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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경상북도 안동시에는 500m가량 높이의 천등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산의 높이와 품새보다 산이 지닌 품격은 여느 명산에 비교해도 부럽지 않습니다. 천등산 정상 아래에는 천년고찰을 두개씩이나 품고 있는데 봉정사와 개목사입니다.




◆안동 개목사 인근 맛집과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2014/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2014/02/0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맛집 남안동 휴게소. 안동에서는 꼭 먹어야 할 음식 1호 안동 간고등어 맛집 남안동휴게소



그중 봉정사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 현존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봉정사는 국보와 보물 등 작은 산에서 큰 사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는 앞으로 포스팅하겠지만 오늘은 소경 전설이 있는 개목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개목사는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스님이 창건하고 처음에는 흥국사라 하였습니다.




창건설화를 보면 천등산 정상아래 바위굴에서 능인스님이 정진수행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천녀는 스님의 수행을 시험하고자 온갖 감언이설로 파계하여 속세로 하산해 함께 살 것을 꼬시지만, 스님은 오직 부처님만 믿을 뿐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


천녀는 스님의 마음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님에게 부처님의 공덕을 시험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스님의 수도처인 동굴이 너무 어두워 옥황상제께서 보낸 등불로 환하게 밝혀 더욱 용맹정진하여 도를 이룰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능인스님은 더욱 정진하였고 마침내 크게 깨우쳐 하늘이 내린 등으로 도를 깨우쳤다 하여 대망산이라 불렸던 산은 천등산으로 바뀌었고 스님이 도를 깨친 굴은 천등굴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천등굴 아래 너른 터에다 99칸의 절을 세우니 이곳이 개목사의 전신인 흥국사입니다.




흥국사가 언제 무슨 연유로 개목사로 바뀌게 되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습니다. 조선 세종 때의 명제상이던 고불 맹사성(1360~1438)은 풍수지리에도 아주 밝았습니다. 그가 안동 부사로 부임하면서 안동 관내를 시찰하다가 유달리 소경(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 그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천등산에서 흐르는 지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당장 흥국사를 찾았고 개목사로 이름을 바꾸게했더니 더 이상의 소경은 없어졌다 합니다. 그와 비슷한 전설은 천등산의 지세로 인해 소경이 많았는데 능인스님이 도를 깨치고 흥국사를 세운 다음부터 소경이 없어졌다하여 개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보면 모두다 개목사로 인해 눈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는 똑같습니다.




개목사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1969년 해체하고 수리하면서 '천순원년(天順元年)' 글귀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1457년인 세조 3년에 처음 지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개목사 원통전의 규모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단층으로 맞배지붕형식에 풍판을 달았습니다.




내부의 천장은 뼈대가 드러난 연등 모양으로 윗부분이 노출되었으며 법당 안을 온돌방으로 구성하여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서는 아주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특히 개목사의 건물 형태는 안동의 많은 고가 종택을 닮았습니다. 사대부 문간채형식의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개목사 중심 건물인 원통전입니다.

 




문간채의 분위기를 보면 억겁의 세월이 내려앉은 듯한 무게 때문인지 원통전보다 더 오래된 모습입니다. 요즘같이 무더운 때 개방된 대청마루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았습니다. 낮은 돌담으로 넘어오는 바람은 오후의 나른했던 피로를 싹 삭혀주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 한다며 전국의 문화재를 찾아 쫓아다니고 눈도 충혈되고 피로했는데 소경을 치료했다는 개목사에서 잠시라도 눈을 감아보았습니다. 혹시 아나요? 개목사 이름답게 아픈 눈을 시원하게 낫게 해줄지요. 



 

◆안동 개목사 여행정보

★안동개목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362 

보물제242호 1963년 1월21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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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이번 부처님오신날 문경에 있는 희양산 봉암사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봉암사를 가기 위해 여러 번 벼루고 벼룬 절집여행인데 갔다 왔다는 행복감보다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쉬움이 많았던 여행이었습니다.




◆희양산 주변 가볼만한 여행지◆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포스팅을 보다가 아니 무슨 사찰을 찾아가는데 벼루로 가는 야고 저에 반문하겠지만, 이곳 희양산 봉암사는 여느 사찰처럼 가고 싶다고 해서 불쑥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년 중에 그것도 부처님오신날 딱 하루만 봉암사 산문을 개방하고 그 외에는 산문 폐쇄로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혹시나 못 보고 빠트리고 오지 않을까 싶어 미리 집에서 봉암사 여행을 위한 여러 문화재 자료를 찾아 준비를 꼼꼼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출발하면서 분명히 자료집을 챙겼는데 막상 봉암사 앞에서 문화재 자료집을 어찌했는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정진대사 원오탑비만 보고 승탑인 정진대사 원오탑은 찾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외 ‘함허당득동탑’, ‘환적당지경탑’ 등 조선시대 승탑도 빠트리고 오는 바람에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 봉암사 여행이었습니다. 첫술에 배불리 먹으려는 게 지나친 나의 욕심이었는지 아니면 내년에 다시 봉암사 여행을 계획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인지 모르지만 다시 한 번 봉암사 계획을 세워야겠습니다.



봉암사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이번에는 봉암사의 중흥기를 이끌었고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는 중창을 하여 오늘날 봉암사의 뿌리를 있게 했던 분이 정진대사입니다. 정진대사 원오탑비는 봉암사 일주문에서 계곡 건너편 묵밭 가운데 비각에 모셔져 있습니다.

 


승탑과 비문은 대부분 같이 세워져 있는데 정진대사 탑비와 비문은 서로 떨어져 있어 안내판이라도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아쉽지만 정진대사 원오탑비만 이번에 보겠습니다.

 

 


정진대사 원오탑비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스님으로 성은 왕 씨며 정진대사(878~956) 긍양의 공적을 각자하여 남긴 기록입니다. 정진대사탑비는 고려시대 965년인 광종 16년에 건립되었는데 높이가 273cm, 폭 161cm, 두께는 26cm로 당시 고려시대 초기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신은 청석이며 귀부와 이수는 일반적인 고려 초기의 탑비 방식을 따랐으며 귀부인 거북받침돌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인 머릿돌을 올렸으며 거북 등에 비를 꽂는 비좌가 큰 게 특징입니다. 이수의 끝에는 불꽃무늬에 둘린 연꽃봉우리 문양의 보주 장식이 정진대사탑비를 더욱 웅장하게 만듭니다.

 

 


 비문의 필체는 2cm 크기 구양순체 해서이며 당대의 문장가인 이몽유가 짓고 명필이었던 장단열이 쓴 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비는 정진대사 입적 9년 만에 세워졌으며 현재 비문은 대체로 양호하고 1행에 103글자를 새겨 53행으로 이루어진 규모가 꽤 큰 비신입니다.


 


정진대사는 공주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남혈원의 여해선사에게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양부선사를 스승으로 모시며 수학하였으며 900년인 효공왕 4년에 25년간 당나라에 유학하여 도연을 만났고 924년 신라 경애왕 원년인 7월에 귀국하여 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습니다.

 

 


 고려 태조, 혜종, 정종도 그의 높은 학식을 존경하여 선문에 들었으며 광종 또한 그를 존경하여 사나선원에 모셨습니다. 광종4년에 봉암사로 들어가 965년 8월에 향년79세로 입적하자 광종은 친히 ‘정진’의 법호와 ‘원오’라는 탑이름을 내렸습니다.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

★봉암사 정진대사탑비:보물제172호 

봉암사 정진대사탑비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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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서구여행)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부산 최고의 조망터에 자리한 부산 천마산 칠보사에서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만나다. 


부산시 서구 천마산에는 많은 절집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바다와 가깝고 뱃사람들의 무사 항해와 만선의 꿈을 위해서, 그리고 부산 서구는 근대에 아픈 사연이 가장 많은 동네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총알받이로 일본에 끌려갔던 분들이 광복과 함께 부산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다음은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자투리 땅이라도 비빌 언덕을 찾았습니다.





◆부산 서구 칠보사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

2016/04/23 - (부산여행/서구여행)동아대학교부민캠퍼스 석당박물관. 등록문화재 제41호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 건물인 동아대학교 박물관 여행하기....동아대학교박물관

2016/04/20 - (부산여행/서구여행)동아대학교박물관 부산 전차 구경. 우리나라에 한량 남아 있는 미국제 전차를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박물관에 전시중입니다.

