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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김천여행)수도산 최고의 조망처인 수도암에서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을 만나다.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


방가방가

김천 수도산의 청암사를 여행하면서 

내친김에 수도암 여행까지 하고 왔습니다.



 


청암사 수도암 주소: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수도암

청암사 수도암 전화:054-437-0700


2021/01/05 - (경북김천여행)수도산 최고의 조망처인 수도암에서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을 만나다.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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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불령산 수도암은 

본찰인 청암사에 비해 

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보물 제296호),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307호),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보물 제297호))의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번에는

보물 제297호인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을 

만나 보겠습니다.

 


현재의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며 

대적광전과 약광전 앞에 각각 있어 

동·서탑이라 하나 두 탑의 사이가 멀며 

조성 양식도 달라  

쌍 탑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도암에 세워진 삼층석탑은 

"옥녀가 베를 짜는 모습"이라는 

‘옥녀직금(玉女織錦)’의 위치에 세워졌으며 

삼층석탑은 베틀의 기둥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럼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을 

만나 보겠습니다.



서쪽에 세워진 대적광전 앞의 서탑은 4.25m이며 

동탑에 비해 높이가 조금 높습니다.

 


이중 기단이며 중석 각면에 

모서리 기둥과 안기둥 1주가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층마다 1매씩이며, 

1층 몸돌에만 연꽃대좌 위에 

여래좌상을 돋을새김 했습니다.

 















동쪽에 세워진 약광전 앞의 동탑은 3.76m 이며

단층 기단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렸습니다.





1층 몸돌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형태로 

모서리 기둥을 새겼습니다.

 




각면의 모서리 기둥 안쪽에 

5㎝ 깊이의 감실을 만들어 

그 안에 연꽃대좌위에 

여래좌상을 돋을새김 했습니다.



면석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은 

수도산 상부에 위치하고 있어 

조망이 끝내 줍니다.

 





단지봉과 좌일곡령, 

석화성이라는 가야산 상봉이 

바라다 보이는 최고의 위치입니다.

 






수도암은 청암사를 창건한 도선국사가 

수도도량으로 수도암을 창건했다고 합니다.



이탑은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가 조성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디지털김천문화대전·안내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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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여행/포항기볼만한곳)오어사. 포항에서 가볼만한 산사 운제산 오어사 여행.


포항 운제산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천 년도 훨씬 넘은 고찰로 자장율사에 의해 창간되었다 합니다. 처음에는 창건과 함께 항사사라 불렀습니다. 오어사의 사찰명에서 재미있는 전설이 삼국유사 제4권 의해편에 전합니다.





☞2016/09/30 - (포항여행/포항가볼만한곳)포항 운제산 오어사 자장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는 운제산 오어사 자장암 절집구경. 자장암

2016/09/27 - (포항여행)운제산 오어사. 1300여년전 원효대사께서 쓰든 삿갓과 보물 제1280호 오어사 동종을 포항 오어사에서 만나다.




그 내용을 보면 혜공대사와 원효대사가 이곳 운제산에서 수행한 일화입니다. 혜공은 지금의 오어사인 항사사에 머물었으며 원효대사는 산자락에다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정진했습니다. 그 당시 혜공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전업을 잇는 유학을 다녀와 70여 명의 대중을 모아놓고 이곳 항사사에서 불법을 전하며 지냈습니다.




혜공은 원효가 중국으로 유학길에 오른다는 소문을 듣고 원효를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혜공은 원효에게 “먼 중국까지 가서 부처님의 대법을 깨우치려면 신통한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법력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며 제한을 합니다. 혜공의 제한은 기발하였고 원효도 당장 수긍하였습니다.

 


절 앞 계곡의 물고기를 가르치며 각각 물고기를 한 마리를 잡아 삼켜 대변을 본 뒤 살아서 움직이는 물고기를 이기는 거로 하자며 두 대사는 물속에 첨벙 뛰어들어 각각 산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아 삼켰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죽어서 나오고 한 마리는 힘차게 헤엄을 치고 노니는 것을 보고 두 대사가 서로 “저게 내 물고기다”라며 서로 자기 물고기가 살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뒤 항사사는 나오(吾)자에 고기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도력이 뛰어났던 두 고승도 내기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가 봅니다. 서로 내가 이겼다고 하니 말입니다.


오어사 대웅전


어찌했던 원효는 유학길에 두 번 올랐다가 한번은 고구려군에 잡혀 실패하고 한번은 의상과 함께 다시 당나라로 가던 중 동굴에서 잠을 자다 목이 말라 바가지에 든 물을 아주 맛있게 마셨는데 다음날 깨어나 지난밤 맛있게 먹었던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겼던 물임을 알고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고 그길로 유학길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갑니다.



두 고승이 머물렀다는 포항 운제산의 오어사는 자장과 의상대사 등 신라의 4대 성인이 수행한 사찰이며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도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지금이야 주변에 포항제철 등이 들어서서 사람들로 붐비지만, 당시에는 아마 절해고도의 정적만 감돌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님들의 용맹정진하는 수행공간으로는 아주 좋았을 것이며 주변의 산세 또한, 금강산이 따로 없을 정도로 빼어나 스님의 수행장소로는 최적이었던 가 봅니다. 운제산의 산 이름도 참 예사롭지 않습니다.



현재 오어사가 있는 주변을 보면 바위봉우리가 병풍같이 둘러졌는데 원효와 의상대사는 오어사가 마주 보는 계곡 건너 벼랑에서, 자장과 혜공은 지금의 자장암이 있는 바위벼랑 꼭대기에서 각각 수행하였고 이들은 구름을 불러모아 사다리를 만들어 서로 내왕해서 ‘구름사다리산’이라는 뜻의 운제산(雲梯山)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장과 원효, 의상 등 모두 중국 종남산의 운제사에서 공부를 했거나 그에 관련된 전설이 있는 것을 보면 운제산이란 이름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오어사의 유물 박물관에는 관심을 끌게 하는 유물이 있습니다.


원효대사 삿갓

원효대사께서 사용했던 삿갓과 고려 시대 범종인 오어사 동종입니다. 원효대사 삿갓은 7세기로 추정하는데 1,300년의 시공을 뛰어넘었어 그런지 그 형태만 남아있으도 삿갓임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유구한 세월을 보여주는 듯 해어진 삿갓은 종이와 실로 짓고 안에는 솜을 넣고 바깥에는 아주 가는 풀뿌리로 만들었다 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대나무를 가늘 게 쪼개어 만든 느낌입니다.


오어사 동종






오어사의 중심건물은 대웅전입니다. 석가 삼존불을 주불로 모셨는데 언제 대웅전이 지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웅전 상량문에 보면 1741년 영조17에 중수한 것으로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이며 포작은 3출목의 다포형식으로 1985년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2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대웅전 내부에는 주존불인 삼존불은 3단의 수미단 위에 봉안하였고 그 뒷벽에 후불탱인 불화를 걸었습니다. 또한, 삼존불을 모신 천장쪽으로는 연꽃봉우리를 조각한 닫집을 달았는데 화려한 게 웅장하며 분위기 또한 엄숙합니다.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여 연꽃무늬로 화려하게 단청을 했으며 좌우로 조각된 두 마리의 용은 대웅전을 더욱 위엄있게 만듭니다. 



오어사의 대웅전은 내부에도 많은 공을 들였지만, 바깥에도 정교한 조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공포는 외2출목으로 구성했는데 밖으로 돌출된 보머리는 봉황과 귀포의 상부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여 대웅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앞쪽에 3칸의 문은 맨 밑에 청판, 가운데 꽃살, 위쪽에 빗살문양으로 삼분합문으로 구성했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살은 조금씩 다른 모습입니다. 이는 꽃이 피는 모양을 다르게 표현한 세세한 조각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포항 여행에서 사찰을 여행한다면 반드시 가야 할 곳 중 하나로 오어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어사의 산경과 함께 문화재인 오어사 동종, 웅장하면서 정교하고 화려한 오어사 대웅전을 만나보세요. 그리고 천년전의 원효대사 삿갓도 만나는 행운을 누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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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는 부석사의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있습니다. 수덕사는 가요의 ‘수도사 여승’이 대웅전보다 더욱 유명하며 부석사는 무량수전이 워낙 유명한데 그에 반해 봉정사는 상대적으로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도 봉정사 방문 전에는 그저 극락전 정도 있다는 것만 알았지, 봉정사의 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봉정사 일주문


그러나 안동의 봉정사도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이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봉정사의 문화재를 보면 극락전과 대웅전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고금당과 화엄강당은 물론이고 후불벽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보물이며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최근까지 봉정사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날려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세웠으며 그중 한곳이 지금의 봉정사라하였습니다.


 

 


그러나 1971년 극락전 수리과정에서 상량문이 나왔으며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에 능인대사가 창건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봉정사를 품은 산은 처음에는 대망산이라 불렀습니다. 능인대사는 도를 터득하려고 대망산 바위굴에서 수도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다 천녀가 나타나 능인을 시험하기 위해 파계하여 함께 살 것을 유혹하지만, 끝끝내 부처님 말씀을 따르겠다며 거부하였고 천녀는 스님의 도력에 감복하여 옥황상제께서 내린 등불을 굴 안에 환히 밝히게 하였습니다.


 

 


스님은 더욱 수도에 전념하였고 도력으로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봉정사를 창건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하늘에서 등불이 내려왔다.’ 하여 천등굴이라 하였으며 산도 천등산이 되었습니다. 봉정사는 창건과 함께 대략 6번의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 번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근대인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인민군이 주둔하면서 사찰에 보관 중이던 여러 경전과 사지(寺誌) 등을 불태우는 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한, 1999년 4월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 방문을 하면서 이곳을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그럼 먼저 천등산 봉정사의 일주문을 보면 현판은 추사체의 맥을 잇는 서예가 은초 정명수(1909~1999)선생의 글씨입니다. 이외에도 해인사의 해탈문과 진주 촉석루 등 힘있는 선생의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 날아오르는 봉황을 닮은 듯 한 보호수 소나무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면 봉정사를 들어서는 입구인 만세루입니다.


