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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한국은행본관 한국화폐박물관)사진촬영이 안된다며 제지 당했던 올초 한국은행 본관건물임다.

 

제 생각에는 국내에서 가장 돈이 많은 곳이 ㅋㅋㅋ 한국은행 아닌가요. 마구마구 찍어내는 곳이니까요. 그런 은행답게 역시 옛 한국은행 건물은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합니다. 일제 강점기인 1907년에 일본인 건축가 다쓰노 깅코에 의해 설계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912년 완공이 되었습니다.

 

 

준공과 함께 1911년 8월에 조선총독부 직속 금융기관이 된 조선은행 본점 건물로 사용이 되다가 광복 후인 1950년 6월에 대한민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설립되면서 본점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건물의 형태를 보면 지상3층에 지하 1층의 철근콘크리트와 조적의 혼합구조로 지어졌고 건물외벽에는 화강석을 다듬어 붙였습니다. 지붕에는 철골조를 세워 동판을 씌웠고 ‘H'자형 평면으로 건물의 좌우 대칭을 이루어 그 양쪽 끝 모서리에는 원형의 돔을 올렸습니다.

 

 

건물은 프랑스 성관풍의 르네상스식 외관을 따라 우아하면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내부가 소실 된 것을 휴전이 된 뒤인 1958년에 복구를 하여 한국은행 본관 건물로 다시 사용을 하였습니다.

 

 

본관건물이 협소하여 1987년 건물 뒤쪽으로 한국은행 신관 건물을 신축하면서 현재의 외관으로 복원을 하여 2001년도에 일부 내부를 개조 한 후 화폐금융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912년 건축물로 사적 제280호로 지정이 되었고 관리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옛 본관 건물은 옛 서울역 건물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 건축물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서울역에 내려 어딜 가볼까 하면서 남대문과 함께 이른 아침에 찾았던 서울은행 옛 본관건물 ㅎㅎ 너무 이른 시간인지 아마 직장인 출근 시간쯤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하며 왔다갔다하니 경비를 쓰는 분이 이 건물은 사진을 찍으면 안됩니다 하면서 저지를 하였습니다. 앵, 문화재로 관리가 되는데 사진 촬영이 안된다는 것은 너무한 처사다 싶어 정문에 보지 못한 ’촬영금지‘라는 경고문이 있나 싶어 찾아보았는데 보지를 못했습니다.

 

 

사진도 못 찍을 정도의 국가중요시설물이라면 경비아저씨가 아닌 군인이 건물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ㅎㅎ 길을 가다 쇼윈도에 비친 내얼굴을 다시 함 보게되었습니다. 내 인상이 꼭 테러범 인상인가하면서요.(참고:옛 한국은행 본관 건물앞 해설판)

 

◆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관람안내

★화요일~일요일 오전10시부터~오후5시까지 관람.

휴관일:월요일. 12월29일~다음해 1월2일, 설연휴, 추석연휴

입장료: 무료

휠체어 이용 가능(02-759-4881~2)

 너무 이른 시간이라 화폐박물관 내부는 보지를 못하고 겉 모습만 담았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찬찬히 서울 구경을 하고 싶습니다.

 

옛 서울은행 본관 건물 담았던 사진이니 함 보세요. 때는 ㅎㅎ 아마 올해 초 서울시청 썰매장 철거할때 였던 것 같습니다  

 

 

 

 

 

 

 

 

 

 

 

 

 

 

 

 

 

2014/01/12 - (서울여행/구서울역사)인사성 바른 청년이 수문장인 구 서울역사 구경하고 왔습니다.

 

2014/03/18 - (서울맛집/중구맛집/숭례문맛집)남대문시장 맛집 할머니 김밥. 간편하게 한끼 해결하는 최고 음식은 김밥과 우동, 할머니 김밥 추천이요

 

2014/03/27 - (서울여행/중구여행)남대문시장 숭례문. 국보1호 숭례문 화재후 복원과정 부실 논란에 큰 상처를 입다. 숭례문여행

 

2014/04/25 - (서울맛집/남대문시장맛집)남대문과 서울역 맛집 전주식당 갈치조림. 무한도전 촬영팀 유재석도 반한 맛.

 

2014/05/10 - (서울여행/구서울역)야경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구 서울역을 보고 화려함에 깜짝 놀랬습니다. 구 서울역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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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구서울역)야경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구 서울역을 보고 화려함에 깜짝 놀랬습니다.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에는 서울역이 있습니다. 국내 철도의 중심으로 서울역에서 전국으로 대동맥이 연결 됩니다. 서울역은 구 서울역사와 신서울역사가 있습니다. 현재 서울역이야 시민과 화물의 안전한 수송을 담당하며 오늘도 국내 최고의 교통수단으로 인정을합니다.



