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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육신사의 도곡재. 하빈면 묘리 한옥전통마을 도곡재를 여행하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는 박팽년과 사육신을 모신 사당인 육신사가 있습니다. 또한, 보물 제55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은 박팽년의 손자인 일산이 창건하였으며 묘골은 순천박씨 한옥마을 집성촌입니다.






◆박팽년과 사육신을 모신 사당 육신사가 보고 싶다면

☞2016/03/29 - (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박팽년 등 사육신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처참한 죽임을 당합니다. 박팽년의 후손은 이곳에 사당을 지어 매년 향사를 지내고 세거를 이루었습니다. 현재에도 순천박씨 종택 등 그 외 많은 전각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한옥 건물 중에서 도곡재도 있습니다.

 



도곡재는 육신사 입구 오른쪽에 있습니다. 역시나 박팽년의 후손으로 조선시대 정조2년(1778년)에 대사성 서정공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었던 건물입니다. 그리고 1800년대에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되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박종우는 인조 때의 문신으로 문장과 절의, 덕행에 능하여 동방의 일인자로 칭송받았던 인물입니다. 낙재 서사원을 사사하였고 병자호란에 참여하여 전사하였습니다. 도곡재 건물은 처음에는 앞면 4칸에 옆면 1칸으로 지어졌는데 뒤에 1칸의 퇴칸을 넣고 대청마루도 크게 넓혀 누각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남향을 보며 도곡재가 자리하고 그 오른쪽에 달린 중문을 들어서면 ‘ㄱ’ 형태의 안채와 고방채가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어 출입은 할 수 없습니다.




건물의 형태는 자연석 위에다 네모기둥을 세운 납도리 홑처마 팔작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일반적인 양반가옥을 잘 보여주는 사랑채 건물입니다. 1995년 5월에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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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골에는 전통한옥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먼저 육신사를 만났습니다. 육신사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며 단종의 왕위 복위를 꾀하다 처참하게 숨진 사육신을 모신 사당입니다. 사육신에는 박팽년·성삼문·이 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를 말합니다. 육신사를 알려면 먼저 단종의 폐위와 사약을 받았던 과정을 먼저 알아야합니다.






 

13세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조선 제6대 왕입니다. 그의 부왕인 문종은 즉위와 함께 2년만인 1452년 5월에 승하하면서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에게, 집현전학사 출신인 박팽년·성삼문·신숙주·하위지·이개·유성원 등에게 세종은 장손인 어린 단종을 특별히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1453년 10월이 되자 숙부인 수양대군은 정권찬탈을 도모하며 권람·한명회 등이 세운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기는데 당시 좌의정이던 김종서를 그의 집에서 주살하고 대신들을 모두 대궐로 불러들여 영의정 황보인, 병조판서 조극관, 이조판서 민신, 우찬성 이양 등을 죽였습니다. 이를 계유년에 일어 났다하여 계유정란이라 합니다.


 

그들은 숙부인 안평대군을 옹위해 종사를 위태롭게 하고 국정을 농단했다는 죄목을 붙여 안평대군은 강화도에 위리안치시켰다가 곧 사약을 내려 죽였습니다. 단종은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정권은 수양대군에게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또한, 단종의 측근이던 금성대군 이하 여러 종친과 신하 등을 죄인으로 몰아 유배를 보내고 임금의 측근은 모두 죽거나 쫓겨나자 단종은 더 견디지 못하고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이 되어 수강궁에 거처하였습니다.


 

그러나 1456년(세조2년) 단종 복위 사건이 일어나는데 주동자는 집현전 학사 출신과 무신인 성승과 유응부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초대하여 연화를 베푸는 날 세조를 죽이기로 모의하지만 밀고자 김질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상왕 복위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거사로 단종의 운신은 더욱 좁아졌으며 목숨까지 위태로웠고 1년 뒤인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유배지에서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운동이 발각되자 세조는 노산군을 다시 서인으로 강등하고 그해 10월에 사약을 내려 방년 15세에 단종은 한 많은 생을 마감합니다.


 

이때 죽음을 무릎서고 상왕 복위를 도모했던 집현전 학사 출신 박팽년·성삼문·유응부·하위지·이 개·유성원등 6명을 일컬어 사육신이라 부릅니다. 사육신을 보면 박팽년은 옥사하고 유성원과 허조는 집에서 자결하였으며 성삼문, 유응부, 이 개 등은 거사 7일 만에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숙주나물이라 아시는지요, 콩나물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여기에는 집현전 학사였던 신숙주에 의해 숙주나물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신숙주는 세종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극진한 사랑을 받았고 세종과 문종은 집현전학사 출신들에게 특별히 어린 단종을 지켜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나 신숙주는 세종과 문종과의 신의를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수양대군 편에 섰는데 이를 박팽년성삼문의 사육신에 빗대어 변절자라 부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신숙주는 동부승지에 추증되고 공신반열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숙주나물은 금방 쉬어버려 못 먹게 되는데 신숙주를 마음이 숙주나물처럼 잘 변한다하여 신숙주에 빗대어 숙주나물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묘골의 육신사는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사육신을 모신 사당입니다. 처음에는 박팽년만 후손에 의해 배향되었는데 박팽년의 기일에 현손 계창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사당 문 앞에 사육신의 여섯 어른이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난 뒤 박팽년과 다섯 분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제사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처음에는 낙빈사를 지어 제향하다 1691년(숙종17년) 낙빈서원을 세워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866(고종3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서원과 함께 훼철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을 재건하고 다시 사육신인 여섯 분의 위패를 봉안하였습니다.


 

 사육신의 행적을 새긴 육각기념비

 

1974년에는 ‘충효 위인의 유적 정화사업’을 펼치면서 '육신사'라하고 사당을 재건하였으며 숭정사에는 사육신과 박팽년의 부친인 박중림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였지만, 왼쪽 언덕에 충의사를 새로 짓고 문민공 박중림 선생의 위패만 옮겨 봉안하였습니다. 숭정사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웅장하며 아름다워 사육신의 충절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문민공 박중림 선생비

 

 





또한, 1979년 건립된 사육신의 행적을 새긴 육각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1981년에는 외삼문, 삼충각, 숭절당 등을 갖춘 사당이 되었습니다. 육신사를 들어서는 입구 주차장 옆에는 삼충각이 있습니다.



이는 박팽년(1417~1456)이 1755년(영조31년)에 영조에게 충신정려를 받았으며 박팽년과 함께 죽임을 당한 그의 아들 박순과 그의 유복자 박일산은 1831년(순조31년)에 순조에게 정려를 받았습니다. 3대가 정려를 받은 것을 기념하기위해 1832년 경상도관찰사 김양순이 사육신을 모신 숭의사를 참배하고 비석을 세우게 했는데 1835년에 ‘순천박씨삼세정충기실비’가 세웠졌습니다.



육신사

주소: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문의전화:053-583-6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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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용연사 금강계단. 통도사 금강계단의 진신사리가 비슬산 용연사 석조계단에 모시게된 유래가 궁금하다면. 용연사 금강계단


대구시 달성군 비슬산 용연사의 두 번째 포스트는 용연사 석조계단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용연사는 신라 신덕왕 원년(912)에 보양국사가 창건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겪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으면서 용연사는 최고위기를 맞습니다.






용연사는 임진왜란과 함께 불타고 선조 36년(1603년) 사명대사는 다시금 용연사 재건을 인잠과 탄옥, 경천스님에게 명하여 중창불사를 하지만 또다시 화재로 소실하였습니다. 지금 마주하는 용연사 극락전은 영조 4년(1728년)에 새롭게 조성하였습니다.

 용연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석조계단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에는 5곳이 있어 5대 적멸보궁이라 합니다. 자장율사가 643년 신라에 돌아오면서 부처님의 사리와 정골를 가져왔는데 오대산 상원사,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정암사에 각각 봉안하였고 이를 5대 적멸보궁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5대 적멸보궁에는 비슬산 용연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용연사에 진신사리를 모시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영축산 통도사에 모신 부처님 진신사리가 왜군에게 도난당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왜군은 한양을 향하면서 이곳 통도사에 들어와 문화재를 약탈하고 급기야 석조계단을 허물고 부처님 진신 사리를 탈취하지만 사명대사는 이를 되찾아 금강산의 서산대사를 찾아가서 사리에 대해 의논합니다. 서산대사는 다시 통도사에 돌려주는 게 마땅하다 하면서 사리함에서 2과중 한과는 통도사에 돌려주고 한과는 태백산 보현사에 안치토록 하였습니다.