 

 

 

 


만세루는 봉정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고색창연하며 켜켜이 때가 묻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여느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천왕문 등은 없지만 2층 누각 형태인 만세루 아래를 지나야만 법당에 이르게 됩니다. 만세루는 1680년(숙종 6년)에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덕휘루(德輝樓)라 불렀습니다.


 

 

만세루 


만세루는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마당 높이와 같은 단층입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2층 누각으로 1층은 출입구 역할만 합니다. 그리고 2층은 휴식을 취하는 정자와 스님의 강학장소인 강당을 겸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6/05/31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만세루.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하며 묵직하여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봉정사 만세루, 봉정사 만세루


 

 

 

 

 

 


만세루와 마주한 건물이 두 개의 봉정사 중심 건물 중 한곳인 국보 제311호 대웅전입니다. 대웅전도 극락전과 함께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대웅전은 1428년(세종 10년)에 불화기록과 1431년에 단청을 칠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1425년인 세종 7년쯤에 중창한 것이 아닌지 추정을 했는데 최근 고려시대 불화로 추정되는 후불벽화가 발견되어 대웅전 조성을 고려 말기로 보고 있다고도 합니다.


 

 

 대웅전


 

 

2016/06/02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후기의 고건축물로 평가받는 독특한 불전인 국보 제311호 봉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특이한 것은 대웅전 앞면에 조선시대 누각 형태인 툇마루를 달아내었다는 점인데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접목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1963년 1월 보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국보로 다시 승격되었습니다.


 

 

 

 

 

 

 

 

 

극락전


그리고 대웅전과 함께 봉정사의 중심법당인 국보 제15호 극락전입니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건축물로 가장 오래된 곳 중 한 곳입니다.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며 무량수전, 아미타 전이라 부릅니다. 1972년 해체 수리하면서 인조 3년인 1625년 작성한 상량문 기록을 찾았는데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에 극락전의 지붕을 수리했다고 되어 있어 벌써 그 이전에도 건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극락전은 가운데다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불당 벽을 만들어 불단을 설치했으며 닷집은 화려하지 않고 섬세하게 꾸몄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4칸의 맞배지붕건물로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대장전으로 불리다가 극락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극락전 앞에는 고금당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화엄강당을 세워 극락전과 대웅전을 두 개의 영역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금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맞배지붕을 하였습니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도 당시 건축기법이 주목받을 만큼 인상적이며 보물 제449호 지정되었습니다. 1969년 해체 수리과정에서 1616년인 광해군 8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을 찾았는데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엄강당 


화엄강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화엄강당은 ‘양법당중수기’를 보면 17세기에 대웅전을 고쳐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때 화엄강당도 창건이나 수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전의 대웅전을 고려하여 간결한 장식으로 꾸몄으며 법당과 강당의 차별성을 두려 했습니다. 보물 제448호.


 

 


2016/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무량양회


 

 

 

 

 

 


봉정사 삼층석탑


극락전 앞에 자리한 봉정사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중 기단에 석탑은 전체적인 무게로 인해 기단부가 일부 깨져있습니다. 또한 상륜부 일부는 분실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입니다. 고려시대 석탑이며 평범하며 일반적이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2016/06/16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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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만세루.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하며 묵직하여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봉정사 만세루, 


안동시 천등산 아래의 봉정사는 일주문을 들어서면 여느 사찰에서 보는 천왕문 등은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길게 돌계단을 만들고 그 끝에는 2층으로 된 만세루가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한 채 묵직한 느낌을 주며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안동 봉정사와 인근 여행지 맛집 둘러보기 ◆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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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맛집 남안동 휴게소. 안동에서는 꼭 먹어야 할 음식 1호 안동 간고등어 맛집 남안동휴게소





 봉정사 만세루는 숙종 6년인 1680년 세워졌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면서 많은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건립하여 처음에는 덕휘루(德輝樓)라 불렸다는데 언제부터 만세루(萬歲樓)로 불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세루는 봉정사를 들어서는 출입문 격인 누문입니다. 특히 봉정사는 산비탈을 깎아내어 너른 평지로 다듬기 위해 축대를 쌓았는데 축대 가운데 만세루를 만들고 그 아래 출입하는 계단을 내어 자연스럽게 경내로 올라오게 했습니다.

 

 

 


만세루는 밖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경내의 지면과 똑같은 단층으로 보입니다. 봉정사 만세루는 앞면 5칸에 옆면 3칸이며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홑처마 맞배지붕 2층 누각입니다.

 

 

 

2층 누각이지만 1층은 그저 출입구 역할을 하는 계단이 전부이며 2층은 건물의 형태 등으로 보면 정자 역할과 강당 역할을 겸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2층 바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한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을 둘렀으며, 공포를 구성하는 부재중 기둥의 머리에 보 방향으로 중첩해서 설치하는 장방형 단면의 긴 부재인 살미의 끝은 직절하였으며 내부의 기둥과 보를 연결해주는 보아지는 평평한 면에 도드라지게 새기는 초각을 하였습니다.

 

 


봉정사 만세루의 내부는 일고주 5량의 구조이며 누각을 받치는 기둥은 자연 형태 그대로 휘어지고 섞고 세월의 때가 켜켜이 묻은 나뭇결이 고색창연하여 외관상 보면 봉정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같아 보입니다.

 

 


만세루는 봉정사의 다른 건물과 다르게 전체적으로 장식을 거의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입니다. 현재 만세루에는 운판과 북, 목어를 설치하여 봉정사의 일상적인 행사가 이루어지며 덕휘루 현판과 기문 등이 걸려 있다는데 빠듯한 일정으로 바빠서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요즘 같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반질반질 윤기 가득한 만세루 누마루에 올라 두 다리 쭉 뻗고 슬렁슬렁 불어오는 자연 숲 속 바람을 맞으면서 쉬고 싶은 그런 정자입니다. 2001년 11월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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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통일신라 최고의 걸작품 지증대사 부도인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봉암사지증대사탑


문경 희양산 봉암사는 1100여 년 전 신라 헌강왕 5년에 지증대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입니다. 봉암사 경내에는 구산선문의 희양산문 개산조 지증대사의 사리탑인 부도와 탑비가 나란히 있습니다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무덤입니다.





◆문경 봉암사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23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극락전. 잦은 화재로 봉암사 전각중 유이하게 남은 보물 제1574호 봉암사 극락전의 독특한 목탑양식 당우를 만나다. 봉암사 극락전

2016/05/20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무릉도원의 선경인 용추동천의 백운대에 자리한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을 만났습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2016/05/17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그러면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은 지증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을 뜻합니다.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은 보물 제137호에 지정되었으며 지증대사는 통일신라 말에 활동하던 승려입니다. 법명은 도헌(824~882)이며 자는 지선으로 김씨성에 경주사람입니다

 


아버지 찬괴와 어머니 이(伊)씨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 불가의 가르침를 따르겠다며 영주 부석사로 출가하여 840년 (문성왕 2년)에 그의 나이 17세에 경의율사에게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헌강왕 7년(881)에 왕사에 임명되지만 간곡하게 사양하고 봉암사에 돌아온 다음 해에 결가부좌로 입적하였습니다. 그의 나이는 59세에 법랍 43년. 헌강왕은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시호는 지증, 탑명은 적조를 내렸습니다.



지증대사 적조탑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승탑 양식인 8각원당형을 따랐습니다. 승탑의 전체적인 높이는 341cm, 지대석 너비가 228cm이며 옥개석이 일부 파손된 것을 빼면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하겠습니다.

 


문화재청의 자료를 보면 지대석은 넓은 돌을 여러 장 네모반듯하게 바닥 돌로 깔았으며 가운데 탑신부의 탑신에 사리를 봉안하고 위로는 옥개석을 덮어 부도의 상륜부인 머리 장식을 받치게 하였습니다.

 

 

 

 


이를 받치는 기단부는 하·중·상대석으로 나누는데 하대석은 구름무늬 조각인 안상에 사자를 조각했으며 중대석에는 비파, 피리, 북 등을 연주하는 주악 인물상과 연꽃으로 장식한 사리암, 공양천인상이 조각되었습니다.

 

 

 

 

 

가릉빈가 



그리고 중대받침석에는 각 모서리마다 구름이 새겨진 기둥 조각을 세우고 그사이에 우아하고 섬세하게 조각한 가릉빈가를 새겨 넣었습니다. 가릉빈가는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이며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상상 속의 새로 부처님이 설법할 때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대석은 탑신을 괴는 탑신 괴임을 두었고 각 모서리에는 작고 둥근 기둥 조각을 세워 난간을 나타냈습니다. 탑신은 팔각의 몸돌 각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앞뒤 두 면에는 사리를 보관하고 자물쇠가 달린 문짝 모양을 조각하였습니다.

 

 

 

 

 

 

 

 

 

 

 

 


문 문양 양옆으로는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조각하였고, 남은 두 면에는 보살을 돋을새김했습니다. 옥개석은 몸돌과 같은 팔각이며, 아래 면에 조각된 서까래는 두 겹으로 표현하여 겹처마 집을 연상하게 합니다. 처마는 살짝 들렸으며 그 끝에 꽃장식이 달렸습니다.

 


상륜부에는 노반인 연꽃받침 위로 복발, 보름, 보개, 보주 머리 장식이 차례로 얹혔습니다. 스님이 열반에 들자 시신을 현계산 안락사(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일대)에 모셨다가 다시 1년 후 인 883년 12월에 그의 제자들이 희양산 아래에다 대사의 시신을 장사 지내고 지금의 자리에 적조탑을 세웠다합니다.

 

 


봉암사 적조탑은 883년인 헌강왕 9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며 국보인 화순의 쌍봉사 철갑선사 부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그 조각수법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신라시대 부도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습니다. 정말 또하나의 아름다운 승탑을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만났습니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보물 제137호

문경 봉암사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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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경상북도 안동시에는 500m가량 높이의 천등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산의 높이와 품새보다 산이 지닌 품격은 여느 명산에 비교해도 부럽지 않습니다. 천등산 정상 아래에는 천년고찰을 두개씩이나 품고 있는데 봉정사와 개목사입니다.




◆안동 개목사 인근 맛집과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2014/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2014/02/0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맛집 남안동 휴게소. 안동에서는 꼭 먹어야 할 음식 1호 안동 간고등어 맛집 남안동휴게소



그중 봉정사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 현존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봉정사는 국보와 보물 등 작은 산에서 큰 사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는 앞으로 포스팅하겠지만 오늘은 소경 전설이 있는 개목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개목사는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스님이 창건하고 처음에는 흥국사라 하였습니다.




