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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댐 아래에서 본 모습으로 오른쪽의 능선이 와불능선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의 산. 청도의 산 부처산 개요

 

청도군에는 청도읍의 진산인 남산을 위시하여 화악산, 그리고 대구 달성군과 경계한 비슬산, 영남알프스의 가지산, 문복산, 운문산, 억산 등 굵직하며 이름만 대면 아 그 산하며 툭 튀어나오는 명산들을 즐비하게 안고 있다. 청도군의 군계가 명산으로 채워져 있어 그래서 청도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청도의 모든 명산을 다 내어 놓아도 500m의 보잘 것 없는 부처산에는 이름으로 견줄 수가 있을까. 어떤 산인지 아예 부처를 뜻하는 부처산으로 부를까. 운문사, 대비사등 대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찌 영남알프스 한쪽 끝에 이런 이름을 얻었을까.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그 뜻은 모른다며 아주 옛날부터 그리 불러 왔다고 한다.

 



 

 

 사골마을 들어가다 본 모습. 우측 솟은 봉우리가 부처산이다


 

그러나 필자가 2011년 초순경에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운문댐 하부를 내려오면서 정면에 펼쳐진 산세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억산에서 구만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누워있는 부처님의 모습이라 ‘와불능선이다’하며 지나갔는데. 그 후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이곳 남양리 사곡마을 인근을 지나게 되었다. 마을 주민을 붙들고 물어 보니 글쎄 이 산을 ‘부처산’이라 하는게 아닌가. 이 얼마나 신통한 일인가. 그 멀리서 본 산이' 어~. 부처가 누워 있는 모습이네'한 게 실제 마을에서 부처산으로 부르니 옛 사람들도 우리와 별 다른게 없는 것 같다.

 

 

 

 

 사골마을 당산나무. 여기서 산행 시작

 

 거성사를 찾아 올라간다.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의 산. 청도의 산 부처산 산행경로

이번 부처산 산행은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는 그 이름을 찾을 수 없다. 그 마을에서 이름을 찾은 구들삐산과 벼락덤을 엮어 산행을 하였다. 산행경로를 보면 청도군 매전면 사골마을의 사곡경로당을 출발해 거성사 입구~김해김씨묘~너덜지대~부처폭포~능선 삼거리~부처산 정상(다시 삼거리)~장수골 삼거리·전망대~구만산·육화산 갈림길~안부 삼거리~구들삐산~전망대~712m봉~구만산·억산 갈림길~가인계곡 갈림길~672m봉~인재~동편마을 정자 사거리~남양2리경로당~임실고개를 거쳐 사곡경로당으로 돌아온다. 이번 코스의 전체 산행거리는 13㎞ 정도로 순수 산행시간은 5시간~5시간30분, 휴식을 포함하면 6시간 안팎이 걸린다.

 

 

 

 

 

 뒷골 계곡옆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너덜지대를 만난다.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의 산. 청도의 산 부처산 산행. 사곡경로당에서 시작

 

산행은 사골마을 사곡경로당 앞에서 출발한다. 경로당에서 봐서 맨 오른쪽에 불룩 솟은 산이 부처산으로 누워 있는 부처의 발에 해당한다. 사골마을에 가기위해서는 남양1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정류장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언덕을 넘어 골마마을 쉼터인 정자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왼쪽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큰 소나무가 일품인 효자각을 지나고 갈림길과 만난다. 저수지가 있는 오른쪽은 애암고개 방향이고, 사골마을은 왼쪽으로 들어선다. 거성사 안내판을 보고 따라가면 된다. 마을 안길을 들어서면 아주 옛날부터 당제를 지냈다는 당산목이 있고 그 옆으로 사곡경로당이 있다.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시멘트 길을 계속 올라 거성사 입구에서 다리를 건넌 뒤 바로 왼쪽으로 꺾어 계곡 옆길로 간다. 절 안으로 들어서면 산길이 없다. 20m쯤 가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두기의 무덤이 있는 김해김씨 묘다.

