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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여행/정선가볼만한곳)고한 태백산 정암사, 5대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 여행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한곳인 태백산 정암사, 앞 번에 태백산 정암사의 수마노탑 포스팅을 하면서 정암사에 대해 약간 언급했습니다만 이번 포스팅에서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정암사 역시 통도사, 법흥사, 봉정암, 상원사와 함께 자장율사께서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 주소: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2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 전화:033-591-2469


2017/02/07 - (정선여행)태백산 정암사 수마노탑.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정암사 수마노탑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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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장율사께서 정암사를 세우게 된 계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자장율사께서 강릉의 수다사에 주석하면서 문수보살의 친견을 서원하던 차에 하루는 꿈속에서 당나라 유학 시절 오대산 북대에서 범어계를 주던 법승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자장율사보고 내일 날이 밝으면 대송정에서 만납시다 하며 사라졌습니다. 

 

 

스님이 잠에서 깨어나 대송정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소승을 만났는데 문수보살께서 태백산갈반지에서 만나자 하신다며 전하고 사라지자 다음날 자장은 갈반지를 찾으려 길을 떠났습니다. 태백산 아래에 당도하여 갈반지를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갈반지의 뜻인 갈은 칡을 뜻하고 반은 소반을 뜻해 스님은 제자에게 칡넝쿨을 찾게 했는데 온 산속을 헤매다가 마침내 칡넝쿨이 감겨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칡넝쿨 가운데 10마리의 구렁이가 서로 몸을 꼬면서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갈반지임을 직감하고 제자들에게 능구렁이를 쫓아내는 화엄경을 독송하게 하자 뱀은 몸을 풀고 사라졌습니다. 그날 밤 자장은 꿈을 꾸었습니다.

 

 

낮에 능구렁이가 나타나 “스님. 그동안 전생의 업을 참회하며 큰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 경과 법문을 설하여 저의 몸에 뱀의 허물을 벗겨주시고 저희가 있었던 자리 밑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하니 절을 세우는데 쓰십시오”하며 사라졌습니다. 7일 동안 자장은 경을 독송하자 마침내 뱀은 해탈하고 죽었습니다.

 

 

 

 

제자에게 그 자리를 파보게 했더니 금은보화가 쏟아져나왔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문수보살을 친견할 인연지라 생각하고 645년에 석남원을 창건하였으며 오늘날의 정암사 시초입니다. 그리고 스님은 산꼭대기에다 탑을 세우려 했지만, 번번이 탑이 무너져 세울 수 없게 되자 백일기도를 올렸고 마지막 날밤 하늘에서 칡 세 줄기가 내려와 멈추었으며 현재 멈춘 자리에 수마노탑과 적멸보궁, 법당이 세워졌습니다.

 

 

 

 

태백산 정암사로 많이 알려졌지만 갈래사로도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며 여기 지명 또한, 갈래가 되었습니다. 자장율사는 칡 세 줄기가 내려온 곳 중 한 곳인 천의봉 아래에다 수마노탑을 세웠습니다. 수마노탑은 서해 용왕이 물 위로 운반하여 보낸 마노석을 쌓은 탑에서 유래합니다. 정암사 경내에서 석교인 일심교를 건너 돌계단을 100여 미터 올라야 합니다.

 

 

 

 

천의봉에서 내려온 급경사 능선을 깎아 축대를 쌓고 그 위에다 수마노탑을 세웠으며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입니다. 이 탑은 통일신라의 거대한 모전석탑 형태에서 정제되고 정교한 수법으로 쌓았으며 옥개석과 우각, 추녀 밑의 상향을 보면 고려 시대 양식을 보입니다.



또한, 청동제로 만든 상륜부의 정교함과 전탑 아래 배례석의 구름 모양인 안상과 연꽃무늬인 연화 조각 수법 등이 고려시대 모전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마노탑은 1972년에 해체 복원되었습니다. 복원 이전에는 전탑의 파손 상태가 매우 심했습니다.



 

해체를 하면서 3층 옥신에서 기단부 사이에 5개의 탑지석을, 기단맨 아랫부분에서는 청동합과 은제외합, 금제외합 등의 사리장엄구가 함께 나왔다 합니다. 여러 번 수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현재의 전탑 모습은 1653년에 중건되었으며 탑지석에 나와 있다합니다. 정암사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수마노탑 아래에다 적멸보궁을 세웠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면서 참배하기 위한 공간으로 건립한 법당입니다. 극락교를 건너면 이곳은 적멸궁의 현판이 걸렸습니다. 그 뜻을 보면 “번뇌가 사라져 깨달음에 이른 경계의 보배로운 궁전”이라 합니다. 저 또한 불교도이지만 그 뜻은 심묘할 뿐입니다.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했기 때문에 적멸궁에 따로 부처님을 모시지 않았으며 그 대신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했다는 금란가사를 보관해왔습니다. 그러나 금란가사는 아쉽게도 현재에는 볼 수 없습니다. 1975년 11월 어느 날 도둑이 들어 현재까지 찾지 못한 상태라 합니다.

 

 

적멸궁은 천의봉 능선 끝에 있으며 서쪽을 향한 법당 앞에서 좌·우 두 계곡의 물길이 합쳐져 한 가닥으로 흘러갑니다. 이곳에다 적멸궁을 세웠으며 적멸궁을 받치는 축대는 주변의 자연석을 모아 쌓았습니다. 그 위에다 덤벙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겹처마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정암사 사적에 따르면 1770년(영조46). 1858년(철종9), 1919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현재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적멸궁


자장율사 주장자 


 

 적멸궁 뜰에는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그가 들고 다녔던 주장자를 꽂아 신표를 남겼습니다. 주목으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나무입니다. 1300여 년의 긴세월을 지나면서 죽었다던 주목은 다시 가지 일부가 살아나 현재 적멸궁 앞을 호위하는 듯 지키고 있습니다.


