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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종소리가 난다는 만어사 어산불영 영남알프스둘레길14코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종소리가 난다는 만어사 어산불영 영남알프스둘레길14코스

   

밀양시 삼랑진읍의 뒷산 격인 만어산(萬漁山·699.6m). 무심코 보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산을 영남알프스 둘레길 구간에 포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이미 지난해 둘레길 개척 기획단계에서부터 본지 개척단이 깊이 고민했던 사안이다. 만어산을 포함하지 않고 혜산서원과 고택들이 즐비한 전통마을인 산외면 다죽리에서 칠탄정과 칠산정을 거쳐 단장면 금곡리로 진행한 후 밀양호 방향으로 갈 것인지, 만어산을 경유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내부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였던 탓에 각계의 자문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논란 끝에 얻은 결론은 '반드시 만어산을 경유하자'는 것이었다. 도대체 만어산이 어떤 산이기에 개척단이 이미 기획단계 때부터 고민해야만 했을까.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경남 밀양 만어산을 상징하는 만어사 앞 너덜겅인 '어산불영' 사잇길을 지나고 있다. 동해 용왕 아들을 따라 나선 만 마리의 물고기가 바위로 변신해 너덜지대를 이뤘다는 전설이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해 온다.


주지하다시피 만어산 정상 바로 아래에 만어사(萬漁寺)라는 천년고찰이 있다. 그렇다면 만어사는 왜 중요한가. 그곳에는 무봉사 태극나비, 땀 흘리는 표충비, 얼음골과 함께 '밀양 4대 신비'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만어사 경석(磬石)으로 이뤄진 너덜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돌로 두드리면 마치 종을 두드릴 때와 같은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고 해서 경석, 또는 종석(鐘石)이라고 하는 이 돌무지는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그뿐인가. 이 너덜지대를 다른 말로 '어산불영(漁山佛影)'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기원과 관련해 '만 마리의 물고기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을 만큼 깊은 내력이 스며 있다. 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만어산이다.

조금만 둘러 가는 수고를 감수한다면 '만어사를 빠트리고 갔다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둘레길을 표방하는 개척단의 취지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기꺼이 만어산으로 올랐다. 만어산을 경유하면 '밀양 3대 오지마을' 중 한 곳인 감물리(甘勿理)까지 자연스럽게 둘레길 코스에 포함시킬 수 있다.


◇ 만어산 8부 능선 휘돌아 감물리까지 14.5㎞

   
만어령 오르는 길가에 산딸기가 지천이다.

제13코스의 종착점인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 구미교에서 출발, 법흥리 만어령 만어사 감물고개를 거쳐 감물리 용소마을에서 마무리한다. 총거리는 14.5㎞,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20분 걸린다. 휴식과 만어사 관람 등을 포함하면 5시간30분가량 잡으면 된다. 코스 대부분이 임도여서 걷는 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만어산 8부 능선에 있는 만어령까지 가는 오르막에서는 땀을 좀 쏟아야 한다는 것만 유념하자.

출발점인 구미교 앞 구미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칠탄산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넌 후 하천을 끼고 좌회전한다. 왼쪽에 하천을 끼고 7분쯤 가면 동편마을 갈림길(구미2길 32번지 앞). 이곳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1분만 가면 컨테이너박스에 '구미광암쉼터'라는 현판이 걸린 가건물 앞 갈림길. 다시 왼쪽 길을 택한다.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 조금만 가다가 비포장 강둑길로 직진한다. 대추나무밭과 밤나무밭이 잇따라 펼쳐지고 강둑을 좀 더 따르다가 왼쪽으로 꺾어 밤나무밭 사이로 진행하면 시멘트포장길이 나타나고 곧바로 아스팔트도로에 닿는다. 밀양 단장면 금곡리에서 미촌리 안법리 감물리를 거쳐 삼랑진읍까지 연결되는 도로다. 일단 우측으로 꺾어 아스팔트길을 따른다. 10분 후 안법리 보건진료소 앞 갈림길에서 우측 법흥사지 방향으로 접어든다. 정면 멀리 가장 높은 봉우리가 만어산, 오른쪽 2시 방향으로 가깝게 보이는 산은 칠탄산이다.


◇ 대부분 임도 구간…만어령 오르며 땀 쏟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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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분 후 길 오른쪽에 당산나무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밀양 법흥상원놀이가 태생한 마을인 법흥리 법흥마을 문화회관 앞을 지난다. 회관 앞에 법흥상원놀이 전수관도 아담하게 지어져 있다. 정월 대보름날 행해졌던 상원놀이는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했던 대보름제에서 기원한 흥겨운 놀이마당이다.

법흥마을을 지나 좀 더 골짜기 안으로 길을 따르면 사지마을회관. 이곳에서 왼쪽 길을 택해 아늑한 산골마을 골목으로 올라서면 작은 사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한다. 좀 더 가다 보면 또 한 번의 대추나무 앞 삼거리를 만난다. 이번에는 만어산 중계탑을 보면서 왼쪽으로 일단 길을 잡는다. 3분 후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우측 전신주에 '만어사'라는 표시가 된 방향으로 민가를 보면서 오른쪽 길을 택한다. 여기서부터는 갈림길에서 고민할 필요 없이 만어령까지 임도만 따르면 된다. 20여 분 후 작은 저수지를 지난다. 길을 따라 오르는 내내 "어떻게 이런 산골에 논이 있고 모내기를 했을까"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바로 이 저수지를 보는 순간 궁금증이 말끔히 씻어진다.


◇ 삼랑진읍 감싸는 낙동강 큰 물길 바라봬

   
만어사로 가는 길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시원하다.

저수지를 지나면 마지막 민가를 통과하고 이후에는 만어령까지 줄곧 갈지(之)자가 여러 개 포개진 형태로 뚫린 임도를 따르게 된다. 중간에 너덜겅을 통과하는 등 40분쯤 쉬엄쉬엄 오르면 만어령 고갯마루다. 일단 왼쪽으로 50m쯤 가면 만어산 정상으로 오르는 직진 능선길과 우측 내리막길로 나뉘는데, 만어사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내리막을 택해야 한다. 5분 후 만어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만어사로 접어드는 길. 한적한 이 길에 걸린 현수막 한 장이 눈길을 끈다. '강은 우리의 생명, 4대강 사업 즉각 중단하라- 대한불교조계종 환경위원회'.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하는 현수막이다. 이윽고 절집 아래 소위 '어산불영'이라고 불리는 드넓은 너덜강을 품고 있는 만어사 법당 앞에 선다. 검정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아담한 절 만어사. '삼국유사'에는 1181년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며 대웅전 앞 오른쪽에는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원래의 상륜부는 없어지고 후대 사람들이 상륜부만 따로 올렸다고 한다.


   

2층 누각인 미륵전에는 불상이 따로 없고 높이 5m가량의 뾰족한 거석을 미륵불로 모시고 있다. 이 미륵돌과 절 앞의 너덜지대인 '어산불영'과 관련된 전설은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전해온다. '만어운해(萬漁雲海)'는 '밀양8경'에 속하는 절경으로 꼽힌다.