2016/04/05 - (부산여행/서구여행)암남동 천마마을. 재개발로 곧 사라지는 아름다운 달동네 천마마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2016/03/26 - (부산여행/부산남항여행)봄이 오는 길을 따라서 걸었던 부산남항 역사·문화·문학 탐방길. 부산공동어장. 자갈치시장, 영도대교, 대풍포, 깡깡이 아지매길, 수리조선소길,

2016/01/27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서구 산복도로 해돋이로 벽화거리, 달동네라고요. 까꾸막이라고요. 내 고장 부산 서구 산복도로가 '생태바람길로' 이리 바뀌었습니다.

2015/10/28 - (부산여행/서구여행)부민동 '안심! 오름길' 골목과 가극 아리랑 작곡가 독립유공자 한형석 선생님이 세운 자유아동극장과 색동 야학터 찾아가기



천마산 비탈에 산을 깎아내었고, 일본인 공동묘지를 뭉개었고 눈만 붙이며 살 움막을 짓고 정말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했습니다. 누군가 붙잡고 하소연도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천마산에는 수없이 많은 사찰이 자리했나 봅니다.



가슴에 피멍이 든 귀환동포와 피난민의 가슴에 남은 아픈 상처는 가까운 사찰에서 풀었습니다. 답답한 현실과 지친 삶을 이들은 부모님의 그 부모님이 믿어왔던 부처님을 믿으며 어려움을 견뎠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한 번씩 집 뒤 천마산을 올라갑니다. 그러면 꼭꼭 여러 곳의 사찰을 거치게 되는데 하나같이 명산대찰도 부럽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만큼 시원한 조망과 함께 남북항의 모습을 동시에 보며 서구 천마산에서만 만나는 조망입니다. 서구의 전망 좋은 절집 중에서도 서구 남부민동 산복도로의 천마산로에 앉은 칠보사는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하는 시원한 조망터에 자리 잡아 아둔한 제가 봐도 부산 최고의 명당 같았습니다.

 


최근에 이곳을 지나면서 보지 못했던 문화재 안내판을 만났습니다. 이때까지 무의식으로 다니면서 못 보고 지나쳤는지 모르지만,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는 저로서는 내 고장의 문화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스마트폰으로 칠보사 외관을 몇 장 담았습니다. 그리고 경내로 갈까 하다가 다음에 가지하고 그냥 지나쳤다가 2주일 뒤 다시 칠보사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분홍색 연등이 달린 칠보사는 더욱 화려하며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영도다리와 부산항대교 남항대교를 연등과 함께 사진을 담았습니다. 칠보사는 이름에서 보듯이 일곱 가지 보물이 있는 사찰입니다. 그중 첫 번째가 조망이라 생각할 만큼 압권입니다. 그럼 칠보사 경내를 둘러보기 위해 먼저 긴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작은 출입문이 있고 대웅전이 앞에 떡 버티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관음보살상이 아직은 은빛 모습으로 반짝입니다. 부산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126호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된 대웅전을 향합니다.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출토된 복장유물인 ‘제불복장범서’에 인경시기가 1730년 10월이라 밝혀 그때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1730년경 창녕 포고당 목조여래좌상과 1927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의 목조삼세불좌상과 그 조각기법 등이 흡사하여 정확하지 않지만, 하천이 조성했던 작품이 아닐까 하며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앞으로 약간 구부린 자세이며 넓은 어깨와 무릎이 높고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습니다. 오른손은 무릎에 올리고 왼손은 어깨높이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형식이며 삼존불을 모시는 왼쪽 협시보살상으로 추정됩니다.




머리에는 화려한 장식의 보관을 썼고 가운데는 화불, 그 좌우로 봉황문과 화염 보주 문을 장식하였습니다. 네모난 얼굴에 가늘게 뜬 눈, 큼지막한 코, 도드라진 인중, 얇고 긴 입술 등을 나타내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단정한 인상을 줍니다.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전체적인 얼굴윤곽, 목 밑의 삼도, 오른쪽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가린 옷, 다리 앞의 옷 주름과 편삼 처리, 어깨 뒤로 넘어간 옷자락의 표현, 엄지중지 둘째 마디를 맞댄 수인 형식이 당시 하천이 조성한 불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문화재 안내판의 해설입니다.




부산시 서구에서는 오래된 불상 문화재는 제가 알기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리 집과 가까운곳에서도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재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개금 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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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7 - (부산여행/서구여행)제8회 부산고등어축제 불꽃놀이와 부산고등어 축제 행사 일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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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2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공동어시장.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부산공동어시장 경매 현장을 다녀 왔습니다.

2015/07/06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비석마을 골목길 여행.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골목길도 누비며 구름이 쉬어가는 전망대도 만났습니다.

2015/01/11 - (부산맛집/서구맛집)암남공원 맛집 애경이네 집. 장모님이 사위를 위해 잡은 씨암탉을 끓이 듯 맛있는 닭백숙으로 소문난 애경이네 집.

2014/12/14 - (부산여행/서구여행)남부민동 고 이태석 신부 생가. 수단의 슈바이처 울지마 톤즈 고 이태석 신부 생가 방문

2014/10/13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 비석마을, 세상에 이런집이.. 경악, 부산 아미동 무덤 위에 지은 집과 돌로만든 집

2014/10/01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문화학습관 최민식갤러리, 인간이 거기 있기에 나는 사진을 찍었다, 최민식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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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산청여행)산청군 단성면 겁외사,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산은 산이요 물은물이로다" 성철스님 생가 율은고거와 겁외사 여행.


곧 부처님오신날이라 산청군 단성면 성철스님 생가가 있는 겁외사에 다녀왔습니다. 겁외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성철스님은 어떤 분인지 조금은 알아야 했습니다. 성철스님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4월 6일 현재 묵곡리 겁외사 생가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산청 겁외산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0/09/02 - (경남여행/산청여행)산청 지리산 꽃봉산~공개바위 산행. 한국판 피사의 사탑 지리산 공개바위 찾아가기

2010/09/06 - (경남여행/산청여행)산청 적벽산~백마산~월명산 산행. 낮지만 천혜요새를 이룬산 산청 적벽산~백마산~월명산

2013/03/02 -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국립공원)지리산 천왕봉 전망대인 황금능선 구곡산 산행을 즐기다.

2013/03/14 - (경남여행/산청여행)산림처사 남명조식선생이 강학한 시천면 덕천서원

2013/06/03 - (경남여행/산청여행)천왕봉을 닮고자 한 남명조식선생 올곧은 선비의 기개를 보다. 산천재와 남명매

2013/06/13 - (경남여행/산청여행)남명선생 사적지 남명기념관. 시천면 덕산에서 그의 선비정신을 옅보다.

2013/06/30 -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여행)남명의 체취를 따라 걷는 등산로. 시천면 덕산 수양산~마근담 계곡 산행

2015/01/27 - (경남여행/김해여행)남명조식선생 산해정. 김해에도 남명조식선생 유적지가 있습니다. 산해정 여행하기.

2009/05/21 - 돌담길이 아름다워 문화재로 등록된 남사마을의 풍경입니다.

2011/02/23 - 웅석봉 아래 단속사지 동.서 쌍탑



 

세속에서의 이름은 이영주이고 법명은 성철, 법호는 퇴옹이며 스님은 1936년 해인사의 하동산 스님에게 사미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1939년 도를 깨치고 1955년 가을에 성철스님은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에서 철조망을 둘러치고 1964년까지 두문불출하며 외부인의 출입도 막고 ‘장좌불와“의 뼈를 깎는 수행으로 10년간 동구불출 하였습니다.


 

이는 불교 지식에 문외한이던 저도 훗날 성철스님의 10년 동구불출과 장좌불와의 수행을 듣고 큰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사람이라면 도저히 흉내도 못 낼 수행법입니다. 그리고 1981년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대 종정에 취임하면서 종정수락법어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산시산수시산·山是山水是水)”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법어입니다. 친구와의 대화나 어떤 자리에서나 회자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간단명료한 말과 글이지만 이 속에는 깊은 철학이 숨어 있어 세속의 한 사람은 그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겁외사 벽해루

 1993년 11월 4일 오전 7시 30분 가야산 해인사 퇴설당에서 “참선 잘하라‘는 말씀과 함께 세수 82세에 법랍 58세로 입적하셨습니다. 겁외사를 방문하고 생가를 둘러보면서 필자는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생가의 규모는 당시에 볏짚을 이은 초가집이 아닌 양반가의 꽤 규모 있는 기와집입니다.


 

함께한 일행에게 성철스님 생가의 규모가 이 정도인데 왜 출가하셨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면서 생가에 사실 많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출가하기 전 스님의 생가는 단성면에서 큰 부잣집으로 집 주위로 남의 땅을 밟지 않고 다닐 정도였다 합니다.


 

그리고 보면 석가모니도 인도 카필라바스타의 왕자님으로 출가했다 하니 세상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분들이 왜 출가를 하는지 저 같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하기야 그것을 깨우치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도사라는 소리를 듣겠지요.