 

자장율사의 성품을 닮았는지 주목은 동서남북으로 길게 가지를 뻗은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 자장율사 주장자인 주목을 선장단이라 부른다합니다. 주장자는 무엇인고하니 영화에서 보면 수염을 하얗게 기른 고승이 기묘하고 무겁게 보이는듯한 나무지팡이를 들고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지팡이가 주장자입니다.



이는 스님이 좌선 또는 설법을 할 때 손에 들고 다니는 지팡이며 불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가끔 유명 사찰을 가다 보면 고승이 자신의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훗날 그곳에서 싹이 자라 고목이 되었다는 전설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신기해하며 다시 한번 그 사찰의 역사와 정통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암사 또한 자장율사의 주장자가 유구한 세월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보면서 천년사찰 정암사를 다시 한 번 더 보게 되었고 자연의 경외함까지 생각하게했습니다. 스님이 들고 다니는 주장자 윗부분에는 6개의 방울이나 쇠고리를 달아 소리를 내게 했는데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방울이나 쇳소리를 듣고 벌레나 미물이 발에 밟혀 죽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주장자에 달린 6개의 쇠고리는 육환장이라고도 하며 육도 중생이 모두 해탈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암사 계곡은 열목어 서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정암사가 세계 열목어 서식지로서는 최남단에 해당하여 천연기념물 제73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시베리아, 몽골 등 추운 지방인 북방계 어종으로 항상 수온이 20도 이하에서만 서식하는 물고기이며 이곳 정암사 계곡의 물이 그만큼 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눈에 열이 많아 항상 눈알이 빨개서 열목어라 불리고 찬물에다 눈의 열을 식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암사 수마노탑

 

 

필자가 정암사에 들렀을 때 한참 관음전 중창 불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황금색을 띈 관음전 중창, 육화정사, 자장각, 삼성각, 목우당, 범종루, 적멸궁, 일주문, 수마노탑 등 많은 전각이 정암사 경내를 꽉 채웠습니다. 정암사 홈페이지를 보면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란 뜻의 정암사를 보면서 사방팔방 높은 산이 호위하는 괴괴한 정암사를 보면서 그 이름이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참고:정암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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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금강계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중 제1 적멸보궁 통도사 금강계단 여행하기.


 

양산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습니다. 왜 양산 통도사에 금강계단이 있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를 두고 말하며 이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면서 가져온 불사리와 부처님 가사를 나누어 봉안한 곳입니다.





◆양산 통도사와 함께 둘러보기 좋은 여행지


2016/04/15 - (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당간지주. 사찰을 표시하며 행사를 알리는 깃발을 걸었던 당간과 지주가 양산 통도사에도 있습니다. 통도사 당간지주


2012/01/05 - 암, 스님의 밥그릇이 이정도는 되어야지. 통도사 봉발탑


2012/04/28 - (경남양산) 영남 알프스 통도사 서운암 들꽃 축제에서 넋을 빼앗기다....봉화봉~늪재봉


2008/09/30 - (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자장암 금개구리. 통도사 자장암 금개구리를 보섰나요


2008/10/01 - (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자장암 여행.금와보살이 산다는 통도사 자장암 찾아가기...


2016/03/23 -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용연사 금강계단. 통도사 금강계단의 진신사리가 비슬산 용연사 석조계단에 모시게된 유래가 궁금하다면. 용연사 금강계단


2012/01/24 - 부처님 불상이 없는 대신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 통도사 금강계단


2012/01/18 - 임진왜란때 왜구가 활시위를 당겼다가 주변 경치에 반해 그만 두었다는 통도사 안양암


2011/08/16 - 천년동안 통도사의 경계를 표시했던 국장생석표가 보물로 남아 있네요.





 

이중 태백산 정암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구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 금강계단의 진신사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봉안하게 되었으며 통도사는 5대 적멸보궁에서 제1 적멸보궁으로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에 따로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상을 모시지 않습니다. 이곳 영축산 통도사의 대웅전인 금강계단도 똑같은 구조인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자장율사는 선덕여왕 때인 643년에 왕명을 받고 신라로 귀국하게 되는데 그때 부처님의 두골과 치아 등 진신사리 100과와 부처님이 입었던 가사 한 벌을 가져와 사리는 삼등분하여 황룡사탑과 울산 태화사 탑, 그리고 남은 사리와 가사는 646년에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만들어 보관했습니다.


 

처음 자장율사가 만들었다는 통도사 금강계단은 정방형인 2층 돌계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상층 가운데 범종 모형을 한 부도를 안치하였습니다. 계단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였으며 기단의 1, 2층 면석에는 비천상과 불상 그리고 보살상을 조각하였는데 그중에서도 1층 계단의 면석에는 총 32구의 불상, 보살상이 부조되어 매우 정교하며 화려하여 전체적으로 하나의 예술작품입니다.


 

연화대좌 위에 사리를 봉안한 2층의 석종 부도를 안치하였고 앞쪽에는 향로와 비천왕상을 배치하였습니다. 금강계단은 여러 번 중수과정을 거쳤는데 특히 1645년 임진왜란 때 화재로 불탄 금강계단 앞의 대웅전을 우운대사에 의해 새로 중수하였습니다. 그때 정(丁)자 건물로 장중함과 위엄을 갖춘 모습이 되었습니다.


 

동서남북 모두 정면으로 보이는데 동쪽은 대웅전, 남쪽은 금강계단, 서쪽은 구룡지가 있는 대방광전, 금강계단을 마주한 북쪽은 적멸보궁의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1652년과 1705년 정인과 성능 두 대사에 의해 금강계단은 대대적인 중수과정이 있었고 지금 금강계단 주위에 설치된 석조난간과 석문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습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 오대산에서 노승으로부터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00과 머리뼈와 손가락뼈, 염주, 경전 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축서산(지금의 영축산) 기슭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사는 연못이 있는데 비바람을 일으키고 곡식을 상하게 하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쁜 용이라며, 문수보살이 화한 노승은 연못을 메우고 그곳에다 금강계단을 짓고 가사와 사리를 봉안하라 일렀습니다.


