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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태고정. 사육신 박팽년의 순천박씨 집성촌 묘골 육신사 한옥전통마을에서 보물제554호 일시루·태고정을 만나다.


태고정은 박팽년과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달성군 육신사와 함께 있습니다.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골에는 사육신의 한사람인 박팽년의 순천박씨 집성촌입니다. 그런데 역모를 도모했다든지 하면 본인은 물론이며 집안의 사내는 모두 죽이고 여자는 관비로 넘겨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을 만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달성군 하빈면 묘골 육신사, 도곡재 여행하기


2016/04/01 - (대구여행/달성여행)육신사의 도곡재. 하빈면 묘리 한옥전통마을 도곡재를 여행하다. 도곡재


2016/03/29 - (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박팽년 역시 세조에게 반기를 들고 단종 복위 거사를 시도하다 붙잡혀 삼족이 멸하는 것은 기본인데 어찌 후손이 대를 잇게 되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역시나 박팽년은 물론이고 그의 아들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행히 며느리인 이씨 부인은 관비가 되었지만 임신한 상태라 친정이 있는 대구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출산하여 사내아이면 죽이고 계집아이면 관비로 삼으라는 어명이 따라붙었습니다. 해산을 하고보니 불알 찬 사내아이가 태어나 이씨부인과 친정집은 걱정을 태산 같이하고 있는데 때마침 집안의 여종도 몸을 풀어 딸을 낳았습니다.


보물 제554호 태고정(일시루)


여종이 이씨부인과 의논하여 비밀리에 아이를 바꿔치기하여 박팽년의 유복손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그 손자는 비밀을 간직한 채 장성하지만, 훗날 자수하여 성종에게 사면을 받아 묘골에 정착한 박일산입니다. 후손이 없던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은 박일산은 먼저 할아버지 박팽년의 절의묘와 99칸의 종택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묘골의 한옥 규모는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박팽년과 사육신은 한강의 새남터에서 능지처참형벌로 죽었으며 사육신의 시신은 ‘금오신화’를 남긴 김시습이 수습하여 세조가 있는 경복궁을 등지게 하여 봉분을 만들었는데 지금의 노량진 사육신 공원입니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을 내쫓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습니다.




박팽년의 기일날 사육신인 여섯 사람이 사당 문밖에 서성이는 꿈을 박팽년 후손이 꾸었는데 박팽년 이외에는 모두 절손되어 육신사에 사육신의 위패를 함께 모시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포스트 할 건물은 태고정 정자입니다. 1479년(성종10년) 박일산이 처음 지었을 때는 별당으로 종가에 딸린 건물이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과 함께 일부 소실된 것을 1614년(광해군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새로 지었습니다.




앞면 4칸에 옆면 2칸 크기의 일자형 건물에 각각 2칸씩 대청마루와 방을 넣었습니다. 대청의 앞면은 개방하였으며 기둥사이에는 2단의 난간을 설치하였습니다. 또한, 태고정 건물은 왼쪽에다 온돌방을 넣었으며 그에 딸린 부엌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궁이가 딸린 누각은 많은데 비해 부엌을 넣은 건물은 흔하지 않습니다.




태고정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사용된 부재의 짜 맞춘 수법이 대단히 정교한 건물로서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청마루의 현판을 보면 윤두수의 한시와 명나라 선무관의 글씨 등이 있습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으로는 태고정은 한석봉의 글씨이며 일시루는 안평대군의 필체라 하는데 안평대군의 생몰 연대와 맞지 않아 글씨를 집자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달성태고정(일시루) 정보

 

보물제 554호

 

지정년월일:1971년 12월6일

 

소재지: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2

 

시대:조선시대 1479년(성종10년)


 

 

 

 한석봉의 글씨

 안평대군 글씨(?)

