쪽에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에 이르러 진짜 선덕여왕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문무백관들은 왕의 유언대로 낭산 남쪽에 장사지내며 왜 이곳이 도리천이지하며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679년 문무왕 19년에 선덕여왕릉 아래 사천왕사가 들어섰습니다. 불교에서는 28개의 하늘나라가 있으며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합니다.



사천왕사가 지키는 하늘나라가 첫 번째 하늘나라 사왕천이면 그 위에 제석 천왕의 도리천이 두 번째 하늘나라로 이는 선덕여왕릉이 부처님의 나라 도리천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선덕여왕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하며 선덕여왕의 셋 예지력은 일연의 삼국유사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릉은 낭산 남쪽 양지바른 곳에 모셔져 있습니다. 낭산은 남북으로 길게 누웠으며 신라 시대 서라벌의 진산으로서 신라인에게는 신성의 대상이었습니다. 413년 신라 실성왕 12년에는 낭산에 모인 구름이 누각같이 보이면서 오랫동안 그주위에 향기가 피어올랐다 합니다. 이에 실성왕은 신령이 내려와 노는 것으로 여기고 낭산의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지금의 낭산은 우리 소나무가 울울창창한 자태를 뽐내며 선덕여왕릉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재위 632~647년으로 신라 27대 왕입니다. 성은 김 씨며 휘는 덕만이며 26대 진평왕과 마야부인 김 씨 사이에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선덕여왕릉은 아랫부분에 능을 보호하기 위해 2~3단의 막돌의 석축을 호석으로 돌렸습니다. 그 위의 봉분은 둥근 형태로 흙을 쌓아 올린 봉토분입니다.







능의 지름은 23,6m이며 높이는 6.8m로 낭산 사적지 163호 내에 사적 제18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신라 시대의 모든 왕릉은 성덕왕릉을 제외하고는 왕릉의 주인은 모두 관련 기록으로 비정한 상태입니다. 선덕여왕릉도 낭산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지금의 위치로 보고 있습니다.






선덕여왕릉 아래 사천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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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신라 26대 진평왕릉. 천년 세월을 말해주는 듯 웅장한 노거수에 마음까지 편안한 경주 진평왕릉 여행.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에게도 농락당하는 아주 유약한 왕으로 묘사되었던 진평왕. 이번 경주여행은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릉을 찾았습니다. 진평왕릉은 낭산과 명활산 가운데 있는 보문들에 고목을 울타리 삼아 넓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낭산 도리천에 잠들어 있는 선덕여왕과는 가까운 거리로 아마 지금도 따뜻한 부녀의 정을 나눌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딸이니까요???





경주 진평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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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왕은 신라 왕 중에서 박혁거세에 이어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579년에 왕위에 올라 632년까지 53년 동안 왕위에 올랐다니 당시 정치 상황을 보면 그의 인생역정 또한, 파란만장했을 것만은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진평왕의 가족사를 보면 법흥왕이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이래 온 가족을 인도 카빌라국의 석가모니 왕실 가족의 이름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진평왕의 가계도를 보면 아버지는 24대 진흥왕의 장자로 태자로 책봉되었던 동륜이며 어머니는 입종갈문왕의 딸인 만호부인 김씨입니다. 26대 진평왕은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석가모니의 아버지 이름을 따서 백정(伯淨)으로, 그의 부인인 왕비는 복승갈문왕의 딸로 석가의 어머니 마야부인 이름 따와 마야부인 김씨로, 그리고 아우도 정반왕의 아우들 이름인 백반(伯飯)과 국반(國飯))이라 하였습니다.

 

 

 

 

 

 

진평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신체가 건장했으며 성장하면서 의지가 굳고 식견 또한 명철했다는 것을 통치과정을 보면 나타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그려졌던 진평왕처럼 유약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초반에는 할머니의 수렴청정이지만 먼저 관제의 정비를 서두르는데 이찬 노리부를 상대등으로 임명하고 이찬 후직을 병부령에 임명하여 각각 국정과 군권을 장악케 하여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581년에는 위화부를 설치하여 관리의 인사를 담당하게 하는 등 여러 관제를 정비·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제 고구려와 잦은 다툼으로 국경은 조용한 날이 없었습니다. 603년에는 고구려가 북한산성으로 쳐들어오자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기도 하는 등 삼국 간의 숱한 전쟁에 정세는 더욱 격화하였습니다. 이에 진평왕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하는 데 주력합니다.

 

 

 

 

608년에는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원광법사에게 걸사표를 짓게 하여 수양제에게 고구려 정벌을 유도하였으며 수나라의 뒤를 이은 당나라와 더욱 돈독한 외교관계를 유지하여 숱한 위기로부터 신라를 지켜내었습니다. 남산신성을 축성하고 명활산성을 개축하는 등 서라벌의 방위에 진력하였으며 632년 진평왕이 죽자 한지에 장사지내고 당 태종은 국서를 보내어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를 추증하였습니다.

 

 

 

 

진평왕릉의 봉분은 높이가 약 8m이며 지름은 약 40m로 둥글게 흙을 쌓아 만든 원형봉토분입니다. 봉분의 아랫부분에는 자연석을 호석으로 돌렸고 지금은 바깥으로 몇 개 들어나 있습니다. 그리고 상석과 향로석은 후대에 설치했으며 세월의 흐름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굵고 늙은 노거수들이 수림을 이루어 아이들의 소풍장소로 정말 좋아 보였습니다.

 

 

 

 

 

 

때마침 청명한 가을 하늘에 벌써 유치원생들이 가을 소풍을 나와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진평왕도 꽤 흐뭇해하실 것 같습니다. 세월의 더께 속에 진평왕은 옛 역사는 그저 잊혔다고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오늘 진평왕릉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해맑은 가을 하늘은 더욱 높은 거 같습니다. 사적 제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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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용인여행)용인MBC드라미아. 사극 한류의 중심 용인 MBC 드라미아 드라마 세트장을 여행하다. 