 

 

 

 

 이에 사명대사는 2과의 사리 중 1과는 통도사로 돌려주고 1과는 태백산 보현사에 봉안토록 제자 선화를 불러 조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영남 쪽은 아직도 전란으로 정세가 불완전한 상태였었고 또한, 통도사에 부처님 사리를 모실 마땅한 자리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부처님 불상을 모시지 않은 용연사 금강계단.

 

 

 

 

 그러는 와중에 사명대사는 일본으로 포로송환을 위해 갔다 왔으며 곧 입적하는 바람에 부처님 진신사리는 치악산 각림사에 일시 봉안하였습니다. 이에 사명당의 제자 청진스님은 진신사리를 비슬산 용연사로 모시면서 사부대중과 의논하여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려다 통도사에 돌려 주야 한다는 서산과 사명대사의 뜻에 따라 2과중 1과는 다시 통도사로 보내고 1과만 용연사에 봉안하였습니다.

 

 용연사 석조계단은 사리탑 오른쪽의 ‘석가여래부도비명’을 보면 조선 현종 14년(1673년)에 완성되었다며 제작연대 등이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사리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 한과를 모셨는데 2단의 기단위에 종 모양의 몸돌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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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돌을 바친 두 기단 중에서 아래층 기단의 네모서리에 사천왕상을 배치하여 사리탑을 수호토록 하였는데 도난등을 우려하여 따로 보관중이며 현재는 모조품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위 기단은 네 면에 팔부신장상을 돋을새김 했는데 조선후기 석조예술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종형의 몸돌 위로는 연꽃봉오리 모양을 장식하였고 1934년에 계단 주위에 돌난간을 둘렀습니다.

 

 

  현재 용연사 금강계단은 보물 제539호이며 통도사의 금강계단, 금산사의 방등계단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계단식 사리탑입니다. 필자는 이 세 곳의 금강계단을 모두 보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대구 달성군 비슬산 용연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는 따로 부처님을 보시지 않았으며 용연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불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는 천년고찰입니다. 대구 여행길에 한번쯤 찾는다면 아주 좋은 여행이 됩니다.

 통도사금강계단



금산사 방등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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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 사문진나루터. 우리나라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왔던 사문진나루터에 봄여행을 떠나다.  


2013년 11월 초순쯤에 화원유원지인 사문진나루터를 찾았습니다. 그때는 사문진나루터 복원 공사를 막 끝낸 터라 어수선하면서 황량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지난 3월1일 대구 달성여행길에 화원유원지로 불렸던 사문진나루터를 가게 되었는데 세월이 2년여 지나서 그런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탐방객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2013년 당시 사문진나루터 포스트 보기:

2013/11/11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한국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온 곳은 어디, 사문진나루터와 화원동산 .




 교각에는 대구시 달성군 마비정 벽화마을의 벽화와 똑 닮은 그림이 여럿 그려져 있었으며 사문진나루터는 그때보다도 훨씬 짜임새가 있어 좋았습니다.

 

 

 사문진나루터는 오래전부터 배를 이용한 물류의 중심지였습니다. 조선 세종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대일무역의 중심지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일본물품 보관창고인 왜물고가 있었습니다. 모든 물산이 이곳에서 모여 내륙으로 공급하다보니 자연적으로 사람이 나루터에 몰려들었습니다.

 

 사문진의 유래를 보면 화원읍 본리리에 인흥사란 큰절이 있었는데 큰절로 가는 관문이라는 뜻으로 사문진(寺門津)이라는 설과 강가에 모래가 많으며 포구를 통해 많은 물산이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라는 뜻으로 사문진(沙門津)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후자인 사문진(沙門津)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문진나루터는 나루터의 기능도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대구시민의 유원지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역사는 1928년도인 일제강점기에 대구부에서 처음으로 유원지를 개발하였으며 1972년에는 대구 향토업체인 금복주에서 화원동산을 개장하여 운영하다가 지금은 대구시에 기증하여 현재는누구나 찾는 대구시민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이곳 사문진나루터는 우리나라에서 피아노가 처음으로 들어왔던 곳입니다. 1900년 3월28일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탐(1874~1908)부부가 피아노를 배에 싣고 낙동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사문진에서 피아노를 내렸습니다.

 피아노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지금의 약령시장의 숙소까지 옮겼는데 그 당시 피아노를 옮기든 인부들은 얄궂은 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피아노를 ‘귀신통’이라 불렀습니다. 요즘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법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처음보고 생판 처음 듣는 소리라 귀신이 내는 소리쯤으로 생각했나봅니다. 이대목에서 웃지 않을수 없습니다. 히히

 지금 사문진나루터에는 피아노 모형을 만들어 귀신통의 역사를 알리고 있으며 또한 일제강점기 때 이규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가 처음 촬영되면서 최근에는 많은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붐비는 나루터였다면 당연히 주모가 있는 주막이 성업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업 중인 사문진 주막에서 대구의 비슬산 막걸리에 부추전과 어묵으로 시원하게 목도 축였습니다. 먹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또한, 나루터에 주막 촌이 있는 것을 보면 그늘을 제공하는 큰 고목이 당연히 있었지 싶은데 이곳 사문진 나루터에도 사문진의 터줏대감인 팽나무가 있습니다. 팽나무 주위로는 과거 ‘나루깡’이란 장이 열렸으며 파, 참외, 수박 등 인근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거래하고 낙동강에 물이 범람 할 때에는 팽나무에다 배를 묶어두기도 했던 고마운 나무입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팽나무는 500여 년 동안 사문진의 역사를 기억하고 온갖 풍상을 견디어 왔는데 4대강 사업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어 자칫했으면 사라질 뻔 했습니다. 다행히 지역민·관의 각고한 노력으로 보존되어 사문진나루터의 산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되었습니다.

 

 소원을 적어 팽나무 주위에 걸어두고 1년 뒤 받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으며 최근에는 오리전기차를 운행하여 아이와 온가족이 함께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한 사문진나루터로 거듭났습니다. 이제 봄이 왔습니다.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화원유원지 사문진나루터에서 옛 추억을 만나보세요.


2016/03/11 - (대구여행/달성여행)최정산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의 승병훈련소였던 천년고찰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여행.


2016/03/07 - (경북·대구여행/청도·대구달성여행)청도읍성, 석빙고, 청도와인터널, 대적사, 남지장사, 녹동서원·한일우호관, 대구국립박물관, 사문진나루터, 육신사·달성태고정·달성도곡재, 달성 하..


2015/10/31 - (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우록리 청산~우미산 가을 산행.


2015/10/21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장군을 모신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여행하다.


2015/02/18 - (대구여행/달성가창여행)대구 주암산~최정산 산행. 올해 처음 눈꽃 산행을 즐긴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최정산 산행.


2014/03/15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대구 근교산 삼필봉~황룡산 산행.천리마의 전설과 함께하는이색산행 마비정 벽화마을.


2014/01/06 - (대구여행/달성여행)포레스트 스파밸리. 화려한 야경이 볼거리인 포레스트 빛의 축제에 깜짝 놀라다.


2013/12/18 - (대구여행/달성여행)팔공산 동화사에서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진행,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지로 될듯.


2013/11/27 -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도동서원의 아름다운 늦가을 모습.


2013/11/23 - (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 허브힐즈. 대구 허브힐즈에서 힐링을 하고 왔어요.


2013/11/17 - (대구여행/달성여행)국립대구과학관. '나도과학자' 국립대구과학관에 가면 누구나 과학자가 된다.


2013/11/16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읍 마비정벽화마을. 6~70년대 우리 어릴적의 모습 마비정벽화마을의 벽화로 만났어요.


2013/11/12 - (대구여행/달성여행/강정고령보)강정고령보 디아크, 물수제비 뜨기에 너무 좋을 것 같은 강정고령보 디아크.


