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여행/강진여행)월출산 월남사지삼층석탑. 해체해서 발굴조사와 복원을 기다리는 월남사지삼층석탑 여행


진도 출장을 가면서 강진의 병영 읍성이 있는 병영 오일장의 수인관에서 맛있는 연탄돼지불고기를 먹고 월출산 아래에 있는 월남사지를 잠시 들러가기로 했습니다. 

월남사지에는 보물 제298호인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313호인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강진 월출산 월남사지 삼층석탑 주소: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강진 월출산 월남사지 삼층석탑 전화:061-430-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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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도 꼭 가보고 싶었던 월남사지였던지라 쌩하며 차를 달렸습니다. 

멀리 닭볏 같이 울퉁불퉁 치솟은 바위 능선이 차츰 눈앞에 크게 다가왔습니다. 

곧 월남사지 안내판을 보고 들어섰습니다. 

함께한 일행이 이쯤이면 월남사지 삼층석탑의 상층부가 보여야 하는데 왜! 안보이지 했습니다. 

막상 월남사지 앞에 도착했더니 펜스로 가람막을 해 놓았습니다.



월남사지 2013년도 촬영 사진



월남사지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굴착기가 들어와서 진각국사비가 있는 곳을 막 헤집고 난리였습니다. 

아!!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보려는 열망은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듯 허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ㅋㅋ 갑자기 열불이 확 뻗쳐올랐습니다. 

머시고 만날천날 복구작업이고 하면서 괜히 엉뚱한데다 화풀이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문화재를 찾아 전국의 여러 곳을 많이 답사했지만, 보수공사를 한다고 가림막을 쳐 놓고 했던 곳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몇 시간을 달려 멀리까지 찾아갔다가 막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허탈감이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옛날 속담처럼 어찌 그런 속담과 맞아떨어지는지 하필 월남사지가 가는 날이 장날과 같이 발굴조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 지금은 휑한 모습입니다.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는 아예 형체도 볼 수 없이 산산조각으로 해체해서 큰 건물 안에 일렬로 보게끔 진열해 놓았습니다. 

그래도 이곳은 해체한 부재를 한곳에 모아둔 곳이라도 보게끔 해놓아 아쉬운 마음에 해체된 부재를 보고 마음을 달래었습니다. 

월남사지는 월출산의 남쪽에 자리한 폐사지입니다. 

그런데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인되지 않았다합니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말사였다고 합니다. 

월남사에 관한 기록을 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으며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하였고 이규보가 찬한 비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외의 문헌에도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월남사의 창건을 그 이전으로 보는 게 진도 용장성에서 출토된 청동함에 다음과 같은 명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진양부조월남사월악산양삽구인(晋陽付造月南社月岳山樣九印)”의 명문에서 월남사와 당시 고려의 최충헌이 무신정권으로 집권하며 진강후에 봉작되고 그의 뒤를 이은 최우가 진양부를 세워 최씨 무신정권의 중심 권력기구가 됩니다.









여기에서 진양부를 보면 월남사는 최씨 무신과 특별한 관계 속에 사세가 번창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순천 송광사에 2세 사주였던 혜심이 최씨 무인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월남사를 크게 중창하였고 이를 혜심의 창건으로 잘못 기록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최근 발굴되는 유물에서 백제기와와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유구가 함께 출토되며 이를 추정하면 월남사 창건은 백제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문화재 발굴 안내판을 참고하면 월남사의 폐사는 1739년 무위사 사적기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적기에는 정유재란으로 무위사만 남고 주변 모든 사찰이 불탔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그때 월남사도 함께 불탔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현재 월남사지는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해체해서 드러누운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왔습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 또한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며 문헌과 석탑의 양식에서 고려 초기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벽돌처럼 다듬은 여러 석재를 쌓은 전탑(벽돌탑) 형식을 모방하였으며 지붕돌인 옥개석의 층급받침에서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석재를 사용했습니다. 

기단이 단층이고 옥개석의 끝이 미세하고 반전한 것을 보면 이와 비슷한 석탑이 국보 제9호인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입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모전 석탑인 백제계 양식의 탑으로 알고 있었으나 높이가 8.4m인 거대한 삼층석탑에다 기본양식과 결구 수법 등이 백제 석탑의 전형을 따르고 있어 2002년부터 월남사지 모전 석탑이 아닌 월남사지 삼층석탑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일부사진: 문화재 발굴조사 안내판 촬영)



일단 월남사지 삼층석탑도 해체되어 실물을 볼 수 없고 부재만 볼 수 있습니다. 

복원되면 그때 다시 월남사지를 방문하여 완벽한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혜심의 진각국사비를 포스팅하겠습니다. 

큰 부재와 수박만 한 크기의 부재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하루 일찍 복원되기를 빌었습니다.









월남사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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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 월남사지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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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산여행)경산 제석사와 계정숲 여행. 원효 탄생지 제석사와 한장군 묘와 계정숲


경산시를 삼성현의 고장이라 부릅니다. 

이 세 분의 성현은 원효대사와 그의 아들인 설총,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선사를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원효대사의 탄생지라는 경산 자인면의 제석사를 보고 왔습니다. 

원효대사의 탄생을 보면 유성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를 가졌으며 만삭에 집 옆의 밤나무가 많은 골짜기인 ‘율곡’을 지나다가 산통을 느껴 밤나무 아래에서 원효를 낳았다 합니다.





경산 원효대사 출생지 제석사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226-1

경산 원효대사 출생지 제석사 전화:053-857-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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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원효가 태어났던 곳인 큰 밤나무를 사리수라 불렀고 그 밤나무에서 열리는 밤을 사리밤으로 불렀습니다. 

이 밤은 주위의 밤보다도 밤알이 토실토실한 게 월등히 컸다 합니다. 

원효는 15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충격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원효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곳은 자인면사무소 뒤쪽인 속칭 밤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출가하고 나서 자신이 살았던 옛집을 헐어내고 절을 짓고는 초개사라 불렀으며 자신이 태어났던 밤나무인 사라수 옆에도 절을 짓고는 사라사라 했다고 삼국유사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개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에 한 농부가 밭갈이를 하다가 불상과 탑의 몸돌을 발견하고는 이곳이 오래전에 절터였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후 유찬이 절을 짓게 된 게 오늘날 제석사가 되었다 합니다.

 


제석사 한쪽에는 석조좌불, 부서진 탑신과 석등을 받쳤던 연화문 대석등의 부재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 일대가 신라하대의 고찰터 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원효가 세웠던 초개사나 사라사의 확실한 근거는 아직 찾을 수 없으며 이 일대가 원효의 출생지라 그리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신라시대 부재



한국사찰전서에 제석사는 1625년 유찬이 창건했으며 1802년과 1910년 거사 손대권과 월파대사가 각각 중창하였고 193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에 제석사는 쇠퇴하면서 폐사가 되었다가 1962년에 다시 대웅전을, 1965년에 칠성각을 건립하면서 불법의 등불을 밝히게 됩니다. 

2001년에 와서 대웅전을 새롭게 중창하면서 삼존불을 봉안하고 대웅보전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칠성각 또한 산신각으로 개명했습니다.







제석사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이곳은 원효대사의 탄생지로 추정되어 2003년 불교계 최초인 ‘원효성사전’을 건립했습니다. 

내부를 살짝 보았더니 안에는 원효대사의 좌상을 모셨습니다. 

주택가 안의 사찰이라 조금은 생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원효의 출생지 설화가 있는 사찰이라 그런지 신성하며 무엇인가 모를 무거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인근에 있는 계정숲으로 향했습니다. 

도심에서 보면 울울창창한 숲으로 우거진 언덕 같은 높이의 공원이었습니다. 

인공적으로 가꾼 숲이 아니고 천연숲인 계정숲은 이팝나무가 주종이며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 낙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있어 여름철에는 시원한 숲을 제공해 줄 것 같았습니다.




경산 자인면 계정숲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8





계정숲 안에는 한 장군의 묘와 사당이 있습니다. 

한 장군이 어떤 분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습니다. 

십이지신상을 호석으로 두른 게 예사 분이 아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장군은 신라인지 고려인지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지만 도천산에 왜구가 출몰해서 주민을 괴롭히자 한 장군이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여원무를 추며 도천산의 버들못으로 왜구를 유인하여 칡으로 만든 그물에 가두어 검흔석에서 모두 참수했다는 분입니다.





1968년 8월 자인중·고등학교 신축을 하려고 땅을 파다가 석실묘를 발견하여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두개골과 은으로 만든 갑옷 투구와 무기류인 창 등 많은 토기류가 함께 나와 한 장군의 묘라 확정하였고 전설로만 내려오든 한 장군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 5월에 계정숲에 한장군의 묘를 이장하여 매년 단오절에 한장군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당시 출토된 유물은 영남대학박물관에 있다가 2011년 12월에 대구 박물관으로 옮겨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 장군의 묘와 함께 한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진충묘(盡忠廟)도 있습니다.



 




한 장군은 누이와 함께 도천산 버들못에 은신해 있던 왜구를 ‘여원무’를 추어 유인해 섬멸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화려한 화관을 쓰고 춘 춤이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에 지정되었으며 지역민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인 한장군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매년 경산자인단오제에서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진충묘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에 북사리의 ‘한당(韓堂)’을 계정숲으로 옮겨 세우면서 진충묘라 했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1칸의 맞배기와지붕입니다. 

진충묘옆에는 시중당의 현판을 단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1637년 (인조15년) 자인현감이던 임선백에 의해 신관동에 세워졌으며 자인현의 정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금헌이라고 불렸으며 고을이 옮겨감에 따라 원당리와 북사리로 옮겨 지어졌습니다. 

시중당의 건물은 1870년(고종7년)에 세워졌으며 1910년에 행정구역 변경으로 하양과 자인, 경산이 통합되면서 자인중학교 교실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36년 서림 서편으로 옮겨 세웠다가 1980년 계정숲의 한 장군 사당 옆에 옮겨 건립했습니다.

 




요산정으로도 불렸다는 시중당의 나무 현판은 1763년(영조39년)에 자인현감이던 정충언이 쓴 글씨라 합니다. 

여행하면서 약간 시간을 내어 들렸던 계정숲은 한 바퀴 도는데 20분도 체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전설과 문화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 장군과 누이의 이야기는 구전으로만 전해왔던 것을 실체를 확인하고 계정숲에다 한장군묘와 사당이 세워지게 된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산 자인면 여행을 한다면 자투리 시간을 내어 제석사와 계정숲을 꼭 둘러볼 것을 권합니다. 

계정숲은 1997년 12월 기념물 제123호에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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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226-1 | 제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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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2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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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복사꽃마을 여행. 영천에서 복사꽃길을 걸어보세요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봄꽃의 시작이라면 그 자리를 이어받은 벚꽃이 또다시 자리를 내어주면서 복사꽃이 이제 자리를 받았습니다.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복사꽃 마을·복숭아 마을로 불리는 구지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부산에서 언양나들목을 나와 운문령을 넘고 운문호를 돌아 영천으로 향했습니다.




영천 복사꽃마을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561-5



2016/05/11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모고헌, 독특한 누각이 돋보였던 MBC드라마 화정 촬영지 영천 보현산 아래 옛 태고와 누각 모고헌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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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을 찾아가는 도중 농촌은 벌써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농부의 손에서 진짜 봄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천 땅에 들어서면서부터 선분홍색의 복사꽃에 하늘의 색감이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고개를 넘으면서 구릉지에 펼쳐진 복사꽃은 진짜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늘도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더 예쁘게 하려는 듯 화창해서 여행을 떠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역시 빠른 소식통은 진사님입니다.







벌써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알고 여러 분이 찾아와서 열심히 사진을 담고 있었습니다. 

나도 사진을 찍기 위해 포인트를 찾았습니다. 

경부선 KTX 선로와 복사꽃이 잘 조화를 이루는 사진포인트가 보였습니다.





벌써 한 분의 진사님이 삼각대를 걸어놓고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디선가 웅~~~~하는 소리와 함께 KTX가 쌩하며 통과 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계속 왔다갔다하면서 자주 다녔습니다. 

사진을 몇 장 담고 구지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한 모퉁이만 도니까 복사꽃 마을이었습니다. 

땅도 선분홍, 하늘도 선분홍, 내 마음조차 선분홍색 되었으며 활짝 핀 복사꽃에 내 몸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이고 언제 복숭아 맛을 볼까? 그러나 곧 이 복사꽃이 여름 과일인 복숭아로 바뀌어 주렁주렁 달리 걸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베어 나왔습니다. 

ㅎㅎ 새콤달콤한 맛있는 복숭아를 생각하며 다음 여행지인 반곡지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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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561-5 | 구지리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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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리고분군. 비화가야의 순장한 소녀 유골이 나온 창녕 송현리고분군 여행 


창녕 송현리고분군은 1963년에 사적 81호에 지정되었으며 인근의 창녕교동고분군은 사적 80호 각각 지정했습니다. 

그후 창녕 송현리고분군과 교동고분군은 서로 연대가 비슷한 5~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고분으로 추정되어 2011년 7월 두 고분군을 통합해서 사적 514호에 새롭게 지정했습니다.




창녕 송현리고분군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2

창녕 송현리고분군 연락처:055-530-1473





2018/04/1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동고분군을 만나다.

2018/04/0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2018/04/0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석빙고. 조선시대 얼음 창고 창녕 석빙고 여행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창녕 송현리고분군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 국가에 속했던 불사국인 비화가야시대의 고분군입니다. 

불사국은 창원의 옛이름인 비사벌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으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삼한소국으로 수록되었다합니다. 

창녕송현리고분군은 화왕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인 목마산 아래 구릉지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타타시가 고분군의 존재를 처음 알렸고 1917년 분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1918년과 1919년에 11기의 고분이 발굴조사 되었지만 21호 31호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등 허점투성이의 발굴이었습니다. 

당시 교리고분군과 함께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양이 마차 20대 분량과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속공예품이었다 합니다.



그 당시 나왔던 그 많은 유물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만 소장해 있고 나머지 유물은 대부분이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 합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밀반출되어 팔려나간 거로 보입니다.



송현리고분군은 가야시기 창녕지역의 고분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 합니다. 

그리고 큰 고분은 지름이 20m가 넘고 중소형을 합해 모두 23기가 현재 있습니다.

 


2002년~2006년까지 4년 동안 경남문화재연구원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2년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발굴 조사된 송현 6·7호 고분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배모양을 한 녹나무목관이 나왔습니다. 

그와 함께 토기 280여 점과 장신구·금동투조장식이 부착된 말안장 가리개와 말띠꾸미개 이외 마구류·무기류·농기구류 등 90여 점의 철기와 100여 점의 목기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이후인 2006년~2008년의 발굴조사에서는 15·16호 대형고분과 중형고분으로 보이는 17호 고분 그리고 작은 고분 7기에서 석곽 등의 유구를 조사했습니다. 