 

 

 

 부처폭포로 명명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의 산. 청도의 산 부처산의 폭포 부처폭포로 명명

뒤쪽 무덤 오른쪽에 희미한 길이 이어진다. 곧 석축이 나오면 거성사 뒤로 녹색그물망이 쳐져 있다. 그물망 담장을 따라가면 뚜렷한 산길이 나타난다. 간벌을 한다고 나무를 마구잡이 베어 산길을 막고 있다. 5분 정도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한다. 오른쪽 길은 계곡에서 끊어진다. 마을 뒤에 있다하여 뒷골로 불리며 길은 대체로 완만하지만 100m면 간벌지역을 벗어난다. 이후 부터는 뚜렷한 산길을 10분 정도 올라가면 계곡과 만난다. 계곡 직전에 왼쪽으로 올라야 한다. 5분 정도면 계곡을 건너 맞은편 너덜지대로 이어진다. 북쪽으로 학일산과 삿갓봉, 발백산, 반룡산 청도의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너덜길을 지나면 길이 계곡과 다시 만나고 강추위 때문인지 주위에 얼음이 꽁꽁 얼어있다. 이곳에서 오른쪽 산 사면으로 오른다. 길 오른쪽에 높이 20m 정도의 폭포가 빙폭을 이루고 있다. 부처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골짜기로 이름을 부처폭포로 명명하고 옆에는 푹 파인 동굴 2개가 있다.

 

 

 

 능선 삼거리에서 본 모습. 발아래 동창천


 

 부처산 정상


 

 부처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들...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의 산. 청도의 산 부처산 조망은 최고

 

 

낙엽 수북한 희미한 길을 잠시 오르면 경사가 더 가팔라진다. 희미한 길도 곧 사라져 이후로는 부처산 정상으로 개척한 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까시등이 막고 있지만 오르지 못하는 곳은 아니다. 25분 정도 올라서면 능선에 닿는데 산길이 뚜렷하다. 건너편으로 조망이 열리면서 큰 소나무가 서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150m가량 가면 부처산 정상이다. 정상 북쪽은 깎아지른 벼랑이다. 벼랑 끝 소나무에서 아래로 로프가 드리워져 있다. 이곳을 내려서면 애암고개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며 발아래 동창천과 그 너머의 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30m 정도 잡목 사이를 헤치고 가면 기막힌 바위위의 조망처가 나온다. 사골마을에서는 이 바위를 부처덤이라 불렀다. 동쪽으로 운문호와 그 오른쪽으로 문복산, 옹강산 지나 구만산에서 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여인의 주름치마처럼 겹겹이 포개었고 멀리는 경주 단석산도 보인다.

 

 

 

 

 

 

 

 부처듬 위 전망대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의 산. 청도의 산 부처산에서 구들삐산으로...

 

다음 목적지인 구들삐산을 가기위해서는 온 길을 되돌아간다. 올라온 능선 삼거리를 지나면 잠시 뒤 장수골 방향으로 전망대와 이정표가 선 삼거리다. 전망대에서 보는 밀양 청도의 산군들이 눈을 씻어 주며 발아래 영남알프스 둘레길이 고깔봉 사이인 내동고개로 넘어가는 것도 보인다. 오른쪽 내리막은 장수골 방향으로 경북청소년수련원이다. 육화산 방향은 직진이다. 잠시 뒤 다시 이정표 삼거리다. 직진하는 능선 길은 육화산 방향이고 구들삐산은 능선을 살짝 벗어나 구만산 2.3㎞의 왼쪽 산 사면으로 들어선다. 가파른 사면을 가로지르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좁고 부분부분 허물어져 있다. 15분 뒤 안부 삼거리에 올라선다. 오른쪽은 육화산 방향이고 왼쪽 오르막 능선이다. 5분가량 능선을 따르다가 살짝 올라선 곳이 구들삐산(668m)이다. 별다른 표시가 없다.

