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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718> 제7코스 : 청도 삼계리 나선폭포 ~ 운문사

개울 건너 솔밭길 지나 아, 벌써! 운문사


 
'명산(名山)에 대찰(大刹)'이라고 했던가. 영남알프스에는 그 넓고 깊은 자락에 어울릴 만큼이나 이름난 천년고찰들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특히 양산 통도사, 밀양 표충사, 청도 운문사는 영남알프스를 대표하는 3대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이번 주에 걷게 되는 제7코스는 이 가운데 하나인 청도 운문사(雲門寺)를 찾아가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양바위 앞 운문천을 건너고 있다. 왼쪽의 암봉은 복호산이다. 운문사 가는 길은 높낮이 없는 쉬운 길 . 그래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갈 수 있다.
'운문사'라는 이름이 전해주는 '울림'은 결코 간단치 않다. 한 신승이 진흥왕 21년(560년) 대작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절은 원광법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일연 스님 등 우리 역사에 커다란 자취을 남긴 스님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또 현재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승가대학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200여 명의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부처님의 법과 진리를 터득하고, 나아가 계도중생의 뜻을 펼치기 위해 일과 공부를 구분짓지 않고 조용히 용맹정진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전 문화재청장)는 "운문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비구니 학인스님들이다"라고 했다. 오늘날 운문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손꼽히는 것도 바로 이 학인스님들의 새벽 예불 광경이다. 수백 명 스님들이 함께 새벽을 여는 낭랑한 염불소리와 절제된 행동은 '더할 것 없는 경건함' '모자랄 것 없는 장엄함'의 극치다. 그 외에도 운문사가 주는 '울림'은 수없이 많다. 그래서 가슴 떨리는 길이다.


 


40m 직벽 나선폭포 거쳐 천년고찰까지 14㎞ 구간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운문사로 가는 제7코스는 평지에 자리 잡은 대가람을 찾아가는 길답게 줄곧 평편하고 쉬운 길이다. 그래도 어쩐지 중간에 실컷 딴청도 부려 보면서 최대한 느리게 걸어보고 싶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급하게 운문사로 가면 정갈하고 평온한 절집의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서일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많이 느리지만 그만큼 꼼꼼하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걷는 길은 그 길이 내뿜는 숨소리를 들으며 가는 '호흡의 길'이요 비로소 '길과 하나 되는 길'이다.

출발지는 제6코스 종착지였던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 칠성가든 앞이다. 배너미계곡 중간에 숨어 있는 나선폭포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출발지로 되돌아온 후 운문사로 향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코스를 살펴보면 칠성가든~천문사 입구~나선폭포~천문사 입구~성황당~수리덤계곡 입구~통점마을 당산나무~신원 삼거리~방지초등 문명분교 3·18독립운동기념관~양(용)바위~신원 삼거리~운문사 버스터미널~솔바람길~운문사 순이다. 총 길이 14㎞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휴식 등을 포함하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배너미계곡 기슭에 자리 잡은 나선폭포의 위용.
칠성가든 앞에서 북쪽에 보이는 천문사(天門寺) 입석을 보고 천문사로 향한다. 천문사 방향으로 가면 눈앞에 우뚝 솟은 2개의 뾰족한 암봉이 보이는데 바로 쌍두봉이다. 천문사 일주문 못 미쳐서 '등산로' 표시를 따른다. 잠시 후 하천을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진행하면 천문사 후문이다. 중수 공사가 한창인 천문사를 일별한 후 다시 나와서 왼쪽을 보면 담장 옆으로 길이 보인다. 곧바로 쌍두봉 등산로 갈림길이다. 오른쪽 길을 택해 배너미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임도처럼 넓은 계곡길이 호젓하다. 15분쯤 가면 작은 돌무더기가 서너 개 있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배너미재를 넘어 학소대계곡 학심이골 등으로 갈 수 있지만 나선폭포는 오른쪽 길로 5분가량 올라야 있다.

단일 폭포의 높이로만 따지면 영남알프스의 수많은 폭포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나선폭포는 높이 40m가 넘는 직벽 폭포다. 아직까지 고드름이 폭포에 매달려 있어 이곳은 여전히 겨울이라고 강변하는 듯하다. 2002년 이후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자연 빙벽훈련장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원천 끼고 도는 낮고 평편한 길에서 여유 만끽 

 
  운문사 들머리 마을인 신원리 본동의 흙벽돌 골목길.
다시 천문사 입구 69번 지방도로까지 돌아오는 데는 20분 정도 걸린다. 사실 제7코스는 나선폭포 왕복 구간을 제외하면 운문사 입구까지 대부분의 구간이 아스팔트 도로를 따르게 된다.

