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경남여행/양산여행)고운 최치원이 쉬었다는 양산 물금 임경대에서 낙동강으로 넘어가는 저녁놀을 보다


밀양 여행을 하고는 돌아오는 길에 

낙동강을 따라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삼랑진에서 물금에 이르는 1022번 지방도는 

최고 아름다운 드라이버 코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운 최치원의 낙동강 임경대 주소:경남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산 72-4




2020/03/14 - (경남양산여행)양산 순매원 매화가 필때 가장 인기 있는 양산 원동 토곡산 산행. 양산 원동 토곡산

2020/03/07 - (경남양산여행)국가의 중요 4대강에 제사를 지냈던 '사독' 중 한곳인 원동 용당나루 가야진사 공원 여행. 원동 가야진사 공원

2020/03/06 - (양산원동여행)부산과 가까운 매화 여행지 원동매화축제 순매원 매화가 절정. 양산 원동 순매원

2020/03/04 - (양산호포맛집)엄혹한 시기에 체력보강 보양식 국내산 메기매운탕 호포역 포구나무집. 호포 포구나무집

2018/05/28 - (경남여행/양산여행)황산문화체육공원의 꽃 양귀비 보고 왔습니다. 황산문화체육공원 꽃양귀비

2014/12/27 - (경남여행/양산여행)원동, 삼랑진 금오산 산행. 양산 최고의 오지 어영마을에서 금오산을 오르다.

2014/12/25 - (양산여행/원동여행)원동 신흥사. 배내골 여행과 함께 화려한 건물 대광전이 돋보이는 양산 원동 신흥사 구경하기.


 


임경대에서 낙동강에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낙동강가 물금 오봉산 자락에는 고운 최치원의 

흔적인 임경대가 있습니다.

 


최치원은 임경대에 올라 낙동강을 보면서 

‘황산강 임경대’란 시를 남겼습니다. 

최치원은 신라 말 문장가이자 문신, 유학자입니다. 

호는 고운, 해운 등이 있습니다.

 


시호는 문창이며 지리산 법계사 옆의 

문창대가 최치원에 의해 붙여졌습니다. 

남쪽으로 정말 여행을 많이 하신분입니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장원으로 올란 신동이었습니다.

 


황소의 난에 ‘토황소격문’를 지어 난을 평정하였습니다. 

885년 헌강왕 11년에 조국인 신라에 돌아와 

중용되었지만 당시 신라의 국운은 쇠퇴할 때로 쇠퇴하여 

개혁을 위한 ‘시무 10조’의 상소를 진성여왕에게 올렸습니다.



그러나 진골의 반대에 부딪쳐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팔도를 주유하며 다녔는데 그때 양산 물금의 

임경대에 올랐던 것으로 추정할수 있습니다.ㅋㅋ




임경대에 세워진 임경루입니다. 

이 누각은 최근에 지어졌습니다. 

초창기에는 단청이 칠해지지 않았는데 

이제 화려한 단청을 입혀 

학이 낙동강에 날아갈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양산 낙동강 아니 황산강 ㅋㅋ

낙동강은 밀양을 지나 양산 물금에 

와서는 황산강이라 부럽니다.

이는 윗쪽에 많은 비가 내려 홍수가 나면 

이곳은 황톳물로 물난리가 나 

황산강이라 부르며 아직도 

그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임경대에 앉아 낙동강의 저무는 

저녁 노을을 만나보세요

728x90

728x90



(경남여행/양산여행)봄 나들이에 좋은 낙동강 조망 1번지 고운 최치원의 임경대를 찾아서, 양산 임경대


현재 원동 양산의 순매원에 매화가 절정이라 

겸사겸사해서 원동여행을 하였습니다.




낙동강 조망 1번지 고운 최치원의 양산 임경대 주소:경남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산 72-4




2020/03/07 - (경남양산여행)국가의 중요 4대강에 제사를 지냈던 '사독' 중 한곳인 원동 용당나루 가야진사 공원 여행. 원동 가야진사 공원

2020/03/06 - (양산원동여행)부산과 가까운 매화 여행지 원동매화축제 순매원 매화가 절정. 양산 원동 순매원

2020/03/04 - (양산호포맛집)엄혹한 시기에 체력보강 보양식 국내산 메기매운탕 호포역 포구나무집. 호포 포구나무집

2019/11/30 - (경남양산여행)악산인 천성산 공룡능선에서 초보산꾼 늦가을 단풍에 빠지게하다. 천성산 공룡 능선 산행

2019/03/25 - (경남여행/양산여행)원동 비석봉 산행. 원동 매화여행과 비석봉 산행을 했습니다.

2019/09/07 - (경남여행/양산여행)어곡공단으로 옛 정취가 남아 있지 않은 화룡마을 반룡대 여행.

2019/10/03 - (경남여행/양산여행)낮지만 국립공원 부럽지 않은 최고 조망 양산 선암산 산행.




순매원의 매화와 가야진사를 보고 돌아 나오면서 

물금읍과 원동면의 경계에 있는 오봉산 자락 

임경대를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임경대에서 고운 최치원선생이 

낙동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풍광에 취해 넋을 빼 놓았다고 합니다.

 


낙동강 전경 1번지로 불리는 ‘황산강 임경대에서’란 

7언 절구로 최치원 선생은 임경대를 노래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는 

시 뜻풀이를 임경대 안내판에서 옮겨 보았습니다.



