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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계길 답사의 발걸음이 마침내 그 중간 기점인 낙동강 수계를 건넜다. 가덕도에서 시작해 부산신항과 서낙동강 유역의 김해평야 들판길을 가로지르는 등 그동안 서부산권에서 주로 걸었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동부산권 시계길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첫번째 관문은 바로 금정산(金井山·801m)이다. 부산 시민들에게는 너무도 친숙한 '부산의 진산'을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산의 젖줄'인 낙동강 변 호포에서 시작해 금정산을 넘어 부산 최대 사찰인 범어사(梵魚寺)까지 이어지는 이번 제9코스는 편안하면서도 정겨운 길이다. 굳이 산꾼이 아니더라도 부산시민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걸어 봤을 듯한 산길을 따라 걷는다. 한나절 동안 큰 부담 없이 금정산 산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길이다. 발걸음 옮길 때마다 드러나는 풍광 속에서 부산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 특히 강 바다 산 온천 등을 한꺼번에 품고 있는 '사포지향(四抱之鄕)'의 도시 부산의 멋도 흠뻑 느낄 수 있다.



◇ 부산의 정점 넘어 천년고찰까지 11㎞ 산행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의 이창우 산행대장이 올해 마지막 산행이자 '부산 시계를 걷다' 제9코스 답사 도중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 미륵봉에서 주변 풍광을 살피고 있다. 가까운 곳에 금정산성 북문광장이 보이고 멀리 취재팀이 앞으로 가야 할 기장군 일대 산줄기와 동해가 보인다.

제9코스의 출발은 부산도시철도 2호선 호포역이다. 코스를 요약하면 호포역-임도입구(차단봉)~갈림길(임도이탈)~작은 칼바위~전망대~연속된 갈림길~금정산 남서릉(산성)~미륵봉~고당봉(금정산 정상)~장군봉 옹달샘~장군평전(갑오봉)~사배고개~범어사 입구 순이다. 총거리는 11㎞에고 최대 표고차는 790m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20분, 휴식과 식사 시간을 포함하면 5시간30분쯤 걸린다. 해 짧은 겨울철이라도 밝을 때 답사를 마치고 동래온천에서 산행의 피로까지 말끔하게 씻고 귀가하기에 적당한 거리와 시간이다.

부산과 경남의 경계는 제8코스 종착지였던 대저수문에서부터 낙동강 본류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데 금곡역과 호포역 사이 어느 부분의 한 지점에서 땅으로 올라온다. 따라서 제9코스의 출발점도 물길을 벗어나 도로가 이어지는 부분으로 잡았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 호포역에서 35번 국도변 인도를 따라 금곡역(부산 방향) 쪽으로 5분쯤 걸어가면 왼쪽 금정산 쪽으로 차단봉이 설치된 임도가 보이고, 국도 건너편에는 부산시와 경남 양산시의 경계 표지판이 보이는 지점이 나온다. 이곳에서 임도로 진입하면서 본격적인 답사가 시작된다.





   

답사 초반 오르막에서 만난 금정산 칼바위

시멘트 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다 잠깐 뒤를 보면 도시철도 너머로 흐르는 낙동강 물길이 눈에 들어온다. 10분쯤 갔을까. 임도가 왼쪽으로 크게 휘어지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산길이 열려 있는데, 시멘트길을 버리고 이 흙길로 진입한다. 한층 더 두터워진 낙엽에 발이 푹푹 빠진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겨울철이면 유독 익숙해지는 산길의 속삭임이다. 5분쯤 오르면 오른쪽에 송전철탑이 보이는 지능선 사거리다. 왼쪽으로 꺾어 능선을 따른다. 그 많은 금정산 등산로 중에서도 이 길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그렇게 많이 묻은 곳이 아닌 까닭에 한적하고 평화롭다.