 

 

 

 

 

 

 



◆대구 달성군 여행지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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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육신사의 도곡재. 하빈면 묘리 한옥전통마을 도곡재를 여행하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는 박팽년과 사육신을 모신 사당인 육신사가 있습니다. 또한, 보물 제55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은 박팽년의 손자인 일산이 창건하였으며 묘골은 순천박씨 한옥마을 집성촌입니다.






◆박팽년과 사육신을 모신 사당 육신사가 보고 싶다면

☞2016/03/29 - (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박팽년 등 사육신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처참한 죽임을 당합니다. 박팽년의 후손은 이곳에 사당을 지어 매년 향사를 지내고 세거를 이루었습니다. 현재에도 순천박씨 종택 등 그 외 많은 전각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한옥 건물 중에서 도곡재도 있습니다.

 



도곡재는 육신사 입구 오른쪽에 있습니다. 역시나 박팽년의 후손으로 조선시대 정조2년(1778년)에 대사성 서정공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었던 건물입니다. 그리고 1800년대에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되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박종우는 인조 때의 문신으로 문장과 절의, 덕행에 능하여 동방의 일인자로 칭송받았던 인물입니다. 낙재 서사원을 사사하였고 병자호란에 참여하여 전사하였습니다. 도곡재 건물은 처음에는 앞면 4칸에 옆면 1칸으로 지어졌는데 뒤에 1칸의 퇴칸을 넣고 대청마루도 크게 넓혀 누각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남향을 보며 도곡재가 자리하고 그 오른쪽에 달린 중문을 들어서면 ‘ㄱ’ 형태의 안채와 고방채가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어 출입은 할 수 없습니다.




건물의 형태는 자연석 위에다 네모기둥을 세운 납도리 홑처마 팔작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일반적인 양반가옥을 잘 보여주는 사랑채 건물입니다. 1995년 5월에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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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골에는 전통한옥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먼저 육신사를 만났습니다. 육신사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며 단종의 왕위 복위를 꾀하다 처참하게 숨진 사육신을 모신 사당입니다. 사육신에는 박팽년·성삼문·이 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를 말합니다. 육신사를 알려면 먼저 단종의 폐위와 사약을 받았던 과정을 먼저 알아야합니다.






 

13세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조선 제6대 왕입니다. 그의 부왕인 문종은 즉위와 함께 2년만인 1452년 5월에 승하하면서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에게, 집현전학사 출신인 박팽년·성삼문·신숙주·하위지·이개·유성원 등에게 세종은 장손인 어린 단종을 특별히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1453년 10월이 되자 숙부인 수양대군은 정권찬탈을 도모하며 권람·한명회 등이 세운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기는데 당시 좌의정이던 김종서를 그의 집에서 주살하고 대신들을 모두 대궐로 불러들여 영의정 황보인, 병조판서 조극관, 이조판서 민신, 우찬성 이양 등을 죽였습니다. 이를 계유년에 일어 났다하여 계유정란이라 합니다.


 

그들은 숙부인 안평대군을 옹위해 종사를 위태롭게 하고 국정을 농단했다는 죄목을 붙여 안평대군은 강화도에 위리안치시켰다가 곧 사약을 내려 죽였습니다. 단종은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정권은 수양대군에게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또한, 단종의 측근이던 금성대군 이하 여러 종친과 신하 등을 죄인으로 몰아 유배를 보내고 임금의 측근은 모두 죽거나 쫓겨나자 단종은 더 견디지 못하고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이 되어 수강궁에 거처하였습니다.


 

그러나 1456년(세조2년) 단종 복위 사건이 일어나는데 주동자는 집현전 학사 출신과 무신인 성승과 유응부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초대하여 연화를 베푸는 날 세조를 죽이기로 모의하지만 밀고자 김질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상왕 복위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거사로 단종의 운신은 더욱 좁아졌으며 목숨까지 위태로웠고 1년 뒤인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유배지에서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운동이 발각되자 세조는 노산군을 다시 서인으로 강등하고 그해 10월에 사약을 내려 방년 15세에 단종은 한 많은 생을 마감합니다.