창건설화를 보면 천등산 정상아래 바위굴에서 능인스님이 정진수행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천녀는 스님의 수행을 시험하고자 온갖 감언이설로 파계하여 속세로 하산해 함께 살 것을 꼬시지만, 스님은 오직 부처님만 믿을 뿐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


천녀는 스님의 마음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님에게 부처님의 공덕을 시험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스님의 수도처인 동굴이 너무 어두워 옥황상제께서 보낸 등불로 환하게 밝혀 더욱 용맹정진하여 도를 이룰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능인스님은 더욱 정진하였고 마침내 크게 깨우쳐 하늘이 내린 등으로 도를 깨우쳤다 하여 대망산이라 불렸던 산은 천등산으로 바뀌었고 스님이 도를 깨친 굴은 천등굴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천등굴 아래 너른 터에다 99칸의 절을 세우니 이곳이 개목사의 전신인 흥국사입니다.




흥국사가 언제 무슨 연유로 개목사로 바뀌게 되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습니다. 조선 세종 때의 명제상이던 고불 맹사성(1360~1438)은 풍수지리에도 아주 밝았습니다. 그가 안동 부사로 부임하면서 안동 관내를 시찰하다가 유달리 소경(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 그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천등산에서 흐르는 지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당장 흥국사를 찾았고 개목사로 이름을 바꾸게했더니 더 이상의 소경은 없어졌다 합니다. 그와 비슷한 전설은 천등산의 지세로 인해 소경이 많았는데 능인스님이 도를 깨치고 흥국사를 세운 다음부터 소경이 없어졌다하여 개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보면 모두다 개목사로 인해 눈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는 똑같습니다.




개목사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1969년 해체하고 수리하면서 '천순원년(天順元年)' 글귀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1457년인 세조 3년에 처음 지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개목사 원통전의 규모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단층으로 맞배지붕형식에 풍판을 달았습니다.




내부의 천장은 뼈대가 드러난 연등 모양으로 윗부분이 노출되었으며 법당 안을 온돌방으로 구성하여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서는 아주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특히 개목사의 건물 형태는 안동의 많은 고가 종택을 닮았습니다. 사대부 문간채형식의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개목사 중심 건물인 원통전입니다.

 




문간채의 분위기를 보면 억겁의 세월이 내려앉은 듯한 무게 때문인지 원통전보다 더 오래된 모습입니다. 요즘같이 무더운 때 개방된 대청마루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았습니다. 낮은 돌담으로 넘어오는 바람은 오후의 나른했던 피로를 싹 삭혀주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 한다며 전국의 문화재를 찾아 쫓아다니고 눈도 충혈되고 피로했는데 소경을 치료했다는 개목사에서 잠시라도 눈을 감아보았습니다. 혹시 아나요? 개목사 이름답게 아픈 눈을 시원하게 낫게 해줄지요. 



 

◆안동 개목사 여행정보

★안동개목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362 

보물제242호 1963년 1월21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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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이번 부처님오신날 문경에 있는 희양산 봉암사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봉암사를 가기 위해 여러 번 벼루고 벼룬 절집여행인데 갔다 왔다는 행복감보다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쉬움이 많았던 여행이었습니다.




◆희양산 주변 가볼만한 여행지◆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포스팅을 보다가 아니 무슨 사찰을 찾아가는데 벼루로 가는 야고 저에 반문하겠지만, 이곳 희양산 봉암사는 여느 사찰처럼 가고 싶다고 해서 불쑥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년 중에 그것도 부처님오신날 딱 하루만 봉암사 산문을 개방하고 그 외에는 산문 폐쇄로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혹시나 못 보고 빠트리고 오지 않을까 싶어 미리 집에서 봉암사 여행을 위한 여러 문화재 자료를 찾아 준비를 꼼꼼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출발하면서 분명히 자료집을 챙겼는데 막상 봉암사 앞에서 문화재 자료집을 어찌했는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정진대사 원오탑비만 보고 승탑인 정진대사 원오탑은 찾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외 ‘함허당득동탑’, ‘환적당지경탑’ 등 조선시대 승탑도 빠트리고 오는 바람에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 봉암사 여행이었습니다. 첫술에 배불리 먹으려는 게 지나친 나의 욕심이었는지 아니면 내년에 다시 봉암사 여행을 계획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인지 모르지만 다시 한 번 봉암사 계획을 세워야겠습니다.



봉암사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이번에는 봉암사의 중흥기를 이끌었고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는 중창을 하여 오늘날 봉암사의 뿌리를 있게 했던 분이 정진대사입니다. 정진대사 원오탑비는 봉암사 일주문에서 계곡 건너편 묵밭 가운데 비각에 모셔져 있습니다.

 


승탑과 비문은 대부분 같이 세워져 있는데 정진대사 탑비와 비문은 서로 떨어져 있어 안내판이라도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아쉽지만 정진대사 원오탑비만 이번에 보겠습니다.

 

 


정진대사 원오탑비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스님으로 성은 왕 씨며 정진대사(878~956) 긍양의 공적을 각자하여 남긴 기록입니다. 정진대사탑비는 고려시대 965년인 광종 16년에 건립되었는데 높이가 273cm, 폭 161cm, 두께는 26cm로 당시 고려시대 초기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신은 청석이며 귀부와 이수는 일반적인 고려 초기의 탑비 방식을 따랐으며 귀부인 거북받침돌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인 머릿돌을 올렸으며 거북 등에 비를 꽂는 비좌가 큰 게 특징입니다. 이수의 끝에는 불꽃무늬에 둘린 연꽃봉우리 문양의 보주 장식이 정진대사탑비를 더욱 웅장하게 만듭니다.

 

 


 비문의 필체는 2cm 크기 구양순체 해서이며 당대의 문장가인 이몽유가 짓고 명필이었던 장단열이 쓴 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비는 정진대사 입적 9년 만에 세워졌으며 현재 비문은 대체로 양호하고 1행에 103글자를 새겨 53행으로 이루어진 규모가 꽤 큰 비신입니다.


 


정진대사는 공주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남혈원의 여해선사에게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양부선사를 스승으로 모시며 수학하였으며 900년인 효공왕 4년에 25년간 당나라에 유학하여 도연을 만났고 924년 신라 경애왕 원년인 7월에 귀국하여 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습니다.

 

 


 고려 태조, 혜종, 정종도 그의 높은 학식을 존경하여 선문에 들었으며 광종 또한 그를 존경하여 사나선원에 모셨습니다. 광종4년에 봉암사로 들어가 965년 8월에 향년79세로 입적하자 광종은 친히 ‘정진’의 법호와 ‘원오’라는 탑이름을 내렸습니다.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

★봉암사 정진대사탑비:보물제172호 

봉암사 정진대사탑비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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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 대적사 극락전. 극락정토의 주재자 아미타불을 모신 대적사 극락전 내부 단청과 특이한 기단석의 불교 조각 예술을 만나보세요.  


청도 대적사는 청도 남성현 터널의 와인터널과 함께 둘러보는 사찰이며 1988년 7월에 전통사찰로 지정되었습니다. 대적사는 비슬지맥의 동학산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113번지에 위치합니다.




 대적사의 창건연대는 신라 헌강왕 2년인 876년에 보조선사 체징(804~880)이 처음에는 토굴을 짓고 수도하여 창건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고려시대 보양국사가 중창을 하고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는데 대적사 입구의 노거수는 말없이 천년고찰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사찰은 잿더미가 되었고 잡풀에 인적이 끊어져 오다 1635년경에 현재의 위치에 3칸의 작은 암자를 짓고 대적사라 하였습니다. 이후 대적사는 조선 숙종 15년인 1689년에 성해와 춘해대사에 의해 삼존불을 모시면서 다시 한 번 중창하여 번듯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현재의 대적사는 극락전을 제외하면 작은 암자로 불릴 정도로 초라합니다. 그러나 대적사의 중심건물인 극락전은 조선시대 인조 13년인 1635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다포 양식의 맞배지붕이며 두리기둥에 지붕 양쪽 측면에 풍판이 달렸습니다.

 일반사찰에서 보기 힘든 기단석 문양

 

 

 

 

 

 

 

 

 

 5량 가구로 고주는 없으며 대량과 종량을 걸고 우물천장에다 앞뒤는 대량을, 가운데 종량은 층이지게 구성하여 다른 사찰건물과는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대적사 극락전의 내부를 보면 빛바랜 단청이 극락전의 역사와 위상을 잘 말해줍니다. 본존불을 봉안한 윗부분에는 닫집을 설치하였으며 천장은 연화문양과 오판화인 보상화문의 단청을 했습니다.

 공포 또한 화려하게 배치하였는데 용머리와 구름문양의 장식 등 극락전의 내부는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장엄한 부처님의 나라를 보여줍니다. 또한, 극락전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벽화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공포 사이에 남아 있는 벽화 일부는 18세기 후반의 불교 벽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며 1984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대적사 극락전은 보물 제83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대적사 극락전을 받치고 있는 기단석의 조각 문양입니다. 기단의 문양은 용, 거북, 게, 연꽃 등과 전면 기둥의 용머리 조각 등 연화문과 거북무늬가 양각되었습니다. ‘H’자형의 선각이 연속적으로 새겨져 있으며 기단 오른쪽 측면에 용비어천도가 섬세하게 새겨진 장식등은 다른 사찰에서는 좀체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대적사 입구에는 조선시대 석종형인 풍엄의 부도가 있으며 1950년 6.25 한국동란으로 10여기 부도 중 1기만 남고 모두 사라졌습니다. 대적사 주요건물은 극락전과 삼성각 산신각 등이 있습니다. 청도 와인터널을 둘러봤다면 한적한 대적사를 꼭 추천하며 극락전과 아름다운 기단의 문양을 확인하고 청도에서 즐거운 여행 많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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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1 - (경북맛집/청도맛집)청도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청도 추어탕. 경상도식 추어탕 향미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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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원효암과 의상대. 한적함이 절간 같다는 말이 실감나게느껴지는 원효암 의상대 여행.