 

겁외사는 2001년 3월에 창건했으며 그 뜻은 “상대유한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라합니다. 그리고 성철스님이 출가 전에 세속에서 맺은 인연인 딸 불필스님의 원력으로 겁외사는 세워졌으며 가람배치는 일반 사찰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절집과 성철스님 생가가 함께 갖추어진 모습입니다.


 

 겁외사 대웅전

 

겁외사와 생가를 들어서는 출입구는 누각 형태인 벽해루입니다. 정면 마당 한가운데 성철스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은 왼쪽에 치우쳐져 있습니다. 법당 내부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과 성철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으며 대웅전의 벽화는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그려 부처님의 일대기를 벽화로 그린 일반사찰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대웅전의 주련은 성철스님의 오도송인 황하서류곤륜정(黃河西流崑崙頂)/일월무광대지침(日月無光大地沈)/거연일소회수립(遽然一笑回首立)/청산의구백운중(靑山依舊白雲中)을 달았습니다. 그 뜻을 보면 ”황하수 역류하여 곤륜산에 치솟으니/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 도다/문득 한번 웃고 고개 돌려서니/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있네


 

혜근문

 대웅전과 마주하며 겁외사의 부속건물인 심검당, 정오당, 공양간인 요사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성철스님의 생가를 복원하고 스님의 선친 호를 따서 ’율은고거‘라 했습니다. 성철스님 동상 뒤편 솟을대문이 생가 출입구인 혜근문입니다.


 

 포영당

정면에 안채가 자리하고 왼쪽에는 포영당이며 오른쪽의 율은재는 성철스님의 부친께서 거처한 사랑채입니다. 그러나 지금 복원된 율은고거는 성철스님의 유품 전시공간으로 이용하고 입구를 모두 통유리로 막고 있습니다.


 

 율은재

 율은고거 안채

 

 

이곳의 전시품은 책과 도첩, 스님의 상징이 된 누더기 두루마기, 고무신, 주장자, 스님의 필기구와 안경, 승려신분증 등 스님께서 가까이 두고 사용하셨던 유품을 전시중입니다. 다른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서 겁외사와 성철스님 생가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았으며 또한 벽해루를 마주한 성철스님기념관도 찾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큰 것 같아 조만간 다시 한 번 산청 성철스님 생가와 겁외사 여행을 계획해야겠습니다.


 

 

 

 

 

 

 

 

 

 

 

성철스님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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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하동여행)칠불사 아자방. 한번 불을 지피면 석달 열흘간 따뜻하다는 칠불사 아자방을 욕심내어 찾아갔지만 보수공사로 보지도 못하고 왔네요. 칠불사 아자방


이번 지리산 옛길인 서산대사길 탐방을 갔다가 한번 불을 집히면 석 달 열흘 동안 따뜻하다는 ‘아자방’을 보려고 일부러 칠불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가는 날이 장날’ 이란의 속담처럼 지금 아자방 방구들은 모두 철거하여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라 볼 수 없어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참 우리문화재는 세월이 오래된 탓도 있겠지만 무슨 복원공사를 그래 자주하는 듯이 보이는지 꼭 가보면 그 건물이 복원공사로 가림막을 해 놓았습니다. 멀리서 찾아간 사람으로서는 속 터지며 황당할 따름입니다. 아쉽지만 그냥 돌아올 수밖에요. 그래서 김수로왕과 왕비는 일곱 왕자가 보고 싶을 때 연못에 비치는 왕자들의 모습을 봤다는 칠불사 영지도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고 그냥 돌아와 버렸습니다. 복원공사가 마무리되면 그때 다시 한번 찾아야 하겠습니다.







칠불사는 모두 아시는 것처럼 지리산에 있습니다. 지리산은 천왕봉이 주봉이지만 서쪽으로 독립봉 형태인 반야봉(1732m)이 있습니다. 반야봉과 화개재를 지나면 토끼봉 아래 목통골을 끼면서 앉은 칠불사는 천년고찰입니다.  신라말의 고승인 도선국사는 칠불사를 보고 와우형의 명당으로 천하제일의 양택이라며 그의 저서 ‘옥룡자결’에 남겼습니다.



칠불사는 오랜 세월 동안 법통이 꺼지지 않았지만 아픔은 많았습니다. 1800년에 칠불사 대화재로 보광전 약사전을 위시한 10동의 전각이 깡그리 전소하여 1830년 순조30년에 대은과 금당 두 율사에 의해 모두 복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48년 여순·순천반란사건으로 일부 반란군이 지리산으로 숨어들면서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칠불사는 불타고. 또한, 1950년 6.25 한국동란이 발발하고 전쟁중에 빨치산은 다시금 지리산으로 숨어들었고 칠불사는 그다음 해 1월경에 전소합니다.



그 후 지리산은 정적 속에 들어갔고 칠불사 또한 법통이 끊어지다시피 하며 잡초가 무성한 폐허가 되었는데 오늘날의 칠불사는 1978년 제월통광스님이 대웅전, 문수전, 아자방, 운상원, 영지 등 15년간의 각고의 노력으로 불사를 이룩하여 복원 중창하였습니다. 칠불사는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어머니 허 왕후와 인도에서 함께 온 외삼촌 장유보옥선사를 따라와 이곳에서 성불했다합니다. 수로왕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 칠불사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현재 우리나라는 북방전래설을 따르지만 허 왕후의 남방전래설은 이보다 100년 이상 앞선 기록입니다.



성불한 일곱 왕자의 명호를 보면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로 김수로왕 부부의 슬하에는 10남 2녀의 왕자와 공주를 두었습니다. 장남은 가야국의 왕위를 계승하게 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 허 왕후의 성을 이어받아 김해허씨 시조가 되고 나머지 일곱 왕자는 출가하여 성불하였습니다. 



김수로왕 부부는 일곱 왕자가 보고 싶을 때마다 만나려고 자주 이곳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장유화상은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꼭 보고 싶다면 이곳에 연못을 파고 물속을 보도록 했는데 수로왕 부부는 물속에 비친 왕자들의 그림자를 보고 기뻐하며 돌아갔다 합니다. 이 연못에 일곱 왕자의 그림자가 비친다하여 영지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입니다.



칠불사는 벽송, 서산대사와 부휴대사 등 많은 선승이 머물렀습니다. 또한, 칠불사는 거문고의 전승지로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서 50년 동안 거처하며 거문고의 새로운 곡조 30곡을 지었습니다. 옥보고가 칠불사 운상원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면 아랫마을의 우물에서 거문고 타는 소리가 들렸고 마을도 정금(井琴)마을이 되었다합니다. 



그리고 칠불사는 다도와 떼놓을 수 없습니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간 대렴공은 차 종자를 가져왔는데 왕명으로 화개동에다 이 차 종자를 심게하여 우리나라 차 시배지가 됩니다. 그리고 조선 순조28년(1828년) 다도의 대가인 초의선사는 칠불사 아자방에서 청나라 모환문이 지은 ‘만보전서’의 ‘다경채요’에서 ‘다신전’을 초록하는데 후에 ‘동다송’을 저술하는 기초가 됩니다. 그만큼 칠불사는 거문고와 차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운상선원을 옥보대라고 부릅니다. 이는 장유보옥선사의 이름을 땄다는 설과 거문고 전승자인 옥보고의 이름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자방은 구들장을 들어내는 바람에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897~911) 때 담공선사가 축조를 한 선원입니다. 아자방은 아(亞)자 모양의 구조로 된 구들방으로 길이는 약 8m에다 이중 온돌방 구조입니다. 네 귀퉁이와 앞뒤 가장자리에는 50cm씩의 턱을 두었는데 스님이 좌선하는 자리이며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은 좌선하다 다리를 풀었던 곳입니다.



담공선사 축조 당시에는 한번 불을 지피면 석 달 열흘간 따뜻했다는 신비의 온돌방으로 중국 당나라까지 알려졌을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아자방은 그 과학성을 인정받아 1979년 세계건축가협회의 세계건축사전에 기록되었습니다. 아자방은 1948년 때 불타 소실되었다가 1983년 복원되었는데 현재 보수공사가 또 진행 중입니다. 경남유형문화재 제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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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화성여행)융릉과 건릉 수호 사찰 용주사.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가 모셔진 화성 용주사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보모님 은혜를 생각하다.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에는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찰 용주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낙성식 전날 정조의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용주사라 부르게 되었다는데, 왜 어떤 사연이 있어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의 꿈에 나타났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용주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용주사의 전신은 갈양사입니다. 갈양사는 854년인 신라 문성왕 16년에 가지산문의 염기화상이 창건하였다 전합니다. 그리고 970년인 고려 제4대 광종 21년 때 혜거국사에 의해 광종은 고려왕조의 원찰로 승격시켰습니다. 그러다 갈양사는 잦은 전란과 병자호란에 의해 대부분 소실되며 폐사하였습니다.

