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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진도여행)배중손과 삼별초 대몽항쟁지 용장산성 행궁. 진도 용장산성


진도여행을 하면서 조금은 특별한 여행을 하려고 남도진성을 여행하고 그 다음 날 벽파진과 배중손과 삼별초의 마지막 항전지 용장산성을 둘러보았습니다. 

강화도에 천도했던 고려는 몽골에 항복하면서 원종은 강화도를 포기하고 개경으로 환도하며 삼별초에게 해산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배중손과 삼별초는 몽골과의 강화와 굴욕에 반기를 들었고 끝까지 대몽항쟁을 결의합니다.





배중손과 삼별초 진주 용장성 주소: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102

배중손과 삼별초 진주 용장산성 홍보관 전화:061-543-8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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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손은 강화도 뱃길을 끊고 왕족인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여 강화도에서 항쟁하며 새로운 고려를 공포합니다. 

또한, 배중손과 삼별초는 강화도가 개경과 가깝고 장기전에 대비하여 떠날 것을 결정합니다. 

1,000여 척의 배를 이용하여 남하해 진도에 도착하여 용장사를 행궁으로 삼으며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했습니다.

 



용장산성 행궁 우물



그 후 용장사 주위 능선에 약 12km의 산성을 쌓았는데 이게 용장산성이며 산성 내에 관아 등을 갖추며 새로운 도읍지로 면모를 갖추어 세력을 뻗쳐 나갔습니다. 

배중손과 삼별초 진압을 위해 고려 원종은 진압군을 내려보냈지만 삼별초의 세력이 강력해서 내려오는 족족 승리하며 힘을 키워나갔습니다.







이에 원종은 1271년 홍다구가 이끄는 여몽연합군을 보내어 진압하여 왕온과 배중손은 전사하였습니다.

 남은 삼별초 무리는 제주도로 도망쳐 결사 항전했으나 3년 만인 1273년에 와해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1350년인 고려 충정왕 2년에 왜구는 남해안을 침략하였고 진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왜구의 횡포와 노략질은 극에 달했고 급기야 조정은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을 펼쳐 진도를 비우게 하였습니다. 

진도의 공도정책은 조선 세종 초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세종은 진도의 공도정책을 해제하고 진도에다 사람이 살도록 조치했습니다.








현재 진도의 용장산성 내인 행궁터에는 많은 석축이 남아 있으며 건물터로 보이는 곳에는 일부 주춧돌이 현재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왕궁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1989년부터 2012년까지 총 4회 조사되었습니다. 

발굴 조사된 지역에서 건물지로 보이는 곳이 서른 군데라 합니다.

 




건물은 사전에 계획하여 먼저 계단식으로 터를 닦은 다음 북쪽의 축대 열에 맞추어 건물을 세웠고 그 사이의 공간에도 건물을 배치하여 좁은 장소에서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성의 둘레가 3만 8741척에 높이가 5척으로만 나와 있습니다.

 






진도의 남도진성과 함께 용장산성을 보면서 지금까지 수박 겉핥기로 알았던 삼별초의 많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삼별초의 근거지로 고려 왕실과 대척하며 대몽항쟁의 항전지였던 용장산성을 꼼꼼하게 둘러보았습니다.

 








기존의 획일화된 진도 여행보다는 이번 여행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진도의 숨은 여행지를 찾아보면서 또 다른 진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용장산성은 사적 제126호








진도 용장산성 홍보관






진도 용장산성 출토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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