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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맛집)마이산맛집 마이산옛터. 사람으로서 너무 잔인하다며 지금은 사라져가는 향토 음식 애저요리 마이산옛터


애저라고 아세요. 맛집만을 찾아다니는 마니아에게는 생소하지 않을 새끼돼지 요리인 애저는 전북 진안의 향토 음식 중에서 첫손을 꼽습니다. 애저라 하면 새끼돼지를 말하는데 어미돼지를 잡으면서 뱃속에 들어 있던 새끼돼지를 꺼내 한약재와 함께 삶아 보양식으로 먹었던 약 중의 보약입니다.






진안 애저요리 전문점 마이산 옛터 주소:전라북도 진안읍 단양리 690-8

진안 애저요리 전문점 마이산 옛터 전화:063-432-4201


2011/06/27 - (전북여행/진안여행)진안 명도봉 산행. 오고가는 것은 구름뿐, 햇빛도 반나절밖에 못보는 희안한 계곡을 아시나요-진안 명도봉

2016/04/02 - (전북여행/진안여행)진안 천반산 산행. 천반산의 죽도는 기축옥사를 피해 정여립이 몸을 숨겼던 곳입니다. 정여립 모반 사건의 역사를 추적하는 천반산 죽도 산행.

2017/04/15 - (진안여행)마이산 고금당 나옹암. 마이산 전망 일번지 고금당 나옹암을 찾아가다.

2017/04/26 - (진안여행)마이산 탑사·은수사.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 돌탑 마이산 탑사·은수사

2017/05/02 - (진안여행/진안가볼만한곳)마이산 금당사. 절집 여행 마이산 금당사





지금은 보통 생후 20~30일 정도의 새끼돼지를 잡아 음식을 만든다 합니다. 어린 돼지지만 생후 1개월이 지나며 살도 붙고 토실한게 씹히는 질감도 좋으며 뼈도 연약해서 다 먹을 수 있다 합니다. 이때가 돼지고기로서 가장 맛이 있으며 영양가면에서도 최고 절정을 이룬다는 이야기.





진안에서 애저로 요리 하는 식당은 3곳 입니다. 진안관과 금복회관 그리고 마이산 북부주차장에 있는 마이산콘도의 ‘마이산 옛터’입니다. 오래전에 마이산 북부주차장 입구의 금복회관에서 애저를 한번 맛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마이산 산행을 하면서 금복회관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런데 문이 꽉 잠겨있으면서 현재에는 폐업상태로 영업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산에 돌아 갈 것을 생각하여 진안관에 전화했더니 벌써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았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남은 마지막 한 곳인 마이산옛터도 문 닫았다면 오늘 애저 요리는 황(?)인가 하며 은근히 걱정되었습니다.



또 허탕을 칠까 싶어 미리 마이산 옛터에 문의 전화를 했습니다. 아직 영업 중이라 하여 지금 바로 가니까 문을 닫으면 미워할 거야 말하고 5분 안에 달려가니까 기다려 달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진짜 5분 만에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마이산 북부주차장은 마이산 산행을 시작하는 맨 끝의 주차장입니다. 마이산 콘도 건물 내에 마이산 옛터 식당이 있으며,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애저탕 주문을 했습니다. 애저요리는 어린 돼지를 잡아 내장을 꺼내고 푹 삶아 4 등분 했다가 주문과 함께 냄비에 넣어 마늘과 생강, 파 등 갖은 양념을 넣고 끓여내면 애저 요리는 끝.

 














끓인 애저고기를 건져내어 초장에다 찍어 먹습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살코기와 비계, 껍질이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부드러우며 잡내가 전혀 나지 않으면서 꼭 부드러운 닭고기를 먹는 맛입니다. 3~4명은 먹으며 곁들어 나오는 밑반찬도 진안에서 나는 여러 가지 나물 등 토산물을 이용해서 인스탄트 식품에 젖어 있는 우리 입맛을 토속적인 입맛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규합총서에는 애저는 전라남도 특산음식이며 ‘새끼를 가진 어미돼지를 잡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새끼돼지를 잡아 요리한다는 게 요즘 우리 정서상 너무 거슬려 안타깝게도 지금은 차츰 사라져가는 음식입니다. 애저(哀渚)라 한 것도 새끼돼지를 불쌍하게 여겨서 부르게 되었으며 어린 돼지라 해서 아저(兒渚)라고도 부릅니다.

