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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대가야 비운의 태자 월광태자의 전설이 남아 있는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경남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월광사지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옛 절터가 있습니다. 월광사터로 현재 이곳에는 동·서 삼층석탑만이 덩그런이 남아 있으며 보물 제129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월광사지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인 월광태자가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합천군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3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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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광태자와 신라의 마의태자를 비운의 태자라 합니다. 모두 존망에 처한 나라와 함께 생을 마감했기 때문인데 마의태자는 모두 아시는 것과 같이 신라의 태자로 있을 때 고려 왕건에 의해 나라가 멸망합니다. 경순왕은 왕건에 항복하지만, 그의 아들인 마의태자는 금강산에 들어가 입었던 비단옷을 벗어 던지고 고려가 주는 양식을 먹고 사느니 풀뿌리를 캐 먹더라도 끝까지 신라인으로 남아 죽겠다며 삼베옷을 입고 일생을 마쳤다 하여 마의태자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그보다 빠른 삼국시대의 월광태자는 대가야의 태자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대가야는 신라에 의해 멸망합니다.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월광태자를 왜!! 마의태자와 함께 비운의 태자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버지는 대가야의 이뇌왕이고 어머니는 신라의 이찬 비지배의 딸로 국가를 뛰어 넘어 결혼을 했는데 쉽게 말하면 대가야와 신라 간의 결혼동맹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월광태자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대가야와 신라의 동맹관계는 신라의 트집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7년 만에 깨어져 끝내는 대가야는 신라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KBS의 역사스페셜 “대가야 최후의 왕자, 월광은 어디 갔나?” 편을 보면서 월광태자의 궁금증을 많이 풀 수 있었습니다. 월광태자와 도설지왕이 같은 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KBS 역사스페셜의 출연진은 월광태자와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솔지를 같은 인물로 보고 있었습니다.



동시대의 인물로서 도설은 달을 뜻하며 월광 또한, 달빛으로 풀이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설지는 단양의 신라적성비에도 그 이름이 나옵니다. 아마 신라가 한강유역의 고구려 영토를 점령하면서 대가야의 도설지도 장군으로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인 월광이 왜 신라의 장수로 출전했는지 그 이유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가야의 정세는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국운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우방이라 믿었던 백제가 느닷없이 창끝을 겨누며 공격해와 대가야의 영토인 남원, 임실, 하동유역까지 빼앗겨 더욱 위기감을 느낀 대가야는 마침내 신라에 혼인동맹을 제의하고 큰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이들의 혼인동맹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결혼 7년 만에 파탄이 납니다.





그 이유를 보면 결혼할 때 신라에서 따라간 하인들의 옷차림을 모두 대가야의 복식으로 바꾸어 입게 한 것을 문제 삼으면서 동맹은 휴짓조각이 되고 맙니다. 이에 대가야는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다시 국가존망의 위기의식을 느꼈고 어느 한쪽과 동맹을 맺지 않으면 나라의 존립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급기야 가야 내부에서도 백제와 협력해야 한다는 파와 그래도 신라 쪽에 붙어야 한다는 파벌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백제 쪽으로 기울어졌고 어머니가 신라 사람인 월광태자는 난처한 처지에 처해 신라로 망명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역사스페셜 출연진은 추정했습니다. 561년경에 세운 진흥왕 순수비에도 도설지란 이름이 등장하는데 같은 인물로 보면 신라에서 혁혁한 전공을 많이 세웠던 분 같습니다.

 




그러나 국제관계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은 신라는 서로 짝짜꿍하며 힘을 합해 고구려를 공격하였다가 신라는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다시 고구려와 손을 잡고 이번에는 백제를 공격합니다. 신라는 관산성에서 백제에 대승을 거두었으며 그와 반대로 백제와 협력관계인 대가야는 백제와 함께 신라를 공격해 패하자 대가야의 몰락를 자초합니다.





562년 신라 진흥왕은 이사부를 총사령관에, 사다암을 선봉장으로 삼아 군사 5천을 내주어 대가야를 정벌케합니다. 대가야는 힘 한번 제대로 서보지도 못하고 520년 만에 멸망하여 신라에 복속됩니다. 그러나 신라로서는 가야 백성의 민심을 잠재우는 게 큰 문제였습니다. 신라는 대가야의 태자였던 월광을 왕으로 앉혀 잠시나마 내분을 수습하려 했으며 신라는 이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고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자 월광태자를 내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보면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 월광은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이라는 유추도 가능해집니다. 신라로부터 버림받은 월광은 더는 갈 곳이 없자 합천 가야산의 거덕사에서 출가해 인근에 월광사를 짓고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합니다. 월광태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나온 근거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다르게 월광태자를 설명하고 있으며 대가야와 신라의 혼인동맹으로 태어났으며 태자로서 승려가 되었고 여생을 월광사에서 보낸 것만은 사실로 보입니다. 





월광태자가 여생을 보냈다는 월광사는 현재 옛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으며 창건 연대만 달리하는 비슷한 모양의 삼층석탑 두기만 월광 태자의 비운을 아는지 천 년의 세월 동안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월광사지 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에다 3층의 몸돌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형태의 석탑입니다. 






기단은 아래층과 위층 모두 각 면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우주를 조각했으며 몸돌의 모서리에도 마찬가지로 우주조각을 했습니다. 옥개석인 지붕돌은 밑면이 5단 받침으로 언뜻 보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탑의 기단부는 서탑에 비해 많은 부재가 들어갔으며 서탑은 쓰러져 있던 것을 다시 복원하였다하며 여러 곳에 파손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기단석의 각 면 중앙에도 기둥을 새겼는데 서탑에는 2개지만 동탑은 1개뿐입니다. 두 석탑은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고 서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각 부분의 구성방법과 양식에서 약간씩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두 석탑이 함께 만들어진 게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합천 하면 생각나는 여행지가 가야산과 해인사입니다.




 

물론 해인사는 법보사찰로서 국보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대찰이며 최고의 여행지에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가야 비운의 황태자인 월광태자의 사연이 알알이 새겨진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을 만나보고 월광태자의 마음을 노래했을 ‘월광사지’

"아득한 풍경 소리 어느 시절 무너지고

태자가 놀던 달빛 쌍탑 위에 물이 들어

모듬내 맑은 물줄기 새 아침을 열었네"를 읊으며 월광 태자가 되어 봅니다.

참고:KBS의 역사스페셜 “대가야 최후의 왕자, 월광은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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