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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만산고택, 봉화만산고택 고택체험을 하다.


봉화여행을 하면서 둘째 날은 봉화군 춘양면의 만산고택에서 고택 체험을 했습니다. 

마지막 날 일정이 춘양면에 모두 잡혀 있어 부산에서 출발 전에 미리 만산고택에다 예약했습니다. 

먼저 봉화 만산고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후기인 대한제국 통정대부 중추원 의관을 지낸 만산 강용(1846~1934)이 1878년(고종15) 건립한 가옥입니다.




봉화만산고택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288

봉화만산고택 전화:054-672-3206




2018/10/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여행에서 소강고택 한옥체험. 소강고택

2018/03/07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한수정. 충재 권벌을 추모하는 봉화 춘양 한수정 여행.

2018/03/06 - (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만회고택

2018/02/26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계서당.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여행

2018/02/16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서동리삼층석탑. 산림고교 교정에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2018/02/14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감실부처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2017/11/15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도암정


봉화 만산고택도 소나무 중 최고라는 춘양목으로 지어졌습니다. 

만산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한을 달래려고 자택 뒷산에다 망미대(望美臺)를 쌓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봉화 만산고택의 대문채는 11칸의 솟을대문인데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마주하는 게 사랑채입니다. 

앞면 5칸 옆면 8칸 규모의 ‘ㅁ’자 형태의 건물로 사랑채와 안채가 붙은 형식입니다. 

사랑채는 사랑방과 대청, 조상의 신위를 모신 감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안채는 사랑채와 별당 사이의 중문으로 들어섭니다.



사랑채 


서실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대청, 안방과 상방, 부엌, 중방과 고방이 연결된 구조이며 토속 민간신앙인 성주단지와 용단지를 모셨는데 처음 수확한 쌀을 독에 담아 1년간 보관했으며 음력 5월 보름날 정오에는 성주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안채









대문채




안채 출입 중문




오른쪽에는 따로 담장을 두른 ‘칠류헌(七柳軒)이 있으며 팔작기와집인 5칸의 별당 건물로 귀한 손님을 모셨던 곳입니다. 

만산이 이곳에서 영친왕 등 여러 문인과 학문을 교류하였다 합니다. 

본채와 서실, 별채, 대문채 등의 가옥 배치는 사대부가 상류 주택의 형태로 안채의 출입은 사랑채의 감실 뒤인 측면 출입형의 중문으로 합니다. 

 







 


이는 19세기 봉화 등 경상북도 북동부 반가의 지역적인 건축 특성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특히 만산고택에는 여러 친필 편액이 전해 옵니다. 

‘만산(晩山)’편액은 강용이 태어났을 때 흥선대원군이 “대기만성형의 큰 인물이 되어라”는 뜻으로 호를 지어 직접 쓴 글씨이며 박물관에 보관 중인데 현재 모사본이 걸려 있습니다.




정와



존양재



서실에 걸린 “문필과의 밝고 깨끗한 인연”을 뜻하는 ‘한묵청연(翰墨淸緣)’편액은 영친왕의 친필로 8세 때 쓴 글씨입니다. 

서실은 사랑마당 왼쪽에 있으며 우진각지붕의 2칸 규모로 이 집 안 아이들이 모여 공부하던 방입니다.

 


한묵청연





만산고택은 건물마다 다양한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각각의 현판에는 각 건물에 담겨 있는 의미를 뜻한다고 합니다.

사랑채에는 대원군이 쓴 ‘만산’과 강벽원 선생의 정와(靖窩)’와 3·1 만세운동에서 33인 중 한 분인 오세창이 쓴 ‘존양재(存養齎)’와 별당건물의 칠류헌 현판입니다.

 





정와는 “편안한 집”이란 뜻이며 존양재는 “타고난 심성을 온전하게 지켜서 훌륭한 심성을 기르는 곳”을 뜻하며 맹자의 ‘존심양생(存心養生)’에서 따왔습니다. 