하산길은 일단 만 마리의 물고기가 변했다는 '어산불영' 너덜지대를 가로질러 가야 한다. 어산불영을 통과한 후 오솔길을 따르면 곧바로 임도. 왼쪽으로 임도를 따른다. 임도길 중간에서 우측 아래를 보면 삼랑진읍과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눈에 들어온다. 선교종 부도공원을 지나 20분쯤 가면 좌측의 만어산과 우측의 구천산을 연결하는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고개를 지나는데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내리막임도 좌측으로 시야가 탁 트이는 곳에서 바라보면 감물저수지와 깨밭고개, 그 너머 멀리 향로봉과 향로산이 보인다. 20분 후 아스팔트도로를 만나는데 감물고개다. 오른쪽으로 가면 삼랑진읍, 왼쪽은 감물리다. 왼쪽으로 15분쯤 내려서면 아스팔트 도로 중간에서 우측 마을로 내려서는 시멘트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른다. 감물리 용소마을이다. 주변에 빼곡한 다랑이논이 밀양 3대 오지 중 한 곳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사진설명 : 유명 도예가인 무성 정재헌 씨가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동편마을에 있는 자신의 작업공간 '우해요(牛海窯) '에서 전통 도자기가마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2006년 벡스코에서 열린 한국차(茶)대전 대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정 씨는 10여년 전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상여를 함께 메거나 마을 잔치 준비를 함께 하는 등 마을 일에 적극 동참, 반장도 역임했다는 그는 나그네에게 기꺼이 차 한 잔 내 놓을 줄 아는 고마운 '시골 사람'이다. >



# 두드리면 쇳소리 내는 돌 찾는 재미, 만어사에 얽힌 두가지 전설도 신기

   

밀양 지역은 삼국시대를 전후한 당시 가야와 신라의 치열한 영토 쟁탈전이 치러진 곳으로 알려져있다. 당초에는 가야의 세력권에 들어 있었지만 신라가 확장 정책을 펼치면서 피할 수 없는 격전이 치러진 곳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 해석일 테다. 물론 큰 강인 낙동강을 끼고 있는 지역이다 보니 가야와 신라 모두 포기할 수 없는 땅이었을 것이다. 밀양 땅에서도 삼랑진읍 쪽에 가까운 만어산의 경우도 원래 가야의 영토라고 봐야 하겠다. 이 같은 추론은 고려 중기 일연 선사가 저술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만어사 창건 및 어산불영에 관한 전설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가야국의 수로왕 시절, 가야국의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살던 독룡(毒龍)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와 우박을 일으키자 4년 동안 흉년이 들었고 백성의 생활은 피폐했다. 이에 수로왕이 인도에 있던 부처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수로왕의 간절한 뜻을 알아차리고 6명의 비구와 1만 명의 천인을 데리고 와서 독룡과 나찰녀를 굴복시키고 가르침을 내림으로써 평온을 되찾았다. 수로왕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곳에 절을 지었고, 그것이 곧 만어사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데려온 1만 명의 천인은 물고기로 변해 절 앞의 너덜지대인 어산불영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만어산과 만어사가 원래 가야 땅이었음을 유추케 하는 대목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인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는 삼국유사와 다른 전설이 기록돼 있는데 잠시 살펴보자. 이에 따르면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은 자신의 목숨이 다한 것을 알고 가야 땅 무척산에 살던 선승을 찾아가 새로 살아갈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스님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인연 닿는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날 때 수만 마리의 고기떼가 뒤를 따랐으며 그가 멈춰 쉰 곳이 바로 이곳 만어사터다. 왕자는 이곳에서 큰 미륵돌로 변했고 수만 마리의 고기떼도 바위로 변했다. 현재 만어사 미륵전에는 불상 대신 높이 5m짜리 큰 돌이 모셔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왕자가 변한 미륵돌이며 미륵부처님으로 모셔진다. 또 뜰 앞의 어산불영은 고기떼가 변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만어산과 만어사의 이름 또한 이 같은 전설에서 연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가지 상이한 기록으로 볼 때 삼국유사에 전하는 1181년이라는 만어사 창건 연대가 과연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쇳소리를 내는 경석(또는 종석)이 하도 신기해서 조선 세종 때 이 돌들을 가져다가 악기로 만들려고 했다가 포기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신비한 물체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산불영의 모든 돌이 쇳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처음 방문한 사람은 쉽게 찾기가 어렵다. 차근차근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경쾌한 쇳소리를 내는 돌을 발견하게 된다. 참고로 대웅전에서 우측 계단을 내려서서 미륵전으로 가다가 미륵전 못 미친 곳 왼쪽에 몇 개의 큰 바위가 있는데 처마처럼 생긴 바위 아래 틈의 바위를 작은 돌로 두드려 보면 쇳소리를 들을 수 있다.





# 떠나기 전에

- 법흥상원놀이… 평화 염원하는 대보름 축제

   

법흥리에서 탄생한 '법흥상원놀이(사진)'에서 '상원'은 정월 대보름을 일컫는 말. 그래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던 놀이'를 상원놀이라고 말한다. 옛날에 당산나무에서 곡소리가 들려오고, 마을에 나쁜 일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당집을 세우고 대보름날 제를 지내게 됐고 그 이후 평안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모두 세 마당으로 나뉘는 데 첫 마당은 마을과 집안의 평안과 풍년을 비는 당산제를 지내고, 각 집을 돌며 지신밟기를 한다. 둘째 마당은 놀이마당으로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를 하고, 다리에 병이 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다리밟기를 한다. 뒷마당에서는 달맞이를 하면서 달집을 태워 마을의 모든 재앙이 불타 없어지고 새 복이 오기를 빈다. 모든 마당이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신명 나는 놀이판을 벌인다.

답사를 끝내고 출출함을 달래 줄 음식점 한 곳을 소개한다. 단장천과 산내천이 합쳐지는 교통 요충지인 산외면 금곡리 단산마을의 '두꺼비 식육 식당(055-352-5101)'은 된장삼겹살과 김치찌개가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묵은지를 듬뿍 넣어 끓여 낸 김치찌개는 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소문을 듣고 부산 대구 등에서도 손님이 올 정도. 게다가 반찬으로 나오는 햇김치와 직접 키워 싱싱한 야채, 그리고 쌈장의 맛도 남다르다.




# 교통편

- 밀양터미널서 감물리행 버스 하루 5회 운행

부산발 밀양행 무궁화호는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 첫차가 출발한다. 이후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43분 소요된다. 요금은 3800원. 밀양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감물리행 새마을버스를 이용한다.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 8시10분, 11시50분 등 하루 5차례 출발한다. 미촌리 구미마을 버스 정류소에서 내리면 된다. 답사를 마친 후 감물리 버스 정류소에서는 밀양행 새마을버스가 오후 1시, 4시30분, 7시20분에 출발하니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이 버스들을 놓쳐 단장면 금곡리까지 2시간가량 걷거나 택시를 불러야 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24번 국도 울산 언양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금곡교차로에서 단장 표충사 방향(1077번 지방도) 표지판을 보고 오른쪽으로 내린 후 금곡교를 건너자마자 삼거리에서 오른쪽 감물 방향으로 진입한다. 미촌리 사촌마을 삼거리에서 구미마을 쪽으로 우회전, 400m쯤 가면 구미교 앞 구미마을 버스정류소에 닿는다. 답사 후 차량 회수를 하려면 감물리에서 버스를 타고 나와 사촌마을에서 하차, 구미마을까지 10분쯤 걸어야 한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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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다랑이 논에서 만난 순박한 농부가 부르네요. "더울 텐데 저기 당산나무 그늘에서 좀 쉬었다 가오"



감물리 다랑이 논의 모습으로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논과 논 사잇길을 따라 뱀처럼 용소마을로 이어진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다랑이 논에서 만난 순박한 농부가 부르네요. "더울 텐데 저기 당산나무 그늘에서 좀 쉬었다 가오"




   

