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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행/영동여행)영동 양산팔경 금강둘레길. 금강둘레길 걷기


금강둘레길은 충북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의 송호관광지 주차장을 출발해서 카누 카약 체험장~여의정~용암~봉곡교~강선대~함벽정~봉양정~비봉산 전망덱~봉황대~한천정사~세월교(수두교)~송호관광지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입니다. 

금강둘레길 전체거리는 7㎞이며 순수 산행시간은 3시간쯤 걸립니다.




영동 양산팔경 송호관광지 주소: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282-1

영동 양산팔경 송호관광지 전화:043-740-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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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송호관광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큼지막한 바위에 새긴 송호마을 유래를 보고서 마을 길을 따라갑니다.

바로 만나는 정자 앞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정표상 강선대 방향인 아니고 둘레길 방향을 따라 갑니다. 

송호청소년수련원 건물 사이를 지나면 강둑을 넘어서고 다시 주차장이 나옵니다. 

안쪽에 카약·카누 체험장 매표소가 있습니다.




금강 변의 카약·카누 체험장에서 오른쪽 강변길을 따라갑니다. 

이제 본격적인 금강둘레길이 시작됩니다. 

강변에 심어진 키 큰 나무로 둘레길은 더욱 운치가 있습니다. 

200m쯤 걸어가면 오른쪽 소나무 숲 사이의 너른 터에 바위를 디디고 선 정자가 있습니다.

 





여의정은 조선시대 연안 부사를 지낸 만취당 박응종이 낙향하여 금강 변에 정자를 짓고는 자신의 호를 따서 만취당으로 부르다가 1935년 그의 후손이 새로 정자를 짓고 여의정이라 고쳐 불렀습니다. 




여의정 주변으로 100년 넘은 소나무들이 1만 그루 이상 숲을 이루었는데 이는 만취당이 직접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송호관광지의 명성에 걸맞은 울울창창한 소나무숲과 정자는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거기에다 아름다운 자태로 긴꼬리를 늘어뜨리며 우는 이름 모를 새까지 있어 송호 소나무 숲의 진가를 보는 듯했습니다.



여의정



여의정 앞 금강 가운데에는 바가지를 엎은 듯한 바위가 있습니다. 용암·용바위입니다. 

용암에 관한 전설이 있습니다. 

이곳 경치가 정말 아름다워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연못에서 목욕하였고 때마침 승천하던 용이 선녀의 목욕장면을 훔쳐보다가 그만 떨어져 돌이 되었는데 그게 양산팔경의 7경 용암입니다.

 


금강둘레길 8경 용암



이곳에서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가 1978년 영화로 촬영되었던 곳입니다. 

이외에도 1972년 무녀도, 1955년 양산도 등 여러 편의 영화가 촬영될 정도로 아름다운 전경입니다. 

이곳에 ‘영화의 고향’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있습니다.



송호유원지를 나와 봉곡교를 건너 강선대로 향합니다. 

봉곡교 다리 위에서 보는 벼랑 위 강선대와 송호유원지 소나무숲, 굽이굽이 이어지는 금강의 경치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강선대 안내판을 따라가면 나무덱으로 연결된 강선대에 오를 수 있습니다.

 





강선대는 하늘의 선녀가 지상을 내려다보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찾다가 이곳을 보게 되었고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올라갔다 하여 강선대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보면 선녀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다 떨어져 돌이 되었다는 용바위도 지척에 있으며 그 가운데에 선녀 목욕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강선대



선녀의 전설답게 강선대는 굵은 소나무 뿌리를 내린 게 더욱 신비감을 주었습니다. 

금강둘레길과 비봉산 등 양산 팔경의 전체를 휘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강선대를 내려와 등선정 앞 갈림길에서 왼쪽 덱계단을 오릅니다.

 







완만한 솔숲길이이어지며 곧 정자와 만나고 삼거리를 지나면 빈 통인 무인판매소를 지나 덱계단을 내려갑니다. 

강 건너에는 조금 전 걸어왔던 송호관광지의 소나무숲이 가까이 보였습니다. 

완만한 너른 길인 금강둘레길은 함벽정으로 곧장 이어집니다.

 



무인판매대



 



송호유원지기 보입니다.









함벽정은 양산 팔경에서 5경입니다. 

앞면 3칸인 팔작기와지붕 건물로 1911년 옛 함벽정 터에 세워졌으며 금강변의 빼어난 경치로 조선시대에는 많은 시인 묵객이 찾아들어 시문을 나누고 교유하면서 학문을 강론했던 곳입니다. 

