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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금정구여행)금정산 미륵사. 마음이 맑은 사람만 보인다는 코끼리를 닮은 바위를 찾아 보세요. 금정산 미륵사.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에는 많은 산내 암자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사찰이 범어사와 미륵사입니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야 두말하면 잔소리로 그만큼 유명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진 사찰이며. 또 한 미륵사는 금정산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절집으로 서로 바늘과 실로 부르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지금이야 금정산 북문까지 임도길이 뚫여 미륵사 가는 길이 편해졌지만 그 이전에는 대단한 불심이 아니면 찾는 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을 사찰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륵사를 등지고 있는 미륵봉에 올라보면 신선의 세계가 이런 곳이 구나하며 여겨질 정도로 대단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누구나 저절로 득도를 할 수 있을 그런 곳 같습니다.

 


 

 그럼 금정산 미륵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통일 신라 문무왕 18년인 678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습니다. 미륵사의 유래는 암자 뒤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듯 한 큰 바위에서 나왔는데 염화전 뒤를 두른 큰 바위를 좌선바위라 합니다.

 

해가 지면서 어스름이 찾아 들 면 집채만한 바위들이 서로 엉켜 만든 작은 틈새까지도 삼켜 버립니다. 이때쯤이면 그 큰 바위가 좌선하는 스님의 형상으로 바뀌며 뒤의 큰 바위인 미륵봉을 향해 스님이 좌선하는 모습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원효대사가 이곳에 미륵암을 창건하였습니다.

 

 미륵사는 염화전을 중앙에 배치를 하였습니다. 정면과 측면 각3칸으로 다포계 팔작지붕이며 1952년 중수되었습니다. 내부 불단에는 석가 삼존불을 모셨는데 석가여래좌우로 미륵보살과 보현보살을 1985년에 봉안하였습니다. 1974년 조성한 후불탱이 삼존불 뒤로 배치를 하였고 신중탱과 지중탱 등 모두 석정 스님의 작품입니다.

 

 

 

 

 

 미륵암에는 쌀굴과 장군기를 꽂았다는 특이한 바위구멍이 두 개 있습니다. 염화전에서 오른쪽 칠성각 쪽 계단 중간쯤에 쌀바위 안내판이 보이며 바위틈에 구멍이 뚫여 있습니다. 매일 아침 작은 구멍에서 한톨 한톨 그날 먹을 끼니만큼만 쌀이 떨어져 사미승이 구멍을 크게 하면 더 많은 쌀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구멍을 쑤셨는데 그 뒤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 합니다. 그 물이 현재 미륵사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염화전에서 왼쪽 독성각 계단을 올라 갑니다. 미륵사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 보여 주는 곳으로 원효께서도 아마 이곳에 올라 참선을 하였을 것 같습니다. 독성각 앞 쪽에 둥근 파이프가 꽂혔던 흔적 같은 구멍이 있습니다. 이곳에 원효께서 장군기를 꽂았다합니다.

 

원효대사께서 미륵사에 주석을 할 때입니다. 왜적 5만 병선이 동래 앞바다에 진을 친 뒤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첩자를 육지로 올려 보내는 것을 스님은 혜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원효스님은 사미승에게 호리병 5개를 구해오게 하여 탑 앞에 나란히 세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바위에는 신라의 장군기를 꼽았는데 그 장군기는 멀리서도 보였습니다. 두 명의 왜놈 첩자가 장군기를 보고 원효가 있는 미륵암까지 올라 왔습니다. 원효는 호리병으로 신통력을 부려 첩자의 목을 조르니 첩자는 살려 달라며 애걸복걸하여 호리병 3개를 너네 대장에게 갖다 주라며 돌려보냈습니다. 화가 머리 꼭대기 까지 오른 적장은 부하가 가져 온 호리병을 단칼에 내려쳤고 그 순간 적장은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합니다. 독성각 앞 바위의 구멍은 다시 장군기를 꽂힐 날을 기다리는지 뚜렷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한 독성각 처마 끝 모서리 바위에는 미륵바위의 장삼자락인지 부처님의 광배를 나타낸 것인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광배 같기도 합니다. 독성각 건물로 현재에는 가려져 있어 알 수 없지만 누군가 구멍을 내어 그 바위를 뜯어 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금정산 미륵사의 당우는 모두 근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알려진 뚜렷한 문화재도 없습니다. 그러나 원효대사와 함께 내려오는 전설을 보면 미륵사의 모습을 상상 해 볼 수 있습니다. 옛날 미륵봉아래 바위 굴속 연못에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 미륵사를 창건하였습니다.