투명하던 봄이 바람을 타고 흐른 곳에 짙은 여름이 서성이고 있다. 대지도 짙푸르고 공기도 끈적인다. 한 걸음 내딛기도, 몸을 옴짝달싹하기도 힘겨운 계절. 하물며 하루 온종일 길을 걷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 그러나 이 계절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왕성한 생명력이 발휘되는 시기다. 이마와 등줄기에 흐르는 땀 방울을 이리 닦고 저리 훔치며 걷다보면 그 왕성한 생명의 기운이 뿜어내는 '자연의 교향곡'에 흠뻑 취하며 어느새 '여름 길 걷기'의 참맛을 알게 된다. 작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만 들어도 시원한 쾌감을 느낀다. 고갯마루 넘어설 때 귓불에 흐른 땀을 훔쳐주는 바람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문득 도저히 사람들이 모여 살기 힘들 것 같은 오지 마을을 지난다. 그 산간 오지 작은 들판의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굽혀진 허리 이리저리 비틀어가며 바쁜 일손 놀리고 있는 농부라도 만난다면 슬그머니 미안해지는 마음. 그것 또한 둘레꾼 누구나 느끼는 인지상정일 테고….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일손을 멈춘 농부들이 "여보시오, 나그네 양반. 더울 텐데 저기 당산나무 그늘에서 좀 쉬었다 가오"라며 새참 보자기에서 꺼낸 막걸리 한 잔 권할 요량이면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 '밀양 3대 오지' 감물리 출발 17.5㎞ 구간

   
천지봉 구천산 만어산 석이덤방우산 등에 둘러 싸인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는 영남알프스의 서남쪽 끝 오지 마을이다. 계단을 이루는 다랑이논이 정겹고, 인심 좋은 사람들이 산다. 개척단은 이 곳의 3개 자연마을을 거치는 둘레길을 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5코스는 경남 밀양의 대표적인 산간 오지 마을들을 지나가는 길이다. 인정 많은 촌부들과 작은 암자의 공양간 보살님으로부터 감동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천에 널린 산딸기. 붉다 못해 검게 익어가는 산딸기의 유혹은 여름 길 걷기를 절정으로 이끈다.

출발지는 '밀양 3대 산간 오지 마을' 중 하나인 단장면 감물리 용소마을 회관 앞이다. 깨밭고개, 달똥고개 등 해발 400~500m대의 고갯마루 2개를 넘어야 하는 이번 코스는 종착지인 단장면 사연리 동화전마을까지 총거리 17.5㎞에 달한다. 걷는 시간만 5시간, 휴식을 합치면 6시간30분은 잡아야 한다. 여름철 당일 걷기 코스치고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 그러나 쉬엄쉬엄 걸으면 못 갈 거리도 아니다. 탈수 현상을 방지하려면 물은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데 다행히 곳곳에 식수 보충할 곳이 있으니 참고로 하자.

감물리는 용소마을 중리마을 구기마을 등 3개 마을로 이뤄진 해발 300m급 산간 마을이다. 옛날부터 맑고 달콤한 샘물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달 감(甘)자를 쓴다. 용소마을은 그중 제일 남쪽 산기슭에 있는데 옛날에 작은 늪에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용소마을과 중리마을 사이 들판은 아담한 다랑이논이다. 개척단은 눈앞에 보이는 다랑이논 사잇길로 올랐다가 왼쪽으로 돌아 내려설 계획이다. 이렇게 길을 잇는 것은 좀처럼 방문하기 힘든 오지 마을인 감물리에 이왕 온 걸음이니 속속들이 밟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용소마을을 출발하면 만나는 돌담으로 돌맹이가 지멋대로 쌓아 놓은 시골의 담장이다. 그 위를 덮고 있는 담쟁이는 푸르름을 더하며 운치있는 모습으로 시골 돌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소눌 노상직 선생이 1913년 건립한 자암서당.

일단 용소마을회관에서 남쪽 당고개 방향으로 200m쯤 가다가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다랑이논 사이의 조그마한 밭에서 깻잎을 따던 주민 박수화(66) 씨가 "좀 쉬었다 가오. 저기 남서쪽의 저 산은 꼬깔봉이고 동쪽의 저 산은 석이버섯이 많이 난다고 석이덤방우산이라 하고, 감물분교터 뒤 야트막한 산은 연화봉이라 하고…. 단장면이 넓어서 옛날부터 양산보다 세 평 좁다고 했지"라며 인정스럽게 지형 설명을 해 준다. 당집과 당산나무 앞을 지난 후 계속 길을 이어가면 다랑이논 사이를 통과해 중리마을회관을 지난다. 왼쪽으로 꺾어 내리막 길을 따라 7분쯤 가면 감물분교터와 감물리 버스정류소를 잇따라 지나고 곧바로 구기마을 입구 갈림길이다. 마을 표지석을 보면서 우측 길로 진입한다. 왼쪽에는 오래된 옛 방앗간과 감물저수지가 있다. 감물리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저수지가 있는 것을 두고 "못은 우리 동네에 있는데 그 이득은 아랫마을인 안법리와 미촌리 사람들이 본다"는 푸념을 한다.

당산나무와 당집이 있는 용소마을 입구로 예전에는 이길로 용소마을 당고개를 넘어 삼랑진으로 길이 이어 졌을 것이다. 용소마을 주민인 박수화씨가 마을의 지명과 유래를 둘레길 취재팀에게 들려주고 있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다랑이 논에서 만난 순박한 농부가 부르네요. "더울 텐데 저기 당산나무 그늘에서 좀 쉬었다 가오"






■ 다랑이논 지나 400~500m대 고개 2곳 넘어


뒤돌아본 용소마을의 모습과 그 뒤로 삼랑진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용소마을에서는 감물고개, 용소고개, 큰고개로 불리며 삼랑진 우곡리와 영남알프스 둘레길인 14코스 만어사로 이어진다.

10여 분쯤 가면 구기마을 경로당 못미친 갈림길에서 우측 길을 택해 오른다. 차량 통행도 가능할 것 같은 임도는 깨밭고개까지 이리 꺾고 저리 틀며 오른다. 길가에는 한창 물오른 산딸기가 지천이다. 40분쯤 부지런히 올라야 깨밭고개에 닿는데 앞뒤로 조망이 탁 트인 곳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고갯마루에 커다란 나무가 있어 쉼터 또는 식사 자리로 삼으면 좋겠다. 감물리 사람들이 단장면 소재지로 오가던 주요 길목이다. 옛날에 고개 아래에 깨밭이 있었다고 이름 붙여진 깨밭고개에서 왼쪽은 천지봉, 오른쪽은 석이덤방우산을 지나 금오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로 연결된다.

깨밭고개로 넘어서면 만나는 시원한 숲 그늘의 임도 길로 지소마을 까지 이어진다

이어지는 직진 내리막 임도 역시 이리저리 꺾어지면서 무릉리 지시동 경로당까지 이어진다. 35분쯤 걸린다. 무릉리는 '무릉도원'처럼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시동경로당 앞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비포장길로 들어서면 대추밭 사잇길로 이어진다. 그 끝에서 다시 왼쪽으로 살짝 틀었다가 우측으로 길을 이어가면 무릉동 경로당. 아스팔트 도로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무릉교회를 지나고 곧바로 버스정류장이다. 왼쪽 20m 지점의 무릉교를 건넌다. 국전천 또는 용포천으로 불리는 이 하천 변 갈대가 유명한데 옛날에는 이 갈대를 잘라서 여러가지 생필품을 만들어 밀양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300m쯤 가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초반 우국지사로 이름을 높인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4~1931년) 선생이 망명지인 만주에서 돌아와 후진양성을 위해 1913년 설립한 자암서당(경남문화재자료 제194호)을 지난다. 수도꼭지가 있어서 빈 물통을 채울 수 있다.

중리마을 앞 소류지의 모습으로 중리마을과 그 뒤를 감싸는 석이덤산의 능선이 그림 같다.

서당 앞에서 보면 가야 할 방향의 수리덤산 암벽이 훤칠하다. 보문사까지는 조금 힘겨운 오르막 임도길이지만 중간 중간 만나는 예쁜 전원주택들을 보면서 힘을 낸다. 20여 분 후 보문사 입구에 배낭을 벗어놓고 아담하지만 운치있는 절집에 들러 샘물에서 마른 목을 적신다.

