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여행/청산도여행)담쟁이가 아름다운 청산도 명품마을 상서마을 돌담, 청산도 상서 돌담마을


청산도 들꽃민박에다 베이스캠프를 정하면서 다녔던 청산도 2박 3일 여행. 이번에는 들꽃민박에서 가까운 상동리에 있는 상서 돌담 마을입니다. 상서마을은 울타리가 돌로 둘려 있으며 이게 상서돌담마을길로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어촌마을이야 대부분 돌담이지만 상서마을의 돌담은 오밀조밀 한 게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등록문화재 제279호.





청산면 상서마을을 감싸는 산은 청산도에서 아름답다는 매봉산입니다. 매봉산 아래에 터 잡은 상서마을은 앉은 지대가 높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리까지 보여 조망이 다른 마을보다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다랭이로 불리는 계단식 논이 이곳 청산면에서는 독특하게 바뀌었는데 그게 온돌방의 구들장 같이 널따란 돌을 깔은 구들장 논이 층계를 이루는 농촌과 어촌이 복합된 마을입니다.






먼저 상서마을의 유래를 보겠습니다. 상서마을은 성산포에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했는데 이는 성산포에서 마주 보이는 매봉산이 태풍과 해풍을 막아주고 산세가 빼어나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됐는지 ‘한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먼저 정착하여 살았다 하며,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곳을 덜리라고 부르며 1960년대까지 1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었다지만, 지금은 그저 빈터만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 상서마을은 숙종 때에 언양김씨와 밀양박씨 나주임씨등이 들어와 살다가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이 청산면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보면 청산도에서 가장 사람이 살기 좋았던 모양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759년~1789년에 여지도서 지명표를 보면 상서마을을 뜻하는 사정리(射亭里)와 걸리(桀里)가 나오며 걸리가 지금의 덜리로 바뀐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1800년인 정조 13년에도 사정리와 덜리의 지명이 확인되며 사정리는 마을회관 앞 정자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심신을 단련하는 활을 쏜 데서 유래 되었다하며 그 표적지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희미하지만 남아있다 합니다.











1895 고종 3년 당리진때 상서리로 기록이 나타나고 1914년 상서리와 원동리가 합해져 상동리가 되었다가 완도가 군으로 승격하면서 상서리로 바뀌었습니다. 상서마을의 돌담을 둘러보면 투박한 돌을 격식 없이 차곡차곡 막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섬지방의 바람을 막으려는 듯 어떤 곳은 높은 담장이지만 어떤 곳은 허리춤까지 오는 낮은 담장도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칭칭 돌담을 감으며 올라간 담쟁이는 상서돌담마을의 또 하나 볼거리였습니다. 제가 찾았을 때는 마침 능소화가 끝물이었지만 화려한 선홍색 꽃이 녹색의 담쟁이 속에서 그 자태를 잃지 않았습니다. 능소화와 담쟁이가 돌담을 감싸는 상서돌담마을길은 정말 평온한 어촌의 전원마을 풍경이었습니다.







상서마을은 사실 어촌과 농촌을 함께하는 곳입니다. 섬에서 보기 힘든 벼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그만큼 수량도 풍부하고 청산도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빈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청산도중에서도 상서마을은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우는 알겠지만, 긴꼬리투구새우는 정말 생소한 이름입니다.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해서 상서마을의 논두렁에서 물속을 유심히 주시하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긴꼬리투구새우는 고사하고 어떤 생물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 철이 아니거나 부끄러워서 그런가 생각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상서돌담마을길은 돌담이 볼거리중 최고라면 다랑논인 구들장 논과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는 덤입니다. 그리고 상서마을과 구들장논을 연결하는 상서마을 둘레길을 걸으면서 반나절을 사색의 시간으로 힐링하기에 그저그만이었습니다. 이래서 청산도는 태어나서 한번은 꼭 가야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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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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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0.19 07:37 신고

    돌담길이 참 애착이 가네요 좋은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저녁노을* 2017.10.20 05:47 신고

    졍겨운 풍경 가득하군요.

    구경 잘 하고 갑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7.10.20 11:53 신고

    청산도 또가고 싶은곳입니다^^

  4. 초등학생 시절 한컴타자 긴 글 연습란에 열심히 치던 청산도라는 작품이 먼저 떠오르네요 =) 그 푸르른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글 때문인지, 기억 한켠에 가본 적 도 없는 그 곳은 굉장히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있어요. 맑은 공기 가득한 유기농 생태마을답게 초록빛 잎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투구새우를 못본 일은 아쉽지만, 낮은 돌담과 소박한 길들이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으셨으면 좋겠네요. 사진 잘 보고 갑니다, 환절기 건강 유의하세요 =)






(청산도여행)완도연안여객터미널~청산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청산도여객버스터미널~완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청산도는 전남완도에서 대략 19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최남단의 섬으로 완도항에서 뱃길로 50분 거리입니다. 자연경관이 너무나 빼어나 ‘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섬’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완도연안여객터미널 주소: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5.

(지번)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1255

완도연안여객터미널 전화:1666-0950




2013/08/12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청해포구 촬영장, 영화 드라마 cf 촬영으로 유명한 청해포구 촬영장 눈으로 즐기기.

2013/08/1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조선시대 대표 정원 정자 세연정에서 어부사시사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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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30 - (완도여행)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본다는 섬 청산도. 청산도 항도 여행. 청산도항도





예로부터 신선이 내려와 노닐 정도로 아름답다하여 청산여수, 선산, 선원이라 불렀다합니다. 청산도를 대표하는 상징은 푸른 바다와 푸른 산, 독특한 구들장논, 문화재로 지정된 돌담, 해녀 등이 있지만 지금은 느림의 풍경이라는 아시아 최초 슬로길이 있습니다.

 


2007년 12월 1일 슬로시티로 선정되어 ‘늘보’처럼 느리게 걸을수록 더욱 아름답다는 슬로길로 명실상부한 남해안의 힐링 1번지가 되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청산도의 향수를 자극한 한국 최초 백만 관중을 동원했던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촬영되었으며 KBS 드라마 ‘봄의 왈츠’와 ‘1박2일’ SBS '여인의 향기‘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청산도를 배경으로 촬영하여 소개했습니다.



공중파와 종편에서도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하면 빠지지 않고 청산도가 소개되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와 CNN이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고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청산도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게 났다‘는 고사성어 처럼 한번은 꼭 봐야 할 환상의 섬인 남해 완도군의 청산도 여행의 시작은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5호 완도연안여객터미널에서 부터입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청산도 여객선 시간표를 참고하세요.







2017년 긴 추석 연휴에 환상의 섬 완도군의 청산도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청산도 배편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완도연안여객터미널에서 청산도행 배편은 추석특송기간인 2017년 9월30일~2017년 10월 9일까지 증편 운행중입니다.




완도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오전 6시30분, 8시30분, 10시, 11시30분, 오후 1시. 2시30분, 4시30분, 6시(막배) 청산에서 나오는 배는 오전 6시30분, 8시30분, 10시, 11시30분, 오후 1시. 2시30분, 4시30분, 6시(막배)로 8회로 증편하여 완도와 똑 같은 시간에 서로 운항합니다.

 


그리고 추선 연휴가 끝나는 2017년 10월10일~10월 15일가지 완도~청산도 방면 여객선 시간표를 보면 완도에 출발이 오전 7시, 8시30분, 11시, 오후 2시30분, 6시(막배)이며 청산도에서 출발은 오전 6시50분, 9시, 오후 1시, 3시, 6시(막배)로 일 5회 운항합니다.

 



청산도 선편은 여객 및 차량의 증감에 변경될 수 있다하니 청산 매표소 061-552-9381, 완도연안여객터미널 061-552-0116·9385. 청산농협 061-552-9388로 문의를 해서 이용하세요. 그리고 사진이 붙은 신분증 지참은 필수이며 미리미리 도착해서 수속을 밟아 안전한 청산도 여행 하세요

 












청산여객터미널 주소: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

청산여객버스터미널 전화:061-552-9381


완도 청선도 운행 여객선은 퀸청산, 청산아일랜드, 슬로우시티청산호가 있으며 차량 선적은 미리 전화해서 알아보세요. 차량 도착순으로 배에 선적하니 미리 도착해서 주차선에 대기하여 기다려야 안전합니다. 꼭 참고하세요






완도~청산도 배 시간표, 청산도~완도 배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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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0.02 07:51 신고

    연휴에 여행가도 좋을 것 같아요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부여맛집/부소산낙화암맛집)굿뜨래음식특화거리 구드래골쌈밥. 부여 구드래돌쌈밥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의 글 일부분입니다. 항상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하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중년을 훌쩍 넘어 나도 20대의 두 자녀를 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글을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 입구인 굿뜨래 음식 특화거리의 맛집으로 알려진 구드래돌쌈밥 식당에서 감명 깊게 읽었던 글입니다.





부여 굿뜨래음식특화거리 맛집 구드래돌쌈밥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96-2

부여 굿뜨래음식특화거리 맛집 구드래돌쌈밥 전화:041-836-9257




2015/08/17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부소산성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를 만나다. 사비성

2015/08/07 - (충남여행/부여여행)낙화암과 고란사. 마지막 백제의 흔적 부소산성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를 여행하다. 낙화암과 고란사

2015/08/05 - (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2015/07/26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서동 연꽃축제 궁남지. 백제의 도읍지 부여의 많은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축하. 부여 서동 연꽃축제가 궁남지에서 열렸습니다.