 

자장율사는 신라로 귀국하여 독용이 산다는 구룡지를 찾았습니다. 설법으로 용들을 일깨워 아홉 마리의 용 중 8마리는 지금의 영축산 옆 오룡산과 삼동 곡으로 떠나고 눈이 먼 한 마리의 용만 떠나지 않고 이곳을 지키며 사는 게 소원이라 청하였습니다. 자장율사는 용의 소원을 들어주며 귀퉁이에 작은 못을 남겨놓고 살게 하고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쌓았습니다.


 

지금도 대웅전 옆에는 구룡지라 부르는 작은 연못이 남아 있습니다. 통도사 금강계단은 국보 제290호이며 높이는 3m, 넓이는 9m 90cm입니다. 이곳에서 받은 계율이 금강과 같이 단단하다는 뜻으로 매년 초하루와 보름날에 수계가 이루어졌습니다.


 

통도사 대웅전 적멸보궁 기단석에 부조된 무늬


 

 

 

 

 

 

 

 

 

 

 

 금강계단 입구는 대웅전 오른쪽에 있으며 여기는 왼쪽 출구입니다. 참배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참고하세요.

현재  통도사 금강계단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이하 사진은  2012년 촬영한사진입니다.

 

 통도사 금강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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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배내골은 물맛이 시원한 배맛이라하여 배내골로 불리는 설과 옛날에 이곳에 돌배나무가 많았다하여 배내골로 불리는 두가지 설이 있다. 그만큼 배내골은 영남알프스에서 밀양의 쇠점골과 함께 최고의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배내골 상류에는 백련계곡과 주암마을이 있는 철구소로 나누어진다. 백련계곡은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시살등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으로 천혜의 심산유곡을 빚고 있다. 이를 두고 청수골과 백련골로 불리는 청석골그리고 간월재로 이어지는 왕봉골로 영남알프스 계곡을 대표한다고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산이 높고 깊으면 그 품안은 얼마나 넓은지 이곳 백련이 그러하다. 그러나 최근에 이 아름다운 계곡을 신이 시샘을 하는 것일까?. 등산로를 통제한다하여 청수골계곡이 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산세에 비해 영축산을 끼고 흐르는 계곡이 그리 발달된 편이 아니지만 금강골은 포 사격장이 있는 부대에 포함되어 민간인은 출입이 통제되어 계곡의 구실을 못하고 있고 반대쪽의 청수좌, 우골이 영축산의 유일한 계곡이다. 이곳마저 청수골산장에서 사유지란 명분으로 출입을 막고 있어 영축산 계곡을 찾는 등산 동호인들에게 하루빨리 돌려주길 바래본다. 이번 영남알프스 코스는 시살등에서 흘러 내린 능선으로 최근에 와서 각광을 받고 있는 능선이다. 이 능선을 올라 자장암으로 하산을 하는 코스를 잡았다. 태봉과 죽전마을의 중간에 있는 배내골 버스 종점을 출발해 태봉교를 건너 청수골 산장 입구에 걸쳐있는 파래소2~경주이씨묘~장선리 삼거리~전망대~헬기장~통도골 갈림길~신동대굴(~다시 통도골 갈림길)~시살등(981m) 정상~바위전망대~안부 이정표(통도사 임도) 삼거리~임도~자장동천~자장암~통도사를 거쳐 통도사 입구 매표소에서 마무리한다. 전체 산행거리는 15.5정도로 순수 산행시간은 4시간30~5시간 걸린다. 휴식시간을 뺀 시간으로 산행시간은 개인의 체력 등에 의하여 가감된다.




신동대동굴













산행은 배내골 버스 종점에서 차를 내리면서 시작한다. 원동 쪽으로 100m쯤 가서 왼쪽 태봉교를 건넌다. 울산과 경남양산의 경계지점으로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안내판이 무색하게 이 일대에는 펜션과 같은 숙박시설, 음식점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태봉교를 건너면 왼쪽으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파래소유스호스텔의 배모양 건물이 배내골에 정박(?)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넓은 길은 신불산자연휴양림 하단지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가계 된다. 갈림길에는 울주군이 조성한 하늘억새길 이정표가 서 있다. 1쯤 올라가면 청수골에 설치된 파레소2교로 최근에 세워진 다리와 만난다. 최근 등산로 통제로 논란의 중심이 된 곳이다. 여기서 파래소2교를 건너지 말고 다리 직전에 오른쪽 쇠사슬 차단 줄을 지나 축대가 쌓인 길로 올라간다. 100m 정도 올라가면 너른 공터 끝지점에서 위쪽으로 능선을 따라 산길이 열린다.능선에 가르마를 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부터 길은 가파르다. 15분 정도 올라가면 경주이씨 묘를 지나며 길이 잠시 완만해진다. 이곳부터 큰 소나무인 홍송이 놀랠 정도로 굵고 튼실하다. 양팔을 벌린 장정 둘이서도 모자랄 굵기에 혀를 내두른다. 무덤에서 10여 분 가면 산죽밭을 지난다. 왼쪽 멀리 나무 사이로 신불산과 영축산이 언뜻 보인다. 다시 10여 분 더 걸으면 이정표가 선 삼거리다. 오른쪽 길은 장선리(1.5)로 가는 길로 얼음골 능선이다. 시살등(1.9)은 능선 따라 직진이다. 능선 오르쪽으로는 배내골 건너 재약산과 향로산 등이 보인다. .