69번 지방도를 타고 청도 운문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수리덤계곡 입구를 지나 10분쯤 가면 왼쪽 산자락에 이름 없는 바위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3분 후 왼쪽에 알프스펜션이 보이는데 그 앞 신원천 풍경이 빼어나다. 너럭바위와 이름 없는 소(沼)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물은 걷는 이의 가슴 속까지 청량감을 전해준다. 차를 타고 가면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다. 운문면 사무소와 삼계리마을 주민이 봄철 환경정화운동을 펼치며 상춘객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삼계리마을에서 통점마을로 가다가 만난 신원천의 맑은 무명소.
통점마을 회관 앞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는데, 마을 회관 맞은편 목향공방 뒤편에 수백 년 된 키 큰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보인다. 18세 때 시집 와서 평생을 살았다는 한 70대 할머니는 "우리 동네 최고 어른"이라며 당산나무를 가리킨다. 그는 또 "이 동네는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아. 그래서 신원천 물로 생활을 했지. 우물이 없는 마을인 셈이지"라며 마을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당산나무를 가까이서 본 후 다시 주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에 웅장한 암봉이 보인다.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복호산(伏虎山)이다. 차도 우측에 잔디가 곱다. 느릿하게 걷기에는 딱이다. 운문사와 청도읍 방향으로 갈리는 신원삼거리까지는 통점마을에서 25분 걸린다. 운문사는 왼쪽으로 2㎞ 정도 가야 하지만 일단 오른쪽으로 간다. 방지초등 문명분교에 있는 '운문면 3·18독립운동 기념관'에 들르기 위해서다. 1919년3월18일 청도 최초의 현대식 사립학교인 문명학교(현 문명분교) 교직원과 학생, 졸업생들이 주도해서 펼친 청도 운문면 일대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해 세운 시설이다. 평소 문은 잠겨 있지만 학교 측에 요청하면 기꺼이 문을 열어준다.

◇ 포근한 신원리 흙담 골목 지나 옛 양반 놀이터도 구경

 
  운문사 매표소를 지나면 이 절의 명물인 '솔바람길' 속으로 빨려든다.
기념관을 둘러본 후, 잠시 학생 수 8명뿐인 시골학교 교정에서 우뚝한 복호산을 바라본다. 신선봉으로 불리기도 했던 복호산의 모습이 참으로 웅장하다. 1908년 문명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이 유서 깊은 학교에 다닌 모든 학생들도 저 웅장한 암봉을 보면서 큰 뜻을 품었으리라.

교문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회관 왼쪽 골목길로 들어선 후 '용바우 민박'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따라가 본다. 흙을 구워 만든 붉은색 흙벽돌과 황토를 적절히 섞어 쌓은 흙돌담길이 전통있는 향촌의 풍모를 자아낸다. 골목 끝 운문천 변에서 건너편 물가 왼쪽 바위가 양반들이 소풍놀이를 즐겼다고 해서 양바위, 또는 용을 닮았다고 해서 용바위로 불리는 바위다. 주변 또 다른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차를 타고 운문사를 찾을 때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절경이다.

다시 골목길을 돌아 나와 신원삼거리에서 복호산 등산로 입구 무덤 아래 불망비(不忘碑)를 보고 운문사로 향한다. 두 그루의 낙락장송을 지나는 데 멀리 정면에는 억산 깨진바위가 눈에 확 들어온다. 주변에 미나리 재배 하우스가 많다. 운문사 버스터미널에서 좀 더 가면 매표소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매표소를 통과하면 그 유명한 운문사 송림이 반겨준다. 차도 오른쪽으로 '솔바람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솔길이 나 있다. 300~400년 된 소나무 수천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사이로 오른쪽 호거대를 타고 넘어온 봄바람이 싱그럽다. 잠시 휴대전화를 꺼 놓아야 할 것 같은 길이다.

◇ 전국적 명성의 운문사 '솔바람길'에도 봄기운 성큼

 
  운문사 극락교와 이목소(離目沼).
솔바람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운문사 절 직전 주차장에 닿는다. '호거산 운문사(虎距山 雲門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범종루까지 가는 길 오른쪽은 높지도 낮지도 않아 더욱 정갈한 느낌이 드는 돌담, 왼쪽에는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농사짓는 텃밭이다. 길 양옆으로 벚나무가 도열해 있다. 4월 중순이면 소리 없이 핀 벚꽃이 꽃비를 휘뿌릴 것이다. 그런데 이 돌담은 1980년대 초반 비구니학인스님들이 계곡에서 주워 온 돌을 골라서 쌓은 담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어서도 안된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운문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쏟은 땀과 정성이 깃든 담장이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했다는 이 절 범종루를 통과하면 500년 넘은 반송(盤松·천연기념물 제180호)이 우선 반겨준다. 매년 봄 가을로 막걸리 25말을 마신다는 유명한 처진소나무다. 삼월삼짇날(음력 3월3일)에 막걸리 드리는 행사를 볼 수 있다. 7개의 국가지정 보물을 간직하고 있기도 한 절인 탓에 순례객들이 간과한 채 잘 못 보고 지나가는 곳이 있다. 비로전 (오래 된 대웅보전) 서쪽 계곡을 가로지르는 극락교와 그 아래 웅덩이인 이목소다. 사실 운문사에서 무언가를 보겠다는 마음은 욕심이다. 그저 호젓한 분위기에 젖어 본다는 느낌이면 그만이다. 일반인은 건널 수 없는 극락교와 그 아래 이목소는 운문사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그만인 장소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보양국사와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에 얽힌 전설을 떠올리면서 남쪽 멀리 우뚝한 운문산을 바라본다. 산과 산 사이로 구름문이 열렸다.