약간은 흐릿한 듯하지만 길을 따르는데는 큰 무리가 없이 서서히 오르면 10분후 송전철탑을 지나고 다시 10분쯤 가면 지리산 중산리 칼바위를 축소해 놓은 듯한 일명 '금정산 칼바위'를 만난다. 정면에서 보면 삼각뿔 모양이고 측면에서 보면 납작한 판석의 형태를 띠고 있다. 칼바위를 뒤로하고 13분쯤 더 오르면 뚜렷한 산행로와 만난다. 금곡역 쪽에서 오르는 여러 갈래 길 가운데 하나다. 왼쪽으로 꺾어 바위 무더기 틈 산행로를 지나면 첫번째 전망바위가 나온다. 전방에 우뚝한 고당봉의 위용이 뚜렷하고 아래쪽으로는 낙동강과 김해평야일대가 시원하게 드러난다.




   

미륵봉과 고당봉 중간에 있는 입석

여유있게 20분쯤 더 걷기 좋은 길을 따라 오르면 왼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갈림길. 이 곳은 부산시와 양산시의 경계선이 지나는 지점이다. 합류된 길을 따라 25분쯤 가다보면 직진하는 넓은 길과 오른쪽 좁은 길로 갈라지는데, 우측 좁은 길을 따른다. 3분 후 좌우로 지나가는 임도를 만나면 일단 우측으로 꺾는다. 낙엽 아래 고인 물이 얼어붙어 바닥이 제법 미끄러우니 조심하자. 2분 후 사거리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능선을 따라 오르면 3분 후 금정산 남서릉길에 닿는다. 봄철에는 산성 석벽을 따라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곳이다.








◇ 호포·금곡역 사이 임도 진입… 호젓한 코스



   

고당봉으로 연결된 계단을 오르는 이창우대장(위), 장군평전으로 가는 금정산 주능선 잣나무길

일단 남서릉 마루금에 올라선 후 왼쪽(북쪽) 고당봉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100여m 가면 우측으로 미륵사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능선길 우측으로 빼어난 전망대가 이어진다. 미륵사를 감싸고 있는 암봉인 미륵봉에 오르면 시원하기 이를 데 없는 광활한 조망이 펼쳐진다. 정상인 고당봉이 코 앞에 솟아있고 금정산성 북문광장과 원효봉 의상봉 대륙봉 상계봉 등 등 금정산의 대표적인 봉우리들이 줄을 잇고 그 너머 동쪽으로는 달음산과 일광산 회동아홉산 장산 해운대 수영만 광안대교 황령산 뿐 아니라 이기대와 영도 봉래산과 태종산까지 부산의 크고 작은 산들이 도열한다.

미륵봉에서 고당봉 쪽으로 10분쯤 가면 바위 하나가 수직으로 우뚝 서 있는데, 이른바 '입석'이다. 낙동강 자락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수도승 같기도 하고 고당봉을 지키는 수문장 같기도 하다. 이제 고당봉은 지척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서로 어깨를 맞댄 듯한 암봉인 고당봉으로 오르려면 우측에 보이는 나무계단을 통해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 전망데크와 정상석 직전 '고모령신당(枯母靈神堂)'을 지나면 고당봉 정상이다. 고당봉 정상을 기준으로 북동쪽은 경남 양산땅이고 나머지 서쪽과 남쪽은 부산 땅이다. 양산천이 낙동강과 합류되는 호포가 내려다 보이고 고개를 들면 북쪽 가까운 곳에 장군봉을 비롯한 금정산 북릉과 더 먼 곳으로 시살등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자락과 천성산까지 눈에 들어온다.









◇ 고당봉 오르면 '4포지향' 부산 참 멋 실감

   

산 너머에 강이 있고, 더 멀리 서쪽 지평선 너머로 한 해가 진다. 장군평전에서 바라본 금정산 고당봉과 일몰 모습.