 




그럼 구 서울역을 함 볼까요?. 서울역의 전신은 경성역입니다. 경성역은 1922년 착공되어 3년 후인 1925년 9월에 완공되엇습니다. 도쿄대학의 쓰커모토 야스시에 의해 설계가 되었는데 일제 강점기 주권도 빼앗긴 뒤라 조선총독부 철도국 공무과 건축계에서 담당을 하였습니다.



 




건축규모는 대지 면적이 약 7만평에 지하 1층, 지상2층 규모의 건물로 그 당시 건축물로서는 특이한 형태로 설계 건축되어 국내에서 진기한 건축물로 여겼습니다. 도쿄역에 이어 동양 제2역으로 경성역이 이름이 오를 정도로 대단한 규모였다합니다.



 




1층은 매표소 중앙홀, 조선인과 일본인이 사용하던 대합실이 각각 나누어져 있었고 귀빈예비실, 귀빈실, 역장실등이 있었다면 2층에는 식당과 사무실, 지하층에는 역무실이 있었다합니다.


 

 




철근콘크리트 벽돌조로 지어진 구 서울역은 중앙에 내부로 자연광선을 끌어 들이는 비잔틴 풍의 돔을 올려 우아함과 섬세함을 주었다. 구 서울역은 르네상스 풍의 절충식 건물로 중앙돔을 두고 소첨탑 좌우로 건물을 올려 스위스의 루체른 역사를 본떠 설계를 하였습니다.

 




 




구 서울 역사는 90세가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수탈과 핍박의 세월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건물중 하나로 2004년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안식을 위해 신역사에 자리를 물려주고 1925년 경성역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구 서울역사는 문화재청의 관리하에 사적 제284호로 지정 보호와 관리되고 있습니다.(워키백과 일부 참고)


 

 




 




 




 




 




 




 




 




남대문(숭례문)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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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고속버스터미널역 지역정보센터)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역 지역정보센터에서 전국 여행지 정보를 한자리에 만날수 있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필자의 취미는 등산과 여행입니다. 매주 전국의 여행지와 산을 찾아다니는데 그때마다 지방의 여행지 정보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아니면 여행지의 책을 구입한다던지 또는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정보센터에서 아쉽지만 그 지역의 정보를 구할 수 있어도 원하는 정보를 다 얻을 수 없어 항상 여행 정보에 목말라 했습니다.


 



이번에 공주 여행을 1박2일 다녀 왔습니다. 막상 유명한 공주여행도 가보고 싶은 여행지의 정보는 인터넷등에서 겨우 공산성, 무령왕릉, 마곡사와 갑사 그리고 국립공원의 계룡산 정도의 유명 여행지 정보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여행 정보에 목말라 있던 필자에게 깜짝 놀랄 정보를 서울의 지인에게 얻었습니다. 


 



전국 244개 지자체인 도,시,군에서 공동 출자를 하여 대한민국의 여행지를 속속들이 전시하고 전국의 지자체에서 생산하는 특산품을 전시 판매하는 곳이 있다며 여행정보는 아마 전국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여행정보는 모두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을 과감히 돌려 서울 강남고속터미널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오~우 부산 촌놈도 너무 찾기가 쉬웠습니다.  지하철 7호선 강남고속터미널역 4번 출구 지하 1,2층에 위치를 하고 전화번호는 02-3496-2200~1.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행정안전부의 '한국지역진흥재단 대한민국지역홍보센터'로 여행정보와 특산품 정보도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누구나 들러 쉴수 있는 공간입니다. 봄이라 집안을 화사하게 꾸밀 수 있는 꽃씨도 심어 볼 수 있으며 전시장 입구에는 의자를 만들어 두어 다리품을 팔던 여행자의 두다리도 푹 쉬었습니다.   





역시 4월은 뭐니뭐니 해도 전국의 꽃축제 정보가 중요합니다. 4월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전국의 꽃 축제 여행지가 총 망라해 있어 이곳에 오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샘솟습니다. 아직 꽃 구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5월에는 전라도에서 시작으로 전국 명산에 철쪽제인 꽃축제가 열립니다. 꼭 지역정보포털의 도움을 받아 꽃 여행지를 찾아 도전하고 싶습니다. 









전시장 입구에는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마음놓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의자에서 누구나 앉아 쉴 수 있습니다. 