■ 마을회관·자암서당·보문사에서 식수 보충


감물저수지와 구기마을의 멋스러운 소나무가 둘레길의 아름다움을 더욱 업 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코스 막바지 보풀잘룩이에서 사연리로 내려서는 길.

보문사 입구에서 계속 길을 이어가면 새로 짓는 절집 아래에서 우측으로 휘어진다. 곧바로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들어서서 산딸기의 유혹을 애써 외면하며 5분쯤 가면 임도가 지능선을 넘어 왼쪽으로 휘어지는 곳에 닿는다. 이곳에서 시멘트포장 임도를 버리고 왼쪽 능선으로 곧장 치고 오르면 수풀이 우거지지만 30m만 가면 옛 등산로가 나타난다. 달똥고개로 오르는 길이다. 25분가량 우거진 숲속 길을 따라 오르면 달똥고개. 옛날 산에 나무가 없던 시절 무릉리에서 보면 이 고개 너머로 둥근 달이 떠오른 모습이 예뻐서 달똥고개라 부르게 됐다. 일종의 사거리인 이곳에서 다시 왼쪽 오르막으로 100m가량 가다보면 우측으로 희미한 길이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희미한 길을 따라 10분쯤 가면 보풀잘루기고개다. 왼쪽은 수리덤산, 오른쪽은 취경산 수연산(뇌암산) 벼락덤이로 가는 방향인데 하산 하려면 정면 오른쪽 1시 방향으로 비스듬히 내려가는 길을 타야 한다. 5분 후 학성 이씨 김해 김씨 합장묘에서 왼쪽 10시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을 따르면 6분 후 임도에 닿는다. 단장면 사연리 성지골 상류다. 왼쪽으로 50분쯤 내려서면 동화마을회관을 지나고 1077번 지방도의 동화전마을 표지석에 닿는다. 왼쪽으로 150m가량 가면 사연마을 표지석과 '동화 버스정류소'에 닿아 코스를 마무리한다. 사연마을 뒤편 북쪽으로 정각산이 우뚝하다.



◆ 둘레길 이야기-수리덤산 보문사


마당바위 선바위 흔들바위의 모습으로 조용한 사찰의 분위를 나타낸다. 그 앞으로 도연명의 무릉도원 같은 무릉리의 마을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 인자한 노스님 머무는 인심·조망 좋은 도량

   
보문사 흔들바위.

둘레길을 걷다보면 많은 사찰과 암자를 거치게 된다. 그렇다고 소위 '천년고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리 잡은 지 100년도 안 된 암자라 하더라도 절집의 분위기가 그윽하고 조망도 빼어나며 스님을 비롯한 관계 보살님들의 인상 또한 선하디선한 곳도 많다. 이번 제15코스에서 방문하게 되는 밀양시 단장면 무릉리 보문사(普門寺) 또한 그런 암자 중 하나다.

올해로 창건 68년째를 맞은, 사찰의 나이로 보면 아직 젊다고 해야 할 보문사에는 몇 가지 매력이 있다. 우선은 수리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보니, 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무릉리 마을의 풍광이 시원스럽다. 옛날 밀양 땅에서 관직을 거쳤던 선비나 학자들이 중국 동진과 송나라 문장가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상상 속 이상향인 '무릉도원'을 닮았다고 이름 붙인 동네를 바라보는 것. 결국 절이 '무릉도원'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 절에는 4개의 바위가 있는데 저마다의 매력을 품고 있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입암(일명 선바위)은 사람의 얼굴 모습을 닮아 있어 신비스럽고, 그 앞의 높이 1.5m 남짓한 '흔들바위'는 혼자서 밀어도 끄덕거릴 정도로 절묘한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어 새로운 명물이 되고 있다. 또 흔들바위 아래의 배바위, 요사채 뒤 50m 지점에 있는 마당바위도 볼거리다. 특히 높이 10m가량의 깎아지른 절벽 윗면이 평편하다고 이름 붙여진 마당바위는 오랜 옛날부터 스님과 도인들의 수도장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보문사로 올라가는 황톳집과 돌담의 모습으로 지붕만 손질하면 옛 모습 그대로의 우리내 집인 것 같다.

   
보문사 주지 신행 스님.

보문사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웅전 계단 아래의 시원하고 달콤한 샘물과 절집 사람들의 훈훈한 인정이다. 샘물은 수리덤 절벽 아래에서 스며 나오는 탓인지 그 맛이 일품이다. 세속 나이로 79세, 법랍 56세인 노스님인 주지 신행 스님은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하루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손수 괭이와 호미 등을 들고 절 뒤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신행 스님의 소탈한 성품 못잖게 공양간 보살님 또한 인정스럽기 이를 데 없다. 어쩌다 들린 나그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시원한 수박과 단술, 떡을 내놓으며 "그저 편안하게 쉬었다가 가시라"고 웃음 짓는다. 천년고찰이라는 이름표만 믿고 어쩐지 위압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일부 사찰에 비해 훨씬 더 맘 편하게 들릴 수 있는 도량이 바로 보문사다.


지소마을 뒤 밤밭에서 바라본 무릉리로 소류지 밑 둘레길인 농로길을 따라 이어진다.
◆ 교통편

- 밀양터미널서 감물리행 버스 하루 5회 운행

계단식 논인 다랭이논의 모습으로 감물리에서 볼 수 있다.

밀양행 무궁화호는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부터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소요시간은 43분이다. 3800원. 밀양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감물리행 새마을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 8시10분, 11시50분 등 하루 5차례 출발한다. 약 30분 소요. 용소마을회관은 감물리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야 한다. 답사 후 동화에서 밀양행 버스가 20~40분 간격으로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 막차는 오후 8시10분.

자가용의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24번 국도 표충사 얼음골 언양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금곡교차로에서 표충사 방향으로 빠져나가 금곡교를 지나자마자 오른쪽 감물리 방향으로 진입, 계속 직진하면 감물리에 닿는다. 감물저수지 지나 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 길로 200m쯤 가다가 아스팔트도로를 버리고 왼쪽의 시멘트길로 들어서면 용소마을회관 앞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답사 후 차량 회수를 하려면 동화전에서 버스를 타고 금곡리까지 간 후 밀양발 감물리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금곡리에서 오후 3시50분과 6시50분(막차)쯤 감물리행 버스를 탈 수 있다.


노곡마을을 건너는 무릉교이며 이곳에서 300m를 올라가면 만주에서 돌아온 노상직이 자암서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던 곳이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국제신문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모습과 깨밭고개의 노거수이다. 감물리 주민들은 단장면 사무소로 가기위해서는 꼭 이고개를 넘어 갔다한다.



보문사로 올라가는 길로 옛집과 요즘 새로 지은 별장 같은 집이 같이 공존하는 산골 마을이다. 

보문사에서 바라본 무릉이의 모습으로 올라온 높이를 짐작 할 수 있다.

보문사에서 달똥고개를 거쳐 동화전으로 가기위해서는 보풀잘루기를 넘어가야 한다. 수리덤과 취경산 사잇의 고개로 이고개를 넘어 성지골로 내려선다. 둘레길에서 지천으로 만나는 산딸기로 이맘때는 간식으로도 훌륭하다.

성지골을 내려가는 임도길로 황토에 너와를 올린 특이한 집을 만난다. 옛날에 성지란 감여가가 살았다는 성지골.

도착마을인 사연리 동화전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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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배낭을 메고 떠나 본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도심의 한복판에서 일상 탈출을 꿈꾸며 살아가는 요즘에는 아무 생각 없이 떠난다는 것에 묘한 매력을 느껴 본다.
그곳이 어디 던 지 간 에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의 탈출, 탈출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이번 주에는 어디로 탈출을 해 볼까. 내 몸 안의 또 다른 내가 내게 거든다.

‘밀양의 감물 리가 어떤냐’ 고.