용인 MBC 드라미아 드라마 세트장에 다녀왔습니다. 합천영화세트장과 문경 주흘산 왕건세트장 등 전국의 드라마, 영화세트장을 많이 여행했지만, 용인에 있는 MBC 드라마세트장 드라미아 처럼 대규모는 처음입니다. 사실 크기 면에서 많이 놀랐습니다. 대단한 규모로 꾸며진 mbc 드라미아는 역사극 전용 세트장으로 익히 재미있게 시청했던 MBC의 모든 역사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하여 드라마 세트장을 더욱 감명 깊게 봤습니다.


 

용인 mbc 드라미아는 삼국시대 이후 건축 양식과 생활공간을 그대로 재현을 하였고 건축물 또한, 고증을 토대로 반영구적으로 지었습니다. 관람을 하다 보면 정교하고 섬세한 건축물에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하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용인 MBC 드라미아는 A 코스와 B 코스로 동선이 짜였는데 A 코스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며 B 코스는 조금 더 긴 2시간 30분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실제 관람을 하다 보면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완벽한 건물로 짜지다 보니 주변의 경관과 함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산속에 자리 잡아 맑은 공기에 자연을 즐기며 가족끼리 멋진 휴식을 즐기고 사극 드라마 촬영장도 관람해 보세요. 먼저 역사극의 재미를 한층 더 느끼게 하는 곳으로 드라마에서는 감초 같은 저잣거리 모습을 재현한 곳입니다. 소박한 백성들의 활기찬 저잣거리 모습과 그 속에서 남자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애틋한 서로의 마음을 알 듯 모를 듯 재미있게 전개됩니다.



재미 있었던 사극 대장금이 이곳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이영애도 만나보고 지진희도 사진으로 만날수 있습니다.






 

책으로도 재미있게 읽었던 ‘마의’의 지녕과 광현의 연등 축제 장면, ‘구가의 서’에서도 강치와 여울의 연등 축제 장면, ‘불의 여신 정이’에서 광해와 정이의 실랑이 장면을 모두 이곳 저잣거리 세트장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저잣거리는 실제 리얼 감을 주기 위해 포목점, 사기점, 푸줏간, 한약방, 주막 등 드라마의 설정에 맞게 다양하게 세팅이 되어 있습니다.










 

MBC 드리미아 세트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무량수전은 사찰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모든 역사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찰건물은 석탑과 함께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스님만 있다면 실제 어느 사찰 같은 분위기입니다. 이곳은 MBC 드라미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입구인 안양루의 누각에 올라 바라보면 실제 MBC 드라미아 세트장을 속속들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곳입니다.

 


 





 

실제 드라마 촬영에서 이곳에 올라 도성 내부를 바라보는 장면이 촬영되며 ‘구가의 서’에서는 무형도관으로 등장했던 건물입니다. 이곳에서 도성 내부를 바라보았습니다. 초가집인 저잣거리와 궁궐인 경복궁, 양반들의 기와집이 한눈에 들어 왔습니다. 역사드라마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궁궐에서 벌어지는 권력자들의 소리 없는 암투입니다. 그 모든 궁궐 촬영이 이루어진 곳으로 먼저 궁궐을 들어서는 성문에서부터 실제 규모라 생각될 만큼 웅장하게 지어졌습니다.






 

특히 임금의 즉위식과 의례식, 연회장면 등이 모두 이곳에서 연출 된다 합니다. ‘동이’에서 동이의 입궐 장면이 촬영되었고 불의 여신 정이에서 어린 정이의 특별의례식이 이곳에서 촬영되었습니다. 특히 ‘선덕여왕’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선덕여왕역의 이효원과 미실역의 고현정이 서로 대립을 하며 극의 재미를 이끌었으며 ‘선덕여왕’의 즉위식 장면 촬영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중전의 거처인 중궁전(은월각)은 드라미아 세트장 내에서도 가장 우아함과 섬세함에 아기자기한 여성스러움을 갖춘 궁궐 세트로 중전의 처소, 공주, 왕의 처소 등으로 사용되며 ‘해를 품은 달’에서 세자빈이 되기 위해 연우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또한, 혜민서는 많은 역사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합니다. 이곳 혜민서 세트장은 ‘마의’ 촬영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건물 간의 높낮이와 옛 벽돌 모자이크 등의 처리로 특히 이곳의 건물을 아름답게 꾸며 놓았습니다. 마의에서 강치가 드나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극 중 설정에 따라 구가의 서에서는 백 년 객관이 되었고, 불의 여신 정이에서는 분원 공간으로 촬영이 되었습니다.




 

바쁘게 움직여 무술 액션 장면 촬영이 이루어진 연무장에 도착했습니다. ‘무신’의 격구장면과 ‘구가의 서’의 화살 연무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외에도 용인 MBC 드라미아 세트장은 드라마 속 주인공의 의상과 왕에서 나인들까지 우리의 다양한 궁궐 전통 옷을 입어 볼 수 있는 체험공간과 사인전시도 볼 수 있습니다.

 




 

단 실내 세트장은 관람할 수 없으며 동시 녹음이 이루어지는 촬영은 관람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하니 관람 전 미리 확인하면 더욱 즐거운 드라미아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용인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용인 MBC 드라미아 세트장 꼭 관람을 해 보세요.





 

◆용인 MBC 드라미아 입장료 : 성인 7,000원 중고생 6,000원 만4세~초등생 5,000원

◆용인 MBC 드라미아 입장시간 : 하절기는 오전 9시~오후 6시(3월~10월), 동절기는오전 9시~오후 5시까지(11월~2월). 연중무휴

◆용인 MBC 드라미아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드라마길 25, 031-337-3241

◆용인 MBC 드라미아 홈페이지 : www.withmbc.imbc.com/dramia/main

◆용인 MBC 드라미아 연락처: 031- 337-3241

 












◆용인 MBC 드라미아 입장료

◆용인 MBC 드라미아 대중교통편

 

 경기도 용인시청에서 초청 진행하는 팸투어에 참가해 작성한 포스팅입니다.