“언제나 푸름이 가득한 강물이 정각 앞에 흐른다“는 뜻의 함벽정은 오늘날에도 푸른 강물이 유유히 흘러내려 갑니다.

 


함벽정

 



봉양정

이시연을 따르던 문인들이 추모하여 세운 정자이며 특히 함벽정에서 만나는 비봉산 낙조는 이곳을 찾는 선비에게는 아주 유명했다고 합니다. 

현재 향토유적 제3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너른 길은 봉양정까지 이어집니다. 

양산팔경에는 그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금강변 북안에 살던 금운 이명주가 젊었을 때 동문수학하던 13명이 함께 세운 정자입니다.


비봉산 전망대



”어진 새들이 아침볕에 와서 우는 것을 보고"는 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옛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67년에 새로 지었습니다. 

봉양정을 지나면서 산길은 덱 길로 이어지는데 비봉산을 한눈에 볼수 있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세월교(수두교)



금강이 휘감아 돌고 양산 팔경 중 3경에 이름 올린 비봉산을 오롯이 만날 수 있습니다. 

덱계단을 벗어나면 세월교(수두교)에 닿습니다. 

세월교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에 있는 봉황대와 한천정사를 둘러보고 나옵니다. 

양산팔경의 4경인 봉황대는 금강을 두고 비봉산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돌출된 암봉에 최근에 쉼터인 봉황정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포구가 있었으며 그 옆 절벽인 봉황대에 누각이 있었으나 소실된 상태로 내려오다 2012년에 햇살마을 농촌개발사업으로 정자를 조성했습니다. 

지금이야 토사로 수위가 낮아졌지만, 옛날에는 돛단배가 강을 건너다녔다 합니다.


봉황대


한천정사

돌아오는 돛단배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봉대귀범(鳳臺歸帆)’이라 했습니다. 

도로 건너 숲길로 난 덱계단을 오르면 한천정사 누정이 있습니다. 

한천정은 백우 이시연을 추모하며 세운 정자입니다. 

바깥에서 보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림에 묻혀 있습니다.









다시 세월교로 내려와 다리를 건너면 금강둘레길은 왼쪽으로 꺾어 송호관광지로 향합니다. 

둘레길은 금강의 수변 길을 따라갑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강변의 반대편인 금강둘레길을 보면서 30분이면 출발지인 송호관광지 주차장에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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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행/영동여행)양산팔경 금강둘레길 봉양정 여행. 영동 봉양정


충북 영동군의 양산면을 가르는 금강에는 금강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송호 관광단지를 아우르는 금강 둘레길에는 양산면의 절경만을 따로 모아 양산 팔경을 정했는데 1경인 천태산의 영국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금강 둘레길 주위에 포진해 있습니다.




영동군 금강둘레길 봉양정 주소: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수두리 산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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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경 강선대, 4경 봉황대, 5경 함벽정, 6경 여의정, 8경 용암이며 양산팔경 금강 둘레 길을 걸으면서 명소를 즐길 수 있습니다.

3경은 비봉상 7경 자풍서당입니다.

이번에는 금강둘레길의 가운데 그림같이 앉아 있는 누각인 봉양정입니다.



이웃한 곳에 양산팔경의 5경인 함벽정이 있으며 봉양정은 양산 팔경에 그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빼어난 절경은 양산팔경에 이름을 올린 누각 못지않은 모습입니다. 

영동의 봉양정(鳳陽亭) 또한, 영동군에서 향토유적 제13호에 1996년 4월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수두리 대곡마을입구에서 동쪽으로 대략 900m 거리에 있으며 함벽정과는 능선 하나를 두고 금강변 북안에 금운(錦雲) 이명주(李命周)가 젊었을 때 함께 공부하던 유생 13명이 힘을 합해 세운 정자입니다.

 


봉양(鳳陽)의 유래는 ‘어진 새들이 아침볕에 와서 우는 것을 보고’는 이름 했다 합니다. 

그 뜻을 새겨 보면 패기 있는 젊은 유생 13명이 이른 아침부터 입신양명의 뜻을 펼쳐 공부하던 혈기가 그려지는 듯합니다.