 

 

 

 장수골 갈림길 삼거리의 전망대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의 산. 청도의 산 부처산, 천년송의 벼락덤에 경악

 

능선 길의 오른쪽은 밀양 산내면의 구만계곡 최상류 지역이다. 10여 분 완만한 길을 걷다보면 정면에 갑자기 급경사 오르막이 나타난다. 10분 정도 올라서면 다시 길이 완만해지고 곧 오른쪽으로 구만산이 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712m봉을 지나 10분이면 삼거리다. 직진하면 구만산으로 가고 인재는 억산 방향 왼쪽 내리막이다.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10분 정도면 오른쪽으로 가인계곡 방향 하산길이 열리는 갈린길이다. 직진한다. 뚜렷한 능선길을 따라가면 작은 봉우리를 우회하고 다시 오르막이 이어진다. 왼쪽 바위로 올라서면 왼쪽 능선에서 떨어져 우뚝 솟은 암봉 벼락덤을 볼 수 있는 바위에 올라서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벼락덤과 그 위의 천년송은 가히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저 큰 바위에 어찌 소나무가 살고 있는지 우리 소나무의 강임함을 다시금 볼 수 있다.

 

 

 

 

 

 벼락덤이 보이는 전망대. 억산과 사자산도 확인 된다.


 

 

 

 가인계곡 갈림길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의 산. 청도의 산 부처산의 인재에서 하산

 

등산로에 다시 내려와 올라서면 672m봉을 지나고 이어 전망 좋은 바위봉우리를 넘어선다. 가인계곡 건너 억산과 북암산이 가까이 보인다. 급경사를 5분 정도 내려가면 오른쪽에서 오는 넓은 임도급 길과 만나며 완만해진다. 시멘트 포장길인 인재다. 고개 직전에 오른쪽 가인계곡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있다. 밀양쪽 방면이다. 청도쪽 하산은 임도 사거리 고개에서 왼쪽길이다. 오른쪽 시멘트 임도는 기도원으로 가고 정면 능선 오르막은 억산으로 이어진다. 왼쪽으로 흙길을 밟다가 임도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포장된 임도로 계속 내려간다. 20분가량 내려가면 중앙광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다시 20분 정도 더 내려가 마을로 들어서면 동편정 정자 앞 사거리다. 여기서 왼쪽으로 간다. 5분 정도면 남양2리경로당이다. 마을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 콘크리트 도로로 사골마을로 연결된다. 마을을 벗어나 200m 정도 오르면 사거리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멋진 집들이 있고 직진하면 임실고개로 불리는고개마루에 닿는다. 고개를 넘어서면 거성사 입구를 지나고 10분 정도면 출발지인 사곡경로당에 닿는다.

 

 

 

 벼락덤


 

 벼락덤의 천년송


 

 

 

 

 

 

 

 

 

 인재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


 

 청도 남양리로 하산하는 임도


 

 

 

 사곡 경로당에 다시 돌아왔다.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의 산. 청도의 산 부처산 교통편

 

대중교통편은 부산역에서 청도행 열차는 오전 5시40분, 6시35분, 7시10분, 7시50분에 있다.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오전 8시8분. 청도역 앞에 청도터미널이 있다. 오전 9시20분, 10시40분에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남양1리 정류장에 내려 사골마을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운문사에서 청도로 나가는 버스는 오후 3시30분, 5시30분이며 7시20분 동곡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상동역을 거쳐 청도로 운행하는 버스가 한 대 있다. 사골마을에서 남양1리 버스정류장까지는 20~30분 걸린다. 청도에서 부산으로 오는 열차는 오후 7시12분, 8시33분(해운대행), 10시4분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24번 도로로 가다가 긴늪사거리에서 청도(대구) 방향 25번 도로를 탄다. 상동역을 지나 신곡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밀양강을 건넌 다음 옥산삼거리에서 오른쪽 58번 도로를 탄다. 매전면사무소가 있는 동창에서 운문사 방향으로 가다가 매전교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매전교를 건너간다. 1.5㎞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콘크리트 도로로 계속 가면 사골마을 경로당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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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721> 제8-1코스 : 청도 운문면 방음리 ~ 공암리