지하 2층에 있는 지역홍보센터에는 전국 244개 지자체에서 생산하는 특산물을 전시하는 곳입니다. 물론 판매도 함께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지역 특산품이 무엇인지 손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등  익히 듣고 알고 있는 특산품을 한자리에서 만나고 볼 수 있어 부산 사람인 필자는 부산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이 궁금하여 찾아 보았습니다. 











부산과 이웃한 울산 광역시 특산물도 있습니다. 서생배와 봉계 한우, 자연산 돌미역등 자주 접했던 음식등이 특산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청정의 오지라 부르는 강원도에도 많은 특산품이 생산되어 놀랬습니다. 모두 우리와 밀접한 건강에 관련된 제품들로 감자바우의 강원도만 들어가도 믿음이가는  제품들입니다.





내고향인 경상북도 특산물은 신라때의 금관도 보입니다. 안동의 하회탈과 안동소주등 보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부산에는 역시 신발입니다. 70~80년에 부산은 운동화 공화국일 정도로 신발회사가 많았습니다. 사양산업이라는 질시속에서도 꾸준하게 고부가로 승부를 걸어 부산의 튼튼한 버팀목인 운동화. 







조선시대때 임금님에게 진상을 할 정도로 품질이 우수한 기장 미역과 멸치, 구운 고등어를 고갈비로 부르며 가벼운 주머니를 든든하게 해준 고등어도 부산의 특산물에 당당히 올라 있습니다. 필자가 부산 사람이라 그런지 더욱 애정이 갑니다. 




전국의 여행지와 특산물 정보를 한자리에 만날 수 있는 대한민국지역홍보센터에서 많은 여행 정보를 보고 얻고하고 돌아 왔습니다.  여행정보를 위해서 자주 들러 보아야 겠습니다. 
























































































상호:한국지역진흥재단 대한민국여행정보센터

장소:서울서초구 신반포로 176, 지하철 7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 4번출구 지하 1,2층

전화:02-3496-2200~1

지역홍보센터 홈페이지:http://www.korealoca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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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중구남대문여행)밤의 조명으로 야경이 더 아름다운 숭례문를 보고 왔습니다.


 남대문인 숭례문은 국보 제1호입니다. 서울 특별시 중구 세종로 40에 위치를 하며 조선시대 서울도성의 4대문중 정문으로 남쪽에 있다하여 남대문이라 합니다. 월래는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었습니다만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으로 인해 숭례문의 2층 누각이 붕괴하고 전소되어 전 국민을 공황 상태로 몰아 넣었습니다.





숭례문은 1395년 인 태조4년에 짓기 시작하여 3년 후인 139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방화 이전의 건물은 1447년 세종 29년에 중수하였고 성종때인 1479년 다시 한번 큰 공사를 하게 됩니다.


 





그 후 6.25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남대문도 파괴 되고하여 1961년에서 1963년까지 해체를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그 후 방화로 인한 소실로 숭례문은 전국민의 염원을 담고 5년2개월 동안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거쳐 2013년 5월에 준공되었습니다.





준공과 함께 부실 논란에 휩싸인 국보 제 1호 숭례문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아픔의 건축물입니다. 숭례문은 돌을 깎아 석축을 쌓은 뒤 그 가운데 무지개 모양인 홍예문을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는 2층의 누각을 올렸는데 측면5칸, 옆면 2칸의 목재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보면 우진각 지붕(사다리 꼴 형태)입니다. 지붕유설을 보면 숭례문 현판 글씨는 양녕대군이 썼고 건축된 연대를 정확하게 알수있는 건죽물로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대문인 숭례문은 낮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은은한 조명을 받은 밤의 숭례문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야경이 아름다운 숭례문을 보기 위해 찾아갔습니다만 방화사건 이후부터 밤에는 가까이 갈 수 없게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멀리서라도 볼 수 있는 남대문의 모습을 보고 야경 사진을 담아 보았습니다.


 

























낮에 본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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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중구여행)남대문시장 숭례문. 국보1호 숭례문 화재후 부실 논란에 큰 상처


연일 매스컴에서 터져 나오는 문화재에 관한 뉴스는 숭례문이야기입니다. 2008년 2월10일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날입니다. 누군가의 방화로 인해 대한민국의 상징인 국보1호 숭례문(남대문)이 불타고 온 국민은 분노하며 울었습니다.





그 후 숭례문 복원공사에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국보 1호의 명예회복을 위해 발 벗고 나서 숭례문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국보 1호를 바라보는 국민의 하나같은 염원을 짓밟아 버린 사건이 터졌습니다.