# 떠나기 전에- 이목소 전설

- 서해 용왕 아들과 보양국사의 우정과 의리 전해져

운문사 경내 극락교 아래 이목소(離目沼)가 있다. 옛날에는 사방 100m가 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연못이었다고 알려진 이 야트막한 웅덩이에는 10세기 중반 운문사를 중창한 보양국사와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離目)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일연 스님이 이 절에서 집필을 시작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다. 보양국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서해 용왕의 초청으로 용궁을 방문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지면서 용왕이 자신의 아들 이목을 데리고 가 달라는 부탁을 하자 보양국사는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용의 모습을 한 이목은 이 연못에서 지내며 스님의 사찰 중창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해 심한 가뭄으로 인근 주민들의 기근이 극에 달하자 스님이 이목에게 부탁해 비를 내리게 했다. 그러나 정작 하늘의 천제가 격노한 것이 문제였다. 비를 뿌리는 것은 하늘의 조화인데 감히 바다 용왕의 아들이 이를 거슬렀다는 것이다. 천제는 보양국사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이목을 벌하려 했다. 보양 스님은 진짜 이목을 툇마루 밑에 숨게 하고 법당 앞의 배나무(梨木)를 가리켰다. 이에 천제의 사자는 배나무에 벼락을 때리고는 하늘로 돌아갔다. 골짜기 연못에 사는 큰 뱀을 일컫는 '이무기'라는 말도 바로 이목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으로 전설같은 이야기다.


# 교통편 & 먹을 곳

- 언양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버스 오전 9시에 출발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3200원. 50분 소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삼계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출발. 운문령 너머 삼계리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운문사 앞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후 2시30분, 5시25분(막차) 등에 있다. 40분 소요. 3000원.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칠성가든까지 금방이다.

음식점 겸 찻집도 한 곳 소개한다. 운문사 매표소와 버스정류소 사이에 있는 '어화벗님(054-372-6638)'이다. 사진 작가인 배춘옥 씨가 6년째 운영중인 이 집은 손칼국수와 녹두감자전 등이 맛있다. 다양한 야생화 차와 동동주도 맛볼 수 있다. 2층 모서리 창가 자리는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인기 있는 테이블. 배씨가 직접 키운 봄꽃도 예쁘다. 운문사 스님들도 자주 들른다.


# 운문사 터 잡은 호거산은 어디?

- 청도 사학계 "호거대가 바로 호거산"

 
  운문사 매표소 부근에서 바라본 호거대.
둘레길 제7코스의 핵심은 역시 종착지인 천년고찰 운문사(雲門寺)다. 그런데 범종루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운문산 운문사'가 아니라 '호거산(虎距山) 운문사'라고 돼 있어 호기심 많은 순례객이 머리를 갸웃거리곤 한다. 공식 지형도 그 어디에도 없는 이름인 호거산. 한자의 뜻 대로만 보면 '호랑이가 걸터앉은 모양의 산'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 문제를 놓고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정확한 답은 없다. 다만 이 문제를 풀기위해 고심하고 공부하다 보면 운문사는 물론 영남알프스 일대를 좀 더 깊이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청도 지역 향토사학계의 의견과 고지도 등에 나타난 호거산의 위치 등을 종합해 간략하게나마 고찰해 본다.

우선 호거산 위치에 대한 여러 주장들부터 살펴보자. 절의 남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인 현재의 운문산(1195m)을 원래의 호거산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고, 억산과 범봉 일대를 통틀어 일컫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내원암 사리암 청신암 등과 함께 운문사의 4대 부속 암자이면서 운문사 창건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모암(母庵)으로 알려진 북대암이 자리잡은 북동쪽의 복호산(伏虎山·678m)과 지룡산(池龍山 또는 地龍山·659m)을 합쳐서 호거산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운문사 매표소 오른쪽(서쪽) 산등성이 위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는 모습이 보이는 '호거대(일명 장군바위 등선바위 등심바위·516m)' 주변 일대 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각 주장마다 나름대로의 근거도 있다.