상수리나무등 하늘을 가리는 숲을 뚫고 올라서면 블록으로 만든 헬기장이 나온다. 길은 직진해서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돌아간다. 5분가량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시살등 방향은 왼쪽으로 50m 가면 다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다. 이정표에는 올라온 방향으로 '장선팜스테이마을', 시살등 방향으로는 '양산 통도사'만 표시돼 있다. 오른쪽은 장선리로 가는 하산길이다. 이 계곡을 통도골이라 부른다. 장선에서 통도사로 넘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의미이다. 이곳 통도골 초입 큰 암벽 밑에 신동대굴이 있다. 누군가가 이정표 위에 화살표와 함께 신동대동굴을 표시해 두었다. 5분 정도 가면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나타난다. 그 아래 제법 너른 동굴이 신동대굴이다. 옛날에 신동대란 사람이 이 동굴에서 살았다. 그는 신통력으로 도술을 부렸는데 임진왜란등 전란에 참가를 하여 신통력으로 많은 왜군을 무찌르다 전사를 하였다 한다. 그래서 신동대가 살았다하여 신동대굴이라 부른다.














동굴에서 삼거리로 돌아온 뒤 다시 능선을 따라 직진한다. 10분 정도 오르면 숲 그늘을 벗어나고 시살등 정상이다. 정상의 조망은 거칠 것이 없다. 가까이 있는 영축산은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외에는 향로산~재약산~천황산~운문산~가지산~간월산~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의 주요 봉우리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시살등의 유래는 임진왜란때 단조성에 있던 아군과 왜구가 이곳에서 비오듯 서로 화살을 쏘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하며 신평에서 보면 이 능선이 활 등처럼 보인다하여 그리 부른다한다. 올라온 방향에서 오른쪽으로는 오룡산이 보이고 경부고속도로 건너 천성산 능선이 길게 누워 있다. 오른쪽 오룡산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간다. 이번 산행에서 최고로 뛰어난 조망을 보여 주는 구간이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한여름의 더위를 날려버리고도 남음이 있다. 곧 숲으로 들어선 뒤 10여 분 완만한 길을 가면 오룡산 쪽으로 탁 트인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기막힌 조망을 마지막으로 안겨준다. 이곳을 내려서면 곧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 삼거리다. 직진하면 오룡산으로 가고 하산로는 이정표의 '통도사 임도(1.3)' 방향 왼쪽 내리막이다.




자장암의 모습으로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하기 전에 이곳에서 움막을 짓고 수도를 하였던 곳으로 자장율사의 신통력을 옅볼수 있다. 암벽 바위에 검지손가락을 눌러 구멍을 뚫어 개구리를 살게하였는데 금와공으로 금와보살이라 부른다. 


숲이 짙어 흙길이 습기 찬데다가 돌이 많아 미끄러지기 쉬운 내리막은 초반부터 가파르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른 계곡을 건너는 등 산길 찾기에 유의를 한다 마지막에 계곡을 왼쪽으로 두고 가면 임도로 내려선다. 왼쪽 임도 길은 금수암을 거쳐 통도사로 가지만 답사로는 자장암 통도사로 오른쪽이다.






콘크리트 임도길을 걷다 다리를 건너 이어진다. 흙길 임도를 7~8분 걷다가 길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지점에 너른 터가 있다. 답사로는 여기서 왼쪽 내리막 산길로 들어선다. 이정표가 없는 지점이라 유의해서 한다. 일단 내려서면 20여분 동안 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갑자기 산길은 급하게 내려서며 오른쪽 아래로 자장동천 계곡이 보인다. 계곡에 내려서면 왼쪽으로 너른 길이 연결된다. 오룡산에서 자장암으로 내려서는 하산 길도 이곳에서 만나는 지점으로 맑은 계류가 암반을 타고 흘러간다. 계곡을 건너 15분 정도 넓고 편안한 길을 걸어 내려가면 자장암 입구다. 여기서부터는 도로를 따라간다. 서축암 갈림길 지나 600m가량 더 가면 표전교를 건너기 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차단봉이 서 있는 길로 들어선다. 계속 내려가면 통도사가 나오고 여기서 20분을 더 걸어가면 통도사 입구에 도착한다.





들머리인 배내골 백련마을로 가려면 부산에서 일단 언양으로 가야 한다. 노포동 터미널에서 오전 630분부터 20~30분 간격으로 운행. 50분 소요. 배내골로 들어가는 버스는 KTX 울산역, 언양, 석남사 등 출발지가 제각각이다. 석남사에서 출발하는 버스 편이 오전 645, 815, 1020(10시경 언양시외터미널 후문 옆에서 버스를 탈 수 있다) , 11, 오후 210, 330분 등에 있다. 20분 소요.


산행을 마치는 통도사에서는 정면으로 200m 정도만 걸어가면 신평 버스정류장이 있다. 여기서는 언양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노포동 터미널로 가거나 정류장 인근에서 명륜동까지 운행하는 양산 12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먹을만한 집

영남알프스 산행을 끝내고 하산을 한 터라 뱀 나올 것 같은 풀만 먹기에는 원기 보충이 안 될 것 같아 신평시장으로 찾아간 다슬기 전문점 옥석(055-382-8882)”이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찾아간 옥석은 관광지이지만 평일이고 시골로 늦은 오후라 그런지 조용하다.






안하나 하면서 문 앞에 서성이니 문이 열린다. 영업합니까 하고 물어 보니 들어오란다.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다슬기탕을 주문하는데 두종류라 맑은 국물과 다슬기찜, 주저없 다슬기 찜을 시키고 지인은 맑은국물을 주문한다.

다슬기찜 이름이 생소하다. 아마 다슬기도 지방에 따라 먹는 방법이 다른 것 같은데 다슬기 찜이 아마 들게 가루를 넣어 묽은 흰죽처럼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구수한 것이 예전에 함 먹어 본 기억이 있다맑은 국물은 충북의 영동, 황간에 가면 항상 먹는 그런 국물이 아닐까 싶다. 잠시 뒤 나오는 다슬기국과 찜을 보니 예상은 적중. 그런데 이곳의 국은 정구지가 들어가 재첩국처럼 느껴진다.