이들 고분을 조사하면서 이미 도굴된 상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봉토의 축조방법과 축조시기 등 다양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합니다.





또한, 2007년 12월 15호분에서는 4구의 순장 인골도 나왔습니다. 

남녀 두 쌍이 한 무덤 속에서 나왔으나 아쉽게도 도벌 꾼들로 인해 유골은 훼손되어 무덤의 신분조차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는지, 그중에서 어린 여자로 추정되는 한 인골만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 소녀를 송현리고분군에서 발굴되어 ‘송현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이 유골을 수습하여 컴퓨터단층촬영과 3차원 정밀 스캔. DNA 확인 등 최첨단의 장비로 분석한 결과 1500년 전인 16세 어린 나이에 순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인은 중독 또는 질식사로 추정되었으며 키 152cm의 소녀가 죽은 주인과 함께 죽임을 당해 묻혔다니 요즘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502년 신라 지증왕이 순장을 법으로 금지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실제로 순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창녕군에서는 이 순장녀인 송현이의 넋을 위로하는 창녕 문화재 탐방로인 둘레길을 조성해 '송현이길'로 명명했습니다.





송현이가 묻혔던 고분은 횡구식석실묘(앞트기식돌방무덤)로 무덤 입구가 따로 있어 추가로 장례할 수 있 는가족 공동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토기와 각종 장신구와 금동관 일부도 나와 무덤의 주인은 상당한 위치에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토기류는 뚜껑 달린 굽다리접시와 작은 굽다 리 긴 목항아리는 관 주위에, 굽다리긴 목항아리는 무덤 입구에서 나왔으며 마치 제사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합니다. 

창녕군을 알고싶다면 가장 먼저 교리고분군과 송현리고분군을 찾고 그리고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중인 교리고분군에 있는 창녕박물관을 찾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창녕박물관은 내부 리모델링 중이라 현재에는 관람할 수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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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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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남원/남원여행)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지리산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여행·


남원 실상사에서 세 번째 포스팅은 보광전 앞에 똑같은 모양을 한 동·서 삼층석탑입니다. 

실상사는 828년인 신라 42대 흥덕왕 3년에 흥척이 창건했으며 당시 구산선문의 실상산문으로 개창한 최초의 선종가람입니다.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전화:063-636-3031




2018/04/11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실상사 석등.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

2018/03/13 - (전북여행/남원여행)지리산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우리나라에 가장 큰 남원 실상사 철불을 만나다

2014/01/14 - (전북여행/남원여행)아이의 울음도 멎게하는 썰매타기. 지리산 남원 바래봉 눈꽃축제을 즐기다.남원 허브밸리 눈꽃축제

2014/02/27 - (전북맛집/남원맛집)광한루맛집. 춘향이와 이몽룡이도 먹어보고 반한 오리생소금구이 춘향테마파크 산촌가든.

2015/01/20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광한루. 성춘향과 이몽룡의 광한루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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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척은 당나라 유학에서 826년 귀국하여 왕실과 중앙귀족의 도움을 받아 실상사를 세웠으며 수철화상 등에 의해서 고려 초까지 사세를 확장하며 전성기를 맞습니다. 

그러다가 1468년에 화재로 폐사되면서 승려는 말사인 백장암과 인근 암자로 뿔뿔이 흩어져 수행했습니다.







그 후 215년 만인 1680년경 숙종 때에 실상사는 중창되어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조선 후기인 1883년 고종 20년에 유생의 어이없는 방화로 대적광전, 노전, 명부전 등이 불타고 말았습니다. 

그 이듬해 대적광전이 있었던 곳에 보광전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을 보겠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1875년(고종12년)에 오래되어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전형인 1금당 2탑 양식을 따랐습니다. 

두탑이 같은 형태인 쌍탑을 하고 있습니다.









지대석 위에 이중기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하층 기단 면석의 각 모서리에 우주와 중간에 탱주를 1개씩 새겼습니다. 

탑신부인 몸돌은 1층에서 3층까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1개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우주를 조각했고 지붕돌인 옥개석 처마 밑은 수평이며 4단의 층급받침에 2단의 몸돌 받침이 있습니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렸으며,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상륜부입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상륜부의 구성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석탑 중 하나입니다.

 








실상사 동 삼층석탑은 노반·복발·양화·보륜·수연·용차·보주로 이어지는 상륜부에 부재 사이에 간석이 있다면 서 삼층석탑에서는 수연만 결실되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의 높이는 동탑은 약 844cm, 서탑은 약 863cm이며 두 탑의 아름다움에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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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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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실상사 석등.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


남원의 대표사찰인 실상사에서 두 번째 포스팅은 석등입니다. 

실상사 석등은 1963년 1월 보물 제3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실상사는 통일신라인 828년 흥덕왕 3년에 흥척이 선종인 구산선문의 하나로 실상산문을 개창하면서 창건했습니다. 

실상사 석등은 보광전과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사이에 있었습니다.





남원 실상사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남원 실상사 전화:063-636-3031




2018/03/13 - (전북여행/남원여행)지리산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우리나라에 가장 큰 남원 실상사 철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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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은 불을 밝히는 곳을 말하지만, 그 의미는 “중생의 마음에 불법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부처님의 자비의 빛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석등은 하대석·중대석·상대석으로 나누어집니다.

 


실상사 석등도 마찬가지이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가운데 다 두고 밑에는 3단의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에다 머리장식을 올렸습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등 형식인 팔각원단형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특히 실상사 석등은 둥근 기둥이 장고 모양을 하여 예술성이 돋보이며 일반 석등의 밋밋한 기둥과는 차이가 난다고 하겠습니다. 

하대석인 받침 부분은 아래 받침과 위 받침돌에다 연화문을 새겼으며 8장의 꽃잎이 앙련과 복련으로 서로 대칭 하도록 했습니다.

 








팔각인 화사석 또한 각 면에 모두 8개의 사각창을 내었으며 창 주위에는 창문을 달기 위한 구멍이 나 있습니다.

 지붕돌 또한, 팔각이며 각 모서리의 귀 끝이 모두 치켜 올려졌으며 끝에는 돌출된 꽃 모양을 얹었습니다.





지붕 위에 또 다른 작은 원형 지붕을 얹은 점이 독특하며 머리 장식에는 화려한 무늬를 새겨넣어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실상사 석등은 큰 규모 때문에 화사석에 불을 밝힐 때 밟고 오르도록 돌사다리를 만들었으습니다. 

지붕돌의 귀끝 꽃무늬나 받침돌의 연꽃무늬가 형식적인 점을 들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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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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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리고분군을 만나다.


창녕군 창녕읍 내에서 만나는 고분군은 두 곳 있습니다. 

1963년 1월에 사적지로 지정했으며 사적 80호인 창녕 교리고분군과 사적 81호인 송현리고분군 입니다. 

2011년 7월 문화재청이 역사와 특성에서 두 고분군이 비슷하다고 인정되어 2011년 7월 통합해서 사적 제514호로 재지정했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4

창녕교동고분군 연락처:055-530-1473




2017/12/09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 지배지의 무덤 함안 말이산고분군 여행

2017/12/06 - (경남여행/함안여행)신라시대 석성 함안 성산산성에서 시간여행을 하다. 함안 성산산성·조남산성

2015/03/31 - (경남여행/김해여행)대성동고분박물관. 금관가야 발굴 유물 전시관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여행.

2013/12/28 - (충남여행/공주여행)공주 석장리박물관, 우리나라 조상도 구석기시대 인물, 석장리 유적지에서 확인을 하다. 석장리고분군

2008/12/10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 복천동고분군. 도심한복판의 U.F.O가 가야시대 고분인 복천동고분군




문화재의 보고인 경주에 버금간다는 창녕에도 고대부터 내려온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경남의 경주라 일컫습니다. 

왜 창녕에 많은 고분과 문화재가 있는지를 보면 이곳 창녕은 오래전부터 소국가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한의 12개 국가 중 하나였던 불사국으로 비화가야라고도 합니다.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수록된 삼한 소국의 이름이며 불사국은 경남 창녕의 옛 이름인 ‘비사벌(非斯伐)’에서 나왔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습니다. 

창원교동고분군과 송현리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능선의 목마산성 아래인 구릉지에 널리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다시에 의해서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에 1917년 분포조사를 시행하였고 1918년과 1919년에 11기의 고분 발굴이 이루어졌으나 제21호와 31호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등 완전 날림씩 발굴조사에 유물 반출만 이루어졌던 모양입니다.



당시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의 규모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마차 20대 분량과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예품이 박 쏟아져 나왔다 하니 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 유물만 소장해 있으며 현재 유물 대부분은 소재 불명 상태라 합니다.



당시 자료에는 금동관, 금동관모, 금·은제수식 등 많은 금장신구와 각종 마구류, 비늘 갑옷, 철제 무기류, 철제농기구와 토기 등이 나왔으며, 이는 창녕교동고분군의 출토 유물의 성격이 신라 서라벌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를 보고 교동고분군은 5~6세기 전반의 고분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다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의 고분은 현재 밝혀진 숫자만 103기나 됩니다.

제가 교동고분군을 답사하고는 먼저 큰 규모에 놀랐습니다. 

창녕박물관 왼쪽에도 여러 기의 큰 고분군이 있었으며 24번 국도 건너편에도 한 무더기의 고분이 구릉을 끼고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당집이 있는 고개 건너편에도 많은 고분군이 정비되어 관리하는 것을 보면서 김해, 고령, 대구와 경주 등 여러 고분군에 비해서 규모에서 창녕교동고분군도 전혀 빠지지 않을 듯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1992년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2004년 경남문화재연구원, 200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창녕교동고분군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동아대박물관에서는 1~4호의 고분을 발굴하였습니다. 횡구식 석실 구조를 확인했으며 이 고분에서도 다양한 토기류와 각종 금속유물이 나왔고 고분의 구조와 나온 유물에서 5세기 중반 이후에 조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04년 창녕문화공원 조성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횡구식석실분 13기와 통일신라 폐와무지, 조선시대 배수로 삼가마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고분군의 축조구조와 출입구의 형태 변화와 출토유물에서 고분의 조성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중반이라 보고 있습니다.







2009년의 창녕교동고분군 주차장 부지 발굴조사와 2011년 2012년 일제 강점기 때 발굴되었던 7호분의 고분군 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일제는 고분발굴조사를 하면서 고분은 뒷전이고 유물 수습과 반출을 하여 당시 남은 기록을 비교하며 우리 문화재 발굴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봉토와 축조과정, 매장 주체부의 내부구조를 파악할수 있었으며 이를 학술연구자료와 고분의 보존 정비에 기초자료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ㅎㅎ 발굴조사 과정에서 딱 철기 2점만 나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서 당시에 얼마나 유물을 쓸어 담아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발굴조사를 기초하여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는 고분으로 재정비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남 창녕 교동고분군을 보고 나서 이제 송현리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참고:2013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교동고분군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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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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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와 함께 창녕군에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그러니까 창녕군에서 두 점의 국보 중 하나가 이곳 술정리 동 삼층석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있는 것을 보니까 같이 술정리 서 삼층석탑이 어디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전화:055-530-1473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2015/12/18 - (경남여행/함안여행)용화산 능가사. 남지철교와 낙동강을 끼고 앉은 최고의 절집 용화산 능가사 여행하기.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맞습니다. 술정리 서 삼층석탑도 있으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 사찰로 보기에는 힘들어 보였고 술정리 동·서삼층석탑으로 명시된 것에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인근에 절의 표시나 절을 알리는 당(깃발)을 묶은 깃대를 고정한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일단은 사찰 터가 있었다고 생각되었으며 품었던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당시 가람배치의 형태는 대웅전 앞쪽에 좌우로 각각의 탑을 세우는 2탑 1금당 형식이며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절터에서 동·서 어느 쪽인지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라 이름 한 것도 1km쯤 떨어진 서쪽의 삼층석탑(술정리 서 삼층석탑. 보물 제502호)과 알기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진 명칭이라 합니다.







2004년 11월 (재)동아문화연구원에서 낸 보고서에서는 “2002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동삼층석탑에 대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고 석탑을 둘러싼 주변 사지(寺址)의 규모와 성격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의 수집을 위해 이 일대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한 결과, 동삼층석탑 주변 일대의 민가와 담장 등에서 확인되는 석재와 각종 문헌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 ‘인양사(仁陽寺)’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술정리 동 삼층석탑 일대는 인양사지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번 창녕여행에서 창녕 군청 옆 비각 안에 인양사 조성비를 보고 왔던 터라 그 조성 비문에서 인양사조성비를 금당 뒤쪽에 세웠다고 추정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 부근에 절의 중심건물인 금당이 있었고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인양사 삼층석탑이라 보면 인양사의 규모는 정말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이층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입니다. 

그리고 불국사의 석가탑과 비슷한 모습에 군더더기 없는 절제미에 위풍과 당당함을 갖춘 아름다운 탑이며 경상남도에 남아 있는 석탑 중에는 가장 오래된 탑입니다. 

일명 ‘사지탑(寺址塔)’이라고 불리는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1965년 해체복원을 했습니다.





당시 해체를 하는 과정에서 3층 몸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잔형사리용기, 사리병과 사리7과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현재 상륜부는 모두 남아 있지 않으며 납의 높이는 5.75m에 이릅니다. 

또한, 탑은 크고 웅장하며 기품있는 모습입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이층의 기단을 올렸습니다. 

아래 기단과 위층기단의 각 면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가운데 기둥인 두 개의 탱주를 새겼으며 몸돌은 각 모서리에 우주만 새겼습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끝 모서리님 귀가 약간 들렸습니다. 

그 아랫면에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2008년 10월~2009년 7월까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에서 석탑의 서편지역에서 문지로 보이는 건물지 1동과 계단 유구, 일부만 남아 있는 3동의 건물지를 확인했습니다. 

고려 시대로 보이는 건물지 1동에서 ‘송림사’ 명문이 들어간 기와가 발견되어 한때 송림사로 불렸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술정리 동삼층석탑을 보고 난 뒤 그 너른 광장 끝에는 국가 민속문화재 제10호인 창녕 진양 하씨 고택이 있습니다. 

이집의 특징은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초가집이란 점입니다. 

대문채에도 초가지붕이라 처음에는 이게 문화재인 초가집이구나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진양 하씨고택인 초가집은 이 대문채가 아니고 대문을 들어서면 그 안쪽에 자리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습니다. 

대문에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평일에만 개방하고 주말에는 폐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요일에 찾았던 터라 개인 살림집인 고택 주인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멀리서 찾아간 우리로서는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대문채 앞으로 기와건물인 사랑채가 있고 그 뒤에 초가지붕인 안채가 있어 밖에서는 까치발을 들어도 보고 보일만 한곳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아도 초가집이 워낙 낮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으며 다음번에 평일 날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구조는 4칸의 일자형 건물로 흔히 말하는 초가삼간입니다. 

