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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 망덕포구 시인 윤동주 유고 보존집 정병욱 가옥 여행하기...


시인 윤동주(1917~1945)를 민족 저항시인으로 부릅니다.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고가 우연찮게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에 보관을 하였기에 현재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등 그의 대표적인 시들이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그럼 윤동주와 정병욱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정병욱(1922~1985)의 집은 전라남도 광양 망덕포구에서 양조장과 정미소를 운영하였습니다. 부친은 진월면장을 역임하는 등 넉넉한 가정형편으로 1940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을 하여 2년 선배인 윤동주와 운명의 만남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준비하면서 그의 시 19편을 묶어 졸업기념 시집을 내려고 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을 우려한 주위의 만류로 포기하고 필사본 3권을 만들어 그의 절친인 정병욱과 스승인 이양하교수, 1권은 가지고 유학길에 오릅니다.


 

일본 유학에서도 그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에 재학 중 독립운동을 하였다하여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가 1945년 2월16일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옥사를 하게 됩니다.

 

 

세계2차대전을 일으켰던 일본은 수세에 몰리면서 마지막 발악을 합니다. 정병욱 또한 강제 징집을 당해 전장 터의 총알받이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는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 박아지여사에게 윤동주의 필사본 원고를 “꼭 지켜 달라” 부탁을 하면서 전쟁터로 나갑니다.


  

다행히 해방과 함께 살아 돌아와 윤동주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정병욱은 그 길로 고향집에 내려가 어머니에게 맡겨둔 윤동주의 필사본 행방을 찾습니다.

 

 

어머니는 집 마룻바닥을 뜯고 그 밑에다 항아리를 묻어 숨겼던 윤동주의 필사본을 찾아 정병욱에게 내어 주었고 그 뒤 서울에서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전 부산대, 성균관대 교수)와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이름으로 ‘윤동주 시집’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현재 망덕포구에는 1925년 건립된 정병욱 가옥이 근대문화유산 제34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병욱 교수의 어머니가 운동주의 필사본을 보관하기 위해 마룻바닥을 뜯었던 곳도 흔적을 달리하며 그 위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정병욱 가옥은 윤동주의 필사본을 숨겼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지정 후 복원공사를 한다며 지붕의 함석을 들어내고 새 함석과 기둥 등의 공사를 하였습니다.


 

함석지붕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녹이 쓸면서 삭았고 기둥은 덧 데어져 1962년도의 사진모습과는 완전 다른 외형으로 바뀌어 버린 것을 보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현재 건물을 관리하는 정병욱의 외종조카 박춘식씨로 부터 윤동주님과 정병욱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윤동주 유고집 보관 정병욱 가옥 사진으로 만나기◆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 망덕포구 시인 윤동주 유고 보존집 정병욱 가옥 여행하기...교통편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을 찾아가는 방법은 광양과 하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필자는 하동구경을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망덕포구로 이동했습니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하동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8시, 9시 등 1시간 간격으로 하루 10회 운행을 하며 (요금 1만1100원) 하동터미널에서는 54번 망덕행 광양 시내버스로 갈아 타면 됩니다. 오전 7시30분, 8시, 8시50분, 9시50분, 10시50분 11시50분 등 하루 15회 운행.

부산서부터미널에서 중마터미널행은 동광양 행 버스를 타면 됩니다.  오전7시20분, 9시20분,9시30분, 9시50분,11시 등 13회 운행. 광양시의 중마터미널에서 54번 하동행 시내버스 시간은 오전 6시, 6시50분, 7시8분, 8시8분, 9시8분, 10시8분, 11시08분 등 16회 운행. 하동과 중마터미널에서 출발하는 54번 버스는 망덕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섬진강 하구쪽으로 내려간 뒤 오른쪽으로 200m 쯤 거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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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 걷기 좋은 코스 하동포구~평사리 최참판댁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 


창간기획 특집 “영호남 화합의 길 열다”를 시작하면서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첫발을 딛어 하동 송림까지 1구간인 14.5km를 걸었다. 민족 저항시인 윤동주의 유고집이 보관된 정병욱 가옥과 복사본이지만 그의 필사본을 만날 수 있었던 망덕포구에서의 출발은 더욱 우리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1구간은 영호남 화합의 차원에서 호남 쪽 섬진강을 걸었다면 2구간은 영남 쪽 섬진강 길을 따른다.



