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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이육사문학관.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의 청포도 이육사문학관 여행.


안동여행을 하면서 웬 뜬금없는 이육사문학관이 있나 생각했습니다. 민족저항 시인 이육사의 그의 대표작으로 첫손꼽는 ‘청포도’는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전 국민 모두에게 알 게 해 주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했던 시 청포도는 포항시 오천읍 한 어촌 마을의 포도농장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다 하여 필자는 이육사님의 고향이 경북 포항의 오천 한적한 어촌 마을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곳에도 이육사님을 기리는 안내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육사문학관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

이육사문학관 전화:054-852-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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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육사님은 포항 오천이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이육사님의 고향은 경북 안동 도산면의 원촌이며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 후손으로 퇴계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암울했던 우리 민족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짧지만 굵은 삶을 살았던 분이셨습니다. 이육사문학관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이육사님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904년 4월 4일(음력)에 5형제중 둘째로 태어나셨으며 본명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육사가 아닌 ‘원록’입니다. 그리고 ‘원삼’ 또는 ‘활’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발표한 시에도 그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 이육사입니다.



왜. 육사란 이름을 사용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육사는 1927년 처음 옥고를 치를 때 그때 대구 형무소 수인번호가 264번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이육사를 아호로 썼다 합니다. 이육사님의 유년기는 고향 인근인 예안에 설립된 보문의숙을 다니다가 공립으로 개편되면서 도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이육사문학관 개관시간과 관람요금 안내

이육사문학관 개관시간

3월~10월: 09:00!18:00

11월~2월:09:00~17:00

이육사문학관 휴관안내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월요일이 공휴일일인 경우 다음날


이육사문학관 관람요금

성인 2,0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이육사문학관 무료 대상자:장애인, 국가유공자, 65세이상, 7세이하

이육사문학관 안동시민 신분증 확인 후 50% 할인





그리고 대구로 이사하였고 부친의 명령으로 1921년 안용락의 딸 안일양과 결혼하면서 영천 처가가 있는 백학학원에 다녔습니다. 1924년 4월 일본 동경청치예비교와 일본대학 문과 전문부 유학을 떠났다가 그 이듬해 1월 귀국하여 대구를 중심으로 문학 활동을 펼치던 중 성주 출신의 이정기를 만나면서 조재만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조직인 ‘비밀결사단’을 조직하게 됩니다.

 




이들은 중국 북경을 답사하기도하였으며 재차 중국을 건너갔다 항일무장단체인 의열단 김창숙, 대한독립당군정서 대표 배병현, 국민당정의부위원 남형우 등과 만나면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7년 한인 군관학교 설립자금 모금을 위해 귀국했다가 10월 18일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이육사는 대구에서 체포되어 19개월 투옥되었다가 출소하였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과 1930년 대구 격문사건 등에 재차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이육사의 투옥 횟수는 모두 17회에 달한다 합니다.









1931년 다시 군관학교입교를 위해 북경으로 건너갔지만, 만주사변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의열단의 윤세주를 만나 1932년 난징에서 새로 연 조선군관학교에 입교하여 1933년 1기로 졸업하고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조선군관학교 출신이 발각되면서 1934년 3월에 구속되었다가 6월에 석방됩니다.

 




이육사 님은 이후 문예활동으로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남겼는데 이 시기에 그의 주옥같은 시인 ‘광야’ ‘절정’ ‘청포도’를 1939년 ‘문장’ 8월호에 발표합니다. 중국과 국내를 자주 왕래하면서 조국 독립운동을 위해 앞장서다가 1943년 7월 돌아가신 지 1년 만인 어머니와 큰형의 첫제사에 참석하기위해 귀국했다가 서울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이송되었으며 1944년 1월 북경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시신은 화장하여 국내로 운구되어 미아리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60년 고향 원촌마을 뒷산으로 이장했습니다. 이육사님의 41년 남짓 짧은 생애를 오직 일생을 조국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지만 그보다는 시인으로 더욱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육사님의 일대기를 알아가면서 평생을 오직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의 활동도 만만치 않으면서 그 상황에서도 주옥같은 작품은 어떻게 남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표작인 청포도, 황혼, 절정, 광야, 꽃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시의 작품 세계 하나하나를 생각하게 하면 말입니다. 이육사 님은 대구형무소에서 1929년 5월 출소하면서 ‘중외일보’ 기자로 근무하였습니다. 1930년 조선일보 1월 3일 자에 ‘말’이라는 시를 처음발표하면서 그의 문학 활동을 시작하려다 대구격문사건으로 다시 구속됩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전념하다 조선 군관학교 출신이 탄로 나자 다시 투옥되었다가 출옥하면서 문예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여러 편의 저항 시를 남기 섰습니다. 이육사님이 순국하고 광복 후인 1946년 처음으로 ‘육사시집’이 간행되었습니다. 정부는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훈장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현재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는 이육사문학관이 있으며 문학관에서 2.8km 거리에 이육사 묘소가 있습니다. 다른 일정이 겹쳐져 있어서 이육사 묘소를 찾아뵙지 못하고 온 것이 지금도 많이 후회로 남습니다. 안동여행에서 독립투사로서 민족저항시인으로서 이육사 님의 모든 기록이 보관된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 볼 것을 꼭 추천하면서 이육사 님의 시 ‘절정’의 배경지로 알려진 천길 낭떨어지 내살미 칼선대를 만나기 위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육사문학관 사진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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