2008/12/15 -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대견사지. 중국 당태종이 세숫대야에서 본 비슬산 대견사지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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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대구여행/청도·대구달성여행)청도읍성, 석빙고, 청도와인터널, 대적사, 남지장사, 녹동서원·한일우호관, 대구국립박물관, 사문진나루터, 육신사·달성태고정·달성도곡재, 달성 하목정여행 당일여행.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화유적답사 모임인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과 경북 청도와 대구 달성 일원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아주 잘 짜인 여행코스로 청도와 달성군의 여러 곳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청도 석빙고와 와인터널, 국립대구박물관과 육신사는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였습니다. 먼저 여행경로를 보면 청도 읍성~!청도석빙고~청도 와인터널~ 대적사~남지장사~녹동서원~국립대구박물관~사문진 나루~육신사~태고정~도곡재~하목정 순으로 여행했는데 우리 전통고가와 문화유적지 그리고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김충선장군,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을 만나는 알찬여행이었습니다. 먼저 청도읍성을 찾았습니다.




청도읍성

부산과 가까워 일찍 도착했던 청도읍성은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동상리, 동천리 일대에 석성과 토성을 혼합하여 쌓았습니다. 처음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청도읍성은 조선 선조 23년인 1590년 청도군수 이은휘에 의해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여 2년만인 1592년 완공하였으며 그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1.88km, 높이 1.7km, 성위에 덧쌓은 낮은 담장인 성가퀴는 600첩이었습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 그리고 읍성과 함께 청도 석빙고를 보았습니다.



 청도석빙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석빙고로 겨울에 얼었던 얼음을 봄·여름·가을에 사용하기위한 저장고로 만들었습니다. 빙고의 크기는 길이 14.75m, 너비 5m 홍예 높이는 4.4m로 화강석을 이용하였습니다. 청도석빙고는 신축당시를 기록한 비석이 석빙고 좌측에 남아 있습니다. 비석의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숙종 39년인 1713년에 축조하는데 3개월이 소요되었으며 소요인력과 물자 등을 알 수 있는 석빙고로 국내에서 축조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청도석빙고는 1963년 1월21일 보물 제3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청도와인터널

이제 청도 남성현 터널을 이용해 만든 청도 와인터널을 찾았습니다. 경상북도청도군 화양읍 송금리에 있는 청도 와인터널은 감와인 체험장입니다. 청도에서 유명한 특산물이 반시와 복숭아인데 청도 반시는 임금님께 진상될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와인터널은 원래 부산~서울을 운행하는 철도인 경부선 선로로서 경북 청도군과 대구를 잇는 옛 남성현 터널입니다.

 1896년 일제에 의해 착공하여 1904년 완공된 옛 남성현 터널은 잘못된 설계로 인해 1937년 새로운 남성현 터널이 개통하면서 폐쇄되었습니다. 옛 남성현 터널은 길이가 1,015m 폭은 4.5m, 높이는 5.3m 직육면체의 화강암과 적벽돌로 3겹의 아치형으로 건설하여 110년이 넘은 지금도 내부는 보존상태가 잘되었습니다. 터널의 연중 연중온도는 15, 16도이며 습도는 60~70%로 와인 숙성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 2006년 2월에 청도와인(주)에서 감와인 숙성고와 시음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소문이나 지금은 청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청도대적사

청도 와인터널을 나오면 왼쪽 골짜기에 신라 헌강왕 때 체징이 창건한 사찰 대적사가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모든 당우는 불탔으며 1635년과 1689년 중건과 중수를 거쳤지만, 현재는 극락전을 제외하면 초라한 모습입니다. 대적사 극락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이며 볼거리는 극락전을 받치고 있는 기단과 소맷돌입니다. 기단에 연꽃과 거북무늬의 양각과 소맷돌의 용비어천도 등 창건 당시의 화려했던 대적사의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발길은 청도 남성현 터널을 지나면 대구 달성군 가창 땅입니다.

 


 대구 남지장사

이곳 최정산 아래 우록리 골짜기에 684년 신라 신문왕 때 양한이 창건했다는 남지장사를 찾았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사세가 대단했는데 8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3천여명의 승려가 운집했을 정도로 대찰이었습니다. 그러나 궁예가 일으킨 전쟁으로 폐사되었다가 1263년인 고려 원종 때 일연이 중창하여 제법 사찰의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1592년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당 유정이 이곳에서 승병 훈련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왜적은 한양 공격 길에 이곳을 불 질러 초토화했습니다. 1653년과 1767년 중건과 중창을 하였으며 모계에 의해 팔공산의 북지장사와 대칭된다며 남지장사라 하였습니다. 부속암자로는 청연암과 백연암이 있으며 사명당이 승병을 훈련하면서 머물렀던 청연암은 1990년에 보수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포스트:http://yahoe.tistory.com/2321


 대구녹동서원, 한일우호관

남지장사를 보고 나오면서 우록리 입구에 녹동서원을 찾았습니다. 녹동서원은 삼란공신을 평정한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왜 일본 장수가 조선의 장군이 되었는지 녹동서원과 녹동서원 옆 한일우호관을 방문하면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김충선장군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좌선봉장으로 참전했다가 경상좌수사 박진에게 휘하 병사 3천명과 귀순합니다. 조선군에 조총 제작 기술을 전수하며 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선조는 그에게 사성 김해김씨의 성과 충선의 이름을 하사합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괄의 난을 평정한 삼란 공신입니다.

 


 국립대구박물관

이제 대구에서 꼭 보고 싶었던 국립대구박물관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대구 박물관에 가기 전에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점심을 맛있게 먹고 힘을 내어 대구박물관 여행을 시작합니다. 국립대구박물관은 대구시 수성구 청호로 321. 1994년 12월 개장했는데 대구와 경북일원에서 출토된 유물 1.700여점이 전시중입니다. 이곳에서 눈여겨 볼만한 유물은 국보로 지정된 금동여래입상(국보182호)과 금동보살입상(국보 183호, 184호) 두 점입니다. 또한 송림사 5층 전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보물 제325호)와 국보 제282호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불 복장유물, 보물 제202호 의성관덕동석사자, 보물 제357호 칠곡정도사지5층석탑 등을 만났습니다. 정교한 신라예술품의 극치를 만나는 뜻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대구사문진나루터

다시 낙동강의 화원 유원지 사문진나루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두 해전쯤 찾았는데 그때보다는 많은 조형물 등 시설물이 설치되었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여행객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문진은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진다”는 뜻이며 선교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왔던 곳입니다. 당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이곳 사문진 나루에 내려진 귀신통 피아노는 지금의 동산 외국인 선교사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대구육신사

이제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한옥 집성촌으로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인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함께 봉안한 박팽년의 부친 중림의 위패는 현재 따로 봉안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박팽년만 후손에 의해 배향하였는데 기일에 사당 앞에 여섯분이 서성거리는 꿈을 후손이 꾸면서 박팽년 이외 다섯 분도 함께 모시게 되었다합니다.



 대구 달성태고정

신사 옆 달성 태고정은 1479년 박팽년의 손자인 일산이 세웠습니다. 조선 중기의 정자로 일시루라 하며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구성되었는데 오른쪽에 2칸의 대청을 넣었습니다. 창건과 함께 박팽년의 절의 묘와 종택에 딸린 건물로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일부 소실되었다가 1614년 다시 중건하였습니다. 1971년 12월에 보물 제55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태고정의 현판글씨는 한석봉이 섰다하며 일시루는 안평대군의 글씨라는 해설사의 설명입니다.

 대구 달성도곡재

태고정 아래 도곡재는 1995년 5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778년 정조 때 대사성 서정공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었다가 1800년대에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그의 호를 따와 도곡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앞면 4칸, 옆면 1칸의 기와 건물인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헛간과 대청을 달아 누각형태로 꾸몄습니다.

 

 대구 달성하목정

이제 낙동강을 끼고 들어선 달성 하목정을 찾았습니다. 낙동강에 저녁노을이 붉게 비치면서 하목정의 분위기는 정말 남달랐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던 낙포 이종문이 1604년 세운 정자입니다. 하목정의 현판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인연으로 인조가 이종문의 아들 이지영에게 써주었습니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은 특이한 점은 처마가 부채모양 곡선으로 되었으며 일반 가옥에는 서까래에 부연을 달수 없지만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습니다.

 이번 청도와 대구 달성군을 여행하면서 빼어난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운 한옥의 곡선, 그리고 자신의 조국을 배반하고 귀화하여 조선을 전쟁에서 구한 일본 장수 등 한편의 역사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부산과 가까운 곳에도 이런 알찬 여행을 꾸밀 수 있었습니다. 당일로 가볍게 여행을 하는 청도와 대구 여행 이제부터 한곳한곳 포스트 하겠습니다.