 

이때 죽음을 무릎서고 상왕 복위를 도모했던 집현전 학사 출신 박팽년·성삼문·유응부·하위지·이 개·유성원등 6명을 일컬어 사육신이라 부릅니다. 사육신을 보면 박팽년은 옥사하고 유성원과 허조는 집에서 자결하였으며 성삼문, 유응부, 이 개 등은 거사 7일 만에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숙주나물이라 아시는지요, 콩나물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여기에는 집현전 학사였던 신숙주에 의해 숙주나물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신숙주는 세종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극진한 사랑을 받았고 세종과 문종은 집현전학사 출신들에게 특별히 어린 단종을 지켜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나 신숙주는 세종과 문종과의 신의를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수양대군 편에 섰는데 이를 박팽년성삼문의 사육신에 빗대어 변절자라 부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신숙주는 동부승지에 추증되고 공신반열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숙주나물은 금방 쉬어버려 못 먹게 되는데 신숙주를 마음이 숙주나물처럼 잘 변한다하여 신숙주에 빗대어 숙주나물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묘골의 육신사는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사육신을 모신 사당입니다. 처음에는 박팽년만 후손에 의해 배향되었는데 박팽년의 기일에 현손 계창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사당 문 앞에 사육신의 여섯 어른이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난 뒤 박팽년과 다섯 분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제사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처음에는 낙빈사를 지어 제향하다 1691년(숙종17년) 낙빈서원을 세워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866(고종3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서원과 함께 훼철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을 재건하고 다시 사육신인 여섯 분의 위패를 봉안하였습니다.


 

 사육신의 행적을 새긴 육각기념비

 

1974년에는 ‘충효 위인의 유적 정화사업’을 펼치면서 '육신사'라하고 사당을 재건하였으며 숭정사에는 사육신과 박팽년의 부친인 박중림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였지만, 왼쪽 언덕에 충의사를 새로 짓고 문민공 박중림 선생의 위패만 옮겨 봉안하였습니다. 숭정사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웅장하며 아름다워 사육신의 충절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문민공 박중림 선생비

 

 





또한, 1979년 건립된 사육신의 행적을 새긴 육각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1981년에는 외삼문, 삼충각, 숭절당 등을 갖춘 사당이 되었습니다. 육신사를 들어서는 입구 주차장 옆에는 삼충각이 있습니다.



이는 박팽년(1417~1456)이 1755년(영조31년)에 영조에게 충신정려를 받았으며 박팽년과 함께 죽임을 당한 그의 아들 박순과 그의 유복자 박일산은 1831년(순조31년)에 순조에게 정려를 받았습니다. 3대가 정려를 받은 것을 기념하기위해 1832년 경상도관찰사 김양순이 사육신을 모신 숭의사를 참배하고 비석을 세우게 했는데 1835년에 ‘순천박씨삼세정충기실비’가 세웠졌습니다.



육신사

주소: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문의전화:053-583-6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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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대구여행/청도·대구달성여행)청도읍성, 석빙고, 청도와인터널, 대적사, 남지장사, 녹동서원·한일우호관, 대구국립박물관, 사문진나루터, 육신사·달성태고정·달성도곡재, 달성 하목정여행 당일여행.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화유적답사 모임인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과 경북 청도와 대구 달성 일원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아주 잘 짜인 여행코스로 청도와 달성군의 여러 곳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청도 석빙고와 와인터널, 국립대구박물관과 육신사는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였습니다. 먼저 여행경로를 보면 청도 읍성~!청도석빙고~청도 와인터널~ 대적사~남지장사~녹동서원~국립대구박물관~사문진 나루~육신사~태고정~도곡재~하목정 순으로 여행했는데 우리 전통고가와 문화유적지 그리고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김충선장군,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을 만나는 알찬여행이었습니다. 먼저 청도읍성을 찾았습니다.