하지만 향토사학계의 해석과 김정호 작 대동여지도 등에 나타난 호거산위치 등을 고려할 때 '호거대=호거산' 설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우선 대동여지도를 살펴보자.그런데 먼저 주목할 것이 바로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운문산의 위치다. 고산자 선생은 지동에서 운문산의 위치를 현재의 운문산과 판이한 곳에 표시했다. 가지산과 고헌산 사이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뻗은 큰 산줄기 상의 높은 산으로 표시한 것. 즉 현재 문복산의 위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산에서 서쪽으로 흐른 지능선은 현재의 옹강산 줄기로 보이고 그 맥은 큰 하천 두 개가 합수되는 지점, 즉 현재의 신원천과 운문천이 만나는 운문면 신원리 신원교 인근까지 뻗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합수지점 서쪽의 능선상에서 작은 글씨로 호거산을 표시했다. 현재의 운문천 서쪽 자락 능선이다. 또 호거산 표기 지점의 동쪽을 흐르는 운문천 줄기에 '약야계(若耶溪)'가 표시돼 있다. 현재도 운문사 서쪽 하천을 약야계라고 부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고산자 김정호는 호거대 또는 그 주변을 호거산으로 봤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청도 향토사학회장 겸 경북 향토사학회장인 박윤재 선생도 호거산의 위치를 현재의 호거대라고 단언한다. 박 회장은 "운문사 절 서쪽에 호거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호거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때 원광법사가 중국 유학을 다녀온 후 운문사에서 주석을 할 때 중국 소주의 호구산(虎丘山) 이름에서 음을 따 온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가 걸터 앉은 모습의 산'을 뜻하는 '호거산'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광법사는 중국 유학시절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소주(蘇州)의 호구산에 들어가 그곳에서 수도하며 평생을 마칠 생각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청에 못 이겨 펼친 강론에 청중들이 감화되는 것을 보고 세상에 나가 중생계도를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전한다. 그만큼 높이 37m의 비록 아주 낮은 언덕 같은 산이지만 호구산은 원광법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또 하나 현재 운문사 약야계도 소주 호구산과 연관돼 있다. 오왕 합려가 죽은 후 제위에 오른 부차가 아버지의 무덤을 만든 곳이 호구산이고, 부차는 월나라 출신 미녀 서시에게 빠져 결국 패망의 길을 걷는 인물이다. 서시는 호구산에서 오왕 부차와 자주 노닐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약야계'란 범려가 서시를 발견한 절강성 소흥의 아름다운 하천 이름이다. 그 약야계가 운문사 옆 하천의 이름이 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사실 '호거대=호거산' 설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김정호 선생도 틀릴 수 있기에. 다만 이런 고찰을 통해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이야기가 더욱 풍요로워 질 수는 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둘레길 7코스 출발점으로 천문사를 입석을 보며 나선 폭포를 보기위해 따라간다.

천문사 방향으로 들어가면 형제 용의 전설이 서려 있는 쌍두봉이 정면이다.

배너미게곡으로 따라간다. 멀리 학심이계곡으로 넘어가는 배너미고개가 보인다.


현재 불사가 진행중인 천문사 경내

나선폭포로 영남알프스에 속해 있는 폭포로 한겨울철에는 부산경남 클라이머에게는 빙벽의 기쁨을 맛보게하는 곳이다.

운문사로 향하는 도로상에서 보이는 기암

신원천에서 만나는 작은 폭포와 소로 물이 맑기로 거울같이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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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점마을의 당산나무로 이마을 최고의 어른이라 이야기를 하며 여러기의 소나무가 자라 있다.

통점마을의 노거수

운문면 일원의 3.18독립만세운동으로 문명분교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청도군에서는 사학재단으로는 1호로 개교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산골의 학교이다. 8명의 전교생이 현재 수업을 하고 있다.

3'18운동의 자료를 모아 놓은 곳으로 문명분교 안에 있다.

운동장에서 본 복호암으로 신원에서는 복호암의 정기로 문명초교에서 이름난 분들이 많이 나왔다고 자랑을 하신다.

신원리 염창마을의 돌담길로 운치가 있다. 대부분 돌담은 솥을 구운 가마터의 흙으로 쌓아 놓았다.염창마을은 삼국시대때는 화랑들의 식료품창고이며 그 후 운문사가 번창을 하였을때 운문사의 해산물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한다.

양바위로 양반들이 물맑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놀았다하여 부르게 되었는데 근래에 와 용바위로도 부른다 한다. 

양바위를 보고 운문천을 건너는 취재팀 뒤로 갈대가 무성하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다하여 복호암으로 부르고 있다.


호거대, 등선바위 장군봉 덧니바위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 일대가 "호거산"이라 하며 "호거산 운문사"란 사찰 이름이 생겼다 한다.

운문사 매표소로 소나무 숲길이 운치 있는 솔바람길이다.



운문사 를 들어서는 문으로 일주문은 따로 없다.

매년 막걸리를 마신다는 처진 소나무와 만세루

처진소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수령은 500년으로 보고 있다.

이목소로 극락교 아래에 있다 현재는 둘레와 깊이가 형편없는 하천이지만 이목소가 메워지지 이전에는 넓고 검푸른 소 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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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717> 제6코스 : 경주 심천~청도 삼계리

계살피계곡 비경 바라보며 '세속오계' 가르침 되새기네

 

가설갑사 절터 옆의 계살피계곡으로 '가설갑사옆 계곡'이란 뜻을 가졌다. 삼계리 마을 부터 이어지는 계곡은 자연의 풍광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여과 없이 보여 주는 문복산의 주 계곡이다. 