2015/10/31 - (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우록리 청산~우미산 가을 산행.


2015/10/21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장군을 모신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여행하다.


2015/04/05 - (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2015/02/18 - (대구여행/달성가창여행)대구 주암산~최정산 산행. 올해 처음 눈꽃 산행을 즐긴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최정산 산행.


2014/06/24 - (대구여행/수성구여행)수성못 용지봉~병풍산 산행. 대구의 근교산 용지봉~병풍산 산행.


2014/03/15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대구 근교산 삼필봉~황룡산 산행.천리마의 전설과 함께하는이색산행 마비정 벽화마을.


2014/01/27 - (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2013/11/11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한국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온 곳은 어디, 사문진나루터와 화원동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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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우록리 청산~우미산 가을 산행.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우미산 산행을 하기에 앞서 사야가 김충선 장군과 녹동서원, 달성한일우호관이 왜 이곳에 세워졌는지 그 설립 배경부터 알아야 합니다. 사야가 김충선 장군은 원래 일본 국적을 가진 분입니다. 왜 조선에 귀순을 선택했을까요?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중국 침략을 위한 길을 내어 달라고 요구하며 조선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킵니다. 1592년 임진년에 일어난 전란으로 임진왜란이라 부릅니다. 임진왜란의 선봉에 가토 기요마사가 있었고 그 우 선봉장에 사야가란 장수가 있었습니다.

사야가는 예절을 중시하고 군자의 도리를 지키는 조선에 흠모의 마음이 있었고 조선 침략의 명분을 얻을 수 없다며 그의 부하 3천 명과 함께 경상감영의 박진 장군에게 투항하여 조선을 지키는 선봉에 서서 왜군을 격파합니다.

또한, 조총과 화약 조제의 전문가로 조선에 조총과 화약기술을 전수하여 우리 병사에게 왜군과 맞서기 위해 조총을 갖추게 합니다. 이후 도원수 권율 장군과 어사 한준겸이 조정에 그의 공적을 상소하였고 선조는 김해김씨 김충선을 하사합니다.

그 후 정유재란도 참여하여 공적을 세웠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노구를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구하기 위해 출병하지만, 청나라에 무릎을 꿇었다는 임금의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돌려 우록리로 내려와 여생을 보냈습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겪었던 김충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녹동서원입니다. 1794년 정조 18년에 지역 유림의 상소를 받아들여 세워진 녹동서원은 다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885년 지역유림과 문중에 의해 재건되었고 1971년에 국가의 지원으로 지금의 위치에 옮겨 왔습니다.

최근까지 모하당 김충선 장군은 주목을 받지 못하다기 일본 관광객과 정치인들이 방문하면서 한일 양국에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인으로 조선에 귀화하여 정작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을 아끼고 사랑한 김충선 장군을 만나고 청산과 우미산을 둘러보는 의미 있는 산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미산 산행 경로는 녹동서원 주차장~녹동서원·달성한일우호관~김충선장군 묘~남지장사 갈림길~삼정산 갈림길~656봉 전망대~남지장사 갈림길~740.4봉 전망대~안부 삼거리~주리 갈림길~정자 쉼터~통점령 갈림길~최정산 목장~(통점령 갈림길)~청산 정상802m~백록마을 회관 갈림길~우미산·밤티재 갈림길~우미산 정상 747m~우미산장·식당~우록마을 정자 쉼터~녹동서원 주차장 순으로 산행은 우록리를 두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산행 길이와 난이도 또한, 만만찮은 코스로 무리한 산행을 원하지 않는다면 산행은 청산 정상을 지나 만나는 백록마을 회관으로 하산하면 됩니다. 실제 우미산을 거치는 코스는 그저 걷는 재미뿐입니다. 전체적인 거리는 약 15㎞에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5시간30분~6시간가량 잡아야 합니다.

청산~우미산 산행은 모하당 김충선 장군 위패를 모신 녹동서원의 달성 한일 우호관 뒤쪽에서 시작합니다. 먼저 산행을 하기 전에 일본인으로서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달성 한일 우호관에서 그분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생각해 봅니다. 산행은 ‘김충선장군 묘소 가는 길’입니다.

데크로 된 나무계단 길을 쉬엄쉬엄 300m쯤 올라가면 단출한 묘소와 만납니다. 그분의 삶을 한눈에 느끼는 평범한 무덤입니다. 참배하고 오른쪽 산길을 오릅니다. 곧 능선에 오르고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입니다. 왼쪽 남지장사 방향으로 본격적인 청산~우미산 산행의 시작입니다.

남지장사는 684년 신라 신문왕 4년 때 창건된 고찰로 여러 번의 중창과정을 거친 뒤 1767년 영조 43년에 모계가 중창하면서 팔공산의 북지장사와 대칭되는 곳에 세워진 절이라하여 남지장사라 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 유정이 이곳 청련암에 머물며 승병을 훈련했습니다. 그 사실이 왜군에게 발각되어 남지장사와 청련암 등은 불태워졌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모든 전란이 끝나고 난 뒤인 1653년에서 1767년까지 4차 중창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슬며시 오르든 산길은 급한 오르막이 이어지면서 펑퍼짐한 작은 봉우리를 넘어갑니다. 30분쯤 올라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 다다랐습니다. 오른쪽은 삼정산 방향이며 우미산은 왼쪽 남지장사 방향 오름길을 따라갑니다. 산길은 키 큰 나무와 활엽수에 가려 바깥과는 차단된 듯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20분쯤 올랐을까 돌출된 656봉에 닿았습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보았습니다. 우록리는 눈에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며 꼭 함지박에 푹 쌓여 세상 밖과 단절된 모습입니다.

계단 논인 다랑논과 수확을 앞둔 누런 벼, 숲속에 둥지를 튼 남지장사와 청련암 부속암자의 모습을 감상하며 나중에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필자가 지나가야 할 능선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 뒤로 비슬산 조화봉 정상에 있는 기상관측소 건물이 바깥세상과 단절된 내 마음에 ‘도시인이시여 정신 차리소’ 하듯 흔들어 깨웁니다.

다시 북쪽을 봅니다. 가창면과 멀리 팔공산의 긴 능선이 기지개를 켜는 듯 허리를 쭉 피며 누워 있습니다. 능선을 따라갑니다. 곧 땅이 푹 꺼지듯 산길은 내려갑니다. 평점 심을 찾을 때쯤 안부사거리에 닿습니다. 왼쪽은 남지장사. 우록 경로당 2.6km 방향. 우미산은 ‘최정산 억새’ 방향인 직진 오르막길입니다.

산행의 진리는 항상 내리막이 있다면 오르막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런 굴곡과 같이 부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편하게 내려왔다면 이제 꾸역꾸역 오르막을 올라야 합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참고 견뎌내면 좋은 결과가 기다리듯 곧 시원하게 바깥 세상이 열리는 전망대가 기다립니다.


740.4봉의 삼각점이 있는 전망대에서 다시 쉬면서 우록리를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능선이 왼쪽에 한눈에 보이며 가운데 우미산이 우뚝 솟았고 우록리의 크고 작은 마을이 산비탈에 등을 비비듯 자리하였습니다. 이제 700m대 높이로 걷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능선의 굴곡도 심하지 않으며 간혹 나타나는 전망대에서 세상과 소통하며 걷습니다. 최정산과 주암산의 능선도 확인하고 걸어가면 어느덧 안부 삼거리입니다. 이정표는 없지만, 왼쪽으로 내려가는 선명한 하산 길은 남지장사로 향하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직진하면 능선은 그리 급하지 않게 이어집니다. 다시 주리 갈림길과 만나는데 이정표가 있던 남지장사 갈림길에서 60분이면 이곳에 도착합니다. 오른쪽은 주리와 최정산 탐방 입구인 임도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며 우미산을 가기 위해서는 백록마을 회관 방향인 직진 능선을 계속 탑니다.






곧 억새밭이 펼쳐지며 봉우리에 정자 쉼터가 있습니다. 건너편에 비슬산이 완전히 드러나고 최정산의 옛 목장도 가깝게 보이며 멀리 석화성 가야산도 보입니다. 약 200m쯤 산길을 따라가면 통점령 갈림길입니다. 사룡산에서 시작된 비슬지맥도 이곳에서 최정산 방향으로 꺾고 비슬산으로 가게되는 길목입니다.