  조선의 영조임금 뒤를 이어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가장 먼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 회복을 추진합니다. 사도세자는 28세 젊은 나이에 부왕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정조는 돌아가신 아버지 장헌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돌 것 같은 불안감에 괴로워하다 우연히 장흥 보림사 보경스님의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고 크게 감명받아 부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사찰을 지을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전초로 먼저 양주 배봉산의 사도세자 능을 조선 제일의 명당인 화산으로 옮기고 현륭원으로 격상합니다. 그리고 화산 기슭의 갈양사가 있던 곳에 현륭원의 수호사찰을 짓고 아버지의 명복을 빌게 했는데 그 사찰이 용주사입니다. 당시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폈지만, 현륭원의 수호 사찰을 둔 것을 보면 아주 이례적이라 하겠습니다.

 용주사는 정조의 효심을 근본 도량으로 창건된 사찰로 일반 사찰과는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정조대왕이 보경스님을 시켜 제작했다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을 모신 탑과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폐를 모신 제각인 호성전이 있습니다. 그럼 용주사 경내를 하나하나 구경하겠습니다.


 

 

 용주사는 국보도 있고 하여 문화재 관람료가 있습니다. 용주사 일주문을 지나면 매표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필자가 여러 사찰을 다녔지만, 홍살문이 있는 사찰은 용주사가 처음입니다. 용주사에 홍살문이 있는 이유를 보면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려고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을 세워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홍살문의 설치는 ‘경의를 표하는 곳“이란 의미를 가졌다합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사찰의 출입구인 삼문인데 어느 사대부집 솟을대문 같습니다. 삼문을 지나면 정면에 세존사리탑과 왼쪽에 불음각이 있으며 또한, 세존사리탑 뒤로는 대웅보전이 있는 안마당을 들어서는 문루인 경기도문화재자료 제36호 천보루가 길게 병풍을 치고 있습니다.

 

 

 

 

 

 

 

 천보루는 정조가 용주사 창건 때 함께 세웠던 건물로 앞면 5칸에 옆면 3칸입니다. 앞쪽에 1칸만큼 돌출시켰으며 나머지 2칸은 좌우에 승려가 거쳐하는 요사채와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들어오는 입구에서 천보루를 보면 2층이지만 대웅보전에서 보면 천보루는 안마당과 높이가 똑같은 단층 건물입니다.

 

 

 

 또한, 누마루의 전면과 좌우 돌출 부분에 난간을 돌리고 대웅전 쪽으로는 바로 창호 달고 뒤쪽 좌측과 우측에 누마루로 오르는 계단을 두었습니다. 천보루를 지나면 안마당에 닿고 정면에 대웅보전이 있습니다. 

 용주사 대웅전

 

 용주사 천보루

 

 

 그리고 용주사의 중심건물인 대웅보전 역시 문화재 자료 제35호입니다. 정조의 왕명으로 건립된 용주사는 현륭원의 수호사찰로 용주사에 사용된 부재나 문양, 공간 배치 등을 보면 궁궐과 아주 유사한 형태입니다.

 창건 당시 140여 칸의 규모였는데 현재 용주사는 창건 당시 원형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에 측면 3칸의 규모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대웅보전의 현판은 정조의 글씨라 합니다.

 

 

 대웅보전에는 삼존불을 안치하였으며 삼존불 뒤쪽의 후불탱화는 석가모니와 여러 보살, 10대 제자 상을 그렸는데 산수화의 대가인 김홍도가 그린 작품입니다. 김홍도가 탱화를 그린 작품은 짧은 사찰여행 경력이지만 용주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후불탱화를 자세히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았던 탱화속의 부처님 등은 기존 불화 모습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드는 탱화입니다. 김홍도가 새로운 기법을 동원하여 그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작은 종각이 있으며 국보 제120호 용주사 범종입니다. 제작연대는 통일 신라 때 창건된 갈양사 범종이며 용통과 용뉴 등은 신라시대 양식을 많이 따랐습니다. 범종의 몸체에도 854년 통일신라 문성왕 16년에 조성되었다는 명문이 남았는데, 실제 종의 형태와 문양 등을 고려하면 고려 초기의 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범종의 조성 명문은 후대에 새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조가 보경스님의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의 설법에 감명을 받아 세웠다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석탑 내용을 ‘용주사 홈피’에서 옮겨왔습니다. "불교에서는 부모의 은혜를 열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가 아기를 배어서 수호해 주신 은혜, 둘째는 해산에 임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은혜, 셋째는 자식을 낳고서야 근심을 잊으시는 은혜. 네 번째는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이시는 은혜. 다섯째는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시는 은혜. 여섯 번째는 젖을 먹여서 기르시는 은혜. 일곱 번째는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어 주시는 은혜. 여덟 번째는 먼 길을 떠났을 때 걱정하시는 은혜. 아홉 번째는 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감히 짓는 은혜, 열 번째는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사도세자와 정조 위패

 

 갑자기 ‘부모님 은혜’ 가사가 생각나며 우리 부모님은 저희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시고 사랑으로 키웠는데 평생 우리는 그의 백 분의 일 아니 천 분의 일도 다 못 갚으며 후회하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용주사 포스팅을 하면서 부모님 은혜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참고: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용주사 홈피)

 

 

 고사한 용주사 회양목

 

 


 #화성용주사 정보 안내

★사찰명:용주사

화성 용주사 주소: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송산동)우편번호 18347

화성 용주사 문의 전화:031-234-0040

화성 용주사 입장료: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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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여행/경산여행)팔공산 관봉 용주암. 불교예술품의 전시장 같은 팔공산 관봉 용주암.


대구의 진산인 팔공산은 신라시대에는 신라오악으로 경주 남산과 함께 신라불교 성지인 신령이 깃든 부처님의 산이라 여겼나 봅니다. 그래서 팔공산을 둘러보면 동화사와 은해사, 선본사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암자가 하나의 부처님 궁전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많은 사찰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팔공산 관봉으로 불리는 갓바위 주위는 신라 불교 중흥의 꽃을 피웠을 정도로 팔공산의 많은 절집이 몰려 작은 불국토를 연상케 합니다. 지난 주말 대구 팔공산의 끝자락에 있는 명마산 산행을 하면서 부처님의 나라에 눈여겨보았던 암자가 있습니다.

 

 

 팔공산 갓바위를 등지며 봉우리에 기대어 구름같이, 바람처럼 앉은 모습은 가을 단풍과 무척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산중의 사찰은 이맘때가 쓸쓸해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빗돌에는 ‘팔공산 관봉 용주암’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여느 절집같이 뚜렷한 내력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앉은 폼 새만은 작은 터에 오밀조밀하게 짜여 팔공산의 유명사찰 못지않은 규모였습니다.

 

 

 

 남북통일기원탑

 지장보살

 

 

 

 

 

 저는 사찰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많은 관심이 있어 이곳저곳을 잘 둘러봅니다. 마침 윤장각 아래에는 채마밭에서 고추를 따왔는지 보살님 몇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바쁜 손을 놀려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즈넉한 절집의 오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례 오산의 사성암을 연상케 하는 산령각과 오백나한과 사천왕상 등 많은 조각품이 안치되어 용주암은 불교 예술품의 전시장 같았습니다. 윤장각입니다.

 

 

 

 

 

 

 

 

 

 

 

 일반 사찰에는 잘 볼 수 없는 윤판이 중앙에 세워져 있는데 저같이 게으른 사람에게 딱 알맞은 것 같습니다. 윤판을 한번 획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다 하니 말입니다. 윤판 옆에는 지금까지 본 목탁 중에서 가장 큰 목탁도 놓여 있습니다. 이리 큰 목탁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용주암 앞에는 어마어마한 탑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사리를 모셨나 하며 의아했는데 다시 보니 ‘남북통일 기원탑’입니다. 정교함과 함께 예술성까지 갖추어진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꼭 통일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용주암에는 지혜의 부처님이라 하는 지장보살님의 따뜻한 미소가 용주암 전체를 은은하게 비추는 모습을 보면서 무겁게만 느껴졌던 내 육신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팔공산관봉용주암 #여행 #팔공산갓바위 #용주암 #관봉 #갓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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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통영여행)벽방산 안정사. 한산무송 벽방 8경의 소나무를 보며 벽방산 안정사에서 힐링을 하다.