 

 또한 염화전 뒤의 암봉이 마치 화관으을 쓴 미륵불 모습을 하고 있어 사람들에게 신령을 기운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암봉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마음이 맑고 깨끗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코끼리 형상을 한 바위가 일곱 개 있습니다. 코끼리는 상스러운 동물이라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영물입니다. 이 일곱개의 코끼리 바위를 모두 찾는다면 당신은 곧 마음이 맑고 깨끗한 심성을 가진 분입니다. 혹 미륵사에 가게되면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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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금정여행)금정산 남근바위~여근바위 산행. 남근석과 여근석을 찾아 나선 금정산 산행

근교산&그너머 <683> 금정산 남근바위~여근바위

"야, 부산의 진산 금정산에도 오묘한 '음양의 조화'가 넘치네"

고당봉 동쪽 금샘 아래 숨겨진 남근바위

상계봉 아래 수백샘 옆엔 대형 여근바위

숨겨진 명물 찾아 나선 이색 금정산 산행

산성마을 기점 삼아 16㎞ 원점회귀 코스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金井山·801.5m)은 오르면 오를수록 그 넉넉한 품과 장엄함에 빠져들게 하는 산이다. 또한 알면 알수록 그 절묘함에 무릎을 치게 되고 신비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산이기도 하다. 부산의 산꾼이라면 못해도 수십 차례는 올랐을 법한 금정산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색다른 금정산 산행이다.

 

 

금정산 남문 근처 수박샘 부근에 있는 여근바위. 등산로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바위인 탓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혹시 금정산에 '남근(男根)바위와 여근(女根)바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는지. 물론 금정산의 전설과 설화 풍수지리 등에 관심이 많거나, 산성마을 주민이거나, 우연히 그 바위들을 발견한 산꾼이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산꾼들은 잘 알지 못한다. 수십 년 금정산에 다녔어도 모르는 산꾼이 허다하다. 그러나 남근바위와 여근바위가 금정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도 남근바위는 온통 울룩불룩한 바위로 이뤄져 있어 남성의 양기를 대변하는 듯한 고당봉 부근에, 여근바위는 수박샘과 연못 등 물이 많은 곳으로 여성의 음기를 머금은 듯한 남문 근처 상계봉 아래에 있으니 신비한 '음과 양의 조화'를 단 한 번 산행으로 느낄 수 있다.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금정산 남근바위와 여근바위를 찾아갔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남근바위와 여근바위는 참 많다. 언뜻 꼽아봐도 남근바위는 영암 월출산, 서울 관악산과 북한산, 목포 유달산, 제천 동산 등의 것들이 유명하다. 여근바위 역시 경기도 안양의 삼성산에 있는 것을 비롯해 수없이 많다. 또 경주 오봉산은 바위가 아니라 골짜기 모양이 여근을 닮은 '여근곡'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같은 산의 북쪽 최고봉과 남쪽 대표 봉우리 자락에 각각 남근과 여근바위를 품고 있는 산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금정산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또 금정산의 존재감도 더욱 높게 여겨진다.

 

전체 산행은 금정구 금성동의 산성마을을 기점 삼아 한 바퀴 도는 원점회귀 형태로 진행된다. 금성동사무소~국청사~북문임도 갈림길~유씨농원 푯말 갈림길~무덤터~미륵사~금정산장(북문)~금샘 푯말 갈림길~금샘~9부능선길 갈림길~자연보호 안내판 갈림길~남근바위~(되돌아 나와서)북문~원효봉~의상봉~나비바위~동문~산성고개~남문~수박샘~여근바위~수박샘 인근 갈림길~공해마을 삼거리 순이다. 해발 350m 안팎의 산성마을에서 출발하는 탓에 고도차가 크지는 않지만 총거리만 해도 16㎞에 달하는 꽤 긴 코스여서 만만히 볼 수는 없다. 걷는 시간만 6시간, 휴식 식사 포함 7시간30분은 걸린다.