가을 산행의 전령사인 억새를 만나기 위해 최정산 목장 부근으로 내려갔다 옵니다. 약 1km를 가는동안 솜틀처럼 부드러워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실컷 억새를 만나고 다시 통점령 갈림길로 돌아와 팔조령과 청산 방향으로 향합니다. 아쉬운 듯 최정산 목장 쪽을 자꾸 돌아보게 합니다.





산행길 좌우로 억새가 한껏 멋을 부리기도 하지만 곧 헬기장에 세워진 청산 정상 표지석과 만났습니다. 청산 정상에서는 주변 경관을 볼 수 없으며 우미산 방향으로 빠지는 산길도 주의하여 찾아야 합니다. ‘백록마을회관’ 방향은 청산 정상에 올라와서 바로 오른쪽 첫 번째로 빠져나가는 길입니다.




조금만 등산로를 따라가면 이정표가 또 있습니다. 팔조령 11.3km. 지금부터는 산길도 뚜렷하고 신나게 내려갑니다. 철탑이 나타나면 철탑 아래 백록마을 회관 갈림길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백록마을 회관으로 하산하느냐 아니면 우미산을 향하느냐 결정해야 합니다. 이곳을 지나면 더 이상의 탈출로는 없습니다.


필자는 직진해 우미산으로 향합니다. 평범한 능선길을 따라가다 안부에서 다시 우미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힘겹게 오릅니다. 그래도 지금은 산길이 뚜렷하지만, 필자가 아주 오래전에 이곳 우미산과 청산을 거쳐 산행할 때 고생을 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백록마을 회관 갈림길에서 약 20분이면 ‘밤티재 팔조령·우미산 갈림길’ 이정표와 마주합니다.

왼쪽 우미산(1.0km)을 향해 오릅니다. 힘겹게 마지막 사투를 벌여야 합니다. 겨우 우미산 문턱에 올라서고 산길은 왼쪽으로 능선을 바꿔 타고 약 30분이면 우미산 표지석과 마주했습니다. 이제 더 높은 봉우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힘겨운 하산길이 기다립니다. 우미산장·식당까지 앞으로 엎어질 듯 급한 내리막의 연속입니다. 하산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미끄러지지 않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남지장사로 향하는 도로에 내려서고 오른쪽으로 갑니다. 20분이면 우록마을 느티나무 쉼터를 지나고 곧 녹동서원 주차장에서 필자는 산행을 마무리하는 스키 스톡을 접어 넣었습니다.



☞(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대중교통편.  


대구시 달성군 청산~우미산 산행을 위해서는 우록리 녹동서원까지 갑니다.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대중교통편은 기차를 이용하면 먼저 동대구역까지 가야 편리 합니다.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칠성 시장역에 내려 2, 3번 출구로 나와 프라자 약국 앞 버스 정류장에서 ‘가창 2번’ 버스인 ‘우록리’를 반드시 확인하고 타야 합니다. 시외버스를 타고와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칠성 시장역에 내리면 됩니다. 칠성 시장역 출발 가창 2번 버스는 오전 8시07분, 8시43분, 9시21분, 9시59분, 10시37분, 11시15분, 11시51분에 있으며 약 40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우록리 달성우호문화관 앞에서는 오후 2시09분, 2시47분, 3시23분, 4시01분, 4시39분,5시17분,5시56분 등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달성한일우호관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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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우미산 고도표

청산~우미산 지형도




2015/10/23 - (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우록리 청산~우미산 가을 산행.


2015/10/21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장군을 모신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여행하다.


2015/09/24 - (경북여행/칠곡여행)칠곡 가산 가산산성, 가을 산행 최적의 코스, 가산산성 성곽 길을 걸어보세요.


2015/09/17 - (경북여행/칠곡여행)가산 가산산성 진남문. 가을에 잘 어울리는 산성 걷기, 포곡식 산성인 칠곡 가산산성 진남문을 여행하다.


2015/04/05 - (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2015/02/18 - (대구여행/달성가창여행)대구 주암산~최정산 산행. 올해 처음 눈꽃 산행을 즐긴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최정산 산행.


2015/01/14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구경하기.


2015/01/10 - (대구여행/대구중구근대골목투어) 이상화·서상돈 고택 찾아가기. 대구 중구 근대 골목 이상화 서상돈 고택을 만나고 왔습니다.


2014/03/15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대구 근교산 삼필봉~황룡산 산행.천리마의 전설과 함께하는이색산행 마비정 벽화마을.


2014/01/27 - (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2014/01/06 - (대구여행/달성여행)포레스트 스파밸리. 화려한 야경이 볼거리인 포레스트 빛의 축제에 깜짝 놀라다.


2013/12/18 - (대구여행/달성여행)팔공산 동화사에서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진행,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지로 될듯.


2013/11/27 -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도동서원의 아름다운 늦가을 모습.


2013/11/23 - (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 허브힐즈. 대구 허브힐즈에서 힐링을 하고 왔어요.


2013/11/17 - (대구여행/달성여행)국립대구과학관. '나도과학자' 국립대구과학관에 가면 누구나 과학자가 된다.


2013/11/16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읍 마비정벽화마을. 6~70년대 우리 어릴적의 모습 마비정벽화마을의 벽화로 만났어요.


2013/11/12 - (대구여행/달성여행/강정고령보)강정고령보 디아크, 물수제비 뜨기에 너무 좋을 것 같은 강정고령보 디아크.


2013/11/11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한국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온 곳은 어디, 사문진나루터와 화원동산 .


2015/10/21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장군을 모신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여행하다.


2013/11/15 - (대구맛집/달성맛집)비슬산맛집 일월정, 내몸을 살리는 발우공양처럼 일월정의 비슬산발우비빔밥한정식으로 건강도 챙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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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포레스트 스파밸리. 포레스트 빛의 축제에 깜짝 놀라다.


대구의 포레스트 스파밸리에 지난 늦가을에 다녀왔습니다. 하늘은 빵구가 났는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런 밤이였습니다. 그런 밤에 찾아간 ‘포레스트 스파밸리와 스파밸리 휴양림’ 밤이라 그런지 주위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어둠이 깔렸습니다. 그러나 스파밸리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하늘이 열리는 느낌이라할까요? 순간적으로 천지개벽이 이런것이구나 할 정도로 화려한 빛의 정원이 펼쳐 제 자신이 너무 놀랐습니다. 가창면의 주암산 아래 냉천리 일원에서 펼쳐지는 ‘포레스트 빛의 정원’이 너무 좋다는 대구의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무작정 찾아갔는데 역시 소문만큼 화려하게 밤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550만개의 화려한 LED 조명불빛이 형형색색 자신만의 빛을 발하며 밤하늘을 수놓는 그야 말로 빛의 축제였습니다. 스파밸리의 넓이는 어마어마한 12만평 부지라는군요. 이곳에 온천목욕장, 수영장, 에어로빅장, 체력단련장과 일반음식점 그리고 유원시설 등이 설치되어 지역 최대의 온천 워터파크입니다. 사계절 휴양시설로서도 손색이 없는 포레스트 스파밸리 추운 겨울날도 걱정하지 마세요. 따뜻한 온천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족또는 연인이 함께 찾아간다면 겨울밤 화려한 불빛과 추억도 쌓고 따뜻한 온천욕도 즐기며 예쁜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습니다.


◆포레스트 스파밸리 불빛 정원 구경하기◆


















































































































































































































◆포레스트빛의 정원 관람시 주의 사항◆



◆포레스트 빛의 정원 안내도◆



◆포레스트12 불빛축제 이용요금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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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동방오현의 한분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며 도동이란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동서원의 볼거리는 서원 입구를 지키고 있는 400년된 은행나무로 서원의 건립을 축하하며 한강정구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켜켜히 세월의 때가 묻어 시멘트 기둥에 한몸을 뉘이고 있지만 그의 풍모만은 하늘로 뻗어 올라가 꼿꼿한 선비의 기상을 보여 준다. 그런 이유로 서원 앞에는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강 정구가 심었다는 400년된 은행나무의 기품이  대단 도동서원


현풍IC에서 도동서원까지는 약 10km거리이다. 다림재를 넘어  낙동강을 따라  강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도동서원은 도산서원, 소수서원,병산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서원이며 보물제 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도동서원 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살아남아,


원래 도동서원은 1568년 조선선조원년에 비슬산 자락에  쌍계서원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화마로 불타고 1604년인 선조37년에 이곳으로 옮겨와 1607년에 도동서원으로 사액되었다. 1871년 고종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든 서원은 훼철되지만 도동서원과 함께 47개 서원은 제외되어 도동서원은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된다. 