하산은 올라온 나무 계단의 왼쪽으로 가설돼 있는 원형계단 쪽으로 이뤄진다.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파른 내리막을 탄다. 10분 후 널찍한 안부삼거리에서 이정표상 범어사 방향인 우측으로 10m쯤 가다가 다시 만나는 Y자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택한다. 산죽과 잣나무가 어우러진 예쁜 길이다. 5분 후 가산리마애여래입상 가는 갈림길을 지나 계속되는 내리막을 타고 걷다보면 송전철탑을 지나 안부에서 다시 약간 오르막을 탄다. 옹달샘 약수터인 장군샘에서 목을 축이고, 우측으로 난 오르막을 15분쯤 타면 장군평전 끄트머리의 갑오봉(718m) 삼거리에 닿는다. 북쪽으로는 장군평전과 장군봉 뒤로 보이는 울룩불룩한 근육질의 산세가 산꾼을 유혹하지만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꺾어 계명산(봉)을 보면서 내리막을 탄다. 꽤 긴 내리막이다. 25분쯤 열심히 내려가면 계명산으로 오르기 직전 안부 4거리인 사배고개다. 왼쪽으로 가면 양산시 동면 사송마을이지만 이곳에서 부산시계길에서 이탈, 오른쪽 범어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청련암을 지나면 부산의 대표적인 사찰이자 천년가람인 범어사 본찰이다. 현재는 사찰 출입 차량 통제 역할만 하고 있는 옛 매표소까지는 5분이면 된다. 경내에 밝혀진 등불이 길안내를 해준다.



# 떠나기 전에

- 범어사 밑 북한음식점 돼지국밥 먹을 만

특별히 겨울철 산행 후에 들릴만 한 맛집 한 곳을 소개한다. 북한식 돼지국밥과 찐만두 만두백반 등이 맛깔스러운 북한국밥집이다. 정식

상호는 '북한음식(051-508-3035)'. 범어사 옛 매표소 입구에서 순환버스를 타고 내려가다가 종점 직전인 '어린이놀이터' 정류소에서 하차, 진행방향으로 20m쯤 가면 노랑 간판에 '북한음식'이라고 적혀있는 식당이 보인다. 이 집의 특징은 북한식으로 조리한 국밥과 만두에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가자미식혜의 절묘한 조화다. 고기만 넣은 돼지국밥과 순대를 섞은 순대국밥은 육수가 한약재를 첨가한 것 같은 깔끔한 맛 때문에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는 찾아볼 수 없다. 돼지국밥에 익숙한 부산 사람들의 입맛에도 딱이다. 게다가 삭힌 가자미와 무우를 고추가루에 버무린 가자미식혜는 그 특유의 감칠맛으로 국밥과 찰떡궁합을 이룬다. 북한 음식을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부산에서 몇 안되는 식당이다. 북한식 돼지 수육과 녹두빈대떡도 괜찮다. 막걸리가 저절로 생각나는 음식들이다.


# 교통편

- 부산도시철도 2호선 호포역서 하차

부산도시철도 2호선 호포역에서 하차한다. 역 앞 35번 국도에서 출발, 금곡역 방향(부산 방향)으로 인도를 따라 5분쯤 걸어가면 임도 차단봉이 나타난다. 산행 후에는 날머리인 범어사 옛 매표소 아래 버스정류소에서 범어사 순환버스를 타고 부산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까지 갈 수 있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69,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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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금정산하면 서울의 북한산, 대구의 팔공산,광주의 무등산 처럼 수식어로 따라 붙는 산이름이다.
    그 만큼 금정산하면 부산 사람에게는 야구와 함께 떼어 생각 할 수 없는 명산이다. 그 산아래는 사실 많은 산길이 조성되어 있고 집앞을 나서면 산길로 연결되는 거미줄 같은 등산로로 봄철에는 더욱 붐비는 부산사람에게는 고마운 금정산이다.
    평일 휴일날 오후에 늦게 출발한 금정산 산행, 코스는 별 생각 없이 호포로
    지하철을 타고 간다. 호포역에서 나오면 바로 우측으로 주차장으로 가는 통로와 연결된다.
    그 통로 한켠에 금정산을 안내하는 대형 지도가 걸려 있다. 여기서 눈요기 삼아 지도를 보고 난후 호포역사를 나오면
    우측으로 지하 차도와 만난다. 
    사실 부산에서 호포까지만 나가도 시골의 전원에 온 기분이 든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흘러가고 그 뒤로 김해 동신어산이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양산의 물금과 그 앞 작은 동산인 증산으로 신라와 가야가 대 격전을 벌린 장소로 유명하다,
    지금도 증산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어며 그 만큼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호포가 최근에 새로운 들머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산행경로는 호포역~신기마을 금호사~임도~낙동정맥갈림길~고당봉~750m 스텐 사각~미륵사~금정산장~북문~금성동순 산행시간은 4시간정도.