 

금성동사무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출발, 부산시학생교육원 방향으로 도로를 따른다. 3분 후 국청사 앞을 지나 6분만 더 가면 도로 오른쪽 옆에 '금정산성' 안내판이 있다. 4분 뒤 부산시학생교육원과 북문 방향 임도가 갈라지는 삼거리. 교육원 방향으로 직진, 200m쯤 가면 오른쪽 철망 앞에 '유씨농원' 푯말이 있다. 안내판을 보면서 오른쪽 숲길로 들어선다. 3분 후 다시 유씨농원 푯말이 있는 갈림길이지만 직진한다. 걷기 편하고 한적한 숲길이다. 서서히 사시골 계곡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시골은 산세에 비해 큰 계곡이 발달하지 못한 금정산에서 그나마 가장 긴 계곡이다. 녹음이 우거져 여름철 산행 코스로 딱 좋은 곳이기도 하다.

 

 

금샘 동쪽 아래에 꼭꼭 숨어 있는 남근바위.

 

 

남근석을 찾아가는 입구의 모습.

8분 후 봉분 없는 널따란 무덤터 갈림길. 우측 길을 택한다. 4분 후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면 바로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곳에서는 계곡을 따르는 오른쪽 길을 택해 오른다. 물 소리와 산새 소리가 어우러져 평화롭다. 잇따른 작은 소를 거쳐 5분 뒤 한 차례 계곡을 건너면 다시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재차 계곡을 건너 50m만 가면 다시 한 번 갈림길. 오른쪽 길을 택해 100여 m 가면 북문으로 오르는 임도를 만난다. 자그마한 '미륵사' 푯말이 보인다. 임도를 오른쪽에 끼고 왼쪽 숲길을 따라 15분가량 꾸준히 오르면 거대한 미륵봉 절벽 아래 자리 잡은 미륵사다.

 

 

통일신라 때인 678년(문무왕 18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륵사는 대사가 호리병 5개로 신통력을 발휘, 왜구 5만 명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대웅전 역할을 하는 염화전 뒤에 마치 좌선하는 듯한 형태의 거대한 좌선바위가 있다. 108계단을 올라 닿은 독성각 오른쪽에는 원효대사가 왜구를 유인하기 위해 장군기를 꽂았다는 바위가 있는데 지금도 깃대를 꽂았던 홈이 패어 있다. 독성각 처마 오른쪽 아래에는 미륵봉 암봉에 양각된 미륵불의 장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미륵사에서 입구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북문으로 향한다. 준행암 입구를 거쳐 북문 금정산장 앞까지는 15분이면 족하다.

 

 

금샘과 북문 일대 전경. 멀리 높은 봉우리는 원효봉이다.

 

 

금정산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남근바위'를 찾아 나선다. 고당봉과 금샘 주변은 은근히 길이 복잡해 상당한 주의를 요구한다. 일단 정상인 고당봉 방향으로 계단을 오른 후 100여 m 가면 오른쪽으로 허물어진 성벽을 넘는 길이 열려 있는데 이곳은 나중에 남근바위를 찾은 후 다시 북문으로 돌아올 때 빠져나오는 곳이다. 이 갈림길에서 100m쯤 더 직진해서 올라가면 우측에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금샘'이라 써 놓은 가로 40㎝ 세로 25㎝ 정도 크기의 안내판이 보인다. 이 안내판을 보며 주능선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들어선다. 곧바로 허물어진 성벽을 넘으면 3분 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약간 오르막인 왼쪽 길을 택한다. 다시 4분 후 작은 갈림길에서 왼쪽 바위길을 오르면 금정산의 이름이 기원한 금샘이다. '오색무지개를 타고 내려온 금빛 물고기가 헤엄치며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금샘은 언제 보아도 경외감과 신비로움을 갖게 하는 '금정산의 얼굴'이다.