 


 



경주와 청도 사이에 솟아 있는 문복산(文福山·1014m)은 한때 영남알프스 권역에 포함되지 못한 채 '설움'을 겪었다.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일부 수도권 산꾼들이 언제부턴가 가지산 운문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 등 7개 봉우리만 '영남알프스'로 대우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그들은 운문령 동쪽과 북쪽에 있는 해발 1000m급 봉우리인 고헌산(高獻山·1034m)과 문복산은 영남알프스와는 별개의 봉우리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는 문복산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의 인식일 뿐이다. 현재 영남의 산꾼들 가운데 문복산을 영남알프스 산군에 포함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당당히 1000m가 넘는 높이 면에서 뿐 아니라 이 산이 꼭꼭 숨겨두었던 계살피계곡의 깊고 아름다운 비경(秘景) 때문에라도 당연히 영남알프스에 포함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신라 삼국통일의 주체 세력이었던 화랑도의 윤리적 근간이자 실천이념이었던 세속오계(世俗五戒)가 바로 이 산에서 시작됐음을 안다면 과연 이 산을 그렇게 무시할 수 있을까. 영남알프스의 그 어떤 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역사성까지 갖춘 산이 바로 문복산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는 문복산의 북쪽에서 서쪽 자락을 휘돌아 가는 길이다. '신라의 정신'을 넘어 우리 민족의 중요한 정신적 계율로 승화된 세속오계의 발상지를 찾아가는 길이면서 솔 향기 그윽하고 진달래 군락 지천인 걷기 좋은 숲길을 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또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는 가슬갑사터를 지나며 1400여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전해주던 장면을 상상해 볼 수도 있는 길이 바로 둘레길 제6코스다.

■ 삼계리재 넘어 가는 13.5㎞ 4시간이면 충분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는 문복산과 옹강산 사이의 삼계리재를 통해 경주에서 청도로 넘어가는 청정 숲길을 걷는 맛이 일품인 구간이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낙엽깔린 길을 따라 삼계리재에서 수리덤계곡 쪽으로 내려서고 있다.
제5코스의 종착점이었던 경북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에서 출발, 심원사를 거쳐 삼계리재(또는 심원재)를 넘어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에 닿는다. 삼계리마을에서는 계살피계곡 왼쪽 길을 따라올라 세속오계 발상지인 가슬갑사터를 들렀다가 계곡 깊숙이 자리 잡은 폭포를 보고 나서 계살피계곡을 건너 우측길을 따라 다시 삼계리마을 칠성슈퍼 앞으로 내려선다. 총 길이 13.5㎞에 걷는 시간은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당산나무와 정자가 나란히 서 있는 일부리 심천마을에서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경로당을 지나고 3분쯤 가면 수령 500년 된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반긴다. 포장도로를 따라 좀 더 남쪽으로 가면 5분 후 우측 논바닥에 놓인 길이 4m 안팎의 바위가 보인다. 일부리지석묘다. 받침돌은 보이지 않는다. 지석묘를 선사시대 유적으로 분류한다고 볼 때, 관리가 참으로 부실하다는 느낌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10분쯤 남쪽으로 이어가면 심원저수지 둑에 닿는다. 이 저수지는 산내면 측에서 동창천의 생태보존 및 청정지역화를 위해 일부러 어류 방류를 한 곳으로 낚시 투망 등 일체의 어획 행위가 금지돼 있다. 반짝거리는 물살을 보며 심원지 오른쪽을 따르는 길은 운치가 그만이다. 멀리 왼쪽에 문복산 자락의 서담골봉이 보인다.

■ 천년고찰 심원사 지나 아늑한 숲길로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저수지 최상류에서 왼쪽으로 심원교를 건너면 천년고찰 심원사(深源寺). 한때는 신라의 큰 절이었고 심천마을 일대의 땅 대부분이 이 절 소유였다고 알려졌을 정도지만 지금은 작은 암자 같은 분위기다. 스님은 출타했는지 인적조차 없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다시 심원교를 건너와 갈림길에서 왼쪽 계곡으로 들어선다. 포장도로를 끝내고 숲길로 들어서게 되는 지점이다. 상수원보호 팻말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니 아담한 크기의 심원사 부도밭을 지난다. 3명이 나란히 걸을 만한 너비의 계곡길이 이어진다. 5분 후 계곡을 건너는 길과 우측길이 나뉘는 지점에서 계곡을 건너지 말고 우측의 옛길을 따른다. 진달래나무가 지천이다. 4월쯤이면 이곳도 진달래로 뒤덮일 것이다. 길 왼쪽의 계곡에는 크고 작은 소와 폭포가 이어진다. 5분 후 만나는 갈림길인 사거리에서는 곧바로 직진, 계곡을 계속 따라 오른다. 바닥에 깔린 낙엽이 무성한 길을 따라 여유롭게 20여 분 오르면 잘 알려진 삼계리재다. 왼쪽 능선길은 서담골봉(837m)을 거쳐 문복산으로, 오른쪽 능선은 옹강산(832m)으로 이어진다. 심천마을에서는 이 고개를 심원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개를 넘어 내리막을 탄다. 삼계리 방향이다. 편안한 길 양옆으로 낙엽이 수북하다. 길 자체의 상태와 주변 분위기가 전형적인 숲길인 탓에 개척단원들은 "영남알프스 속살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청도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의 세속오계 상징물.
20분쯤 내려서면 널따란 계곡. 일명 수리덤계곡이다. 큰 계곡과 만나는 곳 오른쪽에 산사면 중간에서 흘러나오는 샘터가 있다. 누군가 설치해 놓은 파이프를 타고 흘러내린 샘물을 마셔본다. 달콤하고 시원해 가슴 속까지 청량감이 전해진다. 계곡을 건너면 삼계리주말농원 권역이다. 임도길 수준으로 넓어진 길을 따라 한 차례 더 계곡을 건너고 '끈티서야영장'을 지나면 장승과 돌탑 숙소가 곳곳에 설치된 주말농원. 이곳을 지나 다리를 건넌 후 펜션단지를 통과하면 69번 지방도로상의 수리덤계곡 입구에 닿는다. 본격적으로 청도군 지역에 들어선 셈이다.