 




고기를 대충 건져 먹었다면 묵은김치를 총총 썰고 여러 가지 양념을 넣고 탕으로 끓여 밥을 넣고 먹습니다. 그러다 보니 김치도 들어가고 해서 그런지 조금 짜웠습니다. 진안여행에서 꼭 맛보고 온다는 애저 요리를 현재에는 두 곳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미리 전화로 확인을 해보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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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여행/진안가볼만한곳)마이산 금당사. 절집 여행 마이산 금당사


전라북도 진안의 마이산은 명승지 제1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조선의 태종이 붙인 이름으로 말의 두 귀를 연상하는 마이산은 그만큼 빼어난 산세를 자랑합니다. 그 마이산의 품 안에 자리한 금당사는 마이산도립공원 내에서 가장 큰 사찰로 남부 마이산의 대부분이 금당사의 경내에 포함합니다. 그 크기가 약 42만 8천 평으로 실로 대단한 규모입니다.

 





진안 마이산 금당사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39-1

진안 마이산 금당사 전화:063-432-4441


2017/04/26 - (진안여행)마이산 탑사·은수사.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 돌탑 마이산 탑사·은수사

2017/04/15 - (진안여행)마이산 고금당 나옹암. 마이산 전망 일번지 고금당 나옹암을 찾아가다.

2016/04/02 - (전북여행/진안여행)진안 천반산 산행. 천반산의 죽도는 기축옥사를 피해 정여립이 몸을 숨겼던 곳입니다. 정여립 모반 사건의 역사를 추적하는 천반산 죽도 산행.

2011/06/27 - (전북여행/진안여행)진안 명도봉 산행. 오고가는 것은 구름뿐, 햇빛도 반나절밖에 못보는 희안한 계곡을 아시나요-진안 명도봉




금당사의 기록은 삼국유사 제3권 홍법조에 나와 있습니다. 금당사는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광대봉 기슭의 암반에 서기 650년 백제 시대 의자왕 10년에 무상과 금취 두화상이 고금당에 있는 나옹굴(현재 나옹암 자리)에 금동사란 이름의 열반종 사찰을 창건하고서입니다. 현재의 고금당이 금당사의 시초가 됩니다.

 


그리고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이 나옹굴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이성계는 도장골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신인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권한인 금척을 받은 금척천명지가 마이산입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자연석굴인 동굴이라 혈암사란 이름으로도 나타나는 등 마이산의 이름과 같이 금당사도 다양하게 불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때에 절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금동사는 고금당으로, 새 절은 금당사로 절명칭을 교통정리 했습니다. 




마이산은 특이하게 생긴 만큼 신라 때는 서다산, 고려 때는 용출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면서 속금산이라 부르고 다시 태종이 마이산이라 한데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또한, 국난에 처했을 때마다 마이산의 금당사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의 사령부로 북상하던 왜군에 금당사에 주둔했던 승군은 전멸당하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많은 전각이 깡그리 불태워졌습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일어난 동학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녹두장군 전봉준의 딸은 마이산으로 몸을 피해 10년 동안 고금당에서 은신했으며 1906년 4월에는 마이산 주필대에서 정재 이석용장군에 의해 호남 최초의 항일의병인 창의동맹이 결성되는 등 마이산은 독특한 산세만큼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이 나라를 지키는 구국의 성지였습니다.

 




그런 금당사가 2000년 이후 사격을 갖추는 불사를 진행하여 대가람으로 변모했습니다. 현재 금당사 소유의 문화재는 먼저 보물 제1266호인 금당사 괘불탱입니다. 1692년인 숙종 18년에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높이는 약 9m에 폭이 약 5m 크기입니다.



천 가운데 관세음보살상을, 좌우에 20구의 작은 보살상을 배치했으며 우리나라 괘불 중에서 화관에 4마리의 봉황이 그려진 것은 금당사 괘불탱이 유일하다 합니다. 명원과 조지연 등이 그렸으며 그만큼 채색이 화려하고 유려한 모습입니다.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하면 탱화를 걸어두고 기우제를 지냈으며 그때마다 비가 왔다는 속설이 있는 신령스러운 괘불입니다.




그리고 대웅전의 주불인 금당사 목불좌상입니다. 이 불상은 처음 제작을 할 때 남원 부사의 도움을 받았으며 108명의 스님이 옮겨온 수령 천년된 금강산 은행나무로 조성했습니다. 한 때 도난당했다가 되찾았으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그 기념으로 중국 스님이 조각했다는 이야기도 전하는 불상입니다. 전북 지방문화재 제18호.