“연기 낀 봉우리 빽빽하고 물은 넓고 넓은데

물속에 비친 인가 푸른 봉우리에 마주섰네

어느 곳 외로운 돛대 바람 싣고 가노니

아득히 나는 새 날아간 자취 없네“라며



‘황산강 임경대에서‘란 시가 낙동강의 아름다움을 

다 표현했을 정도라 생각되었습니다.

 


최공은 임경대 어느 바위에다 

임경대를 노래한 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세월을 지나오면서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수 

없다는 것이 정말 아쉬울 따름입니다.

황산강은 낙동강의 옛이름입니다.

 


위쪽 지방에 비가 내리면 이곳은 항상 

황톳물이 흘러 내려와 황산강이라 불렀습니다.



몇 해 전에 찾았을 때에는 임경대 정자는 

단청을 입히지 않은 나무 그대로의 모습이었으나 

이번에 찾았을 때는 임경대 정자는 단청을 입혀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경남 양산시에서는 양산의 아름다움 곳

여덟 군데를 정해 ‘양산 8경’이라 하였고 

낙동강가의 임경대는 7경에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인 

물금과 원동의 1022번 지방도에 있는 

임경대는 최공대 고운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는 고운, 해운이며 시호는 

문창 통일신라 때의 문장가이자 정치가입니다. 

어린나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당나라의 진공과에 장원을 하였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을 지어 난을 평정하게 하였습니다.



885년(헌강왕11년) 신라로 돌아와 중용되었습니다. 

러나 기우러져 가는 신라의 국운을 안타까워하며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개혁을 위한 

‘시무 10조’의 상소를 진성여왕에게 올렸습니다.

 


진골 귀족의 반대로 무산되며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껴 

모든 관직을 사직하고 팔도를 주유하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신선이 되었습니다.

    


우한 폐렴인 ‘코르나 19’ 와중에도 많은 가족 여행객이 

임경대를 찾는 것을 보면서 하루 빨리 폐렴 바이러스가 

낙동강의 도도한 강물에 함께 씻겨 물러가기를 기원해 봅니다.

  

728x90

728x90



 



☞(경남여행/양산여행)원동, 삼랑진 금오산 산행. 양산 최고의 오지 어영마을에서 금오산을 오르다. 


경상남도 양산시는 도시와 농촌이 함께 공존한다. 양산시 안에서도 가장 오지마을로 꼽는 곳이 있다하니 널밭과 어영마을이다. 양산의 하늘아래 첫동네로 통하는 널밭과 어영마을은 모두 원동면에 속해 있는 산간 마을로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동, 서, 북으로는 1,000m 대의 영남알프스 산군이 울산과 밀양을 경계 짓고 있다.



어영마을은 금오산과 매봉을 좌우로 두고 안에서 보면 밖으로 나가는 입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호리병의 지형을 이룬다. 임진왜란때 김해김씨와 김녕김씨가 난을 피해 들어 와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의 주 수입원은 대천량, 배천량, 닥천량으로 삼천량 마을로 불리며 인근에서는 가장 부자마을로 통했다. 



역설적으로 가장 오지 벽촌의 마을이 가장 여유롭고 풍족한 삶을 살았다하니 머리를 꺄웃할 수 밖 에, 어영마을을 품어 않은 금오산과 매봉산은 그 너른 품에 자연을 선물해 주었는데 닥나무가 많아 한지 생산으로 유명하여 양산 밀양등지에서 인기가 놓은 특산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명맥이 완전 끊겼다. 대나무와 이곳에서 나는 토종 배 또한 인근의 장터에서 최고품으로 거래가 되면서 인기가 있었다. 



어영이란 물고기가 헤엄치고 논다는 의미로 이곳에 들어온 물고기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 먹고 자고 놀아도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며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실제 어영마을은 다른 오지마을에 비해 많은 주민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또한 마을 회관 앞 공터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어항처럼 갇혀 있는 모습이며 보이는 것은 산과 하늘뿐인 곳으로 문명과는 담을 쌓은 동네로 느껴진다. 필자 처럼 세상물정에 찌든 속세인은 이런 곳을 더 좋아하는지 어영마을은 요즘 뜨는 별장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금오산 산행은 보통 삼랑진 안촌마을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건각은 원동의 비석골에서 비석봉을 넘어 천태산과 숭촌고개를 지나 금오산을 찍고 안촌마을 또는 매봉을 경유 배태고개에서 산행을 마친다. 이번 금오산 산행은 원동면 영포리 어영마을에서 시작을 하였다. 



산행 경로를 보면 어영마을회관~백림사 갈림길~대나무 밭 삼거리~백림사~파란물통 사거리~앞고개~숭촌고개 갈림길 이정표~693m봉 앞 전망대~암릉 우회~금오산 정상 직전 이정표~당고개 갈림길~금오산~약수암 표지석 갈림길(임도)~당고개 밑 갈림길~원동기도원~어영마을회관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전체 산행거리는 약 6km이며 산행 시간은 3시간~3시간 30분 안팎으로 짧은 겨울 날씨에 여유를 가지며 산행을 할 수 있다.



산행 을 위해서는 먼저 영포리 어영마을 마을회관까지 간다. 원동역 앞에서 출발하는 3번 세원버스를 타고 어영마을 종점에서 하차한다. 또한 자가운전은 마을버스 회차를 위해서 너른 터의 마을회관 한쪽에 주차를 한다. 금오산 정상은 마을회관 앞에서 서북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며 왼쪽 잘룩이는 밀양 삼랑진 안촌으로 넘어가는 앞고개다. 금오산 정상 오른쪽 안부는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로 넘어가는 당고개며 산행 후 이곳에서 하산을 한다. 



