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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중구여행)옛 서울 청사.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이 빈말이 아닌 대단한 서울의 중심 서울 옛 청사를 구경하다. 


  옛말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부산이 연고지라 서울에 찾아가는 것은 1년에 한 번도 올라가기 힘듭니다. 이번에 실로 오랜만에 서울행을 감행하여 너무 이른 시간이라 숭례문과 옛 서울청사, 한국은행 외관 등을 둘러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오래전에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서울을 오르내렸는데 그 당시 숭례문과 서울시청이 이리가까이 있다고는 생각을 못하였습니다. 숭례문에는 여러 길이 갈라지는데 걸어 다니다 보니 멀리 옛 서울시청 건물 같은 게 보여 “어 저기가 시청인가” 하며 여행 배낭을 메고 쫄래쫄래 걸어 가 보았습니다.

 

 

 

 

서울 시청 앞 광장과 옛 시청건물이 맞았습니다. 고 건축물도 꼭 챙겨 보는 입장이지만 근대 건축물 또한 있다면 가는 걸음을 멈추고 보고가는 입장이라 이번기회에 옛 서울시청 청사 건물을 보게 된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부산에도 많은 근대 건물이 남아 있었지만 일제 잔재라 하여 모두 헐어내고 새로 삐까번쩍한 건물로 모습을 바꾸었고 바꾸고 있습니다. 지난 3월7일 아침 옛 서울청사 앞 풍경은 이른 시간인데도 공사소음으로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지난겨울 동안 서울광장이 썰매장으로 운영되던 것을 하필 다른 날 다 두고 이날 철거를 하였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서울 시청을 부푼 마음을 안고 구경 할려고 한 내 마음은 중장비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고 옛 서울청사 사진을 정면에서 찍고 싶은 마음은 접어야 했습니다.

 

 

 

 

사진을 잘 찍지도 못하지만 찍을 만한 곳은 공사 현장이라 할 수 없이 대충 담고 눈 팅만 하고 왔습니다. 서울시 옛 청사 건물은 일제 강점기인 1926년 경성부 청사로 세워졋습니다. 해방 후에는 서울특벽시 시청사로 사용을 하였고 지금은 뒤편의 새로운 청사에 자리를 내 주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도서관과 전시관, 역사관으로 꾸며져 서울시민의 문화 공간이 되었습니다.

 

 

 

 

서울시 옛 청사는 등록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고 건물을 보면 르네상스 양식의 형식을 갖추었고 화려한 장식성을 배제한 평범한 외관 등에서 알수있듯이 역사주의 건축 양식에서 근대주의 건축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성격의 건물이라 ‘안내판’은 표시하고 있습니다.

 

 

 

다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멋진 서울 옛 청사를 내부와 함께 담아 보고 싶습니다. 서울 옛 청사에 걸린 단재 신채효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란 글귀가 이날은 유난히 더 크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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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 태백산맥 속의 홍교, 벌교의 유래인 홍교를 가다.


벌교하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요 태백산맥하면 벌교가 되어버려 둘이 때어내곤 이야기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정래 태백산맥의 소설에는 벌교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다보니 벌교역과 차부, 솥공장, 소화내집, 현부자, 재석산, 중도방죽, 남도여관, 낙안벌, 율어면, 부용산, 솥공장, 징광산, 소화다리, 김범우집 등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그들의 무대가 되는 건물과 지명이 등장을 하여 소설이 아닌 지금도 태백산맥의 이야기가 현실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 많은 소설속의 무대 중 벌교의 홍교를 댕겨 왔습니다. 벌교의 홍교는 소설속에서 홍교 또는 횡개다리로 등장을 합니다. 소설속인 일제강점기때는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가 3개였다 합니다. 홍교와 소화다리 그리고 철교로 지금도 태백산맥의 이야기를 안고 남아 있습니다. 벌교의 지형도에 나오는 부용교가 소화다리입니다.





각설하고 그럼 홍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벌교의 지명이 홍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소설 속에서도 벌교의 유래가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 태백산맥 속의 홍교, 벌교의 유래인 홍교를 찾아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2권 145페이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사실 봉림리와 장터거리와의 직선거리는 포구의 폭에 지나지 않는다. 그 포구에 가로 놓인 세 개의 다리가 낙안벌 쪽으로부터 횡계다리(홍교), 소화다리, 철교다. 벌교(筏橋)라는 이름도 포구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바닷물이 들고 나는 그 포구에다가 옛날에는 뗏목으로 다리를 놓아 건너다닌 데서 유래한 이름이었다. 세 개의 다리 중에서 제일 길이가 짧은 횡계다리는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었고, 소화다리와 철교는 일제시대에 만든 것이었다. 벌교.....”







태백산맥속에 등장하는 홍교는 김범우집 앞에 있습니다. 김범우가 홍교를 건너는 내용이 태백산맥에서 나옵니다. 김범우가 전원장을 만나며 집으록 가기위해서는 홍교를 건너는 내용입니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 멈추어섰다. 그리고 북쪽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큼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나 벌교읍에서는 횡개다리인 홍교가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소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아주 좋은 양념구실을 합니다. 그럼 옛날부터 있었다는 홍교가 궁금합니다. 홍교는 보물 제 30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벌교천 위에 놓여진 돌로 만든 홍예식(무지개)다리로 전체길이는 27m, 높이 약3m, 폭 4.5m 내외라 합니다. 홍교는 조선 1729(영조 5년)년에 순천의 조계산 선암사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합니다. 내용인 즉 불교에서 가장 큰 보시가 월천공덕으로 “다리를 놓아 사람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합니다.





☞(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 태백산맥 속의 홍교, 횡개다리 홍교 국내 최대 규모.


이 홍교는 1737년(영조 13년)과 1844년(헌종10년)에 보수를 하였다합니다. 현재의 다리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81~1984년까지 4년 동안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여 지금의 원형을 찾았습니다. 국내 남아있는 홍교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돌다리입니다.





홍교 입구에는 ‘보성벌교 홍교중수비군‘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이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로 쇠나 돌에 새겨 놓아 금석문이라 합니다. 홍교 앞에는 모두 다섯 기의 비가 있습니다.


 



홍교를 보수할 때 고친 내력과 참여자등을 기록한 중수비와 단교명비로 비의 내용은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렵다합니다. 벌교 홍교는 벌교에서 낙안읍성과 김범우집 등을 찾아 갈 때면 반드시 거쳐 가게 됩니다. 조정래 태백산맥속의 횡개다리인 홍교를 보며 소설속의 홍교를 그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태백산맥 문학관 캡쳐.




다음지도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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