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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박제상 생가 효충사, 효충역사공원. 치술령 망부석 신라 만고충신 박제상 생가 효충사가 새롭게 효충역사공원이 되었습니다. 


 지난 설에도 양산 공원묘원에 모신 형님 산소를 찾았습니다. 항상 성묘 길에 박제상유적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마음만 갈뿐 방문을 하지 못하다가 이번에는 형님 산소에서 성묘하고 돌아오면서 효충사에 들렀습니다.



 



 박제상 유적지로 효충사인데 2014년 10월 새 단장을 하고 효충역사공원으로 이름과 모습이 확 바뀌었습니다. 효충사 이외에도 새롭게 징심헌과 고직사 등 부속건물이 갖추어져 이제는 번듯한 모습이었는데 명절이라 그런지 모든 시설물이 문이 ‘꽉’ 잠겨 있어 내부관람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정말 큽니다.

 한편, 신라 때 만고충신 박제상을 추모하는 사당이 이제 제대로 된 위상을 갖추게 되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박제상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다들 배웠던 역사적 인물입니다. 그래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망부석하면 생각이 날까요. 망부석 하니 가수 김태곤이 먼저 생각난다고요. 맞습니다. 김태곤이 부른 망부석도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뜻은 같으니까요. 그러나 전국에 많은 망부석 전설 중에 박제상의 치술령 망부석은 가장 유명하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박제상에 관해 알면 자연스럽게 치술령 망부석의 전설도 알게 됩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박제상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 후손입니다. 때는 신라 눌지왕 시절로 눌지왕은 두 동생인 복호와 미사흔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항상 두 동생을 매우 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에 박제상은 고구려로 건너가 몰래 복호를 빼내어 신라로 돌아왔으며 내친김에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까지 신라로 탈출시켰습니다. 그러나 박제상은 탈출을 감행하다 대마도에서 왜군에게 붙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왜왕은 박제상의 충성심에 감복하여 자신의 신하가 되면 목숨을 살려주고 금은보화까지 주겠다고 회유하지만 박제상은 죽을지언정 자신은 영원한 신라의 신하라며 그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왜왕은 나의 신하를 할 수 없다면 신라의 신하도 될 수 없다며 잔인하게 사지를 불태워 죽였습니다.

 한편 박제상의 아내 김씨 부인은 일본으로 건너간 남편이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기다리며 매일 남편이 건너간 바다가 잘 보이는 치술령에 올랐습니다. 치술령 정상아래 바위에서 남편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끝끝내 박제상은 돌아오지 않자 지쳐 김씨부인과 두 딸은 죽어 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몸은 돌이 되었지만, 영혼은 파랑새가 되어 맞은편 석굴에 날아들었는데 후세에서는 김씨 부인과 두 딸이 죽어 변한 바위를 망부석이라 부르고 영혼이 되어 새가 날아든 석굴을 은을암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망부석과 은을암이 삼각점을 이루는 곳인 울산시 울주군 만화리에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박제상의 충절과 김씨 부인의 정절을 기리는 사당이 세워졌다합니다.

 그러나 세월 속에 이야기로만 전해오다 1982년 그 자리에 다시 치산서원을 세웠으며 2008년 9월에는 박제상 기념관을 조성하였습니다. 이곳 양산의 효충사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태어났던 자리에 세워진 사당입니다. 도로 안내판에도 ‘박제상생가’로 안내되어 있었는데 이곳 효충사에는 박제상과 그의 아들 백결 선생을 기리는 위패와 초상화가 함께 모셔져 있다합니다.

 명절이라 그런지 모든 곳이 꼭꼭 닫혀 있어 확인 할 수 없어 참말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효충사는 1칸 규모의 대문을 들어서면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1946년 처음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박제상의 업적을 담은 효충사 비석이 있습니다.

 참고로 백결 선생은 박제상의 아들이자 거문고의 명인입니다. 워낙 가난하여 찢어진 옷을 백군데도 넘게 기워서 입었다하여 백결선생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집안에는 먹을 양식이 남아있지 않아 부인에게 거문고로 방아 찍는 소리를 들려주어 위로했다합니다.