숭례문 부실 논란과 우리 소나무 금강송이 빼 돌려졌다는 의혹이었습니다. 드디어 어제(26일) 숭례문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금강송 4주와 국민 기증목 154본을 빼돌렸다는 사실에 지금 숭례문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은 2008년 숭례문이 쓰러질 때 보다도 더 참담함을 느낌입니다.





온 국민의 하나같은 염원을 외면해 버린 신○○대목장, 우리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그릇된 판단으로 수천년을 후손들에게 이어가야 할 우리 문화재가 그것도 국보1호인 숭례문에 또 한번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제 만신창이 국보1호 숭례문은 어찌해야하나요? 참 황당할 따름입니다.











언론의 중심에 하루도 비껴갈 날이 없었던 숭례문을 지난 3월7일 이른 아침 서울역에 도착하여 시간의 여유가 생겨 구경을 갔습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을 몇 번 본 게 고작이고 더군다나 화재로 소실 된 뒤는 처음이라 찾아가는 발걸음은 숭례문을 본다는 기쁨에 가벼웠습니다.





숭례문 앞에 가니 경비를 하시는 분이 9시부터 관람이 된다 하였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좀 일찍 보면 안됩니까 하니 ‘절대 안된다’며 화재 이후 엄청 경비가 강화 된 것 같습니다.








경비실 입구에서 쳐다보고 사진도 찍고 하며 남대문 시장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서울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 숭례문 앞을 지나는데 그때가 9시였습니다. 그래서 얼렁 구경 할 욕심으로 뛰어 다니며 보았는데 숭례문 포스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야 하게 되었습니다. 안성마춤이라 해야 하나요. 때마침 숭례문 부실 중간발표를 보게 되어 참담한 기분으로 숭례문 포스팅을 합니다.




  







한국전쟁때 총탄 흔적



서울에는 4대문이 있습니다.돈의문, 숙정문, 흥인지문 그리고 남대문으로 불리는 숭례문입니다. 숭례문은 1962년 12월20일 대한민국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한양도성의 남문으로 세워졌고 그 후 세종 30년(1448년), 성종 10년(1479년)과 조선 말기인 고종에 와서 대대적인 수리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 성문은 매일 밤 인정인 10시 무렵에 성문을 닫아 걸고 다음날 아침 파루인 4시에 굳게 닫았던 성문을 열었습니다. 1980년 초까지 있던 통행금지와 같은 것으로 이때는 성문의 출입을 막았고 문루에 종을 달아 시간을 알렸다 합니다.








숭례문의 건축기법을 보면 석축위에 중층누각을 세웠는데 장식이 간결하고 내부구조가 견실하며 조선 초기의 건축 특징과 사료적 가치가 뛰어나다하겠습니다. 한일 늑약이후 1907~1908년 일본의 황태자가 방한하여 "대일본 제국의 황태자가 머리를 숙여 문루를 통과할 수 없다"하여 왜인의 자행으로 숭례문 좌우의 성곽이 철거 되어 도로가 생겼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금도 성곽의 석축을 보면 그 당시 총에 맞았던 탄흔의 흔적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숭례문을 해체보수하며 전쟁의 상처를 씻겨 오늘에 이르다가 2008년에 얼빠진 사람의 방화로 인해 소실된 것을 2013년 5월에 좌우 성곽과 함께 복원을 완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는 화재로 국보1호를 잃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지봉유설에 따르면 숭례문 현액은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의 글씨고 성곽사이에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정면5칸 측면2칸의 중층건물로 다포형식의 건물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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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중구여행)옛 서울 청사.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이 빈말이 아닌 대단한 서울의 중심 서울 옛 청사를 구경하다. 


  옛말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부산이 연고지라 서울에 찾아가는 것은 1년에 한 번도 올라가기 힘듭니다. 이번에 실로 오랜만에 서울행을 감행하여 너무 이른 시간이라 숭례문과 옛 서울청사, 한국은행 외관 등을 둘러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오래전에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서울을 오르내렸는데 그 당시 숭례문과 서울시청이 이리가까이 있다고는 생각을 못하였습니다. 숭례문에는 여러 길이 갈라지는데 걸어 다니다 보니 멀리 옛 서울시청 건물 같은 게 보여 “어 저기가 시청인가” 하며 여행 배낭을 메고 쫄래쫄래 걸어 가 보았습니다.