출발지는 경남 하동군 하동읍 창평리 하동 송림숲이다. 1구간의 도착점인 하동 송림숲에서 섬진강 대로를 따라 악양면 평지리 최참판댁까지 걷는 구간으로 섬진강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걷고 섬진강과 호흡 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길을 걷기 전에 먼저 하동 송림 숲을 둘러보자. 아침운동을 나온 많은 시민들이 이곳 소나무 숲을 걷고 있다. 1745년(영조21년) 하동부사 전천사가 마을로 불어오는 모래와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으로 조성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섬진교를 완공하고 제방공사를 하면서 일부 송림이 훼손되었고 지금도 620주의 소나무가 섬진강과 어울려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55호이며 2005년 2월에는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었다.

 






하동송림 숲 주차장에서 본격적으로 영호남화합의 길 2구간을 시작한다. 먼저 지난주 끝낸 섬진교 삼거리로 가기위해서는 다리 밑 까지 간다. 다리 옆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바로 삼진교 삼거리와 만나고 왼쪽 도로를 건너면 이순신 백의 종군로 표지석이 있는 작은 공원을 돌아 화개, 악양 방면 19번 도로를 따른다.





곧 강변을 따라 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15분이면 도로 건너편에 오룡정 빗돌이 보이고 하동나루터 쉼터에 닿는다. 섬진강 나루에서 가장 번창하였고 임실에서 하동과 화개까지 불길처럼 일어난 동학혁명과 지리산 빨치산의 활동무대로 이용되면서 차츰 나루의 기능은 사라지고 지금은 나루의 흔적도 찾기가 쉽지 않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속 무대로 하동읍내 장터에서 주막을 열었던 월선이가 용이가 이곳에 나타날까 싶어 하염없이 기다린 나루터이기도 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은 합천 초계 권율 도원수의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이곳을 지나갔다는 표지석도이 있다.



 

“하동포구 80리에 물새가 울고

 하동포구 80리에 달이 뜹니다“

 권대우 시인의 ‘하동포구’ 노래비와 ‘지리산‘ ’산하‘의 작가 하동군 북천 출신의 나림 이병주 문학비도 있다. 




섬진강 둑길을 따라 걷는 2구간 영호남 화합의 길은 이곳에서 최고의 경관를 보여준다. 섬진강 건너 백운산과 강의 유속이 느려져 모래 등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섬인 하중도에 초록의 융단이 깔렸고 오른쪽 구재봉에서 긴 능선이 섬진강으로 살며시 내려 않는 전형적인 강촌의 모습이다.






10분이면 황토색을 입힌 둑길도 끝나고 두곡마을 회관 앞을 지난다. 현재 19번 국도 섬진강대로는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라 도로가 어수선하다. 두곡삼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 남원, 구례 방향으로 직진한다.

 


자동차가 다니는 2차선 도로 왼쪽 공사 중인 도로를 걸어면 자연스럽게 섬진강의 강둑으로 도로를 건설중이다. 섬진강을 끼고 공사중인 강변도로는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와 10월의 늦더위도 날려 버리게 한다.

 


20여분이면 생뚱맞게 ’2014 광양국제매화축제‘ 안내판이 있고 맞은 편 섬진강 건너 골짜기 안에 30여만평의 산비탈을 개간하여 현재 60여 가구가 매실 농사를 짓고 있는 유명한 광양의 매화마을이다. 한창 매화가 필 때면 관광객과 함께 산 전체가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모습이라는 매화마을은 국내 최대의 매실 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강을 끼고 대나무가 길게 숲을 이루고 공사중인 도로를 벗어나 강변으로 난 길을 따른다. 독립가옥과 만나 왼쪽 콘크리트길을 내려가면 전망데크다. 찾는 이 없는 전망데크는 외로움에 지쳐 간혹 철새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취재팀이 올라가니 놀랬는지 날개를 퍼덕이며 섬진강 건너 전남 광양으로 달아 난다.