금오산 정상을 향해 마을 회관 앞에서 다래식 산장, 원동 기도원 방향의 북서쪽으로 길게 올라가는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간다. 좌우로 전원주택들이 눈에 들어오고 다랭이 논밭을 보면 깊은 산골에 들어 온 것을 실감 할 수 있다. 200m 쯤 가면 백림사 팻말이 나오는 갈림길이다. 직진 길은 당고개에서 하산길, 앞고개는 왼쪽 백림사 방향인 간다. 어영천에 걸린 작은 다리를 건너고 곧 대나무 군락지 사이로 난 임도를 따라간다. 살짝 오르막을 넘으면 이내 무덤이 있는 갈림길. 양쪽 길 모두 앞 고개로 갈 수 있지만 필자는 백림사를 경유하여 가기위해 왼쪽으로 향한다.






백림사로 향하는 휘어진 길은 뒤 금오산능선과 너무나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이 든다. 백림사 돌계단을 올라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절 뒤쪽으로 난 묵은 흙길를 걷는다. 키큰 감나무에 주홍색 감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며 나무에 메달려 있다. 5분이면 파란물탱크가 있는 사거리 갈림길에 닿고 앞고개 방행은 왼쪽으로 가면 된다. 백림사 전 무덤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왔다면 이곳에서 만난다.






지금부터 앞고개까지는 한적한 묵은 산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어영마을에서 삼랑진의 장터를 찾아 소를 몰고 오르내린 옛길이다. 어영 마을의 역사와 같이하는 길로 지금은 찾는 이가 드물어 잊혀지고 있지만 주민들이 찾았던 길 답게 완만하게 산허리를 돌아 40여분이면 앞고개에 난 임도에 선다.



직진의 임도를 가면 숭촌고개를 넘어 안촌마을, 삼랑진으로 간다. 금오산 정상은 오른쪽 능선을 따라 오른다. 살짝 올라서면 다시 무덤 앞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 무덤 쪽으로 간 뒤 다시 능선을 난 길을 탄다. 이번 금오산 산행에서 가장 급경사 구간이다.



30분이면 숭촌고개로 갈라지는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정상 방향은 '금오산 0.95km', 계속 오르막이다. 이정표의 거리를 보고 다 왔다고 생각을 하면 큰 오산으로 자신의 체력에 맞게 쉬엄쉬엄 올라야 된다. 어느 듯 바위 위에 옛날 무덤이 있던 넓은 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숭촌고개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되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이곳에 올라서면 고도 때문인지 주위의 풍광이 열린다. 암봉으로 된 정상도 우뚝하고 남쪽으로는 천태산, 토곡산등 원동의 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제까지 힘든 오르막을 올라 왔다면 지금 부터는 시원하게 전망이 열리는 바위 능선길이다.



먼저 만나는 곳이 693m 봉 앞에 툭 튀어나온 바위전망대다. 예전에 이곳에 돌탑이 세워져 있었는 것 같은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보는 전망은 최고로 끝내주지만 낭 떨어지 위 좁은 장소라 내려다보면 간이 콩알만큼 쪼그라들며 추락에 주의를 해야 한다. 때마침 차가운 낙동강의 강바람까지 휘몰아쳐 바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사진을 대충 찍고 정상을 향해 능선의 바위를 타고 간다.





곧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암릉을 오르는 길은 위험하므로 오른쪽으로 바위를 돌아간다. 다시 능선에 올라 이정표와 만나고 금오산은 0.02km, 약수암은 0.95km에 정상은 지척이다. 곧바로 정상에 올라선다. 지금은 밀양시에서 세운 금오산을 세긴 큰 정상석이 반긴다.











양산, 밀양의 천태산, 토곡산, 신선봉, 축천산, 천마산, 체바우골만당, 염수봉,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천황산, 향로봉, 정각산, 종남산, 만어산등이 일렬로 나열되는 조망의 산으로 1석 3조의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발아래 출발한 어영마을을 감싸고 있는 매봉이 예사로운 모습이 아니다.





어영마을 하산은 이정표를 보고 일단 매봉(0.87km) 방향으로 내려간다. 약수암 임도까지 내려가는 산길은 상당히 가팔라 조심을 해야한다. 혹 겨울철에는 낙엽 밑에 숨은 복병 서릿발이 올라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한발한발 확인을 하며 내려서면 어느 듯 약수암으로 오르는 콘크리트 갈림길, 내 키보다 큰 약수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앞으로 난 넓은 능선 길을 따르면 매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곧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은 매봉 방향으로 향하며 최저점에는 당고개가 있다. 필자는 오른쪽 방향의 산사면 길을 따른다. 10여분이면 당고개 밑 갈림길에 닿고 왼쪽으로 당고개가 바로 보인다.






오른쪽 어영마을로 하산 한다.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로 넘어가는 옛길로 이길도 주민들이 걷든 길로 완만하게 돌아서 이어진다. 콘크리트 임도에 닿고 돌을 높게 쌓아 만든 다랭이 논에 농사는 짓지 않고 묵혀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동기도원을 지나고 백림사 갈림길을 지나면 산행을 시작한 어영마을회관은 지척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어영마을을 가기 위해 먼저 원동까지 간다. 부산에서 원동은 열차편이 편하다. 현실은 원동역 앞에서 어영행 마을버스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부산역을 출발하는 원동 방면 기차는 오전 7시50분, 9시28분에 있고 30분 쯤 소요된다.