 

흔히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비유 할 때 절간 같다는 말을 합니다. 그 만큼 절집은 조용한 것을 의미하는데 그 중에서도 적막강산처럼 그야말로 ‘절간 같다’는 말이 느껴지는 절집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의 원효암 의상대는 이름처럼 거창합니다. 신라시대 두 고승 대덕의 이름을 나란히 달고 있는 사찰은 극히 드문데 이곳의 암자는 원효암 암자에 절벽 바위에 걸터앉은 의상대가 함께 사이좋게 있습니다.

 

 

 

두분이야 오성과 한음처럼 바늘과 실과 같은 분입니다. 원효대사에는 의상대사가 따라 붙고 의상대사에는 원효대사가 따라 올 정도로 두 분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어 천년 사찰 대부분 의상과 원효의 창건 설화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원효암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인 할 수 없지만 6.25 한국동란 때 여항산 일원이 ‘갓뎀산’으로 부를 정도로 북한군과 최대의 격전을 치른 곳입니다. 그 당시 아군과 북괴군의 치열한 전투속에 원효암은 소실되고 의상대만 남았다합니다.

 

 

또한 절의 이름이 원효암이고 의상이 수련한 곳으로 보이는 의상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이 아닌지 추론만 하고 있습니다.

 

 

 

 

원효암에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5호인 칠성각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원효암 칠성각은 앞면3칸에 옆면 2칸의 우진각 건물로 겹치마 팔작지붕에 원주기둥을 사용한 3량 구조의 익공집입니다.

 

 

 

 

이 건물은 사기에 따르면 1370년경에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확한 창건연대와 연혁을 알 수 없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변변한 문화재는 없지만 원효암 아래 골짜기를 절골로 불리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이곳에 암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함안군 군북 여행길에 들러본 원효암과 의상대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담아가는 즐거운 여행길이었습니다.

 

 

 

 

 

원효암 의상대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 산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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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거창여행)우두산 고견사. 거창을 대표하는 고견사 원효, 의상, 최치원의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거창 고견사. 


경남 거창에는 9할이 산으로 이루어 졌다할 정도로 산천지입니다. 그만큼 많은 명산 중에서도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산이 소머리산인 우두산으로 꼽고 있습니다. 별유산으로 한때 불렸지만 제 이름찾기 일환으로 우두산은 국립공원 가야산과 어께를 맞대고 있으며 우두산 정상부 일부 또한 가야산 국립공원에 포함된 국립공원급의 산세입니다.






우두산에는 의상봉과 장군봉, 바리봉등의 산세로 사계절 내내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이런 명산에는 반드시 명찰이 있습니다. 거창을 대표하는 사찰인 고견사는 원효대사 창건설화를 가지고 있으며 특이한것은 의상대사가 수도하였다는 의상봉 아래 고견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전생의 부부 같습니다. 반드시 의상이 있는 곳에 원효가 있고 원효가 있는 곳에 의상이 있을 정도로 두 분은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이곳에서도 서로 사이좋게 함께 한 모습입니다.







고견사는 677년인 문무왕 7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던 견암사에서 그 유래를 두고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견암사를 창건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는데 이곳에 와 보니 전생에 이미 이곳을 다녀간 곳 이었다 합니다.






원효는 이곳에 절을 짓고 견암사라 하였으며 견암, 견암선사로도 불렀습니다. 고려를 멸망시킨 태조이성계가 전지 1백5십결을 내려 매년2월과 10월에 고려 왕조의 명복을 비는 수륙대재를 지냈게 하였다는 고견사.


 



가야산과 이곳 우두산 고견사는 신라말의 문인이자 대유학자인 최치원의 발자취가 찐하게 남아 있습니다. 가야산에서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고견사에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절 입구에 1000년의 비바람을 견디며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고가 28m며 둘레는 6.01m의 초대형 급으로 2000년 3월에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






고견사는 1358년 공민왕 7년에 지희스님이 중수를 하였고 6.25 한국전쟁때 폐허가 될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가 되었습니다. 1988년 대대적인 중창을 하면서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조선조 1630년인 인조때 만들어진 보물 제 1700호 고견사 동종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3호 고견사 석불, 숙종대왕이 원효대사를 기려 내렸다는 강생원의 운영당 현판이 남아 있으며 은행나무, 의상대사의 전설이 있는 쌀굴, 20m의 미끈한 고견폭포도 고견사의 볼거리입니다.



























































































2014/01/09 - (경남여행/거창가조여행)우두산 고견사. 예술성이 뛰어난 고견사 동종 보고 왔습니다. 고견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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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영광여행)특이한 모양의 기둥에 깜짝, 불갑사 일주문. 일주문의 기둥이 두개.


천년고찰을 찾아 들어가는 길목에는 반드시 출입문격인 일주문을 지나게 된다. 절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으로 사찰의 규모를 나타내기도 한다. 보통  사찰에 따라 따르지만 일주문을 흔히 조계문이라고도 부른다. 범어사의 일주문은 조계문으로 부르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위풍 또한 당당하다. 두개의 기둥이 일반적이지만 범어사 일주문은 네개의 기둥이 한일자 모양을 하고 있어 웅장하며 장엄함을 함께 보여준다. 

  









(전남여행/영광여행)울퉁불퉁 특이한 모양의 기둥에 깜짝, 불갑사 일주문. 일주문의 기둥이 두개.


불갑사를 찾아가는 입구에도 큰 규모의 일주문이 반긴다. 다른 사찰의 일주문 보다 엄청 높고 웅장하며 공포에서 풍겨나오는 무게는 여타 사찰에서 느껴보지 못한것 같다.  불갑사의 일주문은 두개의 기둥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 기둥이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찰의 기둥은 깨끗하게 다듬은 원기둥을 사용한다. 그러나 불갑사의 일주문은 나무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기둥을 삼았다. 그러다 보니 울퉁불퉁한 가지가 정리가 되지 않은 모습으로 일주문을 받치고 있어  한번더 불갑사를 생각하게되는 것 같다.  대개 일주문등 큰기둥에는 수입목을 사용하지만 불갑사 일주문은 우리 느티나무를 자연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불갑사 여행시에 일주문의 기둥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해보세요 








(전남여행/영광여행)특이한 모양의 기둥에 깜짝, 불갑사 일주문. 일주문의 의미 알아보기.


일주문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조계문으로 불리는 일주문은 만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져 있어 삼해탈문이라고도 한다. 즉 세속의 번뇌와 흐트러진 마음이 조계문을 통과함에 따라 마음을 다잡으며 진리의 세계로 들어 왔다는 것. 즉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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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여행/해남여행/달마산미황사)달마대사의 법신이 머무는 곳인 달마산 미황사.

 

해남읍에서 땅끝마을 방향으로 가다보면 독특한 산세에 눈이 절로 간다. 해남의 명산으로 미황사를 감싸고 있는 달마산이다. 능선으로 삐쭉삐쭉 솟아 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만개의 부처님 모습과 닮았다는 달마산. 산세의 기운이 땅끝을 더 세워서 그런지  항상 달마대사의 법신이 머무는 곳이라 달마산이라 부른다.


 

 

달마산 미황사의 대웅보전 보물 제947호.


 

 

 ☞(전남여행/해남여행/달마산미황사) 독특한 미황사의 창건 유해. 달마산 미황사.

 

달마산에는 미황사가 있다면 미황사는 달마산에 있다. 미황사의 창건 설화를 보면 미황사의 설화가 왜 이곳에다 사찰을 창건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1692년인 숙종 18년에 지은 '미황사 사적기'에 나와 있는 기록을 보면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에 돌배가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다. 당시 의조화상이 마을 주민과 함께 포구로 나가 돌배를 맞이하였는데 배안에는 많은 경전과 불상이 실려 있었다.

 

 

미황사 일주문.

 

 

 ☞(전남여행/해남여행/달마산미황사)달마대사의 법신이 머무는 곳인 달마산 미황사. 검은 소의 전설이 있는 미황사.

 

화엄경 80권과 법화경 7권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40성중, 16나한 그리고 탱화, 금환, 검은 돌을 함께 싣고 사람이 아닌 금인이 돌배를 젓어 이곳에 도착하였다 .  갑자기 검은돌이 갈라지더니 그곳에서 난데 없이 검은소가 나왔다. 그날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게 되었는데 금인이 나타나 '나는 돌배를 저어 왔는 우전국의 왕인데 부처님을 모실곳을 찾아 여러나라를 다니다 이곳에 이르게되어 달마산 꼭데기를 바라보니 만불(萬佛)이 나타남으로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려하오. 그러니 검은소에 경전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거든 그곳에다. 부처님을 모시도록하시오'하며 사라졌다. 금인도 달마산의 기암이 설악산 천불동 계곡의 비유처럼 달마산에 솟은 기치창검들이 모두 부처님의 모습으로 여겨진것 같다. 

 

 

일주문의 용 조각.

 

 

 ☞(전남여행/해남여행/달마산미황사)달마대사의 법신이 머무는 곳인 달마산 미황사. 미황사의 뜻은.

스님은 깨보니 꿈이라 꿈도 회괴하다며 소등에다 경전을 올리고   뚜벅뚜벅 가는데 갑자기 소가 땅바닥에 눕더니 다시 일어서서 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달마산 아래 골짜기에 다다라 검은 소가 땅바닥에 눕더니 꿈쩍도 하지 않으며 일어서지 않았다. 의조화상은 처음에 소가 잠시 누웠던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그 뒤에 눌러 앉은 자리에다 '미황사(美黃寺)'를 창건하였다.

 

 

 

 

 ☞(전남여행/해남여행/달마산미황사)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이 고색창연.  달마산 미황사.

미황사는 소와 인연이 깊은 사찰로 그 뜻을 보면  '미'는 소의 울음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황'은 금인의 색상이 누런 금빛에서 따왔다 한다. 이런 달마산 미황사가 1989년까지 비어진 사찰로 남아 있었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황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특히 대웅보전은 보물947호이며 응진당과 명부전 또한 보물11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남여행/해남여행/달마산미황사)전국의 사진작가를 끌어 모우는 미황사의 독특한 매력. 달마산 미황사.