2015/08/10 - (충남여행/서산여행) 간월도 간월암. 여름 간월도 간월암 보다 신비스러 웠던 겨울 간월도 간월암의 정취가 그리웠던 간월도 여름 여행.




저녁을 먹으러 부여 맛집이며 부여 현지인에게도 익히 알려진 구드래 돌쌈밥을 늦은 시간에 찾았습니다.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에는 길게 줄을 서서 먹는다는 부여향토음식 맛집 구드래돌쌈밥집인데 평일에다 늦은 덕분에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입구는 화려한 스펙이 아닌 그저 평범하고 아담한 우리의 옛 모습이라면 안으로 들어서면 예스러움이 묻어나는 물건들로 식당 내부를 장식한 따뜻하고 정감이 넘쳐나는 엄마의 모습입니다…. 화려하고 고가의 실내장식이 아닌 그저 농촌에서 볼 수 있었던 코뚜레, 워낭 등 어릴 적 추억으로만 꾸며져 소담하여 더욱 친근감이 가는 식당 구드래돌쌈밥.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는데 꼭 보물찾기하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평소에 쌈밥집은 들어 봤는데 ‘돌쌈밥’하면서 처음에는 웬 돌쌈밥이지하고 생소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는 아하!! 했습니다. 돌솥밥에다 쌈밥을 더해서 돌쌈밥이란 신조어를 만들었으며 구드래돌쌈밥이 그 원조집이라 했습니다.



쌈밥 전문점이다보니 채소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구드래돌쌈밥에서 사용하는 채소는 100% 계약재배로 이루어지며 농약 등은 배제하고 완전 무공해 수경재배를 하면서 20~30종류의 청정 유기농 채소를 사용하는 집으로 안심하고 드실 수 있다는 구드래돌쌈밥집.

 




여러 종류의 돌쌈밥이 있으며 불고기돌쌈밥과 편육돌쌈밥, 오리주물럭돌쌈밥, 송이돌쌈밥 등 모두 7종류이며 기호에 맞게 주문하면 됩니다. 우리는 불고기돌쌈밥을 기본으로 하고 추가로 편육을 따로 주문했습니다.





특히 구드래돌쌈밥 돌솥밥에는 찹쌀과 콩 당근 단호박 등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 영양가도 높으며 구수해서 일반 밥보다도 맛에서 훨씬 뛰어났습니다. 영양 만점인 돌솥밥과 집된장으로 만들었다는 구수한 된장찌개는 환상의 궁합이며 채소는 꼭 보약 먹는 듯 쓴맛을 내는 갖가지 약초라 건강식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여럿이 먹다 보니 먹기 바빠서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맛집 블로그 신분을 망각하게 만든 구드래돌쌈밥집, 전통의 돌솥밥도 그러하고 집에서 직접 담근 집된장으로 뚝배기에 끓여낸 된장찌개 하며 담지 못한 사진이 즐비합니다.

 








일행보다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했던 구드래쌈밥집 탐심이 저절로 발동 나게 해서 사진까지 마다하고 먹었던 부여 맛집이었습니다. 다양한 채소로 돌솥밥에 쌈을 싸서 먹는 구드래쌈밥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가장 깨끗한 음식점이며 친근감이 가득한 부여맛집 구드래돌쌈밥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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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96-2 | 구드래돌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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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30 07:50 신고

    와우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건강식이 따로 없군요 저절로 건강해질 것 같아요



 

(진안여행/진안가볼만한곳)마이산 고금당 나옹암. 마이산 전망 일번지 고금당 나옹암을 찾아가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 하면 언뜻 생각나는 게 말의 두 귀를 닮은 바위봉우리와 사람의 힘으로 쌓았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탑사입니다. 이갑용 처사가 30년 동안 쌓았다는 돌탑은 “불가사의”라 합니다. 현재 탑사에는 돌탑이 80여 기가 있습니다.






고금당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탑사가 마이산도립공원을 대표한다면 광대봉의 고금당과 나옹암은 마이산의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또하나의 볼거리입니다. 그 때문에 마이산을 찾는 등산객은 반드시 고금당과 나옹암, 마이산과 탑사는 빼놓지 않고 보고 옵니다.

 

 

고금당은 탑영제 아래에 있는 금당사의 모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처음 금당사가 있었다는 곳이 현재 고금당 자리입니다. 바위 면에 절묘하게 자리한 고금당은 고려말의 고승이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의 수도처인 자연 석굴입니다.

 

 

나옹화상께서 수도했던 굴이라 하여 나옹암·나옹굴이라 부르며 현재에는 석굴 입구에 목탑의 형식을 갖춘 독특한 모양의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 외관은 고금당과 함께 누런 황금색을 입혀 규모는 작지만, 꼭 황금색 사원을 보는 느낌입니다.

 

 

 

 

 

 

고금당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왔던 보덕스님의 제자 무상스님과 스님을 따르던 금취가 650년인 백제 의자왕 10년에 금동사로 처음 창건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해서 혈암사로 불리다가 절을 옮기면서 옛터에 있던 절은 고금당이라하고 옮겨와 다시 세운 절은 금당사가 되었습니다.

 

 

 

 나옹암

 

 

현재 고금당의 법당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좌우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셨습니다. 고금당에서 바라보는 마이산의 경치는 가히 감탄사가 연이어 터질 정도로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옹화상이 도통했다는 굴이자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꿈속에서 금척을 받아 훗날 조선을 건국했던 개국의 성지가 마이산 나옹굴이며 ‘금척천명지(金尺天命地)’라 칭합니다.

 

 

 

 

한, 동학농민의 녹두장군 전봉준 딸도 이곳 나옹굴에서 10여 년 동안 숨어 지냈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호남최초의 민중항쟁인 항일의병결사 창의동맹이 처음 시작되었던 애국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고금당 

 

 

어느날 이성계는 꿈속에서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고 깨어납니다. 그 후에 아지발도가 이끈 왜구와 남원의 운봉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마이산을 보고 이성계는 얼마 전 꿈에 금척을 받았던 곳과 주변 모습이 똑같았기에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이성계는 땅에서 솟았다는 용출산을 “선인에게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거 같다”하여 속금산(束金山)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성계의 성씨인 이(李)자가 나무목(木)이 있는 목성이라 금(金)성 과는 상극에 해당하여 “금의 기운을 묶어둔다”는 뜻이라 합니다. 그 뒤에 태종이 이 산을 보고 말의 귀와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한 게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성계의 전설이 남아 있는 천하절경 고금당과 나옹암을 가는 길은 마이산 남부 매표소를 지나 밀집한 상가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600m 거리에 2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룡대 전망대에서  본 나옹암과 고금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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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 고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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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4.15 08:10 신고

    나옹암~~ 암자의 이름이 참 재미있네요~~ 덕분에 구경잘 하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04.17 07:52 신고

    마이산이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드시는군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3. kangdante 2017.04.17 07:57 신고

    독특한 암자입니다..
    여유롭고 편안한 한주 시작하세요.. ^^

  4. 공수래공수거 2017.04.17 10:25 신고

    오 이런곳이 있군요^^

  5. 솜다리™ 2017.04.17 11:03 신고

    인상적인 곳이내요...^^
    덕분에 편히 구경 잘 하고 갑니다~

  6. 영도나그네 2017.04.17 17:41 신고

    마이산의 암마이봉에서 건너편 저멀리
    황금색으로보이는 나옹암으로 다녀오셨군요..
    몇년전 비룡대를 거쳐 그곳을 간 기억이
    나기도 하구요..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연인"

17.3.11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연인" 

여자분 얼굴은 약간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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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하구 다대동 | 다대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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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다대포일몰)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예쁜 자매를 담아 보았는데 모델은 수준급이고 찍사는 아직 초보수준이라 ㅋ ㅋ....


17.3.19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부산 일몰명소인 다대포해수욕장. 올들어 토·일요일 매주 빠짐없이 다대포의 명소인 일몰을 보기위해서 찾았습니다. 날씨가 맑은날은 맑은 그대로 다대포를 물들였으며 구름이 꽉 끼여 흐린날은 흐린 그대로 다대포를 저녁노을로 물들였습니다. 








이날은 평소보다 옅은 구름이 깔려 다대포일몰은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긴 다대포 백사장을 걸으며 어디 다대포 해변과 함께 담을 모델을 찾았는데.... 우연히 자매로 보이는 모델을 만났습니다. 사진은 담았는데 아직 초보수준이라 잘 담았는지, 열심히 담아야 어떤 사진이 좋은지 알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모습과 분위기가 좋아 올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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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워크뷰 2017.03.27 13:39 신고

    와~
    예쁜 자매를 잘 담으셨네요^^

  2. kangdante 2017.03.28 08:01 신고

    모델이 좋으면
    카메라 셔터는 마냥 즐겁습니다.. ^^




17.3.11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어느가족의 다대포 나들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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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3.22 07:56 신고

    가족과 함께 다대포 일몰을 보러 가면 좋겠네요

  2. *저녁노을* 2017.03.23 03:39 신고

    다대포의 멋진 풍경..

    잘 보고갑니다.



17.3.5 부산다대포해수욕장일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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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nnpenn 2017.03.20 16:06 신고

    다대포 해수욕장의 연인이 부럽습니다.
    ㅎ ㅎ
    순간포착이 정말 멋지네요.