 다슬기찌무 7천원, 다슬기 맑은국물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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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오대산 상원암, 영축산 통도사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ㅋㅋ 모두 산 밑의 사찰.

예 사찰 맞습니다.

그리고요...

“적멸보궁”입니다.

예 맞습니다. 맞고예...

흔히 말하는 5대 적멸보궁이라 일컫는 사찰입니다.

 

 






적멸보궁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들 사찰에 가보면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이고 어디를 가던지간에 부처님 모습의 불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왜 일까요.



이곳 사찰들은 석가모니불의 진신 사리를 모셔 놓았기 때문에 따로 부처님의 모습인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합니다. ㅎㅎ.

그럼 영축산 통도사로 함 찾아 가 봅시다.



실제 통도사 대웅전의 그 큰 법당안에도 들어서 보면 따로 부처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 북쪽으로 큰 창문이 붙어 있습니다. 그 안으로 보이는 것은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의 모습인 사리탑이 눈에 들어오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장중한 그 모습에 입이 쩍 벌어집니다.



대웅전 좌우로 금강계단 안으로 들어 설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통도사의 가장 큰 중심건물인 대웅전과 금강계단은 신라선덕여왕 15년인 646년 자장율사에 의해 세워졌다합니다.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하 왜 하필 금강계단이라 이름을 붙였을까 궁금하네요. 계단(戒壇)의 의미는 불교의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하는 장소라 합니다. 이곳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통도사의 근본정신은 이곳 금강계단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도사를 삼보 사찰중 불보사찰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금강계단 모습은 자장율사가 처음 세운 그 당시의 모습은 아니라고 합니다.
세월의 무게만은 어쩔 수 없는 지 이곳 금강계단도 여러번의 중수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기록를 찾아보면 그 기본 골격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 보여 집니다하니 자장율사가 처음 세운 금강 계단의 모습도 이 모습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고려, 조선시대에와 금강계단을 수호하는 천인상과 신장상, 불좌상등이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보이네요.



그리고 금강계단의 앞 대웅전도 임진왜란때 소실 된후 인조23년인 1645년에 우운대사에 의해 다시 중건되었다 합니다.
보통 기존의 대웅전은 일(一)자 형태로 장중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보통인데 여기 통도사의 대웅전은 정(丁)자 형태를 하고 장중과 위엄을 모두 갖추고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 서, 남 모두 정면의 모습을 취하고 있어 그 당시의 통도사 대웅전의 위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 용의해인 2012년 임진년입니다.

흑룡의 기운과 부처님의 가피로 블로그님들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길 빌어 봅니다.

찾아가기

부산에서 이동할 경우 부산도시철도 1호선 명륜동역 앞에서 새벽 5시32분부터20~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언양행 버스를 타고 통도사 입구인 신평에서 내린다. 매표소인 일주문을 거쳐 통도사 소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서면 통도사이고 맨 끝 부분에 금강계단이 있다.

또 KTX 울산역을 이용하면 수도권 시민들도 2시간30분만에 통도사 일주문까지 도착 가능하다.
울산역 앞에서 새벽 5시2분부터 25~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13번 버스를 타면 30분만에 통도사에 닿는다.
자가용 이용자는 경부고속도로 통도사IC에서 내려 35번 국도를 타고 통도사 방향으로 좌회전, 1㎞쯤 가다가 통도사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매표소가 있는  일주문을 통과하면 다리를 건너 통도사 대형 주차장이 나온다.




통도사대웅전과금강계단
국보제290호
소재지: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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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안양암. 임진왜란때 왜구가 활시위를 당겼다가 주변 경치에 반해 그만 두었다는 통도사 안양암

통도사의 산내암자는 20여개로 그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다.




자장암은 자장율사가 통도사 창건전에 이곳에서 먼저 움막을 직고 수도하며 바위에 검지로 구멍을 내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는데 이를 금와공 도는 금와보살이라 부른다.


이 부근이 임진왜란때 왜구들이 활을 쏘려고 활 시위를 당겼다가 그곳에서 보는 경치기 너무 아름다워 그만 활을 쏘지 못하고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장소이다


극락암은 한국근대불교의 정신적 지주인 경봉스님이 1953년부터 조실로와 주석하였던 곳으로 암자입구의 극락영지는 절 뒤 영축산의 모습이 아름답게 비추며 그 영지를 가로 지르는 홍교 와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서운암은 절 마당에 정돈된 5000여개의 장독대로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봄이면 100여종의 야생화가 만발하고 전통천연염색및 약된장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산내 암자이다.



백운암 비로암등 많은 암자들이 있지만 오늘 소개하는 암자는 통도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안양암을 소개할 까 한다.
흔히 안양 동대라고 하는 작은 암자로 아마 산내 암자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한다.


북극전의 모습

암자의 독성각 우측 바위가 있는 부분에 석축이 쌓여져 있는데 이곳에서 임진왜란때 왜구들이 활을 쏘려고 활 시위를 당겼다가 그곳에서 보는 경치기 너무 아름다워 그만 활을 쏘지 못하고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곳에서 보는 영남알프스 영축산의 모습이 노송과 함께 장관을 연출하며 발아래는 통도사의 모습에 왜구도 차마 활을 쏘지 못하였던 걸까..




그리고 안양암은 편편한 암반위에 조성되어진 암자로 이바위를 동대라고 부른다. 이곳 안양암에는 타 사찰에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전각이 있다.
안양암 북극전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안양암의 건립연대는 고려 충렬왕 21년인 1295년에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스님들의 수도공간으로서 사용되어졌는데 현재의 모습을 이루게 된 것은 고종2년인 1865년에 중건 되었다.




원래 안양암은 스님이 거처하는 요사채등이 3채만 있었는데 최근의 중건으로 6동의 건물이 포진하고 있다.
그중 돋보이는 건물이 북극전으로 사람의 장수를 도와주는 북두칠성을 봉안하는 불전이다. 그래서 칠성전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는 북극전만을 안양암이라하였다 한다.