 

달마산 미황사의 대웅보전은 전국에서 사진작가를 많이 불러 모우는 곳 중의 한곳이다. 대웅보전과 달마산, 고색창연한 대웅보전과 함께 작품이 아닌곳이 없을 정도다. 특히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대웅보전 안쪽 천장인 공포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만 연발을 하였다. 혹 미황사를 방문하시거나 그럴 계획이 있다면 꼼꼼히 살펴보자. 대웅보전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 하나에도 전설과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이야기 줄거리는 미황사 홈페이지에서 내용을 발췌하였습니다.

 

 

 

 

 

 

 

 

 

 

 

 

 

 

 

 

 

 

 

 

◆ 미황사 대웅전의 내부 모습◆


 

 

 

 

 

 

 

 

 

 

 

 

 

 

 

 

 

 

 

 

 

 

 

 

명부전

 

 

 

 

 

 

 

 

 

 

 

 

 

 

 

 

대웅보전의 기둥에도 용이 그려져 있다. 물을 다스리는 용이 화재를 막는 다는 의미로 보인다.

 

 

대웅보전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 거북이와 연꽃문양.

 

 

 

 

 

 

 

 

 

 

 

 

응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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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해남여행/대흥사)두륜산 대흥사,백제시대 천년고찰 해남 대흥사.


두륜산 대흥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예전에는 이곳 두륜산을 대둔산 또는 한듬산으로 불렸는데 사찰의 명칭도 대둔사 도는 한듬절로 불려졌다.근대에 와서 대흥사로 고쳐 불리워졌다.  대흥사 창건에 대해서는 3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가 426년에 정관존자에 의한 창건설화와 514년 아도화상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는 신라말의 고승이었던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전남여행/해남여행/대흥사)두륜산 대흥사,백제시대 천년고찰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부도와 표충사 편액.



조선시대에 와서는 임진왜란때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 휴정스님의 의발과 부도탑이 있는 곳으로 부도탑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1789년 정조대왕께서 임진왜란 서산대사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이곳 대흥사에 표충사 편액을 하사하였다 합니다. 아쉽게도 부도밭은 입구가 잠겨 있어 서산대사 그분의 부도는 멀 발치에서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부도탑을 지나면 울창한 숲 그늘을 지나게 됩니다. 명산에 명찰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곳입니다. 그만큼 아름드리 나무들이 밀집되어 천년 고찰의 모습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일반 사찰의 천왕문격인 해탈문을 지나게 됩니다. 이곳을 통과하면 모든 사바세계의 번뇌와 괴로움을 벗어 버리고 부처님의 셰계로 들어서는 경계일까요. 이곳을 지나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 대흥사의 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넓은 들판 같은 두륜산의 품안에 자리 잡은 대흥사, 그 뒤를 두른 두륜산은 마치 스님이 팔을 배에 올리며 편안하게 누워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연유인지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의 얼굴에는 근심걱정을 모두 잊은 듯 편안한 부처님의 얼굴인듯 아니면 해탈한 노승의 얼굴인 편안하게 누워있는 두륜산 능선은 그야말로 신기하다.


 

 


 이곳은 스님들의 수행공간과 함께하고 있어 왼쪽의 범종각을 보고 그 옆에 두그루의 느티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연리근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전남여행/해남여행/대흥사)두륜산 대흥사,백제시대 천년고찰 해남 대흥사.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편액 글씨.


이곳을 지나면 대흥사의 본전불이 있는 대웅보전으로 가게됩니다. 먼저 다리를 건너면 2층의 침계루와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는 신라말에 조성된 응진당 삼층석탑이 있고 대웅보전에는 원교 이광사의 편액이 걸려 있다. 오른쪽의 건물에 백설당과 무량수각 현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고 백설당은  해사 김성근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남여행/해남여행/대흥사)두륜산 대흥사,백제시대 천년고찰 해남 대흥사.

1899년 대화재로 모두 소실되어 복원 불사.



현재의 건물들은 1899년에 대흥사의 큰 화재로 소실되어 그 이후 복원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대웅보전도 개금불사가 진행중이라 본전의 부처님은 계시지 않았다. 대둥전은 부처님 몸을 의미한다. 내부에 모셔져 있던 삼존불은 1899년 화재로 소실되어 그 이후인 1901년에 조성되었다한다. 대웅보전의 건물도 그 당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새로 복원하였다. 조선후기 다포계 건축양식이 잘 드러나며 정면의 화려한 용두장식으로 대웅보전의 아름다움을 더욱 잘 나타내고 있다.




 

 

현재의 대웅보전 편액은 당대의 명필로 이름을 날렸던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대웅보전의 현판에는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가 전하는데 추사 김정희가 1840년 제주도 유배길에 이곳을 들러 대웅보전의 편액을 써서 이광사의 편액 대신 자신이 쓴 편액을 걸게하였다 한다. 그 후 유배에서 풀려 제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들러 자신의 편액을 떼고 이광사의 편액을 다시 걸게하였다한다.




 


 대웅전 오른편에는 윤장대가 있다.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아 소원이 성취된다는 의미가 있다.









범종루










연리근 나무




백설당 편액 원교 이광사의 작품



무량수각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 대흥사에 들러 쓴 글이라한다. 추세체의 진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대웅보전의 편액도 원교 이광사의 작품이다.

 

 

 

 

 

 

 

 

 

 

 

 

 

 

현재 대웅전안의 삼존불은 개금불사가 진행중이다.

 

 

 

 

 

 

 

 

 

 

 

 

윤장대



 

 

 

 

 

 

 

 

 

 

 

 

 

 

 

 

 

 

 

 

 

 

 

 

 

 

 

 

 

응진전 삼층석탑 보물제3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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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정상에 백련꽃이 피었다하여 창건한 연화사가 전신


 부산에서 수다사를 가기위해서는 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타고 동대구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상행선인 서울방향으로 달린다 . 구미를 지나 김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또 바꾸어 타 선산인터체인지에서 내린다. 이곳에서도 68번 지방도를 타고 상주방면으로 달리는데 주위로는 유순한 모습을 한 5~600m의 낮은 산들이 솟아 있다. 무을면사무소를 지나 상송리가 수다사 들머리다.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입구의 연리지 쌍정자 전설 


천년고찰답게 수다사로 들어가는 도로가 넓게 조성이 되어 있어 찾기는 쉽다. 마을을 지나 수다사로 가다보면 저수지 옆에 큰 느티나무가 양쪽에 서 있다.  쌍정자로 불리는데 나무의 모습이 특이하다. 서로 몸이 붙어 있는 연리목으로 이나무 아래에서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 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나무에서 젊은 연인들이 찾아와 사랑의 약속을 하고 간다고 한다.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진감국사가 연화사로 창건 그 연혁


구미시와 상주시의 경계선상에 기양산으로 불리는 산이 있다. 그 산 정상 부근에 백길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있다. 이바위가 백련봉으로 불리는데 그기에는 이런 연유가 있다. 수다사연혁인 '수다사약전'의 기록을 보면 진감선사 혜소스님이 연악산 정상에 흰연꽃 한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830년 문성왕때에 이곳을 사찰을 짓고 연화사를 창건하였다. 흰연꽃은 백길바위인 백련봉을 두고하는 것 같다. 



 

 

그 후 976년에 화재로 불타고 명종15년인 1185년에 각원대사께서 중창을 하여 성암사로 개칭을 하였다. 그러나 1273년에 뜻하지 않게 수해로 인해 사찰은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한 어려운 과정을 넘겨오다 선조5년인 1572년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대사가 크게 중수를 하여 감로수를 의미하는 수다사로 고쳐 불렀다. 사명대사에 의해 수다사는 임진왜란때 승병 일만여명이 '의국법회'를 열정도로 중흥기를 맞다가 1684년인 숙종 10년에 수다사는 또다시 화재로 잿더미가 되고 대웅전과 시왕전 극락당등 현재의 건물만 남게 되었다.현재 직지사말사이다.



 

 


수다사를 찾아간 이날에도 전국은 한파에 많은 눈이 내렸다. 수다사 일주문을 들어서서 경내로 올라가니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이를 두고하는 말이랴. 바람소리만이 들리는 절마당에 난데 없이 개 짓는 소리가 나더니 어디선가 시커먼스한 놈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깜짝이야. 너 늑대야 멍멍이야.... 생기기는 험상궂게 생겼지만 달려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스님도 달려 안나오는 곳에 멍멍이가 달려 나오니 반갑기도하다. 사찰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명부전 경상북도유형뮨화재 139호 


명부전은 앞면3칸 옆면2칸 크기로 지붕의 옆 모습이 사람인(人)자 모양의 겹치마 맞배지붕으로 지어졌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위에만 있는 주심포형식으로 이 양식은 신라시대때 사용되었던 양식이며 원래의 규모는 더 큰 것으로 여겨진다. 내부에는 각원대사가 조성한 지장보살좌상등의 불상이 모서져 있다. 그리고 내부 벽에는 영조42년인 1771년에 그렸다는 '지옥도'는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다.


 

 명부전의 지장보살좌상과 불상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334호 


수다사 대웅전 내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개금불사로 인해 외형상 목조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소나무의 결을 찾을 수 있다. 


특징을 보면 DAUM문화유산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발의 두정(頭頂)에 약간의 육계의 흔적이 보이고, 가늘게 뜬 눈, 코, 입술 등의 조각 수법이 정제되어 있으며, 우너만한 상호와 짧은 양 귀, 목에 둘러진 삼도가 조화를 이루어 위엄이 있어 보인다. 법의는 통견으로 의무늬 조각이 세련되었으며, 무릎 부분이 높고 넓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수다사 사찰측에 의하면 원래 삼존상으로 조성 되었다한다. 구미시 선산읍 원각사에 있는 대세지보살상의 복장에서 수다사불상조성연기가 나왔다한다. 원래는 삼존상이었으나 양 협시는 외부로 반출되어 대세지보살상은 구미시 선산읍 원각사에 봉안하고, 관세음보살상은 대구서봉암에 옮겨 봉안되었다. 