  2. 영도나그네 2017.03.20 17:43 신고

    다대포 해수욕장의 일몰풍경은
    역시 최고의 명소 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3. 문득묻다 2017.03.21 10:05 신고

    일몰과 연인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부산일몰명소)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사진이 기다려지는 이유?


17.3.11월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사진입니다. 이날 어디 일몰 모델 없을까하며 다대포해수욕장 이쪽 끝에서 저쪽 노을정 끝까지 왔다갔다하다 만난 학생들입니다. 마침 친구들 끼리  모여 사진찍고 하기에 부탁해서 몇장 담았습니다. 







역시 학생들이라 그런지 흔쾌하게 동의해서 뒷모습을 담았는데, 너무 힘이 넘쳐나는듯 했습니다.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출과 일몰은 전국적으로 유명합니다. 그 아름다움의 일몰을 가슴에 담아 항상 따듯한 마음을 가지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갈 동량이 되었으면합니다. 



벌써 이번주말이 기다려집니다. 이번주에는 또 어떤 멋진 일몰 모델을 만날지... 어쭙잖은 사진실력이지만 이런 분위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을 찾게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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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득묻다 2017.03.17 15:19 신고

    젊은이의 패기와 아름다운 일몰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진이네요^^

  2. 핑구야 날자 2017.03.18 08:06 신고

    부산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겠어요






 


17.3.11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해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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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3.16 07:56 신고

    부산의 다대포해수욕장에 모습이 정말 장관이군요

  2. kangdante 2017.03.16 08:09 신고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게 한
    해넘이 일몰이 환상적입니다.. ^.^



17.3.5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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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3.14 08:16 신고

    그림같은 다대포 해변의 모습이네요

  2. 에스델 ♥ 2017.03.14 10:41 신고

    그림같은 풍경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3. kangdante 2017.03.15 08:10 신고

    화려한 다대포의 일몰이
    황홀합니다.. ^.^



17.3.11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좋아보여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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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득묻다 2017.03.13 15:02 신고

    일몰을 낚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활기차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2. kangdante 2017.03.14 07:48 신고

    황홀한 일몰입니다..
    아름다워요.. ^^



 우연히 담았던 사진입니다. 옆에 젊은 친구가 풀쩍 뛰길래 얼렁 찍었는데 ㅋㅋ 사진사가 초보라서 멋진 사진을 담지 못했습니다. ㅎㅎ 뛰는 걸 알았다면  등 뒤에서 한번 담았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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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03.06 11:49 신고

    초보 사진사 아닌데요? ㅎ

  2. 에스델 ♥ 2017.03.06 14:18 신고

    일몰 사진이 멋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3. 문득묻다 2017.03.06 14:31 신고

    아름다운 일몰 사진이네요~! 멋지게 잘 담아내셨어요^^

  4. 솜다리™ 2017.03.06 22:26 신고

    이장면도 좋은걸요...^^
    순간포착 멋집니다~~

  5. kangdante 2017.03.07 08:06 신고

    붉게 물든 노을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

  6. 핑구야 날자 2017.03.07 08:12 신고

    일몰을 보는 마음이 차분해지게 되어 좋아해요





(울산여행/울산가볼만한곳)진하 강양항. 초보 사진가 사상 처음 울주군 온산 강양항 일출촬영 좌충우돌 출사기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은 모두 다 간다는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온산읍의 강양항. 강양항은 회야강의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 포구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전국의 사진작가에게는 최고의 일출명소가 되었습니다. 일출은 기본이고 멸치잡이 어선과 물안개를 한 장의 사진에 모두 담아낼 수 있다는 강양항, 그래서 사진 초보인 저도 설레는 마음으로 사상 처음 강양항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강양항 주소: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강양리 86



지난주 토요일 새벽 3시에 자동으로 눈이 뜨자 혹시나 늦잠자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더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5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뜬눈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5시가 되어 연식이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를 챙겨 들고 놀이 삼아 울산 강양항으로 출발했습니다. 1시간을 조금 더 넘겨 어두컴컴한 강양항에 도착했습니다.





승용차가 주차된 채 시동이 걸린 게 여러 대 보였으며 관광버스가 내 앞에서 사람들을 한 차 내렸습니다. 서울에서 왔다는 K아카데미로 밤12시에 출발하여 이제 도착했다며 강양항 일출에 많은 기대를 하고 왔다 하였습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왔다며 많은 분이 “강양항 강양항”하고 또한, 인터넷의 일출 사진을 보면서 정말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에 새벽 같이 달려왔다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래도 취미가 같아선지 금방 가까워졌습니다.

 








바다에 붉은 기운이 감돌고 바다 오른쪽에 작은 섬 명선도가 보였습니다. 소나무가 삐죽삐죽 솟은 명선도 왼쪽으로 아침 해가 걸리는 것을 사진에서 여러 번 봐 왔던 터라 벌써 강양항 일출 포인터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모래밭에 삼각대를 펼치며 진을 쳤습니다.







저도 왼쪽으로 더 빠져나와 바닷가 암초에 ‘모세의 기적’처럼 물이 갈라지는 틈을 이용하여 바위로 잽싸게 뛰어올라 한자리 잡았습니다. 삼각대를 일단 설치하고 카메라를 거치하니 뒤에서 “혹시 한자리 있습니까?” 하며 묻기에 한자리 정도는 날 것 같다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아마 서울에서 왔던 팀으로 보였습니다.



벌써 우리 뒤로 많은 분이 삼각대를 걸고 해가 솟길 기다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참 대단합니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셨다 하니”. 하하 이래서 취미생활은 무서운가 봅니다. 멀고도 먼 서울에서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오는 것을 보면.





그런데 오늘 강양항의 날씨가 그분들의 열정을 받혀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낮은 구름이 수평선에 깔렸으며 일기예보에는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였지만 너무 추워서 그런지 그날따라 멸치잡이 어선은 물론이고 물안개도 볼 수 없었습니다.



사진으로는 정말 흔하게 물안개와 그 속에서 멸치잡이 어선의 작업 모습을 손쉽게 볼 수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주 까마득하게 멀리 있는 한 두 척의 배뿐이었는데 저걸 렌즈로 잡아 당겨 담는다 하니 말입니다.저는 지레 포기를 해야 했습니다.

 




“아이고마 내사 멸치잡이 어선은 안되겠심더”, 마 일출이나 열심히 담아야겠심더”하며 해를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그날의 해는 두꺼운 구름층을 뚫으며 “나 여깄다”하는 듯 사방, 팔방으로 몸을 태우며 빛을 내뿜었습니다. 그것고 잠시였습니다. 아직 초보 수준이라 일출 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명선도와 해가 많이 떨어져 자리 선택을 잘못했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오토매틱에 워낙 질이 들은 상태라 무슨 사진이 잘 찍은 것인지 쉽게 구별할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어설픈 초보 사진가를 입증하는 가장 중요한 핑계인 “장비가 안 좋아서’를 속으로 돼내며 연장을 나무라고 마음의 위안을 찾았습니다.





역시 우리 집 앞 송도해수욕장이 나에게는 최고의 일출 포인트야 하며 일출 사진 찍기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이제 보니 바닷물이 좀 전보다 많이 차오른 상태라 잘못하다가는 암초에 갇힐 판이었습니다. 삼각대를 철수하고 모세의 기적 순간을 기다렸다. 후다닥 뛰어 안전지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때까지도 많은 진사님은 사진 담기에 열중이셨는데 참 대단한 열정과 장비에 주눅만 들고 진하해수욕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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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온산읍 강양리 86 | 강양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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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01.22 06:46 신고

    부지런한 자만 누릴 수 있는 관경이지요.
    멋집니다.ㅎㅎ

    잘 보고가요.

    즐거운 휴일되세요^^

  2. 핑구야 날자 2017.01.22 08:24 신고

    노을 사진이 정말 아름답게 잘 나왔군요 노을만 보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3. 산위의 풍경 2017.01.22 20:16 신고

    수고하셨어요~ㅎㅎ

  4. 공수래공수거 2017.01.24 11:12 신고

    멋진 사진들입니다^^
    부러워요 ㅋ



 

(태백여행/태백가볼만한곳)황지공원 황지 연못.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시 황지공원의 연못인 황지 야경을 즐기다. 


지난 연말에 태백시에서 숙박하면서 긴긴 겨울밤을 보내기가 따분하여 시내 구경을 나섰습니다. 오랜만에 태백시에 온 이유도 있지만 닭다리에 소주라도 걸칠 요령으로 소주방을 기웃거리는데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가 연말의 분위기에 맞추어 네온 불빛으로 꾸며져 관광객을 맞았습니다.




 

 

황지는 1300리 낙동강의 발원지로 모두 알고 있습니다. 1486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 삼척도호부편에는 황지를 낙동강의 근원지라 하였고 심한 가뭄에는 관청에서 기우제도 지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신성시했습니다. 그러나 낙동강의 실질적인 발원지는 함백산의 금대봉 남쪽 골짜기인 너덜샘이며 이물이 태백시 황지를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간다고 합니다.

 

 

 

 

따라서 너덜샘이 낙동강의 발원지라면 황지는 낙동강의 상징적인 발원지가 됩니다. 그럼 황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황지는 3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상지, 중지, 하지이며 둘레가 100m인 상지가 가장 크고 그다음이 둘레가 50m인 중지. 하지는 30m로 가장 작은 규모입니다.