찾아가기


부산에서 이동할 경우 부산도시철도 1호선 명륜동역 앞에서 새벽 5시32분부터20~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언양행 버스를 타고 통도사 입구인 신평에서 내린다. 일주문을 거쳐 통도사를 거쳐 좌측으로 오르면 된다.
또 KTX 울산역을 이용하면 수도권 시민들도 2시간30분만에 통도사 일주문까지 도착 가능하다.
울산역 앞에서 새벽 5시2분부터 25~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13번 버스를 타면 30분만에 통도사에 닿는다.
자가용 이용자는 경부고속도로 통도사IC에서 내려 35번 국도를 타고 통도사 방향으로 좌회전, 1㎞쯤 가다가 통도사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매표소가 있는  일주문을 통과하면 다리를 건너 범어사 대형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좌측 으로 진입하면 안양암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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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국장생석표. 천년동안 통도사의 경계를 표시했던 국장생석표가 보물로 남아 있네요.


통도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15년인 646년에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

삼보사찰의 하나로 불보사찰로 유명하다. 삼보란 불교의 뿌리가 되는 불(佛:부처님), 법(法:불법), 승(僧:승단)을 뜻하는 말로서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가 봉안되어 있어 대웅전에는 불상이 모서져 있지 않은 사찰로 유명하다. 








팔만대장경을 모신 해인사가 법보사찰, 보조국사 이후 16국사를 배출한 조계산 송광사가 승보사찰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모시고 있는 통도사를 삼보의 으뜸이라 치고 있는데 그러한 규모인 통도사의 경계가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영축산 아래에 자리잡은 통도사는 현재 영축산 동남쪽인 통도사 뒤 골짜기가 모두 통도사 소유의 땀으로 알려져 있다. 지산마을에서 영축산을 거쳐 오룡산에 이르는 능선과 해운자연농원이 있는 뒷산인 늪재(봉화산)에서 통도사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데 옛날의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시대의 사찰 규모는 더 확장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통도사의 경계를 표시한 보물 제74호인 통도사 국장생석표이다.



통도사에서 먼 거리에 위치한 이 표석은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35번 국도상에 위치하고 있다. 일주문에서 동남쪽 2km 지점이다. 예전 그 영화는 간데 없고 쓸쓸히 밭고랑 사이에 그때의 흔적만 남기고 있다.
통도사의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 기록에 따르면 사방 산천의 기를 보충하기 위해 12곳에다 장승인 표석을 세웠다고 하며 국명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1085년 고려시대때 세웠다고 되어 있는데 다시 세운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국장생석표가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167cm의 돌 기둥에다 해서체로 새겨진 통도사 국장생 석표의 원문글씨로 '通度寺孫仍川國長生一坐段寺所報尙書戶部乙丑五月日牒前 判兒如改立令是於爲了等以立 太安元年乙丑十二月日記(다음백과사전인용) '
네줄로 새겨진 글자는 이두문이 함께 사용되었고 금석문 연구의 중요한 자료라 한다. 넓이는 60cm 정도의 크기이다. 국장생석표의 역할은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며 땅의 기운을 보충하여 절에 들어오는 액운을 막기위한 고려시대의 풍수사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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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문화는 밀집한 관계를 지닌다. 자작나무는 눈덮인 시베리아를 떠올리게 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비롯한 북유럽의 전형적인 통나무집은 상당수가 전나무로 만들어졌다. 적도 열대 바닷가는 야자나무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를 상징하는 나무는.

소나무의 푸름은 예로부터 선비의 절개와 군주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을 칭송하는 문학의 소재가 됐다. 구황이 들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으며 끈질긴 생명을 이었다. 겨울에는 장작으로, 마른 잎 솔가리는 불쏘시개로 사용됐다.

우리는 소나무를 흔히 모든 나무의 어른이라 칭한다. 한자 ‘松’을 풀어보면 오른쪽 ‘公’은 소나무가 모든 나무의 윗자리에 있음을 뜻한다.

영덕 칠보산에 가면 잘 생긴 소나무들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의 일행은 산행 내내 그 놈 한 그루 뽑아 집으로 가져 가고 싶다며 탐을 냈다. 덧붙이자면 칠보산은 경북에서 동해를 바라보기에 가장 빼어난 전망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산행코스는 금곡리 유금사~자연휴양림 갈림길~헬기장~칠보산(810.2곒)~광산~아치곡~유금마을. 약 5시간 걸린다.

고래불과 백석해수욕장을 지나 칠보산수련원 간판이 보이고 곧바로 왼쪽으로 들어서는 길이 있다. 지금은 완전히 포장을 해 놓았지만 산길은 굴곡이 심해 조심스레 달린다. 중간에 왼쪽으로 자연휴양림 진입로가 있다. 유금사까지는 약 10분. 유금사 주차장으로 가기전 작은 다리를 건너기전에 좌측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100m쯤 가면 갈림길. 임도를 따라 오른쪽에 소나무 숲 사이로 난 넓은 길로 들어선다. 얼마 안 가 작은 계곡이다. 물 색깔이 본래 무색 투명하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한없이 그리고 더없이 맑다.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 울울창창 푸르름을 더하고 태풍때 넘어진 긴 소나무들이 통행세라도 요구하는 듯 자리를 차지하고 길을 막고 있다. 어른 키 보다 큰 수풀이 길을 막는다. 뚜렷하고 큰길만 따라간다.

울창한 계곡에 햇볕이 안 들어와 눅눅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 높은 습도 때문에 땀은 비오듯 한다. 온 몸은 벌써 흥건하게 젖었다.

유금사 주차장에서 20분이면 임도길은 좁은 오솔길의 산길로 변한다. 왼쪽으로 오른다. 다시 갈지(之)자로 이어지는 오르막 산길로 힘든 줄 모르고 오른다.

