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혜산서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7호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일직손씨의 격재 손조서를 추모하기 위해
1753년에 서산서원으로 건립되었다.

격재 손조서는 조선시대 충,절,의 신하로
자는 인조 호는격재 휘는 조서 본관은 안동으로 안동 손씨라고도 한다.

벼슬은 통종대부호조참의, 집현전 학사등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로
이곳 밀양 용평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436년에 급제를 하여 사헌부 감찰 병조정랑
재임시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한직으로 물러났다.

그후 수양대군이 단종을 손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용평으로 낙향하여 용연정을 짓고 강학하였다.

그후 수양대군인 세조가 여러번 불렀으나 벼슬을 사양하며
이곳 용연정에서 세상과 문을 닫고 살았다.


그의 학덕은 점필재 김종직의 반열이요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이 스승으로 삼았던 격재선생.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으로
고종때와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려지면서
서원은 훼철되어 서산고택, 또는 철운재로 편액되었다..

지금 혜산서원에 들어서면
여타 밀양서원 예림서원등을 둘러 보아도 서원을 가르는 담장이 사실 없다.

그러나 혜산서원은 서원안의 건물을 담장으로 나누어 진 것을 볼 수 있다.
혜산서원은 전(田)자의 모양을 취하고 있다.
일반서원은 보통 일(一)자 형태로 교육과 제례의 배치를 하는데
혜산 서원은 북쪽에는 사당, 북동쪽에는 강당건물을 남서쪽에는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 남동쪽에는 서당으로 각각 구분을 하여 담장이 쳐져 있다.


당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한 조치로 보이며
서원이 아닌 재실과 가정집으로 위장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 진다.

1971년 옛 서원 터를 넓혀 중건한 후
각지역으로 흩어진 일직손씨 오현들을 한자리에 모셨다 한다.

현재 이곳에는 격재 선생의 문집책판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8호가 보관되어 있다.






































혜산서원의 600년 된 차나무

다죽리 혜산 서원 안에는 600년된 차나무 세그루가 있다 한다.
다죽리 인근인 엄광리에는 야생차밭이 있는데 그 유래를 보면
보두라는 중이 중국에서 가져와 차나무를 엄광사부근에 심었는데
그 차나무가 다죽리까지 번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일직손씨의 손관은 본관이 안동의 일직면으로
손관이 안동에서 밀양으로 세거지를 옮길 때 함께 가져 온 것으로 전해지는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차나무이다.



혜산서원 앞의 차나무








찾아가는 길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밀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1시간 소요. 부산역에서는 밀양행 열차가 5시10분 5시50분 6시35분 6시55분 7시45분 8시35분 9시25분 10시20분등  많이 있다 밀양역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밀양시외버스터미널로 간다 .  밀양터미널에서 남명리 얼음골행 및 표충사행 어떤 버스를 타도 다원마을에 정차한다.
얼음골6시10분 9시35분 (직행)10시55분 7시05분 8시, 9시05분, 10시40분, 11시30분
표충사6시20분 9시10분 (직행)7시35분,8시45분 10시10분 11시20분
그리고 감물행 고례행 국전행 시내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24번~금천리 용평~굴다리 통과~ 산외면 다원리 방향 우회전~산외면 사무소 앞
728x90

728x90

칠산정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칠산정.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문화재 관리의 현주소 밀양 칠산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8호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796번지

칠탄산 아래에는 두 재실이 있다.
칠탄정을 아랫재실 칠산정을 윗재실이라 구미마을에서는 부른다.

모두 손씨 집안의 재실이지만 칠탄정은 밀성손씨의 오한 손기양이 만년을 보내던 별업이고 칠산정은 일직손씨로 본관은 안동이다.

시조는 고려시대때 중국 송나라의 전란를 피해 우리나라로 귀화하였는데 원래 순씨였다 한다.
현종의 이름이 순이라 음이 같아 현종이 손으로 사성하였다.
현종때 개국공신으로 손응이며 그의 후손으로 충정왕때의 영의정인 ‘삼중대광판삼사사’ 정평공 손홍량이고 8세대인 격재공 손조서에와 일직손씨의 꽃을 피운다.
세종14년에 진사에 그리고 1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학사로 수양대군에게 단종이 폐위되면서 정치에 환멸을 느껴 낙향을 하게 된다.
그의 '두우시'에는 옛 단종을 그리워하며 ‘두견새도 나와 같아, 밤낮으로 끊임없이 우는구나’ 하며 신하는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세조가 이조참판에 재수함에도 거절을 하고 이곳 월연정 옆 용호정(밀양시 용평동 장선마을)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평생을 단종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등지며 보냈다.
산외면 다원리 혜산서원에서 봉향을 하고 있다.











칠산정은 격재공의 13세손인 처사 손응룡의 묘하재숙소이다.
손응룡의 증손자 죽암 손건이 즉 7개의 골짜기와 7개의 능선이 합해지는 곳이라하여
칠산이라하며 일곱실이라고도 하는 이곳에
1863년 9월에 창건을 하여 모선재, 구호당이라 하였다.
1895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5세손인 손기형이 1906년에 중수 하여 칠산정이라 하였다.







근대 초기 밀양지방의 양반재실로 별업을 겸한 재각이다.
정당의 마루는 재회의 장소로 좌우 온돌방은 재관들의 거처로 제수마련은 방앗간채와 고직사에서 하였다.
청송루의 누각은 온돌방과 누마루를 넣어 전사청, 직방등의 기능을 하였다.

 




문화재로 지정된 칠산정도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진다.
새로 올린 지붕(모양만 기와 모양)이 복원공사의 전부인지 모르지만 한복에 구두을 착용 한 것 처럼 엉성한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여기도 칠탄서원 처럼 대청마루에는 쥐생원들이 이집의 주인인양 쥐똥들이 즐비하고 청송루의 누마루는 음산한 기분 마저 든다.
언제까지 방치를 할런지 모르지만 지금 이상태라면 곧 또하나의 문화재가 사라질 판이다.
칠산정을 관리하였던 후손들의 기거한 건물의 모습은 칡덩굴에 집의 흔적만 보이고 땜질하듯 문화재 보수를 한후 관리를 하지 않으니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전체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는 문화재는 청도의 선암서원처럼 보수를 해 임대를 하여 고택체험이나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찾을 수 있고 훈기가 있는 곳으로 먼저 바꾸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래야만 자연적인 파괴는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찾아가는 길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밀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1시간 소요. . 들머리인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은 감물리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오전6시10분, 8시10분 11시50분, 구미교를 건너 우측 구미마을회관앞을 지나 마을 뒤 우측깊은 골짜기를 보고 따라간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24번~금곡인터체인지에서 단산마을로 내려서표충사 단장면 방향으로 내려선다. 금곡교를 건너 우회전하면 사촌마을~구미마을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