400년된 은행나무로 도동서원 앞에 있다. 도동서원 완공기념으로 한강정구선생이 직접심었던 나무다.

 

 

도동서원은 기존의 서원과는 다른 형태다. 일반 서원은 남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도동서원은 낙동강으로 인해 북쪽을 향해 앉아 있다. 그때문에 중정당의 대청마루에 앉아 흘러가는 낙동강을 바라 볼 수 있는 도동서원의 풍치는 그야말로 가을의 노란 은행나무와 함께 장관을 연출한다.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중정당의 기단에 4개의 용머리는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위한 비보 역활 도동서원


도동서원으로 오르는 길은 1973년에 복원된 2층 누각 수월루를  지나가면서 시작된다. 좁다른 층층 돌계단을 올라 좁은 환주문을 들어서면 도동서원의 경내다. 정면에 강당인 중정당이 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두줄의 급한 돌계단이 퇴색한 모양을 하고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고 있다. 서원과 사당을 구분짓는 내삼문은  꼭꼭 잠겨져 있고 이곳은 김굉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그때 도동서원을 관리하시는 분이 올라오시며 보여줄것이 있다고 같이 가잔다.  사당옆의 담벼락을 가르키며 전국 서원에서 유일하게 도동서원에만 있다는 작은 창을 가르켰다. 문을 빼꼼히 밀어 왼쪽 담벼락을 보니 사각모양의 창틀이 보였다. 그 창틀의 용도는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축문을 태우는 곳으로 태울때 나는 연기를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게 하였다.


 


 

 

도동서원도 여느 서원처럼 수월루에서 사당까지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전학후묘의 양식으로 앞에는 공부를 하는 강당을 뒤로는 신주를 모신 사당이 위치함을 말한다. 




2층의 수월루. 이곳을 지나면 도동서원으로 올라갈수 있다.

 

 


강당인 중정당은 스승과 함께 학문을 닦고 배우는 공간이며 그 아래에는 동재인 거인재와 서재인 거의재를 서로 마주보게 두어 유생들은 이곳에서 생활을 하였다.  또한 중정당을 받치는 기단을 자세히보면 완구의 블록을 쌓는 것처럼 잘짜여진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와 다람쥐 모양의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용은 물의 신을 의미한다. 도동서원의 기단에 있는 4개의 용머리는 여름철에 수시로 낙동강의 물이 범람을 하여 서원으로 들이치지 못하도록 하며 아울러 화재로 부터 서원을 보호하기위한 비보책이다. 도동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흙과 기와로 쌓은 맞담으로 중정당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만큼 도동서원의 흙담장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도동서원의 중정당은 정면5칸에 측면 2칸반의  규모로 옆에서 볼때 사람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좌우 1칸씩은 온돌방을 넣었고 앞으로 툇마루도 달았다. 온돌방 사이에 3칸의 대청마루를 넣어 툇마루와 서로 통하게하였다. 가을의 도동서원은 샛노란 은행잎으로 인해 한층 더 중후한 모습을 선사하는 곳으로 많은 문화재 답사팀들의 단골코스로 익히 이름이 알려져 있다. 대구 달성 여행지의 도동서원으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중정당을 위해 들어서야하는 환주문 아래에 설치된 조형물.

 

 

서재인 거의재로 유생들이 생활하는 곳

 

 

 

 

 

 

강당인 중정당

 

 

바둑판처럼 퍼즐 맞추듯 쌓은 기단의 모습과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위한 비보로 설치한 용머리의 모습.

 

 

 

 

 

 

동재인 거인재

 

 

 

 

 

 

 

 

 

 

 

 

 

김굉필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내삼문.

 

 

 

 

 

 

 

 

김굉필의 신주를 모신 사당

 

 

사각 모양의 창틀이 다른 서원에는 없다. 그용도는 재사를 모시고 난뒤 축문을 태우면 저 창문으로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되어 있다.

 

 

 

 

내삼문 앞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

 

 

 

 

 

 

 

 

 

 

보믈로 지정된 아름다운 도동서원의 흙담장

 

 

 

 

 

 

 

 

 

 

 

 

도동서원의 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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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 허브힐즈.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좋을 것 같은 대구 허브힐즈


365일 숲과 함께하는 에코테마파크 허브힐즈는 1978년 8월 냉천자연원으로 처음문을 열었다. 그 뒤 2004년 2월에 리뉴얼 공사를 시작하여 2005년 5월에 현재의 모습인 '에코테마파크 허브힐즈'로 재오픈하였다.


 



비가 주적주적 오는 주말에 방문을 하였는데 그 날에도 마지막 단풍을 즐기기 위함인지 특히 아이와 같이 온 가족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또한 우산을 받쳐든 젊은  연인은 마침 홍단풍 축제가 열려 붉은 단풍물이 비에 씻겨 허브힐즈를 물들게 하듯 더욱 붉게 물든 단풍에 매료되어 데이트를 즐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허브힐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연중 개장을 한다. 그와 함께 허브, 자연, 숲, 동물, 체험, 놀이등의 테마로 꾸며져 있어 둘러보는 내내 지겨울 틈이 없다. 다양한 조경시설과 놀이기구, 내손으로 만드는 딱따구리공방에서는 허브비누, 향초, 클레이 오르골, 토피어리, 허브 화분 심기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허브쿠킹체험, 에코어드벤처, 동물쇼 빰빠야~, 먹거리 마실거리등등등


 



 

허브힐즈의 관람코스는 울울창창한 숲에서 뿜어나오는 피톤치톤이 수목원에 들어선 착각을 갖게한다. 70~80여종의 허브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하게 피어 진한 향기를 제공해주며 허브정원에서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웨딩 촬영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데 새출발을 이곳 허브정원에서하면 평생을 부부싸움 없이 살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7년 4월에 대구 최초로 테마 녹차원을 이곳 허브힐즈에서 오픈하였다. 보성 해남의 녹차 산지에서 2~4년생의 묘목 2500그루를 300여평 규모로 조성을 하였다. 그와 함께 전통녹차향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정자가 운치있게 조성되어 있다. 인근에는 전통전래동화를 토피어리로 만날 수 있고 햇님달님, 선녀와 나뭇꾼, 게으른 소등을 보며 아빠는 옛 추억에 젖어 들게하고 어린이는 동화속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녹차원에는 김태희 녹차 정원도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요. 오면 알 수 있어요,ㅎㅎ


 



허브힐즈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메타쉐쿼이아는 키큰 나무 답게 장관을 연출한다. 소나무의 60배에 달하는 산소를 내뿜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상쾌한 느낌이다. 특히 봄, 여름에는 그 푸르름이 찐하고 가을겨울에는 떨어진 낙엽을 뒤로하고 중후한 멋을 자아내어 사계절 멋진 모습이다.

은행나무와 같이 공룡시대에 살았다하여 화석나무로도 부른다한다. 이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다양한 볼거리와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 동물원등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되어 있어 대구가 아닌 인근에서도 허브힐즈를 많이 찾는다. 사계절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는 허브힐즈에 하루 힐링을 잘하고 왔습니다.




◆대구 허브힐즈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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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국립대구과학관. '나도과학자' 국립대구과학관에 가면 누구나 과학자가 된다.


국립대구과학관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더하고 흥미와 관심을 높히고자 건립되었는데 연일 많은 관람객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어린이에게 인기가 높아 미래 과학 꿈나무들에게 유익한 경험과 과학의 이해를 돕고자 정식 개관이 될때까지 무료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국립대구과학관은 달성군 유가면의 비슬산 아래 11만7356㎡의 면적에 총사업비가 1,164억원이나 투자되었다. 지역민들에 과학 체험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불어 연구기관과 산업체 그리고 대학과 과학 기술의 클러스터를 형성하여 지역 산업과 관광과 연계한 특성화 과학관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국립대구과학관은 환경 친화적인 건물로 완공되어져 과학공원이며 체험과 실험 시연및 공연이 있는 에듀테이먼트( 에듀케이션(education, 교육)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오락)의 합성어로 게임을 하듯이 즐기면서 학습을 할 수 있는 형태)공간이자 4D와 오감으로 체험하는 4세대  과학관으로 65% 이상을 체험을 할수 있는 전시실로 꾸며 놓았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미래 과학분야를 이끌어 갈 것으로 국립대구과학관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구여행/달성여행)국립대구과학관. 세계 최대 물시계에 시선 집중 국립대구과학관에 가면 나도 과학자가 된다.