    호포역사 우측에서 호포새마을, 등산로(고당봉가는길),
    부산교통공사가는길의 지하 통로를 빠져나와 시멘트 길을 걸어 펜스가 끝나는 지점이 나오면 갈림길 우측 다리를 건너 올라서도 고당봉으로 이어지지만 이번에는 포장길을 직진하여 신기마을로 올라가야 한다.
    10여분이면 새로생겼다는 뜻의 신기마을인 금호사 제실 앞으로 올라서면 호포농원가는 길, 농원 앞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된다.  
    소나무 숲길의 오솔길 입구에는 등산로 정비및 숲가꾸기 사업을 동면 면사무소에서 실시하고 있다는 안내문구를 볼 수 있다.
    그 한켠에는 제선충을 알리는 글귀와 반출을 금한다는 죽은 나무들을 숙성시키는 흔적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논밭으로 사용 되었던 습지지역을 거슬러 오르면 완연한 봄이 온듯 산벗꽃들이 한창으로 꽃비를  뿌리고 있다.
    제잘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올라서니 이번에는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게 산속을 흔든다. 아마 등산로 정비 사업을 하는 분인들인것 같다.  
    절터의 흔적에 자란 산죽도 정비사업의 벌초기계에 힘 없이 서러지고 무엇을 위한 정비사업인지 의구심이 든다.
     
    산길은 임도에 올라선다. 금정산 산허리를 가른 이 임도에서 우측으로 30m 걸어가면 이정표가 서 있다.
    금정산 정상 가는 길1.7km, 직진하면 호포매운탕마을 4.2km, 뒤쪽은 가산 4km,  좌측 좌측 금정상 정상 가는 길을 따라 올라 50m 뒤에 갈림길, 두길 모두 금정산으로 오른 는길로 우측 계곡길이 100m 더 길다.
    우측 계곡길로 오르기로 하고 게곡을 따라 오른다. 바닥에는 돌들이 깔려 있고 계곡은 좁아지면서 경사를 더 한다. 발아래는 현호색, 앵초가 봄을 알리며 피기 시작을 한다. 머리를 들어보니 계곡의 품이 갑자기 넓어 지고 키큰 소나무가 서 있다.
    큰 바위들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곳을 지나니 갈림길, 우측은 화명 금곡동에서 올라오는 길, 금정산 정상은 좌측으로 1.1km 더 올라가야 한다.
    갈림길에서 1.분 뒤 기도터의 흔적과 만난다. 금정산에 산재해 있는 기도터가 모두 헐리고 그 집터의 자리에 지금 쓰레기장이 착각 될 만큼 많은 물건들이 등산로 옆에 널부러져 있어 이마 살을 찌푸리게 한다.
    상류라 그런지 계곡은 가뭄으로 물소리도 죽인지 오래고 좌측으로는 낮은 산죽이 펼쳐진다. 다시 10여분 뒤먄 갈림길로 머리를 들면 고당봉 정상이 서 있다.
    좌측으로는 호포새동네에서 올라오는 길, 우측은 금정산 정상 방향, 우측으로 10m 뒤 넓은 임도급의 길과 만난다.
    계석으로 내려가는 길로 좌측 금정산 정상 0.4km 이정표를 따라간다. 5분이면 사거리 길인 낙동정맥길로 매봉산에서 내려온 낙동정맥길이 여기서 쳐 받아 올라 금정산의 정점인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일명 고당봉, 장군봉의 갈림길로 넘어서면 범어사 3.4km 방향, 좌측은 철탑이 서 있고 호포 또는 장군봉, 고당봉은 우측길로 0.3km의 지척에 있다.
    잣나무 조림지에서 산길은 정상을 향해 쳐 받아 오른다. 고당봉의 장벽을 실감 할 수 있다. 지금은 고당봉 정상 오른길에 철 계단과 달팽이 계단을 설치하여 누구나 쉽게 올라 갈 수 있도록 하였지만 설치 이전에는 정맥길의 고당봉 오름길은 크랙을 올라서야만 되는 위험한 곳이 한 곳 있었다.
    계단 설치 후 말들이 많은 금정산 고당봉이였지만 지금은 잠잠함 상태가 되었다.  바위를 잡고 올라서면 계단길, 달팽이 계단을 올라서면 고당봉 정상으로 올라서는 임릉길, 우측으로 50m 바위를 잡고 가면 고당봉 정상을 알리는 정상석이 서 있다. 15분 소요. 