조성연기의 기록을 보면 1650년 효종1년 9월에 연악산 수다사에서 아미타불과 두 협시 불상의 삼존상 조성했다는데 현재 수다사 대웅전에 모서져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그 당시 조성된 주존불로 여겨진다. 복장유물에 나왔던 조성연기의 종이질도 검사를 하니17세기에 만들어졌다한다.아미타불과 두 협시보살의 삼존상을 조성했다고 하는데, 이 불상이 바로 당시 조성된 주존불이었던 것이다.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수다사 석가모니 후불탱화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후불탱화는 1731년 제작된 것으로 그 당시 17세기 불화의 특징을 보여 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현재의 본존불 뒤에 걸린 탱화다. 후불탱화에 대해 '디지털구미문화대전'에서 잘 설명하여 그것을 인용하자면

 '수다사 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화는 주존 탱화로서, 폭 39~40㎝ 정도의 세마포(細麻布)를 7폭 연결하여 종이를 여러 겹으로 배접(褙接)한 바탕의 중앙 연화좌에 석가모니불이 항마촉지인으로 결가부좌하고 있다. 정수리로부터 상부로 퍼져나가는 광명은 석가모니의 설법이 시방 세계를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좌우에 8명의 보살과 사천왕이 자리 잡고 있는데, 보살은 석가모니불 좌대 양옆에 붉은 연화(蓮花)를 들고 서 있는 두 명의 보살을 제외하고는 모두 합장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화면 하단의 좌우에 있는 사천왕은 비파, 검, 용과 여의주, 창 등의 지물을 들고 있다.

보살상 위 좌우에는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이 양옆에 배치되어 있는데, 범천은 3목(目)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외 상단에는 다른 세계에서 온 부처,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을 포함한 10대 제자, 신장(神將) 들이 에워싸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 「수다사 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화」의 주제는 석가모니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법하던 영산회(靈山會)를 그린 것으로 판단된다. 이 탱화는 모사본이며 진품은 직지사에 보관하고 있다.

http://gumi.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1201942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수다사 건륭37년명 동종


수다사 건륭37년명 동종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건륭 37년 명문이 뚜렷하다, 즉 1772년(영조 48)에 조성된 것이며  '디지털 구미 문화대전'을 보면 '범종의 형태나 보살상과 유곽, 용뉴 등의 양식 및 수법은 다른 예와의 비교, 연구에 기준이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수다사 대웅전 내에 위치한다. 대웅전 불단 오른쪽 아래에 있으며, 사찰내에 있는 유일한 동종이다. 4구의 보살상과 유곽 사이에 대를 만들고 그 안에 명문을 새겼다. 명문은 9곳에 1행씩 모두 9행이 새겨졌는데, 그 내용은 ‘건륭삼십칠년임진 삼월일 화주근징장승통광능 경상우도 선산 서령 연악산 수다사 중종개조 중이백근야 삼강(乾隆三十七年壬辰三月日 化主僅澄將僧統廣能 慶尙右道 善山 西嶺 淵岳山 水多寺 中鍾改造 重二百斤也 三綱)’이다.'

http://gumi.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1201942


 

 

또하나의 볼거리는 이곳의 300년된 배롱나무는 봄이면 화려한 백일홍으로 장관을 이룬다. 수다사를 방문하였을때는 눈이 와 있었는데 기양산(연악산)~수선사 산행을 할때 폭설이 내려 하산 후 수다사는 그야말로 설국을 보여 주었다. 그때 다시 담은 사진을 함께 올렸다. 수다사는 겨울의 설국도 아름답지만 단풍이 드는 가을철에는 붉은 색으로 치장을 하여 더욱 화려한 수다사가 된다. 



 

 

 

 

 

 

 

 

 

 

 

 

흰연꽃을 의미하는 백길바위, 백련봉이라 부른다.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 연악산 수다사 교통편


부산에서 구미를 거쳐 선산읍으로 가서 수다사 방향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미 가는 버스는 오전 830, 940분에 있다구미터미널에서는 20번 버스를 타고 선산터미널로 가서 21, 21-1, 121번 버스를 갈아타고'상송수다사입구정류장에 내려 수다사까지 걸어 들어가면 된다구미에서 부산 행 버스는 오후 435, 740, 850(막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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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봉서산~삼태봉 산행. 서라벌의 관문을 지키는 산,경주 봉서산~삼태봉

근교산&그너머 <678> 경주 봉서산~삼태봉

불국토 관문 지킨 원원사(遠願寺) 감싸 안다

원원사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도는 원점회귀 코스

오름길 곳곳 전망대… 봉서산 정상 위치 정립 필요

은방울 군락지·진달래 동산 등 봄 산행에 매력적

 


 

경주와 울산의 경계선 가운데 동해안에 치우친 부분에는 삼태봉~동대산~무룡산으로 연결되는 커다란 산줄기가 있다. 울산역에서 북구 호계를 거쳐 국도 7호선을 타고 경주 불국사 방향으로 가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로 그 산줄기다. 가장 남쪽의 무룡산(452m)은 울산의 진산으로 일컬어지는 산이고 이곳에서부터 북쪽으로 동대산과 삼태봉을 거쳐 경주 토함산에 이르는 약 30㎞의 산줄기를 일명 '동대산맥' 또는 '삼태지맥'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해의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내륙으로는 멀리 영남알프스 줄기까지 바라보이는 산줄기로 해발 고도가 높지는 않지만 바다에 인접해 있어 상대적으로 고도감은 꽤 있는 편이다.

 

경주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 능선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모화리와 원원사를 중심으로 동쪽의 삼태봉 능선과 서쪽의 봉서산 능선을 연결한 원점회귀 코스는 길이 편해 당일 근교산행지로 추천할 만하다.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이 산줄기 중간에 솟은 경주 삼태봉(三台峰·630.5m)을 찾았다. 삼태봉은 흔히 독립된 봉우리로 대접받기도 하지만 경주시 외동읍 주민들 중 많은 이들은 동대산의 최고봉으로 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봉서산(鳳棲山)의 최고봉으로 보기도 한다. 취재팀 역시 10여년 전 삼태봉 답사 때 '봉서산 삼태봉'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주 답사를 통해 우선 봉서산과 삼태봉은 엄연히 다른 산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봉서산은 '호국 천년고찰' 원원사(遠願寺)의 서쪽과 북쪽에 걸쳐 있는 아담한 산줄기의 최고봉을 가리키는 것이고, 삼태봉은 동대산 자락의 최고봉으로 본다는 것이다. 물론 공식 지형도 상에는 봉서산과 삼태봉은 각각의 이름을 가진 채 따로 표기돼 있는데, 봉서산의 위치가 원원사 서쪽 361봉으로 잘못 표기돼 있어 이 또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원원사 주지인 현오(賢悟) 스님은 "봉서산은 '봉황이 깃든 산'이라는 의미인데 원원사 서쪽과 북쪽을 감싼 줄기의 가장 높은 곳을 정상으로 본다"며 "삼태봉은 동대산(東大山) 줄기로 봐야 하며 동대산은 서쪽 내륙의 치술령 국사봉 줄기에 대비해 '동쪽에 있는 큰 산'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결국 봉서산과 삼태봉은 별개이며, 현재의 지형도에 나와 있는 봉서산 위치도 잘못 표기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취재팀은 원원사를 중심에 두고 서쪽의 봉서산 줄기를 거쳐 삼태봉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택했다. 원원사에서 출발해도 되겠지만 거리가 조금은 짧은 느낌이어서 더 아래쪽인 저수지 댐 부근에서 왼쪽 능선으로 오르기로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 산행을 한다면 천년고찰을 순례해 볼 수도 있는 썩 괜찮은 근교산행 코스다.

전체 산행은 저수지 둑 왼쪽 들머리~무덤~능선 전망대~오리바위 전망대~361봉~제주 고씨 묘~532.8봉(삼각점)~봉서산 정상~철탑삼거리~진등대(이정표)~토함산 갈림길~이정표(임도 이탈)~질매재~옛 삼태봉~이정표 2개~삼태봉~(되돌아 내려가서)모화찜질방행 이정표~돌탑지대~계곡 갈림길~계곡 바닥(저수지공사장)~모화찜질방~댐 옆 출발지 순으로 연결된다. 총 11㎞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5시간, 휴식 및 식사 시간을 합치면 6시간~6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원원사 방향으로 비포장 도로를 따라가다가 공사 중인 저수지 둑 약간 못 미친 곡각지에서 왼쪽 작은 계곡 방향을 보면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들머리다. 주변에 특별한 지형지물은 없지만 근교산 안내리본을 참조한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3분 후에 무덤 5기가 보이는데 한 단계 올라서서 마사토가 무너진 듯한 편평한 곳에서 왼쪽으로 10m쯤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지능선을 타고 오른다. 사람 발길이 별로 닿지 않은 '묵은 길'이지만 의외로 뚜렷하다. 10분이면 봉서산 주능선 전망대에 닿는다. 동쪽의 삼태봉 동대산 능선과 서쪽 국사봉 치술령 마석산 줄기가 시원하게 드러난다.

봉서산 정상으로 가던 도중 만난 바위에 뿌리 내린 소나무.

 

길은 뚜렷하지만 바닥 토양이 마사토여서 미끄러운 편이니 주의해야 한다. 15분 정도 능선을 따르면 오리바위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 보면 주변 조망이 무척 시원스럽다. 2분 후 361봉 삼거리.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 '봉서산'으로 표기된 곳이다. 하지만 실제 지역민들의 인식 및 각종 전통적 자료들이 가리키는 봉서산과는 거리가 먼 표기다. 삼거리에서 철탑이 보이는 우측 능선을 따른다. 곧바로 첫 송전철탑을 지난다. 철탑에서부터 다음 봉우리 정상부에 있는 제주 고씨 묘까지는 13분가량 걸린다. 고씨 묘는 오른쪽 아래 원원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다. 무덤 뒤 큰 바위 옆으로 통과 능선을 이어간다. 높이 3m가량의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한적한 산행길에 운치를 더한다.

오르막을 25분쯤 타면 532.8봉에 닿는다. 널따란 정상부에는 수풀이 무성해 삼각점 찾기도 힘들다. 주변에는 드문드문 피어난 철쭉이 하나 둘씩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포근한 능선길을 따라 5분쯤 걷다보면 등산로 오른쪽 무덤가에 은방울 군락이 펼쳐진다. 둥굴레도 은방울 사이에 섞여 있지만 분포도 면에서는 열세다. 은방울 꽃봉오리가 이제 막 활짝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3~4일만 기다리면 그 뽀얗고 앙증맞은 은방울꽃을 원 없이 볼 수 있겠다.