왼쪽 삼계리 방향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르는데 쌍둥이처럼 뾰족하게 솟은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쌍두봉이다. 삼계리마을 주민은 형제봉으로도 부르는데 산꾼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암봉이기도 하다.

■ 원광법사 머물던 가슬갑사터에 비석만 1개

 
  가슬갑사터로 오르는 길에 발견한 문복산 연리목.
삼계1교를 지나면 주민들이 복원해 새로 단장한 삼계리성황당이 있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에는 깊은 산골이었을 이 마을 주민들이 안녕을 기원하던 토속 신앙의 흔적이다. 그 우측에는 해발 256.3m를 표시한 국가시설물인 '수준점'이 보인다. 행정구역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속하는 삼계리마을은 3개의 골짜기가 모이는 곳이다. 문복산의 계살피계곡, 쌍두봉 서쪽의 배너미골, 그리고 운문령 방향의 생금비리 등 3개의 골짜기 물이 이곳에서 모여 신원천을 이룬 후 운문호로 흘러든다.

성황당에서 70m쯤 더 가면 계살피계곡 입구. 가슬갑사터로 가기 위해 지방도를 버리고 왼쪽 길로 들어선다. 왼쪽에 세속오계 정신을 기린 상징물이 보인다. 화랑도 2명의 동상이 세속오계가 새겨진 돌을 떠받치는 듯한 모습이다. 곧바로 삼계리경로당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등산로 입구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이정표는 '가슬갑사터 1.8㎞, 35분'을 표시하고 있다. 3분 후 갈림길. 왼쪽은 능선길이고 오른쪽 길은 계곡을 따르는 길이다. 오른쪽 길로 간다. 계곡을 끼고 완만한 오르막을 15분쯤 가면 두 그루의 소나무가 서로 엉겨붙은 일명 '문복산 연리목'이 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모양의 나무다. 너덜지대를 지나 10분쯤 더 가면 7세기 초 신라 진평왕 시대에 원광법사가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전한 곳으로 알려진 가슬갑사터를 만난다. 하지만 높이 50㎝가량의 표지석만 있을 뿐, 주변은 폐허나 다름없다. 절터 앞 계곡은 더없이 깊고 아름답건만 정작 절터는 황량하기만 하다.

■ 청정 계살피계곡에 이름 없는 폭포 즐비

 
  계살피계곡 가슬갑사터 위에 있는 무명폭포.
절터를 지나자마자 우측의 놀기 좋은 너럭바위를 비롯한 계살피계곡의 비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길이 우측으로 살짝 휘어지는 곳의 작은 폭포도 멋지고, 이곳에서 조금 더 가서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계곡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폭포도 그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영남알프스에 정통한 이창우 둘레길 개척단장은 "이름을 얻지 못한 폭포"라며 아쉬워한다. 맨 위 폭포 왼쪽으로 20m 정도만 오르막을 치면 다시 조금 전 폭포 밑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주 등산로와 만난다. 우측으로 10분쯤 가면 큰 갈림길. 해발 540m 안팎인 이곳에서 계속 직진하면 문복산 정상으로 향하게 되지만 개척단은 우측으로 계곡을 건너 내리막을 탄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주 등산로 역할을 했던 간이 임도다. 묵은 길 바닥에 잔돌이 많아 걸을 때 주의해야겠다. 35분 정도면 제6코스의 종착점인 삼계리 칠성가든 앞 69번 지방도로에 닿는다.


◆ 먹을 곳

- 칠성가든 오리양념불고기 매콤한 맛 일품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의 종착지에는 칠성가든(054-371-5287)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슈퍼마켓과 음식점 민박집까지 겸하고 있는 이 집은 사실 영남알프스를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심 좋고 맛도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매콤한 맛의 오리양념불고기(사진·3만5000원)와 산채비빔밥 된장정식(5000원) 등이 특히 인기있는 메뉴다. 밑반찬으로 계절에 맞는 산나물도 많이 올라온다. 요즘에는 봄나물인 냉이 달래도 보인다. 둘레길을 코스를 걷고 나서 시장기를 달래고 이야기꽃을 피우기에도 딱 좋은 곳이다. 산에서 직접 채취한 고로쇠 수액도 판매한다.