청도읍성

부산과 가까워 일찍 도착했던 청도읍성은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동상리, 동천리 일대에 석성과 토성을 혼합하여 쌓았습니다. 처음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청도읍성은 조선 선조 23년인 1590년 청도군수 이은휘에 의해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여 2년만인 1592년 완공하였으며 그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1.88km, 높이 1.7km, 성위에 덧쌓은 낮은 담장인 성가퀴는 600첩이었습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 그리고 읍성과 함께 청도 석빙고를 보았습니다.



 청도석빙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석빙고로 겨울에 얼었던 얼음을 봄·여름·가을에 사용하기위한 저장고로 만들었습니다. 빙고의 크기는 길이 14.75m, 너비 5m 홍예 높이는 4.4m로 화강석을 이용하였습니다. 청도석빙고는 신축당시를 기록한 비석이 석빙고 좌측에 남아 있습니다. 비석의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숙종 39년인 1713년에 축조하는데 3개월이 소요되었으며 소요인력과 물자 등을 알 수 있는 석빙고로 국내에서 축조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청도석빙고는 1963년 1월21일 보물 제3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청도와인터널

이제 청도 남성현 터널을 이용해 만든 청도 와인터널을 찾았습니다. 경상북도청도군 화양읍 송금리에 있는 청도 와인터널은 감와인 체험장입니다. 청도에서 유명한 특산물이 반시와 복숭아인데 청도 반시는 임금님께 진상될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와인터널은 원래 부산~서울을 운행하는 철도인 경부선 선로로서 경북 청도군과 대구를 잇는 옛 남성현 터널입니다.

 1896년 일제에 의해 착공하여 1904년 완공된 옛 남성현 터널은 잘못된 설계로 인해 1937년 새로운 남성현 터널이 개통하면서 폐쇄되었습니다. 옛 남성현 터널은 길이가 1,015m 폭은 4.5m, 높이는 5.3m 직육면체의 화강암과 적벽돌로 3겹의 아치형으로 건설하여 110년이 넘은 지금도 내부는 보존상태가 잘되었습니다. 터널의 연중 연중온도는 15, 16도이며 습도는 60~70%로 와인 숙성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 2006년 2월에 청도와인(주)에서 감와인 숙성고와 시음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소문이나 지금은 청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청도대적사

청도 와인터널을 나오면 왼쪽 골짜기에 신라 헌강왕 때 체징이 창건한 사찰 대적사가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모든 당우는 불탔으며 1635년과 1689년 중건과 중수를 거쳤지만, 현재는 극락전을 제외하면 초라한 모습입니다. 대적사 극락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이며 볼거리는 극락전을 받치고 있는 기단과 소맷돌입니다. 기단에 연꽃과 거북무늬의 양각과 소맷돌의 용비어천도 등 창건 당시의 화려했던 대적사의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발길은 청도 남성현 터널을 지나면 대구 달성군 가창 땅입니다.

 


 대구 남지장사

이곳 최정산 아래 우록리 골짜기에 684년 신라 신문왕 때 양한이 창건했다는 남지장사를 찾았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사세가 대단했는데 8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3천여명의 승려가 운집했을 정도로 대찰이었습니다. 그러나 궁예가 일으킨 전쟁으로 폐사되었다가 1263년인 고려 원종 때 일연이 중창하여 제법 사찰의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1592년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당 유정이 이곳에서 승병 훈련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왜적은 한양 공격 길에 이곳을 불 질러 초토화했습니다. 1653년과 1767년 중건과 중창을 하였으며 모계에 의해 팔공산의 북지장사와 대칭된다며 남지장사라 하였습니다. 부속암자로는 청연암과 백연암이 있으며 사명당이 승병을 훈련하면서 머물렀던 청연암은 1990년에 보수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포스트:http://yahoe.tistory.com/2321


 대구녹동서원, 한일우호관

남지장사를 보고 나오면서 우록리 입구에 녹동서원을 찾았습니다. 녹동서원은 삼란공신을 평정한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왜 일본 장수가 조선의 장군이 되었는지 녹동서원과 녹동서원 옆 한일우호관을 방문하면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김충선장군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좌선봉장으로 참전했다가 경상좌수사 박진에게 휘하 병사 3천명과 귀순합니다. 조선군에 조총 제작 기술을 전수하며 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선조는 그에게 사성 김해김씨의 성과 충선의 이름을 하사합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괄의 난을 평정한 삼란 공신입니다.