2015/05/16 - (경기도맛집/ 용인맛집)월남 쌈 샤부샤부 꽃마름. 용인 에버랜드맛집 캐리비안 베이 맛집 월남 쌈 샤부샤부 전문점 꽃마름.

 

2015/05/15 - (경기도여행/용인여행)용인중앙시장 머뭄카페. 용인 중앙시장 특별한 공간 머뭄카페에서 맛있고 즐기며 특별한 체험 여행을 하세요

 

2015/05/14 - (경기도여행/용인여행)용인 경전철. 용인에버랜드 교통편은 25분이면 끝. 에버랜드를 운행하는 기흥역~에버랜드 용인 경전철을 이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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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리 자계천의 독락당.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개요.


신라 경덕왕때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이라 한것이 지명으로 굳어 졌는데 그만큼 넓은 안강들로 인해 살기 좋은 고을인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안강의 차디찬 북풍을 막아주는 도덕산과 자옥산은 경주 안강을 대표하는 산으로 들머리에 있는 독락당과 옥산서원이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의 숨결이 묻어난다. 이곳 양동마을과 옥산리는 회재 이언적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채취가 골고루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신라시대때 부터 붉은 옥이 많이 생산되었다는 자옥산. 그 아래 있는 마을이라 옥산이라 자연스럽게 불렸고 신라의 선덕여왕이 이곳을 찾아 왔다한다. 궁궐에 많이 필요한 옥 때문에 온것은 아닌지 도덕산의 옛이름도 선덕여왕이 찾아 왔다하여 두득(덕)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중기 회재 이언적에 의해 도덕산으로 바꾸어 졌는데 이산을 오르면 자연적으로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깨닫고 먼저 인간이 되도록 하는게 아닐지 모를일이다. 요즘 인간 같잖은 사람들이 많아 도덕산을 열심히 올라볼 것을 권한다.

 

 

독락당 주차장. 도덕산~자옥산 출발지.




장산서원 빗돌을 따라간다.




독락당 뒤 운치 있는 숲.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갈림길.






정혜사지십삼층석탑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경로.


산행경로는 경주시외버스 정류장 옆 시내버스 주차장에서 203번을 이용한다. 양동마을을 거쳐 안강읍을 경유하여 버스 종점인 독락당 주차장에서 내리면 된다. 독락당~정혜사지십삼층석탑~민내마을 삼거리~도덕암 입구~도덕암~도덕산~사거리 안부~자옥산~전망대~산장식당~독락당 버스 정류장 순으로 산행 시간은 3시간30분이며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4시간30분에서 5시간쯤 소요된다. 










도덕산의 모습




민내마을 갈림길 도로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독락당 주차장에서 시작.



먼저 주차장에서 독락당을 보고 왼쪽 장산서원 빗돌 방향의 도로를 따른다. 세심권역 전통체험 학습장을 지나고 독락당을 왼쪽으로 돌아 뒤쪽 숲을 끼고 간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이정표가 서있다. 오른쪽 자계천을 건너면 포항시 기계면(3.2km)임도 방향. 도덕산은 장산서원 0.6km의 직진방향이다. 곧 정혜사지십삼층석탑 갈림길 이정표와 만난다. 왼쪽으로 정혜사지십삼층석탑이 보이고 도덕산과 자옥산를 잇는 안부 사거리에서 내려오는 하산길이 이곳에서 만난다. 석탑을 보고 나와 장산서원 방향(0.5km)을 따른다.




도덕암 갈림길. 왼쪽으로 오른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암을 거쳐 도덕산 정상으로...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르면 '산방을' 안내판을 지나면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도덕암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 간다. 호룡산 관음사 안내판이 서 있는 삼거리 도로에서 오른쪽은 민내마을(2.12km)방향. 도덕산(2.66km)은 직진한다. 비포장 임도길로 바뀌고 4분이면 왼쪽 풀숲에 도덕암을 가르키는 안내판이 숨어 있다. 이곳이 도덕산 들머리다. 현재 도덕암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도덕암까지 차로 올라 갈 수 있는 전에 없던 임도 길이  뚫여 있다. 도덕산은 도덕암 산길을 오른다. 초입부터 나무계단을 올라야 한다. 잠시 뒤 산길로 변하고 햇빛 한줌 들지 않는 숲 그늘 오름길이다. 다시 돌계단을 오르면 산길은 다시 오르막이 나온다. 15분이면 도덕암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산길은 도덕산(2.03km) 방향. 오른쪽 도덕암 방향으로 직진한다. 곧 도덕암으로 오르는 임도와 만나며 콘크리트 포장이 완벽하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왼쪽의 도덕산 방향으로 올라도 도덕암으로 가진다. 도덕암 오르는 콘크리트 임도 길도 급경사라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승용차로 도덕암까지 오를때도 급경사와 곡각이 심하여 운전에 주의를 해야 하겠다. 7분이면 다시 도덕암(0.06km)과 도덕산(1.56km) 갈림길과 만난다. 머리를 들면 도덕암의 요사채를 볼 수 있다.  오른쪽 임도를 따라 도덕암으로 간다.







도덕암 오르는 콘크리트 포장길.




이정표 오른쪽으로 도덕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조낭이 탁월한 도덕암.




산령각 앞의 전망대.




산령각 앞에서 본 어래산.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암의 경치가 탁월.



도덕암은 여느 절처럼 규모가 크지 않다. 작은 암자 수준으로 이곳에서 보는 전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면 기계면으로 임도가 구불구불 넘어가고 그 오른쪽에 어래산이 솟아 있고 왼쪽으로 봉황의 자리인 봉좌산이 큰 덩치로 솟아 있다. 이곳에서 수도꼭지를 틀어 시원한 물을 한바가지 들이키니 폐부의 때를 씻어 버리기에 충분하다.  누구나 이곳에 오르면 도덕의 경지에 도달할 것 같다. . 도덕산 오르는 산길은 암자 입구에서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 오르는 길이며 도덕산과 산령각 가는 길이다. 작은 산령각 앞에도 바위로 된 멋들어진 전망대를 만난다. 도덕산 정상은 산령각 왼쪽의 덱으로 만든 계단길이다. 산신각 위의 덱 전망대에서 마지막으로 주위를 일별하면 다시 본격적인 오르막 산길이다. 7분이면 오래된 이씨묘를 지나고 왼쪽으로는 잘게 부서진 너덜이 길게 내려와 있다. 오르는 산길 옆으로 3m는 됨직한 반듯한 바위가 서 있고 주위로 고만고만한 바위가 층 덤을 이루고 있다. 9분이면 일직선으로 내려오는 덱 계단이 바위에 걸려 있다. 이곳을 올라서면 곧 능선이다. 자옥산과 도덕산을 연결하는 능선으로 왼쪽은 자옥산 방향, 도덕산 정상은 오른쪽 30m 앞이다.