많은 사람들이 '칠성가든'이라는 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한다. 그저 17년 전 대구 칠성동에서 이곳으로 이주, 음식점을 시작할 당시 마땅히 지을 이름이 없어 전에 살던 동네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 교통편

- 경주서 산내 들러 일부리행 버스 갈아타야

부산 노포동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새벽 5시30분부터 10분 간격 운행. 4500원, 50분 소요. 경주버스터미널에서 산내까지 간 후 일부리행 352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산내행 350번 버스는 오전 6시, 6시30분, 7시15분 등 하루 28회 운행한다. 산내에서 일부리행 버스는 오전의 경우 6시20분과 7시40분에 출발하는 2대밖에 없다. 이 버스를 놓치면 산내 개인택시(054-751-5955)를 이용한다. 심천마을까지 1만2000원 안팎. 종착지인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에서는 언양행 버스를 탄다. 오후 2시40분과 5시40분(막차)에 있다.

자가용의 경우 두 대 이상이 동행, 먼저 제6코스 종착지인 삼계리에 한 대를 주차한 후 나머지 차량으로 출발지로 가야 차량 회수가 쉽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향으로 가다가 석남사·밀양 방향 24번 국도를 탄다. 석남사 램프 못 미쳐 청도·산내 방향 표지판을 보고 빠져나간 후 69번 지방도를 타고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칠성가든 앞에 닿는다. 삼계리마을에서는 69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가 운문댐 밑 삼거리에서 우측 경주 산내 방향으로 튼다. 20분쯤 가면 산내면 소재지 못 가서 우측으로 '외칠리·일부리' 표지판을 보고 진입, 다리를 건넌 후 좌회전하면 외칠리에 닿는다. 다시 우측으로 상록병원 일부리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심천마을에 닿는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동영상 http://www.kookje.co.kr


# '세속오계' 전한 가슬갑사터 단상

- 화랑 정신 발원지에 황량함만 감돌고…

 
  작은 비석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황량한 문복산 가슬갑사터.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에 굳이 문복산 계살피계곡에 있는 가슬갑사(嘉瑟岬寺)터를 포함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이곳이 신라 화랑들의 윤리적 강령이자 실천이념이었던 '세속오계(世俗五戒)'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황폐한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계살피계곡이 품고 있는 비경을 보지 않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점이다.

그래도 역시 첫 번째 이유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가슬갑사터는 한 마디로 황량하다. 과연 이곳이 삼국통일의 초석이 된 화랑들의 기본 이념이 발원한 곳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세속오계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발견되지만 특히 가슬갑사에서 원광법사가 추항과 귀산이라고 하는 두 명에게 계율을 일러 주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정확하게 전해진다. 그렇다면 가슬갑사는 도대체 어떤 절이었을까.

6세기 중반인 560년(신라 진흥왕 21년) 한 신승이 대작갑사(지금의 운문사)를 세우고 주변에 대비갑사 천문갑사 소보갑사 가슬갑사 등 4개의 갑사를 더 세웠는데 이를 신라 5갑사(또는 5대갑사)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이후 신라의 중요한 사찰로 자리 잡은 것은 물론이다. 그 중 하나인 가슬갑사는 서기 600년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당대 최고의 승려 원광법사가 대작갑사 중창 등을 마친 후 머무르며 수도했을 만큼 당시로써는 상당한 기풍을 지닌 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국 전란의 격화에 휘말려 절이 없어지고 난 후 여태껏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복원은 고사하고 절터만이라도 제대로 정비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개척단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끈 셈이다. 혹시 아는가.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이곳을 찾는다면 관할 지역자치단체에서라도 나서서 조금이나마 정비를 할지.


# 삼계리 쌍두봉과 두 마리 용 전설


- 승천 못한 용의 한 서린 '형제봉'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 종착지인 경북 청도군 삼계리마을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한 봉우리처럼 보이지만 상단부가 둘로 나뉜 암봉이 우뚝 솟아있다. 산꾼들은 이 두 봉우리를 묶어서 쌍두봉이라고 부른다. 조금 더 높은 봉은 해발 929m, 그 앞 낮은 봉은 862m다. 그런데 삼계리마을과 인근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이 두 봉을 '형제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는 두 마리 용에 관한 전설 때문이다.