이번에는 금당사를 들어서는 입구에 조성된 고려 중기의 석탑입니다. 원래는 연못 가운데 있었으며 남아 있는 부재로 보면 석탑은 오층탑으로 임진란과 병자호란 때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숙종 때에 현재의 위치에 옮겨 고쳐 세웠습니다. 석탑을 보면 받침대 중간의 돌과 상륜부는 분실된 것을 후대에 새로 만들어 넣었고 구조와 제작수법에서 고려 시대 작품임을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22호.






그리고 금당사의 법고인데 현재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며 호남의병 창의동맹 결성 당시부터 3년 동안 의병활동에 북소리를 울렸다 합니다. 이외에도 금당사 주위로는 나옹화상의 전설이 남아 있는 명소가 여럿 있습니다. 용마봉은 나옹화상이 타고 다녔다는 말 이름에서 따왔으며 나도산은 나옹화상이 도를 깨우쳤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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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여행/진안가볼만한곳)마이산 탑사·은수사.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 돌탑 마이산 탑사·은수사 


우리나라에서 땅의 기운이 가장 드센 곳 중 한곳이 전북 진안의 마이산입니다. 진안의 마이산은 보기부터 독특하게 생겼습니다. 큰 바위봉우리 두 개가 땅에서 박차고 올라온 게 언 듯 보면 꼭 말의 귀를 닮아 보이고 그래서인지 조선 태종은 ‘말의 귀를 닮았다’며 마이산이라 불렸던 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마이산 탑사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8

마이산 탑사 전화:063-433-0012


2017/04/15 - (진안여행)마이산 고금당 나옹암. 마이산 전망 일번지 고금당 나옹암을 찾아가다.

2016/04/02 - (전북여행/진안여행)진안 천반산 산행. 천반산의 죽도는 기축옥사를 피해 정여립이 몸을 숨겼던 곳입니다. 정여립 모반 사건의 역사를 추적하는 천반산 죽도 산행.

2011/06/27 - (전북여행/진안여행)진안 명도봉 산행. 오고가는 것은 구름뿐, 햇빛도 반나절밖에 못보는 희안한 계곡을 아시나요-진안 명도봉


 

 

그러나 마이산은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으로 불렸다가 다시 고려 시대에 용출산이 되었고 고려말 이성계가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와 남원의 운봉 황산벌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을 찾았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하늘로부터 나라를 다스릴 권한인 금척을 받고 조선왕조 창업을 실천합니다. 이곳 마이산을 ‘금척천명지(金尺天命地)’라 하는 이유이며 그는 금척을 받고 속금산이라 이름했는데 이는 “선인에게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 거 같다”란 뜻입니다.

 

 마이산 탑사

 

 

마이산은 말의 귀를 닮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이외에도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쌓을 수 없다는 ‘불가사의’한 탑이 있습니다. 1885년 고종 25년에 임실에서 출생한 이갑용이 산의 기운이 하늘을 찌른다는 마이산을 수행처로 정하면서 입산하여 30여 년 동안 108개의 돌탑을 쌓았습니다.

 

 

현재에는 80여 기의 돌탑만이 남아 있으며 천지탑, 오행탑, 33신장군탑, 중앙탑, 일광탑, 월광탑, 약사탑 등 음양오행의 이치를 적용하여 정교하게 쌓았습니다. 탑 중에서도 대웅전 뒤의 원뿔형인 13m 높이의 천지탑은 일명 부부탑이라고도 합니다.

 

 

음과 양을 상징하며 앞쪽에서 보면 오른쪽이 하늘이고 왼쪽은 땅을 뜻하며 만 3년 동안 공덕을 쌓아 완성한 탑입니다. 낮에는 돌을 날라 쌓다가 꼭 자정에는 하늘의 기운을 받아 윗돌과 양돌·음돌을 올렸으며 1926년에 천지탑을 완공했습니다.



 

 

동·서·남·북·중과 목·화·수·금·토의 오행을 상징하는 다섯 개 탑의 호위를 받는 천지탑 답게 한 몸을 이루던 몸체는 올라가다가 두 개의 탑으로 나누어지는 특이한 형태입니다. 이는 다정한 한 쌍의 부부와 같으며 암·수마이봉의 마이산을 닮은 듯 보입니다.

 

 

 

마이산 탑사 약수 

 

 

천지탑을 보호하는 33신장군탑은 불교에서 말하는 하늘인 33천의 우주 세계를 뜻합니다. 탑을 둘러싸고 자연형태의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지만 어떠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신비의 마이산 탑을 누군가는 말하기를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 신비한 돌탑”이라 했습니다.