굽이굽이 운문호 50리길 걸으니 '천하절경' 공암풍벽이…

현재의 운문댐 을 돌아가는 도로의 모습이다. 지금 운문산 8코스와 8-1 코스는 벚꽃 터널을 이루고 있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에 자리잡은 운문호는 밀양호와 더불어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 만나는 2대 호수 중 하나다. 1996년 완공됐다. 대구시 영천시 경산시 청도군 등 4개 지역의 상수도 취수원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홍수 조절 기능, 수력발전 기능 등 다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호산(314m)과 종지봉(367m) 사이 협곡에 건설된 길이 407m 높이 55m 규모의 댐에 갇힌 호수는 이 같은 현실적인 기능 외에도 주변의 영남알프스 자락과 어우러지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 아름다운 풍광과 호젓한 분위기로 인해 언제부턴가 드라이브 및 하이킹 여행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순환도로 상 발길 멈추는 곳 어디서든 호수 주변 풍경이 다르게 보이고, 하늘과 구름이 비친 수면도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짓기 때문에 지겨울 새가 없다. 운문호가 품고 있는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즐기며 걷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 길이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의 공암풍벽은 동창천이 굽어지는 곳에 있는 거대한 절벽이다. 운문호 축조 이전 청도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혔다. 50리 길을 걸어서 공암풍벽에 도착한 둘레길 개척단이 주변 풍광을 살피고 있다.
특히 봄과 가을이 좋다. 4월 중순부터 말까지는 수몰지구 실향민들이 '수구초심'의 염원을 담아 심은 벚나무에서 새하얀 벚꽃이 피어나 길의 정취를 더욱 높여준다. 영남알프스 주봉인 가지산과 운문산을 넘어온 봄바람에 흩어진 꽃잎은 스스로 '꽃비'가 되어 물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잔잔한 호수에 처연히 내려앉는다. 고향집을 잃은 실향민의 정서를 닮았다.

또 가을에는 청도8경 중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공암풍벽(孔岩楓璧)'에서 단풍의 멋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주 개척단이 찾아간 제8-1코스는 운문호를 한 바퀴 돌아 공암풍벽을 찾아가는 길이다. 동창천이 운문천과 만나기 직전 큰 물돌이를 이루는 곳에 우뚝 솟은 절벽인 공암풍벽은 옛날부터 청도 제일의 풍광을 뽐낸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을 물들인 단풍이 너무도 아름다워 단풍 풍(楓)자를 썼을 정도이니 가을 경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코스 막바지에서 공암풍벽을 만나는 순간 그동안의 피로와 지겨움이 단번에 사라져 버린다.

■ 운문호 순환하는 20㎞ 장거리·6시간 걸려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제8코스의 중간 지점인 운문면 방음리 '방음동 새마을동산'에서 출발, 공암리 버스정류소까지 가는 이번 코스의 총 길이는 20㎞. 지금까지의 코스 가운데 가장 길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5시간, 휴식 등을 포함하면 6시간은 잡아야 한다.

새마을동산 앞에서 운문댐 방향으로 69번 지방도로를 따른다. 봄바람에 살랑대는 운문호 물비늘이 곱다. 35분쯤 갔을까. 왼쪽 언덕에 경북도민속자료 제90호인 고택(古宅) 운곡정사(雲谷精舍)가 있다. 조선 중기 학자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많은 공을 세운 취죽당(翠竹堂) 김응명(金應鳴)의 8대손인 운곡 김몽노(金蒙魯·1828~1884)의 생가다. 지금도 그 후손이 살고 있다. 그 옆의 원모재(遠慕齋)는 김응명과 그의 아들 김주를 모시는 재실이다. 홍매화 백매화 개나리 목련 등 봄꽃이 두 고택을 감싸고 있다. 뒤돌아서서 운문호를 바라보니 정면에 볼록한 개산(317.4m)이 눈에 든다.