 현재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새롭게 조성된 박제상 유적지 효충역사공원은 경부고속도로 양산나들목에서 어곡공단 방향으로 가다 어곡터널 진입 전에 오른쪽 효충마을에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경상남도 기념물 제90호

 ◆양산 박제상 생가 효충사 효충역사공원◆

★효충사, 효충역사공원

효충사 주소: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박제상길 11-1


 

 

2013/01/03 - (울산여행/울주여행)만고충신 박제상과 그의 가족 영혼이 잠들어 있는 울산 치술령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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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과 그의 부인을 기리기위해 세운 치산서원.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

 

 

☞(울산여행/울주여행)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신라 충신 충렬공 박제상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

 

울산하면 항상 떠오르는 말이 있다. 공업도시가 항상 울산 앞에 붙어 '공업도시 울산'으로 불려왔다. 고속 성장기의 사회에서 울산은 그만큼 중요한 역활을 담당하였다. 지금도 울산시는 문화보다는 공업의 색체가 강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공업도시란 색깔을 지우려는 노력을 하였다. 매연을 뿜어내는 공장의 이미지인 울산을 문화와 예술 방면으로 돌려 살기 좋은 고장 울산을 홍보하기 위함인지 언제부터인가. '충효의 고장 울산'을 슬로건으로 걸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신라시대 때의 충신 박제상으로 '박제상유적지'를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치산서원과 박제상기념관 안내도.

 

 

 

☞(울산여행/울주여행)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신라 충신 충렬공 박제상 치술령의 전설로 살아나다.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

 

울산의 북쪽 끝에는 치술령이 있다. 순간적으로 이쪽에서 저쪽을 넘어다니는 고개쯤으로 인식을 하기 쉽지만 치술령은 산이름이다. 울산과 경주의 경계에 솟아 있는 치술령은 박제상의 유적지가 널리 퍼져 있다. 먼저 일본에 간 남편 박제상을 기다리기 위해 매일 치술령에 올라 일본쪽의 바다를 바라보며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끝내 지쳐 숨을 거두고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이 정상 인근에 두곳이 있다. 그 연유를 보면  울산쪽의 바위와 경주쪽의 바위가 각각 그곳인데 울산쪽의 바위에는 언제 누가 새겼는지 모르지만 '망부석'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일본 방면의 바다가 더 잘 보이는 망부석은 경주쪽 망무석이라 어느것을 망부석이라 꼭 단정하기는 어렵다. 박제상 부인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보면 두곳의 바위에 번갈아 올라가면서 까치발로 돌아올 남편을 기다렸을 것 같은 마음이 느껴진다. 이곳에는 경주와 울산의 지자체에서 각각의 망부석 안내판을 세워 두었다.

 

 

 

 

 

치술령 건너편에는 국수봉이 솟아 있다. 그 아래 박제상의 부인이 전설이 되어 이곳 암자인 은을암에 전한다. 은을암은 '새가숨은 바위'라는 뜻으로 부인과 딸의 영혼이 파랑새가 되어 이곳 바위에 숨어 들었다고 전한다. 그와 함께 이곳 만화리의 지명은 전설을 뒷받침 하듯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다. 

 

 

 

 

 

☞(울산여행/울주여행)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신라 충신 충렬공 박제상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 치술령 유래.

 

박제상이 일본으로 가게된 연유를 보자. 박제상은 신라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눌지왕(재위 417~458)이 임금이 되었다. 그 당시 그의 두 동생이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는데 임금은 두동생을 보고 싶어 안달하였다. 박제상은 눌지왕의 왕명을 받아 음밀하게 고구려로 들어가 복호왕자를 구출하고 돌아와 다시 왜국에 잡혀 있는 미사흔을 구출하기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무사히 미사흔을 구출하여 신라로 보내고 그는 정체가 탄로나 대마도에서 그만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게 된다. 왜왕은 박제상의 사람됨을 알고 회유하여 그의 신하가 되면 목숨도 살려주고 벼슬과 많은 금은보화를 주어 이곳에서 편히 살게 해주겠다 꼬시지만 박제상은 자신은 신라의 신하라고 말하며 끝까지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았다.

