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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산청여행)단속사지 삼층석탑과 정당매. 산청 3매 단속사지 삼층석탑의 정당매를 찾아서,


지리산 산청의 3매(梅)에서 이번에는 두 번째 여행지인 정당매의 단속사지입니다. 

산청 3매는 정당매, 남사예담촌의 원정매와 산천재의 남명매를 말합니다. 

남사리 하씨 고가에서는 원정매가 날씨 탓에 피지 않아서 허탕을 쳤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운리의 단속사로 향했습니다.





산청군 정당매,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운리 302

산청군 정당매,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 연락처:055-970-6441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72·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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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3 - (경남여행/산청여행)남명선생 사적지 남명기념관. 시천면 덕산에서 그의 선비정신을 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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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지 또한, 1,000m가 넘는 웅석봉의 남쪽 청계 계곡을 끼고 자리한 곳인 만큼 아무리 남쪽을 향해 있다지만 매화가 과연 폈을까 반신반의하며 찾았습니다.

그냥 단속사지 삼층석탑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며 포기하고 삼층석탑 구경만 했습니다.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은 웅석봉 달뜨기 능선과 석대산의 두 능선이 내려오는 골짜기 안에 단속사지가 있습니다.

 


단속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을 보면 천년을 훨씬 넘긴 고찰 터입니다. 

단속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단속사 창건은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모두 신라 경덕왕 때입니다. 

748년(경덕왕 7년) 직장 이준은 평소에 출가해 절을 짓겠다는 뜻을 펼쳤는데 그걸 실현에 옮기며 조연에 있던 암자를 크게 중창 한 게 단속사라 합니다. 



또 다른 설은 763년(경덕왕 22년) 신충이 지리산을 찾아 ‘세속의 모든 인연과 절연하다’라는 뜻의 단속사를 창건했다는 설입니다. 

단속사는 신라의 신행, 고려의 탄연선사 등이 입적했던 곳으로 조선조까지 고승 대덕과 운수납자의 수행처였습니다.



단속사의 폐사는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1568년(선조 1년) 유생에 의해 불상과 경판이 불살라졌고 정유재란에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중수했으나 폐사되었다 합니다. 

현재 단속사지에 당간지주와 삼층석탑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금당터와 강당터 등 당시 초석이 남아 있어 옛 단속사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금당터 앞에 이중기단으로 조성했습니다. 

그중에 아래 기단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지붕돌의 아랫면에는 5단 층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두 탑 중에서 동탑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서탑은 상대적으로 파손이 심한 모습입니다. 

1967년 해체과정에서 서탑 몸돌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한 것으로 보이는 둥근 모양의 사리공이 나왔습니다.

 




단속사지에서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과 함께 유명한 게 매화입니다. 

단속사지의 매화는 정당매라고 따로 이름하여 부릅니다. 

단속사지 정당매는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이던 강희백(1357~1402)이 과거 준비를 하면서 단속사 경내에 심었던 매화나무입니다. 

그 매화를 강희백이 지낸 벼슬인 정당문학에서 따와 정당매라 부릅니다.





정당매가 늙어죽자 후손이 그 자리에다 새로운 매화나무를 갖다 심었습니다. 

그 세월이 600여년이 넘다보니 매화나무는 수도 없이 교체되어 오늘날까지 정당매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단속사의 정당매를 보고 많은 문인이 한시를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생육신의 한사람인 추강 남효은과 김종직의 제자였던 탁영 김일손, 지리산 천왕봉을 노래한 조선 중기의 남명 조식 선생도 단속사의 정당매를 찾아 시를 남겼습니다.







단속사지 앞에는 까만 빗돌에 남명선생이 마침 단속사를 찾은 사명당에게 준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옮겨 보면 

“꽃은 조연(槽淵)의 돌에 떨어지고/ 옛 단속사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 정당매(政堂梅) 푸른 열매 맺었을 때”

 








정당매가 과연 피었을 까하며 설레게 했던 단속사지. 

일행 중 단속사지 삼층석탑 주위의 매화나무를 유심히 보다가 “매화다”하는 소리에 흥분되어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모든 매화는 피었다가 또다시 꽃잎을 떨구며 자연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매화를 찍는다고 난리를 치니까 할머니께서 앉으시면서 요즘 매화를 찾으러 많은 사람이 온다고 했습니다. 

"여짝도 있고 저짝도 있다"하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전각 옆의 진짜 정당매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단속사지 옆에 핀 매화를 몇 장 찍고는 빨리 이동하자며 마지막 남은 매화 여행지 산천재로 향했습니다.