 

 

 

 

상지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굴이 있는데 이곳에서 심한 가뭄에도 매일 5,000톤의 물이 솟아 나오며 삼복더위에도 얼음장같이 차갑고 맑은 물이 마르지 않고 솟아 1989년 식수원인 광덕댐이 완공되기 전까지 태백시민의 중요한 상수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낙동강의 발원지로서 대접을 받으며 태백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황지에는 그럴뜻한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한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면 그 집을 파내어 연못으로 만들어 버렸던 형벌을 내렸습니다. 여기 황지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욕심 많은 사람의 최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황지라 불리는 연못은 먼 옛날 황씨성을 가진 분의 집터였다 합니다.

 

 

지금도 그 집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당시에도 아주 큰 부자라 모두 황부자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구두쇠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하루는 인근 암자의 노승이 황 부자 집에 시주를 얻으러 왔습니다. 황부자는 시주를 받으러 온 노승에게 시주하는 게 아까워 시주 대신 마구간의 쇠똥을 퍼다 시주그릇에 부어주었습니다.

 


 이를 본 황부자의 며느리가 깜짝 놀라며 노승에게 달려가 쇠똥을 털어내고 쌀을 한데 박 시주하면서 시아버지의 잘못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이 집의 운이 이것으로 다해 곧 큰 변고가 일어나니 살려거든 나를 따라서 오시오. 그리고 절대로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하니 며느리는 스님의 말을 듣고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도계읍 구사리의 산등을 지나는데 갑자기 등 뒤 집 쪽에서 뇌성벽력이 치며 땅이 꺼지는 듯 괴성이 들리자 며느리는 궁금하여 스님의 당부를 잊고 그만 돌아다보았습니다. 그때 며느리는 돌로 굳어버렸습니다. 이와 동시에 황 부자 집은 땅이 꺼지면서 연못이 되었고 황부자는 이무기로 변해 연못에서 죽을 때까지 살게 되었다 합니다.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불렀다하겠습니다.







3개의 연못 중에서 상지는 집터이며 중지는 방앗간터, 하지가 화장실 자리였다는 웃을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전설입니다. 황부자 집터라 하여 황지라 불렀는데 그 이전에는 하늘 못이란 뜻인 천황으로도 불렀다 합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고 한도 없다합니다.

 



 

 

 

그 욕심을 잘 다스리는 게 가장 성공한 사람, 부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황지를 보면서 욕심의 번뇌를 내려놓고 왔지만, 이 포스팅을 하면서 다시금 생각하면 그래도 마음만 부자인 사람은 항상 배가 고픈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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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태백시 황지동 623 | 황지공원 황지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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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1.19 08:14 신고

    데이트코스로 그만일 것 같아요~~ 멋진데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1.19 10:07 신고

    여긴 가 본곳인데 야경이 아름답군요
    전 낮에 다녀 와서리 ..ㅎ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안동이천동석불상, 제비원석불, 제비원 미륵불로 불리는 오뚝이를 닮은 독특한 마애불.


이번 안동여행에서 전체 높이가 12.39m인 대불을 보고 왔습니다. 안동 ‘제비원 석불’이라고 불리는 안동 이천동 석불상입니다. 제비원 석불은 서쪽을 보고 있으며 높은 바위면에다 부처님의 몸을 얕게 새겼으며 그 위에 따로 불두를 조각하여 올린 마애불의 형태라하겠습니다. 현재 이천동 석불상은 불두의 뒷부분은 수직으로 잘려나간 자연석이며 머리 가운데에 육계를 큼지막하게 만들었는데 밑에서 보면 확인하기 힘들지만 얼굴 부분과 또 다른 돌을 다듬어 얹었습니다.

 





안동이천동석불상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산 2

안동이천동석불상 전화:054-840-6591


2017/01/14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헛제사밥이라해서 헛배가 부른게 아니예요. 맛있는 음복음식 안동 맛50년 헛제사밥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2016/06/18 - (경북여행/안동여행)의성김씨 학봉종택. 안동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종택을가다. 의성김씨 학봉종택

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2016/06/17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2016/06/16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불두를 보면 얼굴은 부풀어 오른 듯 풍만하며 눈썹 사이에 백호를 양각하였고 실눈을 뜬 듯 좁으면서 길게 표현한 눈 위에 반원형의 눈썹을 짙게 나타내었습니다. 우뚝 솟은 코와 두툼하고 다부져 보이는 입술은 옅을 미소를 머금었으며 전체적으로 장중 근엄한 인상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목에는 삼도를 새겼고 바위에 직선으로 얕게 새긴 몸체는 불두의 근엄함보다 아주 단순한 느낌입니다.





몸체에 걸친 법의는 양어깨를 감싼 통견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왼쪽 어깨의 옷 주름과 오른쪽의 법의 자락이 서로 교차하여 접히고 가슴 밑으로 속옷의 띠가 보입니다. 양손은 모두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를 맞대어 오른손은 배에, 왼손은 가슴에 댄 입상이며 발밑에는 큰 연꽃 대좌를 음각하였습니다.

 




이천동 석불상의 구조를 보면 석불상을 새긴 바위 앞쪽과 오른쪽에도 높은 암벽이 막아 ‘ㄷ’자 형태의 구조입니다. 이는 석굴 형태로 17세기 초 안동읍지인 ‘영가지’에 불상 위에 기와지붕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불두 위로 닫집이 있었다 합니다. 지금도 이들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불상 어깨에 남아 있습니다,

 




석불 앞 바위 끝에는 연미사 중수기 비석이 현재 있으며 634년인 선덕여왕 3년에 명덕이 창건하였다 합니다. 부처의 몸체 위에다 부처 머리를 따로 만들어 올린 마애 석불상을 저는 경주 남산의 약수계곡 마애입불상만 알고 있었습니다. 17m의 거대한 불신에 불두는 증발하여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이리 온전한 형태의석불상인 이천동 석불상이 남아 있는 것을 이제야 보게 되어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이때까지 ‘제비원 석불’로만 알았는데 공식명칭은 안동이천동석불상으로 불리는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개미가 코끼리를 보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야만 얼마나 큰지 코끼리 전체를 다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이천동석불상도 마찬가지로 불상 바로 밑에서는 온전한 제비원의 석불을 한눈에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연미사 바깥으로 돌아 나와 공원에서 봐야만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이천동석불상 전체를 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애의 불신과 불두를 따로 조합한 형태는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에 아주 유행했던 양식으로 안동 이천동 석불상도 이 시기에 조각된 고려 시대 석불상이며 1963년 1월에 보물 제11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안동 이천동 석불상 뒤편의 암벽 위에 단층 기단의 삼층석탑이 남아 있으며 고려 시대 석탑으로 보고 있습니다. 탑의 높이는 3.5m이며 이는 석불상 뒤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복원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 때문에 현재 기단부와 탑신부의 구성과 비례 또한, 맞지 않아 부조화 서럽다 합니다. 아쉬운 점은 삼층석탑을 볼 수 있게 올라가는 길이 없는 건지 내가 찾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천동 석불상 옆에서 먼발치로 보고 왔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앞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이천동 석불상을 왜 제비원 미륵불, 제비원 석불이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미륵불이 있는 앞 넓은 공원이 오래전에 원(院)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원은 요즘으로 치면 여관으로 여행객이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교통의 중요한 길목에는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관리의 숙소로 사찰을 숙소인 원으로 국가에서 지정해 사용하게 했는데 연구사도 그중 한곳이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태산준령인 험준한 소백산의 죽령이나 나는 새도 쉬어 간다는 문경의 새재로 이어져 그 길목인 이곳 연비원에서 피로를 풀며 휴식을 취했다 합니다. 연(燕)은 ‘제비연자’로 제비에 원자가 붙어 제비원이 되었으며 왜 제비원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곳이 제비원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게 이천동 석불상 때문입니다.

 




석불상은 ‘ㄷ'자 형태의 암벽으로 둘러싸였으며 그 위에다 석불상을 보호하는 기와지붕을 덮었다고 했습니다. 그 지붕을 덮은 모습이 제비와 비슷했는지 ’연자루(燕子樓)‘라 했으며 그 끝에다 요사를 짓고 제비의 꼬리를 뜻하는 연미사(燕尾舍)라 불렀습니다. 또한, 석불 아래 법당은 제비부리를 뜻하는 연구사라 했습니다.

 




그러다 1934년경 연미사 자리에 새로 절을 세우고 연미사(燕尾寺)라 개칭하여 오르게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석불을 보호하는 기와지붕을 올렸던 게 제비원의 시초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에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정책으로 연구사는 폐사되었고 이천동 석불만 전설이 되어 남게 되었으며 근대에 와서 연미사기 지어졌습니다.