 

나도산 

 

 

마이산에는 이 말고도 신비한 현상인 역고드름으로 유명합니다. 고드름은 알지만, 역고드름은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탑사의 기도단에 정화수를 떠놓는데 한겨울이면 얼어붙은 물그릇에 역고드름이 솟는 현상입니다.

 

 

 

 

이제 이곳을 지나면 천왕문으로 오르는 중간에 은수사가 있습니다. 장군봉같이 우뚝한 수마이봉 아래에 자리한 은수사는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다가 숙종 때 폐사되었으며 그 뒤 정명암의 작은 암자가 있었지만 퇴락하여 없어졌습니다.

 


마이산 은수사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6

마이산 은수사 전화:063-433-2502


 

 

 

1920년경에 와서 이주부라는 분이 은수사로 절을 세웠는데 “태조 이성계가 이곳의 물을 마셔보고 물이 은같이 맑다 하였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 한다고 합니다. 특히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 가지 있는데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와 마이산 줄사철군락(천연기념물 380호)입니다. 은수사 청실배나무는 약 18m 높이에 산돌배나무의 변종으로 장미과에 속하며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하고 증표로 씨앗을 심었는데 그게 청실배나무입니다.

 

 

특히 은수사의 역고드름은 더욱 유명하며 한겨울에 이곳 청실배나무 아래에다 물을 담은 그릇을 두면 고드름이 거꾸로 솟아오르는 보기 드문 현상을 보게 됩니다. 이성계가 물을 마셨다는 샘은 섬진강의 발원지를 뜻하는 비석이 서 있으며 탑사와 은수사 사이를 걸어오다 하늘을 보면 암마이봉의 표면이 손으로 뜯어낸 듯 한 구멍이 수없이 많이 보입니다. 이를 타포니라 합니다.

 

 청실배나무

 

마이산 은수사 

 

 수마이봉

 

 

 

 

마이산은 역암(자갈)으로 이루어졌는데 자갈과 바위가 석회질과 점토질 같은 기질에 혼합된 암석을 말하며 오랜 세월 동안 지하수나, 지면이 얼었다 녹거나, 동결쐐기 작용에 균열이 생기는 자연적인 변화에 자갈이나 바위가 암석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여러 개의 구멍이 생기고 이게 합쳐져 더 큰 구멍이 발달하는데 이를 타포니라 하며 특히 마이산의 남쪽 면에 많이 생성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마이산의 신비한 구멍인 타포니에 누가 어떻게 쌓았는지 알 수 없지만 여러 돌탑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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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여행/진안가볼만한곳)마이산 고금당 나옹암. 마이산 전망 일번지 고금당 나옹암을 찾아가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 하면 언뜻 생각나는 게 말의 두 귀를 닮은 바위봉우리와 사람의 힘으로 쌓았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탑사입니다. 이갑용 처사가 30년 동안 쌓았다는 돌탑은 “불가사의”라 합니다. 현재 탑사에는 돌탑이 80여 기가 있습니다.






고금당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탑사가 마이산도립공원을 대표한다면 광대봉의 고금당과 나옹암은 마이산의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또하나의 볼거리입니다. 그 때문에 마이산을 찾는 등산객은 반드시 고금당과 나옹암, 마이산과 탑사는 빼놓지 않고 보고 옵니다.

 

 

고금당은 탑영제 아래에 있는 금당사의 모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처음 금당사가 있었다는 곳이 현재 고금당 자리입니다. 바위 면에 절묘하게 자리한 고금당은 고려말의 고승이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의 수도처인 자연 석굴입니다.

 

 

나옹화상께서 수도했던 굴이라 하여 나옹암·나옹굴이라 부르며 현재에는 석굴 입구에 목탑의 형식을 갖춘 독특한 모양의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 외관은 고금당과 함께 누런 황금색을 입혀 규모는 작지만, 꼭 황금색 사원을 보는 느낌입니다.

 

 

 

 

 

 

고금당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왔던 보덕스님의 제자 무상스님과 스님을 따르던 금취가 650년인 백제 의자왕 10년에 금동사로 처음 창건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해서 혈암사로 불리다가 절을 옮기면서 옛터에 있던 절은 고금당이라하고 옮겨와 다시 세운 절은 금당사가 되었습니다.