감물리,

좋은 곳이지,

물이 달다는 그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나는게 아닌지

그럼 감물리를 가볼까.

가기전에 조금은 그곳을 알아야 하니까. 공부나 해 볼까.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로 구기 중촌 용소 점촌 당고개, 대뱅이마을을 거느리고 있다.
골이 깊고 산이 많은 곳이며 특징은 감물리를 감싸는 모습이 연화형으로 연꽃이 감싸는 형국이다.
그래서 인지 감물리에 들어서면 백두산의 분화구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곳에도 천지와 같은 감물 저수지가 자리하고 구기 마을 뒷산을 천지봉 또는 천제봉으로 기우제를 지낸 산으로 감물리를 대표하고 있다

감물리를 이야기 할때 따라 붙는 수식어가 또 있다.
밀양에서 고산마을 즉 오지마을로 통한다.
첫번째가 오치, 두 번째가 소월리(현 백마산 바드리), 세 번째가 감물리로 밀양의 3대 오지에 속한다.
그래서 인지 이곳은 산상의 별구이다.
안법리에서 감물리를 오르는 길은 갑자기 고도를 높이면서 병주둥이 같은 입구를 들어서면 안쪽이 갑자기 넓어 지면서 감물리 마을이 훤히 들어난다. 그 만큼 안쪽이 넓은 분지형을 이룬다.
그리고 부산 인근에서는 그래도 작은 다랭이 논이 있는 곳이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감물리로 들어오고 나가는 길은 모두 네 곳으로 주 통행로가 북서쪽의 표충사 입구에서 올라온다.
또 한곳은 20~30년 전까지 교통이 불편했을 때 단장면 면사무소로 가기위해서 뻔질나게 다녔던 깨밭고개길이다.
나머지 두곳은 모두 삼랑진으로 넘어가는 길로 당고개와 감물고개로 많은 사람들이 넘어 다닌 눈물과 애환의 고개이다.
높은 마을 답게 여기서도 인구의 감소가 심각한 곳이였다.
살고 있는 주민 또한 많은 어려움을 격고 먹고 살기 위해 도회지로 모두 떠나버린 것이다.
몸에 상처가 나면 새 살이 돋듯이 근래에 와 전원마을을 찾는 도시민들에 의해 다시 주목 받는 곳이 되었다.
한 때는 먹고 살기 힘들어 떠났던 곳이 이제는 살기 위해서 들어오는 곳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감물리를 오르는 골짜기와 능선상의 곳곳을 보면 별장 같은 주택들을 수도 없이 보게 되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감물리저수지 위 삼거리에서 감물고개를 넘어가는 2차선 도로를 올라가면 U자형 커브길에 용소마을 가는 갈림길과 만난다.
직진형 왼쪽 길로 들어서자. 농로 같은 마을 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중리마을 가지 이어지는 계단식 다랑이 논이 펼쳐진다.
남해의 가천마을에는 비교 할 수 가 없지만 이곳의 다랑이 논은 편안함과 포근하면서 친근감을 주는 그런 곳이다.
그곳을 지나면 용소마을로 감물리에서는 가장큰 마을이지 싶다.
이마을 아래에 웅덩이가 있었는데 그곳에 살던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 회관을 지나면 사거리 갈림길이다. 직진은 당고개로 삼랑진의 안촌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당고개 만당에는 예전에 당이 있었다 하여 당고개로 불린다.
지금도 큰 당산나무가 당고개를 지키고 있으며 오고가는 나그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중리마을을 가기위해서는 왼쪽으로 다랑이 논 사잇길로 내려서야 한다.

논과 논 사이를 연결하는 농로길이 운치있는 길이다. 당집과 당산나무가 서 있는 곳을 지나 다랑논을 끼고 오르면 중리마을로 감물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뒤편으로는 깨밭고개에서 석이덤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아늑한 마을이다.
마을을 관통하는 계곡의 물소리가 암반의 골을 타고 시원하게 내려간다. 회관앞에서 돌아나간다.
옛 감물초등학교터로 내려 가면 용소마을에서 걸어 왔던 길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고깔봉, 감물고개, 구천산, 당고개하며 그 아래 자리잡은 마을과 다랑이논이 편안한 고향의 모습을 보여준다.

옛 감물초교 앞에는 구기마을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들어서면 깨밭고개 구기마을 방향이다. 좌측으로 옛 정미소 건물이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감물저수지가 만수위에 차 있다.
깨밭고개 오름길을 만나고 구기마을 회관 앞에서 왼쪽으로 틀어 감물저수지를 돌아내려 가면 오붓한 옛길이 기다리고 있다.
저수지 뒤로 둘러쳐진 산줄기하며 마을, 물에 반사되는 빛이 별천지에 와 있는 느낌이다.
저수지 둑 아래 대뱅이마을 갈림길로 비탈진 마을에 품질이 우수한 대밭이 있다하여 대밭마을이며 죽방,대뱅이로 불렀다.
지금은 죽봉으로도 부런다.
다음기회에 대뱅이마을을 가기로 하고 안법리로 내려가는 도로를 따라간다.

우측으로는 감물저수지에서 흘러 내린 물이 골짜기를 타고 내리는데 그 위세가 대단하다. 계곡 도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경치에 취해 슬렁슬렁 내려오면 어느새 안법보건소가 있는 삼거리길이다. 왼쪽으로 법산 사지마을 거쳐 만어사로 해서 삼랑진으로 가는 길이다.

감물리 사람들은 감물저수지에 대해 저수지는 감물리에 있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데 정작 혜택은 그 아래 마을인 안법리와 사촌마을에서 그 덕을 본다면서 하소연 하며 빙긋이 웃는다.













































찾아가기

밀양행 무궁화호는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부터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소요시간은 43분이다. 3800원. 밀양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감물리행 새마을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 8시10분, 11시50분 등 하루 5차례 출발한다. 약 30분 소요.

자가용의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24번 국도 표충사 얼음골 언양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금곡교차로에서 표충사 방향으로 빠져나가 금곡교를 지나자마자 오른쪽 감물리 방향으로 진입, 계속 직진하면 감물리에 닿는다. 감물저수지 지나 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주차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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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둘레길 12코스)고정리 박연졀~남기리정려각. 초록  융단 깔린 밀양 옛길 영남알프스둘레길 12코스

근교산&그너머 <726> 제12코스 : 밀양 고정리 박연정~남기리 정려각

밀양 옛길에 초록 융단 깔렸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길을 연결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은 길' 취급당하는 옛길을 찾아내고 그 길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자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길도 살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도 활력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은 곧 '죽은 길'에 지나지 않지만 사람이 그 길을 다시 이용하게 되면 길은 길로서의 생명력을 회복한다. 복잡하고 메마른 길에 지친 현대인들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숲의 향기와 옛사람들의 발자취가 가득한 옛길을 걸어 봄으로써 심신의 휴식을 취하고 또 다른 생명의 기운을 얻게 된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첫발을 내디뎠던 개척단이 울산 경주 청도 지역을 두루 거쳐 어느새 경남 밀양 땅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되도록 걷기 좋고 한적한 옛길을 찾아내서 이 길들을 연결함으로써 도보꾼들에게 걷기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하고자 노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주 답사한 제12코스 역시 밀양 사람들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옛길을 따라가는 길이다. 이 길에는 왜군들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지역 부녀자들의 애틋함과 일제강점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던 항일독립투사들의 저항정신이 녹아 있다. 그리고 옛길을 따라가면서 간간이 초현대식 길의 대명사인 고속도로(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만나고 최신형 길의 위 아래를 통과하거나 나란히 걸으면서 옛길과 오늘의 길을 비교하며 걸을 수 있기도 하다.