맨 왼쪽 1칸은 부엌이며 그다음은 안방 1칸에 대청이 1칸, 대청과 연결된 건넛방이 1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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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 창녕술정리동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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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4.06 10:43 신고

    아쉽네요..초가집
    평일에민 개방한다니..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창녕 군청을 지나 왼쪽 아담한 산봉우리에 팔각정이 보였습니다. 

이곳이 창녕읍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손색없는 창녕문화공원입니다. 창녕문화공원을 찾다가 그 전에 왼쪽 아파트와 개인 주택 사이에 둘러싸인 밭 가운데 비각이 보였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창녕 인양사 조성비였습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번지

창녕 인양사 조성비 전화:055-530-1472




2013/01/07 - (경남여행/창녕여행)제주도 돌하르방이 왜 여기, 관룡사의 비보역활을 한 창녕 관룡사 석장승

2013/01/11 - (경남여행/창녕여행)관룡사 용선대.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반야용선을 의미,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좌상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관룡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부도탑이 원구형의 탑신에 불안. 관룡사부도탑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깨닮음을 얻어 도통할 것 같은 청룡암. 관룡사 청룡암.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2016/09/24 - (창녕여행)창녕석빙고. 요즘 같은 지진에 더욱 빛나는 우리 문화재, 석빙고의 무지개 천장에 내진 설계가 적용된 조선시대 얼음창고 창녕석빙고.




언뜻 생각해도 옛날에 인양사를 창건하면서 그에 관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문화재를 찾아다녔고 폐사지 여행을 다녔지만, 불상의 복장유물에 종이로 기록한 것은 여럿 보았지만 이리 비석에 사찰의 조성 기록을 남긴 것을 보는게 창녕 인양사 조성비가 처음 입니다.

 


일단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미라 창녕문화공원을 잠시 미루고 인양사조성비를 보기로 했습니다. 

창녕인양사 조성비는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좁은 폭에 양면에다 남쪽은 인양사 조성기록을 새겼으며 북쪽인 뒷면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는 통일신라시대인 771년(혜공왕 7년) 인양사 종을 만들면서부터 조성비를 세운 810년(헌덕왕 2년)까지 40년간의 행적을 기록해서 세운 비로 인양사(仁陽寺) 비상(碑像) 이라고도 합니다. 

인양사 금당 뒤쪽에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일대에서 신라와 고려 시대 때 만들어진 기왓조각 등이 여러 발견된다고 하며 규모로 봐서는 큰 규모의 사찰로 여겨집니다. 

이런 조성비까지 세워진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양사 조성비는 직사각형의 바닥돌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올렸습니다.





인양사 조성비의 비문을 보면 10행에 각 행은 28자로 해서체에서 변형된 육조체라 합니다. 

비문은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실려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인양사와 인양사와 관련 있는 여러 사찰의 범종, 석탑, 불상과 금당, 요사 등의 조성연대와 제반 사항을 빠짐없이 기재해 놓았습니다.



뒷면에 조각한 스님의 형상은 지장보살이라는 설도 있으며 인양사를 조성하면서 관련된 고승을 비석에 새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는 금석문과 연대가 확실한 불상 조각으로 귀중한 문화재라 합니다.

 


현재 인양사지에 지키고 있는 유일한 유물이지만 머리가 유실된 석불좌상 1구도 함께 있었다 하나 현재 석불좌상은 창녕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이 인양사조성비에는 6.25 한국동란에 비석의 서쪽과 북쪽에 총탄흔적이 있다 하며 이번 여행에 확인을 못 했습니다.

 


비석의 높이는 1.58m이며 폭은 48cm, 두께는 18cm이며 1963년 1월에 보물 제227호에 지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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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 | 창녕인양사조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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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30 10:47 신고

    우포늪 갈때 한번 들러야겠습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창녕 화왕산인 자하골 입구에 송현동 고분군이 있습니다. 

송현동 고분군을 끼고 미륵사란 작은 암자에 단청을 입힌 전각이 있으며 그 안에 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을 모셨습니다. 

미륵사란 명칭도 송현동마애여래좌상으로 인해 생긴 것 같습니다.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75호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2012/12/06 - (경남여행/창녕여행)얼마나 아름다워 홍예교인 무지개다리라 할까. 영산의 만년교

2013/01/11 - (경남여행/창녕여행)관룡사 용선대.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반야용선을 의미,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좌상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관룡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부도탑이 원구형의 탑신에 불안. 관룡사부도탑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깨닮음을 얻어 도통할 것 같은 청룡암. 관룡사 청룡암.

2015/06/20 - (경남여행/창녕여행)우포늪 둘레길. 국내 최고의 습지로 보호 받는 우포늪 생태길과 탐방로인 우포늪 둘레길을 걸어보다. 우포늘 둘레길




전각문을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정면에 꼭 반달을 닮은 둥근 바위에 단아한 모습의 마애불이 앉아 계셨습니다. 

이 마애불은 바위 면에다 바로 불상을 돋을새김 했으며 광배와 불상을 바치는 대좌는 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로 추정되며 마애불의 높이는 1.37m입니다.

 


머리 정수리에 두툼하게 솟은 육계는 지혜를 상징하고 아주 드물게 2단이며 소발은 둥글고 아담하게 표현했습니다. 

손동작인 수인은 악마을 항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이며 볼록한 뺨과 크지 않은 코, 작은 입, 어깨까지 내려온 귀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 줍니다.




어깨는 넓으나 가슴은 두텁지 않으며 가부좌하여 앉은 하체는 안정감이 돋보이며 조금 크게 표현했습니다. 

창녕송현동마애여래좌상은 자세와 얼굴의 표현, 한쪽 어깨에 걸친 법의 모양을 보면 석굴암의 본존불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법의의 주름은 사실성이 떨어지고 가슴이 평평하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함이 빠진다는 느낌이며 석굴암 본존불과 같이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신라말에 제작된 불상양식입니다.(참고:문화재 안내판)

 

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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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 | 창녕송현동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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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nnpenn 2018.03.30 07:13 신고

    편안하고 인자한 모습의 석불이네요.
    보물이라니 더욱 멋져 보입니다.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3월 마지막 주말을 잘 보내세요.




(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금오서원.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를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구미 선산읍의 금오서원을 찾았습니다. 

선산 비봉산과 형제봉 산행을 하고 나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47개의 서원은 제외되었는데 금오서원은 그중 한곳이라 해서 일부로 늦은 시간이지만 찾았습니다. 

아마 꼭 보아야겠다는 열망이 더 컸다 하겠습니다.

 금오서원을 보면서 왜!!!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야은 길재 선생을 배향한 선산 금오서원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야은 길재 선생을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전화:054-482-1435

선산 금오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




2014/11/14 - (경북여행/구미여행)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야은 길재를 추모 하는 정자.

2014/11/09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90도 각진 모서리를 깎아 섬세함이 돋보이는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2014/02/13 -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1/05/25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약사암.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금오산 약사암

2013/01/02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시 선산읍 수다사. 겨울 눈이 내려 흰 연꽂으로 피어난 연악산 수다사가 장관




이는 야은 길재 선생 때문이 아니었는지 싶습니다. 

고려 말에 고려의 충절을 상징하는 ‘삼은’이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 그리고 야은 길재입니다. 

그중에서 금오서원은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입니다. 야은 길재(1353년~1419년)는 고려말과 조선 초의 성리학자로 호는‘야은’ 또는‘금오산인’이며 시호는 ‘충절’입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2층 누각 출입문 읍청루







그는 고려가 망하자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어 세자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지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의를 굽히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길재는 낙향하여 선산의 금오산 아래에서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던 분입니다. 

김숙자 등 많은 문하가 그를 따랐으며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로 그의 학통은 이어졌습니다.





선산 금오서원 동·서재







야은은 고려가 망한 후에 옛 도읍지였던 개성(송도)을 찾아 읊은 ‘고려 유신 회고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조로 길재선생의 고려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1567년(명종 22년)에 선산의 유학자가 중심이 되어 선산부사 송기충에게 서원 건립을 건의하였습니다. 

이에 경상감사를 거쳐 조정에까지 알려져 재가를 얻어 1570년(선조3년)에 금오산 아래에 건립하였고 1575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에 모두 불탔습니다.



1602년에 금오서원은 현재의 장소인 선산읍 원리의 남산 아래에 옮겨 복원하였고 1609년 광해군 원년에 다시 중건했습니다. 

금오서원은 김종직과 정붕, 박영, 장현광을 추가하여 5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2층 누각인 읍청루, 강당인 정학당, 동·서재, 내삼문, 사당인 상현묘로 구성하여 전묘후학 양식을 따랐습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오현을 모신 사당인 상현묘









정학당은 강당으로 앞면 5칸에 옆면은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입니다. 

가운데 3칸 마루를 넣고 양쪽에 1칸의 온돌방을 앞쪽에는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5량 형식의 가구구조입니다. 읍청루는 2층 누각에 누하에 서원의 출입문인 문루를 두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 팔작기와지붕 건물로 겹처마입니다. 

사당인 상현묘는 앞면 3칸에 옆면 3칸이며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이고 5량가형식입니다. 

현재 선산 금오서원은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새롭게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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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 금오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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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28 09:52 신고

    여기도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여행. 오누이탑이라 불리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이번에도 국보급 문화재를 보고 왔습니다.

국보급이 아닌 국보입니다. 

역시 국보는 나라의 보물이라서 그런지 달라도 무엇이 다른가 봅니다. 

이번에 소개할 국보는 구미에 있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입니다. 

오층석탑에서는 가장 높고 웅장하며 크다고 합니다. 

처음 제가 탑 앞에 섰을 때도 탑의 웅장함에 움직일 수 없었으며 와!!!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전화:054-481-2736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국보 해평면낙산리삼층석탑제 130호



2008/07/10 - 경북여행/칠곡여행/구미여행)칠곡 금오동천~구미 금오산 산행.사람의 얼굴일까?.부처의 얼굴일까?-칠곡 금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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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0 - (경북여행/구미시여행)냉산(태조산)도리사. 신라 최초 사찰 도리사의 석탑이 처음보는 특이한 석탑 형태. 도리사



그러나 삼층석탑은 이정도 높이와 크기를 여러 개 봤습니다. 

경주의 고선사지삼층석탑,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등인데 죽장사 오층석탑도 수려함과 아름다움에서 이들 탑에 비해서 조금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국보 중 하나였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일명 오누이탑 또는 남매탑이라 부릅니다. 

웬 오누이 탑 하며 주위에 아무리 둘러봐도 석탑은 하나뿐이라 남매가 힘을 합쳐서 부처님의 탑을 만들었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은 누이가 만들었다면 오빠는 낙동강 건너 해평면의 낙산리 삼층석탑을 세웠다 합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두 개 내려옵니다. 

이야기의 출발은 같지만, 중반에서 전형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꼭 설화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엄마와 심청이에 나오는 뺑덕어미나 콩쥐·팥쥐에 나오는 계모와 같은 급의 나쁜 엄마가 등장합니다.





계모라고 다 나쁜 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엄마 상은 제가 보기에는 착한 엄마와 오누이의 친모로서 남매의 죽음을 거는 내기를 말리지는 않고 다부 부추기는 엄마입니다. 

각설하고 죽장사 오층석탑이 세워지게 된 유래를 보겠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에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남매의 힘겨루기로 세워졌다 합니다.

 








때는 아마 죽장사 오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을 보면 그 당시로 추정됩니다. 

오누이는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이들 남매는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괴력인 힘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놀기 삼아 오누이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여기서 죽장사오층석탑의 이야기가 갈라집니다.





먼저 우리 정서상 착한 엄마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남매를 앉혀놓고 지난번 스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스님이 이곳이 절터라고 했다며 어머니는 이곳에다 탑을 세우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남매는 서로 탑을 내가 세우겠다 하였고 어머니는 둘이 힘을 합해서 탑을 완성하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남매는 서로 탑을 세우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딸에게는 여기서 탑을 쌓고 아들은 낙동강 건너에 탑을 쌓는 것이 어떠냐 하며 제안하면서 먼저 쌓는 쪽이 이긴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먼저 쌓기를 원했지만, 딸의 탑 쌓기가 훨씬 빨랐습니다. 

그래서 딸의 탑 쌓기를 늦추기 위해서 궁리 끝에 딸에게 심부름도 시켰지만, 아들은 누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자꾸만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비장의 카드로 펄펄 끓는 팥죽을 끓여 딸에게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으면 아들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딸이 먼저 오층석탑을 완성했습니다.

아들도 누이가 이기자 탑 쌓기를 그만두었고 그게 오늘날 낙산리 삼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나이가 스무 살 즘 되었을 때 심한 충돌로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의 목숨을 빼앗는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 내기가 바로 아들은 50리 떨어진 금오산의 큰 돌을 가져오는 것이고 딸은 돌을 열 두자 높이로 탑을 쌓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먼저 끝내는 쪽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내기는 시작되었지만, 남매의 어머니는 딸이 이기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아들에게는 멀리 심부름을 보내는 등 방해 공작을 벌였습니다. 

다음날 해는 떠올랐고 딸은 마지막 돌을 탑의 꼭대기에 올리면서 탑을 완성했으나 아들은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낑낑대며 바위를 지고 오던 아들은 동네 어귀에서 누이가 완성한 탑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뒤로 나 자빠졌습니다.

 


아들은 죽는 것이 두려워 그 길로 바위를 버리고 냅다 도망쳤으며 그때 버린 바위가 아직도 동네 어귀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후자에 등장하는 남매의 어머니란 분도 참 대단합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뜯어말리지는 못할망정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정서상 맞지 않는 설화로 보이며 구미 설화집에 있는 내용입니다.





하여튼 국보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석탑 이야기이며 그때 딸이 쌓은 석탑이 오늘날 죽장사 오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현재 상륜부의 노반을 뺀 나머지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전체 높이는 약 10m에 오층석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규모입니다.



지대석은 18개의 장대석으로 탑을 지탱하게 했습니다. 

그 위에다 2단의 기단을 만들었습니다. 

아래층 기단은 14개의 넓은 돌로 구성했으며 그 위에 18개의 갑석을 올렸습니다. 

운주나 탱주는 보이지 않으며 그 대신 위층 기단은 각모서리 기둥인 운주가 2개이고 가운데 버팀 기둥인 탱주를 각각 3개씩 새겼습니다.

 






1층 몸돌 남쪽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감실이 있으며 문을 달았던 흔적인 작은 구멍이 남아있습니다. 

감실의 크기는 가로 66cm, 세로 107cm 크기로 최근 안치한 불상이 있습니다. 