이천동 석불상이 불두와 불신이 분리된 데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로 온 이여송이 칼로 내려쳤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여송은 전란이 끝나자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관과 함께 조선에 큰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전국 명당의 혈을 끊으려 다녔습니다. 이여송이 제비원 앞에 이르자 갑자기 타고 다니던 말의 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여송은 주위에 서 있는 석불을 발견하고 단칼에 석불의 목을 내리치자 불두는 땅에 떨어졌고 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합니다. 지나가던 스님이 이를 보고 다시 불두를 제자리에 올려 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석불의 가슴에는 그 당시 흘렸던 핏자국과 왼쪽 어깨에는 이여송이 타고 온 말 발굽 자국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제비원은 민속신앙인 성주풀이의 본향이라 합니다. 성주풀이 소리에 ’성주 본향이 어디 에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러라 사설로 알 수 있듯이 이곳 제비원 석불이 매우 뜻깊은 곳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불경스럽지만 제가 만나본 제비원 석불은 꼭 오뚝이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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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이천동 산 2 | 안동이천동석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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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1.18 08:26 신고

    정말 오똑이 닮은 것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7.01.18 10:12 신고

    정말 독특하군요
    보고 싶습니다^^




(영덕여행/영덕가볼만한곳)강구 삼사해상공원. 동해안 일출 1번지 삼사해상공원 여행


영덕을 들어서는 입구에 조성된 삼사해상공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공원이 자리 잡은 곳이 삼사리입니다. 삼사리의 유래는 신라시대 때 이곳 출신 3명이 시랑 벼슬을 지냈다는 설과 시랑 벼슬을 한 3명이 숨어 살았다 하여 삼시랑 또는 삼시랑골이라 불렀는데 이 세분을 생각한다는 뜻에서 삼사리란 마을지명이 생겼습니다.

 

 

 

 

삼사해상공원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8-2

삼사해상공원 전화번호:054-730-6398

 

 

그래서일까요?? 삼사해상공원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아득한 느낌이 들며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곳입니다. 삼사해상공원 입구에는 먼저 큰 아치로 삼사해상공원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삼사해상공원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봄에는 흐트러진 벚꽃길이 유명하며 또한 경북을 알리는 대종과 어촌박물관, 공연장, 그리고 부대시설인 숙박촌과 식당가가 조성되어 우리 일행도 이곳에서 미리 숙박 예약을 하여 겸사겸사 찾게 되었습니다.

 

 

삼사해상공원의 제1경은 역시나 동해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입니다. 삼사해상공원은 영덕군에서 매년 1월 1일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곳입니다. 내일 아침 일출을 기대하며 저녁 시간 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 삼사해상공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삼사해상공원의 멋진 조형물입니다. ‘바다의 빛’이란 이름답게 우아하고 멋들어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밤에는 조명까지 들어와 더욱 화려했습니다. 영덕은 산과, 바다, 강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우며 거친 파도를 뚫고 동해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다의 빛’ 조형물에 고스란히 담아내었습니다.

 

 

영덕군민의 꿈과 희망, 영광이 조형물에 담겨 있으며 삼사해상공원은 영덕에서도 상징적인 공원입니다. 그 뒤로 검은 빗돌에 새긴 하산 김한홍 선생의 ‘해유가’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처음 뵙는 분이며 처음 보는 시구입니다.

 

 

첫 소절을 읽어보니 한일병탄의 암울했던 시기에 젊은 선비의 울분을 시로서 토해낸 듯하였습니다. 하산 선생은 1877년 영덕군 강구면의 작은 마을인 하직리에서 태어났습니다. 26세에 하와이의 수수사탕 농장 노무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와이로 건너가 노무자 생활을 하다 대한제국 주하와이 영사관 서기로 발탁되었습니다.

 

 

그러다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로 한일병탄이 되자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 장사를 하다 1908년 환국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칩거하면서 미국 하와이의 생활에서 보고 듣고 했던 것을 기록한 ‘해유가’를 남겼습니다. 해유가는 4.3조, 4.4조의 국한문 혼용체로 471행의 기행가사입니다. 내용을 보면 미국의 당시모습과 근대화를 이룬 일본, 조선 말기 암울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가사형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기행문이라 그런지 경주지역 등 제가 알고 있는 지명이 여러 곳이나 나오는데 해유가 비문인 ‘광화문 육조거리 잡초가 무성하고 보신각 옛집 앞에 검은 옷이 횡행이라“란 구절을 보면서 망한 당시 조선말기의 참담한 실상을 나타내었고 을사년에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젊은 선비의 분기탱천한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니 큼지막한 꽃돌이 울적한 기분을 달래주었습니다.

 

 

영덕군 지품면에서 나왔다는 ‘천하제일 화문석’은 그 무게만 자그마치 20톤이라 합니다. 영덕에도 천연 매화 꽃돌이 나온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매화 향이 가득한 듯 자연이 만들어낸 화문석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감탄을 해 봅니다.

 

 

이번에는 경북대종이 있는 종각입니다. 경상북도 100년을 알리며 그 기념으로 경북대종과 종각을 조성하여 새해에 타종으로 대한민국의 아침을 깨우고 있습니다. 경북대종의 크기는 높이가 420cm, 지름 250cm, 무게가 29톤으로 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성덕대왕신종을 기본바탕으로 제작했습니다.

 

 

 

 

종신에 조각된 대금을 든 천인상과 사과를 든 비천상은 문화예술의 영덕과 경북의 대표특산물인 사과는 풍요롭고 살기 좋은 경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강구항을 배경으로 유명한 드라마 촬영이 있었습니다.

 

 

 

 

 

 

 

 

1997년이니까 벌써 20년이 다 되었군요. MBC 주말 연속극 ‘그대 그리고 나’로 온 집안 식구를 티브이 앞에 붙들었으며 또한, 강구를 영덕대게의 대표 산지로 만든 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영덕어촌 민속전시관에는 영덕대게 잡는 방법 등 여러 전시품이 전시되어 어촌생활에 관해 볼 게 정말 많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많이 찾는다“는 속담처럼 동해에서 떠오른 일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사진을 담는 기술이 부족하여 잘 표현을 못했지만 마음만은 불타올라 삼사해상공원의 일출을 담아보았습니다. 영덕을 지나는 길에 한 번쯤 들렀다가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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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8-2 | 삼사해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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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6.12.22 07:48 신고

    일출을 보기 위한 명소가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요
    참고 할께요

  2. 공수래공수거 2016.12.22 09:46 신고

    확실히 한번 가 보고 눈에 익은곳은 반갑게 느껴집니다
    그때 생각도 나고요^^

  3. 영도나그네 2016.12.23 15:27 신고

    역시 경북 영덕은 볼거리 먹거리들이 풍성한곳 같습니다..
    해돋이 장소로도 제일이기도 하구요..
    잘보고 갑니다..




(밀양여행/밀양가볼만한곳)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 최수봉, 백민 황상규등 밀양 독립운동가 거리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안동을 양반의 고장이라면 밀양은 선비의 고장입니다. 선비가 곧 양반이라 할 분도 있겠지만, 그 뜻은 엄연히 다르며 선비는 하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자태가 고고한 학처럼 우아하고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사군자를 항상 곁에 둡니다. 그만큼 국가가 어려울 적마다 선비들은 들고일어나 자신의 목숨을 초계와 같이 버렸습니다.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주소:
경남 밀양시 내일동 516-23



임진왜란·정유재란 등 많은 병란에도 민초와 선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조선 말기에도 나라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며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때에도 선비의 고장 밀양에서는 국난을 극복하는 운동이 들불같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밀양의 올곧은 선비정신이 그 밑바탕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밀양에서 일제 강점기 때에 저항 운동을 벌였던 항일 독립투사가 70여 분이나 나왔다는 게 이게 밀양의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런 선비정신인 밀양의 기개가 흐르는 곳이 내이동과 내일동를 가로지르는 해천입니다. 해천은 밀양 읍성의 방어를 위해 성벽 아래에다 파낸 인공하천입니다.





이는 1479년 조선 성종 10년에 일반 하천이던 것을 읍성 방어 목적으로 만들었으며 이를 해자라 하여 해천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해천 주위로는 밀양 항일운동의 본거지라 할 정도로 밀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분이 많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해천 옆 밀양 관아 앞에서 1919년 3월 13일 밀양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영남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운동이라 합니다. 해천 항일운동 테마 거리에는 3·13 밀양 만세운동을 비롯하여 밀양 출신으로 의열단 단장이던 약산 김원봉 장군, 석정 윤세주, 최수봉 등 경남 밀양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의 항쟁을 실감 나게 그린 벽화와 조형물 그리고 웹툰을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에 조성해 놓았습니다.







해천 항일운동테마거리는 13개의 주제로 그려졌으며 3·13 밀양 만세운동과 김원봉, 윤세주의 새로운 조명과 생가터 발굴, 태극기 나무, 밀양 출신 독립군 69기 명패, 희망우체통, 시민 1,000여명의 메시지를 담은 타일 부착, 태극기 변천사, 천만 영화 ‘암살’의 그림벽화와 독립군의 활동상황, 조선의용대의 모습 등 말로만 듣던 독립운동의 수많은 자료를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민의 휴식공간인 쉼터를 함께 조성하여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영화 ‘암살’과 ‘밀정’에 등장하는 약산 김원봉 장군은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잊힌 분입니다. 일부 사람들에게만 겨우 알려졌던 약산 김원봉. 그분의 독립운동은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약산의 어린 시절 밀양 상동면 모정리에 있었던 고명학교에 백민 황상규와 윤세주 등이 함께 다녔습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던 김원봉과 친구들은 ‘일왕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일장기를 학교 변소 똥통에다 처박아 넣고 일왕 생일 경축을 반대했습니다. 마침내 일장기 훼손 사건은 발각되었고 고명학교는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 조치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김원봉은 1916년 중국으로 망명했으며 1919년에는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는 무장단체 의열단을 조직합니다. 일제의 주요기관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요인과 친일파 암살 등 항일무장테러조직인 의열단 단장을 맡은 김원봉은 23차례나 국내·외에 일본 요인 암살 및 주요 기관 폭포를 단행하여 일본경찰를 경악에 떨게 하였습니다.