운문댐 방향으로 이동한다. 마주 오는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반가운 인사를 건네준다. 호산 약간 못 미친 곳에서 아주머니들이 길이 1~1.5m짜리 참나무 둥치에 홈을 파서 표고버섯 파종을 하고 있다. 수몰지구 이주민들의 여러가지 생계 대책 가운데 하나가 표고버섯 재배다. 인건비와 종자구입비 등의 비용은 한국수자원공사 측이 지원해 준다고 한다. 올 봄에 파종하면 내년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


■ 조망 좋은 호산 정상 왕복 급경사길 조심

 
  망향정에서는 개산(왼쪽)과 호산이 좌우에 보인다.
볼록하게 솟은 호산으로 오르는 길은 예전에는 나발고개 내리막이 시작되기 직전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타고 들어가 곧바로 산행로로 진입하면 됐지만 지금은 막혔다. 할 수 없이 나발고개 내리막 포장도로를 타고 8분쯤 간다. 운문교 약 200m 못미친 오른쪽 공동묘지 옆 버섯농장 옆 길로 올라야 한다. 오르막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다.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면 호산 정상. 아담한 정상석을 지나 3분쯤 더 가면 무덤 터 옆 전망대다. 이곳이 '호랑이를 사랑한 처녀의 전설에 나오는 처녀의 무덤 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발아래 드러난 운문호의 풍광 만은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올랐던 길로 되돌아 내려서는 데는 15분쯤 걸린다. 묘지에서 막 도로로 합류할 즈음 눈앞에 멀리 보이는 억산 구만산 방향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억산 우측 구만산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그려진 능선 모양이 마치 미륵불이 누워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 신기하다. 개척단원 중 누군가 "와불(臥佛) 능선이다. 새로운 발견인데…"라고 외친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나발고개를 내려와 왼편으로 펼쳐 지는 풍경으로 와불을 확인 할 수 있다.
■ 운문면 대천리는 수몰지 주민 이주단지

 
  공암풍벽 능선의 가리봉에서 본 운문호 풍경.
운문교를 지나면 운문면 소재지인 대천리다. 이 마을은 수몰 주민들이 이주해 온 이주단지다. 원래의 운문면 소재지인 대천리는 동창천과 운문천이 만나는 개산 남쪽에 있었는데 수몰됐다. 이후 금천면 방지리의 3개 마을 중 상방지마을에 속했던 이곳에 이주단지가 건설된 것이다.

삼거리에서 우측 경주 방향 20번 국도를 탄다. 곧바로 왼쪽에 보이는 재실은 이모정(二慕亭).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의병장인 이모당(二慕堂) 박경전(朴慶傳)을 모신 밀양 박씨 집안의 사당이다. 완만한 오르막을 5분쯤 가면 운문댐. '운문호'라고 적힌 입석이 있고 댐 건너편에는 호산이 솟아 있다. 호랑이가 웅크린 채 호수를 내려다 보는 듯한 모습이다. 운문호 풍광을 굽어보면서 20분쯤 가면 문명중고 망향비와 망향정을 만난다. 수몰 이주민들이 호수를 바라보며 향수를 달래는 곳이다. 정자에는 수몰 전 마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대천리 순지리 서지리 공암리 방음리 오진리 지촌리 등 7개 마을이 전부 또는 일부 잠겼다. 망향정은 점심 식사를 하기에 좋은 장소다.

100m쯤 가면 갈림길. 왼쪽은 한내고개를 거쳐 경산으로 가는 길이다. 계속 직진하면 20분 후 개산 북쪽 자락을 지난다. '창말'로 불리는 이곳은 수몰 전 대천리의 곡식과 소금 등을 보관한 창고가 있던 곳. 댐이 만들어지기 전 대천리는 동창천과 운문천, 2개의 큰 물길이 합쳐지는 곳에 자리 잡아 물난리가 많이 났기 때문에 이곳에 따로 보관창고를 두었다고 한다.