각층의 몸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낮아지며 각모서리의 기둥도 없습니다. 

죽장사오층석탑은 전탑(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으로 추정하는데 옥개석(지붕돌)의 경사면이 전탑에서 볼 수 있는 층단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죽장사에서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국보인 오층석탑과 당간석 1개와 종형인 부도, 이곳이 옛 절터였음을 알리는 부재가 한쪽에 있습니다. 

죽장사는 최근에 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지만 제 눈에는 오직 죽장사 오층석탑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죽장사를 둘러보던 중 한쪽에 선산갑오동학농민군의 총지휘를 했던 한문출장군과 항일독립투사 한중석선생이 피신하고 은거했던 곳이라며 작은 기념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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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 죽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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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27 09:23 신고

    국보를 보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여기를 한번 다녀 와야겠습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진흥왕척경비는 통칭하여 진흥왕순수비라고도합니다. 

신라 24대 진흥왕이 창녕지역의 비화가야인 비사벌을 6세기에 멸망시켜 영토를 확장하고 나서 여러 신료와 순행을 단행했는데 창녕에서 국가적 중대사를 논의하고 그 사실을 기념하는 비를 세웠습니다. 

이 비가 561년인 진흥왕 22년에 세운 창녕진흥왕척경비입니다.





창녕 만옥정공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

창녕 만옥정공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전화:055-530-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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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2 - (경남여행/창녕여행)영산 석빙고. 조선시대 냉장고는 어떤 모습일까요.영산 석빙고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만호정공원내 언덕에 있으며 국보 제33호입니다. 

원래 창녕진흥왕척경비는 지금의 위치에서 동쪽인 창녕읍 말흘리 85-4번지인 창녕여중고 병설 유치원 담장 아래쪽에 있었습니다. 

1914년 일본인 토리이 류조가 창녕의 고적을 조사하던 중 그때 보통학교장이던 하시모토 료조가 신라비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렸습니다.



이를 조선총독부에 조사 보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17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고적조사사업의 하나로 비에 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대정육년도고적조사보고’에다 조사결과를 수록했습니다. 

그 후 1924년 진흥왕척경비는 지금의 위치인 만옥정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창녕 진흥왕척경비 앞 안내판을 참고하면 비문 첫머리에 ‘신사년(辛巳年) 2월 1일 입(立)’이라 판독되는데 이는 561년 진흥왕 22년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진흥왕이 세운 4개의 순수비에서 창녕 진흥왕척경비 가 가장 앞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녕진흥왕척경비 비문 판독문과 해석





창녕진흥왕적경비는 편편하고 면이 매끄러운 화강암을 약간 다듬은 상태에서 비문을 새겼으며 개석이 없고 인명과 관등 표기방식이 독특하며 조각된 글씨는 해서체와 비슷하다 합니다. 

총 글자 수는 642자에서 400자 정도가 판독되었으며 앞부분은 마멸이 심하지만, 뒷부분은 관련 인물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모두 27행이며 한 줄에 보통 26자씩이며 마지막 줄은 3자를 새겼습니다. 

돌의 크기는 178cm, 폭은 175cm, 두께는 약 30cm입니다.


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원위치






1922년 진흥왕척경비의 모습                                           1914년 발굴 조사 모습                                       1914년 발굴 조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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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 | 만옥정공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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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26 06:49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8.03.26 09:08 신고

    이제 저도 창녕으로 여행 다닐때가 되어 가는것 같습니다 ㅎ





(경남여행/거제도여행)바람의 언덕~우제봉 둘레길 산행. 거제도 동백꽃 산행지 바람의 언덕~우제봉 둘레길


남해안은 2월과 3월에 동백꽃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습니다. 

그만큼 겨울에 피는 동백꽃이 유명합니다. 

특히 거제도의 동백꽃은 지심도가 가장 유명합니다. 

그러나 거제도의 동백은 지심도의 명성에 가려 알려지지 않은 동백꽃 군락지가 여러 곳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관광지로 유명한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 해금강마을, 우제봉이 있습니다.




거제도 바람의 언덕 주소: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곷리 산 14-47 도장포마을

거제도 우제봉 주소: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곷리 산 2-16



2016/09/09 - (거제도여행)수선화 화원 공곶이. 거제도 새로운 관광 1번지 공곶이, 봄의 수선화는 천상의 화원이라면 몽돌과 파란바다도 최고.

2016/09/08 - (거제도여행)거제 서이말등대. 거제도 동쪽 끝에 쥐의 귀 끝인 서이말에 있는 등대를 아세요? 서이말 등대를 찾아가다.

2015/10/27 - (경남여행/거제도여행)외도 보타니아. 한국의 파라다이스, 환상속의 섬 외도 보타니아 여행.

2015/03/25 - (경남여행/거제여행)거제 학동 진석중가옥. 등록문화재 제277호 한식과 일식의 절충식 건물 거제학동 진석중가옥.

2015/03/26 - (경남여행/거제여행) 구조라해수욕장과 샛바람소릿길, 망치몽돌해변을 걸었습니다. 거제도 걷기여행.

2016/09/03 - (거제도여행/거제도가볼만한곳)거제와현봉수대. 거제 동쪽 끝 최고의 조망대, 거제 해금강. 보타니아 외도, 내도, 지심도, 가덕도, 대마도 전망대 와현 봉수대.



신선대

어느 곳보다 관광명소로 유명하지만, 동백꽃 군락지로는 덜 알려져 있어 트레킹 겸 나만의 동백꽃 길을 걷고 즐겼습니다. 

바람의 언덕~우제봉 둘레길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쪽빛 바다 조망에 탄성을 자아내는 최고의 경관 코스였습니다. 

그래서 경관 조망은 물론이고 꽃 중의 꽃인 겨울 동백꽃을 보려고 거제도 우제봉 둘레길을 찾았습니다.




거제도 우제봉 둘레길 경로는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신선대 입구인 도장포마을을 출발해서 ~도장포 선착장~~바람의 언덕~당산~해금강마을 갈림길~곶개봉~해금강 선착장~ 해금강 주차장~우제봉 전망대~해금강 주차장~신선대 전망대~신선대 입구~신선대를 거쳐 출발지였던 도장포마을 입구로 되돌아오며 총 7.5km 거리에 3시간30분~4시간 쯤 걸리는 원점회귀 코스입니다.





우제봉 둘레길 출발은 시내버스가 다니는 도장포 버스정류장 앞에서 시작합니다. 

도장포마을과 신선대를 알리는 큰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오른쪽에 해금강테마박물관이 있으며 그 옆에 신선대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신선대는 우제봉을 돌아 둘레길 막바지에 보기로 하고 먼저 도장포버스정류장에서 왼쪽 도장포 선착장으로 내려갑니다.






바람의 언덕의 명소인 풍차가 정면에 보입니다. 

곧 왼쪽 담장에 ‘순례자의 교회’ ‘별 그대 동백나무 숲길’ ‘유람선 타는 곳’ 안내판이 있습니다. 

직진해서 유람선이 있는 선착장으로 바로 내려가도 됩니다. 

그러나 동백나무 숲길을 보고 한 사람이 기도할 수 있는 크기의 초미니 교회인 ‘순례자의 교회’도 볼 겸 안내판이 가리키는 왼쪽으로 갑니다.







입구부터 큰 둥치의 동백나무가 반깁니다. 

수령이 최소한 300~400년이 넘었다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대단한 기세입니다. 

동백꽃의 사열을 받으며 그 아래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순례자 교회 계단을 내려갑니다. 

교회 문을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진짜 한 사람이 기도할만한 공간이었습니다.




바람의 언덕


도장포마을



유람선을 타는 선착장을 돌아가면 바다로 나가는 해상 덱 앞입니다. 

여기서 오른쪽 ’바람의 언덕‘을 오르는 덱계단이 있습니다. 

바람의 언덕을 뜻하는 매서운 겨울 바람 대신에 오늘은 포근한 날씨 탓인지 많은 관광객이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바람의 언덕 주변은 가릴 것이 없는 시원한 조망을 펼쳐줍니다. 

학동에서부터 북병산 망치마을 구조라 해수욕장 그리고 오른쪽 쥐꼬리처럼 길게 튀어나온 망산의 서이말등대, 내도와 거제도의 파라다이스라는 외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습니다.







끼익 끼익 힘들게 돌아가는 풍차를 지나고 덱계단을 직진해서 올라가면 갈림길입니다. 

오른쪽 길은 출발지였던 도장포 입구로 다시 나가며 해금강마을은 직진하는 통나무 계단을 오릅니다. 

이곳부터 산길 주변의 나무는 거의 동백나무 군락지입니다. 

급경사 계단 길을 지나면 2층 정자가 있으며 또다시 오르막을 오르면 똑같은 형태의 정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키 큰 나무에 가려서 전혀 조망이 없는 이런 곳에 왜! 정자를 세워야 했는지 그렇다고 관광객이 이곳까지 많이 오는 곳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나 ‘떡 본 김에 재사 지낸다’고 여기서 잠시 쉬었습니다. 

곧 만나는 무덤봉은 155.2m 봉이며 그 옆에 165m인 당산이 있습니다. 해금강마을 주민은 이 봉우리를 마을의 안영을 빌어주는 당산이라 부릅니다.

 




지금은 마을까지 2차선 도로가 뚫려 있어 차로 쌩 쌩 다니지만, 그 이전에는 도장포마을에서 산허리를 돌아 당산 아래로 난 고개를 넘어 다녔다 합니다. 

무덤 옆에는 지명이 떨어져 나간 이정표로 둘레길을 걷는 우리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잘 가고 있다는 위치 표시로만 짐작하며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내려갑니다. 

오른쪽 나무 사이로 처음 해금강이 모습을 드러내며 조릿대 사이로 난 계단을 내려서면 안부에서 오늘 처음으로 해금강이 전체적으로 보였습니다.







안부를 지나면 짙은 대나무 숲에 해금강마을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제봉에 곧장 가고자 한다면 오른쪽 해금강마을로 내려가면 됩니다. 

곶개봉을 올랐다가 해금강마을로 가려면 이정표에서 아무런 포시가 없는 왼쪽 오르막길입니다. 

곶개봉 정상을 오르는 곳은 숫제 동백나무 터널입니다.





답사 때에는 초반이라 동백꽃이 꽃망울을 맺어 꽃필 준비를 하였는데 동백꽃이 폈다 졌다 할 때는 장관일 듯싶었습니다. 

곶개봉(135m) 정상은 남쪽인 해금강과 우제봉, 해금강마을이 움푹 꺼진 항아리 형태로 보였습니다. 

북쪽은 내도와 외도 구조라와 노자산, 북병산 조망이 시원하게 열려 빼어난 조망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을 주민이 가끔 올라오는지 그네도 걸려 있고 해금강 방향으로 벤치도 놓여있어 쉬어가기 좋았습니다. 

하산길에 바람을 막아주는 따뜻한 곳에는 어김없이 동백꽃이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정상에서 10여 분이면 삼거리 도로에 내려섭니다. 

직진해서 도로를 내려갑니다. 도로가 왼쪽으로 꺾는 곳에서 오른쪽 나무난간이 설치된 보도블록 길로 향합니다.







왼쪽 소나무 숲 사이에 해금강의 사자 바위가 보이고 해변에 널린 바위에는 낚시꾼이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펜션 앞에서 오른쪽 마을길로 내려가면 제일 횟집 앞 갈림길입니다. 

여기서 해금강 선착장의 해금강 최고 비경을 보려고 왼쪽으로 내려갔다 되돌아옵니다. 

우제봉 덱 전망대와 함께 해금강선착장은 바다의 금강산인 해금강 전망대로서 알아주는 1급 전망대입니다.




해금강 선착장은 거제도 일출의 백미인 사자바위 일출 촬영 포인트입니다. 

3월에는 전국에서 사진작가 들이 사자바위 일출 촬영을 하려고 선착장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다합니다. 

ㅎㅎ 저도 꼭 한번 그 장관을 접하고 싶습니다. 

되돌아 나와 제일횟집 앞을 지나서 ‘주차장 가는 길’ 안내판을 보고 왼쪽 골목으로 올라가면 해금강 주차장이 나옵니다. 

해금강 주차장 직전 도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해금강 호텔 방향으로 갑니다.







해금강 유람선 선착장 가는 길과 해금강호텔을 지나면 시멘트 포장길 끝에서 오른쪽에 우제봉과 서자암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서자암 직전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낮인데도 짙은 동백나무 숲이 어두컴컴했습니다. 

덱계단을 올라서면 능선 갈림길입니다. 

왼쪽 우제봉 전망대에 갔다가 되돌아와 이곳  갈림길에서 직진해서 해금강 주차장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우제봉 덱 전망대는 해금강과 그 반대쪽의 대·소병대도, 매물도 등 막힘없는 경치였습니다. 

이곳 우제봉에는 최고의 선경지대를 뜻하는 해금강이란 닉네임이 말해주듯 중국 진시황이 서불과 동남동녀 500명을 제주도의 삼신산에 급파해서 불로초를 구하게 했습니다. 

삼신산에서 불로초를 구할 수 없자 서불 일행은 남해의 경승지를 뒤지다가 서불은 항상 왔다갔다는 흔적을 바위 남겼습니다. 

그게 “서불이 다녀가다”라는 뜻의 ‘서불과차’이며 우제봉 정상아래 바위에 각자해 있었습니다.


해금강

우제봉



그 '서불과차' 각자는 1958년 사라호 태풍에 바위가 떨어져 나가 지금은 바위의 흔적만 남아 있다 합니다. 

우제봉(107m) 정상은 군 시설물로 올라갈 수 없지만 그 아래까지 덱계단이 놓여 있어 그곳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와 삼거리에서 직진합니다.

 








해금강 주차장 못 미쳐 동백나무 군락지도 덱 길이 놓였으며 해금강마을에서 동백꽃을 볼 수 있는 최고 비경 코스로 추천하는 곳 입니다.  

그러나 아쉽지만 시간관계로 직진해서 해금강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도장포마을로 향했습니다. 

인도가 따로 없어 마주 달리는 차로 주의해야합니다.

 


왼쪽으로 동백나무 사이에 보이는 해금강과 해금강마을, 그리고 우제봉의 전경은 오늘 바람의 언덕~우제봉 둘레길의 최고 하이라이트였습니다. 

푸른 바다와 기암이 꼭 육지 속의 호수에 솟은 금강산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금강산이라 하며 해금강을 명승지 2호에 선정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면 쌈지공원에 조성된 신선대전망대가 나옵니다.

 








발아래 신선대가 보이고 대·소병대도와 매물도, 가라산이 늬엿늬엿 지는 해에 더욱 붉게 변했습니다. 

다시 우제봉 둘레길 출발지인 도장포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신선대를 보기 위해 돌계단을 내려갑니다. 