김원봉 장군은 당시 김구 선생 보다 더 많은 현상금이 목에 항상 붙어 다녔던 것을 보면 일제의 최고 경계 인물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활동하다 광복 두 달 후 임정 요인과 함께 상해임시정부 군무부장 자격으로 귀국하지만, 그에게 기다린 것은 친일 경찰 출신에게 뺨을 맞는 등 온갖 수난과 살해 위협이었습니다.





그는 깊은 자괴감을 빠졌으며 1948년에 김구, 김규식과 함께 평양에서 열린 남북 연속회담에 참가했다가 남한 현실에 비애를 느껴 혼자 북에 남았습니다. 그 후 북한의 여러 고위직을 거쳤지만, 김일성은 권력 강화를 위해 미제스파이란 죄목으로 박헌영을 처형하고 1958년 소련파와 연안파 숙청 때 함께 약산 김원봉도 숙청당했다는 소문입니다.





 한동안 김원봉의 이름은 금기어가 되었으며 2000년 이후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의열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석정 윤세주는 약산 김원봉과 꼬치 친구로서 김원봉보다 두 살 아래였습니다. 생가 또한 해천변에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윤세주는 김원봉과 함께 다녔던 동화 중학이 폐교하자 서울로 상경하여 오성 중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밀양으로 내려와 고향의 여러 동지와 규합하여 3·13 밀양 만세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 후 중국의 랴오닝 성 유하현으로 망명 합니다.

 






그리고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하여 군사학을 배웠으며 그곳에서 헤어졌던 친구 김원봉과 상봉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여 13인이 지린 성에서 의열단을 결성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거사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석정 윤세주는 폭탄을 휴대하고 국내에 잠입하지만 발각되어 실행에 옮겨 보지도 못하고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 윤세주와 많은 동지가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출옥하여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열단 단장을 맡고 창군된 조선의용군의 요직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1940년 겨울에 조선의용대 제3 지대를 이끌고 화북으로 나간 후 1942년 5월에 중국 태항산의 마전 전투에서 총탄으로 중상을 입고 흑룡동 동굴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정부는 독립장을 추서. 밀양 삼남면 마산리의 최수봉 또한 김원봉과 함께 동문수학했으며 그는 1920년 9월 14일 의열단 단원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파 의거를 보고 고무되어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거사를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그의 투철한 애국심에 밀양경찰서는 반파하였으며 거사 후 붙잡혀 사형 선고 받았지만 대한 남아의 기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당당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제는 급하게 사형을 집행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투거로 위축되었던 항일무장태러가 다시금 불붙는  계기가 되었다합니다.












올해 12월은 국가 보훈처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최수봉 의사를 선정했으며 정부에서는 1963년에 그의 높은 항일정신을 기려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이외에도 백민 황상규 등 밀양의 많은 독립투사의 행적을 해천 항일운동테마거리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태극기로 둘러싸인 해천 항일운동테마거리를 걷다가 문득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하는 소리가 내 귀에 쟁쟁히 울리는 듯 했습니다.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석정 윤세주






조선의용대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처 박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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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내일동 516-23 |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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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12.10 09:40 신고

    이곳은 처음 봅니다
    밀양가면 한번 들러야겠네요^^

  2. kangdante 2016.12.12 08:09 신고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군요?..
    오랫동안 기억해야할 동네인 것 같아요..

  3. 솜다리™ 2016.12.12 09:54 신고

    이 길을 걷다보면... 가슴이 뭉클해질듯 하내요^^



정기룡 장군 동상

(상주여행/상주가볼만한곳)상주 경천대와 무우정. 상주 여행 1번지 정기룡 장군 전설과 경천대와 무우정 여행.


경상북도 상주여행 1번지 경천대. 경천대를 보지 않고는 상주여행을 하지 않았다 할 정도로 상주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입니다. 경천대는 야트막한 155m의 무지산 아래에 'S'자로 휘도는 낙동강의 물줄기와 빼어난 절경을 빚어내며 솟구친 수직 단애의 바위는 경천대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도 남습니다.





경천대 관광지 주소: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산 12-3

경천대 관광지 전화:054-536-7040

 

2016/12/01 - (상주여행)상주 경천대와 회상나루관광지 상도드라마세트장. 상주시 상도드라마세트장



낙동강은 어머니의 젖줄처럼 1,300리를 부드럽게 흘러 부산 하단의 하구에서 바다로 소리소문없이 스며듭니다.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은 우리와 아픔을 함께 해왔으며 근대에 와서는 낙동강을 이용하여 산업화의 기초를 세운 우리에게는 고마운 강입니다.


경천대 황톳길

엄마와 같은 부드러운 모습인 낙동강에 하늘을 바치는 기둥으로 부르는 무지산의 최고봉 옥주봉에서 그 흐름이 꺾여 낙동강 최고의 절경인 경천대를 만들었습니다. 경천대에 올라서면 상주시민이 가장 자랑하는 여행지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경천대 관광지 입구에는 육지의 이순신으로 임진왜란의 무패를 자랑하는 명장 매헌 정기룡장군(1562~1622)과 명마 동상이 있습니다. 정기룡장군은 유년시절 이곳에서 용마와 함께 수련하였고 바위에 홈을 파내어 말먹이 통을 만들었는데 그게 지금도 남아 있다 합니다.

 

경천전망대

이곳을 지나면 경천대의 유래비가 있는 표지석에서 왼쪽 돌계단을 오르면 무지산 전망대인 옥주봉(155m) 가는 길입니다. 전망대 오르는 길은 황톳길로 꾸며져 있으며 황토를 아주 작은 입자로 둥글게 만들어 구워 길게 등산로에 깔아 황톳길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곧 3층 건물인 무지산 전망대입니다. 2층에는 삼백의 고장이라는 상주 특산품인 쌀과 명주, 곶감 그 외에 청정 상주에서 생산되는 여러 물품이 전시 중이며 특히 할머니가 전해주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야기를 형상화해 놓았습니다. 아련한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곳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3층의 전망대에서 보는 사방팔방 펼쳐지는 경관입니다. 유장하게 굽이치는 낙동강 하며 상주의 진산인 갑장산, 노음산 등 여러 명산이 한 폭의 그림을 펼쳐 놓은 듯합니다. 경천대 일부분만 봤는데도 눈이 휘둥그럴 정도로 깜짝 놀랄 풍경인데 경천대에서 만나는 풍경이 어떨까 더욱 궁금해집니다.
















이래서 상주 경천대, 경천대 하나가 봅니다. 경천대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가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 경천대·무우정 방향으로 내려서면 솔숲 사이에 4개의 큰 바위가 징검다리를 한 것 같이 늘어서 있는 게 보입니다. 이곳이 경천대입니다.





 경천대(擎天臺)는 다른 말로 자천대(自天臺)라 합니다. 이는 ‘하늘이 만든 절경’을 뜻하며 그 아래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우제 터인 우담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상주에서 경천대를 가장 신성시했던 곳이라 여겨집니다. 오래전부터 빼어난 절경으로 많은 시인 묵객이 경천대를 찾아 들었으며 우담 채득기(1605~1647) 선생이 경천대 옆에다 무우정을 짓고 은거했던 곳입니다.




경천대













으며 우담 채득기(1605~1647) 선생이 경천대 옆에다 무우정을 짓고 은거했던 곳입니다. 경천대에는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란 각자가 바위 사이 석판에 음각되어 있습니다. 숭정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연호로 청나라에 의해 망한 명나라를 받든다는 뜻입니다.



이는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면서 항복하였고 1637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심양에 끌려갔습니다. 우담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쫓아 군신의 의리를 다하였으며 봉림대군과 1645년 환국하였습니다. 우담은 봉림대군을 도와 북벌의 의지를 불태웠으며 자천대에다 승명사상을 뜻하는 경천대비를 세우자 후세 사람은 이를 경천대라 불렀습니다.





복수심에 불탔던 북벌은 중단되었고 우담은 봉림대군(효종)의 만류에도 곁을 떠나 경천대로 내려왔습니다. 이에 효종은 충신이 사는 곳을 눈으로 보고 싶어 화사를 보내어 자천동 28경을 그려오게 해 곁에 두었다 합니다. 경천대를 오르는 돌계단 중간쯤에는 바위에 세 개의 패인 구덩이가 있습니다.



오른쪽 두 개는 사각형이며 왼쪽은 둥근 모양인데 한 곳은 연을 기르던 곳이며, 세수대야와 명의로 이름 날렸던 우담답게 약을 제조했던 그릇인 약분이라 합니다. 무우정은 1636년 병자호란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승명의 의리를 지켜 은거하려 지은 정자로 ‘춤을 추며 비를 빈다’는 뜻입니다.

 


정자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우정이 자리한 터가 기우제를 지냈던 장소인 우담입니다. 선생은 정자의 편액을 ‘무우’라 정하면서 ‘자연을 벗 삼아 도를 즐긴다’는 ‘풍호영귀’에서 그 뜻을 취했다합니다. 정자는 1748년 상주목사 이협에 의해 중건되었으며 1948년과 2005년에 각각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무우정


경천대음 편액



무우정에 걸린 편액을 보면 청음 김상용의 ‘우담신정기’, 택당 이식의 ‘무우정기’, 계당 유주목 등의 기문과 후손인 광식의 ‘경천대감음’이 걸려 있습니다. 무우정을 지나면 울울창창 하늘을 가린 키 큰 솔숲의 오솔길입니다.