이때부터 아름드리 소나무 감상을 시작한다. 덩치 큰 어른이 팔을 쭉 펴고 안아도 다 품을 수 없다. 하늘로 쭉 뻗은 당당한 소나무의 자태는 ‘대장군’, 그 나머지 나무는 한낱 ‘졸개’에 불과하다. 적어도 칠보산에서는 그렇다.


20여분동안 아흔아홉 굽이를 넘듯 구불구불한 길을 오른다.

잔뜩 찌푸렸던 날씨가 아연 밝아진다. 해가 고개를 내밀 듯 하다. 주위가 훤해진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반짝 빛난다.

폭풍에 뽑히고 넘어진 소나무가 길을 막는다. 능선에 올라서면 이정표. 칠보산 정상을 가리키는 부분은 누군가 지웠고 ‘칠보산 자연휴양림 3.㎞’만 남았다. 아마 엉뚱하게 표시해 놓았을 것이다. 50m 가면 헬기장이다. 이곳에서 정상은 한 달음. 능선길 10분이다.

칠보산 정상에는 영해 산사랑산악회가 세운 정상석과 돌탑이 있다. 맑은 날은 동해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지만 취재팀이 찾은 날은 날이 흐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산은 올라온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서 시작한다. 물론 아까 지나온 이정표까지 되짚어 내려가 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가도 좋다. 약 1시간20분 걸린다.

몇 걸음 가다 왼쪽으로 붙는다. 완전히 묵은 길이다. 인적이 끊긴 지 최소 10년은 지났을 성 싶다. 산허리를 타면서 걷는다. 고산지대에서나 볼만한 잡목 숲이다.

길과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 같다. 희미하던 길이 또렷해지다 어느 순간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1시간 여 걷다 왼쪽으로 에도는 지점을 만난다. 5분쯤 가면 오른쪽으로 쏟아지는 내리막길.

“아이고 인자 길 이자삘 염려는 엄것다.” 하산길이 선명해지자 짙은 안개 속에서 내심 조바심을 내던 취재팀 일행중 한명이 한숨을 토해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길은 다시 오리무중이다. 수풀에 덮인 옛길을 복원해 내기란 쉽지 않다.

20분쯤 뒤 약간 오르막이다. 길 옆에 ‘山’이라고 적힌 삼각점이 있다. 조금 더 걸으면 유금마을이 희미하게 보인다. 능선을 돌아 넘으면 내리막이 시작된다. 5분뒤 네갈래길에선 직진한다. 곧 무덤이 나온다. 이번 산행에서 유일한 것. 100곒쯤 가 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고개를 돌리자 운무가 걷히면서 동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평선만 있을 뿐 하늘과 바다는 푸름으로 하나가 됐다.

전망대가 하나 있다. 올라서니 바다와 칠보산 전경이 더 선명하다. 내려가는 산길은 급하게 떨어지다가 왼쪽으로 산허리를 돌아 나간다. 다시 능선에 올라서면 묵은 풀밭길이다.

여기서 길 찾기에 유의하자. 유심히 잡목 사이를 찾아 들어가 보자. 능선 반대편으로 돌아나간다. 5분이면 다시 능선을 바꾸어 탄다. 30m 전방에서 오른쪽으로 떨어진다.

산길 밑으로 울진 정씨 묘와 만나고 10분이면 아치곡에 내려선다. 산령각 밑 도로에서 우측으로 마을길을 내려서면 ‘주민과 함께 하는 협동사업’ 비석이 섰다. 여기서 유금마을의 유금사까지는 20분. /글=김용호기자

/산행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6.

떠나기전에

경북 영덕군 병곡면 칠보산은 동해의 명산이다.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고려 중기 이곳을 지나던 중국인이 샘물을 마셔보고는 “이 물 맛이 보통 샘물과는 다르니 이 샘과 이어져 있는 산에는 귀한 물건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후 이 산에서 산삼 황기 멧돼지 철 등과 같은 일곱가지 보배가 났다하여 붙여졌다.

유금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는 대웅전과 종각, 장화부인 신령각 등을 갖추고 제법 큰 규모를 자랑했다. 어느날 주지스님이 불국사에서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절 앞 용소에서 두 마리 용이 교미하는 것을 보고 고약하게 여겼는데 스님이 절에 도착하기도 전에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로 절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산행코스는 자연휴양림~헬기장~정상~헬기장~유금사로 산행 시간은 3시간 정도. 다소 짧아 아쉬운 감이 들었다. 이에 근교산 취재팀은 칠보산 유금사를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개발하여 독자들께 소개를 하였다.

당부할 점은 일단 산행을 시작하면 초입에 지나는 계곡을 제외하고는 식수를 구할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무더운 날에는 식수를 충분히 가지고 등산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정상에서 헬기장으로 되돌아 내려오지 않고 취재팀이 안내하는 코스로 간다면 반드시 여름철에도 긴옷을 입어야 한다. 묵은 길이라 수풀에 긁히기 쉽다. /사진=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칠보산 자연 휴양림 갈림길로 좌측으로 휴양림가는길이다. 정상은 직진



일곱가지 보물이 숨어 있다는 칠보산 정상

맨 중앙의 높은 산이 울진 백암산과 낙동정맥의 능선도 확인된다.



돌아나가는 능선상에서 본 동해 바닷가






능선에서 본 유금마을과 다락논. 맨 우측 유금사도 보인다.

아치곡마을 전경,해발290m의 벽촌 산골마을로 그래도 산비탈에 터 잡은 가구가 몇집보인다.

아치곡마을의 소나무로 생김새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치곡 고개만디로 이길을 다라가면 유금마을 출발지로 갈 수 있다.

아치곡을 지나 유금마을로 내려서는 임도길로 소나무가 장관이다.