꼭 배의 돛대처럼 큰 바위가 서 있는 신선대는 옆에 자갈마당을 안고 있어 더욱 운치 있었습니다.

 되돌아 나와 신선대 입구 출발지에서 바람의 언덕~우제봉 둘레길을 마무리했습니다.

 




거제도 신선대. 바람의 언덕, 도장포마을, 해금강마을, 우제봉 대중교통편.

부산서부터미널에서 거제시 고현시외버스터미널행 버스를 탑니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6:00~22:00까지 운행하며 20분 간격, 심야버스 23:00 운행,

 고현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해금강행 55번(6;25, 9;05, 11;05, 13;05, 1705, 18;25) 시내버스를 타고 도장포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끝. 우제봉 둘레길을 마친 후 해금강주차장이나 도장포마을에서 고현시외버스터미널행(7:35, 12:38. 14:38. 16:38, 18:48, 19:30)은 각각 총 6회 운행합니다. 

고현에서 부산서부(사상)터미널행은 6:00~21:30까지 약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심야버스(22:00, 23:00)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내비 검색은 해금강테마박물관 입력


우제봉둘레길 지도



우제봉둘레길 고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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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산 14-47 도장포마을 | 바람의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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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20 06:45 신고

    해외에 온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 정말 잘 보고 갑니다




(경북여행/군위여행)대율리 한밤마을 돌담길 여행.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을 만나보세요


대구와 군위를 경계 짓는 팔공산 북사면인 부계면에 팔공산을 이고선 마을이 있습니다. 

1,000m가 넘는 높은 팔공산이 마을을 감싸 않아 아침 해가 늦게 떠올라 항상 한밤중 같은 마을이라 해서 한밤마을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군위 한밤마을 돌담을 보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테마 거리 경북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56


2018/03/16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대율리 대청. 돌담이 이쁜 마을 가운데 특이한 쉼터 군위 대율리 대청

2018/01/30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 돌담이 있는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여행

2017/07/19 - (군위여행)선방산 지보사삼층석탑. 예술성이 뛰어난 군위지보사삼층석탑

2015/07/11 - (경북여행/군위여행)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석굴암에 군위 삼존 석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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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대구 시내에서 한티재를 넘는 줄 알았는데 팔공산 아래에다 바람구멍인 팔공산 터널이 새롭게 뚫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오를 것을 걱정했던 마음은 기우였습니다. 

차는 2018년 대구의 번잡한 도심에서 타임머신을 탄 듯 순식간에 1970년대에 멈춰선 산골 마을에 나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여러 번 군위여행에서 군위 삼존불을 보러 왔었습니다. 

그때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 보지 못했던 한밤마을 돌담길을 이번 여행에서는 오로지 한밤마을과 주위를 둘러볼 욕심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에는 시간에 쫓기는 부담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의 유래를 보면 고려 중기에 재상을 지냈던 홍란이라는 선비가 처음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어 대야(大夜)라 불렀다고합니다. 

그러다가 밤을 뜻하는 夜 자를 밤 栗 자로 고쳐 대율(大栗)이라 하면서 한밤마을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한밤마을은 부림 홍씨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한밤마을의 특징은 제주도의 돌담마을과 닮은 마을의 담장이 사람 머리만 한 돌로 쌓아 돌담이 유명한 제주도와 비교 된다고 해서 육지 속의 제주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많은 돌이 다 어디에서 나왔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한밤마을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살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편편하게 터를 고르는데 땅 밑에서 무수한 돌이 쏟아져 나와 이를 처리하려고 집의 경계인 돌담을 쌓았는 게 오늘날 한밤마을 돌담의 시초라 합니다.





오로지 돌만으로 쌓았다는 것을 눈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돌담의 높이는 낮은 곳은 장정의 허리와 놓은 곳은 어께 높이로 쌓아 숨길 것이 없다는 듯 집안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웃과 왕래하는 우리 선조의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느껴졌으며 또한, 홍씨 집성촌을 이루다 보니 더욱 그러했던 게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돌담에 눌러앉은 세월의 더께는 이끼에서 알 수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구불구불 이어지는 마을길은 모나지 않은 훈훈한 우리네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분 모두 친절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비보림인 소나무 숲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강 홍천뢰장군이 의병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라합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중간쯤에 작은 암자인 대율사가 있습니다. 대율사 안에는 보물 제988호에 지정된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이 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불상이 남아 있으며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오래전에 한밤 마을 일대가 아주 큰 사찰 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 가운데 군위 대율리 대청이 있는 곳이 범종이 걸렸던 대종각 자리였다 합니다.


한밤마을 남천고택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은 신라시대 석불상이며 폐사전 큰 사찰의 본존불로 모셔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 옆 남천고택은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옥체험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남천고택이 현재 군위군에 남아 있는 고택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상매댁(上梅宅), 쌍백당(雙柏堂)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남천고택은 입향조인 홍노선생의 10세손인 홍우태의 살림집이었으며 그 후 대대로 맏손자가 물려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랑채는 1836년 현종 2년에 지어졌으며 고택의 배치는 ‘흥(興)’자형의 독특한 모양이었으나 1945년 광복 이후 중문채와 아래채를 철거하고 대문채를 옮기면서 가옥의 구조가 바뀌었다 합니다.







남천고택과 나란히 있는 군위 대율리 대청은 대청 옆에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50년 된 잣나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율리 대청은 조선 전기에 세워졌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며 그 후 여러 번 중수되었다가 1705년인 숙종 32년에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율리 한밤마을 비보림





한밤마을의 최대 볼거리는 역시나 자연돌을 차곡차곡 쌓은 돌담입니다. 

봄을 알리는 매화가 기지개를 켜고 한밤마을 돌담에 산수유나무가 참 많았는데 지금쯤이면 노란 산수유 꽃이 살포시 돌담에 내려 앉아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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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56 | 군위한밤마을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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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한수정. 충재 권벌을 추모하는 봉화 춘양 한수정 여행. 


경북 봉화군 춘양 면소재지인 의양리 134번지에 머리를 식히기 아주 좋았을 정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한수정(寒水亭)인데 뜻을 보면 “찬물과 같은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역시 찬물을 한 바가지 둘러써야 잘 되는가 봅니다. 춘양면 소재지인 춘양장터 인근에 있는데 아침을 먹으려고 나섰다가 찾게 되었습니다.





충재 권벌의 봉화 한수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2018/02/26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계서당.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여행

2018/03/06 - (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만회고택

2018/01/24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군청맛집 자갈마당. 아침에 좋았던 봉화 자갈마당 자연산 송이 국밥

2017/12/20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2017/11/16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 송이버섯 맛집 인하원. 봉화군청 봉화역 맛집 봉화 인하원 송이버섯





사방은 낮은 담장으로 둘려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출입문이 꽉 잠겨 있어 속속들이 내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낮은 담장 덕분에 수려한 한수정의 정원과 건물은 멀리서 보는 것 만으로도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수정이 있는 이곳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재(沖齋) 권벌(權伐. 1478~1548)이 거연헌(居然軒)이란 건물을 처음 지었다가 소실하자 그의 2대손인 석천(石泉) 권래(權來. 1562~1617)가 1608년(선조 41년)에 다시 건물을 짓고 한수정이라 이름 했습니다.






1741년인 영조 17년에 중수했다가 1991년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 일부가 불탔으며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원래 상태로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충재 권벌은 본관이 안동이며 호는 충재 또는 훤정(萱亭), 시호는 충정(忠定)입니다.







1496년 연산군 2년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1507년인 중중 2년에 문과에 급제해 사관과 삼사, 승정원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을사사화 때 소윤일파에 의해 삭주로 유배 가서 그곳에서 숨졌으나 선조 때 신원이 회복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봉화 삼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한수정 정자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T'자형 건물이며 홑처마 팔작지붕건물입니다. 바닥은 1단을 높였고 양측에 각각 2칸인 온돌방을 넣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를 깔은 형태입니다. 한수정 주위 3면에는 와룡연이라는 연못을 팠으며 초연대라 불리는 넓은 반석과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된 회나무 등이 둘린 아름다운 정자 정원입니다.

 






한수정은 경암 이한응(1778~1864)의 춘양구곡가(春陽九曲歌)에서 제 8곡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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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 봉화한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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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08 06:58 신고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8.03.09 06:53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봉화여행을 하면서 1박을 청했던 곳이 아름다운 지명인 바래미마을의 소강고택입니다. ‘바래미’는 바다였다는 뜻이며 아주 오래전에 이 일대가 바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최근까지도 마을 안의 논과 웅덩이에서 조개들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마을이 포근하고 아늑한 게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봉화 해저 만회고택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485

중요민속자료 제169호





한옥스테이를 했던 소강고택 포스팅은 다음에 하고 우선 바래미마을 인근에 있는 해저만회고택을 포스팅하겠습니다. 소강고택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계속 누워 있기도 뭐하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마을 구경삼아 동네 한 바퀴 했습니다. 소강고택 이외에도 많은 고택이 즐비했는데 그중에서도 소강고택의 건너편 마을에 있는 해저 만회고택을 이정표만 보고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해가 떠오르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찾아가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외관만이라도 만나볼 욕심에 찾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대문이 없는 개방식 비슷한 고택이었습니다. 주위 고택은 솟을 대문에 높은 담장이 둘러싸여 바깥에서는 전혀 내부를 볼 수 없었는데 만회고택은 대문이 없어서 바깥에서도 훤하게 사랑채가 잘 보였습니다.

 


특히 새벽바람을 가르며 시골 마을을 걸을 때는 개 짖는 소리에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러워 마을을 둘러보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래도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만회고택은 집을 지키는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만회고택의 자랑인 사랑채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으며 집주인이 잠에서 깰까 싶어 조용하게 사진을 찍고 소리소문없이 나왔습니다.



만회고택은 봉화군에서 애국심으로 큰 자랑인 고택건물입니다. 건물의 웅장함도 있지만 만회고택의 사랑채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이라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봉화 해저 만회고택이 자리한 해저리에는 조선 숙종 때 관찰사를 지냈던 팔오헌 김성구 선생이 처음 자리를 잡아 의성김씨가 세 가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의 만회고택인 안채는 김건수씨 6대조께서 마을에 들어와 여씨(余氏) 성을 가진 분이 살던 집을 사들여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안채는 1690년대에 지어졌다 합니다. 이 집을 만회 고택이라 부르는 것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건수(1790~1854)선생의 호인 만회헌(晩悔軒)에서 따왔습니다.



만회고택의 사랑채인 명월루(明月樓)는 만회선생이 건립했으며 1850년에 전체적인 수리를 했다고 합니다. 백두대간의 흥 걸 찬 기원이 감도는 명월루의 지세는 예로부터 명산 대천을 찾는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닦던 곳으로 이곳에서 약 1,000여 편의 시가 쓰였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명월루는 봉화 해저리에서 독립운동의 산실역을 담당했다 합니다. 특히 해저마을 주민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14명의 독립운동가를 마을에서 배출한 독립유공자 마을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성주 대가면 출신인 심산 김창숙 선생이 명월루에 거처하면서 해저마을의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독립 자금도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랄 일은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열렸던 제2회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비밀리에 파견하면서 독립청원서를 보냈는데 독립청원서의 초안을 명월루에서 작성하였다고 하며 독립유공자 마을인 해저 마을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 외 많은 독립운동의 지원 등을 의논했던 장소에 명월루가 이용되었다 하니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현장입니다.



사실 만회고택의 안채는 이른 아침이라 내부를 볼 수 없어 많이 아쉬웠지만, 사랑채인 명월루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만회고택 명월루를 알아보겠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게 사랑채인 누각형태의 명월루입니다.





사랑채가 명월루임을 알리는 현판이 돌출한 누마루에 달렸어 눈에 확 띄었으며 이외에도 만회고택과 사랑채의 툇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을 느낀다는 청풍헌 현판도 따로 걸려 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4칸이며 옆면 1칸 반 규모로 만회고택은 앞쪽에 일자형의 중문간채와 'T'자 형의 사랑채, 안채는 ‘∩’자형이며 전체적으로 튼 ‘ㅁ’자 배치입니다.



안채를 중심으로 좌우로 연결된 건물이 사랑채로 이어지며 안채의 동쪽 날개 끝에서 동쪽으로 치우쳐져 사랑채가 자리했습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했으며 전면의 툇마루와 누마루에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사용하여 건물의 멋과 권위를 한층 더 높였습니다.





사랑채 옆의 안채로 드나들던 출입문인 중문간채는 퇴락하여 1981년에 철거했다가 다시 복원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찬찬히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 남의 집을 찾아서 내 욕심대로 보는 것도 실례이고 그리고 소강고택에서 다음 일정으로 일행들도 기다릴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 나왔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해저 만회고택에서 한옥체험 민박도 하고 보지 못했던 안채와 수박 겉핥기로 보았던 사랑채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챙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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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485 | 해저만회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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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07 06:50 신고

    주말에 찾기 참 좋은 곳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전남여행/광양여행)도선국사의 중흥사 삼층석탑, 광양 중흥사 쌍사자석등 모작을 만나다.


광양 백운산 둘레길 7코스를 걸으면서 중간에 만났던 중흥사. 중흥사을 휘감은 편백숲이 사찰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었으며 청량감까지 들었습니다. 중흥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께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중흥사 당우는 폐사된 절터를 1963년에 중건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중흥사의 사격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석조물인 중흥사삼층석탑과 쌍사자 석등, 석조지장보살반가상 뿐입니다.




광양 여행 중흥사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90-1

광양 여행 중흥사 전화:061-763-6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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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사의 흥망성쇠는 중흥산성과 아주 밀접합니다. 중흥산성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초기로 보고 있는데 이는 출토된 와편 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중흥산성의 규모는 중흥사 뒤의 200~400m 대의 6개 산봉우리와 계곡을 끼고 조성된 포곡형 토성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중흥산성이 승병과 의병의 훈련 장소가 되었으며. 승병과 의병의 훈련장이란 정보를 입수한 왜군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때 의병과 승병은 모두 전사하고 중흥사도 함께 불타면서 폐사되었습니다. 필자는 중흥사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게 예술성이 뛰어나면서 화려한 중흥사 삼층석탑과 중흥사쌍사자석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중흥사쌍사자석등은 국보 제103호로 지정되었지만 중흥사에 있지 않고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의 운명도 참 기구합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조선 말기까지 중흥사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삼층석탑과 함께 궂궂하게 하늘을 받치며 그 자태를 뽐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놈들이 있었으니 그게 일제강점기 때인 1913년에 일본인이 밀반출을 시도하려다가 주민의 강력한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에는 경복궁에다 보관했습니다. 그러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이관하여 보관 중인데 하루빨리 원래 자리인 광양의 중흥사로 옮겨 왔으면 합니다.