 

 

 

 

서울 시청 앞 광장과 옛 시청건물이 맞았습니다. 고 건축물도 꼭 챙겨 보는 입장이지만 근대 건축물 또한 있다면 가는 걸음을 멈추고 보고가는 입장이라 이번기회에 옛 서울시청 청사 건물을 보게 된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부산에도 많은 근대 건물이 남아 있었지만 일제 잔재라 하여 모두 헐어내고 새로 삐까번쩍한 건물로 모습을 바꾸었고 바꾸고 있습니다. 지난 3월7일 아침 옛 서울청사 앞 풍경은 이른 시간인데도 공사소음으로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지난겨울 동안 서울광장이 썰매장으로 운영되던 것을 하필 다른 날 다 두고 이날 철거를 하였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서울 시청을 부푼 마음을 안고 구경 할려고 한 내 마음은 중장비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고 옛 서울청사 사진을 정면에서 찍고 싶은 마음은 접어야 했습니다.

 

 

 

 

사진을 잘 찍지도 못하지만 찍을 만한 곳은 공사 현장이라 할 수 없이 대충 담고 눈 팅만 하고 왔습니다. 서울시 옛 청사 건물은 일제 강점기인 1926년 경성부 청사로 세워졋습니다. 해방 후에는 서울특벽시 시청사로 사용을 하였고 지금은 뒤편의 새로운 청사에 자리를 내 주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도서관과 전시관, 역사관으로 꾸며져 서울시민의 문화 공간이 되었습니다.

 

 

 

 

서울시 옛 청사는 등록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고 건물을 보면 르네상스 양식의 형식을 갖추었고 화려한 장식성을 배제한 평범한 외관 등에서 알수있듯이 역사주의 건축 양식에서 근대주의 건축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성격의 건물이라 ‘안내판’은 표시하고 있습니다.

 

 

 

다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멋진 서울 옛 청사를 내부와 함께 담아 보고 싶습니다. 서울 옛 청사에 걸린 단재 신채효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란 글귀가 이날은 유난히 더 크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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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구서울역사)인사성 바른 청년이 수문장인 구 서울역사 구경하고 왔습니다.


지방에서 서울을 오기위해서는 반드시 거치는 곳 중 한 곳이 서울역입니다. 지금이야 새로 신축한 서울역 건물이 승객을 맞고 있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서울역사는 중후한 멋을 지닌 건물이었습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철로가 깔린 것은 경인선이지만 부산에서 서울을 지나 신의주를 거쳐 중국까지 이어진 철길은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를 수탈할 목적으로 선로를 깔았습니다. 엄청 난 우리 농광산물을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그 당시 세웠던 서울역사 건물로 우리 민족이 당한 수난을 고스란히 지켜본 건물입니다. 구 서울역사를 보존함으로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후세에도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주말에 부산에서 밤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습니다. 서울에 자주 올라 갈 일은 없지만 갈 때마다 그래도 비행기 보다는 꼭 기차를 이용하고 싶었습니다. 기차는 마음속에서부터 무엇인가 추억을 느끼게 합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칙~폭 칙~폭 칙칙폭포 칙칙폭포” 하며 달려가는 기차의 모습이 아련한 나의 추억 같아 그런 가 봅니다. 예전에는 저녁에 출발하는 비둘기열차를 타고 올라가면 아침에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 3시간이면 고속철도(KTX)를 타고 서울에서 누구를 만나 볼 수 있는 그런 세상입니다. 옛 추억을 생각하며 밤 11시에 출발하는 무궁화를 타고 올라갑니다. 새벽에 도착하여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아침에 부러 찾아가 구경을 한 구 서울역사, 근대물인 영화나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서울역사의 모습을 정말로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철도의 역사는 대한제국때인 1900년 서대문과 인천의 재물포를 운행하는 경인철도가 우리나라 철도의 효시입니다. 그 당시는 남대문역사로 출발을 하여 구 서울역사는 1925년 르네상스풍의 절충식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서울역사를 보면 중앙돔과 소첨탑 좌우로 양날개의 모습이 특징인 건축물로 스위스의 루체른역사를 본떠 만들었다합니다. 역 내부를 보면 1층에는 중앙홀 좌우로 대합실이 있었다합니다. 





그 당시 분주함의 서울역사가 그려집니다. 2층에는 서양식 레스토랑이 있었다하니 요즘의 서울역과 별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무원의 사무실도 함께 있었다합니다.





지금 구 서울역사는 역동의 세월을 달려온 만큼 2004년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안식을 위해 1925년 건설당시의 모습으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전시와 공연,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시민과 함께 달려온 서울역사의 기능을 충실하고자 소통의 공간 되고 있습니다. 구 서울역사는 사적제 284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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