원원사와 보물 제1429호 원원사지 삼층석탑. 감은사지탑처럼 쌍탑이다.

 

은방울 군락지를 지나 15분 정도 오르막을 치면 해발 571m인 봉서산 정상이다. 원원사 서편 산줄기 중 가장 높은 봉우리다. 소나무와 굴참나무 등이 둘러선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다지 볼품없다. 정상석도 없다. 다만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안내리본이 10여 개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산꾼들도 이 봉우리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재팀은 노란색 근교산 리본에 '봉서산 정상'이라 표시한 후 좌우 갈림길 중 오른쪽 길을 택한다. 왼쪽은 입실리 방면으로 하산하는 길이니 주의하자. 그런데 20여 m나 갔을까. 시야가 탁 트이며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은 토함산을 중심으로 왼쪽의 남산과 오른쪽 함월산 자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상에서 다소 기대에 못 미쳤던 조망에 실망했다면 이 전망대에서 고스란히 보상받을 수 있다.

오른쪽 내리막을 탔다가 다음 봉우리의 오른쪽 허리를 타고 우회하는데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오르막을 택해 오른다. 50m쯤 가면 또 한 번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할 경우 철탑삼거리를 생략한 채 길을 진행할 수 있지만 취재팀은 길 확인을 위해 다시 왼쪽 오르막을 탄다. 1분 뒤 철탑이 있는 능선삼거리. 능선 너머로 하산하는 길이 보이지만 우측 능선을 따라 살짝 내려선다. 2분 후 길이 합쳐지고 계속 능선을 따른다. 7분 뒤 안부를 지나면 계속 오르막이다. 10분 뒤 폐무덤 옆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인 진등대에 닿는다. '삼태봉 2.4㎞' 표시를 보면서 왼쪽 능선을 다시 10분 정도 밟으면 배전반과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바로 '토함산 갈림길'로 불리는 곳이다.

삼태봉 정상의 정상이 설치돼 있다.

 

왼쪽을 택하면 토함산까지 갈 수 있다. 삼태봉 방향은 직진이다. 꽤 넓은 임도. 중간에 양남면 용암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있지만 무시한다. 3분쯤 더 가면 '마우나오션'과 '삼태봉' 표시가 있는 이정표에서 임도를 이탈, 우측 산길로 접어든다. 300m쯤 가면 진달래군락지 표시가 있다. 4월에는 온통 진달래 천지겠다. 능선길을 계속 따르면 질매재에 닿는다. 이정표는 '삼태봉 1.1㎞'를 가리킨다. 산 허리를 감아 도는데 발아래 풍광이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3분 후 작은 갈림길. 왼쪽의 봉우리가 있어 20여 m 올랐는데 예상치도 않았던 '삼태봉 정상 나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GPS와 지형도 등을 종합할 때 삼태봉 정상으로 보기엔 무리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나와 가던 길을 이어가는데 이정표가 잇따라 나타난다. 두 번째 이정표는 오른쪽 모화찜질방 방향을 가리키고 직진하는 삼태봉은 0.3㎞ 남았음을 알려준다. 4분 뒤 도착한 삼태봉 정상에서는 동해바다가 조금이나마 보이고 대리석으로 만든 정상석도 번듯하다. 지형도 상에 표시된 삼각점(630.5m)도 있다. 그러나 정상석은 높이 629m라고 표기돼 있다.

이제 하산이다. 300m 전에 거쳤던 이정표까지 돌아가서 모화찜질방 방향 내리막을 탄다. 초반에는 다소 가파른 것 같지만 이내 걷기 수월한 길로 바뀐다. 10분 뒤 돌탑무더기를 지나고 10분만 더 가면 계곡 갈림길이다. 직진하지 말고, 계곡을 건너 오른쪽 산길로 붙는다. 산죽밭이 무성하지만 길은 분명하다. 능선을 따르다가 오른쪽 작은 계곡을 한 차례 더 감아 돌며 우측 능선에 붙는다. 이곳부터는 능선만 놓치지 말고 15분만 가면 저수지 공사 중인 계곡 바닥에 도착한다. 오른쪽으로 3분만 더 가면 모화찜질방을 통과한다. 차도를 따라 10분쯤 걸어 내려오면 출발지에 도착한다.

 

◆ 떠나기 전에

- 김유신 장군 건립 원원사에는 쌍둥이 삼층석탑이 보물

봉서산과 삼태봉 사이에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된 원원사(遠願寺)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통일신라 때부터 호국사찰로 자리매김했다. 삼국유사 등에 기록된 원원사 창건 이야기만 봐도 그렇다. 이 절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룩한 김유신이 신라 신인종의 창시자인 명랑법사의 후예인 안혜 남융 등과 함께 창건했는데, 그 목적이 실은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을 지키는 숨겨진 병영 기지화였다고 한다.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서라벌의 관문이었던 관문성(일명 만리성)을 내려다볼 수 있고, 반대로 관문성에서는 이 절이 보이지 않으니 천혜의 전진기지였던 셈이다. 병사들이 일부러 머리를 깎고 승려로 변장해 이 절에 머물렀다고 한다. 절 이름도 '신라의 영원한 번영을 바란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경주 일대의 의병장과 승병장들이 이 절에 모여 작전회의를 하고, 동래를 거쳐 경주로 진격하던 왜군과의 일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현재의 천불보전 뒤 언덕은 옛 금당터인데 그 앞에 삼층석탑이 동서 쌍탑 형태로 버티고 서 있다. 보물 제1429호인 원원사지 삼층석탑은 기단부에 12지신을 양각하고 그 위에는 4천왕상을 새겼는데 그 기법과 솜씨가 빼어나기로 명성이 높다. 한편 모화리는 신라 때부터 서라벌의 관문 역할을 한 마을이다. 털 모(毛)자에 불 화(火)자를 쓰며, 도성 전체가 불국토나 마찬가지였던 서라벌에 들어가려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머리를 깎았고 그 머리털을 태운 곳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금은 머리털 대신 소고기를 굽는 모화숯불단지가 유명하다.

◆ 교통편

- 경주버스터미널에서 모화행 600번 버스 15분 간격 운행

부산 금정구 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전 5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10분 간격 운행, 요금 4000원.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모화행 600번 시내버스로 갈아타면 30분가량 걸린다. 운행 간격은 15분 안팎이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는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산 시내와 울산공항, 북구 호계동을 거쳐 경주로 진입한다. 외동읍 모화리에서 계동교를 지나면 오른쪽에 모화숯불단지 원원사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한다. 계곡 쪽으로 진입해 원원사로 향하다가 공사 중인 저수지 둑 왼쪽 곡각지 들머리에 주차할 수 있다. 400m쯤 더 올라가 등산안내판 앞 주차장을 이용해도 된다.

문의=국제신문 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http://yahoe.tistory.com)

 

글=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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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풍재에서 범봉으로 가는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 서면 억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사진상으로 깨진 모습의 구분이 안 되지만 실제로 보면 독특한 형상이 확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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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봉을 오르기전 전망대에서 본 억산 깨진바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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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사입구에서 바라본 억산 깨진바위, 보이는 모습이 다르며 쪼개진 모습이 확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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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의 천문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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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사 앞 다리를 건너면 좌측 등산로 이정표를 따라간다. 곧이어 계곡 건너 부도밭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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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사를 지나면 만나는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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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풍재의 안내판과 전망대에서 본 밀양 산내면 쪽의 산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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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산 깨진바위 거참 희한하게 생겼네

산행 시·종점 각각 대비사 운문사…볼거리 무궁무진

오를 때 대비골, 하산 때 천문지골·큰골 모두 계곡산행

걷는 시간만 4시간5분…산행 답사 '두 마리 토끼' 가능

억산 정각산 개물방산 호거대 지룡산 등 모두 조망

천년고찰 운문사는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영주 부석사 등과 함께 전국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사찰 중 하나이다. 절로 향하는 길 주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빠알간 늦사과와 노오란 은행잎이 환상적인 영주 부석사만 만추에 유독 두드러질 뿐 나머지 사찰은 사시사철 꾸준하게 발길이 이어진다.

명산에 명찰이라 했던가. 선암사는 전형적 육산인 조계산이, 대흥사는 다도해 국립공원을 굽어보는 암봉인 두륜산이, 소백산 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는 부석사는 백두대간인 소백산 줄기가 품고 있다.

청도 운문사는 차고 앉은 형세가 다른 사찰과 사뭇 다르다. 통상 사찰은 산을 등지고 있는데 반해 운문사는 운문산과 마주보고 있다. 실제로 옛 비로전인 대웅보전 앞에 서면 운문산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한데, 절집 앞 현판에는 '호거산(虎踞山) 운문사(雲門寺)'라 적혀 있다. 호거산은 절 북서쪽에 위치한 호랑이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한 암봉으로 일명 등심바위. 통상 절이름 앞의 산이름은 가장 근접한 곳의 봉우리 이름을 붙인다는 관습에 따라 호거대라 불리는 암봉을 호거산으로 바꿔 붙였지 않나 싶다.

뜬금없이 운문사를 화두로 꺼낸 까닭은 독자들의 전화 때문. 그들은 한결같이 하산 지점이 운문사인 코스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운문사로 하산 가능한 봉우리는 운문사 북동쪽의 지룡산, 북서쪽의 호거대(등심바위)와 딱밭재에서 떨어지는 천문지골, 아랫재에서 시작되는 심심이골 그리고 상운산이나 가지산에서 출발하는 학심이골 정도.

지룡산 호거대 심심이골 학심이골 등은 최근 소개했거나 코스가 너무 길어 고민 끝에 산행팀은 청도 대비사에서 출발하는 범봉 코스를 택했다. 한적한 천년고찰 대비사에서 대비골로 올라 적당히 능선길을 걷다가 천문지골로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점이라면 원점회귀가 아니라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

구체적 경로는 청도군 금천면 대비사~대비골~팔풍재~전망대~등심바위(호거대) 갈림길~범봉~딱밭재~천문지골~큰골(운문천)~운문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5분 정도. 들머리와 날머리의 천년고찰 대비사와 운문사를 구경하고, 오르내릴 때의 대비골과 천문지골에서 발을 담그며 땀을 식히노라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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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천년고찰 대비사 옆으로 억산 깨진바위가 보인다. 