 

 

 

 

 

이에 왜왕은 분노하여 고문을 동원하며 끝에는 불에 태워 죽였다. 치술령에서는 그의 부인이 매일 같이 딸과 함께 올라 박제상의 무사귀환을 빌며 기다리다 통곡을 하며 죽어 돌이 되었다는 전설로 박제상의 부인을 '치술신모'라 하고 사당을 세웠다. 지금 치술령 정상에는 옥돌에 '치술신모' 비석을 세워 부인을 위로하고 있다.

 

 

 

 

 

☞(울산여행/울주여행)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신라 충신 충렬공 박제상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 치산서원에는 박제상과 삼모녀의 위패와 영정 모셔.

 

치산서원은 박제상과 그의 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던 사당자리에 1745년 영조 21년에 최초로 치산서원을 세웠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에 이르러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되었다. 이후 1993년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 치산서원은 내에는 충렬공 박제상의 영정을 모신 충렬묘와 신묘사에는 그의 부인 금교김씨의 위폐와 영정을 모셨다. 쌍절려는 박제상의 두딸인 장녀 아기와 삼녀  아경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 넋을 위로하고 있다.

 

 

 

 

 

☞(울산여행/울주여행)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신라 충신 충렬공 박제상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대마도에서 박제상 화형을 당하다. 그 전설이 내려와.

지금 대마도는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더 찾아가기가 쉬운 곳이다. 당일로도 갔다 오는 곳이 된 대마도는  현재 박제상이 화형된 곳에 그의 비가 세워져 있다. 그런 연유로 1500년이 넘은 지금에도 대마도 주민들은 우리에게 아주 우호적인 모습이라 한다. 실제로 필자도 그리 느꼈다. 이는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화형을 당한 신라 충신 박제상의 충성심에 감복한 사연이 전설이 되어 대마도에 전해내려 오기 때문이다.

 

 

 

 

 

 

 

 

 

 

 

 

박제상의 김씨 부인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둔 신모사.

 

 

박제상의 두딸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둔 쌍절각.

 

 

 

 

 

 

 

 

 

 

 

 

만고충신 충렬공 박제상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둔 충렬묘.

 

 

 

 

 

 

 

 

 

 

 

 

 

 

 

 

 

 

 

 

박제상 기념관 여행정보

관람안내

관람시간:09:30~18:00

휴관일:매주월요일, 신정 설날 추석, 공휴일 다음날, 그리고 기념관 관리상 휴관일

관람료:무료.

관람문의:052-254--7964~5

대중교통편:802번 중구청 또는 성남동에서 탑승용이

 

 

 

 

 

 

박제상 김씨 부인과 장녀 아기와 삼녀 아경의 삼모녀상

 

 

 

 

 

 

 

 


 

 

입본으로 건너간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울산쪽에 있어 울산망부석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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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상유적지 치산서원

 

☞(울산여행/울주여행)신라 충신 박제상의 치술령 산행 개요

 

울산에는 산이면서 고개 령(嶺)자를 사용하는 산이있다. 전국적으로 그런 산이 몇 있지만 이곳 치술령은 경주와 울산의 해안에서 내륙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하는 고개다. 그리고 이곳에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해온다. 신라의 충신인 박제상이 눌지왕때 임김의 두 동생이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갔다. 박제상은 눌지왕의 명을 받아 동생 복호를고구려에서 구출하고 다시 왜국으로 건너가 마사흔을 구해내고 자신은 미쳐 탈출하지 못해 발각된다. 그 후 왜왕은 갖은 유혹으로 박제상이 자신의 신하가 되어 달라며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지만 그는 신라의 신하를 고집하며 끝까지 거부하다가 대마도에서 불에 타 죽고 만다.