먼 옛날 이 산 깊은 계곡에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깊은 소(沼)가 있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구렁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며 접근을 꺼렸다. 그러던 어느해 춘삼월 가까운 마을에 살던 형제가 사냥이라도 해서 고기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산에 들어갔다가 늦어져 할 수 없이 노숙을 했다. 새벽녘 동생이 소변을 보기위해 잠이 깼는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소에서 하늘로 솟구쳐, 구름 너머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침 이 소리에 놀란 형도 잠에서 깬 순간 다시 두 번째 용이 날아 올랐다. 이 때 형제가 놀라 자빠지며 동시에 "용, 용이 승천한다"라고 소리쳤다. 이로 인해 두 번째 용은 하늘에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승천하지 못한 한이 너무 컸던지 용은 떨어지면서 거대한 꼬리로 산 정상부를 내리쳤다. 그러자 봉우리는 두 개로 쪼개졌고 사람들은 이후 승천한 형님 용과, 그러지 못한 동생 용을 빗대어 형제봉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좀 더 높은 봉이 형님봉, 그 앞 낮은 봉은 동생봉이 된 셈이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둘레길 6코스는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동 당산나무에서 시작을 한다.  여러기의 당산나무 쉼터에서 요즘 마을마다 정자를 만들어 노아 운치를 더해주는 것 같다.

심천동마을의 500년된 느티나무로 보호수이다

심원사로 둘레길의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우측 논 한가운데 작은 바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석묘이다. 지금은 지석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이 바위를 괴었던 지줏돌이 있었다하고 그 지줏돌을 빼내었다 한다. 그리고 논은 복토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니 우리 문화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심원소류지 뒤로 보이는 서덤골봉으로 문복산과 옹강산 그리고 산내읍을 잇는 아부터재로 연결된다.

심원소류지 뒤로 보이는 잘록한 부분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개이다. 구름재로 지금은 산길이 묻혀 있지만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계리재를 넘어 심원사 앞을 거쳐 구름재를올라, 숲고개를 넘어 산내읍이나 내친김에 당고개를 넘어 경주로 걸어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지금은 구름재가 문명의 발달로 그 기능을 잃은지 오래고 마을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좌측 철탑이 있는 산으로 방매산이다.

신라시대 때의 고찰로 현재는 불국사 말사로 심원사이다.


삼계리재로 들어는 옆 계곡

심원사의 부도밭

심원재(삼계리재)로 올라가는 둘레길 옆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작은 소와 폭포가 조금 있어면 진달래가  분홍색 꽃잎을 피워 계곡수와 어울리면 장관을 연출 할 것 같다. 아마 이것이 둘레길의 매력이 아닐까?.

고개 막바지에서 봄기운을 받으며  걷고 있는 둘레길 팀원

일부리 사람들이 부를 때는 심원재로 부르고 삼계리에서 심천동으로 넘어 올때는 삼계리재로 부른다는 고개이다. 국립지리원 발행지도에는 삼계리재로 나와 있다. 이고개가 경주군 산내면과 청도군 운문면의 경계이며 둘레길도 경주 땅을 버리고 이제는 청도땅으로 들어는 순간이다.

청도땅으로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수리덤계곡으로 서덤골봉 이뤈에 예전부터 수리가 살았다하여 수리덤으로 불리며 혹 서담골봉도 그 이전에는 수림덤골봉 도는 수리덤으로 불렸는데 그게 세월이 가면서 잊혀지거나 아니면 잘못전달 되어서 서담골봉으로 되지 않았나 쉽은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수리덤골안의 주말농원의 목가적인 풍경으로 지금은 예전에 없던 펜션이 많이 들어서 있다.

삼계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최근까지 내려 오던 전통문화를 다시 복원해 새로 단장한 삼계리 성황당이 이다. 신작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깊은 산골이었을 이 마을 주민들이 안녕을 기원하던 토속 신앙의 흔적으로 안에 호랑이를 탄 산신령이 모서져 있다.

화랑도의 발생지로 청도에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원광법서가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인 화랑도의 기본 이념이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삼계리에 도로 옆에 두개의 홍보물을 설치해 놓았다.

화랑인 귀산과 추항이 세속오계를 받는 모습을 홍보물로 나타내어 놓았다. 

연리목으로 가슬갑사터를 찾아가는 둘레길 우측으로 소나무 두그루가 신기하게도 둥근 원을 나타내며 서로 붙어 있다. 이 나무가 세솟오계를 밭았던 귀산과 추항의 모습일까?.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앙에게 세속오계를 주었다는 가슬갑사터는 어떤 모습일까 ?. 가슬갑사터는 현재 청도군에서 열성을 다해 홍보하는 화랑도의 발상지에 비해 무방비로 방치를 해 놓은 상태이다. 표지석 외에는 그 어떤 안내문구도 없으며 절터로 추중되는 곳에는 낙석과 잡목으로 인해 진짜 이곳이 가슬갑사터인지 의구심을 들게 할 정도이다. 누군가 답답해서 인지 절터에다   편편한 돌을 세워 스프레이로 가슬갑사터라 써 놓았다.

현대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아픈 나무의 모습이다. 6~70년대 까지 송진을 채취하였던 모습으로 소나무에게는 많은 아픔을 주었다.4~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계살피계곡의 지계곡에 걸린 작은 무명폭포


계살피계곡의 무명폭포로 영남알프스둘레길에도 이제는 봄이 오고 있다.  한겨울 두터운 하얀 솜이불을 걷어 내고  속살을 내보이는 계살피계곡의 모습을 둘레길 팀도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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