들머리는 대비사. 이 코스는 산 너머 밀양 석골사와 함께 억산으로 오르는 유이(唯二)한 산길이지만 오지여서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이 점이 되레 한적한 산행을 가능케 해주는 순기능 역할을 하고 있다.

호거대 아래 첩첩산중에 터를 잡은 비구니사찰 대비사 주차장 입구 '등산로'라고 적힌 조그만 이정표를 따라가며 산행은 시작된다. 절로 가는 길이 우측에 열려 있고 좌측 다리 건너에는 절벽 아래 부도전이 눈에 띈다.

들머리에서 4분이면 산으로 들어선다. 굴참 신갈 등 활엽수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곧 갈림길을 만나지만 좌측 계곡(대비골) 쪽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출입을 막고 있어 우측으로 오른다. 계곡과 나란히 걷지만 아직은 산길에서 접근이 어려워 무작정 오른다. 20분쯤 올라야 비로소 계곡으로 가는 소로가 열려 있지만 무시하자. 5분 뒤 계류를 건너기 때문이다. 바닥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유난히 물이 맑은 데다 아주 차다. 조금 더 오르면 나홀로 '알탕'을 하기에 제격인 작은 소가 여럿 보인다.

이어지는 산길. 농짝 내지 집채만한 바위가 정면에 병풍처럼 떡 버티고 있는 가운데 이끼 낀 작은 바위 사이로 산죽길이 기다린다. 이어 만나는 지계곡 물길을 건너면 산길은 지그재그로 바뀌며 상당히 가파른 된비알로 돌변한다. 여기에 바닥은 너덜길이 한동안 이어져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특히 주능선인 해발 770m대의 팔풍재로 오르기 전 300~400m 구간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GPS 단말기로 얼핏 봐도 45도의 경사는 될 법하다. 들머리에서 팔풍재는 2.6㎞로 1시간35분 걸린다.

팔풍재는 사거리. 우측은 왕복 40분쯤 걸리는 억산(0.6㎞), 직진하면 석골사(2.7㎞), 산행팀은 좌측 운문산(3.7㎞) 딱밭재(1.9㎞) 방향으로 향한다. 약간의 굴곡이 있어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전체적으로 내리막길로 수월한 편이다.

오르막은 8분쯤 뒤부터 시작된다. 12분쯤 지그재그길을 힘겹게 오르면 전망대에 닿는다. 억산을 비롯한 주변 산들이 한눈에 파악된다. 약간 정면이지만 쩍 갈라진 깨진바위의 확인이 가능하다. 우측으로 들머리 쪽인 대비지가 보이고 발아래 골짜기가 방금 산행팀이 올라온 곳이다.

억산 좌측 밀양 쪽에는 수리봉 실혜산 정각산 승학산 용암봉 종남산 덕대산이, 억산 바로 우측 저멀리 비슬산이 확인된다. 대비지 좌측 솟은 산이 개물방산, 그 뒤로 선의산 용각산 대왕산 통례산 학일산, 대비지 우측으로는 호거대, 그 뒤로 도롱굴산 서지산 옹강산 지룡산 서담골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3분쯤 급경사길로 오르면 등심바위(호거대) 갈림길. 좌측은 대비사 쪽으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능선길, 산행팀은 우측으로 오르다 다시 내려선다. 이제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범봉이다.

집채만한 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해 '좌 청도, 우 밀양' 산길을 걸으면 숲에 가려 조망이 하나도 없는 좁다란 공터에 닿는다. 범봉(969m)이다. 이정표와 119 구조 표지목이 나란히 서 있지만 범봉이라 적힌 정상석은 없다. 대신 누군가가 이정표 상에 검은 매직펜으로 '범봉'이라 적어 놓았다.

우측은 상운암계곡 또는 대비골 방향,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4분 뒤 좌측으로 시야가 트인다. 맨 앞 회백색 바위들이 보석처럼 박힌 능선이 지룡산줄기이며 정상은 10시 방향 쪽 봉우리다. 그 아래 북대암이, 산행팀이 선 곳에서 정면에는 사리암이 보인다. 그 사이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옹강산이며, 그 뒤 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룡산 단석산 문복산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내리막길의 종착지는 딱밭재. 전망대에서 10분. 옛날 이 주변에 닥나무가 많아 명명됐다고 전해온다. '글월 문(文)' 자가 들어가는 천문지골이란 이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다.

딱밭재 역시 팔풍재와 마찬가지로 사거리. 직진하면 운문산(2㎞) 우측은 석골사(2.9㎞), 산행팀은 좌측 천문지골을 거쳐 운문사(4.5㎞)로 향한다.

30분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칠고 순한 지그재그 너덜길을 내려오면 비로소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후 산허리길을 돌며 천문지골이 빚어낸 운치있는 풍광을 감상한다. 와류가 흐르는 제법 미끄러운 암반을 지나면 일순간 편하고 너른 길을 만난다. 3분 뒤 계곡과 만난다. 유량도 적절하고 주변 풍광도 빼어나 잠시 쉬어가기에 적합하다. 이 계곡을 지나면 사실상 산책로 수준의 산길. 10분 뒤 운문산 자연생태 조사를 위한 일종의 텐트인 트랩도 지난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계곡과 나란히 걷는다. 여유가 있으면 맘에 드는 계곡의 한 지점에 내려가 쉬어가면 어떠하리. 짧게는 3분, 길게는 9분 간격으로 네 번의 계곡을 지나 150m쯤 걸으면 갈림길. 딱밭재에서 1시간25분 소요. 좌측은 운문사 승가대학 학장인 법계 명성 스님의 처소인 죽림헌 방향, 산행팀은 직진형 우측으로 향한다. 잠시 후 다시 큰골을 건너면 사리암에서 운문사로 이어지는 포장로에 올라서고 여기서 입산통제 초소를 지나면 운문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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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경내와 등심바위 능선에서 잡은 운문사 전경

◆ 떠나기 전에

- 2만5000분의 1 지형도, 범봉 자리에 억산 표기 오류

이번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는 각각 천년고찰 대비사와 운문사. 모두 비구니 사찰이다. 신라 진흥왕 557년 한 선승이 청도 호거산(지금의 호거대)에 들어와 3년 동안 수도를 한 후 절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 스님은 현 운문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산허리 갑(岬)' 자가 들어가는 '오갑사(五岬寺)'를 7년 만에 완성했다. 동쪽의 가슬갑사, 서쪽의 대비갑사, 남쪽의 천문갑사, 북쪽의 소보갑사 그리고 중앙의 대작갑사가 바로 그것. 대작갑사와 대비갑사는 각각 지금의 운문사, 대비사이며 나머지 세 갑사는 폐사돼 찾을 길이 없다.

그 흔한 일주문이나 천왕문조차 없는 대비사는 그야말로 심산유곡 깊은 산골에 위치한 절집. 단청이 모두 벗겨져 고풍스러운 맛이 물씬 풍기는 맞배지붕의 보물 제834호 대웅전이 우선 눈길을 끈다. 이곳에선 깨진바위로 불리는 독특한 형상의 억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종점인 박곡(리) 도로변에 위치한 보물 제203호인 박곡리 석가여래좌상도 챙겨보자. 석굴암과 시기와 양식이 비슷한 이 불상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날머리 운문사는 설명이 필요없는 아름다운 사찰. 노송들의 빼어난 각선미는 언제 봐도 가슴을 뛰게 하고 천년기념물인 500년 된 처진소나무는 언제봐도 정감이 간다. 경내에선 남쪽으로 운문산이 포근하게 다가오고, 북동쪽으로 운문사보다 먼저 창건된 북대암을 품은 지룡산의 암봉이, 북서쪽으로는 호랑이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한 호거대(등심바위)가 손에 잡힌다. 수줍게 총총걸음을 옮기는 비구니들도 정겹다. 불전사물도 놓치지 말자. 법고 목어 운판 범종 순으로 시방세계에 어둠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이다. 불전사물을 두드리는 이가 모두 이승이며, 50여 명의 동료 학인스님들도 예를 갖추고 함께 동참해 눈길을 끈다. 또 한 가지.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행하는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범봉의 자리에 억산이라 표기돼 있고, 억산 자리에는 그냥 깨진바위라고 적혀 있다. 첨언 하나 더. 천문지골 학심이계곡 등 운문사를 끼고 있는 계곡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므로 하산길에 물가로 내려 몸을 씻는 행위는 삼가주시기 바란다.

◆ 교통편

- 운문사에선 사리암 오가는 직행 버스 이용하면 편리

열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부산역에서 청도행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6시45분, 7시55분, 9시10분, 10시30분에 출발한다. 1시간 걸리며 4800원(주말 5000원). 청도역에서 길을 건너 인근에 위치한 청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동곡에서 내린다. 오전 9시20분, 10시10분, 10시50분에 있다. 1시간 걸리며 3500원. 동곡정류장에서 들머리 대비사에 가기 위해선 박곡(리)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오전 9시45분, 11시30분. 1000원.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동곡정류장 입구에 있는 개인택시(054-372-3066)를 이용하면 된다. 9000원.

날머리 운문사에선 부산역에서 사리암을 오가는 직행버스(011-507-8801)를 타면 된다. 오후 4시30분(토요일만 오후 4시) 출발. 7000원. 이 버스를 놓쳤을 경우 청도로 가서 열차를 타야 한다. 청도행 버스는 오후 3시50분, 4시50분, 5시40분, 7시15분(막차). 3500원. 청도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는 오후 1시54분, 5시51분, 6시15분, 6시40분, 7시52분, 9시40분에 있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입력: 2008.08.13 20:27 / 수정: 2008.08.13 오후 8: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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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봉정상과 딱밭재에서 천문지골로 내려서는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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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밭재의 급한 하산길로 지그제그길로 이루어 지고 습한 습지로 관중등 다양한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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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지골을 내려서면 만나는 지계곡 합수점의 암반으로 물이 흘러 내릴 시 주의를 해야하는 구간이며 천문지골의 옥수가 담긴 소가 여럿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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