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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안동이천동석불상, 제비원석불, 제비원 미륵불로 불리는 오뚝이를 닮은 독특한 마애불.


이번 안동여행에서 전체 높이가 12.39m인 대불을 보고 왔습니다. 안동 ‘제비원 석불’이라고 불리는 안동 이천동 석불상입니다. 제비원 석불은 서쪽을 보고 있으며 높은 바위면에다 부처님의 몸을 얕게 새겼으며 그 위에 따로 불두를 조각하여 올린 마애불의 형태라하겠습니다. 현재 이천동 석불상은 불두의 뒷부분은 수직으로 잘려나간 자연석이며 머리 가운데에 육계를 큼지막하게 만들었는데 밑에서 보면 확인하기 힘들지만 얼굴 부분과 또 다른 돌을 다듬어 얹었습니다.

 





안동이천동석불상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산 2

안동이천동석불상 전화:054-840-6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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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를 보면 얼굴은 부풀어 오른 듯 풍만하며 눈썹 사이에 백호를 양각하였고 실눈을 뜬 듯 좁으면서 길게 표현한 눈 위에 반원형의 눈썹을 짙게 나타내었습니다. 우뚝 솟은 코와 두툼하고 다부져 보이는 입술은 옅을 미소를 머금었으며 전체적으로 장중 근엄한 인상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목에는 삼도를 새겼고 바위에 직선으로 얕게 새긴 몸체는 불두의 근엄함보다 아주 단순한 느낌입니다.





몸체에 걸친 법의는 양어깨를 감싼 통견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왼쪽 어깨의 옷 주름과 오른쪽의 법의 자락이 서로 교차하여 접히고 가슴 밑으로 속옷의 띠가 보입니다. 양손은 모두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를 맞대어 오른손은 배에, 왼손은 가슴에 댄 입상이며 발밑에는 큰 연꽃 대좌를 음각하였습니다.

 




이천동 석불상의 구조를 보면 석불상을 새긴 바위 앞쪽과 오른쪽에도 높은 암벽이 막아 ‘ㄷ’자 형태의 구조입니다. 이는 석굴 형태로 17세기 초 안동읍지인 ‘영가지’에 불상 위에 기와지붕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불두 위로 닫집이 있었다 합니다. 지금도 이들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불상 어깨에 남아 있습니다,

 




석불 앞 바위 끝에는 연미사 중수기 비석이 현재 있으며 634년인 선덕여왕 3년에 명덕이 창건하였다 합니다. 부처의 몸체 위에다 부처 머리를 따로 만들어 올린 마애 석불상을 저는 경주 남산의 약수계곡 마애입불상만 알고 있었습니다. 17m의 거대한 불신에 불두는 증발하여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이리 온전한 형태의석불상인 이천동 석불상이 남아 있는 것을 이제야 보게 되어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이때까지 ‘제비원 석불’로만 알았는데 공식명칭은 안동이천동석불상으로 불리는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개미가 코끼리를 보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야만 얼마나 큰지 코끼리 전체를 다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이천동석불상도 마찬가지로 불상 바로 밑에서는 온전한 제비원의 석불을 한눈에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연미사 바깥으로 돌아 나와 공원에서 봐야만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이천동석불상 전체를 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애의 불신과 불두를 따로 조합한 형태는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에 아주 유행했던 양식으로 안동 이천동 석불상도 이 시기에 조각된 고려 시대 석불상이며 1963년 1월에 보물 제11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안동 이천동 석불상 뒤편의 암벽 위에 단층 기단의 삼층석탑이 남아 있으며 고려 시대 석탑으로 보고 있습니다. 탑의 높이는 3.5m이며 이는 석불상 뒤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복원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 때문에 현재 기단부와 탑신부의 구성과 비례 또한, 맞지 않아 부조화 서럽다 합니다. 아쉬운 점은 삼층석탑을 볼 수 있게 올라가는 길이 없는 건지 내가 찾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천동 석불상 옆에서 먼발치로 보고 왔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앞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이천동 석불상을 왜 제비원 미륵불, 제비원 석불이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미륵불이 있는 앞 넓은 공원이 오래전에 원(院)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원은 요즘으로 치면 여관으로 여행객이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교통의 중요한 길목에는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관리의 숙소로 사찰을 숙소인 원으로 국가에서 지정해 사용하게 했는데 연구사도 그중 한곳이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태산준령인 험준한 소백산의 죽령이나 나는 새도 쉬어 간다는 문경의 새재로 이어져 그 길목인 이곳 연비원에서 피로를 풀며 휴식을 취했다 합니다. 연(燕)은 ‘제비연자’로 제비에 원자가 붙어 제비원이 되었으며 왜 제비원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곳이 제비원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게 이천동 석불상 때문입니다.

 




석불상은 ‘ㄷ'자 형태의 암벽으로 둘러싸였으며 그 위에다 석불상을 보호하는 기와지붕을 덮었다고 했습니다. 그 지붕을 덮은 모습이 제비와 비슷했는지 ’연자루(燕子樓)‘라 했으며 그 끝에다 요사를 짓고 제비의 꼬리를 뜻하는 연미사(燕尾舍)라 불렀습니다. 또한, 석불 아래 법당은 제비부리를 뜻하는 연구사라 했습니다.

 




그러다 1934년경 연미사 자리에 새로 절을 세우고 연미사(燕尾寺)라 개칭하여 오르게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석불을 보호하는 기와지붕을 올렸던 게 제비원의 시초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에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정책으로 연구사는 폐사되었고 이천동 석불만 전설이 되어 남게 되었으며 근대에 와서 연미사기 지어졌습니다.





이천동 석불상이 불두와 불신이 분리된 데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로 온 이여송이 칼로 내려쳤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여송은 전란이 끝나자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관과 함께 조선에 큰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전국 명당의 혈을 끊으려 다녔습니다. 이여송이 제비원 앞에 이르자 갑자기 타고 다니던 말의 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여송은 주위에 서 있는 석불을 발견하고 단칼에 석불의 목을 내리치자 불두는 땅에 떨어졌고 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합니다. 지나가던 스님이 이를 보고 다시 불두를 제자리에 올려 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석불의 가슴에는 그 당시 흘렸던 핏자국과 왼쪽 어깨에는 이여송이 타고 온 말 발굽 자국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제비원은 민속신앙인 성주풀이의 본향이라 합니다. 성주풀이 소리에 ’성주 본향이 어디 에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러라 사설로 알 수 있듯이 이곳 제비원 석불이 매우 뜻깊은 곳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불경스럽지만 제가 만나본 제비원 석불은 꼭 오뚝이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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