도덕산 정상 밑 갈림길.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선덕여왕이 다녀 갔다는 도덕산.



오르막을 오르면 정상석이 3개나 서 있는 도덕산 정상이다 . 2010.3월 한맥회에서 세운 정상석이 눈길을 끈다.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포항의 기계쪽 풍경과 봉좌산~어래산 능선 그리고 들머리인 옥산리의 보면 고도감이 엄청 높아 도덕산의 높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도덕산의 유래는 신라시대에 선덕여왕이 이곳에 다녀 갔다고 두득(덕)산이라 불리다가 조선중기 동방오현의 한분인 회재 이언적이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 파직되어 낙향하여 옥산리 자계천에 독락당을 짓고 1533년 중종28년 사산오대를 명명하면서 도덕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자옥산 방향은 삼거리까지 되돌아 간다.  왼쪽은 도덕암에서 올라온 길이며 자옥산 방향은 직진한다. 산길은 내리막이다. 바위를 잡고 내려서는 곳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타나고두 길다 서로 만나지만 오른쪽 산길이 전망대에 올라선다. 서쪽인 영천방향과 낙동정맥길인 삼성산이 오룡리를 감싸고 있다. 도덕산과 자옥산의 능선길은 숲이 짙어 하늘이 보이지 않는 초록색 오솔길이다. 왼쪽 능선을 따라 정혜사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희미한 갈림길을 나타나면 오른쪽 뚜렷한 산길을 내려간다. 




도덕산과 자옥산 사이 사거리 안부 .







자옥산 정상.




계정마을 갈림길




안강들과 읍면 전망대.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자옥산 아래 산장 식당으로 하산.



도덕산 정상에서 약25분이면 사거리 안부. 왼쪽으로 정혜사지십삼층석탑(1.65km)으로 하산하는 길이 열려 있다. 오른쪽은 오배마을(1.43km), 자옥산(0.74km)은 직진한다. 70m 뒤 다시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 정혜사지십삼층석탑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이 더 뚜렷하다. 오른쪽으로 서서히 올라간다. 자옥산까지는 대체적인 오르막 산길로 이어진다. 월성최씨묘에서 한숨을 돌리고 정상이 다 와 가는지 산길은 한결 수월하다. 정상 직전의 갈림길에서 왼쪽은 옥산리 산장식당으로 바로 하산을 하고 오른쪽을 오르면 곧 정상이다. 검은 빗돌이 자옥산 정상임을 알리고 그 옆으로 돌로 쌓아 올린 축대가 있다. 

















독락당 주차장 하산.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마무리는 독락당 주차장 원점회귀



숲으로 가려 조망은 전혀 볼 수 없다. 하산을 서두르면 정상석 앞으로 난 길을 10m 내려서면 하곡저수지(4.24km) 갈림길. 왼쪽에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하곡저수지 계정마을(1.74km) 스텐리스 이정표가 서 있다. 계정마을 방향으로 하산한다. 곧 오른쪽으로 편편한 바위가 나타나고 그 끝에 두사람이 바위에 걸터 앉아 안강들판과 읍내를 바라 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를 만난다. 다시 산길로 복귀하면 이번에는 왼쪽으로  편편한 바위로 된  전망대를 열어준다. 하산길은 고도를 낮추기 위해 갑자기 뚝 떨어지고 묘지 한기를 지나면 소나무 숲길로 바뀐다. 에돌아 나가는 편안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자옥산 정상에서 40여분이면 산장식당 주차장이 나오고 곧 토산도요 앞 도로다. 독락당 주차장은 왼쪽 도로를 따라 가면 지척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도덕산~자옥산 교통편. 



일단은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까지는 가셔야 겠죠.

교통편은 경주시외버스 터미널을 나오면 오른쪽으로 50m만 가면 시내버스주차장이 나온다. 그곳이 양동마을가는 버스 주차장이다. 안강행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203번 버스로 오전 6시20분, 7시30분, 9시15분, 10시30분, 12시30분으로 45~55분이 소요된다.


승용차는 네비로 독락당이나 정혜사지십삼층석탑을 치면 된다. 위치는 버스 종점인 독락당 앞에서 장산서원 방향으로 따라가면 된다. 독락당 뒷편 자옥산과 도덕산의 부드러운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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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진덕여왕 여행.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진덕여왕릉 찾아가기

 

경주시 현곡면오류리 등나무에서 500m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진덕왕릉 앞 주차장. 200m쯤 떨어진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2대 여왕에 오른 진덕왕릉을 찾아 보았다. 사촌언니인 선덕여왕과는 사촌지간으로 여왕의 위치에 오른 진덕여왕. 그의 왕릉은 한적한 변두리 안태봉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어 쓸쓸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돈다.잘 닦인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 닿은 진덕왕릉은 그 흔한 석상조차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삼국사기에는 왕을 사량부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왕릉은 흙을 높이 쌓아 올려 봉분을 둥글게 만들었고 높이는 4m 지름은 14m이다. 그리고 봉분의 둘레에 지대석을 돌려 안기둥을 만들었으며 그사이에 직사각형의 면석을 넣어고 그위에 눈썹돌을 올려 봉분의 아랫단을 보호할뿐 특별한 장식이 없는 수더분한 왕릉으로 안기둥 에는 12지신상을 돋을 새김하여 왕릉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1975년 보수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선덕여왕 말년에 발생했던 비담의 난을 김유신 김춘추와 함께 평정하며 즉위한 진덕여왕(647~654)은 비담과 그 일당 30명을 처형하고 백제의 계속된 침략에 맞서 김유신으로 하여금 국방을 튼튼하게 했던 신라 제28대 왕이다. 사촌 언니였던 선덕여왕과 마찬가지로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즉위 7년 만인 654년 사망, 김춘추(무열왕)에게 왕위가 이어졌지만 후일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진 업적은 높이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후사가 없었던 탓인지 왕릉의 분위기가 어쩐지 쓸쓸하다. 솔숲 사이로 부는 서늘한 바람을 벗 삼아 왕릉을 돌아보며 백제의 침범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나라와 불평등 동맹까지 맺어가며 고군분투했을 여왕의 고뇌와 삶에 대해 생각한다.