이 길 끝에 걸린 나무다리를 건너면 현재 경천대 상도 드라마세트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2001년 10월에 MBC 창사 4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상도’ 촬영지로 조성되었으며 그 후 여러 방송사에서 드라마 촬영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합니다. 물론 경천대를 찾는 관광객에게도 사진촬영지로 최고 인기코스입니다.




경천대 상도 드라마 세트장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최고 비경 지대로 움푹 팬 물웅덩이 모습을 하였습니다. 그 끝에는 길게 목을 쭉 뺀 용두봉이 감싸 안은 형국이라 용소라 부릅니다. 이곳에서 정기룡 장군이 명마를 얻었다는 연못입니다. 명마도 명장을 만나야 그 빛을 발하는 법 용소에서 뛰쳐나온 용마는 벌써 떼깔부터 달랐던 모양입니다.



건너편 회상리 매골 모래밭에서 빛을 발하며 뛰어놀던 용마를 발견하고 정기룡장군은 허수아비로 변장해 접근하여 용마의 길을 들였다 합니다. 매헌은 용마를 타고 금산전투에서 조경을 구할 때 신출귀물함이 마치 삼국지에서 유비 아들인 유선을 구하며 ‘칼춤을 췄다’는 조자룡과 닮았다 하여 ‘정자룡’이라 불렀다 합니다.  



우암 송시열이 정기룡 장군의 신도비를 쓰면서 신마(神馬)라고 용마를 격찬했다는데 하늘에서 용마를 얻음으로서 매헌은 더욱 뛰어난 명장이 되었나 봅니다. 상주 1번지 매헌 정기룡 장군의 전설과 충신으로 이름을 드높혔던 우담 채득기선생의 은거지 경천대와 무우정에서의 낙동강 여행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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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산 12-3 | 경천대국민관광지 경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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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6.12.03 15:13 신고

    잘 보고갑니다.
    ㅎㅎ


    행복한 주말 되세요

  2. kangdante 2016.12.05 07:43 신고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이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

  3. 핑구야 날자 2016.12.05 08:19 신고

    낙동강 여행 코스로 괜찮은 것 같아요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2016년 제8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광복동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어둠의 밤을 밝히다.

 

와우!! 드디어 올해에도 

부산 광복동에 

제8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지난 11월 26일 점등식을 시작으로 

2017년 1월 8일 일요일까지 

장장 44일간 크리스마스 성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2015/12/01 - (부산여행/중구여행)2015 부산 광복로 크리스마스트리 축제. 12월의 크리스마스 부산 광복로에서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 축제 빛을 밝히다.

2014/11/30 - (부산여행/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온누리에 기쁨을...제6회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2013/11/28 - (부산여행/중구여행/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더욱 화려해진 제5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개막식 전에 미리 댕겨왔습니다.

2012/12/01 -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축제)화려한 트리 불빛에 깜짝 놀래, 미리가본 성탄절 축제 제4회부산크리스마스트리축제

2011/12/02 - 빛 축제 광복로에서 열리는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의 그 화려함에 놀래다.




올해의 콘셉트는 

“Rejoice in the Birth” 탄생의 기쁨을 주제로 

부산이 들려주는 여덟 번째 크리스마스 이야기이며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일날이라는 것은 

모두 아시는 사실…….

 


이번 시티스폿의 메인은 

생일날이면 빠질 수 없는 케이크 트리입니다. 

ㅋㅋ 

그 높이가 무려 6단 케이크에 

17m라 아마 진짜 케이크라면 

기네스 북 감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올해에도 광복로와 부산 근대박물관, 

국제시장 사거리의 세 방향에서

 화려한 불빛을 밝혀 

메인인 시티스폿으로 집중하는데 

그래도 가장 볼 게 많은 곳은 

역시 광복로 쪽입니다.




축제 기간에는 

올해에도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었습니다.

 포토존에서 

가족과 연인의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으며 

많은 문화행사도 준비 중입니다.




음악, 춤, 연주, 퍼포먼스, 무용 공연 등 

아마추어 팀의 다양한 무대공연인 

데일리 콘서트와 

시민참여프로그램인

 ‘나는 클수다’ 

공개오디션도 진행한다 합니다.



어서 빨리 부산크리시마스트리문화축제 

홈페이지에 신청하여 

끼를 발산해 보세요. 

그 외에도 다양한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타임’에는 

인공 눈뿌리기 행사가 열리며

 소망 트리, 

보물찾기, 

성탄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시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문화축제가 될 것 같습니다.



2016년 제8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많이많이 놀러오세요?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사진으로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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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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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gdante 2016.11.30 07:45 신고

    와우!~
    벌써부터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입니다.. ^.^

  2. 핑구야 날자 2016.11.30 08:10 신고

    연말연시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지는군요

  3. 공수래공수거 2016.11.30 10:35 신고

    이번 크리스마스는 정말 축복받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4. 분 도 2016.11.30 10:55 신고

    화려한 밤의 거리 벌써 연말연시 분위기네요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전 홍유후 설총묘.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던 신라 대문장가 설총묘 여행. 


경주 보문동에 설총묘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설총하면 신라 중대 문장가로 알려졌지만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원효대사이며 어머니가 요석공주로 두 분 사이에 태어났다는 것이 더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보면 뼈대 있는 신라 왕족 집안입니다. 외할아버지가 삼국통일을 이룩한 태종무열왕 김춘추이며 친할아버지는 나마담날로 설총은 경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주설씨와 순창설씨의 중시조이며 신라 10현이자 고운 최치원과 강수와 함께 신라 3문장 가로 꼽고 있습니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일화를 보면 출가한 요석공주는 과부가 되어 다시 궁궐로 들어와 요석궁에 머물렀습니다.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긴 행로로 몸도 피곤하고 하여 동굴인 줄 알고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잠을 자다 원효는 목이 말라 주위를 더듬다가 마침 손에 잡히는 바가지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 물 참 꿀맛이다”며 다시 곯아떨어졌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는 뒤로 까무러칠뻔했습니다. 목이 말아먹었던 그물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었으며 지난밤 단꿈에 쩔어 잤던 곳은 무덤 속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설총묘는 지금 이발중 ㅋㅋ



원효는 그곳에서 일체유심초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서라벌로 돌아와 노래를 불으며 민중 속을 파고드는 불법을 전합니다. 그러자 어느 날 원효는 색다른 노래를 부르고 다녔습니다.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느냐.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다듬고자 하는데 “하며 불렀지만 아무도 그 노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태종무열왕만은 노랫말을 듣고 “자기한테 여자를 주면 뛰어난 현자를 낳게 하겠다”는 뜻으로 단박에 이해하고는 과부로 있는 자신의 딸인 요석공주와 맺어줄 묘책을 짜냅니다. 원효는 김춘추가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궁궐로 향하다가 그만 문천교에서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는 바람에 입고 있던 옷이 다 젖게 되었습니다. 태종무열왕과 원효는 서로 이심전심이듯이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원효와는 별 바쁜 일이 없던 관계로 태종무열왕은 온몸이 젖었는데라며 옷을 말린 후 내일 보자며 바로 원효를 요석궁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김춘추는 요석궁에서 옷만 말리라 했는데 그날 밤에 바로 사달이 났고 10개월 후에 설총이 태어났습니다. 원효는 이 일로 파계승을 자처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 설하고 설총은 중국의 한자를 우리말로 표현하는 이두를 만들었습니다.



코끼리 다리를 닮은 설총묘 석상다리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인 소리와 뜻을 새겨 우리말로 적은 것을 말합니다. 유교 경전도 우리말로 풀이하여 고려 중기까지 사용했으며 이두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전까지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설총이 저술한 우화적 단편 산문인 화왕계도 있습니다. 제목도 없이 삼국사기에 실렸다가 풍왕서란 이름으로 동문선에도 실렸으며 후대에서 화왕계로 불렀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외삼촌인 신문왕이 설총에게 마음이 울적한데 이를 풀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설총은 향락을 멀리하고 도덕을 엄격히 할 것을 우화를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신문왕은 현명한 임금답게 글로 남겨 후세 임금은 모두 이를 본받도록 했습니다. 1022년인 고려 현종 13년에 홍유후라는 시호를 추증받았으며 최치원과 함께 문묘에 배향되었고 1623년 조선 인조원년에 경주 서악서원에 제향 되었습니다 크기는 지름이 15m, 높이 7m이며 흙을 쌓아 올린 반구형으로 아랫부분에는 보호돌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봉분은 작지만 꼭 신라왕의 무덤 같으며 앞에는 큰 상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돌로 위패를 모시는 자리는 흡사 돌의자 같았습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30호이며 전 홍유후 설총묘(傳 弘儒侯 薛聰墓)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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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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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귀여운걸 2016.10.25 20:25 신고

    오호~ 설총묘에 대해 덕분에 잘 알게 되었고 관심이 생겼어요~
    저두 꼭 한번 직접 가서 살펴보아야겠네요^^




(함안여행/함안가볼만한곳)고려동유적지. 조선에 있었던 고려땅 고려동을 아세요. 함안 고려동 유적지.