 

 



 

 

 그의 부인과 두 딸은 이제나 저제나 지아비와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길 이곳에 올라서서 울산 앞 바다를 바라보다 돌이 되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산이다. 지금도 대마도의 일본인들은 신라의 박제상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아주 우호적이라한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면 6~80년대를 거치면서 울산광역시의 슬로건이 ‘공업도시 울산'이었다. 그만큼 울산은 산업의 성장기를 선점해 왔다. 최근에는 그 공업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충절의 고장 울산‘으로 슬로건이 바뀌었다. 그 충절이 박제상을 두고 한 말이며 1997년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로 지정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울산여행/울주여행)신라 충신 박제상의 치술령 산행경로

 

치술령 산행은 주로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에서 이루어진다. 국수봉을 연결하는 산행과 봉계리 배내마을에서 치술령을 연결하는 산행등 여러코스를 소개하였다. 이번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은 울산시 두동면 만화리 박제상 유적지에서 출발하여 경주 내남면 제내리로 하산을 하는 치술령 종주 코스를 선택하였다. 산행경로를 보면 만화리 박제상 유적지를 출발해 느티나무 노거수~옻밭노인회관~국수봉·치술령 등산안내도~잇단 삼거리~무덤~호미지맥 삼거리~울산 망부석(~참새미)~삼거리~치술령 정상~경주 망부석~잇단 삼거리~781m봉(헬기장)~제내리 갈림길~송전탑 아래 무덤~제내2리 경로회관을 거쳐 제내·사일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전체 산행거리는 12㎞ 정도로 산행시간은 5시간, 휴식을 포함하면 6시간 정도 걸린다. 겨울철에는 눈과 함께 많은 낙엽이 산길을 성가시게 한다. 유의하자.

 

 

 옻밭마을이 노거수

 

 

 

 

 

☞(울산여행/울주여행)신라 충신 박제상의 치술령 산행은 박제상 유적지에서

 

박제상 유적지의 치산서원 앞에서 출발해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수령 300~400년의 느티나무 노거수를 지나 옻밭노인회관과 옻밭마을 버스정류장을 차례로 지난다. 곧 충효사 입구다. 길 오른쪽에 국수봉·치술령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기존 등산로는 직진하여 법왕사를 거쳐 치술령 정상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취재팀은 맞은편 '치술령길 63' 주택 오른쪽 돌담을 다라간다. 대나무 숲 앞에서 왼쪽으로 올라간다. 올라서면 이내 사거리 길이 나오며 직진한다. 3기의 무덤 뒤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산 사면을 우측으로 돌아 완만한 오솔길을 걸으면 겨울이라 바짝 마른 계곡과 만난다.

 

 

 서어나무가 있는 갈림길

 

 

 

계곡 왼쪽 길을 따라 300m가량 올라가면 서어나무가 두 그루 서 있는 갈림길이다. 왼쪽 묵은 길을 따라 올라간다. 잡목이 성가시다. 능선으로 올라선다. 철탑 공사로 만든 임도 길에 소나무를 듬성듬성 심어 놓아 복원 공사를 해 놓았다.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은 거의 일직선으로 능선을 올라가며 고도를 높인다. 사람들의 왕래가 없어선지 산길 자체가 뚜렷하지 않다. 그냥 흔적을 쫒아 오르면 된다. 관목이 무성하고 가시가 많아 한두 군데 긁힐 각오를 해야 한다.

 

 

 

 

 울산망부석

 

 

 

 참새미 샘

 

☞(울산여행/울주여행)신라 충신 박제상의 치술령의 망부석은 울산과 경주에 한개씩

 