■ 코스 막바지 공암풍벽 보며 감탄사 연발

 
  표고버섯 파종 작업 중인 운문면 주민들.
호수를 휘돌아가는 국도 20호선을 타고 50분쯤 완만한 오르막을 걷는다. 이 오르막이 정점에 달하는 고갯마루가 바로 이번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공암풍벽'으로 향하는 입구다.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난 산길을 5분쯤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가리봉(361m) 정상. 운문호와 주변 산들의 모습이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공암풍벽이 가장 잘 보이는 전망대까지는 내리막을 타고 15분쯤 더 가야한다. 무덤을 지나 공암풍벽 전망대에 서면 '아, 운문호 자락에 이런 절경이 있었던가'라며 입을 다물지 못할 경이로운 풍광이 펼쳐진다. 예천 회룡포나 안동 하회마을처럼 물돌이가 일어나는 곳이긴 하지만 물돌이 안쪽이 평탄한 그곳들과는 달리 공암풍벽은 이탈리아 반도처럼 툭 튀어나온 능선이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 좀 더 특별하다.

 
  운문교 주변에서 왼쪽(남서쪽)에 보이는 와불능선.
공암풍벽은 운문호 건설 이전,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근에서 소문난 명승지였다. 이미 그 당시에 절벽 밑 공암리에 케이블카 설치 움직임이 있었을 정도다. 지금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버려서 공암마을을 통과해 절벽 아래로 갈 수가 없게 됐다. 공암리 주민들의 아쉬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가을 풍광만큼은 전국 어느 명승지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전망대에서 100m만 더 가면 구멍 뚫린 바위가 보인다. 그것이 바로 '공암'이다. 옛날 전설에 따르면 공암풍벽 아래 곡천대 용굴에 살다가 승천하던 용이 꼬리로 바위를 내려쳐서 생긴 구멍이라고 전해진다. 이곳은 경주와 청도를 오가던 유일한 길목이었다. 소 한 마리가 거뜬히 통과했다고 한다. 다시 가리봉 정상을 거쳐 20번 국도로 복귀, 코스 종점인 공암마을 버스정류소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호랑이를 사랑한 처녀 이야기

호랑이를 사랑한 처녀의 전설이 있는 호산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걷다 보면 마치 '전설따라 삼천리'를 따라가는 착각이 들곤 한다. 발길 닿는 곳마다 전설이 없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코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설은 호산(虎山·일명 범뫼)에 전해 내려오는 '호랑이를 사랑한 처녀이야기'이다. 옛날 인근 골짜기에 단란한 가정이 있었다. 10대 후반의 아리따운 외동딸은 매일 저녁 숯 굽는 아버지와 밭일하는 어머니를 마중하러 동구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사라져 버렸다. 딸은 그 후 10년 넘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부모는 체념한 채 늙어갔다. 그런데 하루는 이 집에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서는 부부를 봉긋하게 솟은 앞산 정상부의 한 무덤 앞으로 데려갔다. 호랑이에게 납치됐던 딸의 무덤이었다. 그런데 처녀는 호랑이를 사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잔뜩 겁에 질렸으나 자신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먹이를 구해 온 호랑이의 정성에 감복해 결국 사랑에 빠졌다는 것. 동굴에서 살던 처녀는 세월이 흘러 결국 병에 걸렸다. 처녀는 호랑이에게 고향집이 보이는 높은 곳에 묻어 줄 것과 부모님에게 소식을 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호랑이가 부모를 데리고 간 것이다. 사람들은 이후 이 산 이름을 호산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 교통편

- 종착지 공암리서 대천 개인택시 이용하길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200원. 50분 소요. 언양버스터미널에서 동곡 경유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방음리 새마을동산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운행. 코스 종착지인 공암마을에서는 대천리나 동곡버스터미널(054-372-3881)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에 드물게 있다. 오후 5시10분 전후와 7시10분 등에 있는데 이 경우 대천리에서 언양행 막차(오후 5시10분 출발)를 타기 힘들다. 따라서 늦어도 오후 4시20분 이전에는 완주 한 후 개인택시(054-371-6997)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1만5000원 안팎. 자가용 이용시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를 타고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69번 지방도를 타고 운문령을 넘어 청도 방향으로 가면 방음리 새마을동산 앞에 닿는다. 차량 2대를 이용해 종점인 공암마을에 1대를 먼저 주차하면 편하다.