산천재에 다 왔을 때 쯤 정당매에 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차를 되돌려 갈 수도 없고 다음 일정도 있어 단속사지 정당매는 미완의 숙제로 남겨두었습니다. 

과연 폈을까 아니면 안 폈을까를 노닥거리며 아마 진짜 정당매는 안폈을 것이라면서 위안 아닌 위안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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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산청여행)남사예담촌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가장 아름다운 마을 남사예담촌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통영 대전고속도로 단성나들목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가는 길에 반드시 거치는 곳이 남사마을입니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남사마을과 남명 조식 선생의 산천재와 단속사지를 엮어서 떠났던 산청 삼매(三梅) 여행은 초반인 남사마을에서 일이 틀어져 버렸습니다. 

블로그에 올라왔던 지난해 남명매와 원정매, 정담매의 포스팅 날짜를 참작하여 떠났으나 예년보다 올해 날씨가 상당히 추워서 그런지 꽃망울만 맺혀 올해 삼매 개화 시기는 한주쯤 더 기다려야 할 듯했습니다.




남사예담촌 산청 남사리 이씨고택 주소: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340-7




2009/05/21 - (경남여행/산청여행)남사예담촌. 돌담길이 아름다워 문화재로 등록된 남사예담촌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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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성질 급한 매화 몇 송이는 당연히 폈겠지 생각했는데 감감무소식이어서 정말 많이 아쉬웠습니다. 

지금이야 모두 피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매화도 매화지만 ‘꿩대신닭’이란 심정으로 여행을 겸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남사예담촌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입구에 예전에 없던 남사마을의 전경을 보는 정자 전망대에 오르는 아치형 육교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남사예담촌은 많이 바뀐 모습이었습니다. 



지리산을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전통마을인 남사마을은 흙과 돌이 섞인 기하학적 모양의 담장이 아름다워 남사예담촌으로 불리며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남사예담촌의 많은 고가 중에서 특히 남사예담촌을 대표하는 풍경은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입구에 있는 크로스 회화나무입니다. 

서로 기대어 선 모습이라 마치 부부 같이 서로 의지한다 해서 부부 나무라 부릅니다.




부부나무 앞에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 산청 남사예담촌’을 알리는 안내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골목 양쪽의 토담에 박혀 있는 몽돌이 어릴 적 시골에서 살던 때의 담장과 똑 닮았습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에서 보듯 많은 초가집과 흙담장이 초가 대신 슬레이트가 올라가고 토담 대신 시멘트로 찍어 낸 블록담장을 교체하여 농촌의 삶은 많이 바뀌었으나 그와 반대로 농촌의 역사성은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남사마을은 모진풍파(?)에 용케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고향의 향기를 듬뿍 느끼게 합니다.



남사예담촌은 지금까지 여러 번 찾아왔고 그 때마다 이곳 부부 나무를 찾았지만, 안쪽의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는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출입문이 열려 있어 이씨고가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이씨고가는 1700년경에 지어졌으며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이라 합니다.

먼저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키가 큰 회화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나무의 배꼽쯤 높이에 구멍이 나 있는데 관광객이 얼마나 문질렀는지 반질반질했습니다. 

이 회화나무는 마을에서 삼신 할매나무라고 합니다. 

삼신할매는 아이를 점지해주는 할머니입니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여인이 구멍에 손을 넣고 빌면 애를 갖게 해주는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 합니다. 

남사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이며 수령도 450년쯤 되었다 하니 남사마을의 터줏대감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는 전통적인 남부지방의 사대부 한옥 구조입니다. 

안채를 중심으로 입구에 사랑채와 익랑채, 곳간채에 ‘ㅁ’자 형태이며 사랑채 오른쪽의 중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가는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사당은 곳간채 뒤쪽에 배치하여 보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사랑채는 일자형에 안채와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앞면 4칸에 옆면 3칸인 사랑채는 앞과 뒤에 툇간이 있으며 들보 5량인 팔작기와지붕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방방곡곡에 있는 이름난 고택을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고택은 대청을 중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는 특이하게도 대청은 방 사이에 1칸을 두었다는 것을 보면서 주거용도를 더 우선시 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귀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수장 기능을 하도록 방의 뒤 툇간을 넓게 잡아 겹집형식의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3칸 크기에 앞뒤로 툇간이 있고 들보 5량인 팔작기와지붕입니다.











남부지방의 일자형 가옥에 건넌방 툇마루는 대청보다 약간 높게 만들어졌는데 그 밑에 아궁이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안채도 사랑채와 같이 주거용도를 중시한 건물입니다.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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