 






현재 중흥사에는 중흥사쌍사자석등의 모조품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이 창건 당시 위치가 맞는다면 현재의 가람배치인 대웅전의 위치는 많이 달라져보입니다. 보통 금당을 중심으로 가운데 삼층석탑을 세우고 그 좌우에 석등을 배치하는 순서로 짐작하건대 말입니다.











그럼 필자가 보고 감탄과 함께 탄성을 질렀던 중흥사 삼층석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흥사 삼층석탑은 지난해 보았던 군위군의 지보사삼층석탑과 느낌에서 비슷하다 생각했으나 중흥사삼층석탑을 보면서 정교한 조감솜씨와 사방불인 여래상과 인왕상, 보살상, 사천왕상을 도드라지게 세긴 것을 보고 더욱 뛰어난 예술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곳에 필이 꽂히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그 케이스가 이번 중흥사삼층석탑인데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즐겼다가 함께한 일행은 중흥사를 빠져나가 둘레길을 따라 흔적도 없어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흥사삼층석탑은 신라 말기에 조성된 석탑이며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지금은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각과 장식이 매우 화려해서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탑의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은 하나의 돌로 되었으며 각 층의 몸돌 네 귀퉁이에는 운주인 기둥을 굵직하게 나타내었습니다.

















옥개석의 아래 층급받침은 3단이며 처마 밑은 수평으로 처리했습니다. 1층의 몸돌에는 동서남북 각 면에다 연꽃 대좌 위에 앉은 여래불을 새겼으며 이는 사방불로서 어디에나 부처님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층 몸돌을 받치는 기단은 각 면을 모두 둘씩 나누었고 앞면에는 인왕상을, 그 반대편인 뒷면은 보살상을 , 좌우 양쪽 면은 사천왕상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2.3층의 몸돌은 급격하게 작아지면서 기단과 비교하면 기단부가 너무 크게 보이는데 이는 전체적인 석탑의 안정감은 뛰어나다 하겠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모작이지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중흥사쌍사자 석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쌍사자 석등은 연꽃무늬 받침돌 위에 두 마리의 사자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서서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상입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하나의 돌을 조각해서 석등을 만들었을 정도로 그 조각 예술이 정말 빼어나다하는데 오리지널 중흥사쌍사자석등을 보지 못해 정말 많이 아쉬웠습니다. 어서 빨리 돌아오라 오버 중흥사 쌍사자 석등. 그리고 전남유형문화재 제142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시간 관계로 보지 못해서 그냥 패스합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갈 기회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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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90-1 | 중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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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1.18 06:53 신고

    경치가 참 불만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네요




(울산여행/정자항여행)울산 북구 정자항 유포석보와 신라 충신 박제상 발선처 여행


동해와 남해 쪽으로 가다 보면 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산성이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조선을 침입한 왜군이 교두보를 마련하려고 쌓은 왜성 등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울산 북구의 정자동을 갔다가 조금은 독특한 ‘유포석보’란 이름을 한 산성을 만나고 왔습니다.





울산 북구 정자동 박제상공 사왜시발선처와 유포석보 주소:울산광역시 북구 동해안로 1455-6





유포석보는 정자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만들어진 석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유포석보는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이름도 생소하고 그래서 마을 주민을 잡고 유포석보가 어딥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이 마을에 살지만 그런 곳은 처음 듣는다고 했습니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큼지막한 유포석보 안내판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화살표는 오른쪽 마을 길로 안내했습니다.



마을을 들어서서 산성의 흔적을 아무리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안의 향나무 식당에다 유포석보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분도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저기 전봇대 뒤에 하얀 판이 보이죠!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들어오는 입구 오른쪽 대나무 숲 꼭대기였습니다.



왔던 길을 돌아 나와 동해안로 도로에서 10m쯤 들어서면 ‘동해안로 1467-4’호 민가에서 오른쪽 좁은 길로 들어서면 대나무 숲에 올라서서 맨 끝에 안내판과 석성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포석보 석성 주위에는 채소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유포석보는 조선 시대의 보로 고을의 수령인 만호가 관리하는 제진을 보조하는 방어적 시설로 최전방에서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역할을 주로 하면서 위급할 때에 주민의 대피장소로 이용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전투를 하는 규모가 작은 성을 말합니다. 보 주위는 봉수대가 설치해 있어 즉시 신호나 기타 소리로서 주민대피를 시키면서 인근 지역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정자동의 유포석보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 있습니다. 삼도 도체찰사 정분이 왜구를 막기 위해서 성을 쌓을 것을 건의했으며 1450년에 문종이 즉위하면서 목책 성을 설치했으나, 1452년에 다시 석성을 쌓을 것을 건의해서 1455년인 세조 원년에 기존의 목책 성에서 5리 떨어진 곳에다 석성을 쌓기 시작하여 4년 만에 완공했습니다.



정자항의 유포석보는 왜구의 동태를 살피는 방어기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경상좌병사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정자동 유포석보는 병영·울산과 경주의 군사 3백 명이 3교대로 주둔하면서 수비할 만큼 중요했던 곳입니다. 유포석보의 규모는 전체 둘레가 약 755m였고, 계곡을 끼고 능선과 구릉의 낮은 평지 주위에다 쌓았습니다.

 

유포석보



현재 유포석보는 황폐할 정도로 그 존재가 파괴되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정자항 방파제 공사를 하면서 유포석보의 큰 돌을 빼서 쌓았다 합니다. 남아 있는 석성의 규모를 보면 동문 쪽에 2m 정도의 높이로 약간 남아 있습니다. 유포석보는 바닷가에 들어섰지만, 육군이 담당했으며 조선시대 최초의 석보라는 점에서 그 가지와 의의가 매우 높다는 평가입니다.

 

신라충신 박제상공 사왜시발선처 비석



이곳 유포석보는 신라 시대 충신이었던 박재상의 발선처 비가 있습니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입니다. 왜국에 볼모였던 미해(미사흔)를 구출하려고 사신을 가장하여 율포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를 띄웠다 합니다. 그 율포가 현재 북구 정자동의 유포마을로 보고 있습니다. 유포석보에는 박제상이 왜국으로 떠난 곳을 기리는 ‘신라충신 박제상공 사왜시발선처’ 비석을 세워 놓았습니다.







유포석보를 한 바퀴 돌면서 정자항의 전경과 멀리까지 펼쳐지는 바다 풍경은 그야말로 작은 나룻배 한 척도 보일 만큼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일본으로 떠난 박제상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왜군의 방어 진지인 유포석보를 만나보세요 유포석보는 1998년 10월에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7호에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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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정자동 625 | 유포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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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1.17 07:57 신고

    서울의 미세먼지가 많아서 소개해주신 명소를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하늘이 너무 파래서 좋아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경북의 오지마을인 봉화여행은 벌써 하고 왔는데 차일피일 여행 포스팅을 미루다 보니 이제 포화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봉화여행에서 밀린 숙제 한 곳을 하려 합니다. 봉화에는 100여 개가 넘는 정자가 있어 정자의 고장이라 하는데 그중에서도 번잡하지 않고 한적하여 신선이 내려와 머물렀을 정도로 조용하고 아담한 명소 와선정을 소개합니다.





봉화 춘양 와선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
봉화 춘양 와선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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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은 태백산이 있는 봉화군에서도 춘양목으로 유명한 춘양면 소재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마침 춘양면소재지 고택에서 1박했던 터라 안내판의 와선정을 보고 이른 아침에 운동 삼아 휑하니 차를 몰고 둘러보고 왔습니다. 와선정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번지에 속칭 골띠마을에 위치합니다.



작은 주차장에서 나무로 만든 아치형의 오현교를 건너면 바로 토담을 두른 와선정 정자입니다. 그런데 오현교 아래를 보면서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골짜기의 깊이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꼭 편편한 암반을 끌로 깊게 긁어낸 듯 패인 골짜기에는 높이 5m의 폭포가 걸려 있으며 그 옆에 벼랑에다 와선정을 세웠습니다.

 


낭떠러지에서 쏟아내듯 떨어지는 물보라가 은색으로 반짝여 은폭이라 불리며 그 폭포를 안은 바위가 사덕암인데 이는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바위”로 풀이하자면 태백오현의 뒤를 이어 다시 와선정은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외에도 폭포 옆 바위에는 와선정과 사덕암의 글씨가 남아 있으며 와선정은 산림 처사의 은둔처로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곳에 다섯 분의 은자가 소요하며 시문을 나누고 후진양성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태백오현이라 불렀습니다. 태백오현은 잠은 강협(1602~1671), 포옹 정양(1600~1668), 각금당 심장세(1594~1660), 두곡 홍우정(1595~1654), 손유당 홍석(1604~1680)을 칭하는데 모두 고려와 조선에서 명문가로 이름을 더날였던 후손들입니다.

 










1636년(인조14년)에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태종에 세 번 절하고 9번을 땅에다 이마를 박으며 조아린 ‘삼배구고두례’인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자 이들은 결기의 심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태백산 기슭으로 내려왔고 모두 와선정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살면서 대명절의를 지키며 서로를 위로하고 우의를 다졌다 합니다.






은폭



그들이 우위를 다졌다는 와선대에다 세운 와선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인 마루 형태의 건물입니다. ‘와선정기’를 보면 와선정은 1832년(순조32년) 후손인 강씨와 심씨가 합해 정자를 세우고 난 후 ‘와선지’ ‘사덕암지’의 뜻을 따라 와선정이라 이름 하고 1895년에는 정자를 수리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각문을 들어서자 작은 돌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정자의 뒷면입니다. 계곡을 마주하며 세살분합문을 들어 올리는 열개식인 앞면과 달리 뒷면은 판자로 막아 각각 칸에 작은 문을 1개씩 달았고 좌우에는 흙담 1칸에 1칸은 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통간이며 우물마루에다 정자 바깥의 네면은 쪽마루를 돌렸지만, 뒷면을 제외한 삼면에는 평난간을 설치했습니다.

 








‘태백오현’은 조선 정조 14년에 왕명으로 병자호란 때 재신척화 순절자를 기록한 추념록인「존주록배신열전」에서 이들 다섯 선비를 태백오현이라 기록하고 받들며 경의를 표한대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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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 | 와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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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2.21 06:39 신고

    봄에 찾으면 정말 볼거리가 많겠군요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 송도해수욕장 빛축제. 겨울 밤바다가 아름다운 부산 송도해수욕장 빛축제


부산 송도해수욕장에서 요즘 삐까뻔쩍한 빛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부산에서도 여러곳에서 빛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부산 송도해수욕장의 빛축제는  아기자기한게 정말 볼게 많았습니다. 





부산 송도해수욕장 주소:부산 서구 암남동 135-5

부산 송도해수욕장 전화:051-240-4086




2017/02/01 - (부산맛집/부산서구맛집)송도해수욕장 부산고등어. 국민생선 고등어 전문점 부산고등어에서 고등어 추어탕을 맛보다.

2016/06/28 - (부산서구여행/부산 서구 가볼만한 곳)부산 서구 천마산로 포토전망대. 부산 최고 최대의 야경 촬영장소 부산 서구 천마산로 포토 전망대 추천. 부산 서구 천마산로 포토전망대

2017/12/02 - (부산서구여행)부산 송도해수욕장 겨울 바다 여행. 송도케이블카에서 보는 송도해수욕장 일출!!

2016/03/22 - (부산여행/서구여행)내고장 부산 서구 자랑질. 부산서구 천마산로에 부산 최고의 전망대인 누리바라기 전망대, 포토 전망대, 널바라기 쉼터가 있습니다.

2015/07/27 - (부산여행/서구여행)송도해수욕장 스카이워크. 공설해수욕장 1호 부산 송도해수욕장 하늘길 송도해수욕장 스카이워크 전망대를 만나보세요




부산 송도해수욕장 빛축제를 관람하려면 편안한 골목길이 있습니다. 

이는 송도해수욕장의 송도 백년 골목입니다.

옛날 송도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골목이었던 송도백년골목은 

이제 송도 골목 먹거리타운으로 바뀌었습니다.  



와우!!! 오래전의 송도골목으로 탈바꿈하면서 

옛날 유명했던 송도해수욕장 먹거리타운 분위기가 났습니다. 

있는 게 정말 많은 골목이었습니다. 

백년골목 입구에서 부터 하늘에는 빛을 담은 조명이 길을 안내했습니다. 





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빛을 담은 조명구입니다. 

별, 초승달로 등 다양하게 보입니다.






백년된 오래된 골목길을 뜻하는 100자가 선명합니다.

송도백년골목은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 전용해수욕장으로 

광복과 함께 6.25 한국동란 때는 연합군인 미군의 휴양지로 사용됐던 송도해수욕장 

 


많은 애환을 간직했던 송도해수욕장이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수 등으로 인해 부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송도해수욕장은 해수욕장의 기능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나 50대 중반인 저는 송도해수욕장하면 유명했던게 있습니다. 

거북섬의 케이블카와 다이빙대입니다. 



송도해수욕장하면 바늘과 실처럼 따라왔던 케이블카와 다이빙대도 

송도해수욕장의 퇴락과 태풍으로 인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송도해수욕장 개장 100년을 앞두고 송도해수욕장 100년 복원 프로젝트를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송도는 완전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사라졌던 다이빙대도 복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송도해수욕장을 알리는 다양한 조형물을 설치하여 

어두웠던 옛 송도는 산뜻하고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송도해수요장 주위에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스카이워크 전망대길이 만들어졌습니다. 

더욱 바다를 가까이 만나는 스카이워크  전망대길, 

부산 송도해수욕장의 명물거리가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부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가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케이블카를 운영하므로서 송도해수욕장의 명성을 이제 새롭게 잇게 되었습니다. 

예전 유명했던 송도해수욕장으로 다시 돌아와 

집 앞에 송도해수욕장이 있어 풀장으로 두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 기쁜마음입니다.  



올해 겨울의 송도해수욕장 밤 해안 거리는 

여름의 송도해수욕장보다 밤거리보다 더욱 휘황란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송도해수욕장은 빛축제 중입니다.  

다양한 조명구는 화려하고 짜임새 있게 설치하여 

100년 송도해수욕장을 더욱 빛나게하고 있습니다.

 


송도해수욕장 송도해상케이블카 포토전망대입니다. ㅎㅎ

밤이라 그런지 어두워서 잘 확인할 수 없지만  

줄줄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따라가는 케이블카가 보입니다. 

여기서 사진 한번 찍어보세요





송도해수욕잧의 가로수에도 형형색색의 조명구를 달았습니다. 

주황색 빨강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상이 나무와 어울려 정말 아름답습니다.

 








물고기입니다. 아마  송도해수욕장이 있는 부산서구의 구어가 고등어입니다. 

그래서 송도해수욕장에서 매년 고등어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고등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말고요 ㅎㅎ



요게 송도해수욕장의 메인 광장입니다. 