<!--[if !supportEmptyParas]-->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원동 방면 열차는 오전 6시10분, 10시35분에 각각 출발하며 약 40분 쯤 소요된다. 원동역 앞에서 출발하는 어영행 3번마을 버스는 오전 6시05분, 8시15분, 11시30분에 있다.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7시50분 열차는 원동역에 8시20분 경 도착하여 버스 시간 맞추기가 힘들다. 양산시에서 원동으로 향하는 일반버스도 있다.물금에서 출발하는 137번과 북정에서 나오는 138번이다. 138번 버스는 오전 5시30분, 6시, 7시25분, 11시10분에 출발하며 도시철도 2호선 양산역이나 물금농협에서 타면 된다. 물금농협에서 원동으로 가는 137번 버스는 오전 7시25분, 10시 정각에 있다. 원동초등학교에서 내린 뒤 원동역앞에서 어영행 3번 버스를 이용한다. 원동역에서 어영마을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10분.


산행을 마쳤다면 어영마을에서 조금 내려오면 마을의 수문장역할을 한 붓돌바위가 있다. 어영마을을 지켜주는 바위라 한다. 오래전 부터 붓돌 바위에서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들어주었다하며 일제 강점기때 일인들이 도로를 넓히기 위해 바위를 깨부수다 주민의 반발로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다. 이 바위를 가지고 불을 일으켜 담배불을 붙히는 등 부싯돌로 사용되었다.



원동면 영포리 신흥사 대광전은 보물제 1120호로 지정되어 있고 건물 내부와 외부의 벽화도 보물 제1172호로 지정되어 한번 쯤 둘러 볼만하다. 



물금을 지나 원동방면으로 가다 만나는 최치원의 임경대. 양산8경으로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원동가는 길에 들러 보세요.




금오산 고도표

금오산 지형도








2014/12/25 - (양산여행/원동여행)원동 신흥사. 배내골 여행과 함께 화려한 건물 대광전이 돋보이는 양산 원동 신흥사 구경하기.


2014/12/15 - (경남여행/양산여행) 양산8경 임경대, 최치원의 임경대에 올라 낙동강을 바라보다.


2014/01/25 - (경남여행/양산원동여행)천태산천태정사. 웅장한 아미타여래좌상과 협시보살이 세계최대규모인 천태산 천태사


2014/01/20 - (경남여행/양산여행)천태산 산행. 낙동강 바라보기에 좋은 양산의 3대 악산 비석봉~천태산.


2014/01/08 - (부산여행/낙동강 뱃길)낙동강뱃길. 을숙도에서 물금까지 낙동강에 배를 타고 새로운 부산을 보다.


2013/12/24 - (경남여행/양산여행)낙동강 자전거길이 영남대로길, 물금역~삼랑진역(황산잔도~작원잔도)를 걷다.


2013/12/19 - (경남여행/양산여행)김정한의 소설속 수라도의 배경인 미륵당이 지금의 용화사. 용화사 석조여래좌상





 

728x90

728x90




☞(경남여행/양산여행) 양산8경 임경대, 최치원의 임경대에 올라 낙동강을 바라보다.

경상남도 양산시는 양산의 빼어난 경관을 알리기 위하여 양산8경을 정하여 양산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 중 7경은 낙동강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낙동강 전망 1번지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임경대입니다.

 


임경대는 신라 말 문장가이자 문신, 유학자였던 최치원이 “황산강 임경대에서”라는 시를 남긴 곳으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풍광은 그야말로 ‘한마디로 끝내준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입니다.



최치원은 자는 고운 또는 해운이며 시호는 문창으로 그는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빈공과에 장원으로 올랐고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을 지어 난을 평정하게 됩니다. 그는 헌강왕 11년인 885년에 신라로 돌아와 중용이 되는데 기우러져 가는 신라의 국운을 바로세우고자 개혁을 위한 ‘시무 10조’의 상소를 진성여왕에게 올리지만 진골 귀족의 반대로 현실의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팔도를 주유하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신선이 되었다 합니다.



필자는 고운 최치원 선생을 여행가로 부르고 싶습니다. 필자가 찾아간 곳의 많은 곳에서 그 분의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회자되고 있었습니다. 부산의 해운대, 거창 수승대, 가야산 백운동, 지리산 불일평전과 문창대, 함안의 오치재, 양산의 임경대등우리나라 팔도에서 고운최치원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운 최치원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간 임경대. 임경대는 양산시 물금에서 밀양의 삼랑진을 잇는 1022번 지방도의 오봉산 자락에 있습니다. 낙동강을 끼고 달리는 도로는 일찍부터 부산경남의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버 코스로 알려져 많은 여행꾼이 찾고 있는 탐방지가 된지 오래입니다. 




이곳 절경의 강가 절벽에 자리한 임경대는 최근에 고운 최치원이 거닐며 황산강을 바라보았다는 임경대의 위치 문제로 말이 많았습니다. 고증을 거쳐 최근에 임경대를 다시 찾아 새롭게 정자를 세우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는데 이또 한 위치가 틀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동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찾아간 임경대는 과연 낙동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최치원이 본 장소가 그리 중요한가요? 필자가 보았던 이곳이 임경대구나며 느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임경대는 고운대 또는 최공대로도 부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경치도 아름답지만 낙동강으로 떨어지는 저녁낙조도 너무 아름다워 시간가는 줄 모르고 혼을 빼 놓고 바라보다 왔습니다. 



바위에 최치원의 시가 있었다하나 장구한 세월 속에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는 “황산강 임경대에서”의 시를 옮겨 봅니다.