 

 

 

 나옹암

 

 

현재 고금당의 법당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좌우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셨습니다. 고금당에서 바라보는 마이산의 경치는 가히 감탄사가 연이어 터질 정도로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옹화상이 도통했다는 굴이자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꿈속에서 금척을 받아 훗날 조선을 건국했던 개국의 성지가 마이산 나옹굴이며 ‘금척천명지(金尺天命地)’라 칭합니다.

 

 

 

 

한, 동학농민의 녹두장군 전봉준 딸도 이곳 나옹굴에서 10여 년 동안 숨어 지냈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호남최초의 민중항쟁인 항일의병결사 창의동맹이 처음 시작되었던 애국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고금당 

 

 

어느날 이성계는 꿈속에서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고 깨어납니다. 그 후에 아지발도가 이끈 왜구와 남원의 운봉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마이산을 보고 이성계는 얼마 전 꿈에 금척을 받았던 곳과 주변 모습이 똑같았기에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이성계는 땅에서 솟았다는 용출산을 “선인에게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거 같다”하여 속금산(束金山)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성계의 성씨인 이(李)자가 나무목(木)이 있는 목성이라 금(金)성 과는 상극에 해당하여 “금의 기운을 묶어둔다”는 뜻이라 합니다. 그 뒤에 태종이 이 산을 보고 말의 귀와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한 게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성계의 전설이 남아 있는 천하절경 고금당과 나옹암을 가는 길은 마이산 남부 매표소를 지나 밀집한 상가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600m 거리에 2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룡대 전망대에서  본 나옹암과 고금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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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휴게소의 마이산 전망대 관광객들이 들러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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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과 똑 같은 모습으로 만든 조형물 뒤로 실제 마이산과 모습을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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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를 알리는 안내판과 팔각정자안에서 마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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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귀를 쫑긋세아  말의 귀를 닮았다는 마이산은 암마이와 숫마이로 나누어져 두개의 독립봉으로 이우어져 있다

요즘 국내의 고속도로 사정은 사통발달로 뚫여 일일생활권을 넘어 반나절이면 목적지까지 도달을 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을 하고 있어 더욱 편하게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다보면 꼭 한번은 들러보는 곳이 있다. 휴식을 위해 또는 식사를 위해 찾게 되는 휴게소가 음식의 맛을 둘째치고라도 이제는 쉬는 기능을 넘어 최고의 전망대에 않아 오고가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남해고속도로상의 남강휴게소는 주위의 방어산과 남강의 잔잔한 물흐름으로 많은 관광객이 머물고 대진통영고속도로상의 덕유산 휴게소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덕유산은 보이지 않는 먹통 휴게소이며 함양휴게소는 지리산의 고장답게 휴게소 건물 옥상에서 멀리 있는지리산을 산세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아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 휴게소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곳이 생겼다. 최근 개통된 장수~익산간 고속도로로 아직은 찾는이가 없어 한가롭다 못해 지나가는 차량을 보기가 힘들 것 같은 한적한 고속도로상에 진안휴게소가 상하 설치되어 있다.
 진안하면 마이산이 먼저 떠오르는 만큼 그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곳에 마이산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생겨 지나가는 차량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휴게소 들머리입구에 전망대 가는 길과 휴게소 건물 좌측으로 팔각정자에서 보는 마이산과 똑같이 만든 조형물을 번갈아 보며 암마이와 숫마이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또  보이는 그대로 마이산과 일치하도록 만들어 놓아 보는 맛이 그 만큼 좋다. 한번쯤 지나가는 길이면 들러 볼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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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건물 좌측의 팔각전망대에서 본 마이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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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와 마이산


마이산에 대해서....
마이산은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어며 신라때는 서다산, 고려때는 솟아 올랐다하여 용출산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속금산으로 불였다. 조선 태종이 지나다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으로 부르게 되었어며 시멘트로 어겐 것 처럼 타포니 지형을 이루고 있다.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여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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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배의 돛과 같다해서 돛대봉, 여름에는 용의 뿔을 의미하는 용각봉,  가을엔 마이산,겨울에는 붓처럼 보여 문필봉으로도 불리며, 먼  옛날 산신부부가 이곳에서 두 자녀와 함께 살다가 하늘로 되돌아갈 때가 됐다. 남신이 자신들의 승천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되니 밤에 떠나자고 하자 여신은 밤에는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한 아낙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질러 승천에 실패하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바위산을 이루었으며, 이때 화가 난 남신이 여신으로부터 아이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숫마이봉은 작은 암봉 두개를, 암마이봉은 자세를 돌려 않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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