 

 

여근바위를 위에서 본 모습. 일명 '공알바위'로도 불린다.

 

 

금샘에서는 반대쪽으로 로프를 타고 넘어가도 되고 올라온 바윗길로 되돌아가도 된다. 취재팀은 일단 30m가량 되돌아 내려간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1분 후 또 한 번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왼쪽 30m지점에는 아담한 크기의 삼층석탑인 정여 스님 부도탑이 있지만 일단 우측 길로 진행한다. 산죽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지나 5분쯤 내려서면 갑자기 T자형 갈림길이다. '북문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보이는데 화살표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꺾는다. 산죽밭을 지나고 1분쯤 가면 '묵자동네'라 적힌 푯말이 나타난다. 20여 m만 더 진행하면 흰색 밧줄에 '북문가는 길' 부산시장 명의의 '자연휴식년제' 등의 푯말 4개가 달려 있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남근바위'로 가려면 이곳에서 차단 로프를 넘어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서야 하는데 남근바위는 등산로에서 바로 보이지 않으니 잘 살펴야 한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100여 m 가는 동안 오른쪽에 잇따라 집채만 한 바위 무더기가 나오는데 두 번째 바위 무더기에서 사람들 오간 흔적을 따라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가 보면 뒤쪽에 지면에서 수직으로 우뚝 솟아오른 '남근바위'가 있다. 이렇게 꼭꼭 숨어 있었으니 웬만한 산꾼이라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기둥의 지름 1.3m 높이 3.5m가량 되는 이 바위를 산성마을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금정산 남근바위'라고 부르며 신성시했다고 한다. 보면 볼수록 신비하고 늠름하다.

 

정여스님부도탑.

남근바위에서 다시 로프가 있는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서 북문으로 향한다. 중간에 금샘에서 내려서서 만난 갈림길을 통과해 10분쯤 가면 허물어진 성벽을 넘어 주등산로를 만난다. 금정산장과 북문을 거쳐 원효봉 의상봉 4망루 3망루를 거쳐 동문까지 가는 주등산로는 따로 상세히 안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지 의상봉 주변에 있는 일명 '무명암'은 산성마을 주민들과 그 아래 금정구 남산동 주민들이 오랜 옛날부터 '용과 호랑이의 등을 닮았다'고 해서 '용호등'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여근바위 아래로 흐르는 물은 마을 주민들의 생명수다.

 

 

북문에서 동문까지는 1시간30분, 다시 동문에서 산성고개까지는 10분가량 걸린다. 산성고개에서 취재팀은 대륙봉을 넘어서 남문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임도를 따라갈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결국 산행 시간과 일반 산꾼들의 체력 안배 등을 고려해 임도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초소를 지나 남문으로 향하는 길은 잘 알려져 있는 길이다. 연못을 통과해 남문까지는 20분쯤 걸린다. 남문 앞 공터에서 '여근바위'를 찾으려면 일단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수박샘 방향으로 가야 한다. 300m쯤 가서 만나는 수박샘에서 50m만 더 가면 '11자 형'으로 나란히 놓인 돌다리를 지난다. 곧바로 중간에 큰 소나무가 선 Y자 갈림길. 직진하는 큰 길은 상계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왼쪽 좁은 길은 망미봉과 상계봉 사이 안부로 가는 길이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 길 방향으로 보면 지름 바닥 너비가 10m가량 되는 둥그스름한 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가 바로 '금정산 여근바위'다. 산성마을 주민들은 '공알바위'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등산로에서 볼 때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그저 평범한 바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산꾼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그러나 바위 뒤로 돌아 바위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틀림없는 여근 모양이다. 그제서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 바위 뒤쪽으로 내려서서 바라볼 때는 하늘을 우러르며 누워 있는 여인의 다리와 둔부의 형태가 또렷이 드러나고 그 아래로 개울물이 흐르고 있어 더욱 묘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개울물이 흘러 남문 부근 습지에 고인 물이 산성마을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돼 왔기 때문에 오염시켜서는 절대로 안 되겠다.