◇ 매화 고정리 등 산골 주민 밀양장 가던 길 14㎞ 코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경남 밀양시 상동면 가곡리에서 산외면 엄광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호젓함을 만끽하고 있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 수많은 인마의 주통로였던 이 고갯길도 머잖아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제12코스는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모정마을의 박연정(博淵亭)에서 출발해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의 창녕 장씨 정려각(旌閭閣)까지 가는 총거리 14㎞ 구간이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20분, 휴식 포함 5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줄곧 영남알프스 산줄기인 운문지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낙화산 보담산 비학산 등을 보면서 걷다가 기어코 이 산줄기를 넘게 된다.

바위 절벽인 수어대(數漁臺) 아래 있는 박연정에서 큰길을 버리고 모정마을 쪽으로 길을 잡는다. 곧이어 4분 후 양무공 김태허의 가묘터를 지난다. 모정마을 방향으로 걷다 보면 정면 고답마을 뒤에 낙화산(626m)이 우뚝 솟았고 모정마을 뒤에는 일명 '뒷말리성', '작은 하늘 방우산' 등으로도 불리는 소천봉(632m)도 눈에 들어온다. 모정마을은 노진촌(盧津村)으로도 불리는데, 동창천을 일명 '노진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마을의 옛 이름에서 따왔을 정도로 한때는 일대에서 중심이 된 마을이기도 하다. 아니, 고정리 전체가 경부선 철도와 신작로가 뚫리기 이전까지 밀양 상동면의 면소재지이자 중심 마을이었다.

모정마을 복지회관에서 우측으로 꺾어 100m쯤 가면 당산나무가 있다. 당산나무 앞 버스정류소를 우측에 두고 계속 직진, 들판길을 걷는다. 300m쯤 가면 들판 한가운데 사거리. 왼쪽 고답마을로 향한다. 작은 연못을 지나 마을 앞 아스팔트 도로에 닿을 무렵 우측 20m 지점에 승용차 한 대 크기의 바위가 있다. 고답마을 칠성바위 중 하나다. 마을에 산재해 있는 북두칠성의 모양을 닮은 칠성바위는 그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특히 부녀자가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한다.

아스팔트 도로 작은 사거리에서 용황사 표지판을 보며 좌회전, 100m쯤 가면 오른쪽 밭 안에 약산 김원봉 백민 황상규 등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자취가 밴 옛 고명학교 터 있다. 아무 표식이 없으니 개척단이 부착해 놓은 노란색 안내리본을 보고 접근해야 한다.


◇ 옛 고명학교터 칠성바위 당산나무… 고정리 볼거리 가득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고명학교 터에서 사거리로 되돌아간 후 왼쪽 '오르풀' 방향으로 살짝 들어가면 나머지 칠성바위 들도 이곳저곳에 눈에 띈다. 주택 마당에도 있고 논바닥에도 있다.

오르풀의 칠성바위를 본 후 다시 마을 앞 사거리로 복귀, 왼쪽으로 꺾어 아스팔트길을 따른다. 노란색 씀바귀꽃이 싱그럽다. 고답버스정류소 앞 갈림길에서 왼쪽 골목으로 오른다. 자두밭을 통과한 후 만나는 쌍무덤에서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포구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들이 고답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다. 그늘이 짙고 넓어서 더운 날 걷는 도보여행자들에게는 썩 훌륭한 쉼터가 되겠다. 무덤으로 되돌아간 후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특이한 구조의 이층 한옥을 지나 아스팔트 도로에 닿는다. 왼쪽으로 꺾어 가면 달성 서씨 재실인 경선재(景先齋)가 있고 곧바로 모정초등학교 교적비를 지난다. 44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도시화에 따른 이농현상의 파도를 넘지 못해 1995년 폐교된 사실을 기록한 이 교적비에 동문들의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 가지산서 시작된 운문지맥 끝자락 넘는 숲길 호젓

 
  보담산 낙화산 중산 석이바위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엄광리를 감싼다.
50m쯤 가면 갈림길. 왼쪽 골안마을 쪽으로 간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까지 매화리 신곡리 고정리 도곡리 등 상동면 4개리 사람들이 밀양장을 오가던 옛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15분 후 골안마을 표지석 앞 갈림길에서 우측 오르막으로 간다. 바람에 실려오는 아카시아꽃 향기가 참 달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지고 곧바로 굴다리를 통과한 후 왼쪽 오르막을 잡는다. 옛길과 새길이 평행선을 그리며 함께 달린다. 7분 후 은행나무 앞 갈림길에서 콘크리트길을 버리고 우측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길바닥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10분 후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좀 더 오르면 능선에 닿는다. 여기서 우측으로 꺾어 20m쯤 가면 움푹 파인 고개다. 일명 고답고개 또는 비암고개로 불리는 곳이다. 왼쪽 내리막을 탄다. 무덤 언저리에 은방울 은대난초 금대난초 등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6~7분쯤 내려가면 왼쪽 개울의 물맛이 시원하고 달콤하다. 곧이어 작은 계곡을 건너면 다시 눈 앞에 고속도로가 펼쳐진다. 고정1터널이라는 도로표지판도 눈에 띈다. 왼쪽에는 보담산 오른쪽에는 고속도로를 끼고 가다가 굴다리를 통과하면 가곡리 비암골의 가곡저수지다. 이곳 주변에는 한국전쟁 때까지 비암마을이 있었는데 전쟁 중에 없어지고 지금은 마을 흔적만 남아 있다. 저수지는 주변에서 민물낚시터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동네 이름까지 숲촌이라 짓게 만든 밀양 엄광리 숲촌마을 회화나무숲.
저수지 왼쪽 길을 따라가다가 둑 못미쳐 중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살짝 언덕을 넘는데 오른쪽 산 정상부에 가파른 절벽이 보인다. 그 바위가 일명 '낙화암(落花岩)'이다. 임진왜란 당시 밀양 박씨의 부인 여흥 민씨가 왜군들로부터 화를 당하지 않으려고 투신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가건물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10분 후 공동묘지를 통과하고 곧이어 운문지맥 마루금에 닿는다. 일명 공동산고개다. 왼쪽으로 능선만 타고 가면 보두산 낙화산 중산을 거쳐 운문산 가지산까지 갈 수 있다. 일단 살짝 올라섰다가 곧바로 우측 비학산 쪽으로 능선을 탄다. 150m쯤 가면 다시 한번 고개에 닿는다. 부산의 원로 산꾼이자 국제신문 '가고싶은 근교산' 2대 산행대장인 최남준 선생의 트레이드 마크인 '준·희' 푯말이 보인다.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 내리막을 택한다. 산외면 엄광리로 내려서는 이 길은 그윽한 숲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호젓한 길이다. 10분 후 눈앞이 탁 트이며 엄광리 일대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보담산 낙화산 중산 석이바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과 동쪽 서쪽이 모두 산줄기에 싸였고 남쪽만 뚫려 있는 지세의 엄광리는 박연구 삼호산업 대표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형제의 고향이기도 하다.


◇ 회화나무 빼곡한 엄광리 숲촌숲 훌륭한 쉼터 역할


엄광리 숲촌 마을은 마을 앞 숲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이름이다. 골목에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 세 분이 개척단을 반갑게 맞아준다. 시원한 보리차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집 냉장고의 물을 꺼내 와서 건네주는 할머니의 인정스러움이 고맙기만 하다. 골목길을 통과해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고속도로 교각 못 미친 곳에 멋진 소나무 7그루가 있는데, 그 앞에서 왼쪽으로 엄남천 잠수교를 건너 숲촌숲으로 간다. 100년을 넘게 산 회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는 체육공원 겸 쉼터다. 점점 더워지는 계절에 도보꾼들이 쉬었다가 가기에 참 좋은 장소다.