30분가량 오르면 길이 완만해지며 호미지맥 능선에 올라서는 갈림길이다. 왼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영남알프스 백운산으로 방향으로 호미지맥의 시발점이로 이어지고 치술령은 오른쪽이다. 이내 안내판과 덱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울산 망부석이다. 꼭 이리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곳을 쉼터로 만들어 두니 전망덱 아래에 과일껍질등과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그냥 스쳐가도록 하여야 하는데 이리 사람을 붙잡아 두는 시설물은 자연을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 아닌것 같다. 이곳 망부석은 울산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돼 있다. 큰 바위 한쪽에 망부석 한자가 새겨져 있다. 울산 망부석이라부른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박제상의 부인이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치성을 드릴 때 마셨다는 '참새미' 샘터가 있다. 겨울철에 얼어버리고 낙엽이 수북해 마시기 어렵다. 다시 돌아나와 망부석에서 치술령 방향으로 법왕사에서 올라오는 기존 등산로와 만난다. 직진하여 참나무 숲 속으로 난 완만한 길을 걸으면 치술령 정상이다.

 

 

 

 치술령 정상에 있는 신모사지비

 

 

 

 경주망부석

 

 

 

☞(울산여행/울주여행)신라 충신 박제상의 치술령 정상은 '신모사지'의 비석과 정상석

 

정상에는 '신모사지(神母祠址)' 비석과 치술령 정상석이 맞이한다. 이정표를 보면 오른쪽으로 국수봉 방향으로 이어지고 그 왼쪽으로 또 다른 나무 계단이 내려간다. 이곳이 경주 망부석이다. 울산과 경주에 각각 하나씩 망부석이 있어 나누어 부른다. 이곳에 서면 바다 쪽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와 이정표의 경북 제내리(6.5㎞) 방향으로 내려간다. 100m뒤 오른쪽은 석계·녹동리 방향이다. 왼쪽길이다. 5분가량 내려가면 안부 삼거리, 오른쪽 내리막은 석계 상동못(3.5㎞) 방향이다. 이정표의 치술령 종주길 방향을 따라간다. 울산과 경주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 길은 이후로는 급경사 없이 완만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조금씩 고도를 낮춘다.

 

 

 

 

 

 

 

 

15분 정도 걸어 781m봉을 지나면 곧 풀이 무성한 헬기장을 지난다. 그 곳을 지나면 삼거리다. 오른쪽은 석계자연농원 방향 하산로이고 제내리는 왼쪽길이다. 완만한 길을 20분가량 가다 보면 산길이 갑작스레 뚝 떨어진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6~7분 이정표가 선 갈림길이다. 오른쪽 제내리 방향 하산길로 접어든다. 10분여분 가면 정면에 철탑이 보이고 그 길이 뚜렷하지만 그 전 오른쪽 능선 길로 들어서야 한다. 산길은 서서히 내려간다.

잠시 뒤 작은 봉우리 위 오래된 무덤을 지나 10분 정도 가면 삼거리다. 오른쪽으로 뚜렷한길을 따라 하산한다. 잘 꾸민 무덤 밑을 지나면 갈림길 임도,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다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곧 주택이 나오고 시멘트 길을 걷는다. 잠시 뒤 제내2리 경로회관을 지나면 곧 제내·사일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울산여행/울주여행)신라 충신 박제상의 치술령과 박제상유적지 교통편

 

산행을 출발하는 박제상 유적지에 가려면 일단 노포동 터미널에서 언양까지 간다. 오전 6시30분부터 20분 간격 운행. 언양에서는 터미널 옆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봉계로 가는 308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다. 삼남신화에서 오전 7시50분, 8시30분, 9시30분, 10시10분에 출발하며 언양터미널 옆 정류장엔 10~15분 뒤에 도착한다. 봉계버스종점에서 울산 연암 행 802번 버스로 갈아탄다. 오전 7시30분, 9시30분, 10시30분에 출발. 두동면사무소를 지나 박제상 유적지 입구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여기서 박제상 유적지까지는 도로를 따라 2㎞걸어 들어가야 한다. 노포동에서 출발하는 오전 7시50분 버스, 언양에서 8시30분 버스, 봉계에서 9시30분 버스를 연결해 타면 된다.

산행을 마치는 경주 제내·사일 버스정류장에서 건너편이 경주터미널로 간다. 508번 버스는 오후 4시40분, 5시50분, 7시50분 등에 있다. 여유를 두고 기다리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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