 

여근바위에서 산성마을까지 내려서는 길은 어렵지 않다. 수박샘으로 되돌아가서 남문 쪽으로 50m만 가면 왼쪽으로 완만하게 내려서는 산길이 열려 있는데 이 길을 따라 15분이면 산성마을의 중심이라고 하는 공해마을 삼거리에 닿는다.

 

 

◆ 떠나기 전에

 

- 여근바위는 산성마을 풍요 상징… 훼손 안돼

 

 

 

'남근석 옆 능선에 제2남근석'도 있다.

 

 

금정산에는 사실 남근바위로 불리는 것이 3개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취재팀이 답사, 보도한 금샘 동쪽 아래에 있는 남근바위 외에도 첫 번째 남근바위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하나가 더 있다. 첫 남근바위 입구 갈림길(푯말)에서 북쪽으로 직진, 3분만 더 가면 또 다른 갈림길을 만난다. 흰색 로프에 걸린 '내원암, 정상(고당) 방향' 푯말을 넘어 10m쯤 살짝 내려서면 왼쪽 5m 지점에 우뚝 선 바위 3개가 나란히 보이는데 그중 오른쪽 바위를 가리킨다. 높이는 3m 기둥의 지름은 1.5m이다.

일명 미륵바위라 불리는 남근석 화명동에서 오르는 등산로에서 만날 수 있다.

 

 

세 번째는 북구 화명동 벽산아파트에서 고당봉 방향으로 오르다 만나는 장천약수터 부근에 있는데 높이 2.5m 안팎이다. 머리 부분이 너무 도드라진 탓에 보는 이에 따라서는 부처를 닮았다고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팀이 첫 번째 남근석을 '금정산 남근바위'로 소개하게 된 이유는 산성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평생을 산성마을에서 살아온 고향집 대표 최영관(73) 씨는 "어린 시절부터 금샘 동쪽 바위무더기 뒤에 숨어 있는 그 바위를 남근바위라 불렀고 자주 놀러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근바위에 대해서도 "공알바위로도 부르는데, 누워 있는 '옥녀의 여근' 아래로 음수가 흘러 마을에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알려져 있다. 훼손이나 물 오염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 교통편

 

- 화명역에서 마을버스, 온천역에서 203번 버스

 



남근석 가기전인 등산로 옆에 찾아낸 여근석 비슷한 또 하나의 바위

부산역에서 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온천장역에서 내려 203번 좌석버스를 갈아탄다. 산성마을 금성동사무소 앞까지 넉넉하게 30분가량 소요된다. 10~15분 간격 운행. 북구 방면에서는 도시철도 2호선 덕천역 수정역 화명역 등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8분 간격 운행.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부산 동래구 온천동 금강식물원 앞에서 산성로를 이용, 산성고개를 넘어가거나 북구 화명동 롯데낙천대아파트 앞 삼거리에서 산성 방향으로 우회전, 산성로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문의=국제신문 주말레저팀 (051)500-5169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http://yahoe.tistory.com)

글=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금정산 북문으로 현재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금정산 세심정의 약수터 모습 

 

 

미륵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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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금정산하면 서울의 북한산, 대구의 팔공산,광주의 무등산 처럼 수식어로 따라 붙는 산이름이다.
그 만큼 금정산하면 부산 사람에게는 야구와 함께 떼어 생각 할 수 없는 명산이다. 그 산아래는 사실 많은 산길이 조성되어 있고 집앞을 나서면 산길로 연결되는 거미줄 같은 등산로로 봄철에는 더욱 붐비는 부산사람에게는 고마운 금정산이다.
평일 휴일날 오후에 늦게 출발한 금정산 산행, 코스는 별 생각 없이 호포로
지하철을 타고 간다. 호포역에서 나오면 바로 우측으로 주차장으로 가는 통로와 연결된다.
그 통로 한켠에 금정산을 안내하는 대형 지도가 걸려 있다. 여기서 눈요기 삼아 지도를 보고 난후 호포역사를 나오면
우측으로 지하 차도와 만난다. 
사실 부산에서 호포까지만 나가도 시골의 전원에 온 기분이 든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흘러가고 그 뒤로 김해 동신어산이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양산의 물금과 그 앞 작은 동산인 증산으로 신라와 가야가 대 격전을 벌린 장소로 유명하다,
지금도 증산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어며 그 만큼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호포가 최근에 새로운 들머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산행경로는 호포역~신기마을 금호사~임도~낙동정맥갈림길~고당봉~750m 스텐 사각~미륵사~금정산장~북문~금성동순 산행시간은 4시간정도.