“연기 긴 봉우리 빽빽하고 물은 넓고 넓은데

물속에 비친 인가 푸른 봉우리에 마주 섰네

어느 곳 외로운 돛대 바람 싣고 가노니

아득히 나는 새 날아간 자취 없네“





지금도 임경대에서 바라보는 황산강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싯구와 변한 게 없습니다. 낙동강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로 주위의 봉우리는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넓은 강물에 비친 산 그림자의 반영속에 또 하나의 임경대가 보입니다.



현재는 황산 나루를 건너는 작은 돛단배는 찾을 수 없지만 1980년대까지 원동의 용당 나루를 건너다니던 철선의 추억을 떠 올리며 그 당시의 모습을 유추해 봅니다. 잠시나마 정자에 올라 임경대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던 낙동강. 그 장소가 어딘지 간에 낙동강의 아름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728x90

728x90

 

가산마을에서 언곡마을로 내려오는 중간쯤인 다람쥐골에서 민가를 한채 만난다. 예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문이 잠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한국전쟁에  빨치산 피해  내려 왔던 길이 아름다운 영남알프스 둘레길 17코스가 되었네

   


◇ 풍류동 가산마을 다람쥐골 이어 가는 13㎞

   
경남 밀양시와 양산시의 경계를 이루는 까치목에서 산중 오지인 가산마을로 향하는 오솔길은 영남알프스 둘레길 전체 코스에서 최고 구간 중 하나라해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순하며 아름다운 길이다. 본지 개척단의 발걸음이 가볍다.

이번 주 답사한 제17코스인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고례마을~양산시 원동면 선리 구간에서는 한 마디로 "무릇 둘레길이라고 하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는 길이다. 그만큼 곱고 순하면서도 가장 자연을 닮은 아름다운 숲길을 만난다. 특히 까치목에서 가산마을까지 가는 오솔길, 가산마을에서 선리까지 내려서는 '다람쥐골' 계곡길은 한동안 잊기 힘든 걷기의 추억을 선사해 주는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출발지는 밀양댐 아래에 위치한 단장면 고례리 고례마을이다. 마을의 볼거리 몇 곳을 들른 후 제16코스의 종착점이었던 고례리 평리마을을 거쳐 백마산(774m) 중턱의 산골마을인 풍류동, 배꼽목, 까치목, 가산마을을 거쳐 다람쥐골을 따라 배내골의 중심 마을 격인 원동면 선리마을회관(정보화센터)에서 끝난다. 총거리 13㎞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휴식시간까지 포함해도 5시간 정도 걸리니 한나절 걷기에는 적당하다.




다람쥐골에서 만나는 작은 폭포로 이런 폭포가 수 없이 많아 둘레길꾼들의 탄성을 자아 내게 한다.

2001년 밀양댐이 완공되기 이전까지 고례 평리 덕달 사희동 죽촌 등 5개 행정마을을 아울렀던 고례리는 비록 오지였지만 밀양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마을로 통했다. 백마산과 향로봉(726.8m) 뇌암산 등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구곡천(九曲川)이라고도 불리는 고사천(姑射川)이 관통하며 수많은 기암절벽과 깊은 소, 바위들을 만들어냈다. 밀주구지(密州舊誌)에 '산명수려(山明水麗)하고 계류와 전답이 아름다우며 기암절벽이 마치 옥(玉)기둥을 세워 놓은 듯 깨끗한, 인세(人世)의 진경(眞境)'이라고 기록했을 정도다. 고사천(姑射川) 상류에 있는 농암대(籠岩臺)는 그 대표적인 명승지 였다. 조선 초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이 곳을 자주 찾아 노닐었고 그 승경(勝景)을 읊은 시(詩)도 남겼다. 신선이 살았던 곳이라는 뜻에서 고사리(姑射里), 고사산(姑射山), 고사천(姑射川) 등의 이름도 생겨났다. 하지만 밀양댐의 건설로 사희동과 덕달 죽촌 등의 3개 마을과 김종직 선생이 주유했던 농암대를 비롯한 절경이 모두 수몰되는 아픔을 겪었다. 밀양댐 순환도로 중간 전망대 쉼터공원의 망향정만이 실향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을 뿐이다.

수몰민의 애환이 서린 밀양댐으로 점필제 김종직 선생의 유적지인 농암대도 저기 물 속에 잠들어 있다. 밀양과 양산의 경계에 있는 '밀양바위 양산바위'등 숱한 애환이 이 물속에 잠겨져 있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한국전쟁에  빨치산 피해  내려 왔던 길이 아름다운 영남알프스 둘레길 17코스가 되었네

   
밀양 단장면 풍류동 앞 공터는 쉴 만한 그늘이라 좋다.

고례리의 본동마을인 고례마을은 밀양발 새마을버스의 종점이자 1592년 이후 내려온 인동 장씨 문중의 세거지다. 본격적인 답사에 앞서 재실과 고택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일단 버스 종점에서 양지교라는 작은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틀면 댐 앞쪽에 인동 장씨의 재실인 옥봉정이 있다. 단촐하면서도 절제된 균형미를 갖춘 재실인데 한국전쟁 직후에 건립됐다고 한다. 다시 양지교를 건너 하천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1051번 지방도로와 만나는데, 길 건너 맞은편 산 밑에 운치 그윽한 작은 정자가 보인다. 조선 숙종 때 이 마을에 들어와 살았던 낙주(洛洲) 장선흥(張善興)과 그 후손인 농산(聾山) 장영석(張永錫)을 추모하기 위해 1918년 인동 장씨 가문에서 건립한 재실인 낙주정(洛洲亭)이다. '임경대'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누마루에 올라 낮은 담장 너머로 고사천을 바라보면 일상의 시름이 일순간 사라지는 느낌이다. 낙주정에서 돌아나와 고례교를 지나면 우측에 효자각이 보인다. 이 역시 장씨 문중의 것이다.