금운 이명주의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당시의 봉양정은 남아 있지 않고 빈터로 있던 곳에 병신년(1967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의 경치가 얼마나 빼어났으면 봉양정을 일만 가지 기상이 있다고 하여 예로부터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의 소수와 상강이 서로 만나는 곳의 아름다운 절경에 이름 붙인 소상팔경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맞은편에는 비봉산이 우뚝한 게 금강변의 봉양정은 그만큼 뛰어난 절경을 자랑했나 봅니다. 

봉양정은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했습니다. 

모습은 함벽정과 비슷할 정도로 닮았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2칸에 1칸의 마루방과 삼면에 4 문짝의 들문을 달아 걸쇠에 걸도록 했습니다.

 



또한, 대청을 깔았으며 뒷면을 제외한 삼면은 각각의 봉양정 현판을 달았으며 전체적인 바닥은 뜬 마루입니다. 

지금은 나무가 웃자라 조망이 많이 가려져 당시의 운치 있는 금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게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강산대 함벽정 여의정 봉황대와 한천정등 소소한 즐거움이 많은 여행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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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행/영동여행)양산팔경 5경 함벽정, 금강둘레길 함벽정을 여행하다.


영동군이 금강 강변을 따라 금강둘레길을 조성했는데 그 가운데 양산 8경 중 5경인 함벽정을 여행했습니다. 

현재 함벽정(涵碧亭)은 향토유적 제35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함벽정은 양산면 봉곡리 산54번지에 있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이며 마루가 깔린 방 1칸과 대청 1칸에 양쪽에 툇마루가 연결된 팔작기와지붕의 정각입니다. 

현재 세워진 정각은 1911년에 함벽정 옛터에 새로 건립하였습니다.





영동 양산팔경 5경 함벽정 주소: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 산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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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과 마주하고는 양산면의 진산인 비봉산이 있습니다. 

오른쪽 금강 변에 봉황대가 있습니다. 

왼쪽 하류에는 용암과 강선대가 있으며 건너편에는 송호리 솔밭과 여의정이 자리해서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끊임없이 찾아들어 시문을 나누고 교유하며 학문을 강론하고 함벽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습니다.











특히 함벽정에서 보는 비봉산 낙조의 아름다움은 선비들 사이에서도 꽤 많이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함벽정의 유래는 확인 할 수 없으나 ‘함벽’의 뜻을 풀어보면 ’언제나 푸름이 가득한 강물이 정각 앞에 흐르고 있어“ 명명된 것으로 추정하며 이시연의 문인들이 그를 추모하여 세운 정자입니다.











함벽정 주위 산세가 정말 빼어난데 저 또한 송호리를 두 번 여행했지만, 매번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주변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함벽정에서 들으며 보이는 아름다움을 따로 정해 ‘함벽정팔경’이라 노래했으나 지금은 당시의 함벽정의 아름다움을 보고 들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함벽정을 찾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선대 입구의 금강둘레길을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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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행/영동여행)양산팔경 영동 강선대. 영동 최고의 관광지 송호국민관광지 영동 강선대 여행


공주와 부여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서 영동 강선대를 찾았습니다. 영동 강선대는 영동의 양산팔경 중 2경으로 손꼽는 곳이며 영동군 향토유적 제1호에 지정되어 그만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합니다. 강선대를 뜻풀이하면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곳’ 쯤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강선대 지명이 여러 곳이 있지만, 영동의 강선대는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빼곡한 비봉산과 금강물이 휘돌아가는 아름다운 곳에 자리해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 빼어난 진경 입습니다. 필자가 찾은 날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물안개가 앉은 금강과 강선대는 신선의 발자취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럼 영동 양산면의 강선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층암절벽인 강선대를 휘감으며 금강물이 흘러갑니다. 그 위에 육각형의 정자가 앉았는데 이곳을 강선대라 합니다. 강선대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천상에서 선녀가 지상을 내려다보다 금강에 비친 낙락장송과 우뚝 솟은 석대가 그림같이 잘 어울리는 게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넋을 잃고 보았다합니다. 그러다 선녀는 그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와 그 절경에 반해 강선대 아래 연못에서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강선대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전에도 정자가 있었다지만 지금의 정자는 1954년 함양여씨 종중에서 세웠다합니다. 이곳 강선대 일원은 그 경치가 빼어나 송호국민관광지로 지정해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사계절 관광지로 들썩이는 송호관광지는 푸르름을 잃지 않은 노송과 석대에 서릿발처럼 않은 단풍나무는 강선대와 함께 더욱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강선대에서 제일경은 뭐니 뭐니 해도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설경일 것입니다. 산수화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도 그 모습에 반해 울고 갔을 겨울 강선대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하얀 설원에 얼어붙은 금강과 용암, 북풍한설의 추위에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송호관광지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은 생각해봅니다.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어 머리를 흔들며 망상에서 깨어나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조심하며 금강천변으로 내려갔습니다. 여기서 보는 금강은 더욱 크고 넓어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에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던 장면을 훔쳐본 용이 승천하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아서 그만 떨어져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용암이 있습니다.