숲 쉼터에서 조금 전 건넌 잠수교 왼쪽으로 하천을 따른다. 교각 아래를 통과하고 10분 후 만나는 작은 다리 앞 사거리에서도 직진한다. 엄남천을 우측에 끼고 걷는 둑길이다. 왼쪽의 보리밭 너머 저편에 꾀꼬리봉이 보인다. 엄남교를 건너 계속 직진해서 내려가면 남기리 남가동 마을회관을 지나 옛 국도에 닿는다. T자 갈림길인 이곳에서 우측으로 틀어 100여m만 가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열부(烈夫) 창녕 장씨 정려각 앞에 닿는다. 12코스의 종착점이다. 운문지맥이 끝나는 곳이기도 하다.


# 떠나기 전에

- 임진왜란때 정절 지킨 두 부인 애틋한 뜻 기려

 
  남기리 창녕 장씨 정려각(왼쪽). 가곡리 여흥 민씨 정려각.
둘레길 제12코스 구간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정절을 지킨 부인 2명의 흔적을 만난다. 그 중 하나는 코스 종착점인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의 창녕 장씨 정려각(旌閭閣)이다. 밀성 손씨인 손기후의 처인 장씨는 왜란 당시 친정인 창원에 갔다가 그곳에서 왜군에게 화를 당할 위기에 처하자 창원 월영대에서 뛰어내려 부도를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문(旌門)'이라는 동네 이름도 바로 이 정려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또 다른 열부인 여흥 민씨 정려각은 제12코스 구간에서 살짝 비켜 있다. 밀양IC인근 긴늪사거리에서 25번 국도를 타고 차량으로 출발지인 박연정 방향으로 가다보면 상동역 못 미친 곳에 가곡리가 있는데 국도 변에 그를 기리는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밀양 박씨인 박희량의 부인이자 삼매당 민구서의 딸인 민 씨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마을을 침범해 오자 마을 뒷산 동굴로 몸을 피했지만 결국 벼랑을 타고 추격해 온 왜군들로부터 몸을 지키기 어렵게 되자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정절을 지켰다. 그녀가 뛰어내린 정려각 뒷산을 낙화봉 또는 낙화듬이라하고 그 바위를 낙화암이라고 한다. 걷기를 시작하기 전이나 후에 여흥 민씨 정려각도 한번쯤 찾아가 볼만하다.


# 교통편

- 부산역 오전 7시45분 출발 무궁화호 타면 딱 좋아

부산역에서 밀양 상동역까지 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7시45분에 출발한다. 요금 4100원. 오전 8시40분 상동역에 내리면 신곡리행 새마을버스가 오전 9시05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이 버스를 이용해 고정리 박연정 앞까지 간다. 이 버스는 밀양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50분 출발한다. 상동역 인근에서 택시를 이용해도 된다. 요금은 5000원 안팎이다. 둘레길 순례를 마친 후에는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에서 밀양역 또는 밀양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편리하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탔다가 곧바로 긴늪사거리에서 청도 방향으로 우회전, 25번 국도를 탄다. 상동역을 지난 후 상동교 앞에서 다리를 건너지 말고 직진, 고정 매화 방향으로 10분만 가면 박연정 앞에 도착한다. 답사를 마친 후 차량 회수를 하려면 종점인 정문마을에서 콜택시(055-356-6000, 355-5000)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요금 1만2000원 안팎.


# 비운의 항일 영웅 김원봉 장군을 아십니까

- 의열단 결성 단장 맡았던 항일투사
- 남한 단독정부 반대해 월북 후 숙청

 
  김원봉 장군이 다닌 밀양 고명학교의 터. 지금은 과수원 밭으로 변해 흔적도 없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낙화산이다.
"김원봉 장군이 돌아왔다. 만세 만세. 김원봉 장군 만세. 대한 독립 만세."

1946년의 어느 날. 당시 밀양 읍내 시가지가 밀양은 물론이고 주변 경남 지역에서 운집한 20만여 명의 함성과 만세 소리로 들끓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밀양이 낳은 불세출의 항일독립운동가인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의 수십 년만의 귀향 환영식 참석을 위해서였다. 당시 밀양국민학교 행사장 주변에는 그가 밟을 수 있도록 광목 카펫이 깔릴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광복군 부사령관, 조선의용대 대장 등을 역임한 그였으니 '장군'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았다. 망명 항일독립운동가 가운데 백범 김구와 유일하게 쌍벽을 이룬 대표적인 독립투사였던 그였다. 그러나 요즘 중고생들을 붙잡고 물어보라. 백범 김구는 알아도 약산 김원봉을 아는 학생은 거의 없다.

약산 김원봉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리고 왜 잊혀야만 했을까.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 경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항일무장테러조직인 '의열단(義烈團)'을 결성하고 단장을 맡았던 민족의 영웅이었다. 의열단은 23차례가 넘는 일본 요인 암살 및 주요 기관 폭파 등의 의거를 감행한 극강의 항일투쟁단체로서 나라 잃을 설움에 빠져있던 국민의 타들어가는 가슴을 적셔주는 단비와 같은 조직이었다. 그랬으니 김원봉에 대한 당시 국민들의 성원과 기대감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고명학교터로 답사당시 나를 가이드 해준 할머니)
해방 후 3개월 만에 그는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군무부장 자격으로 귀국했다. 그의 부인이자 부산 동래여고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박차정 여사가 1944년 이국땅에서 숨진 지 갓 1년여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는 부인 박 여사의 유해를 안고 돌아와 밀양에 묻었다.

그러나 그는 해방 후 돌아온 고국에서 오히려 더 큰 시련과 수모를 겪게 된다. 미국의 비호 아래 이승만이 주도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는 영세 중립국을 표방하는 남북합작 자주독립국 건설을 주장하면서 우익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괴롭힘을 당했다. 그가 존경했던 몽양 여운형이 1947년 암살당하는가 하면 그 자신도 친일경찰 출신 경찰에게 붙잡혀 뺨을 맞는 등 수모를 당하고 암살의 위협까지 높아지자 결국 김일성의 초청으로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회의에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참석했다가 혼자만 북에 남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진 월북한 사람으로 취급됐고 북한 정권 초기 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등을 거쳤지만 1958년께 연안파 숙청 당시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의 영웅이었지만 남북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했던 비극적 인물이 바로 약산 김원봉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일컬어 "일제강점기 조선이 낳은 '최고의 별'이자 '가장 비극적인 영웅'"이라고 묘사한다.

둘레길을 걸으며 방문한 옛 고명학교터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길은 없다. 1907년 개교한 이 학교에 다닐 무렵 의협심 강하고 용맹했던 김원봉은 일장기를 변소에 처박아 넣는 등의 기개를 떨쳤다고 전해지지만 이제는 학교 터마저 희미하다. 그냥 평범한 과수원 밭의 일부로 쓸쓸히 방치돼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일제 당국은 이 학교를 문제학교로 낙인 찍었고 결국 개교 14년 만인 1919년 폐교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같은 해 이미 중국 망명길에 올랐던 김원봉은 의열단을 결성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모정마을을 통과하는 둘레길 취재팀 

고답마을의 당산나무로 마을에서는 이곳을 당등이라 부른다.

오르풀마을의 칠성바위로 마을 부녀자들이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바위

고정분교터이며 맞은편 삼거리 길안마을 큰 표지석 뒤가 마전평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밀양에서 말을 타고 고답고개를 넘어와 이곳에서 말을 쉬게하였다하여 마전평이라 부르며 나루터에서 청도읍방향이나 산동방향으로 이동을 하였다 한다.

골안마을 작은 표지석 앞으로 둘레길이 열린다.

골안마을


은방울꽃

보담산아래의 볼수바위로 가곡마을에서부르는 지명이며 평능에서는 상여를 닮았다하려 생이바위라 부른다. 

당고개(비암고개)로 지금도 고개마루에는 그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내가곡마을의 모습. 그 뒤로 밀양의 옥교산이 펼쳐진다.