하늘을 나는 작은새도 영호남의 경계가 없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영호남 화합의 길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사각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다압쪽으로 모래톱이 발달해 있고 백운산에서 흘러온 호남정맥이 매봉을 지나 쫓비산은 매화마을을 감싸며 영호남 화합의 길을 시작한 섬진강 하구 망덕산 아래 망덕포구로 연결된다.




데크를 내려와 직진하면 울타리를 두른 과수원을 지나 나무 계단을 올라서면 도로와 만나고 간혹 보이는 빨간색 ’이순신 장군 백의 종군로‘ 리본도 보고 하면 길 찾기에 도움이 된다.

 



여름철 비에 씻겨 내려간 둘레길은 매실밭과 배밭 밤나무 밭을 지나고 밤 네톨이 있는 밤나무쉼터를 지나 다시 과수원과 나무 조림지, 대나무 숲을 차례로 지나면 길은 공사중인 도로 밑에 선다. 돌을 싼 철망을 밟고 올라서면 공사를 하다 멈춘 도로에 올라서고 왼쪽 방향 흙길을 따라가면 구도로와 연결된다.






새로 딱은 도로에 자동차가 달리고 취재팀은 아스팔트가 깔린 구 도로를 걷는다. 왼쪽의 섬진강 둑이 높아 강은 보이지 않고 오른쪽에 보이는 마을은 흥룡마을이다. 그 뒤에 솟은 산이 구재봉이고 먹점마을은 골짜기에 숨어 있어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먹점골 마을버스 정류장과 먹점마을을 안내하는 장승을 지나면 다시 왼쪽 강변으로 내려가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른다. 눈 앞에 대나무 숲이 보이며 곧 흙길로 바뀐다. 대나무 숲 오른쪽으로 잡풀이 덮힌 길을 따라가면 끝 부분에 길이 약간 에매하지만 바로 쉼터가 보인다.

 




두꺼비 쉼터로 전망 데크에서 55분 걸렸다.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복두꺼비 길‘ 안내판이 있고 섬진강을 상징하는 두꺼비 두 마리 조형물이 있다. 다압면 도사리 섬진나루에서 섬진강의 유래가 된 두꺼비 전설이 내려오는데 1385년 고려 우왕때 왜구들이 이곳까지 쳐들어오자 어디선가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몰려나와 울부짖자 왜구들이 놀라 물러갔고 왜구에 쫒긴 우리병사들이 나루에 도착하여 붙잡히게 되자 두꺼비가 다리를 놓아 두꺼비 등을 밟고 무사히 건넜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모래가 많아 다사강, 모래내, 두치강으로 불렸는데 그 후 두꺼비 섬자에 나루진자를 붙혀 섬진강이 되었다. 왜구의 소행이 두꺼비도 용서를 할 수 없었는 것 같다. ’흥룡, 먹점 마을 가는 길‘ 안내판을 지나 배밭과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도로에 닿고 전망데크의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섬진강은 왼쪽으로 꺾여 돌아가고 형제봉 아래에 있는 오늘의 목적지 최참판댁은 더욱 가까이 보인다. 20분이면 버드나무 쉽터에 도착하며 조선시대 일두 정여창이 초여름 쌍계사에서 화개골의 보리가 익어가는 들녘을 보고 지었던 시가 있다.

 





강을 끼고 난 길은 흙길과 데크길이 번갈아 나오고 15분이면 개치마을의 은행나무 쉼터에 도착한다. 마을 아주머니 두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이 더운데 어디서 오는겨”하며 물어 본다. 하동에서 걸어 온다고 하니 ’젊은 양반들 사람 잡겠네“ 하시며 바닥을 훔친 뒤 쉬었다 가라는 말에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앉아 한참을 쉬었다.

 


담쟁이가 둘러쳐진 돌담이 정겨운 마을 쉼터에서 최부자집 방향은 왼쪽 악양천의 다리를 건넌다. 교각 공사 현장으로 더 나갈 수 없어 오른쪽 섬진강을 두른 강변도로에 올라선다. 벚꽃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봄이면 환상적인 벚꽃길이 된다. 