송호국민관광지 솔밭에는 여의정이 있으며 봉황의 안식처인 비봉산과 봉황대, 함벽정과 태산 같은 천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입니다. 오래전부터 시인묵객은 강선대를 만산홍엽이 물든 가을밤에 금강에 비친 둥근달의 황홀한 풍경을 보면서 선대추월(仙臺秋月)이라 칭송하였다합니다.

 




강선대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악 이안눌이 찾았던 곳입니다. 이안눌은 특히 시 짓는 일을 즐겨해서 많은 양의 한시를 남겼습니다. 동악 또한, 선녀가 하강해서 목욕했다는 강선대의 절경에 반해 남기 시가 있습니다.



“하늘 신선이 이 대에 내렸음을 들었나니

 

 

옥피리가 자줏빛 구름을 몰아오는구나..

 

 

아름다운 수레 이미 찾을 길이 없지만

 

 

오직 양쪽 강 언덕에 핀 복사꽃만 보노라.

 

 

백척간두에 높은 대가 하나 있으니,

 

 

비 갠 모래 눈과 같으며 물은 이끼와 같구나.

 

 

물가에 꽃이 지고 밤바람도 저무는데.

 

 

멀리 신선을 찾아 달밤에 노래를 듣는구나“


 


그리고 백호 임제가 있습니다. 백호는 호방한 성격으로 술과 기생을 즐겨 찾으며 칼과 피리, 거문고를 좋아했다합니다. 벼슬을 버리고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많은 시를 남겼는데 그런 그가 1583년 평안도도사로 부임하면서 송도의 황진이 무덤을 찾아 술상을 앞에 놓고 시문을 지은 일화는 임제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찬비를 뜻하는 ‘한우가’로 강선대를 노래했습니다. 찬비를 뜻하는 한우가 이지만 진짜 비를 만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비오는 강선대를 찾았기에 임제의 한우가를 읊어보며 강선대의 아름다움을 음미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생 한우가 있는지 한우야 하며 이름도 불러보고 주위도 둘러 보았지만 일장춘몽인 듯 공허한 메아리만 강선대에 울려 퍼졌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강선대를 잇는 금강둘레길을 저도 시인묵객이 되어 한우(?)와 꼭 걸어보고 싶습니다.





임제의 한우가와 기생 한우의 화답가입니다. 온몸이 따뜻해 오는 것 같습니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하며 읊자

 

 

기생 한우(寒雨)의 화답가가 걸작입니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나도 얼렁 집에 가서 전기장판에 불을 올려 찬비 맞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얼었던 몸을 녹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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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를 찾다. 거창 모리재


거창의 인물에서 동계정온선생은 큰 비중을 차지하며 조선 중기 충과 절의를 상징하는 인물로도 동계정온선생은 빼놓지 않고 거론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동계정온고택과 동계 선생이 말년에 머물렀던 모리재를 두고 많이 망설였습니다.





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73



2014/08/24 - (경남맛집/거창맛집)거창 거열산성 건계정 맛집 삼산이수. 거창 함토음식인 갈비탕과 갈비찜이 유명한 삼산이수에서 갈비탕 먹고 왔습니다.

2014/07/01 - (경남여행/거창가조여행)거창 가조 미녀봉 산행. 만삭의 여인을 닮은 아름다운 산 거창 미녀봉 등산 넘 좋은 산행지.

2014/05/23 - (경남맛집/거창맛집)거창스포츠파크, 거열산성 맛집 구구추어탕. 거창 향토음식인 추어탕과 어탕국수 맛있게 하는 구구추어탕.

2014/01/10 - (경남맛집/거창맛집)가조 엄마손 추어탕. 추운날에 먹는 따뜻한 엄마손 어탕국수로 겨울을 이겨내세요.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두 문화재를 두고 포스팅의 순서를 나름대로 고심했는데 그래서 동계선생의 절의에 상징을 뜻하는 모리재를 먼저 포스팅하기로 하고 동계 정온선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인근에 있는 집에서 그냥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시지 않고 정온선생이 모리(이름없는 동네)에서 은둔하며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는지 궁금했습니다.