인동장씨 세거지인 낙주정과 효자각

고례마을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10분쯤 가면 평리마을이다. 최근 팜스테이체험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원래 평리마을은 '고례산대추' 산지로 더 유명하다. 농촌가꾸기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탔을 정도로 잘 가꿔진 동네이기도 하다. 넓은 들판과 아름다운 하천을 갖춘 평리마을은 강변의 벼락덤이와 진지소, 동북쪽의 백마산 등이 어우러져 풍광이 빼어나다. 또 밀양의 삼대 오지마을 중 두번째로 손꼽히는 바드리(일명 소월리)와 산중 마을인 풍류동(風流洞)까지 포함하고 있어 그 품이 넓고 깊다.


풍류동마을길이며 현재는 전원주택지로 각광을 받고 있어 주말마다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한다.

◇ 밀양 양산 경계 까치목 이후 구간 환상적

   
가산마을과 향로산이 보이는 전망대에 선 개척단.

마을회관 앞 운동시설을 지나 마을 안 길로 진행한다. 풍류동 가는 길이다. 3분 후 구씨 재실 앞 갈림길에서 '은하수펜션' 방향 왼쪽 길로 오른다. 완만한 오르막 길. 주변 산자락의 대추밭은 초록빛 일색이다.

25분 정도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산중 마을인 풍류동에 닿는다. '바드리 아랫마'라고도 불리는 풍류동은 말 그대로 풍류를 즐기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다. 둥둥재, 북바위, 퉁소바위, 칭칭이산 등 마을 주변에 풍류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퉁소를 불고 북을 둥둥 치며 '칭칭나네'를 부르고 춤을 추는 풍류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차량은 풍류동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좁은 차로가 끝나는 곳에 마을 공터가 있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가산마을과 배내골을 잇는 다람쥐골의 무명폭포.

까치목에서 가산마을로 내려가는 둘레길 탐사팀의 발걸음이 경쾌하다.둘레길 최고의 길이라 할만하다.

3분쯤 오르면 우측으로 '풍류동→배꼽목 1㎞'라는 안내판을 보고 배꼽목 방향 산길로 들어선다. 초반에는 조금 까다롭다. 그러나 작은 개울을 지나 50m 정도만 가면 길은 금새 편안해진다. 갈 지(之)자 모양이 여러개 이어진 형태로 계속되는 산길은 별로 숨 찰 것도 없이 순하다. 10분 후 중간 갈림길을 만나는데 왼쪽으로 오르막을 좀 더 타야한다. 15분 후 작은 고개마루인 '배꼽목'에 닿으면 다시 왼쪽 오르막 능선길을 탄다. 널찍하고 걷기 편한 길이다. 5분 후 갈림길에서도 능선을 따라 직진하면 잠시 후 임도에 닿는다. 표충사 입구 구천삼거리에서 번데기마을과 바드리를 거쳐 까치목까지 연결된 비포장 임도다. 우측으로 가면서 보면 밀양호반이 눈에 들어오고 그 동남쪽에는 향로봉이 우뚝하다.

900m쯤 가면 임도 종착점인 까치목이다. 밀양시와 양산시 경계선 상에 위치한 까치목은 좌측의 백마산과 우측의 향로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작은 고개다. 정면 멀리 우뚝한 향로산(975m) 방향의 좁다란 오솔길로 직진한다. 해발 550m 산 중턱에 자리잡아 전기 조차 들어오지 않는 가산마을까지 가는 길은 걷기 좋고 아름다운 자연 숲길이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이 유순한 길에는 일체의 걸림이 없다. 걷는 이의 발길은 마치 부드러운 계류를 따라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가볍기만 하다. 이런 길을 언제 또 걸어 봤던가. 언젠가 꿈 속에서나 이런 길을 걸었을까.


밀양댐 전망대에 세워진 농암정과 배꼽목으로 오르는 옛길의 모습이 갈지(之)자로 포개어져 올라 간다

◇ 소박한 다람쥐골 폭포 소 즐비한 숨은 비경

   
백마산 허리춤을 감싸고 도는 호젓한 비포장 임도.

3분 후 작은 갈림길에서 우측 길을 택해 만나는 전망대에 서면 움푹한 곳에 민가 4채가 겨우 보일락말락한 가산마을과 그 뒤에 우뚝 솟은 향로산의 풍광이 마치 선계(仙界)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전쟁기 그 많은 빨치산들이 주민들을 약탈하고 토벌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른 비극의 현장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10분쯤 내려서면 어느새 민가에 닿는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외딴집 처마 끝에 도화지 한 장 크기의 작은 태양열 집열판이 보인다. 냉장고가 없다 보니 각종 채소와 과일 김치통 등을 물동이에 담아 놓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다람쥐골의 최상류인 이 지점에서부터 선리마을까지는 줄곧 내리막이다. 다람쥐가 많았다고 해서 다람쥐골이라고 명명된 이 계곡은 화려하지 않지만 결코 왜소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움이 빛나는 청정 계곡이다. 민가 한 채를 더 지나니 크고 작은 폭포와 아담한 물 웅덩이가 이어진다. 높이 3m가량의 중간급 폭포도 나타난다. 숨은 비경이다. 10분 후 오솔길이 끝나는 곳 개활지부터 임도가 이어진다. 20분가량 내려서면 원동면 선리 언곡마을. 예쁘장하게 지은 전원주택과 '배내골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밭이 나그네를 반겨준다. MMF연수원과 선리 당산나무를 지나 양산배내골사과마을로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선리 마을정보센터에 도착, 신발끈을 푼다. 배내골의 중심마을인 선리(善里). '착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의미인가 보다.