송도해수욕장의 분수대로 여름철에는 시원한 물줄기를 선사합니다. 



그런데 겨울철 빛축제로 이리 아름답게 바뀌었습니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며 천사의 날개에는 

모두 날고 싶은 욕망이 있어선지 

너도나도 날개에다 등을 붙이고 사진 찍는다고 바쁩니다. ㅋㅋ







사방으로 아름다움을 연출하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송도해수욕장 빛축제 메인트리 정말 예쁘지요



모두 사진 찍는다고 정신없습니다. ㅎㅎ

그럼 이제 사진으로 송도해수욕장 빛축제를 만나보세요























이수일과 심순애의 김중배의 다이아반지 ㅎㅎ

너무 무거워서 들고 오지를 못했습니다.










송도해수욕장 100년을 기념하여 세운 상징탑



국민가수 현인선생님도 송도해수욕장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송도해수욕장 스카이워크 구름다리 전망대길 



송도해수욕장의 거북섬을 들어서는 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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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구 암남동 135-5 | 송도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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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2.14 07:00 신고

    겨울에는 색다른 모습으로 즐길 수 있어서 좋은데요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 지배지의 무덤 함안 말이산고분군 여행


함안을 대표하는 여행지는 함안군 가야읍 내에 있는 말이산고분군입니다. 이는 함안군을 소개하는 여행 광고판에 빠지지 않고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게 말이산고분군이며, 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함안 기차여행에서 함성 중학교의 함안 주리사지사자석탑과 함안읍의 소고기국밥, 그리고 무진정, 대산리 석조삼존상을 보고 성산산성을 올랐습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526-1

함안 말이산 고분군 연락처:055-580-2344




2014/08/05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성중학교 교정의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해태상을 보는 것 같아요.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2014/08/07 - (경남여행/함안여행) 함안대산리석불, 함안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을 보고 왔습니다.

2014/08/20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무진정. 한여름의 무더위도 걱정없는 정자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함안의 무진정.

2014/03/22 -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 불사이충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산 백이산~숙제봉을 오르다

2010/03/06 - (경남여행/함안여행)휴천면 시암재 오도재. 지리산 제일 관문 오도재

2015/07/10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여항산 등산. 갓뎀산으로 불렸던 6.25 최대 격전지 함안 여항산 산행을 하다.



이번에 걸으면서 다니는 함안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말이산고분군과 함안박물관만을 남겨 놓았습니다. 무진정에서 성산산성을 올라 바로 말이산고분군으로 코스를 잡았지만, 산성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말이산고분군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산길을 찾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조남산에서 백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법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산행도 아니고 해서 느긋한 함안여행만을 생각하며 편안한 길로만 걷기로 하였기에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출발지였던 무진정주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성산산성 길은 무진정으로 돌아오게끔 길이 나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진동에서 가야읍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조남산을 돌아서니 왼쪽에 꼭 누에같이 납작 엎드린 말이산이 나타났습니다. 산 능에는 봉긋한 고분군도 보여 단박에 말이산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백산마을로 들어가는 마을길을 보며 왼쪽으로 꺾었습니다. 가로수의 은행나무는 자신의 몸을 둘렸던 나뭇잎을 모두 털어내는 듯 몸을 막 털듯이 떨었습니다. 그러자 우수수 은행잎은 떨어져 바람에 나뒹굴었으며 온 천지를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그런 함안여행은 나의 발걸음을 더욱 급하게 했습니다.


성산산성이 있는 조남산



겨울의 해는 짧아 노루 꼬리만큼 남은 해의 꼬리를 붙잡으며 바쁘게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백산마을을 지나 도로를 건너서 말이산고분군의 끄트머리에 닿았습니다. 보통 말이산고분군은 함안박물관 쪽이나 함안군청 쪽에서 둘러보지만 저는 함안 읍내의 여러 문화재를 둘러보고 말이산고분군의 끝 부분인 31번 고분군부터 밟기 시작했습니다.





말이산고분군은 사적 제515호입니다 처음에는 사적 제84호 도항리 고분군과 사적 제85호 말산리 고분군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시기에 조성된 하나의 고분군임을 발굴조사에서 밝혀지면서 통합하여 2011년 7월 재지정했습니다.











함안군 가야읍의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의 무덤이며 당시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로 아라가야의 도읍인 가야읍의 말이산 구릉지에 조성되어있습니다. 말이산(末伊山)의 뜻을 보면 머리산을 차음하여 한자로 표기한 것이며 이는 최고권력자를 상징하는 ‘우두머리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말이산의 규모는 남·북으로 1.9km 정도 길게 늘어선 주능선과 서쪽으로는 여덟 개의 지능선이 완만하게 흘러내려 그 구릉지에 고분군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지금 모습과는 다르게 북동쪽으로도 더 능선이 뻗어 나갔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진주~마산간 도로와 철도가 가설되고 마을이 커지면서 훼손되었다 합니다.





말이산고분군을 걷다 보면 주능선과 가지 능선의 봉우리에는 대형의 고분이 있고 가지능선의 산 사면에는 중소형고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말이산고분군은 현재 37개가 관리중이며 모두 번호를 붙여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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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외에도 고분으로 보이는 게 100여 기 정도이며 봉분이 깎여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생각한다면 1,000여 기 이상의 고분이 있었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습니다. 말이산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때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처음 발굴이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은 한반도 침략의 정당성인 임나일본부설(4세기 후반 고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백제와 가야·신라를 정벌해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200여 년간 지배했다는 학설)의 증거를 찾으려는 목적으로 6 가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말이산 4호 고분을 찬물에 밥 말아 먹듯 후다닥 10일 만에 발굴을 끝마쳤다 합니다.






그리고 1990대에 들어와 본격적인 학술조사가 10여회 이루어졌고 이때에 아라가야 최고지배자의 고분들로 밝혀졌습니다. 말이산고분군에는 기원전부터 6세기 전반의 다양한 무덤 양식인 덧널무덤, 널부덤, 구멍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조성되어 있어 아라가야의 성립에서 멸망까지를 고분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그중에서도 규모가 큰 고분은 아라가야 전성기였던 5세기 후반에 조성된 무덤으로 구덩식돌덧널무덤 방식이며. 길이가 10m에 너비가 2m인 무덤 안에서 5명의 순장인골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출토된 유물로는 불꽃무늬토기와 수레바퀴모양토기 등의 특이한 모양의 토기류와 쌍용문, 둥근고리큰칼, 투구, 갑옷, 말갑옷, 새모양장식 미늘쇠 등 철의 왕국이라 불렸던 아라가야의 발전된 다양한 철기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말이산고분군은 고분을 따라 둘레길이 아름답게 이어집니다. 경주에 있는 신라의 봉분은 대부분 평지에 자리했다면 가야의 말이산고분군은 야트막한 구릉에 봉긋하게 솟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여인의 아름다운 젖무덤이 연상될 정도로 유려한 곡선을 보여 예술의 사진이 나올 법도 한데 ㅋㅋ 마음먹은 대로 사진은 찍히지 않았습니다.

 










오뚝 솟은 고분을 끼고 탐방로는 이어졌습니다. 무덤을 보면서 산 자와 죽은 자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순간의 찰나인 한 끗 차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무슨 도를 터득한 사람도 아닌데 많은 봉분이 내 마음마저 차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왼쪽 구릉 끝에 함안박물관건물이 보였습니다.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으면서 붉은 물을 토해내듯이 온 하늘을 붉게 물들였어 마치 하늘이 광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습니다. 말이산고분군에서 맞는 저녁노을은 정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걸음을 재촉하면서 함안박물관에 내려갔지만, 박물관은 업무를 마감하고 문을 닫은 뒤였습니다.

 












아쉽지만 이곳에서 출토된 많은 문화재는 다음 함안여행에서 보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입구에 수레바퀴모양토기 모형을 보는 거로 만족하고 내려왔던 고갯길을 다시 올라 함안군청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함안 말이산 고분군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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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526-1 | 함안말이산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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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신라시대 석성 함안 성산산성에서 시간여행을 하다. 함안 성산산성·조남산성


함안여행을 하면서 무진정 등 여러 곳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성산산성을 보고 왔는데 무진정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때 있는데도 들머리를 찾지 못해 “이산이 아닌가벼‘하고 되돌아 나오다가 우연히 무진정 주차장에서 성산산성 안내판을 찾았습니다.




함안 성산산성 사적 제67호 

함안 성산산성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함양읍 괴산리·가야읍 광정리 569





2014/03/22 -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 불사이충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산 백이산~숙제봉을 오르다

2014/08/07 - (경남여행/함안여행) 함안대산리석불, 함안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을 보고 왔습니다.

2016/10/19 - (함안여행)고려동유적지. 조선에 있었던 고려땅 고려동을 아세요. 함안 고려동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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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1 -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원효암과 의상대. 한적함이 절간 같다는 말이 실감나게느껴지는 원효암 의상대 여행.




성산산성이 있는 조남산은 작은 산이지만 한바탕 부산을 떨고 올라야만 산성을 한 바퀴 돌 수 있습니다. 성산산성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게 스마트폰의 지도에는 조남산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발 전에 미리 성산산성의 위치를 확인했고 무진정이 있는 괴항마을에서 산으로 오르는 들머리를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을을 굽어보는 큰 나무에다 덱으로 전망대를 만들었고 그 옆으로 돌계단이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어 아마 저 돌계단이 성산산성으로 오르는 길인가 싶다며 무진정과 대산리 석불상을 보고 되돌아와 돌계단 길을 올랐지만, 무덤가는 길이었습니다.



다시 내려와 마을 중간의 골짜기로 오르는 넓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둣빛 대나무가 길을 막아서면서 산길이 좁아지는 게 이 길도 아닌 것 같다며 다시 내려왔습니다.



동행한 일행은 "성산산성은 함안의 초·중·고등학생이 많이 찾는 유서 깊은 문화유적지라 길이 잘되어 있습니다"며 말했지만 스미트폰 앱의 지도에도 조남산으로 나와 우리는 "이산이 아닌가 보다"며 포기하고 말이산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무진정을 지나면서 주차장에서 성산산성의 작은 안내판을 보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여깄네“하면서 돌아가신 아버님을 우연히 만날 만큼 반가웠습니다. 무진정 주차장에서 성산산성까지 거리는 약 700m 이며 과연 성산산성은 함안군민이 모두 찾는다는 문화유적지라 들머리부터 보도블록이 고갯마루까지 넓게 깔렸고 나머지는 흙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산산성을 조남산에 있다 하여 조남산성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진즉 알았다면 마을 소로로 올라도 되는데 ㅋㅋ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 성산산성을 찾는다고 죽도록 고생만 하고 일정도 차질이 생기고 하여튼 남은 일정을 생각해서 빨리 성산산성을 올라야 했습니다.

 




무진정 주차장에서부터 임도는 제법 가팔랐습니다. 한숨을 돌리며 턱 마루에 서서는 편안하게 길이 이어졌습니다. 멀리 하얀 띠가 보여 ”저게 뭐꼬“하며 가까이 가니 성산산성 발굴현장을 보호용 부직포를 덮었는데 현재에는 발굴이 중단된듯했습니다. 성산산성 안내판에는 조남산 정상부에 머리 띠 모양으로 둘러쌓은 퇴뫼식 산성이라 했습니다.











1991년 이후 4년간의 발굴조사를 하면서 석성임을 확인했습니다. 워낙 긴 세월을 지나다 보니 성벽이 허물어져 꼭 언덕처럼 낮게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산성이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성산산성은 납작하게 다듬은 돌을 수직형태로 차곡차곡 쌓은 석축산성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합니다.









성산산성의 전체길이는 1.4km인데 가운데 작은 분지를 감싸며 그 주변의 높은 곳을 따라 성을 쌓았습니다. 남북은 긴 대신에 동서는 짧으며 타원형 형태입니다. 동쪽과 서쪽·남쪽에 각각 성문이 있고 우물 1개와 건물터 2곳도 확인되었습니다. 이 성산산성은 성(城)이 있는 산이라 해서 성산(城山)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지도서와 함주지에 가야 고성이라 기록하였으나 출토된 유물을 보면 대부분 신라기와, 토기 조각, 목제품, 과일씨 등 신라 시대 유물이라 합니다. 그리고 동문 터에서 27점의 목간이 나왔다 합니다. 목간은 종이 대신 나무에다 기록해 놓은 것을 말합니다.





성산산성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12년 동안 16회나 발굴조사를 하면서 6세기 중 반경에 쌓은 신라 시대 석축 산성임을 밝혀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동쪽 성벽 부근에서 부엽공법시설과 암거시설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배수시설이 눈에 띄는데 이는 계곡지형을 고려한 집수에 대비해 부엽층으로 덮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고대문서 역할을 했던 목간과 농공구와 방망이, 토기 이외에도 다양한 생활 목기가 나왔습니다. 2017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보도자료를 보면 2014년~2016년까지 17차 발굴조사를 했으며 출토된 23점의 목간에서 6세기 신라의 율령체계와 신라 왕경인(王京人)의 관직명인 ’대사(大舍)‘ 등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합니다.

 




특히 네 면에 모두 글자가 기재된 사면 목간은 총 3점이 나왔는데 17차 발굴조사에서 나온 사면 목간 1점은 재질이 소나무이며 길이 34.4cm. 두께 1.0~1.8cm로 깎아 만들었고 총 56글자가 쓰여 있었다합니다.







이 목간을 보면 진내별 지방의 촌주가 중앙 출신 관리에게 보고서 형식으로 올린 문서로 6세기 중반의 신라 지방사회에까지 문서행정과 강력한 중앙정부의 공권력이 율령을 통해 지방까지 지배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합니다.


















함안 성산산성의 출토된 목간은 총 308점이며 이는 현재까지 출토된 우리나라 목간의 절반 정도로 많은 수량입니다. 함안여행에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함안 성산산성은 영남 최고의 민간정원인 무진정과 함께하면 아주 멋진 여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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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569 | 함안성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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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2.06 07:10 신고

    개인적으로는 빨리 보였으면 좋겠네요 날씨가 추워지니 그리워집니다








(부산서구여행)부산 송도해수욕장 겨울 바다 여행. 송도케이블카에서 보는 송도해수욕장 일출!!


올겨울 들어서 처음 부산 서구 암남동 송도해수욕장 출사를 나갔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과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도 ㅋㅋ

주로 아파트 옥상이나 베란다에서 일출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가까운데 익숙해서 그런지  사람이 자꾸만 게으르지는 거 같았습니다. 

겨울도 오고해서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 송도해수욕장 출사를 감행했습니다.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주소: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 135-5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전화:051-240-4086




2015/09/15 - (부산서구/그곳에 가면-명소)(부산여행/서구여행)동대신동 닥밭골 벽화마을. 가을철 가보기 좋은 아름다운 벽화마을 닥밭골.