10분이면 평사리 공원 입구, 왼쪽 공원으로 내려가 강변 길을 다른다. 1955년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이 섬진강 백사장과 쌍계사에서 촬영되었는데 이곳에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주인공 노경희가 지리산에서 내려와 자유를 찾아가는 장면이 촬영되었다는 표지석이 서 있다.




소나무와 잔디가 분위기 있게 다듬어 진 평사리 공원은 문화 생태 탐방로 박경리 ‘토지길’ 안내판과 섬진강 노래비를 보면서 강변 공원길을 걸어간다. 분수대와 여름철 텐트로 장사진을 이루었던 캠핑장도 지나 공원 끝까지 걸어가면 문화생태탐방로와 연결된다. 하늘을 덮은 대나무 숲속 길이 연결된다.




15분이면 봉대천의 수문이 설치 된 도로가 나오고 악양과 화개 갈림길인 평사리 삼거리다. 소상낙원 표지석 우측으로 성제봉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영호남 화합의 길은 섬진강을 따라 화개로 가야하지만 망덕포구의 윤동주 유고집과 함께 코스길을 정할 때 악양을 배경으로 쓴 박경리의 ‘토지’는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결론을 얻어 오른쪽 악양 평사리 최참판댁으로 향한다.

 


외둔마을을 지나면 오른쪽 무딤이들로 불리는 악양들판의 부부소나무를 볼수 있다. 무릇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나무로 많은 사진사들이 출사지로 선택을 한다. 동정호 생태공원 갈림길과 만나면 직진한다.



중국 호남성 악양에 있는 동정호와 하동 악영의 지명이 같아 동정호라 부르며 복원과정을 거쳐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둘러 볼 것을 권한다. 곧 소설 ”토지“ 최참판댁 안내판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향한다. 고소성 방향이며 다시 이정표가 고소성과 최참판댁 갈림길에서 오른쪽 방향 오르막을 따른다.

 




주차장과 박경리 토지 문학비를 지나면 악양 소상팔경중 7경인 ”평사리 흰모래밭에 기러기가 줄지어 앉고 있다“의 평사낙안(平沙落贋)에서 음을 취하였다는 평사리의 상평마을 최참판댁 매표소 앞이다. 이곳에서 영호남 화합의 길 2구간을 마친다.



교통편은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부산에서 하동가는 시외버스는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7시, 8시, 9시, 10시, 11시 등 대략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하여 하동송림까지는 도보로 20분 내외 걸린다. 둘레길이 끝나는 악양 평사리에서 하동으로 돌아오는 버스도 30분~1시간 간격으로 자주 있다. 하동에서 부산행 버스는 오후 2시30분, 3시20분, 4시30분, 5시30분, 6시20분, 7시30분(막차)에 출발한다. 막차를 놓쳤을 경우에는 진주를 경유하여 오면 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땐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하동IC에 내린 뒤 19번 국도를 따라 하동읍까지 들어가면 된다. 하동송림은 19번 국도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송림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된다. 무료. 최참판댁에서 돌아올 땐 버스를 이용해 하동읍까지 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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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면 망덕포구. 섬진강과 호남정맥의 끝과 시작인 망덕포구로 가을 여행을 떠나보세요.


강물이 흘러와 자연스럽게 바다와 한 몸이 되는 곳이 있습니다. 새벽에 나갔던 고깃배가 석양빛을 받으며 갯가로 들어오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있습니다. 누구나 아련한 추억 한 줄은 남아 있을 것 같은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그런 곳 망덕포구를 지난여름에 댕겨 왔습니다. 전날 엄청 내린 폭우로 포구에 묶어 둔 쪽배의 뱃머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아픈 듯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바다 바람에 온 몸을 맞고 있습니다.





 

 망덕포구는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의 망덕산 아래에 복주머니처럼 옴폭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와 갈사리를 끼고 흘러온 섬진강이 물을 토해 내놓는 곳입니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있는 팔공산 북쪽 천상데미로 불리는 봉우리 기슭에 있는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550리를 흘러 이곳 망덕포구에서 몸을 한결 낮추며 광양만에서 몸을 눕힙니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강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는 봉우리를 뜻하는 더미에서 나왔습니다. 데미샘의 발원지인 천상데미는 섬진강을 거슬러 천상으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그의미가 자뭇 심장합니다. 