찾아가는 길: 부산 금정구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운임은 4000원, 소요 시간은 50분이다. 경주터미널 앞에서 현곡행 30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금장2리 정류장에서 하차, 오른쪽 오류리 방향으로 걷는다. 200m쯤 가면 오류리 등나무 앞을 지나고 이곳에서 진덕왕릉까지는 걸어서 15분쯤 걸린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내려 서라벌대로를 타고 가다 금성삼거리에서 시청 오릉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황남동주민자치센터 앞 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강변로를 따른다. 터미널과 동국대 앞을 지나 금장교 앞에서 좌회전, 1㎞쯤 가면 새로 뚫린 안강 포항 방면 68번 지방도를 타지 말고 굴다리 밑을 통과해 영천 방향으로 200m쯤 가면 우측에 진덕왕릉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회전, 1.5㎞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왕릉 앞 주차장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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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근곡과 유학사

(여근곡 입구의 유학사 전경)

삼국유사 선덕여왕의 지기삼사에서 보면 여근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 27대 선덕여왕 5년인 636년 영묘사 옥문지에서 한겨울철인데도 불구하고 개구리가 사나흘을 계속 울어데니 신하들이 괴이한 일이라 여겨 선덕여왕에게 보고를 하니 선덕여왕은 알천과 필탄 두 장수에게 병력 2000명을 주어 서쪽 오봉산 아래 백제군이 숨어 있어니 습격하여 죽여라 명을 내린다.
오봉산 아래 여근곡에 당도해 보니 선덕여왕의 말대로 500명의 백제군이 매복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기습하여 전멸을 시키고 돌아와 궁금함을 왕에게 여쭈어 보았다.

선덕여왕은 말하기를 “밤낮 없이 울어데는 성난 개구리는 병사의 상이요. 옥문은 곧 여근이다. 여자는 음이고 그 빛은 흰데, 흰색은 곧 서쪽을 의미하여 서쪽 여근곡에 적이 숨어 있슴을 알았다. 또한 남근이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기마련이라 쉽게 백제군을 섬멸할 수 있었다”하며 들여준다. 이야기는 선덕여왕 지기삼사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여성의 중요부분 중심부로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일정한 수량의 샘물이 흘러나온다)

그 여근곡이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로 그 아래 들판을 썹들이라 부른다. 유별난 사람들은 발음이 씹들과 비슷하고 그 뒷산을 여근곡이라 하여 농으로 씹들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근이 있으면 남근이 있는 법. 여기 여근곡에도 남근의 산이 있다 한다. 한때 오봉산에서 내려온 능선이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건너편의 용명리까지 연결 된 곳에 남성을 상징하는 ?산이 있었다 한다. 지금은 도로가 새로 생겨 깍여 나가 원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지만 마을 사람들의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큰 하천인 대천이 흘러가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지만...여근곡 찾아가는 길은 윗장시 마을에서 하차를 하여 여근곡. 여근곡 전망대 안내판을 보고 좌측으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불지를 지나 여근곡전망대를 참관하고 다시 나와 유학사 표지판을 따라간다. 유학사는 여근곡의 중심부인 우측 아래에 위치를 하고 있다. 창건연대는 60여년전에 창건을 하였는데 옥문지를 지키는 수호사찰로 인정이된다. 별다른 단청도 하지 않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수수함을 간직한 사찰이다. 유학사는 특이하게도 두 신을 모시고 있다. 제일 왼쪽에는 산신각을 그리고 그 아래 용왕당을 모시고 있다. 그 좌측으로 여근곡의 샘터에서 흘러나오는 청정수가 있다. 샘터 좌측 돌계단을 오르면 여근곡으로 갈 수 있다. 여자의 핵심 부에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으로 한때는 외지에서 온 남성들이 이 핵심에다 막대기로 휘저어면 동네에 있는 아낙들이 바람이 난다며 장난삼아 샘터를 휘젓었는데 유학사에서 언제 부터인가 호스를 연결하여 아예 여근의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해 놓았던 것을 보았다. 최근에 방문을 다시 해보니 연결해 놓은 호스는 따로 있고 그 부분에도 샘을 조성하여 물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다시 해두었다. 이 여근곡은 조정의 관아에서 관리를 파견하면 영천을 거쳐 경주로 내려 오면 빠른데 여근곡 앞을 지나면 재수 없다고 영천에서 지릿재를 거쳐 안강으로 해서 돌아 왔다고 하는등 여근곡을 두고 무수한 이야기가 있다. 그 여근곡이 지금은 새로운 관광명소로 거듭나게 될 것 같다. 경주시에서 새롭게 여근곡을 관광명소화할 움직임을 볼 수가 있었다.



용왕당괴 산신각을 모시고 있다.