안정사가 있는 벽방산은 이름처럼 범상치가 않은 모습입니다. 벽방산은 불가에서 부르기를 벽발산으로도 부르는데 바리때를 일컫는 말입니다. 즉 고성의 벽방산은 석가모니 부처의 십대 제자의 한사람인 가섭존자가 벽발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라 합니다. 그런 산에 대찰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벽방산의 너른 품에 자리한 안정사와 의상암, 가섭암, 은봉암이 속세를 등진 모습입니다. 벽방산 안정사를 찾다보면 먼저 안정사를 두른 소나무와 만납니다. 이를 벽방 8경 중에서 8경인 한산무송입니다.

 “겨울바람에 소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 영조 때는 선희궁에서 첩지를 내려 소나무를 보호했다 합니다. 그럼 안정사를 둘러보겠습니다.

 

 벽방산 안정사는 신라 태종무열왕 1년인 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오랜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고찰입니다. 남해에 침입한 왜구에 의해 잦은 소실을 입었는데 지금의 대웅전은 1751년 영조 27년에 중건되었고 여러 번 중수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남유형문화재 제80호.

 이곳 안정사의 대웅전은 다른 사찰과 다르게 웅장하고 화려합니다.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지만 정면에서 보면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어 중심성을 강조했고 안정감이 있습니다.

 

 

 

 

 

 

 또한, 덧서까레를 대어 지붕을 처리하여 치마 곡선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듯 수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대웅전에 안치된 본전불은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배치하였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했으며 모두 1358년 공민왕 7년에 조성된 불상으로 알려졌습니다.

 

 

 

 

 

 

 

 

 

 벽방산 안정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안정사 동종이 있습니다. 보물 제1699호로 지정되었는데 범종각 2층에 있으며 1층에는 새로 조성된 대종이 있습니다. 이 동종은 1580년인 선조 13년에 전라남도 담양의 용천사에 있던 동종입니다. 임진왜란 때 방화로 용천사는 소실되면서 완전 폐허가 되었고 동종은 이곳 안정사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일반 범종의 모습과 형태가 같으며 종을 거는 고리 부분 역시 한 마리의 용으로 처리하였으며 맑고 은은한 소리를 내는 음통도 우리 고유의 범종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안정사의 만세루도 천년사찰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고졸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벽방산 산행 입구에 자리한 안정사는 남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한적한 사찰로 사색하기 좋은 분위기이며 또한, 고성 통영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행지입니다.

 


 

 

2013/10/30 - (경남여행/통영여행/비진도선유봉)탱탱한 여인의 젖가슴을 닮은 비진도와 선유도 선유봉 섬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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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용인여행)와우정사. 남북통일를 기원하는 독특한 부처님 동산 용인 와우정사 여행.

경기도 용인시에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사찰이 있습니다. 용인 와우정사이며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창건된 사찰입니다. 와우정사의 창건 취지를 주지 스님께 들어 알 수 있었습니다. 

와우정사는 신라의 호국불교를 계승하여 세워졌으며 우리나라의 숙원인 남북통일 기원 사찰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창건되었습니다. 완만한 골짜기에 넓은 터를 조성하여 세워진 와우정사의 규모가 대단합니다.

신라의 사찰인 황룡사의 종과 같은 방식으로, “통일의 종”을 국내 최대의 황동 범종을 조성하였으며 청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인도네시아의 스님이 보내준 향나무로는 “누워 계신 석가모니불”을 조성하였습니다.


대웅보전 또한 우리나라 최고의 건물인 국보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같은 양식으로 세웠고 황동 8만 근으로 10년이란 긴 세월 공덕을 들여 조성한 장육존상5존 불은 대웅전에 봉안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와우정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스리랑카 스님이 보내준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찰로 대웅보전 앞에는 현재에도 공사가 진행 중인 높이 약 250척의 석가모니 부처님 입상이 조성 중입니다. 불두와 함께 현재 와우정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모습입니다.




전국사찰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보낸 돌로 세웠다는 통일의 탑과 금동 53존불, 아미타불 입상, 약사여래불, 5백 나한상, 석가모니 부처님 고행상 등을 조성하여 과연 부처님 동산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규모입니다.

용인여행에서 와우정사를 찾아 남북통일도 기원하고 사찰 내에 조성된 부처님 동산도 만나보세요. 와우정사는 요즘 용인에서 떠오르는 여행 코스입니다.

◆용인 와우정사 사진으로 보기◆














































◆(경기도여행/용인여행)와우정사 여행 안내정보

★용인정사

★주소: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 223

★전화:031-339-0101

★사찰

★대형 주차장 유

경기도 용인시청에서 초청 진행하는 팸투어에 참가해 작성한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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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에 천년사찰 운흥사가 있습니다. 운흥사는 가창 저수지를 절 앞 정원으로 둘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며 대구광역시 전통사찰 제3호 사찰입니다. 운흥사의 창건은 신라 흥덕왕 때인 832년 운수화상에 의해 동림사로 개산을 하여 1620년 조선 광해군 12년 무념스님이 중수를 하면서 수암사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1751년 조선영조 27년 치화대사 때 최정산 정상 인근에 있던 절을 현 위치에다 새롭게 옮겨 중건중수를 한 뒤 운흥사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천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개명을 여러 번 거쳤지만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운흥사도 한때는 대가람을 이룰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습니다. 임진왜란직전 까지만 해도 수백명의 스님이 구름 때처럼 몰려 수행도량으로 이름을 떨쳤고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 송운대사도 승병을 이끌고 이 절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운흥사에는 보물이 한점있습니다.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2014년 1월 보물 제181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복장 후렴통과 발원문 등 봉안사찰, 제작년도, 제작자 등 조성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기록한 불상으로 17세기 불상연구의 귀중한 자료 입니다.


 

1653년 조각스님인 도우의 첫 작품으로 용연사 삼존좌상과 같은 양식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필자는 문화재를 사진으로 남기는 게 취미라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찍기 위해 운흥사에 들렀습니다.


 

대웅전등 단출한 전각에 비해 마당에 자리한 벚나무와 고목에서 더욱 고풍스러운 모습을 느꼈습니다. 삼존상은 통유리로 막고 있어 사진을 담을 수 없어 앞 유리에 카메라를 데고 한 컷 찍었습니다. 대구 운흥사주위를 둘러보면서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아름다운 절집입니다.


 

 

 

 

 

 

☞(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교통편.


부산에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 운흥사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열차가 편리합니다. 부산역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무궁화와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하차를 합니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칠성시장 역에서 내려 칠성시장 역(서문프라자 앞)버스 정류장에서 ‘가창2번 정대행’ 버스를 반드시 확인하고 타면 끝 입니다. 종점인 칠성고가정류장에서 오전 6시31분, 7시48분 9시02분 10시18분 11시36분에 출발합니다. 오2리 정류장에서 하차. 운흥사 절집 구경을 했다면 대구시내 방향으로 나오는 가장2번 버스는 오후 3시11분 4시23분 5시42분 6시57분 등 10시40분(막차)에 있습니다. 오2리 정류장 도착은 약 10분 더하면 된다. ‘경상감영공원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동대구역으로 이동하여 부산으로 오면 됩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신대구~부산 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수성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월드컵로 대구 미술관(대구스타디움) 방면으로 좌회전합니다. 경기장 네거리에서 유니버시아드로 범물 방면 우측도로를 약 1.2km 가다 범안삼거리에서 범안로 범물동 방면으로 좌회전를 합니다. 삼덕톨게이트를 통과 후 4.8km 이동, 파동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청도 방면 우측도로를 약1.1km 이동합니다. 헐티로 각북 방면 오른쪽으로 꺾어 가창저수지 둑을 지나면 곧 운흥사가 나온다. 

내비게이션은 가창면 운흥사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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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원효암과 의상대. 한적함이 절간 같다는 말이 실감나게느껴지는 원효암 의상대 여행.

 

흔히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비유 할 때 절간 같다는 말을 합니다. 그 만큼 절집은 조용한 것을 의미하는데 그 중에서도 적막강산처럼 그야말로 ‘절간 같다’는 말이 느껴지는 절집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의 원효암 의상대는 이름처럼 거창합니다. 신라시대 두 고승 대덕의 이름을 나란히 달고 있는 사찰은 극히 드문데 이곳의 암자는 원효암 암자에 절벽 바위에 걸터앉은 의상대가 함께 사이좋게 있습니다.

 

 

 

두분이야 오성과 한음처럼 바늘과 실과 같은 분입니다. 원효대사에는 의상대사가 따라 붙고 의상대사에는 원효대사가 따라 올 정도로 두 분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어 천년 사찰 대부분 의상과 원효의 창건 설화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원효암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인 할 수 없지만 6.25 한국동란 때 여항산 일원이 ‘갓뎀산’으로 부를 정도로 북한군과 최대의 격전을 치른 곳입니다. 그 당시 아군과 북괴군의 치열한 전투속에 원효암은 소실되고 의상대만 남았다합니다.