호포역사 우측에서 호포새마을, 등산로(고당봉가는길),
부산교통공사가는길의 지하 통로를 빠져나와 시멘트 길을 걸어 펜스가 끝나는 지점이 나오면 갈림길 우측 다리를 건너 올라서도 고당봉으로 이어지지만 이번에는 포장길을 직진하여 신기마을로 올라가야 한다.
10여분이면 새로생겼다는 뜻의 신기마을인 금호사 제실 앞으로 올라서면 호포농원가는 길, 농원 앞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된다.  
소나무 숲길의 오솔길 입구에는 등산로 정비및 숲가꾸기 사업을 동면 면사무소에서 실시하고 있다는 안내문구를 볼 수 있다.
그 한켠에는 제선충을 알리는 글귀와 반출을 금한다는 죽은 나무들을 숙성시키는 흔적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논밭으로 사용 되었던 습지지역을 거슬러 오르면 완연한 봄이 온듯 산벗꽃들이 한창으로 꽃비를  뿌리고 있다.
제잘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올라서니 이번에는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게 산속을 흔든다. 아마 등산로 정비 사업을 하는 분인들인것 같다.  
절터의 흔적에 자란 산죽도 정비사업의 벌초기계에 힘 없이 서러지고 무엇을 위한 정비사업인지 의구심이 든다.
 
산길은 임도에 올라선다. 금정산 산허리를 가른 이 임도에서 우측으로 30m 걸어가면 이정표가 서 있다.
금정산 정상 가는 길1.7km, 직진하면 호포매운탕마을 4.2km, 뒤쪽은 가산 4km,  좌측 좌측 금정상 정상 가는 길을 따라 올라 50m 뒤에 갈림길, 두길 모두 금정산으로 오른 는길로 우측 계곡길이 100m 더 길다.
우측 계곡길로 오르기로 하고 게곡을 따라 오른다. 바닥에는 돌들이 깔려 있고 계곡은 좁아지면서 경사를 더 한다. 발아래는 현호색, 앵초가 봄을 알리며 피기 시작을 한다. 머리를 들어보니 계곡의 품이 갑자기 넓어 지고 키큰 소나무가 서 있다.
큰 바위들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곳을 지나니 갈림길, 우측은 화명 금곡동에서 올라오는 길, 금정산 정상은 좌측으로 1.1km 더 올라가야 한다.
갈림길에서 1.분 뒤 기도터의 흔적과 만난다. 금정산에 산재해 있는 기도터가 모두 헐리고 그 집터의 자리에 지금 쓰레기장이 착각 될 만큼 많은 물건들이 등산로 옆에 널부러져 있어 이마 살을 찌푸리게 한다.
상류라 그런지 계곡은 가뭄으로 물소리도 죽인지 오래고 좌측으로는 낮은 산죽이 펼쳐진다. 다시 10여분 뒤먄 갈림길로 머리를 들면 고당봉 정상이 서 있다.
좌측으로는 호포새동네에서 올라오는 길, 우측은 금정산 정상 방향, 우측으로 10m 뒤 넓은 임도급의 길과 만난다.
계석으로 내려가는 길로 좌측 금정산 정상 0.4km 이정표를 따라간다. 5분이면 사거리 길인 낙동정맥길로 매봉산에서 내려온 낙동정맥길이 여기서 쳐 받아 올라 금정산의 정점인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일명 고당봉, 장군봉의 갈림길로 넘어서면 범어사 3.4km 방향, 좌측은 철탑이 서 있고 호포 또는 장군봉, 고당봉은 우측길로 0.3km의 지척에 있다.
잣나무 조림지에서 산길은 정상을 향해 쳐 받아 오른다. 고당봉의 장벽을 실감 할 수 있다. 지금은 고당봉 정상 오른길에 철 계단과 달팽이 계단을 설치하여 누구나 쉽게 올라 갈 수 있도록 하였지만 설치 이전에는 정맥길의 고당봉 오름길은 크랙을 올라서야만 되는 위험한 곳이 한 곳 있었다.
계단 설치 후 말들이 많은 금정산 고당봉이였지만 지금은 잠잠함 상태가 되었다.  바위를 잡고 올라서면 계단길, 달팽이 계단을 올라서면 고당봉 정상으로 올라서는 임릉길, 우측으로 50m 바위를 잡고 가면 고당봉 정상을 알리는 정상석이 서 있다. 15분 소요. 