2016/01/27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서구 산복도로 해돋이로 벽화거리, 달동네라고요. 까꾸막이라고요. 내 고장 부산 서구 산복도로가 '생태바람길로' 이리 바뀌었습니다.

2016/06/28 - (부산서구여행/부산 서구 가볼만한 곳)부산 서구 천마산로 포토전망대. 부산 최고 최대의 야경 촬영장소 부산 서구 천마산로 포토 전망대 추천. 부산 서구 천마산로 포토전망대

2016/06/21 - (부산여행/부산서구 가볼만한 곳)송도해수욕장과 송도구름산책로. 국내 최장인 365m 송도구름산책로와 공설해수욕장 1호인 송도해수욕장에서 여름 휴가를 즐겨보세요.

2017/02/01 - (부산맛집/부산서구맛집)송도해수욕장 부산고등어. 국민생선 고등어 전문점 부산고등어에서 고등어 추어탕을 맛보다.




송도해수욕장 오른쪽 데크로 먼든 볼레길 입구까지 차를 얻어타고 갔습니다. 

이곳이 송도해수욕장 일출 촬영지이며 데크나 해안가 바위마다 

많은 찍사들이 자리를 잡고 오메가 촬영을 합니다.

올해 겨울은 초행이라 멀리 나가지 않고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 철탑 을 지나 사진촬영 포인트가 붙은 덱 전망대에다 자리를 잡았습니다.

 구름이 짙게 걸려서 오메가는 텃구나 하면서 일단 삼각대를 설치했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일출 촬영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출 출사에서 모든분이 오메가를 기다리지만 

오늘 같이 구름이 적당히 끼여 구름에 반사되는 여명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구름의 조화는 도저히 인간이 만들어 낼수 없는 그런 색상이었습니다. 




눈으로 호강하고 입으로 감탄하고 보낸 송도해수욕장 해돋이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리고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붉은 해가 솟아 오르니까 이번에는 송도해수욕장의 새로운 명물꺼리가 된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붉은 태양을 받으며 움직이는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를 넣어 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실력도 딸리고 사진기와 렌즈 화각이 좁아 ㅎㅎ 다  담을수 없었습니다. 





멋지긴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붉은 기운의 태양을 받으면서 움직이는 케이블카 

무ㅡ슨 영화의 한장면 같았습니다. 


 


원도 한도 없이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또 내일 구경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느긋해졌습니다. 

대충 삼각대를 접고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슬금슬금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올 때는 차를 얻어 타고 왔지만 

갈 때는 얻어 타고 갈 차도 없어 아침의 송도해수욕장도 오랜만에 보고 집까지 걸었습니다.





요몇년동안 송도해수욕은 경천동지할 발전을 했습니다. 

송도해수욕장은 우리나라 사설해수욕장으로서는 1호이며, 

그 유명한 해운대해수욕장도 송도해수욕장에는 발아래입니다. 

100년도 더 넘은 오랜역사를 가진 송도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전용 해수욕장이었다가 한국동란때는 미군의 휴양지가 되는 등

 우여 곡절은 겪은 최고의 인기 해수욕장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나지만 송도해수욕장의 디이빙대와 거북섬의 케이블카가 

오랫동안 송도의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다 폐쇄되었으며, 

최근에 100년 송도해수욕장의 복원 프로젝트에 

하나하나 옛날 유명했던 송도해수욕장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송도해수욕장 볼거리는 바다 위를 걷는다는 바다 전망데크 길로 

일명 스카이워크 전망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게 만들어졌다하며 

전국에서 송도해수욕장의 스카이워크 전망대를 보려고 많이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에 개장한 송도케이블카도 

송도해수욕장에서 즐기는 볼거리로는 이보다 더 좋을수 없는 최고라며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주 걷는 길이지만 오늘 송도스카이워크 구름산책로를 걸었습니다. 

해를 보면서 걷는 스카이워크 전망대는 또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는 작은 소나무 동산이 송도 송림공원입니다. 

요기 옆에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습니다. 

쉴새없이 꿀벌이 먹이를 물고 들어 가듯이

 케이블카가 승강장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를 반복 합니다.

아침 일찍이라 타는 사람이 없고 아마 시운전중으로 보입니다.

 


케이블카의 끝은 암남공원입니다. 

저 끝에 보이는 곳이 암남공원 승강장이며 종착점입니다. 



여름 바다는 분답고 복잡하다면 

겨울바다는 조용하고 운치와 품위가 있습니다.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에서 추억을 쌓는 품위있는 겨울 여행을 계획해보세요. 

 

송도스카이워크인 구름산책로

















 이번에 송도해수욕장에 나가서 담았던 사진 중에서 몇장입니다. 

이른 아침 송도해수욕장 일출 여행도 아주 괜찮습니다. 

 항상 큰 배들이 바다를 지키고 있는 묘박지라서

텅빈 바다 보다는 훨씬 안정감 있는 일출 사진을 담을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 사진 기술과 예술성이 많이 부족하여 작품 같은 사진을

담기에는 내공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송도해수욕장 해돋이를 올겨울에 담아볼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 와 닿는 송도해수욕장 일출 사진이 한장쯤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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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구 암남동 135-5 | 송도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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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2.04 07:11 신고

    일출 모습을 보니 빨리 출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네요 ㅋㅋ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오어사. 10월 여행지 포항 오어지와 오어사의 단풍에 반하다. 


포항 오어사는 오천읍에 있지만, 시내와 가까워 많은 시민이 휴식을 즐기려고 찾는 곳입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를 떠나서 정말 사람이 많이 찾습니다. 특히 가을빛이 오어지와 오어사를 물들이면 관광객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저도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오어사와 오어지 단풍구경을 위해 부산에서 길을 나섰습니다.





포항 오어사 주소: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향사리 34

포항 오어사 전화:054-292-9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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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산에서 포항은 포항~부산고속도로 때문에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되었습니다. 송정 톨게이트를 올리면 포항 톨게이트까지 40분이면 통과한다고 하니 어지간한 부산 시내보다도 더욱 가깝습니다. 그만큼 손쉽게 갈수 있습니다. 오어사·오어지 아랫마을까지는 수월하게 도착했습니다.

 


주말에는 오어지 둑방 아래에 만들어둔 두 곳의 대형주차장에서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가야 하지만 평일에는 오어사 앞 주차장까지 올라가서 주차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오어사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는 도중 관광버스와 도롯가에 주차된 차량 그리고 들어가고 나오는 차량이 뒤섞여 완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우리는 괜히 차를 끌고 올라왔다며 후회 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할수 없이 가는 데 까지 일단 가보자며 차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일주문 직전 다리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에 주차공간이 있어 그곳에 냅다 그냥 꽂아 넣고 오어지를 돌아 오어사로 걸어갔습니다. 야!! 그곳에 주차하길 잘했다며 밀린 차량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갔습니다.





남들이 보면 꼭 차를 안 가지고 올라온 사람처럼 하고 말입니다. 오어사의 작은 출입문을 들어서면 먼저 큰 나무가 있는데 요게 보리수나무입니다. 보리수는 부처임이 열반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들었다 하여 불교에서는 하나의 상징적인 나무입니다.






그리고 이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더욱 불교와 밀접한 나무라 오어사 경내에 이 보리수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천년고찰의 오어사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습니다. 창건할 때는 항사사라 불렀으며 왜 오어사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있습니다.







 이는 삼국유사 제4권 의해편에 전하는데 오어사와 오어지는 원효대사와 혜공선사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운제산에서 혜공은 항사사(현 오어사)에 머물렀고 원효는 운제산 자락에다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그러자 혜공은 원효가 당나라에 유학을 떠난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혜공으로서는 원효를 시험해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원효에게 제안하자 원효도 단박에 OK 하며 수긍했습니다. 혜공의 제안은 기발했습니다. 절 앞에 흐르는 계곡을 가리키며 물고기를 삼켜서 대변을 본 뒤 삼켰던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 이긴 걸로 하자였습니다.

 




원효와 혜공은 물속에 뛰어들어 각자 물고기를 한 마리씩 삼켰습니다. 그런데 삼켰던 물고기 중 한 마리는 죽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며 놀았습니다. 두 대사가 그 물고기를 가리키며 서로 내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인다며 고함쳤습니다. 그 후에 항사사는 나오(吾)자에 고기어(魚)자인 오어사가 되었다 합니다.

 


현재까지도 서로 자신의 물고기가 살았다 하여 물고기 주인은 할 수 없다 합니다. 오어사는 신라의 4대 성인이라는 원효·의상·자장·혜공선사가 머물렀던 사찰이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스님도 수행했던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그리고 운제산의 유래를 보면 원효와 의상은 오어사 맞은 편 바위벼랑에서 수행하였고 자장과 혜공은 지금의 자장암 벼랑에서 각각 수행하다 구름을 모아서 사다리를 만들어 서로 내왕했다 하여 구름사다리 산인 운제산이 되었다 합니다.

 




오어사를 들어서면 먼저 오어사의 보물인 범종은 빠트리지 않고 보고와야 합니다. 오어사 범종과 원효대사의 삿갓이 오어사 박물관에 현재 전시 중입니다. 오어사 범종은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 합니다. 발견하게 된 사연도 오어사와 운제산의 유래처럼 재미있습니다.

 


오어사 앞의 오어지 저수지를 공사하다 진흙 속에 묻혀있던 것을 우연하게 찾아내어 보전처리를 거쳐 현재 전시 중입니다. 범종에는 고려 때인 1216년(고종3)에 대구 동화사 순성대사가 주조하고 종을 제작한 사람은 순광이란 이름까지 나와 있습니다.





신라시대 범종 양식을 잇고 있으며 종을 메 다는 용뉴와 우리나라 범종에만 있다는 음통은 용이 마치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이 힘차며 섬세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원효대사의 삿갓이 진짜로 맞는다면 삿갓은 1,300년 전의 것입니다.

 





삿갓을 보면 완전 누더기같이 헤어져 머리에 쓰고 다녔다는 삿갓이 의심될 정도로 훼손이 심한 상태입니다. 삿갓은 종이와 실로 만들었고 안에는 솜을 넣고 바깥에다 풀뿌리로 만들었습니다.





오어사 대웅전은 석가 삼존불을 주불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상량문을 보면 1741년(영조1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에 다포형식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팔자모양을 한 팔작기와지붕입니다. 201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2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전체적인 대웅전은 화려하며 많은 공을 들인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자장암은 신라의 네 성인 중 한 분인 자장율사께서 수도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태국에서 부처님 사리 7과를 기증받아 1998년 세운 금강계단이 있습니다.






 

오어사에서 보면 깎아지른 벼랑 위에 제비집 형태로 완전 벽에 붙었을 정도로 불안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20여 분 가파른 산길을 올라 자장암을 찾아가면 밑에서 봤던 것보다는 그리 위험하지 않아 안도하게 되는 두 얼굴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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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 | 오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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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12.01 11:40 신고

    오어사는 봄에만 2번 갔는데 다음엔 가을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12.02 07:01 신고

    가을이 기다려집니다 올해는 어쩔 수 없겠네요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지. 가을 단풍이 아름다웠던 밀양 위양지 여행.


지난 주말 밀양시청도면 가는 길에 위양지를 보러 갔습니다. 아침 일찍 부산에서 출발해서 위양지에 조금은 이른 오전 9시경에 도착했는데 많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왔다갔다하면서 위양지 담기에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잠시 위양지를 둘러보기로 하고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습니다.





밀양 위양지 주소: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7





겨울의 삭풍은 아니지만 그래도 늦가을의 매서운 추위가 차를 나서는 나의 몸을 휘감았습니다. 손이 시럽다고 느끼면서도 혹시 물안개가 피어오르나 싶어 물가로 달려갔지만 위양지를 휘감은 물안개는 볼 수 없었고 그냥 휑한 상태였습니다.





위양지는 사계절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5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꽃망울을 터트리는 이팝나무는 더욱 유명합니다. 위양지를 휘감은 이팝나무는 팝콘이 터지듯 일제히 만개하면 하늘도 하얗고 세상도 하얗고 위양지 물속도 하얗게 비쳐 그야말로 순백의 하얀색으로 치장합니다.





이때의 위양지는 전국의 사진작가를 불러모아 자신의 가치를 확 끌어 올리면서 위양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냅니다. 그러나 여름의 위양지 또한 이팝나무를 비롯한 노거수들이 일제히 녹색으로 갈아입어 시원한 정자나무로서 휴식을 제공해 줍니다.


 






가을에는 그 푸르렀던 나무가 서서히 붉은색으로 치장하는 모습은 위양지의 최고 볼거리입니다. 위양지의 가을 색이 궁금해서 5월 이팝나무의 위양지를 마다하고 찾았습니다. 시간은 오전 9시경, 오래된 고물 디카를 들고 위양지 둘레길을 나섰습니다.





카메라를 든 동호인이 여러 명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위양지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건졌는지 모두 즐거운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좋은 게 있나 싶어 나섰지만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붉게 변한 나뭇잎과 주위의 산만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간이 맞지 않았는지 반영도 저에게는 보이지 않고 해서 그냥 이것저것 담으려고 카메라 셔터를 쿡쿡 눌렀습니다. 그리고 한 바퀴를 다 돌았더니 대략 1km쯤 되었습니다. 위양지는 신라 시대에 세워진 저수지입니다. 그만큼 역사성을 가진 오래된 저수지라 놀라웠습니다.

 




하기야 제방에 심어진 굵은 나무를 보면 족히 수백 년은 된 것으로 보여 위양지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위양지(位良池)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양민을 위한다는 뜻으로 임금이 백성을 위해 쌓은 저수지입니다.





이런 걸 보면 조선 시대에는 위양지가 이 근방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는 정말 유용한 저수지였을 거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아래쪽인 퇴로마을 앞에 규모가 엄청나게 큰 퇴로저수지 있습니다. 위양지는 신라와 고려를 거쳐오다 1634년에 밀주 부사인 이유달이 다시 쌓았다 합니다.

 










현재 위양지 안에는 작은 섬이 여러 개 있으며 그중 가장 큰 섬에 안동권씨가 세운 완재정이 분위기 있게 서 있고 위양지 또한 안동권씨 집안에서 관리하고 있다 합니다. 현재 위양지는 농사용수인 저수지 기능도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아름다운 경승지로서 더 큰 기능을 한다 하겠습니다.




이제 내년 이팝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5월이 손꼽아 기다려 집니다. 오늘 가을 단풍의 위양지를 만났다면 이팝나무가 화려한 5월의 위양지를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고 사진을 담고 싶습니다. 위양못 이팝나무숲은 ‘2016년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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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7 | 위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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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1.29 07:08 신고

    내년 가을을 기약해야 될 꺼 같아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