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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여행/함안가볼만한곳)고려동유적지. 조선에 있었던 고려땅 고려동을 아세요. 함안 고려동 유적지.


아직도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에 망한 고려땅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 고려국이 틀림없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고려동이란 이름으로 말입니다. 충신은 말할 때 불사이군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합니다. 많은 충신이 있지만 포은 정몽주 선생과 함께 고려말 삼은으로 불리는 목은 이색, 야은 길재를 대표적인 고려말 절의를 지킨 충신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말에 성균관의 진사였던 모은 이오 선생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 하자 고려의 신하로서 절의를 지키고자 산천을 주유하다 백일홍이 만발했던 이곳을 거처로 정하면서 집안 식구를 이끌고 내려와 돌담을 쌓고 고려국임을 뜻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의 비석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고려동 유적지로 불리며 들어서는 입구의 작은 개울에 걸린 다리가 고려땅을 알리는 ’고려교‘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부터는 고려땅입니다. 이오는 먼저 고려 영토를 뜻하는 국경인 돌담을 쌓고 고려인으로서 조선에 끝까지 저항을 한 분입니다. 여기에서 담안과 장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습니다.








이곳이 이오의 후손들이 19대 600여 년을 내려오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터였습니다. 선생은 숨지면서 유언을 남겼습니다. 절대로 조선왕조에서 벼슬길에 나서지 말 것과 자신의 신주를 이곳 이외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라 했습니다. 당시 이성계는 이오에게 벼슬길에 나설 것을 수차례 당부했지만, 그때마다 자신은 고려의 신하로서 거절하였습니다.









태조는 함안에서 올라오는 상소에 이오가 담장을 쌓고 자꾸 고려땅이라고 우기는데 어떡할까요?? 하면 워낙 세력이 약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그런 이오의 고려에 대한 절의를 인정하면서 고려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고려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태조는 자신의 신하에게도 이오와 같은 절의를 기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문인지 고려동은 오늘날까지 전해졌는데 고려동을 뜻하는 담장 안에는 주거지는 물론이고 우물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전답이 있어 재령이씨 이오의 후손들은 조상의 유지를 받들고 안빈낙도의 삶을 살면서 학문에 전념했습니다. 현재 마을은 재령이씨 후손 30여 가구가 생활하며 고려동학표비, 고려동 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고려전 3,000여 평, 자미정, 율간정, 복정 등이 있었다 하지만 6·25 한국전쟁으로 고려동의 건물은 대부분 파괴되어 폐허로 변했다가 다시 복원하여 오늘날의 고려동으로 제모습을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고려동에 남아 있는 건물 대부분이 최근에 복원되었습니다. 고려동의 모든 게 전쟁통에 사라졌지만, 당시 이오 선생의 불사이군 절의를 기억하는 백일홍만이 더욱 붉은 꽃을 피우며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


복정








고려전




고려동 담장







 

고려동 유적지 주소:경남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 

고려동 유적지 전화:055-580-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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