'칠류헌'은 “요일이 순환하듯 언젠가는 국운이 회복될 것을 염원”한다는 만산 강용의 뜻이 담겨 있으며 기둥의 주련은 영친왕의 스승인 해강 김규진(1868~1933)선생의 글씨입니다.





이외에도 백석산방, 사물재 등의 현판이 있습니다. 

봉화 만산고택은 고택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한때 빈집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많은 편액도 도둑맞고 해서 만산의 5대손인 강백기 선생이 부인과 함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낙향하여 관리하면서 따뜻한 고택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만산고택에서 가장 저렴한 대문채에 붙은 방 2 두 개 였습니다. 

행랑방으로 옛날로 말하면 머슴이 거처하던 방입니다. 

묵었던 방은 따뜻했습니다. 그러나 목욕과 화장실인 편의 시설은 따로 독립되어 있는데 조금 불편했습니다. 



이것 말고는 대문채의 방도 깔끔하고 정말 좋아 편안하게 하루 쉴 수 있었습니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21호 만산고택 체험 문의는 054-672-3206 “예약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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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서동리삼층석탑. 산림고교 교정에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소나무는 금강송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고산이 마지노선으로 일반 소나무와는 현격하게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강송은 단단함을 뜻하는 소나무입니다. 그 귀한 금강송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에서 모여 전국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봉화서동리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91, 서원촌길 8-14(서동리)

봉화서동리삼층석탑 연락처:054-679-6392

보물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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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금강송을 춘양목이라 따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번 봉화여행에서 춘양목의 집하장 춘양역이 있는 춘양면의 만산고택에서 1박을 하며 고택체험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황토집인 온돌방에서 푹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찍 잠을 깼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만산고택 구경을 하다가 밖으로 나와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어디 갈 곳이 없을까 싶어 생각해서 찾은 곳이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입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만산고택과 멀지 않았습니다. 대략 1km가 조금 안 된 거리였습니다. 봉화 삼층석탑은 특이하게도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경내에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에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학교가 나와 처음에는 많이 황당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안개도 많이 끼고 해서 일단 교문을 들어가서 빙 둘러보았습니다. 교정 오른쪽에 삼층석탑이 보여 맞게 찾아왔구나 하며 아마 옛날에는 이곳이 절터였나 생각했습니다.

 






문수산에서 내려온 능선이 면 소재지와 가까워지면서 논밭 속에 봉화 춘양면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동·서로 마주 보는 쌍탑 형식입니다. 이곳은 신라 시대에 있었다는 남화사 절터였다 합니다. 전하는 말로는 675년 신라 문무왕(16년) 때 원효가 이곳과 멀지 않은 각화산 아래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자 폐사되었다 합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탑이 몹시 기울고 기단부가 흙더미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1962년 두 석탑을 해체·복원해서 현재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복원 당시 서탑에는 사리함이 들어갔던 공간이 발견되었으며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99개의 작은 흙으로 만든 탑이 두른 사리장엄구가 나왔습니다.





사리함에는 녹색 유리 사리병이 나왔고 그 안에서 좁쌀만 한 사리 3과가 있었다 합니다. 사리기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진 상태입니다. 높이는 동탑은 3.85m이며 서탑은 3.94m에 두탑은 13.5m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지대석은 여러 장의 판석을 깔았으며 그 위에다 기단석을 받치는 굄대를 여러 장의 돌로 두툼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탑 모두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기단은 네 면의 모서리에 운주인 기둥 모양을, 가운데에 다는 탱주를 한 개씩 새겼습니다. 또한,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줄어드는 체감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운주를 새겼으며 옥개석은 4단의 층급 받침에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렸습니다.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서탑에는 노반이 남아 있으며 동탑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비례와 균형이 잘 어울리고 정제된 조형미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봉화 춘양면 여행 때 한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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