# 댐이 앗아간 것들

- 곡천대·용굴 등 명소까지 삼킨 운문호

 
  운문댐 건설로 수몰된 7개 마을 주민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지은 망향정.
개발은 늘 상실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를 일컬어 '개발의 그림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인근 도시들의 상수도취수원, 홍수조절, 수력발전 등 현실적 기능을 목표로 지난 1996년 완공된 운문호는 영남알프스 북쪽 자락에 아름다운 호수가 됐지만 수몰지구에서 살아오던 주민들에게는 그에 못지않은 상실의 아픔을 남겼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삶의 터전이던 고향마을과 고향집, 어린 시절 뛰어놀던 그림 같은 놀이터와 청운의 뜻을 펼치기 위해 공부하던 모교도 모두 물 속에 잠겨버렸다. 이번 코스를 걷다 보면 운문호 건설로 수몰된 7개 마을 주민들이 실향의 아픔을 달래는 망향정(望鄕亭)을 지난다. 실향민들은 이곳에서 운문호를 바라보며 설움을 달랜다. 특히 망향정 앞에 있는 '망운교비(望雲校碑)'의 내용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 아쉬움을 십 분의 일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1932년 개교해서 50년 만인 1982년 폐교된 운문국민학교 제7회 동기생들이 건립한 망운교비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말인 '수구초심(首丘初心) 망운지정(望雲之情)'이 새겨져 있다.

이뿐일까. 저수지 축조는 청도 제일의 풍광을 자랑했던 공암풍벽의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운문면 공암리 하수호(66·청도군 이장협의회장) 이장은 "옛날 경주·청도 지방의 선비들이 시류를 논하고 풍류를 즐겼다는 곡천대, 절벽에서 돌을 던져 넣으면 10여 분 동안 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깊었던 용굴, 공룡발자국, 옛날 신라 때 장육산에서 무술 연마를 하던 여섯 장군이 말을 탄 흔적이라는 전설이 서린 바위의 말발굽 자국 등도 모두 수몰됐으니 그 아쉬움을 어떻게 말로 다할까"라며 옛일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마을 북쪽의 왕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통일신라 말기에 인근에서 후백제 견훤군과 전투에서 패한 후 추격군을 피해 도주했던 길목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뭔가 굵직한 물건을 찾았거나 대물급 물고기를 잡았을 때 '왕건이 잡았다'는 말을 하는데 아마도 왕건과 왕재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근 최고의 경승지였던 공암풍벽은 이제 상수원보호구역에 묶여 버려서 마을을 통해서는 가까이 가 볼 수 없는 곳이다. 가리봉 능선을 통해서나마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 하나, 공암풍벽으로 연결된 기다란 능선에 있는 '가리봉'이란 이름에 대해 공암리 주민들은 생소해한다. 주민들은 오히려 이 봉우리에 옛날부터 불이 자주 났다는 뜻에서 불 화(火)자를 써서 '화고난'이라고 부르고 있다.


# 운문면은 '별들의 고향'… 윤필용 장군 등 다수 배출

운문호가 자리 잡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은 '별들의 고향'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별'이란 다름 아닌 국군 장성급, 즉 장군을 일컫는 비유어다. 청도군 자체가 경북 지역에서는 장군이 많이 배출되기로 유명하지만 그중에서 운문면 출신자가 특히 많다는 것이다.