 

화엽문

그러려면 먼저 동계정온선생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 했습니다. 동계선생은 모리재와 인접한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거창의 명소인 수승대와는 거리가 1k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입니다.




동계정온선생은 광해군 시절 선조의 적자였던 영창대군이 강화부사 정항에게 피살당하자 상소를 올려 그의 처벌과 인목대비 폐모론의 부당함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광해군은 동계의 격렬한 항의에 격분하였고 제주도 대정에다 위리안치의 유배형을 내렸습니다. 그 후 인조반정이 일어나 10년 만에 해배되면서 광해군 때 절의를 지킨 인물로 추앙받아 이조참판의 관직까지 올랐습니다.

 



1636년인 인조 14년에 10만 대군을 이끌고 청나라가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패했으며 인조는 궁을 버리고 급기야 피난을 가기에 이르렀습니다. 봉림과 인평대군, 비빈 등은 강화도로 피신하고 여의치 않은 인조와 소현세자는 남한산성으로 일단 몸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에 의해 강화도가 함락되어 왕자 등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인조는 청 태종에게 항복하여 무릎을 꿇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습니다. 청나라 화친파와 끝까지 싸우자며 척화를 주장하는 신하로 나누어졌습니다. 동계는 당시 명나라와의 의리를 내세우며 최명길 등이 내세운 화의 주장을 반대하다가 인조의 항복 소식을 듣고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합니다.





 

모리재


절명시의 앞부분을 보면 그의 애끓는 충절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임금의 욕봄이 이미 극에 달했는데

신하로서 어찌 죽음을 늦추겠습니까.

목숨을 버리고 의를 얻는 일이

지금이 바로 그렇게 할 때입니다“

동계의 자결은 시종이 발견하여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낙향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합니다.


구소


모리재의 위치는 덕유산에서 흘러 내려온 한 가닥이 황석산, 거망산, 기백산, 금원산인 1천 미터의 고봉을 만들었는데 이들 산군을 일명 경남 알프스라 부릅니다. 그리고 금원산에서 북동쪽인 위천을 향해 뻗은 지맥이 현성산이며 그 능선 자락에 꼭꼭 숨어 세상과 담을 쌓은 곳에 있습니다. 너무 깊은 산골짜기에 있다하여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하여 모리가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는 떠나면서 누가 나를 찾아 “어디로 갔냐고 묻거든 모리로 갔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돌과 풀을 엮어 움막을 짓고 ‘구소(鳩巢)’라 하였고 주위를 개간하여 기장과 조를 심고 풀뿌리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그때 동계를 찾아온 손님에게 “돌아가서 아무에게나 나의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합니다.








모리재는 강선대에서 2km 남짓 골짜기를 올라야 합니다. 모리재까지는 일제강점기 때 벌목을 위해 만든 임도가 시멘트 길로 포장되었지만 꼬불꼬불 좁은 길은 모리재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채미헌



모리재 입구에는 2층의 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1806년에 세웠으며 화엽루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이익공계 팔작지붕 기와 건물로 주변의 돌을 쌓아 주춧돌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 아래를 바치는 네모난 돌기둥과 둥근 나무기둥을 세운 층층의 누각입니다.




사당



각 모서리의 처마를 바치던 활주는 4개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 2개만 남아있습니다. 적막강산이란 말이 어울리는 이런 깊은 산속에 화려한 단청과 섬세한 조각을 한 웅장한 누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각 밑을 지나면 정면의 높은 기단 위에 모리재가 있습니다. 앞면 6칸에 옆면 2칸인 팔작지붕으로 2칸의 대청에다 좌우로 온돌방을 넣었는데 이곳을 찾은 지역 유림이 선생을 추모하고 서로 강론하며 공부하던 곳입니다.





모리재는 1921년에 전체적인 중수를 하였고 마루에는 구소와 채미헌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모리재는 선생이 낙향하여 지낸 것을 기념하여 사후인 1654년에 유림이 영당을 세워 제향하다 소실하자 1707년에 중건하면서 모리재라 하였습니다. 마침 제가 도착했을 때 승용차가 내려가던 것을 보았는데 이곳 모리재에는 아마 동계 선생의 후손이 생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모리재 내부는 후손의 손길이 닿아서인지 깨끗한 편이었으며 건물 뒤쪽에 사당이 있었습니다. 먼저 사당 입구의 삼문은 각 1칸의 맞배지붕인 일주문이며 사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초익공계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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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월성계곡 강선대와 민들레울의 모암정 여행. 거창 강선대와 모암정


거창의 명소 수승대를 지나면 남덕유산 초입의 갈계리 갈계마을입니다. 이곳에서 계곡은 나누어지는데 오른쪽은 덕유산의 언저리에 송계사를 품은 소정 계곡이요, 왼쪽은 남덕유산에서 흘러내린 월성계곡입니다. 그 품이 하도 넓고 깊어 골짜기마다 수많은 사연이 전설되어 내려오는 덕유산.