사실상 낙동정맥의 끝 지점으로 지금은 몰운대 까지 이어가지만 사실상의 낙동정맥 끝지점이다. 여기서 하산길은 산신할미를 모신 전각이 있는 동문5km,북문0.8km 방향과 화명동 쪽으로 내려서는 능선길이다.
미륵사를 가기 위해 정상석을 지나 바위를 내려선다. 요리조리 바위 틈을 빠져 내려서면 화명동으로 내려서는 능선에 다다른다. 이제는 또 다시 넓은 길, 이 길을 따라 내려서면 미륵사로 갈 수 있다.  
금곡동 4.5km, 화명동 7.9km 이정표를 뒤로하고 금정산성의 흔적을 따라간다. 교육원에서 세운 750m 스텐 사각봉을 뒤러하고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금정산을 붉게 물들인다. 칠바위 북문1.1km 갈림길 에서 직진하면 미륵암 암봉의 끝지점에 설 수 있다. 기존의 등산로 상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된다.
발아래는 천길 낭떨어지이며 여기서 보는 금정산 일원의 조망 또한 장관이다. 돌아나와  내려서면 좌측으로 미륵암 갈림길이다.
 종이를 코팅한 미륵사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직지하면  화명동으로 하산을 할 수 있지만 급한 길을 따라 내려서서 미륵사로   들어선다.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였다 하며 임진 왜란 때 부산 앞바다에 떠 있던 왜군 5만 병선을 물리치고 적장의 목을 베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서려 있는 호국성지이다. 염화전 뒤로 서 있는 미륵바위와 좌선바위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다가오는 부처님오신날이 몇일 남지 않아 모두들 바쁜 것 같다. 잠시 절 구경을 하고 미륵사를 나와 금정산장이 있는 북문 가는 길을 따라간다. 오랜만에 보는 산장 관리인 서재석 형님을 보기 위함이다. 여기서 하산은 북문을 거쳐 범어사 또는 산성마을 인 금성동으로 하산을 하면 된다.



  


호포의 신기마을에 있는 금호사 제실을 지나면  만나는 길, 이길을 따르다 좌측으로 들어서야 한다.

금호사제실

예전에는 농사를 지었을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는 습지젹으로 산 벗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꽃비가 떨어지는 것 처럼 보였다.


임도 갈림길,

앵초

고당봉을 볼 수 있는 지점


낙동정맥의 사거리 갈림길 안부


우측으로 돌아보면 고당봉의 바위장벽을 볼 수 있다. 이 중간으로 올라가야 하는 길이 낙동정맥길이다. 자세히 보면 목제계단과 달팽이 계단을 찾을 수 있다.

목제게단과 달팽이 계단


고당봉 바위 능선에 올라 북문으로 내려서는 나무계단길, 중간의 붉은 지붕이 고당할미를 모신 전각 


고당봉정상



연수원에서 설치한 750m 스텐 사각 기둥

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당봉으로 화명동 능선에서 본 모습


미륵사


금정산장

북문 사적 제215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숙종29년 1703년에 국방방호의 묵적을 두고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17km, 높이는 1.5~3m에 국내산성 가운데 가장 큰 성이다.