 


 국립대구박물관

이제 대구에서 꼭 보고 싶었던 국립대구박물관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대구 박물관에 가기 전에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점심을 맛있게 먹고 힘을 내어 대구박물관 여행을 시작합니다. 국립대구박물관은 대구시 수성구 청호로 321. 1994년 12월 개장했는데 대구와 경북일원에서 출토된 유물 1.700여점이 전시중입니다. 이곳에서 눈여겨 볼만한 유물은 국보로 지정된 금동여래입상(국보182호)과 금동보살입상(국보 183호, 184호) 두 점입니다. 또한 송림사 5층 전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보물 제325호)와 국보 제282호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불 복장유물, 보물 제202호 의성관덕동석사자, 보물 제357호 칠곡정도사지5층석탑 등을 만났습니다. 정교한 신라예술품의 극치를 만나는 뜻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대구사문진나루터

다시 낙동강의 화원 유원지 사문진나루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두 해전쯤 찾았는데 그때보다는 많은 조형물 등 시설물이 설치되었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여행객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문진은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진다”는 뜻이며 선교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왔던 곳입니다. 당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이곳 사문진 나루에 내려진 귀신통 피아노는 지금의 동산 외국인 선교사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대구육신사

이제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한옥 집성촌으로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인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함께 봉안한 박팽년의 부친 중림의 위패는 현재 따로 봉안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박팽년만 후손에 의해 배향하였는데 기일에 사당 앞에 여섯분이 서성거리는 꿈을 후손이 꾸면서 박팽년 이외 다섯 분도 함께 모시게 되었다합니다.



 대구 달성태고정

신사 옆 달성 태고정은 1479년 박팽년의 손자인 일산이 세웠습니다. 조선 중기의 정자로 일시루라 하며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구성되었는데 오른쪽에 2칸의 대청을 넣었습니다. 창건과 함께 박팽년의 절의 묘와 종택에 딸린 건물로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일부 소실되었다가 1614년 다시 중건하였습니다. 1971년 12월에 보물 제55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태고정의 현판글씨는 한석봉이 섰다하며 일시루는 안평대군의 글씨라는 해설사의 설명입니다.

 대구 달성도곡재

태고정 아래 도곡재는 1995년 5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778년 정조 때 대사성 서정공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었다가 1800년대에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그의 호를 따와 도곡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앞면 4칸, 옆면 1칸의 기와 건물인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헛간과 대청을 달아 누각형태로 꾸몄습니다.

 

 대구 달성하목정

이제 낙동강을 끼고 들어선 달성 하목정을 찾았습니다. 낙동강에 저녁노을이 붉게 비치면서 하목정의 분위기는 정말 남달랐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던 낙포 이종문이 1604년 세운 정자입니다. 하목정의 현판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인연으로 인조가 이종문의 아들 이지영에게 써주었습니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은 특이한 점은 처마가 부채모양 곡선으로 되었으며 일반 가옥에는 서까래에 부연을 달수 없지만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습니다.

 이번 청도와 대구 달성군을 여행하면서 빼어난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운 한옥의 곡선, 그리고 자신의 조국을 배반하고 귀화하여 조선을 전쟁에서 구한 일본 장수 등 한편의 역사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부산과 가까운 곳에도 이런 알찬 여행을 꾸밀 수 있었습니다. 당일로 가볍게 여행을 하는 청도와 대구 여행 이제부터 한곳한곳 포스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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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5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대구 근교산 삼필봉~황룡산 산행.천리마의 전설과 함께하는이색산행 마비정 벽화마을.


2014/01/27 - (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2013/11/11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한국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온 곳은 어디, 사문진나루터와 화원동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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