    사실상 낙동정맥의 끝 지점으로 지금은 몰운대 까지 이어가지만 사실상의 낙동정맥 끝지점이다. 여기서 하산길은 산신할미를 모신 전각이 있는 동문5km,북문0.8km 방향과 화명동 쪽으로 내려서는 능선길이다.
    미륵사를 가기 위해 정상석을 지나 바위를 내려선다. 요리조리 바위 틈을 빠져 내려서면 화명동으로 내려서는 능선에 다다른다. 이제는 또 다시 넓은 길, 이 길을 따라 내려서면 미륵사로 갈 수 있다.  
    금곡동 4.5km, 화명동 7.9km 이정표를 뒤로하고 금정산성의 흔적을 따라간다. 교육원에서 세운 750m 스텐 사각봉을 뒤러하고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금정산을 붉게 물들인다. 칠바위 북문1.1km 갈림길 에서 직진하면 미륵암 암봉의 끝지점에 설 수 있다. 기존의 등산로 상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된다.
    발아래는 천길 낭떨어지이며 여기서 보는 금정산 일원의 조망 또한 장관이다. 돌아나와  내려서면 좌측으로 미륵암 갈림길이다.
     종이를 코팅한 미륵사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직지하면  화명동으로 하산을 할 수 있지만 급한 길을 따라 내려서서 미륵사로   들어선다.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였다 하며 임진 왜란 때 부산 앞바다에 떠 있던 왜군 5만 병선을 물리치고 적장의 목을 베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서려 있는 호국성지이다. 염화전 뒤로 서 있는 미륵바위와 좌선바위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다가오는 부처님오신날이 몇일 남지 않아 모두들 바쁜 것 같다. 잠시 절 구경을 하고 미륵사를 나와 금정산장이 있는 북문 가는 길을 따라간다. 오랜만에 보는 산장 관리인 서재석 형님을 보기 위함이다. 여기서 하산은 북문을 거쳐 범어사 또는 산성마을 인 금성동으로 하산을 하면 된다.



      


    호포의 신기마을에 있는 금호사 제실을 지나면  만나는 길, 이길을 따르다 좌측으로 들어서야 한다.

    금호사제실

    예전에는 농사를 지었을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는 습지젹으로 산 벗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꽃비가 떨어지는 것 처럼 보였다.


    임도 갈림길,

    앵초

    고당봉을 볼 수 있는 지점


    낙동정맥의 사거리 갈림길 안부


    우측으로 돌아보면 고당봉의 바위장벽을 볼 수 있다. 이 중간으로 올라가야 하는 길이 낙동정맥길이다. 자세히 보면 목제계단과 달팽이 계단을 찾을 수 있다.

    목제게단과 달팽이 계단


    고당봉 바위 능선에 올라 북문으로 내려서는 나무계단길, 중간의 붉은 지붕이 고당할미를 모신 전각 


    고당봉정상



    연수원에서 설치한 750m 스텐 사각 기둥

    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당봉으로 화명동 능선에서 본 모습


    미륵사


    금정산장

    북문 사적 제215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숙종29년 1703년에 국방방호의 묵적을 두고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17km, 높이는 1.5~3m에 국내산성 가운데 가장 큰 성이다.