연수원 가는 길

중성의 석문


금성동으로 산성마을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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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미륵사

금정산 북문옆에서 한적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면 미륵사와 만난다.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8년인 678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미륵사는 독특한 모습을 한 암봉을 뒤로 하고 있다.
염화전 뒷쪽의 큰 암봉이 미륵봉으로 미륵봉의 암봉이 병풍을 두른듯이
솟아 있는 그 아래 즉 미륵사가 위치하고 있다.
미륵사는 창건때 부터 산문이 없다 들어서는 입구 양쪽으로 큰 바위가 산문을 대신하며
노적가리 같은 모습이라하여 끼니 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사찰이다.
 범어사는 의상대사가 미륵사는 원효대사가 각각 창건을 하였는데
미륵사와 함께하는 원효대사의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도 미륵봉 중간의 바위 암반에 위치한 독성각 앞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원효대사가 호리병 다섯개를 구해 왜구 5만 병선을 물리치고 왜구 첩자를 유인하기 위해
장군기를 꽂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그 구멍이다.
"모든 것에 꺼리낌 없는 사람이  번뇌에서 벗어 난다"는 가르침으로  유명하며
미륵불과 독성불을 모신 기도도량으로 알려저 있다. 
미륵사는 절 중앙에 염화전을 모시고 그 뒷편인 미륵봉 중간에
큰 바위들이 얽켜 있는 좌선바위를 볼 수 있다.  엉켜 있는 바위들이 해가 지고 난후
그 틈새가 보이지 않을 때 쯤 좌선하는 스님의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한다...
좌선바위 뒤인 즉 미륵봉이 미륵불이라 하면 그 아래 좌선을 한 스님의 모습을 한 좌선바위가 미륵불을 향해
좌선을 한 모습이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 아래 원효대사가 미륵암을 창건하였고
사찰이름인 미륵암도 여기서 유래 되었다 한다.



염화전 뒤로 미륵불을 닮았다는 미륵봉과 바위들이 서로 엉켜 있는 중앙의 좌선바위를 볼 수 있다.

미륵사는 대웅전 대신 염화전을 중앙에 배치를 하였는데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정면과 측면 각 3칸의 1952년에 지었다. 내부에는 1985년에 조성한 석가삼존불은 중앙에 석가여래와 좌우로 미륵보살과 문수보살을 안치하였다.
1974년에 조성한 후불탱이 중앙에 모서져 있고 신중탱과 지장탱등 모두 최근에 조성을 하였고 석정스님의 작품이다.

염화전 내부의 모습


칠성각


칠성각에서 본 미륵사 전경

오백전

오백전 내부




현재 독성각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보면 작은 샘터가 있다. 이 샘터는 쌀바위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매일 아침 작은 구멍에서 한톨 한톨 쌀이 떨어져 스님이 이 쌀로 끼니를 이었다 한다. 그런데 사미승이 구멍을 크게 하면 한거번에 더 많은 쌀이
나오라고 구멍을 작대기로 쑤신뒤 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 한다. 현재도 독성각아래인 미륵 바위아래에 작은 샘터가 있다.

독성각

독성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바위밑의 모습

 
독성각 처마 끝 모서리에걸린 자연 암벽에 미륵바위의 장삼자락을 양각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독성존불의 본 이름은 나반존자로서 미륵존불이 출현하실때 까지
천태산에서 선정삼매에 들어 있다가 미륵존불이 세상으로 나오시면  좌보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으로 현재도 독성각 입구 우측에 그 흔적이 뚜렸하다.



장군기를 꽂았다는 독성각 앞의 구멍.
원효대사는 미륵암에 주석을 하며 미륵삼부경중 상생경종요을 집필하였다하며 왜적 5만병선이 동래 앞바다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첩자를 육지로 올려 보냈는데 미륵사에 머물고 있던 원효대사가 사미승에게 호리병 5개를 구해오게하여  탑앞네 나란히 세운뒤 가장 높은 바위에
신라 장군기를 꽂았다 한다. 그 장군기를 보고 두명의 첩자가 미륵암까지 올라와
대사는 호리병으로 신통력을 부려  첩자의 목을 졸랐다. 첩자들이 살려 달라고 하자 호리병 3개를 적장의 대장에게 주라며 돌려 보냈다. 화가난 적장은 호리병을 단칼에 내리쳤고 그 순간 적장은 그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한다.









염화전의 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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