풍류동에서 배꼽목으로 향하는 옛길로 한국전쟁때 빨치산을 피해 가산에서 어린애를 등에 엎고 피난을 왔다던 한 많은 엣길이다.

# 떠나기 전에

- 고례리 고사천은 절경 갖춘 일명 '구곡천'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앞을 흐르는 하천은 고사천이라고도 불리지만 옛날부터 구곡천(九曲川)으로도 불렸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밀양호에 수몰된 고례리 사회동마을에서 제16코스의 출발지였던 단장면 사연리에 이르는 구간의 하천을 일컫는다. 구곡천이란 '아홉 굽이를 돌아 흐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인데 조선 초기 학자인 채지당(採芝堂) 박구원(朴龜元)이 당시 사희동 마을에 살면서 지은 고사구곡가(姑射九曲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박구원은 하천 유역의 9개 명소를 구곡(九曲)으로 꼽았는데 사연, 정각산(正覺山), 범도리, 승학동(乘鶴洞), 단애(丹崖), 증소(甑沼), 도장연(道藏淵), 농암대(籠岩臺), 선소(船沼)를 가리킨다.


배꼽목으로 향하는 옛길의 모습이 아름답다

한편 이번 코스에서는 살짝 비켜 갔지만 백마산 중턱의 바드리마을은 밀양의 3대 오지마을에 꼽히는 곳이다. 밀양에서는 옛날부터 '일오치' '이소월' '삼감물'이라는 말로 오지마을들을 표현했는데 '이소월(二所月)'이 바로 바드리를 가리킨다. 소월리라는 말은 아주 오랜 옛날에 백마산에 사태가 나서 반쪽으로 갈라졌는데 그 모습이 반달을 닮았다고 해서 소월산이라고 불렀고 그 아래 마을을 소월리 또는 반달리라고 했던 것에서 나왔다. 반달리가 세월이 지나면서 바드리로 변형됐다는 것이다.

배꼽목에서 바드리 임도로 향하는 능선길로 옛사람들이 이길을 따라 가산 배내골로 다녔다는 넓은 길이 지금은 둘레길 꾼들의 길이 되었다.


# 교통편

- 밀양터미널서 고례행 버스 하루 4회 운행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 편으로 밀양역까지 간다. 부산역 기준 오전 7시45분, 8시35분, 9시25분 등 여러 편 있다. 해운대역에서 밀양행 무궁화호도 오전 7시45분에 출발한다. 밀양터미널에서 고례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오전 6시40분, 12시 등 하루 4회 운행. 종착지인 배내골 선리에서는 원동역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 3시05분, 3시40분, 5시55분, 8시05분(막차)에 있다. 원동역에서 부산역행 열차는 오후 4시03분, 4시25분, 6시36분, 8시48분에 있다.

까치목으로 향하는 임도길로 여타 임도길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 준다.

자가용은 차량 회수의 어려움으로 인해 권장할 사항이 아니다. 단 두 대 이상이 함께 출발, 종착지인 선리마을에 한 대를 먼저 세워 놓는 방법을 쓴다면 가능하긴 하다.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양산IC에서 내린 후 언양 경주 방향으로 우회전 하자마자 다시 어곡공단 에덴밸리리조트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배내골 표지판을 보면서 에덴밸리리조트를 넘어야 한다. 고점사거리에서 우회전, 7분만 가면 선리에 닿는다. 고점사거리로 돌아가 밀양댐 단장 방향으로 우회전, 15분쯤 가면 고례마을에 닿는다.


가산마을로 향하는 최고의 둘레길을 걷고 있는 둘레길 꾼

# 고례리 '터줏마님' 장복술 할머니

- "전쟁때 빨치산 피해 가산에서 내려왔지"

   

"저기 보이는 백마산 너머 가산마을에서 6·25동란 나던 해에 죽을 고생을 하면서 피난 내려왔지. 빨치산들을 피해서 함께 도망치던 사람들 중에 네 명이나 총에 맞아 죽었어. 끔찍했지. 방년 18세때 였어."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7코스 초입인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평리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장복술(79·사진) 할머니는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현대사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산 증인이다. 인근의 지리 및 인문학적 특성까지 줄줄 꾀고 있다. 본지 개척단에게 60여년 전 기억을 거침없이 풀어낸 장 씨는 "남자들 뿐 아니라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들까지 완장을 차고 빨치산이라면서 밤만 되면 마을로 내려와 설쳐대는 것이 여간 무섭지 않더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장 씨는 또 "평리로 내려와서 전쟁이 끝난 후 시집을 가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애를 등에 업고 저기 둥댕이재를 넘어 국전마을로 가기도 하고 다람쥐골을 따라서 배내골까지 오가기도 했지"라며 주변 지형까지 읊어 준다. 잠시 목이라도 축이고 가라며 한사코 집 안으로 단원들의 손을 끈 장 씨는 아껴 뒀던 음료수를 냉장고에서 꺼내 준다. 당시 장 씨의 등에 엎힌 채 산길을 넘나들었던 그 아들은 장성해서 밀양시민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현재 밀양시의회 손진곤 의장이 바로 장 씨의 장남이다. 총명함이 빛나는 장 씨 할머니를 보면서 개척단원들은 하나같이 "아, 이런 어머니가 계셨기에 아들이 커서 시민대표까지 됐구나"라며 입을 모았다. 장 씨는 "둘째 아들이 고례산대추도 키우고 얼음골에서 사과밭도 하니까 많이 선전 해 주게"라며 당부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비록 나이 들었어도 자식 걱정과 사랑 만큼은 한결같은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서 더 행복한 둘레길이다.