찾아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건천IC~경주 영천 20번 좌회전~포항 영천 경주 좌회전~포항 20번~건천터널~경주 포항~경주터널~포항~말구불터널~포항천북20번~포항경주7번(북경주)~포항7번~울진포항7번~울진영덕7번28번~울진영덕28번~울진영덕7번~흥해읍~울진영덕28번(성곡ic)~울진영덕7번~영덕군~강구~울진평해7번~칠보산8km자연휴양림. 유금사6km좌회전~금곡리유금사2km~유금마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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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자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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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암 법당은 거북형상의 자연바위위에다 법당을 지어 바위가 건물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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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모든 만물이 하나의 원이랄까?. 이원을 통해 자장암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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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암 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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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과 마애불 사이로 들어서면 금와보살이 산다는 바위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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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와보살이 살고 있다는 바위에 구멍이 나 있다. 자장율사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엄지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개구리 한쌍을 살게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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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 좌측벽면에 붙어 있는 동전. 동전이 바위에 붙어 있으면 어떤 소원이 이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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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4m의 정면 중앙에 있는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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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벽면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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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의 마애불 불두 뒤로 광배가 선명하다. 전체적에 비해 가락지 모양을 한 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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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과 섬세하게 나타낸 도포자락의 선 또한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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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와보살로 유명한 통도사 산내암자인 자장암은 진평왕(646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암자가 들어서기 전에는 자장율사가 현 자장암이 있는 바위 밑에 움막을 짓고 용맹정진하며 수도를 하였다한다.

어느날 개구리 한쌍이 나타나 달아나지않고 주위를 맴도니 기이하게 여긴 자장율사는 바위벽에 엄지손가락으로 구멍을 만들어 거기서 개구리를 살게하였다한다.
그 개구리가 금와보살로 수 많은 불자들이 금와보살을 보기 위해 자장암을 찾고 있다.
 자장율사이후 중건사실이 뚜렷하게 나와 있는 기록은 없지만 회봉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한다.
1987년부터 1993년에 걸쳐 현문화상에 의해 오늘날의 자장암이 모습을 갖추었다. 감원실 금와당 취현루등 3동의 건물이 중건되고 법당은 암벽에 기대어 선채 서쪽을 보고 있다,
거북모양의 자연 바위위에 그대로 올린 관음전은 그래서 법당안에도 바위가 튀어나와 있다. 관음전 뒤편에는 개구리를 살게하였다하는 금와공의 바위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석간수가 흘러 나온다.
 
관음전 우측으로는 1896년 조성된 높이 4m의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통도사와 산내암자를 통틀어 마애불은 자장암에만 조성되어 있으며 ㄷ자모양의 바위벽을 이용하여 삼면에다 조각을 한 모습이 애사롭지 않다. 자장암 앞으로는 자장동천의 계곡을 끼고 있으며 건너편 영축산의 웅장한 모습이 조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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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문살의 개구리 문양과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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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처마부분 천장의 화려한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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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 우측으로 자장전, 자장율사의 영정이 모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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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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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암 담장위로 모습을 드러낸 소나무의 모습과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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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암아래에서
 볼 수 있는 영축산의 장쾌한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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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자장암 금개구리. 통도사 자장암 금개구리를 보섰나요

자장암 관음전 뒤편 바위인 금와공으로 자장율사가 개구리 한쌍을  살게 하였다 한다.
실제 구멍의 높이를 보면 밑에 기단과 발받침대를 생각하면 꽤 높은 곳에 구멍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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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구멍을 만들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다하는 금와공

 

통도사에가면 산내 암자중 통도사가 창건되기 이전부터 통도사 창간주 자장율사께서 수도한 수도처가 있다. 자장방으로 불렸다는 자장암은 개구리로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금개구리, 즉 금와보살

자장율사가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바위에 손가락 하나 크기 만큼 구멍을 만들어 개구리 한쌍을 살게 하였다한다. 이구멍은 자장율사가 현 자장암 자리에서 수도에 정진할 때 개구리 한쌍이 떠나지 않아 기이하게 여겨 금와공에 살게 하였는데 이들은 벌과나비로도 변환을 한다는 신통력이 있다한다. 실제 금와공에 뚫인 구멍의 높이을 보면 성인의 키와 비슷한 위치에 있어 실제 개구리가 안으로 들어 갈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스파이드맨도 아닌 개구리가 암벽을 그것도 수직의 암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와공 안의 개구리를 본 많은 불자의 이야기가 있어며 필자도 실제로 구멍안의 개구리를 본적이 있다. 구멍안에서 두눈만 껌벅껌벅하며 있었다. 최근에 다시 찾은 자장암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불자들이 금와보살을 친견하기위해 금와공에 눈을 대고 구멍안을 들어다 보았지만 현재는 컴컴한 공간으로 비어 있다. 보살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 봄에 한쌍의 금와보살이 있었는데 봄에 출타를 하여 아직 돌아 오지 않았다 한다. 자장암을 찾아가면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볼 수도 아니면 못 볼수도 있다. 금와보살의 친견은 불심이 지극한 사람에게만 보인다하니 지금 부터라도 다시 마음을 씻어 봐야 할 것 같다.

금와보살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불교통사” 하권에 기술되어 있다.

“축서산(현영축산이라 칭함) 통도사 자장암 바위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구멍이 있어니

그 안에 작은개구리 한쌍이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데는 벌과 나비가 되어 수없이 변화한다한다, 여름철에는 바위가 가마솥처럼 뜨거워도 바위위를 활보하며 뛰어다닌다. 사승이 이를 일러 금개구리 즉 금와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산문 밖을 나가지 않는다고 하여 관리가 이를 믿지 아니하고 개구리를 함에 넣어 나가다 함을 열어 보니 개구리가 사라지고 없었다한다. 세존에 그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나타난 것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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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와보살을 친견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볼 수도 있고 못볼수도 있다한다. 마음을 비우고 여러분도 한번 도전해 보시길...
이 받침대는 항상 비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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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 살문 아래에 새겨진 금개구리 한쌍과 중앙의 연꽃이 자장암은 금와보살과 함께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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