거창 월성계곡 강선대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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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거창 북상면의 덕유산 청정수가 모여 흘러내린 월성계곡의 첫 번째 경승지인 강선대(降仙臺)를 만났습니다. 강선대는 이름 그대로 ‘신선이 내려와 노닐다 간 곳’입니다. 주위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신선이 다 내려올까 싶어 필자도 신선이 된 기분으로 강선대를 찾았습니다.

 


강선대 마을과 강선대, 모암정을 함께 보면서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니 신선도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울고 갈 그런 곳이었습니다. 강선대는 사방이 산으로 둘려 그 앞을 흐르는 계곡과 소나무 숲이 감싼 마을은 풍수설에 ‘댓뒤’ ‘불무곡’이라 하며 모리재를 품은 모리산은 뒤를 막아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했습니다.

 




거창 북상면 월성계곡 13경의 4경인 강선대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반석이 계곡을 덮고 그 위를 타고 흐르는 옥구슬 같은 맑은 물은 마치 물방울이 구르듯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그런 곳입니다. 이런 곳에 한여름 더위를 피해 탁족을 즐기며 선비들이 시문을 서로 나누었을 정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없는 게 이상하다 할 정도였으며 역시나 나의 생각은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아름다운 정자인 모암정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고숲(古林)이라 불렀습니다. 고숲 한가운데인 강선대 암반을 깔고 은진임씨 정자인 모암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창 월성계곡 민들레울·모암정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582-2

거창 월성계곡 민들레울·전화:055-942-5006



모암정은 규모도 엄청나게 큰 것 같았고 화려한 조각 솜씨로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모암정(帽巖亭)은 조선 명종·선조 때의 문신이자 충신인 갈천 선생으로 불리는 임훈의 후손인 모암 임지예가 시를 읊고 공부하며 거닐면서 머리를 식혔던 곳입니다.



고종 때에 절충장군행용위부호군 및 동지돈령부사를 지냈으며 정려에 배향된 이름난 효자입니다. 은진임씨 후손들은 선조의 뜻을 기리며 추모하는 뜻에서 1921년에 건립한 정자로 모암의 호를 따서 모암정이라 하였습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넜습니다.






정자에는 올라갈 수 없게 막아 놓았지만, 부연(겹처마)과 처마를 받치는 4개의 활주인 돌기둥에는 도마뱀, 포도 덩굴 등을 새겼으며 우물마루를 깐 천장에는 아름다운 꽃병과 용 두 마리가 어우러져 있는 게 모암정의 가치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현재 모암정은 허브농원인 민들레울에서 정자와 땅을 매입하여 개인 사유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다른 곳의 정자보다는 훨씬 관리가 잘되어 보였는데 아쉽게도 원형에서 조금은 훼손이 된듯했습니다. 옛말에 효자 집안에 효자 난다고 모암정에서 월성계곡을 300m를 쯤 거슬러 올라가면 모암 임지예의 아들인 덕산 임진원을 기리는 정자인 덕산정이 월성계곡을 끼고 나란히 있습니다.

 





월성계곡의 맑은 물과 은은한 허브향이 가득한 모암정의 정자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면 이번에는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강선대 바위를 찾아갑니다. 강선대는 강선대 다리를 건너면 바로 만납니다. 정자나무인 노거수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큰 바위에다 강선대 세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이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이며 제단 같은 독특한 형태입니다. 또한, 조선 인조와 광해군 때 충절로 이름난 동계 정온선생이 병자호란 때 명나라와의 의리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지만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며 항복합니다.




정온선생은 청과의 화의를 끝내 반대하다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낙향하여 고향 뒷산인 모리에서 은거하며 일생을 마쳤습니다. 강선대는 정온선생의 은거지였던 모리와 지척에 있어 함께 여행하면 좋습니다. 아마 동계정온 선생도 이곳을 즐겨 찾지 않았나 생각하며 다음여행지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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