까치목에서 가산마을로 향하는 영남알프스 둘레길 최고의 둘레길

# 원동면 선리 서종수 이장·이월동 총무

- "아삭하고 달콤한 배내골 사과, 최고예요"

   

제17코스 종착지 마을인 양산시 원동면 선리는 배내골의 중간에 위치한 '배내골사과마을'로 유명하다. 사과 특산 정보화마을로 지정돼 있기도 한 선리 주민들이 사과 재배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께 부터다. 하류에 밀양댐이 건설되면서 배내골 대부분 유역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버려 살길이 막막해 진 주민들이 높은 일교차 등의 기후조건을 이유로 특산물로 사과를 재배키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낙동강환경관리청과 수자원공사 등 유관 기관의 지원과 주민들의 합심으로 시작된 선리마을의 배내골사과 농사는 이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제는 양산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자리잡았다. 약 6만㎡(1만8000여 평)의 공동 경작지에서 주민들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사과나무는 총 5600여 그루. 나무 1그루 당 평균 두 상자 씩, 일년에 총 1만1000여 상자를 출하한다. 물론 개인이 따로 경작하는 사과밭도 있지만 일단 공동 경작한 사과 출하량의 수익은 공평하게 분배한다.


언곡마을을 지나 선리로 향하는 길에는 무궁화가 마을길에 조성되어 있어 장관을 연출 한다. 둘레길꾼이 폰에 그 모습을 담고 있다.

'배내골사과마을' 운영위원장 겸 선리 이장인 서종수(69·사진 왼쪽) 씨와 총무 이월동(67) 씨는 "배내골 사과가 비록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합심된 노력과 일교차가 큰 기후 조건의 혜택을 받아 당도가 17에 이를 정도로 높고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아 '명품 사과'로 거듭났다"며 "11월 첫 토·일요일 열리는 배내골 사과축제때도 방문해 훌륭한 사과도 맛보고 구매도 하기 바란다. 늦게 오면 없다"고 말한다. 마을 사랑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가산마을의 모습.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오지마을로 현재는 4가구이며 남자4명만 생활하고 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 국제신문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선리마을의 500년된 당수나무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다.



17코스 출발지인 평리 대추 정보화 마을

평리마을 전경과 벼락바위 칭덤

풍류동으로 향하는 둘레길 탐사팀 그 앞으로 백마산이 솟아 있다.

풍류동으로 향하는 취재팀과 잘룩이 안부인 배꼽목

풍류동마을로 .승용차는 여기까지 올라 올 수 있다.

언곡마을로 향하는 탐사팀, 그 옆으로 모내기한 논의 푸르름이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 온 것을 알 수 있다.

다람쥐골의 모습으로 청청의 계곡이다. 짙은 수림으로 쌓여 있어 햇볕 한점 구경하기 힘들다

배내골의 중심마을인 선리마을로 지금은 배내골 사과를 공동재배하여 부농을 꿈꾸고 있다.






728x90

728x90

낙주정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처사 장내강이 피난처로 정한 곳으로 그 이후 인동장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1957년 옥봉 아래에다 옥봉정의 재사를 짓고 고례리 양지마을과 음지마을, 구석촌등지에서 세거를 이루고 살았다.
음지마는 현재 밀양댐 아래에 위치를 하며 순조때 진사 장창익이 살았다 한다.
구석촌은 거북모양의 바위가 많이 있다하며 인동장씨의 낙주 장선홍이 조선조 숙종때 처음 자리를 잡았다.
장창익의 아들인 장응구는 효자로 명성을 날려 광무2년인 1898년에 고례마을 입구에 삼성각이란 효자각을 세워 그의 효심을 받들고 있다.
1918년 장씨문중에서 장제산 아래인 시리소 절벽에 낙주정을 짓고 그의 선조인 낙주 장선홍과 농산장영석을 추모하기 위해 낙주정이란 누각(재사)을 지었다.
고사천이 감도는 시리소 절벽에 지은 낙주정은 그 주위의 풍경이 마치 산상의 별구에 감탄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은 잡목으로 인해 고사천과 주변의 산들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한 감도 있지만 뛰어난 경치로 점필재 김종직은 말년을 이곳 사회동의 농암대에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찾아와 그 뛰어난 승경에 취해 많은 시를 남겼다.
현재의 고례 이름 또한 그의 영향이 크다하겠다.
1051번 지방도에 인접해 있는 낙주정은 임경대, 강정,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고사천의 시리소 모습이다. 좌측 바위 위로 낙주정이 있다.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시릿 절벽과 그 위의 낙주정의 모습



삼성각의 효자각


옥봉정
찾아가는길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 편으로 밀양역까지 간다. 부산역 기준 오전 7시45분, 8시35분, 9시25분 등 여러 편 있다. 해운대역에서 밀양행 무궁화호도 오전 7시45분에 출발한다. 밀양터미널에서 고례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오전 6시40분, 12시 등 하루 4회 운행.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양산IC에서 내린 후 언양 경주 방향으로 우회전 하자마자 다시 어곡공단 에덴밸리리조트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배내골 표지판을 보면서 에덴밸리리조트를 넘어야 한다. 고점사거리에서 우회전, 7분만 가면 선리에 닿는다. 고점사거리로 돌아가 밀양댐 단장 방향으로 우회전, 15분쯤 가면 고례마을에 닿는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