대웅전 안의 모습


여근곡 샘터에서 호스를 연결하여 물맛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여근곡 맞은편의 산으로 앞의 작은 능선에 남근을 상징하는 산이 있다한다. 지금은 도로 개설로 인해 확인하기 힘들지만 마을 사람들의 구전으로 확인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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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2리 마을인 불지에서 본 여근곡입니다.왼쪽 붉은 지붕이 여근곡 전망대입니다>

<가까이서 본 여근곡입니다.>

사람들 모두 갖는 관심의 대상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성(性)에 관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것이 발전되어 하나의 사물에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종종 산행을 하다보면 남녀 간의 모습을 닯은 바위들을 보게된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에 흥미를 갖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천관산의 양근석과 금수굴, 월출산의 남근석과 베틀굴을 남여의 그것에 비교를 한다. 비봉산 바위벽에 절묘하게 붙은 남근석, 가까은 금정산 화명동에서 오르는 능선상에서도 그러한 남근석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대상이 매우 크다 보니 바위가 많은 산행지에는 꼭 그런 모습이 눈에 잘 보이는 것 같다.



경주 여근곡 오봉산 주소:경상죽도 경주시 서면 천촌리




그러나 오늘 소개를 하고자하는 경주 오봉산은 하나의 작은 바위가 아니라 엄청난 큰 하나의 산을 두고 여성의 음밀한 부위와 흡사하다는 것이 앞에 열거한 곳과 다르다.
오봉산 여근곡은 선덕여왕때부터 불리어 져 왔는 것 같다. 선덕여왕의 예지로 백제군을 이곳 여근곡에서 섬멸하니 말이다.
산행입구의 신평리 마을에서는 여근곡을 여자의 그것을 의미하는 뜻으로 소산으로도 부른다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얼마나 닮았기에 예나 지금이나 그 난리인지 일단 여근곡 오봉산을 찾아 가보자.

<우측으로 오봉산 정상이 보이며 오봉이 확인된다. 여근곡 전망대 박용씨는 그 아래로 능선이 흘러 내리면서 임신한 여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하였다>

산행경로는 윗장시 버스정류장~여근곡박물관~유학사~여근곡샘터~소산정상~주능선 안부~전망대~임도~파평윤씨묘~코끼리바위~오봉산~주사암~마당바위~5봉 붉은바위~(주사암)~주사골~천촌리마을 회관. 산행시간은 3시간30분 소요.
들머리는 건천읍에서 아화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우측으로 용명건강원, 건천 낚시건물이 보이며 여근곡과 여근곡 전망대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좌회전을 하면 여근곡의 실체를 확인 할 수 있다.
입구에서 들머리인 유학사 까지는 2km. 중간에 신평2리에 있는 여근곡 박물관을 잠시 들러보자. 개인 주택으로 여근곡에 관한 수석과 옥상의 전망대에서 여근곡을 만날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유학사 안내판을 따라가면 된다.
유학사에는 단청도 입히지 않은 정갈한 사찰로 여근곡에서 약수를 호스로 연결을 하여 경내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청정수 샘터 앞에서 산길은 시작된다. 여근곡, 오봉산300m의 이정표에서 돌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바로 작은 골짜기와 만난다.
여근곡의 우측골로 건너면 샘물이 마르지 않고 일정한 양만큼 솟아 나온다는 여성의 그곳으로 이어진다. 여기가 백제군의 매복 장소이며 신라군에게 전멸을 당한 곳으로 등산로 상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산길은 다시 작은 계곡을 건너 좌측으로 내려 오는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불에 그을린 흔적을 볼 수 있는데 1996년에 오봉산에 큰 산불로 인해 오봉산의 북사면은 모두 숯덩이로 변했지만 여근곡의 중요 부분만은 불길도 피해가 마을사람들이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주사암 옆 지맥석인 마당바위로 김유신 장군이 병사와 함께 휴식을 즐겼다 한다.>

지금도 그을린 실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주위에는 소나무가 아직도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20분이면 묘지가 여럿 있는 소산 정상 부근에 올라 설 수 있다.
잡목으로 인해 소산은 그냥 흘러갈 뿐이다. 편편한 등선의 소산 정상 부근을 지나면 오봉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산길과 만난다.
된비알로 인해 지그제그의 산길이 나 있어 능선까지 30여분 힘들이지 않고 안부에 오를 수 있다. 좌측은 건천IC인 송선리로 하산을 할 수 있고 오봉산 정상은 우측길이다. 지금은 산 능선으로 산길이 나 있지만 뚜렷한 옛길이 무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신라시대때부터 병사들이 다닌 것 같은 소로는 뭍혀 버리고 산성의 흔적이 나 있는 능선으로 올라선다. 이일대부터 건너편의 산능선을 도는 능선길이 사적 제25호인 부산성(富山城)으로 주사산성이라고 한다..
신라 문무왕 3년 완공된 석성으로 백제군과의 전쟁으로 부산성은 피바다가 되는 아픔을 겪는다. 그러나 지금은 모 제벌이 불하를 받아 고랭지 채소밭으로 이용을 하고 있다. 5분 뒤에 암봉의 정점인 전망대에 올라선다. 좌측으로 낙동정맥길과 만불사의 불상, 관봉, 인내산 구미산을 확인 할 수 있으며 발아래 건천읍과 벽도산, 그뒤로 남산의 금오산과 고위산,토함산과 동대봉산등 경주의 산을 확인할 수 있다. 산성의 흔적도 나타나고 15분후 임도와 만난다.
주사암에서 신평리 또는 도계리로 내려서는 길이다. 오봉산은 좌측 임도로 주사암방향. 200m 진행후 다시 능선을 타기 위해 임도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서면 입구에 파평윤씨묘와 만난다. 묘지 뒤로 올라가는 산길이 있으며 5분이면 여러개의 바위가 솟아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처음 만나는 바위가 코끼리 모습과 흡사하여 코끼리 바위로 명명을 하고 좌측으로 틀어 10분이면 무덤 옆에 초소와 바위위에 검은 빗돌로 경주 일요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과 만난다.
여기가 1봉으로 정상에서 보는 산군은 앞의 산군과 별 다른 것은 없지만 낙동정맥의 숙제고개. 생식촌과 사룡산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주사암을 찾아가기 위해 정상석을 되내려와 우측으로 내려 가면 주사암과 3~5봉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먼저 우측 임도를 내려서 두 개의 바위가 일주문 역할을 하는 주사암을 찾아가자. 산 정상에 절묘하게 자리를 잡은 주사암은 그래서 길게 절터가 앉아 있다. 이 사찰은 불국사의 말사로 의상대사가 창건을 하였다. 창건당시 부산성 축성에 관한 전설이 있어 의상대사가 부산성을 축성할 때 주사암을 부산성 안으로 두면은 신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예언을 하였다 한다. 그 예언이 어느정도는 맞은 것 같다.
다시 입구로 돌아나와 능선을 오르면 산길을 따라 주사암 뒤 암봉을 우측으로 돌면 지맥석의 마당바위와 만난다. 김유신장군이 병사와 휴식을 취했다는 장소로 장성 기백명은 족히 앉아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그 끝에 서면 오금이 저릴 정도이다.
3봉4봉5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낙엽이 깔려 있으며 각 봉은 오르 내림을 반복한다. 5봉 끝에 서면 낭떨어지 같은 하산길로 굵은 동아줄이 메여져 있는 절벽이다. 밧줄를 잡고 내려서면 “경주전통문화체험학교”로 하산을 할 수 있다.
천촌리 마을에서는 이 바위를 붉은바위로 부른다. 저녘 해질력에 바위가 붉은색으로 변하면 소죽을 끓였다며 하산한후 마을의 촌로가 귀뜸을 해준다. 주사골로 하산을 위해서는 주사암까지 되돌아 가야한다.
마당바위 앞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멋진 소나무가 서 있는 전망대로 여기서 보면 지맥석의 또 다른 맛을 볼 수 있다. 주사암 종각 밑을 지나 내려서면 바위아래 있는 공양간 건물 그 앞으로 하산길이 열려있다 부도탑 한기를 지나 100m뒤 갈림길, 직진은 부산성으로 연결되고 천촌리는 우측으로 내려선다.
지난 가을의 흔적인 낙엽이 잔돌 깔린 등산로를 덮고 있어 하산시 조심을 해야 할 것 같다. 계곡 좌측으로 산길이 뚜렷하게 내려간다 뒤돌아 보니 지맥석의 마당바위가 창 처럼 뾰쪽하게 한 모습이다. 주사지에서 뒤돌아본 오봉산은 왜 오봉산인지 그 모습을 보여준다.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를 뺀 4개의 봉우리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주사암에서 천촌리 마을 회관까지는 60분이 소요된다.