우선 대표적인 사람이 지난해 작고한 '풍운의 군인' 윤필용 장군이다. 1961년 군사정변 이후부터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의 특별한 신임으로 의장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이후 국군방첩부대장과 수경사령관(소장) 등을 역임했지만 1973년 유명한 '윤필용 사건'에 휘말린 장본인이다. 윤 씨의 고향이 바로 이번 코스의 종점이자 공암풍벽에 둘러싸인 마을인 공암리다.

제3사관학교 1기생으로 비육사 출신 최초의 장군, 최초의 대장 등의 기록을 세운 박영하 전 2군 사령관 역시 청도 운문면에서 태어났다. 오진리 출신인 박 장군은 둘레길 제7, 8코스에서 거쳤던 운문사 입구 신원삼거리 부근의 문명초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영원한 빨간마후라'로 알려진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 역시 운문면이 배출한 장군이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동영상 http://www.kookje.co.kr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운곡정사 :조선 중기 학자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많은 공을 세운 취죽당(翠竹堂) 김응명(金應鳴)의 8대손인 운곡 김몽노(金蒙魯·1828~1884)의 생가다. 지금도 그 후손이 살고 있다. 그 옆의 원모재(遠慕齋)는 김응명과 그의 아들 김주를 모시는 재실이다

원모재 뒤에서 본 운문댐

호산 전망대 정면으로 가야 할 길과 개산.


이모정임진왜란때 의병장 제우당 박경전을 위한 사당으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그의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부모에 대한 효심을 옅볼 수 있다.원래는 순지리뒤에 세워져 있었는데 192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이 댐 아래가 운문댐이 생기기 이전에는 건도랑이란 지명으로 불렸다. 그때는 이곳이 운문면과 금천면의 경계로 대천리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대천리 옛어른의 말을 빌리자면 건도랑, 즉 호산과 종지봉 아래인 동창전에는 도적들이 우글우글 그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 돈을 강탈당하고 목숨만 겨우 부지하여 통과를 하였는데 도적을 피해 찾아 올라가는 곳이 호산과 시루봉사이의 나발고개 였다 . 나발고개로 올라가는 골짜기가 도둑놈골이라 부르며 지금의 도로가 넘어 다니는 재가 아니고 호산쪽으로 독립가옥 뒤가 옛날의 나발고개이다.

운문댐을 걷다 보면 재미 있는 이야기가 한 토막 있어 소개를 한다. 지금은 어실마을이 운문댐에 잠겼지만 어실 마을뒷산을 어실산으로 불렸다. 그래서 어실 어른이 총산에 가서 총을 들고 개산에 올라가 사냥개를 몰고 호산에 있는 호랑이를 잡으러 갔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 오는데 운문댐 망향정 주위로 어실산, 총산, 개산, 범산이 포진을 하고 있다. 개산과 호산은 풍수적으로 보면 호랑이는 개를 잡아 먹을라고 웅크리며 노려보고 개는 36개 도망을 칠려고 호랑이를 등지고 도망갈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운문댐을 휘감아 도는 20번 국도에서 본 공암풍벽의 모습으로 흡사 한마기의 용이 호수에 물을 마시러 내려오는 모습을 하고 있다. 끝 봉우리를 공암마을에서는 용암이라 부르고 있다.


공암풍벽을 보러가는 능선상에 만나는 가리봉 정상으로 운문댐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공암풍벽의 모습으로 지금은 수몰되어 현재의 모습은 마을에서 보기가 불가능하다. 공암풍벽의 끝 부분에 돌아가는 곳이 곡천대로 불리는 곳이다. 이곡천대 아래 용굴이 뚫여있었다는데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한다.여기 굴에다 명주실 한타레를 풀면 2km밑 웅덩인 마당수에 그 실타레가 나왔다하는 전설과 학굴이 있어 항상 학이 노닐었다하여 학소대라 부른다.

공암이란 이름을 얻게 된 바위로 바위와 바위사에 길이 나있다. 마을에서는 굴바위골 창배기로 불리며 도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경주 산내와 청도로 오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이고개를 넘지 못하면 가는 길이 없었다 . 곡천대에 아래 용굴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면서 꼬리로 내리쳐 공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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