 

 

또한 절의 이름이 원효암이고 의상이 수련한 곳으로 보이는 의상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이 아닌지 추론만 하고 있습니다.

 

 

 

 

원효암에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5호인 칠성각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원효암 칠성각은 앞면3칸에 옆면 2칸의 우진각 건물로 겹치마 팔작지붕에 원주기둥을 사용한 3량 구조의 익공집입니다.

 

 

 

 

이 건물은 사기에 따르면 1370년경에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확한 창건연대와 연혁을 알 수 없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변변한 문화재는 없지만 원효암 아래 골짜기를 절골로 불리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이곳에 암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함안군 군북 여행길에 들러본 원효암과 의상대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담아가는 즐거운 여행길이었습니다.

 

 

 

 

 

원효암 의상대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 산 70-1

 

 

2014/11/11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봉화산~대부산 산행. 낙남정맥의 지붕 여항산과 마주한 함안 봉화산 ~대부산 산행

 

2014/08/20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무진정. 한여름의 무더위도 걱정없는 정자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함안의 무진정.

 

2014/08/07 - (경남여행/함안여행) 함안대산리석불, 함안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을 보고 왔습니다.

 

2014/08/05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성중학교 교정의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해태상을 보는 것 같아요.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2014/03/22 -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 불사이충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산 백이산~숙제봉을 오르다

 

2014/07/22 - (경남맛집/함안맛집)여항산 서북산맛집 함안면 대구식당, 옛 함안오일장에서 만나는 옛스러운 맛이 살아 있는 대구식당의 소고기국밥.

 

2014/03/13 - (경남맛집/함안맛집)군북,의령 톨게이트 맛집 전원휴게소. 고속도로 인근에서 먹는 맛있는 생선구이 전원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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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금정구여행)금정산 미륵사. 마음이 맑은 사람만 보인다는 코끼리를 닮은 바위를 찾아 보세요. 금정산 미륵사.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에는 많은 산내 암자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사찰이 범어사와 미륵사입니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야 두말하면 잔소리로 그만큼 유명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진 사찰이며. 또 한 미륵사는 금정산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절집으로 서로 바늘과 실로 부르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지금이야 금정산 북문까지 임도길이 뚫여 미륵사 가는 길이 편해졌지만 그 이전에는 대단한 불심이 아니면 찾는 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을 사찰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륵사를 등지고 있는 미륵봉에 올라보면 신선의 세계가 이런 곳이 구나하며 여겨질 정도로 대단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누구나 저절로 득도를 할 수 있을 그런 곳 같습니다.

 


 

 그럼 금정산 미륵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통일 신라 문무왕 18년인 678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습니다. 미륵사의 유래는 암자 뒤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듯 한 큰 바위에서 나왔는데 염화전 뒤를 두른 큰 바위를 좌선바위라 합니다.

 

해가 지면서 어스름이 찾아 들 면 집채만한 바위들이 서로 엉켜 만든 작은 틈새까지도 삼켜 버립니다. 이때쯤이면 그 큰 바위가 좌선하는 스님의 형상으로 바뀌며 뒤의 큰 바위인 미륵봉을 향해 스님이 좌선하는 모습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원효대사가 이곳에 미륵암을 창건하였습니다.

 

 미륵사는 염화전을 중앙에 배치를 하였습니다. 정면과 측면 각3칸으로 다포계 팔작지붕이며 1952년 중수되었습니다. 내부 불단에는 석가 삼존불을 모셨는데 석가여래좌우로 미륵보살과 보현보살을 1985년에 봉안하였습니다. 1974년 조성한 후불탱이 삼존불 뒤로 배치를 하였고 신중탱과 지중탱 등 모두 석정 스님의 작품입니다.

 

 

 

 

 

 미륵암에는 쌀굴과 장군기를 꽂았다는 특이한 바위구멍이 두 개 있습니다. 염화전에서 오른쪽 칠성각 쪽 계단 중간쯤에 쌀바위 안내판이 보이며 바위틈에 구멍이 뚫여 있습니다. 매일 아침 작은 구멍에서 한톨 한톨 그날 먹을 끼니만큼만 쌀이 떨어져 사미승이 구멍을 크게 하면 더 많은 쌀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구멍을 쑤셨는데 그 뒤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 합니다. 그 물이 현재 미륵사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염화전에서 왼쪽 독성각 계단을 올라 갑니다. 미륵사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 보여 주는 곳으로 원효께서도 아마 이곳에 올라 참선을 하였을 것 같습니다. 독성각 앞 쪽에 둥근 파이프가 꽂혔던 흔적 같은 구멍이 있습니다. 이곳에 원효께서 장군기를 꽂았다합니다.

 

원효대사께서 미륵사에 주석을 할 때입니다. 왜적 5만 병선이 동래 앞바다에 진을 친 뒤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첩자를 육지로 올려 보내는 것을 스님은 혜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원효스님은 사미승에게 호리병 5개를 구해오게 하여 탑 앞에 나란히 세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바위에는 신라의 장군기를 꼽았는데 그 장군기는 멀리서도 보였습니다. 두 명의 왜놈 첩자가 장군기를 보고 원효가 있는 미륵암까지 올라 왔습니다. 원효는 호리병으로 신통력을 부려 첩자의 목을 조르니 첩자는 살려 달라며 애걸복걸하여 호리병 3개를 너네 대장에게 갖다 주라며 돌려보냈습니다. 화가 머리 꼭대기 까지 오른 적장은 부하가 가져 온 호리병을 단칼에 내려쳤고 그 순간 적장은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합니다. 독성각 앞 바위의 구멍은 다시 장군기를 꽂힐 날을 기다리는지 뚜렷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한 독성각 처마 끝 모서리 바위에는 미륵바위의 장삼자락인지 부처님의 광배를 나타낸 것인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광배 같기도 합니다. 독성각 건물로 현재에는 가려져 있어 알 수 없지만 누군가 구멍을 내어 그 바위를 뜯어 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금정산 미륵사의 당우는 모두 근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알려진 뚜렷한 문화재도 없습니다. 그러나 원효대사와 함께 내려오는 전설을 보면 미륵사의 모습을 상상 해 볼 수 있습니다. 옛날 미륵봉아래 바위 굴속 연못에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 미륵사를 창건하였습니다.

 

 또한 염화전 뒤의 암봉이 마치 화관으을 쓴 미륵불 모습을 하고 있어 사람들에게 신령을 기운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암봉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마음이 맑고 깨끗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코끼리 형상을 한 바위가 일곱 개 있습니다. 코끼리는 상스러운 동물이라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영물입니다. 이 일곱개의 코끼리 바위를 모두 찾는다면 당신은 곧 마음이 맑고 깨끗한 심성을 가진 분입니다. 혹 미륵사에 가게되면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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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구례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여행지가 화엄사입니다. 많은 국보와 보물등 문화재를 품고 있어 문화재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화엄사를 빼 놓고 둘레길 여행을 할 수 없어 짧은 시간을 내어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범위가 워낙 넓어서 한 번에 다 볼 수 없다면 보지 못한 것은 다음기회에 만나기로 하면서 구경을 하였습니다. 화엄사에서는 각황전과 각황전 앞 석등, 동·서탑, 대웅전, 사사자석탑등 반드시 보고 올 것을 체크하고 올라갔습니다.


 

그럼 먼저 각황전 앞에 웅장한 모습으로 턱 버티고 있는 석등을 포스팅 하겠습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석등 중에서 최고의 석등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합니다. 그 높이만도 636㎝로 돌을 깎아 만든 석등으로는 믿기지 않을 큰 규모로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들게 합니다. 


 

각황전 앞 석등에 대해 문화재청 자료를 참고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석등은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여 설치를 합니다. 광명등이라고도 하여 등불을 밝히는 공양이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중에서 최고의 의미를 가진다합니다.


 

석등은 모두 다섯 단계로 나누어지는데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화사석과 옥개석으로 위에 상륜부인 보주를 올립니다. 그 중 화사석은 등불을 밝히는 곳을 말합니다. 시대에 따라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형태로 나누어집니다.