국립대구과학관은 1층 어린이관과 상설1관인 자연과 발견을 둘러볼 수 있고 2층은 상설전시관으로  과학기술과 산업으로 나누어 전시를 하고 있다. 국립대구과학관을 들어서면 먼저 물시계조형물과 만난다. 중앙의 홀은 3층 높이의 통층으로 설계되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이자 조형예술가인 '버나드 지통'박사가 제작한 전시품으로 물시계의 원리와 예술성이 관람객에게 흥미 유발 효과를 톡톡히 하고 있다. 국립대구과학관의 상징성 조형물로 국내최대 세계최대의 물시계이며 과학적 기술이 집약된 조형예술품이다.높이가 11m이며 320ℓ의 액체를 사용한다.





물시계에 들어가는 액체는 비이온수와 매탄올을 섞어 좌우의 유리 파이프와 각각의 항아리에 액체가 지나면서 시간을 표시한다. 물의 양과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진자와 사이펀을 이용한 현대적인 물시계로 국립대구과학관에 설치된 물시계는 세계 30여곳중 가장 규모가 크다. 





상설1관의 전시실은  자연과 발견의 주제로 다양한 테마로 구성을 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고 자연과 세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방법을 배우는 전시관으로 지구 환경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함께하고 한쪽에는 비. 강. 바다로 이어지는 물의 순환을 중심으로 자연생태계를 관찰 체험하며 지구와 물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도록 꾸며 놓았다.







국립대구과학관전시실은 과학적 사고를 하는 우리는 이미 과학자로 '나도 과학자'가 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상설2관에서는 과학기술과 산업으로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수 있다. 에너지가 고갈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로 변할까.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에너지 고갈 때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확인하며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살펴보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공간이다.





모바일과  IT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체험을 할 수 있다. IT 중에서도 가장 선도적인 모바일을 통해 정보과학기술의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며 IT 기술이 응용된 매체를 통해 놀이와 휴식을 즐길수 있다.그리고 대구지역의 특화산업인 미래섬유와 한의학, 광학 분야를 좀더 체계적으로 접해 볼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국립대구과학관은 미래과학자를 꿈꾸는 아이 또는 흥미유발을 위한다면 자녀와 함께 찾는다면 더욱 유익한 공부가 될 것 같다.   


  ◆국립대구과학관 둘러보기◆



세계 최대 물시계





























































































































































과학마당으로 개미집도 꾸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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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읍 마비정벽화마을. 6~70년대 우리 어릴적의 모습 마비정벽화마을의 벽화로 만났어요.


누구나 아련한 어릴적 추억에 가슴이 저며 옴을 느낀다. 시골에서 자랐거나 도심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내다 성인이 된 사람도 어릴적 유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을 울렁 그리게 하는 하나의 추억은 모두 가지고 있다. 필자도 어릴적에는 경주 외각의 시골마을에서 물안개 피어오르는 형산강을 바라보며 자랐다. 검정 고무신 코에 발가락을 걸어 힘차게 고무신을 높이 하늘로 날리며 책보 둘러메고 학교를 다닌 기억이 나를 들뜨게 한다. 마을길을 걷는데 옆집 바둑이가 반갑다고 아는 체 하며 쪼르르 달려나온다. 그때 냅다 차버리면 ‘깨깽’하며 불침 맞은 뭐 마냥 꼬랑지를 뒷다리 사이에 끼우고 달아나다 뒤가 캥기는지 연신 머리를 돌리며 뒤돌아보는 바둑이, 그러면서 “저런 애가 아닌데, 저런 애가 아닌데”하며 몸을 터틀터틀 흔들며 간다.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을 어릴적 추억을 생각하게 만드는 마을을 이참에 댕겨 왔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마비정마을로 삼필봉 언저리에 자리 잡은 산간마을이다. 현재는 벽촌 마을의 이미지는 바뀌어 예술작품의 그림들이 회백색의 담장을 가득 채우며 마비정벽화마을로 탈바꿈하였다.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읍 마비정벽화마을. 마비정벽화마을의 유래가 궁금해요.

줄지어 늘어선 차량으로 인해 이곳 대구쪽에서는 유명한 명소로 자리를 잡았는것 같다. 먼저 마비정마을의 유래를 보면 옛날 옛적에 한 장군이 마을 뒷산에 올라가 건너편의 바위를 향해 활을 쏘고는 말에게 말하기를 화살보다 늦게 가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말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화살을 어찌 따라잡을 수 있으랴. 그만 장수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는데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죽은 말이 불쌍하여 마비정의 정자를 세우고 죽은말을 위로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마음씨 좋은 마을이다.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읍 마비정벽화마을. 마비정벽화마을을 둘러보면 어릴적 추억이 살아나요.

마비정 마을은 비슬산에서 흘러 내려온 한가닥의 능선이 대구의 앞산 공원까지 이어진다. 그 능선의 푹 꺼진 곳에 고개를 만드니 청도와 가창지역 주민들이 한양이나 장날 화원장터를 가기위해 마을을 거쳐 가야만 되었다. 험한 산을 넘어 온 터라 사람이나 말도 많이 지쳐있어 이곳 정자에서 쉬며 타고온 말에게도 물을 먹이고 휴식을 시켰다. 그러면 말은 다시 기력을 회복하여 쏜살같이 빨리 달렸다하여 마비정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비정을 이제 둘러 볼까요◆


마비정벽화마을은 우리의 60~70년대 고향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무너진 담장하며 쓰러질듯 버티고 있는 옛집하며 지금은 무너져 내려 앉은 창고건물하며  그모습이 하나의 모습으로 굳어져 벽화가 된 마을 마비정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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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성을 쫓아 자가용을 몰고가면 마을 입구 갈림길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들어가야하는 수고를 해야한다. 하루 7회 운행하던 마을버스가 벽화마을이 되면서 많은 방문객으로 인해 횟수를 늘려 현재는 9회 운행한다고 한다. 그 만큼 대중 교통편도 편리하다는 이야기.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마을 안까지 버스로 갈 수 있어 걷는 수고스러움은 덜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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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모습을 한 아이. 얼굴에 나는 사고뭉치라는 말괄량이의 모습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어릴적 바로 나의 모습을 보는것 같다. 



 

 

2013년 9월에 뜀박질하는 예능 프로인 런닝맨이 이곳에서 촬영을 하였다고 현수막과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인기프로인 런닝맨이 왔다 갈 정도면 마비정마을의 인기도를 알수 있다.

 

 

 

먼저 입구에 벽화마을 안내도를 찬찬히 살펴 마을을 숙지하자. 



 

 

마비정마을은 주민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주민들의 생활에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않되겠다. '꼭 지켜주세요'를 숙지하여 주민이나 관람객이나 불편함이 없도록 하여야 겠다.



 

 

 

 마을입구에 마비정마을을 알리는 '내고향 마비정' 표지석과 '마비정 벽화마을'을 알리는 그림이 벽면에 멋들어지게 그려져 있다. 마비정마을의 벽화는 한분의 예술가가 3개월 동안 혼신을 기우려 만들어낸 작품이라 그런지 느껴지는 그림이 보통이 아니다. 



 

 

 

 담쟁이가 둘러쳐진 담장이 운치를 더하는 마비정마을 옛스러움이 더욱 묻어 난다.


 

 마비정 마을을 지키는 장승의 모습이 우스광스럽다. 잡귀는 물러가고 행복한 마비정마을을 바래는 주민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것 같다.  

 

 담장을 넘어온 어느집 목련꽃이 봄이 왔음을 알리며 화사하게 피어나고 누가 찾아 왔나며 동네 꼬마가 까치 발을 올려 목을 빼고  담장을 기웃하며 보고 있다.

 

 

 물어보는 손님은 없지만 아주머니의 부지런함에 집 주위 텃밭을 일구어 알타리무우와  늙은호박 감나무에 달린 떨감도 상품이 되어 팔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 

 

 

 

마비정마을은 그자체의 모습도 매력이 있다. 묵은 장맛이 맛있다고 개발되지 않은 손때 묻은 모습이 더욱 정이 가며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돌담의 모습이 남아 있는 마비정벽화마을.