    연수원 가는 길

    중성의 석문


    금성동으로 산성마을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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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정산 미륵사

    금정산 북문옆에서 한적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면 미륵사와 만난다.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8년인 678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미륵사는 독특한 모습을 한 암봉을 뒤로 하고 있다.
    염화전 뒷쪽의 큰 암봉이 미륵봉으로 미륵봉의 암봉이 병풍을 두른듯이
    솟아 있는 그 아래 즉 미륵사가 위치하고 있다.
    미륵사는 창건때 부터 산문이 없다 들어서는 입구 양쪽으로 큰 바위가 산문을 대신하며
    노적가리 같은 모습이라하여 끼니 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사찰이다.
     범어사는 의상대사가 미륵사는 원효대사가 각각 창건을 하였는데
    미륵사와 함께하는 원효대사의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도 미륵봉 중간의 바위 암반에 위치한 독성각 앞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원효대사가 호리병 다섯개를 구해 왜구 5만 병선을 물리치고 왜구 첩자를 유인하기 위해
    장군기를 꽂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그 구멍이다.
    "모든 것에 꺼리낌 없는 사람이  번뇌에서 벗어 난다"는 가르침으로  유명하며
    미륵불과 독성불을 모신 기도도량으로 알려저 있다. 
    미륵사는 절 중앙에 염화전을 모시고 그 뒷편인 미륵봉 중간에
    큰 바위들이 얽켜 있는 좌선바위를 볼 수 있다.  엉켜 있는 바위들이 해가 지고 난후
    그 틈새가 보이지 않을 때 쯤 좌선하는 스님의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한다...
    좌선바위 뒤인 즉 미륵봉이 미륵불이라 하면 그 아래 좌선을 한 스님의 모습을 한 좌선바위가 미륵불을 향해
    좌선을 한 모습이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 아래 원효대사가 미륵암을 창건하였고
    사찰이름인 미륵암도 여기서 유래 되었다 한다.



    염화전 뒤로 미륵불을 닮았다는 미륵봉과 바위들이 서로 엉켜 있는 중앙의 좌선바위를 볼 수 있다.

    미륵사는 대웅전 대신 염화전을 중앙에 배치를 하였는데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정면과 측면 각 3칸의 1952년에 지었다. 내부에는 1985년에 조성한 석가삼존불은 중앙에 석가여래와 좌우로 미륵보살과 문수보살을 안치하였다.
    1974년에 조성한 후불탱이 중앙에 모서져 있고 신중탱과 지장탱등 모두 최근에 조성을 하였고 석정스님의 작품이다.

    염화전 내부의 모습


    칠성각


    칠성각에서 본 미륵사 전경

    오백전

    오백전 내부




    현재 독성각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보면 작은 샘터가 있다. 이 샘터는 쌀바위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매일 아침 작은 구멍에서 한톨 한톨 쌀이 떨어져 스님이 이 쌀로 끼니를 이었다 한다. 그런데 사미승이 구멍을 크게 하면 한거번에 더 많은 쌀이
    나오라고 구멍을 작대기로 쑤신뒤 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 한다. 현재도 독성각아래인 미륵 바위아래에 작은 샘터가 있다.

    독성각

    독성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바위밑의 모습

     
    독성각 처마 끝 모서리에걸린 자연 암벽에 미륵바위의 장삼자락을 양각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독성존불의 본 이름은 나반존자로서 미륵존불이 출현하실때 까지
    천태산에서 선정삼매에 들어 있다가 미륵존불이 세상으로 나오시면  좌보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으로 현재도 독성각 입구 우측에 그 흔적이 뚜렸하다.



    장군기를 꽂았다는 독성각 앞의 구멍.
    원효대사는 미륵암에 주석을 하며 미륵삼부경중 상생경종요을 집필하였다하며 왜적 5만병선이 동래 앞바다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첩자를 육지로 올려 보냈는데 미륵사에 머물고 있던 원효대사가 사미승에게 호리병 5개를 구해오게하여  탑앞네 나란히 세운뒤 가장 높은 바위에
    신라 장군기를 꽂았다 한다. 그 장군기를 보고 두명의 첩자가 미륵암까지 올라와
    대사는 호리병으로 신통력을 부려  첩자의 목을 졸랐다. 첩자들이 살려 달라고 하자 호리병 3개를 적장의 대장에게 주라며 돌려 보냈다. 화가난 적장은 호리병을 단칼에 내리쳤고 그 순간 적장은 그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한다.









    염화전의 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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