낙화듬으로 임진왜란때 정절을 지키기 위해 민씨부인이 왼쪽봉우리 바로 아래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하여 낙화암이라 부른다.

공동산고개로 엄광리 숲촌마을로 이어진다.

고개를 넘어서면 왼편으로 운문지맥의 마루금인 보두산 낙화산 중산 석이바위 능선이 부채살 처럼 펼쳐진다.

호젖한 옛길을 걷고 있는 둘레길 취재팀

운문지맥의 끝부분인 비학산 아래 장씨 정려각

가곡리의 민씨 정려각

둘레길에서 볼 수 있는 돌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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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동편마을은 영남알프스 둘레길 5코스의 경유지이다. 상목골에서 디티재를 거쳐 헤미골로 내려 서면 만나는 마을로 동창천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편마을로 불린다. 이곳을 출발하여 단석산 넘어 건천읍으로 방향을 잡아 걸어 보았다. 동편교회 앞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마을 쉼터인 정자와 마을과 함께해온 당산나무를 만난다. 그 앞 농로길을 따라가면 된다.

 
독립가옥인 민가와 만나는데 이곳에는 사슴을 키우는 작은 농장을 지나간다. 외지인의 출현으로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반가운지 아니면 신기한지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사실 이길은 마을 사람 이외에는 그래 인적이 없는 길이라 외지인의 출현에 당혹해 하는 것 같았다.


이곳은  숲동네의 마을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청소년 수련마을로 조성이 되어 있었다  극기 훈련과 오토캠핑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구비하여 놓은 것 같으며, 이날도 많은 가족들이 텐트를 쳐 놓으며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수련마을 뒷편의 바위벽. 

수련마을에서 본 대현저수지로 동창천을 가두어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수련마을을 나오면 동창천을 건너는 다리와 만나는 데 다리에서 본 동창천의 모습. 그 뒤로 대부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련망르의 다리를 건너면 회골마을로 그 마을에서 수련마을을 보았다. 921번 지방도로를 따라간다.


대현지의 모습으로 농업용수를 위한 것 갔았다.


대현저수지를 지나면 우측으로 오래된 다리를 볼 수 있다. 상목골과 오케이 그린 목장으로 올라가는 곳이다. 이곳이 소태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이다리를 건너면 우측은 오케이 그린목장과 상목골, 좌측은 소태마을이다. 한때 이곳은 "솥"을 만들었던 마을로 "솔태"라고 불리다 "소태"로 불려 지게 되었다 한다. 이 마을이 단석산의 숨은 골짜기 단석골로 불린 계곡입구이다. 마을 뒷편으로는 조래봉이 단석산까지 능선이 이어지지만 그 중간에 잘룩이인 목을 형성하여 숨통을 열어 놓았다. 내일리와 대현리 등 자연 부락민들은 건천읍으로 나갈때에는 자연히 단석골을 넘어 원골로 갔다한다. 동창천의 물굽이가 조래봉에 막혀 좌측으로 틀어 긴 골을 형성하여 산내면 의곡리를 거쳐 청도 운문댐으로 들어가는데 그리하면 건천으로 나가는 길이 많이 돌게 되어 힘은 들지만 지름길인 이길을 따라 오르 내리곤 하였다 한다.



단석골을 찾아 가는 길로 봄이 오고 있어선지 농부가 지게에다 농기구를 올리고 단석골로 들어가고 있다.
마을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이 이길을 쭉 올라가다 좌측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하니 아마 좌측길은 오케이 목장에서 원골로 이어지는 임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래도 계곡으로 길이 나 있는 것 같다 싶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백운암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임도길의 정점에 백운암이란 작은 절집이 있다. 여기 농사일을 하시는 스님에게 제차 여쭈니 자기는 여기 온지 몇일 안되어 모르니 안에가서 물어 보고 오겠다 하며 잠시 기다려 달라신다. 점심도 못 먹은지라 점심을 먹으며 기다렸다.  둘레길 하시는 분이 언양에서 요기를 하라며 싸준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스님에게 돌아온 답은 마을 사람과 같은 대답이 돌아 왔다. 좌측의 돌무더기를 올라서니 희미한 산길이 계곡으로 이어졌다.


그것도 잠시 산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하여도 다 실려 내려가고 길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무공해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 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수량이 많지 않아 이리 저리 건너면서 넘어진 나무 사이를 빠져 나가니 제법 세찬 물소리가 들린다. 협곡의 암반사이로 4m의 작은 폭포가 걸려 있었다. 계곡으로도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며 주위에는 협곡을 형성하여 되돌아 나갈 수 밨에 없었다.


 되돌아 나와 우측폭포 좌측으로 무작정 올라 갔다. 옛날의 임도 길과 조우를 하는데 반갑기는 한데 반갑지가 않은 임도 길이였다. 까지덤불과 잡목으로 인해 임도의 기능을 잃은지는 오래전일이고 이리저리 길을 찾고 뽈뽈기고 하며 겨우 겨우 산길을 뚫고 나가니 오케이 목장에서 나오는 임도길과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원골마을은 좌측으로 조래봉과의 연결되는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된다.


임도에서 본 단석골로 고난의 골짜기 였다. 멀리 조금 보이는 것이 대현저수지, 그 뒤로 대부산과 문복산의 모습이 펼쳐진다,


원골마을의 한자가 새겨진 글씨바위이다.

 
당고개로 경주시 산내면과 건천읍을 잇는 경계 고개이다. 예전에는 산내쪽에 당집이 있었는데 그래서 당고개라 불렸다 한다.
 지금은 그 당집도 사라지고 없지만 터만 남아 있다 하며 새로 만든 표지석에는 땅고개로 나와 하루 빨리 수정을 하여야 겠다. 당고개는 낙동정맥길이며 역사적으로도 이길이 단석산과 영남알프스를 있는 가교 역활을 하는 중요한 고개이다.




단석산 신선사로 올라가는 우중골로 정상이 좌측 뒤로 솟아 있으며 단석산중 가장많은 사람들이 오르 내리는 등산로이다.
단석산과 신선사에는 김유신과 함께 얽혀 있는 전설이 있으며 국보인 마애불상군(199호)이 "ㄷ"자 모양 암벽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우중골마을로 신선사 들머리리며 좌측으로 휘어지는 골짜기가 신선사 입구이며 직진의 잘록이가 당고개인 낙동정맥길이다.


우중골 아래의 절골마을이다. 


송선 저수지로 절골마을에 위치를 하고 있다  꽤 큰 저수지이다.


절골에서 홈골로 들어서면 다시 작은 소류지와 만난다,


홈골소류지로 단석산 정상에서 내려 오는 물을 가두어 놓았다. 아마 단석산에서 내려 오는 골짜기가 홈통 모양으로 길어서 홈골로 불리는지...


홈골 저수지를 좌측으로 돌아 오르면 산죽과 만나는데 아마 단석산에 조릿대와 비슷한 산죽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시대 김유신이 이 산죽을 이용하여 화살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을 해 본다.


홈골 계곡의 풍광으로 꽤 많은 수량의 물이 내려 오고 있었다.



홈골은 초입을 들어서면 "Y"자로 갈라지는데 우측 계곡이 주 게곡으로 단석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단석산으로 오르는 홈골에서 만난 "연리근"으로 두개의 나무가 뿌리가 서로 엉켜 올라가는 모습을 찾았다. 연리지는 많이 보았
지만 연리근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이곳을 오르면 만나는 월성이씨묘지로 장군봉과 단석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만난다.
무작정 길을 떠나 보았습니다.

길옆에는 봄나물이 추어진 날씨 때문인지 몸을 움추리고 산골의 농부들은 아직은

 
빠르지만 농삿일을 생각하며 논밭에 나가서 한해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가 있었습니다.  곧 무척 바쁜 농촌의 일상을 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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