 

섬진강을 혹자는 아픔의 강이라 합니다. 좌우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아픔과 상처를 모두 보듬고 안아 말없이 흘러가는 섬진강. 그 섬진강을 감사는 산이 성스러운 여신의 산이라 부르는 지리산입니다. 모든 것을 품을 것 같은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라 부릅니다. 너른 품으로 섬진강을 품고 쓰다듬어 그 아픔을 말없이 토해 내는 ‘엄마’의 눈물처럼 섬진강은 그렇게 강이 되어 강과 바다의 경계인 망덕포구로 흘러갑니다.


 

 

 

망덕포구는 끝과 시작의 점입니다. 섬진강물은 이곳에서 끝을 맺지만 백두대간의 또 다른 시작점입니다. 한반도의 등뼈로 통하는 백두대간의 최남단은 망덕포구입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호남정맥은 망덕산을 올라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인 영취산을 만나고 백두산으로 거침없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망덕포구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먹거리가 있습니다. 섬진강과 남해가 서로 만나는 기수지역이라 이른 봄 벚꽃이 필 때 가장 물이 올라 맛있다는 벚 굴을 시작으로 전어, 맛조개, 백합, 재첩, 장어 등이 많이 나와 광양, 하동을 더욱 풍부한 먹거리로 만듭니다.

 

 

 

망덕포구의 가을은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가 망덕포구의 또 다른 별미입니다. 왠 집 나간 며느리가 그리 많은지 망덕포구의 9월은 모두 집나간 며느님이 와서 그런지 9월에 열리는 '망덕전어축제' 때는 방문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 합니다.


 

그 것을 증명이라 하듯 망덕포구 안에는 ‘전어고을 망뎅이’ 조형물이 큼지막하게 세워 놓았습니다. ‘여기가 바로 전어고을이제’하며 말입니다. 지금이야 교통의 발달로 이곳저곳 마음대로 다닐 수 있지만 예전에는 뱃길이 가장 빨랐습니다.





 

망덕포구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하동, 다압, 구례, 곡성까지 올라가는 유일한 길목 역할을 망덕포구가 하였다니 그 당시의 망덕포구가 상상이 됩니다. 망덕의 유래는 망덕산에 오르면 광양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하여 ‘망뎅이’라 하였는데 한자음에서 망덕(望德)이가 되었다는 이야기. 사진으로 보는 작은 산이 망덕산입니다. 

 

 


 

 

 

 

2001년 광양시장이 세웠던 ‘진남루기’ 표지석에 망덕포구를 잘 표현하여 옮겨 옵니다.“ 아, 이곳은 명지(名地)이다. 노화(蘆花)를 적신 물이 칠문(七門)을 통하여 배알도(拜謁島)를 휘감고 돌아 남해(南海) 물결과 만나고 영봉(靈峰) 억불봉(億佛峰)을 뒤로하고 풍치 좋은 무접도(舞蝶島)와 망덕산(望德山)을 좌우로 거느리고 여름이면 물결 출렁이는 소리와 겨울이면 갈대 서걱 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 .망덕포구의 가을은 이제 부터 시작입니다. 


 

 


 

망덕포구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08년 9월에 어업권을 찬탈한 일본인을 처단하기 위해 황병학(1876~1931)이 의병을 일으킨 곳입니다. 그해 여름 광양의 영산 백운산에서 산포수 100여명을 모아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망덕포구의 어장을 빼앗은 일본어민과 잡화상을 공격하여 가옥과 어선을 모두 불태우며 저항을 하였던 곳입니다. 지금은 광덕포구 쉼터가 마련되어 그 당시를 알리는 작은 안내판만 따가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습니다.


 

4월의 망덕포구는 벚꽃이 장식을 합니다. 망덕포구 전체가 하나의 벚꽃이 된다는 마을 분의 설명을 들으며  4월에 벚꽃이 필때  벚굴을 먹으러 다시 한번 찾고 싶은 망덕포구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서시'.' 별헤는 밤' 등 윤동주의 필사본이 왜인의 눈을 피해 보관되었던 정병욱 가옥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이 정병욱 가옥입니다. 지금은 근대 문화유산인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1925년 건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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