 

 그림인듯 아닌듯 구분이 가질 않을 것 같은 벽화는 여느 도시의 벽화와는 조금은 다른것 같다. 소가 곧 마굿간을 뛰쳐 나올듯 머리를 내미는 모습에 '얘 그러면 안되' 하는 말이 입에서 곧 나올 것 같다.  

 

 토담집 뒷벽에 가로지른 장대가 달려 있다. 그곳에 메주가 주렁주렁 메달려 있는 모습은 여느집 풍경과 다를바 없다. 지게가 걸린 모습이 그림과 진짜 지게가 함께 있어 너무나 실감이나 지게를 져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때요 너무 운치있어 보이지 않나요. 멍석이 걸린 모습. 요즘은 보기힘들죠. 어릴때 광에서 멍석을 꺼내어 마당에 펴 놓고 그 위에 들어누워 하늘을 쳐다보곤 하였죠, 수많은 별들이 보석이 되어 총총 밤하늘을 밝히며 지네끼리 조곤조곤 속삭이는 것 같았고  별똥별이 멀리서 떨어지는 모습도 보곤하였던 어린시절이 생각나게하는 마비정.


 

 

그림같은 모습이다. 그림이 아닌 실제로 토방이며 황토방이라 그런지 군불을 넣어 찜질을 하고 하루쯤 쉬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좋을 것 같다.



 

 바삐 다니다 보니 목도 마르며 이곳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도 한잔하고 걸어요. 그래야 마을분에게도 조금은 위안을 드릴수 있을 것 같다. 냅다 사람만 왔다가면 손님으로서 예의도 아니지요.ㅎㅎ 


 

 

 

 

늠름한 장수의 모습이 너무 실감난다. 마비정의 전설을 알 수 있는 곳이며 천천히 읽어보면 왜 마비정이 유래되었는지 알수 있다.


 

 

 

 

요즘 관광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다. 사랑은 자물쇠로 채운다고 채워지는게 아니며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 두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며 이곳 마비정에서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엥, 내도시랏 누가 묵었노' 겨울에 난로위에 도시락을 올려둔 이런 진풍경도 이제는 다 옛날인가보다. 양은도시락도 사라지고 이곳에 만날 수 있는 어릴적 학창시절 타임머신을 타고 댕겨온 기분이다.  

 

 

 

 

 

 

 주렁주렁 달린 메주하며 장독대에 달린 금줄하며 어느집에서 장을 담그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일년 농사중 가장 큰 농사라는 장담그기. 음식맛을 좌우한다는 이집의 장맛이 궁금하다. 


 

 

'이랴 이랴, 워~워~' 농부의 밭갈이 벽화. 명작은 명작이다. 소의 눈을 보고 걸어보면 착시현상을 일으킨다는 안내문이 있다. ㅎㅎ


 

 

 

 

 

 

 

 

 


 접시꽃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올해는 풍년이 왔을 것 같다. 탈곡기가 신나게 돌아가고 볏단을 든 농부의 모습이 신명이 나 있다.

 

 

 시골마을에 새침때기 도시 여학생이 외갓집에 놀러왔나. 빨간구두에 시골동네에서는 인기 짱이죠.  빨강구두아가씨 ~~~ㅎㅎ 옛노래도 흥얼흥얼 해보게 만드는 마비정마을.

 

 

 사랑의 구애?????. 삼각관계,  이러면 안되죠. 꽃다발을 들고 다른 분을 찾아 보시는게 좋은 듯 ㅎㅎ 이런 재미도 있는 곳이다.  연인들이여 이곳에서 '창문을 열어라'하며 사랑의 구애를 해보심이. 

 

 

 

 

 

 

 

 

 

 

 

 

 

 

 

 

 

 

을의 어느집 풍경이다. 너무 아름다워  담장너머 카메라로 담아 보았다.


 

 

 

 

 

 

 

 

 

 

 

 

 

 

 

 

 

 

 

강아지 두마리 엄청 별난것 같다. 주인 고무신에 이리 볼일을 보고 아끼는 구두 물어 뜯는 것을 본  주인장, 뿔따구나 고무신을 냅다 던지며 '너 죽을래' ㅋㅋ 그래도 점박이는 모른체 하며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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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대구시민의 휴식처 화원동산


화원동산은 비슬산의 아름다운 산세와 대구를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과 금오강이 서로 만나는 곳으로 풍치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삼국시대 이전부터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신라때에는 토성을 쌓아 행궁을 두고 왕이 꽃을 감상할 만큼 아름다운 장소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봉화대를 설치하여 정치 교통 통신의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화원동산은 꽤 오래전부터 대구의 유원지가 되었다. 1928년 일제강점기때 대구부에서 유원지로 개발하고 1972년 대구의 향토주류업체인 금복주에서 용지를 매입하여 1978년까지 6년간의 조성으로 화원동산을 개장하였다. 현재는 5만6천평의 화원동산 일체를 금복주에서 대구시에 기증을 하여 시민들이 휴식과 함께 즐길수 있도록 하였다.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한국에 처음으로 귀신통이라 불렀던 피아노가 들어온 사문나루터


이곳 화원동산에는 한국에서 최초로 피아노를 배에 싫어 낙동강을 거슬러 대구로 들어 왔던 사문 나루터가 있었던 곳으로 화원동산과 함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1900년 3월26일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 보탐(1874~1908)부부가 한국 최초로 피아노를 낙동강을 이용하여 사문나루터로 들여와 대구종로인 현재의 약전골목의 숙소까지 운반을 하였며 이 때 피아노를 옮기던 마을사람들은 피아노를 “귀신통으로 불렀다”한다. 1년 뒤 한 대의 피아노가 사문나루터로 또 들어와 대구의 신명학교에 기증하였다.


 

사문나루터에서 본 낙동강의 모습.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이곳 사문나루터에는 매년 피아노를 이용한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그랜드피아노 100대의 선율이 올해 이곳 사문진 나루터에서 펼쳐졌다하니 웅장한 피아노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의 선율이 잔잔한 낙동강의 물결과 함께 장관을 연출하였을 것 같다.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일제강점기 "임자없는 나룻배"의 배경 화원유원지.


사문나루터에서는 일제강점기때 항일의식과 민족의식을 일깨워준 영화 “임자없는 나룻배(1932년 개봉)”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라 더욱 애뜻한 기분이 든다.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막걸리 한잔을 먹을 수 있는 주막주막이 있는 사문나루터와 화원동산


사문나루터는 예로부터 경상도 관아와 대구지역에서 낙동강을 이용하여 하류에서 올라오는 물산을 이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공급하는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나루터에 몰려들게 되었다.


 





어디서 “이봐요, 주모”하며 부르니 “예~ 에이”하며 쪼르르 달려가는 과부댁의 발 빠른 모습이 사문 나루터에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이 모여들던 곳에는 주막거리가 생기는 법, 나루터 평상에 턱 걸쳐 앉으며 컬컬한 탁빼기 한 잔과 쇠고기국밥의 정겨운 먹거리에 배를 채우고 길을 떠났을 듯한 사문 나루터의 모습이 그려진다.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대구 달성군에서 현재 복원공사가 마무리 단계 사문나루터와 화원동산


현재에는 달성군청에서 사문나루터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완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주모는 없지만 막거리 한잔과 국밥 한그릇으로 여행자의 배를 불려줄 주막이 들어서 있고 화원동산에 올라 핏빛으로 물든 단풍 길을 아이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보고 물산의 중심지였던 나루터에 걸터앉아 강물 속으로 노을빛이 젖어드는 사문나루터의 낙조 를 보는 여행을 한번 꾸며봄도 좋을 것 같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317번지 일대 

◆네비에 화원유원지를 입력하여 찾아가기. 





◆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둘러보기◆









주막 모습. 막걸리 한잔 하고 가세요




귀신통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서문나루터 기념비.
















연자방아














































화원정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고령강정보에서 사문나루터가 있는 화원동산까지 달성습지 생태환경 보고.


 

강정고령보에서 이곳 금오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화원유원지까지  18만평의 달성습지가 생성되어 있다. 자연생태계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달성습지가 국제자연보호연맹에 등록되어 있다. 환경부 지정 멸종2급 동물인 삵과 맹꽁이 그리고 너구리, 고라니, 살모사등 텃새와 철새등의 보금자리로 알려져 시민들의 사랑으로 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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