 

화엄사 앞 석등의 화사석은 팔각형으로 4개의 창문이 동서남북으로 뚫여 불빛이 사방으로 퍼지도록 한 백제의 화사석 형태로 통일신라시대에도 그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대석을 보면 8각의 바닥돌 위에 큼지막하게 복련과 귀꽃을 조각해 놓았고 그 위로는 중대석인 장고 모양의 간주석을 세웠습니다. 배가 불룩한 특이한 기둥형태의 간주석은 통일신라 후기에 많이 사용되었던 양식입니다. 그 위에 앙련을 조각한 상대석은 8각의 화사석을 받치도록 하였고 화사석 위에 올린 8각의 옥개석 지붕돌은 귀퉁이마다 큼지막한 귀꽃을 달았습니다. 또한 상륜부는 보륜과 보개, 보주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석등으로 정상부를 크게 장식 한 것이 특징이며 전체적 완성미가 아주 뛰어난 작품입니다.


 

석등의 연대는 통일신라 헌안왕 4년인 860년에서 경문왕 13년인 873년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을 하며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걸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보 제12호

 

☞(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대중 교통편은....


부산에서는 화엄사를 찾아가기가 너무 편하다.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화엄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첫차 오전 7시부터 평균 1시간 간격으로 있다. 3시간30분 안팎 소요. 화엄사 구경을 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올 때 내렸던 화엄사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타면 된다. 오후 1시10분, 3시10분, 4시10분, 5시10분, 6시10분(막차)에 구례 하동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땐 남해고속도로로 가다가 순천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탄다. 황전IC에서 내려 구례구역과 구례군청 앞을 지나면 구례터미널을 거쳐 화엄사로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 화엄사 입력.



2014/11/25 - (경남여행/하동여행/구례여행)평사리~화개장터 섬진강 둘레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 100리 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


2014/11/17 - (전남맛집/구례맛집)구례 산수유맛집 영실봉식당. 제주산 갈치로 만든 갈치탕 얼큰 한 국물이 끝내줘요. 구례 영실봉 식당.


2014/10/30 - (전남맛집/구례맛집)화엄사 맛집 지리각식당. 지리산이라 더욱 맛있는 산채비빔밥 맛집 지리각식당.


2014/10/16 - (전남구례여행)구례공용버스터미널 버스 시간표 올려요. 노고단(성삼재)버스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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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대구 팔공산 파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입니다. 804년 애장왕5년에 심지왕상이 창건을 하였는데 파계사의 유래를 보면 ‘파계(把溪)’란 ‘물길을 잡는다’란 뜻으로 절 주위로 아홉 갈래의 계곡이 어지럽게 흩어져 땅의 기운을 한곳에 모우기 위해 절 아래 연못을 파고 파계사를 창건하게 되었다합니다.

 


현응대사나무

그 후 1605년인 선조38년에 계관이 중창을 하였고 1695년 숙종21년에 현응이 삼창을 하여 오늘날의 파계사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파계사는 영조임금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에도 영조대왕의 도포와 영조임금 나무인 느티나무가 파계사에 남아 있습니다.



왜 영조대왕의 원찰을 파계사라 할까요. 그 이유를 보면은 조선의 19대 임금은 숙종입니다. 숙종은 후궁 화경 숙빈 최씨를 위해 파계사의 현응에게 세자 잉태를 위한 백일기도를 부탁 합니다.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숙빈 최씨의 꿈에 농산화상이 전세의 과보에 따라 숙종의 왕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을 현몽하였고 훗날 백일기도로 태어난 분이 연잉군입니다.



연잉군은 숙종과 장희빈에서 태어난 20대 경종의 뒤를 이어 조선 제21대 임금에 오른 영조입니다. 왕자를 생산하게 된 숙종은 그 보답으로 파계사 주위의 40리를 파계사에서 세금을 거둘수 있도록 명을 내리지만 현응은 그 대신 선대임금의 위패를 모실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올려 선조, 숙종, 덕종, 영조 네 분의 신위를 기영각에 모심으로 조선 후기에와 더욱 기세가 높았던 숭유억불정책의 칼바람을 피해 갈 수 있었다합니다.



1979년 파계사 원통전 관음보살상을 금칠하게 되었는데 불상안에서 영조의 어의가 나왔다 합니다. 1740년 건륭 5년 9월에 제작된 도포와 발원문에는 ‘탱불 일천불’을 희사하고 파계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며 대왕의 청사상의를 복장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럼 파계사의 문화재를 하나하나 만나 보겠습니다.



먼저 매표소 전에 만나는 오래된 나무를 현응대사 나무라 부릅니다. 현응대사는 파계사를 삼창하고 숙종의 부탁을 받아 백일기도로 숙빈최씨에게 훗날 영조대왕인 왕자를 잉태케하였습니다. 수령이 260년 쯤 된 느티나무로 현응대사의 공덕을 기려 부르는데 팔공산에 단풍이 한창 들때 찾아간 파계사. 천년세월의 절집과 함께 너무 잘 어룰리는 고목이었습니다. 

 


파계사는 문화재 관람을 위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통과해야 합니다. 일반 1,500원이며 승용차 주차비는 2,000원입니다.일주문을 통과하고도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파계사 주차장에 닿기 전에 왼쪽에 파계지로 불리는 저수지입니다. 파계사의 아홉갈래 물길을 한곳에 모아 땅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팠다는 연못으로 파계사 창건 유래와 함께 합니다. 

 


먼저 파계사 안내도를 일별합니다. 파계사 경내를 들기위해서는 반드시 만나게 되는 큰 나무가 있습니다. 영조임금나무로 키가 엄청 큰 나무입니다. 


영조임금나무

수령이 약 250년 느티나무로 보호수며 높이가 17m, 둘레는 3.8m. 영조임금의 치적과 현응대사의 백일기도로 영조임금이 탄생하였고 왕실의 원당에 영조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어 영조임금나무로 이름을 붙였다합니다.




먼저 진동루 입니다.진동루는 파계사의 유래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절 주위로 아홉갈래의 물줄기를 따라 새어나가는 땅의 기운을 잡기 위해 연못을 파고 파계사라 하였는데 그것으로는 이곳의 기운을 모두 다스릴 수 없어 경내로 들어오는 입구에 문을 세우고 ‘진동’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먼저 계단을 올라 1층의 누문을 들어서면 파계사 경내에 들어서게 됩니다. 100여평의 넓이에 정면5칸, 측면3칸의 2층 규모로 팔작지붕을 올렸습니다. 현판에 팔공산 파계사가 걸려 있습니다. 정면으로 원통전과 좌측에 설선당, 우측에 적묵당입니다. 




 원통전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파계사 적묵당입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9호이며 조선 광해군 12년인 1620년에 처음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 후 숙종21년인 1695년 현응이 삼창을 한 후 1920년에 중건을 한 후 보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적묵은 ‘눈을 감고 조용히 명산한다’는 뜻으로 스님의 수양 공간 같습니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규모로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팔작지붕이며 기둥 위에 공포를 두지 않고 기둥사이에 작은 접시 모양을 한 소로를 끼운 조선후기 건물로 소박한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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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전을 기준으로 왼쪽은 설선당입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이며 대중의 공양간과 강습소로 사용하였던 건물입니다. 1623년 인조 1년에 계관법사가 중수를 하였으며 1646년과 1725년에 중건을 거듭하여 1976년에 현재의 모습을 하였습니다. 건물은 정면7칸, 측면7칸의 규모로 적묵당과 함께 아름다운 곡선를 가진 팔작지붕입니다. 초석은 북을 엎은 모양으로 그 위에 공포를 두지 않은 둥근 기둥을 세웠습니다. 간결하며 견실한 모양의 민도리집 구조양식입니다. 








원통전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20호 영조임금의 도포와 보물 제992호인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 유물이 있습니다. 파계사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대웅전이 아닌 원통전에 관세움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습니다. 원통은 ‘진리는 원만하여 모든 것에 통해 있다“는 뜻으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지붕 처마를 박치기 위해 커다란 역삼각형으로 짜 맞춘 공포를 두 기둥사이에 장식한 다포양식으로 17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삼베에 여러번 옻칠을 도포한 방식의 불상입니다. 1979년 불상을 금칠할 당시 복장유물로 영조임금의 도포와 발원문이 함께 나왔고 1447년 세종29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1m8cm이며 머리에는 3중의 화관을 씌었고 목의 삼도와 오른손과 왼손에 나타난 손가락과 손바닥 모양을 보면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보물 제1214호 파계사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담은 불화입니다. 1707년인 숙종33년에 연잉군이 왕자일 당시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시주한 불화이며 길이가 340cm, 폭은 254cm.  