*찾아가는길: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00원.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옆 고속버스 터미널 앞 경주파크관광호텔 앞 정류장에서 300번, 305번 좌석버스를 타고 건천읍 윗장시마을 정류장에서 내린다.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분 걸리며 1500원. 날머리 서면 천촌동회관에서 경주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2시20분, 4시50분, 6시50분, 7시50분, 8시50분(막차)에 있다. 천촌동 에서 출발하여 경주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윗장시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서면 아화리 개인택시(054-751-6478)를 이용하여 여근곡까지 갈 수  있다. 참고로 여근곡전망대(054-751-2229)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천IC~경주 영천 4번 좌회전~건천~(좌측 여근곡 팻말 보고 좌회전해도 상관없음)~굴다리~대구 영천 방향 좌회전~건천읍사무소 지나~윗장시마을 정류장 보고 좌회전(여근곡 주사암 유학사 팻말)~철길 건너~원신~여근곡 전망대~유학사 주차장 순.

*맛집은 건천Ic 에서 산내쪽인 건천읍 송선리 당나무식당(054-751-0975)이며 20년간 흑염소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집이다.

경주에는 2대 특화사업을 천북과 산내에 한우 불고기 단지와 흑염소 단지를 추진하였다 건천읍 송선리는 염소 특화 단지를 조성할때에는 열집 이상이 흑염소불고기를 취급하였지만 지금은 단 3집만 남아 있다한다. 그중 당나무식당은 인근의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는 곳이란다. 염소 불고기 1인분 1만2천원. 육회4만원, 식사는 고기드신분에 한해 육개장은 무료이며 밥1천원. 육개장만 6천원.그리고 단체손님도 받는다.


여근곡 윗장시 버스 정류장에서 좌회전을 하면 된다. 우측 여근곡과 여근곡전망대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뛴다.

윗장시 버스 정류장에서 좌회전하여 철뚝을 지나면서 본 여근곡 모습입니다.우측 소나무가 보이는 곳이 불지 저수지입니다.

여근곡 박물관의 박용씨께서 오봉산여근곡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수석등을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여근곡을 정면에서 볼 수 있도록 전망대를 만들어 배려를 해 놓았다.


오봉산의 실질적인 들머리 유학사. 여근곡 샘 아래에 위치해 있다.


여근곡의 샘물을 호스로 연결하여 유학사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여근곡청정수의 글씨를 볼 수 있다.


청정수 샘터 밑에 돌계단길이 여근곡과 오봉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이다. 이정표에 여근곡, 오봉산300m라 표기되어 있다.

여근곡의 샘터로 백제군이 여기서 매복을 해 있다가 전멸를 하게 된다.

소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오봉산 주능선으로 지그제그길의 산길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능선에서 첫 전망대로 발아래는 건천읍과 좌측으로 만불사의 불상.낙동정맥의 관봉, 인내산, 구미산, 형제바위, 선도산, 벽도산, 남산의 금오산 고위산, 토함산, 동대봉산등 경주의 산을 볼 수 있다.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길로 오봉산 정상도 확인된다.


임도를 지나 파평윤씨묘 뒤편으로 올라서면 만나는 코끼리바위, 취재팀이 명명하였다.

오봉산 정상. 그 우측으로 2봉의 암봉과 좌측으로 사룡산의 낙동정맥길을 볼 수 있다.

우측의 암봉이 오봉산2봉으로 그 아래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주사암이 있다.

주사암을 보기 위해 임도로 내려서면 일주문 격인 큰바위를 만나고 그 사이로 들어서면 주사암이다.



지맥석인 마당바위로 김유신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다양한 모습의 마당바위

마당바위를 지나면서 만나는 특징있는 바위 모습들...