파계사 기영각은 연인군이 탄생하면서 그 보답으로 현응의 청원을 받아들여 조선왕실의 위패를 모신 전각입니다. 숙종35년인 1696년에 현응이 창건. 정면3칸 측면2칸으로 팔작지붕이며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혀처럼 앞으로 나온 두 개의 익공에 연화와 연봉 등으로 위와 아래에 화려한 장식을 한 조선 후기 이익공계 양식을 한 모습입니다.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11호.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8호인 파계사 산령각의 창건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1976에 중건을 한 후 1979년에 보수를 하였습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옆면에서 보면 사람인자인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기영각과 같은 공포를 사용하였는데 익공에 연봉과 연화로 장식하고 보 머리에 봉황머리를 끼운 초익공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팔공산 파계사를 찾았을 당시 추색으로 완전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지장전 가는 길에서 본 파계사 왼쪽 언덕은 그야말로 만추의 분위기를 보여 주어 아름다운 절집에 매료되어 넋을 빼고 바라보다가 일행의 그만 내려가자는 말에 부랴부랴 내려 왔습니다. 고즈넉한 파게사의 가을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안내판을 참고하였습니다. 





영조임금나무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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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허불산 청강사. 4월에 가장 아름답다는 절집 허굴산 청강사를 보고오다.

우리는 야무지게 생긴 사람을 보고 속이 꽉 찼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만큼 빈틈이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연에서도 흔치 않은 이름이 있습니다. 허굴산으로 속이 굴처럼 텅텅 비었다는 뜻인데 실제로 허굴산을 가까이 가 보면 완벽하게 꽉 차 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기암괴석과 함게 황계천에 드리워진 황계폭포와 수백년은 됨직한 노송등 어느 하나 빠트림이 없이 완벽한 모인데 왜 허굴산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옛 전설에는 허굴산을 허불산으로도 불렀습니다. “산을 들어서는 입구에서 이산을 바라보면 산의 중턱에 있는 굴 안에 부처님이 좌정하여 있는 것 같아 바랑을 벗어두고 부처님을 배알하기 위해 올라가면 부처님은 없고 허굴만 있다하여 허굴산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 허굴산의 배꼽에 청강사란 아담한 절집이 현재 있습니다. 연꽃모양을 한 듯 입을 벌리고 선 큰 바위를 비집고 들어서 있는 작은 절집은 그래서 더욱 정이 갑니다. 청강사를 들어서는 입구에는 일주문 대신 수백년은 넘어 보이는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청강사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절의 유래를 보면 청강사가 있던 이곳은 원래 고려 때에 창건된 허굴사의 절터였다합니다. 그러나 절터의 흔적만 남게 되었던 이곳에 처음으로 불사를 일으킨 이는 합천군 쌍백면의 유학자 정규락선생입니다.

 


선생은 스스로 청강거사라 하였고 1891년인 20세에 진사과에 합격 하지만 국운이 일인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보고 세상을 등져 허굴산에 은둔하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이곳에 만귀암을 짓지만 선생은 입적을 하고 그의 아들인 정방해 선생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12동에 80여칸의 절을 완공하며 사찰의 규모를 갖추게 됩니다. 또한 만귀암은 부친의 아호를 따 청강사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며 현재는 불가에 귀의한 후손 혜광스님이 주지로 있습니다.



청강사는 당대의 선승 동산스님과 정강 스님도 주석을 하며 수행을 하신 곳으로 현재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은 거창 감악산 연수사에서 모셔온 인도 전단향 목불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웅전 현판은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의 글씨이며 로전과 산신각 그리고 칠성각의 현판은 서예가 오제봉선생과 정현복 선생의 글씨라합니다.



아담한 절집인 청강사는 있는 듯 없는 듯 허굴산과 함께 동화되어 있으며 청강사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4월이라 합니다. 이때쯤이면 산과 절을 에워싼 산 벚꽃이 마치 눈발이 흩 날리 듯 청강사를 감싼다합니다.



화려함은 없지만 아담하며 조용한 절집 합천 허불산 청강사를 대병면 여행시 찾아보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웅전 현판글씨는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이 섰다.


거창 감악산 연수사에서 모셔온 인도전단향 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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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 탑비와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 가지산문의 보조선사 체징 탑비와 승탑.


전남 장흥군의 가지산 보림사에는 보조선사 창성 탑비와 승탑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 탑비’는 보물 제158호이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 승탑’은 보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탑비와 승탑에 대해 알기 전에 보조선사 체징에 대해 궁금합니다.



 

 

체징은 신라 후기의 선승으로 804년에 충청남도 공주인 웅진에서 출생하엿습니다. 성은 김씨에 시호는 보조선사 그리고 탑의 호는 창성으로 880년 그가 입적한 후 3년 뒤에 헌강왕9년에 왕이 내려주었습니다.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 탑비.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 가지산문의 보조선사 체징 탑비


보조선사는 선문구산중 가지산파의 도의선사와 염거화상의 법통을 잇는 3대 조사로 숭상받고 있습니다. 보림사 보조선사탑비는 용의 머리를 닮은 거북 받침돌의 머리는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험상궂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목은 꼿꼿이 세웠으며 거북등에는 6각의 무늬가 새겨져 있고 등의 중앙에 비신을 꽂아 두는 4각형의 받침대에는 구름과 연꽃을 새겨 놓았습니다. 비의 몸돌은 대리석으로 보조선사의 행적과 창건 연가설화등 그의 관한 기록을 새겨 놓았는데 김영이 비문을 짓고 김원과 김언경이 글씨를 썼다합니다.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에다 새겼습니다. 머릿돌인 귀두는 구름과 용의 모습을 세밀하게 조각하였는데 답신과 귀두와 이수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드문 일인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비는 탑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비의 총 높이는 3.46m로 규모 또한 엄청 커 그 당시 석비의 대표작이다.




 

 

 


 

탑비의 앞면 중앙에는 ‘가지산보조선사비영’ 이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통일신라인 884년(헌강왕 10년)에 세웠다.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 가지산문의 보조선사 승탑.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은 부도탑으로 부도란 스님의 사리를 모신 일종의 무덤을 의미합니다. 보조선사 창성탑은 4.1m의 높이로 기단인 바닥돌과 몸체 돌 그리고 지붕돌이 모두 8각으로 팔각원당형을 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몸체 돌을 받치는 기단의 아래 받침돌에는 구름무늬를 매우 입체적으로 조각하였고 가운데 받침돌은 아래위로 띠를 두른 약간 배가 볼록한 모습입니다. 8개의 큰 연꽃 조각위에 탑신의 몸돌을 올렸습니다.



 

 

몸돌의 앞과 뒷면에는 문짝 모양을 넣었고 네 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겻습니다. 몸돌위에 올린 지붕돌은 두터워 보이며 밑면에는 서까래를 표현하였습니다.



 

 

윗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파여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올렸습니다. 복발(엎어 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과 보륜 바퀴모양 장식),보주(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등을 차례로 올려 놓았지만 완전한 모양은 아니라 합니다.


 

 

 

보조선사가 880년 77세의 일기로 입적한 후 4년 뒤인 884년에  세운 승탑으로  안정감과 함께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장성군 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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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여행)범어사여행. 화재로 소실된 천왕문이 복원되다. 


2010년 12월15일 밤 10시20분경에 범어사 경내의 천왕문이 화재로 전소하였다는 뉴스가 다음날 전국을 강타하였다. 서울의 숭례문 화재가 발생되어 안그래도 우리 문화재의 관리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된 사건이다. 그 당시 상황을 보면' 범어사 경내로 들어서면 먼저 보물인 일주문(조개문)을 만나게 된다. 이 건물 30m 뒤에 4천왕상을 모신 천왕문이 있다. 문을 열고 한남자가 들어와 서성이다가 이남자가 나가고 난 뒤 곧 바로 천왕문에 불길이 치솟았다한다' 천왕문은 문화재는 아니지만 조선숙종때의 건축물로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범어사를 지켜 왔고 그 안에 모셔진 4대천왕상은 천왕문안에다 모사품을 세우고 보수를 위해 경내의 성보박물관에 보관을 하던 중이라 화재의 참사에서 피할 수 있었다. 





 

 화재 당시 소실된 천왕문이 현제 말끔히 복원이 되었다. 범어사로 들어서는 길은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방향으로 올랐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도 이 천왕문을 통하고서는 대웅전 방향으로 오를 수 없다. 또 하나의 공사가 있어 그러한데 일제의 잔재 건물인 보제루를 헐어내고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을 하고 있는 중이라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조만간 다시 옛날의 멋진 모습으로 범어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복원된 천왕문과 4천왕상을 구경하세요

 

 

 

 

 

 

 

 

 

 

 

 

 

 

 

 

 

 

 

 

 

 

 

 

 

 

 

 

 

 

 

 

 

 

 

 

 

 

 

 

 

 

 

 밑의 사진은 화재전의 천왕문 모습과 4대천왕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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