5봉인 붉은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정면으로 서면의 아화리를 볼 수 있다.

붉은바위로 해질녁에 빛을 받아 바위가 붉은 색으로 변하면 저녁시간으로  그때 마을 사람들이 소죽을 끓였다한다. 

다시 마당바위로 되돌아 나와 마당바위에서 마당바위 사진 포인트를 보고 찍은 모습입니다. 소나무 밑으로 주사암가는 길이 있습니다.

주사암 범종각 아래입니다. 밑에 공양간이 보이네요.

공양간 앞으로 하산길이 열려 있으며 부도탑과 만납니다.

하산길은 많은 낙엽으로 덮혀 있어 조심을 해야합니다.

하산을 하면서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마당바위가 중앙에 크게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사골 하류의 산성지입니다. 그위로 오봉산의 네봉우리가 정확하게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오봉산의 네봉우리입니다. 좌측 암봉이 붉은색으로 바뀌면 소죽을 끓였다는 붉은바위입니다.

천촌리 마을 회관 앞에서 본 오봉산입니다. 붉은 바위만 또렷하게 보입니다.


주사산성으로도 불리는 부산성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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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사는 신라 선덕여왕 20년인 537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그 후 뚜렷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다만 조선 철종 함풍 7년 무오(1858)에 이우인이 중수하였다하며 고종 융희 2년 무시(1908)에 원인 모르는 불이나 대웅전을 전소시키는 화재가 일어나 유금사는 쇄락의 길을 걷다가 주지 김화한 스님이 다시 중수하여 사세를 키워왔다. 그뒤 이현호 스님이 다시 중수하면서 현재의 사세를 갖추었다. 유금사는 관내에서는 아주 오래된 사찰로 많은 문화재급 유물이 있었으나 잦은 화재와 도난으로 유실 또는 도난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현재는 대웅전 좌측으로 향로전과 우측으로는 서운루와 요사체를, 대웅전 우측으로 산왕각을 두고 있다. 대웅전 뒤에는 원래 대웅전 앞에 있던 삼층석탑이 자리를 하고 있다.





칠보산 유금사는 일곱보물을 간직한 산으로 두가지 이야기가 전한다한다.

첫 번째가 선덕여왕시절 일곱 공주가 이곳 유금사에 와서 보살이 되어 살다가 모두 선화한 선녀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중국의 두사충이 이곳을 지나다가 물맛을 보고는 이산에 일곱가지의 보물이 있다하여 칠보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원래는 바닷가의 영향으로 항상 칠보산이 구름을 이고 있어 등운산으로 불였는데 칠보산으로 부르게 되었고 지형도를 보면 등운산은 그 아래 767m로 따로 독립되어 있슴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는 대웅전과 종각, 장화부인 신령각 등을 갖추고 제법 큰 규모를 자랑했던 사찰로. 그러던 어느날 주지스님이 불국사에서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절 앞 용소에서 두 마리 용이 교미하는 것을 보고 고약하게 여겼는데 스님이 절에 도착하기도 전에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로 절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유금사는 장화부인을 모신 신령각을 두고 있었는데 애뜻한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신라 말엽에 마의태자에게 연정을 품은 장화부인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 유금사 금선암에 찾아와서는 마의태자가 왕에 오르기를 축원하고 기도하였다. 신라가 망하자 마의태자는 경주를 떠나 금강산으로 가게 되면서, 마의태자가 종적을 감춘것을 보고 아마 마의태자가 죽었다는 전갈은 받은 장화부인은 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다 그 자리에서 죽어 마을 사람들이 크게 장사를 지내주고 유금사에 장화부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신령각을 지었지만 현재는 유실되어 폐허가 되었다 한다. 유금사 동남쪽 약 500m 지점에 석축으로 조성된 거대한 고분이 남아 있는데 신라 경순왕의 후비 장화부인능이라고 마을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삼국시대때 부터 손으로 금을 주울 정도로 많이 생산되어 유금마을이라부르며 유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불국사 말사이다
찾아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건천IC~경주 영천 20번 좌회전~포항 영천 경주 좌회전~포항 20번~건천터널~경주 포항~경주터널~포항~말구불터널~포항천북20번~포항경주7번(북경주)~포항7번~울진포항7번~울진영덕7번28번~울진영덕28번~울진영덕7번~흥해읍~울진영덕28번(성곡ic)~울진영덕7번~영덕군~강구~울진평해7번~칠보산8km자연휴양림. 유금사6km좌회전~금곡리유금사2km~유금마을순

<자료 : 칠보산유금사 주지 玄煜 스님> 글을 정리함

 


칠보산 유금사의 일주문



대웅전 좌측으로 있는 향로전으로 하필 역광이네요.

향로전 안에 모서져 있는 불상입니다.


대웅전 안의 삼존불입니다











유금사에 들런 그날 겨울 준비가 한창인 김장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유금사 삼층석탑
보물제674호
소재지: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금곡리 815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탑양식으로 2중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얹었고 높이는 3.2m이다.

모연문. 유금사 삼층석탑에거 나온 금동불상인 피리부는 동자 악천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가는 바람에 화강암으로 조성을 하여 모신다고 한다

원래는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법당이 무너지면서 뒷뜰로 옮겼는데 그때 탑안에서 금동보살을 찾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재 보관을 하고 있다 한다.

현재 탑은 지대석과 아래층 중앙부가 약간 꺼져있고 상층기단 면적이 일부는 시멘트로 보안을 하였다.


상륜부는 없어 졌지만 현재 보관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1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각층 몸돌마다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밑은 수평으로 받침수는 각층4단으로 되어 있다.

지대석과 아래층 중앙주가 꺼진곳을 볼 수 있다.


기단부는 여러개의 장대석으로 지대석을 놓고 그위에 하대석과 중석을 하나의 돌로 놓아 얹었으며 중석 각면 모서리 기둥과 안기둥1주가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기단부의 크기와 각층의 체감 비율이 안정감을 주는 우수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자세한 정보는 문화제청 홈페이지입니다.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2,0674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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