아직도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에 망한 고려땅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 고려국이 틀림없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고려동이란 이름으로 말입니다. 충신은 말할 때 불사이군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합니다. 많은 충신이 있지만 포은 정몽주 선생과 함께 고려말 삼은으로 불리는 목은 이색, 야은 길재를 대표적인 고려말 절의를 지킨 충신으로 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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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려말에 성균관의 진사였던 모은 이오 선생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을 하자 고려의 신하로서 절의를 지키고자 산천을 주유하다 백일홍이 만발했던 이곳을 거처로 정하면서 집안 식구를 이끌고 내려와 돌담을 쌓고 고려국임을 뜻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의 비석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고려동 유적지 불리면 들어서는 입구의 작은 개울에 걸린 다리가 고려땅을 알리는 ’고려교‘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부터는 고려땅입니다. 이오는 먼저 고려 영토를 뜻하는 국경인 돌담을 쌓고 고려인으로서 조선에 끝까지 저항을 한 분입니다. 여기에서 담안과 장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습니다.








이곳이 이오의 후손들이 19대 600여 년을 내려오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터였습니다. 선생은 숨지면서 유언을 남겼습니다. 절대로 조선왕조에서 벼슬길에 나서지 말 것과 자신의 신주를 이곳 이외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라 했습니다. 당시 이성계는 이오에게 벼슬길에 나설 것을 수차례 당부했지만, 그때마다 자신은 고려의 신하로서 거절하였습니다.









태조는 함안에서 올라오는 상소에 이오가 담장을 쌓고 자꾸 고려땅이라고 우기는데 어떡할까요?? 하면 워낙 세력이 약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그런 이오의 고려에 대한 절의를 인정하면서 고려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고려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태조는 자신의 신하에게도 이오와 같은 절의를 기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문인지 고려동은 오늘날까지 전해졌는데 고려동을 뜻하는 담장 안에는 주거지는 물론이고 우물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전답이 있어 재령이씨 이오의 후손들은 조상의 유지를 받들고 안빈낙도의 삶을 살면서 학문에 전념했습니다. 현재 마을은 재령이씨 후손 30여 가구가 생활하며 고려동학표비, 고려동 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고려전 3,000여 평, 자미정, 율간정, 복정 등이 있었다 하지만 6·25 한국전쟁으로 고려동의 건물은 대부분 파괴되어 폐허로 변했다가 다시 복원하여 오늘날의 고려동으로 제모습을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고려동에 남아 있는 건물 대부분이 최근에 복원되었습니다. 고려동의 모든 게 전쟁통에 사라졌지만, 당시 이오 선생의 불사이군 절의를 기억하는 백일홍만이 더욱 붉은 꽃을 피우며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


복정








고려전




고려동 담장







 

고려동 유적지 주소:경남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 

고려동 유적지 전화:055-580-2321


 

2014/08/07 - (경남여행/함안여행) 함안대산리석불, 함안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을 보고 왔습니다.

2014/08/20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무진정. 한여름의 무더위도 걱정없는 정자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함안의 무진정.

2015/03/01 -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원효암과 의상대. 한적함이 절간 같다는 말이 실감나게느껴지는 원효암 의상대 여행.

2015/12/18 - (경남여행/함안여행)용화산 능가사. 남지철교와 낙동강을 끼고 앉은 최고의 절집 용화산 능가사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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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 | 고려동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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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6.10.20 03:44 신고

    유적지 구경 잘 하고 가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2. 핑구야 날자 2016.10.20 07:58 신고

    대문 앞에 걸려 있는 태극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네요

  3. 공수래공수거 2016.10.20 09:06 신고

    함안 여행을 할때 꼭 들러 봐야겠네요^^

  4. 영도나그네 2016.10.21 16:37 신고

    아하!
    경남 함안에 정말 고려땅이 이렇게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군요..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는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구요..
    덕분에 역사공부 잘 하고 갑니다..




(사천여행/사천가볼만한곳)각산산성. 백제 무왕이 쌓았다는 경남 사천의 각산산성 여행. 


우리나라는 일본과 가까워 이를 대비한 많은 산성을 쌓았습니다. 축성 연대를 보면 길게는 삼국시대까지 올라갑니다. 특히 남해안을 끼고는 봉수대와 산성이 더욱 많아 남한에만 남아있는 산성이 1,115곳가량 된다고 하니 이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리고 산에 쌓은 산성은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는데 이를 테뫼식 산성, 포곡식 산성, 평지성 등으로 구분합니다.








이번에 방문했던 경남 사천의 삼천포항을 병풍처럼 두른 각산의 산 정상부에는 각산봉화대와 그 아래 8부 능선에는 각산산성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산성의 길이는 대략 242m이며 돌로 쌓은 석성입니다. 각산산성의 남문은 원형 상태로 남아 있었지만, 성벽 대부분은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망대와 함께 복원한 상태입니다.



각산산성의 축성은 삼국시대로 605년 백제 제30대 무왕 6년에 축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서기에도 6세기 중엽에 백제가 섬진강을 건너 진주를 공략했다고 한 것을 보면, 그 당시 백제 무왕이면 최고의 전성기로 국력이 왕성할 때입니다.


 


무왕은 영토확장을 하면서 이곳까지 힘을 뻗어 복속시켰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의 ‘진주목본백제거열성’, “진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이었다”라는 기록에서 백제 땅이라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령왕 6년 2월에는 여러 산성을 쌓았다는데 진주의 남쪽 76리에 있다 한 것을 보면 각산산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에서 백제와 신라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던 가야를 두 나라가 점령하였는데 김해의 가락국은 신라가 복속시켰고, 백제는 거열성을 이용하여 고령과 가야 등을 점령하면서 이곳 각산에 쌓은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 시대 삼별초 난을 평정할 때에도 각산산성은 이용되었으며 1350년 공민왕 9년에는 왜구가 이곳에 쳐들어오자 각산아래 마을의 주민들은 산성에서 돌팔매로 항거하며 물리쳤습니다.



 


또한, 1592년 임진왜란에도 각산산성은 활용되었습니다. 각산산성의 규모는 7,093.3㎡이며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산산성의 복원된 건물인 장대인 망루입니다.




복원된 마루


저는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복원된 건물은 차지하고라도 마루를 보면 당시에는 아마 소나무 등을 깎아 쪽마루로 깔았지 싶은데 복원된 마루는 건축자재상에서 판매하는 듯한 기성품 느낌이 드는 작은 홈이 팬 그런 형태의 마루였습니다. 복원이 아닌 전망대로 그냥 만들었다면 할말이 없지만 복원 공사라면 좀 그러내요. 공사하면서 일손은 편했겠지만 당시에도 이런 마루였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건 아닌 것 같으며 세심한 복원이 아쉽습니다. (포스팅하고 담당하신분과 통화를 했는데, 요 건물은 문화재가 아니고 하시며 복원한거는 맞으며 바닥 마루는 비바람에 노출되어 쉽게 썩는다고 방부목인 기성품을 깔았다합니다. )











각산산성 정보 안내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5호

각산산성 주소: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 산 40

각산산성 문의처:055-831-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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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시 실안동 산 196 | 각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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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10.10 09:39 신고

    백제때 축조한 산성이 아직 있군요
    잘 보존해야 할것 같네요^^

  2. 에스델 ♥ 2016.10.10 14:32 신고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네요.^^
    복원된 마루가 기성품이라 아쉽습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3. 멜로요우 2016.10.10 20:39 신고

    마루룰 복원해서 인지 더 깔끔해 보이네요.
    앞으로도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네요

  4. 비키니짐(VKNY GYM) 2016.10.10 21:54 신고

    이런 곳이 있었군요
    사진만으로 힐링이 되네요^^

  5. pennpenn 2016.10.11 07:13 신고

    제가 각산에 올맀을 때도
    짙은 안개로 조망을 전혀 못했는데
    이날도 안개구름이 끼었군요.

    그렇지만 마루에서 바라보는 안개가 걷힌 모습은
    정말 좋습니다.

    미세먼지가 없는 깨끗한 날입니다.
    화요일을 멋지게 보내세요.

  6. kangdante 2016.10.11 07:15 신고

    외적의 침입이 많았던 우리나라라
    산성이 곳곳에 많았던 것 같아요..

  7. 2016.12.21 15:50

    비밀댓글입니다





(포항여행/포항가볼만한곳)포항 운제산 오어사 자장암. 부처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는 운제산 오어사 자장암 절집구경.


포항 운제산 오어사의 산 내 암자인 자장암은 운제산의 사찰 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산봉우리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오어사 뒤 깎아지른 수직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자장암은 밑에서 보면 간이 콩알만큼 쪼그라들 정도로 아찔합니다.







2016/09/27 - (포항여행)운제산 오어사. 1300여년전 원효대사께서 쓰든 삿갓과 보물 제1280호 오어사 동종을 포항 오어사에서 만나다.





오어사에서 자장암 오르는 산길은 거리는 짧지만, 된비알의 오르막이라 처음 오르는 사람은 아주 힘들다 합니다. 그러나 걱정 붙들어 매세요. 자장암은 오천읍 쪽에서는 차를 가지고 오를 수 있도록 도로가 잘 나 있습니다.





자장암은 제비 둥지처럼 작은 터를 아주 적절하게 이용했으며 관음전 나한전 산신각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단연코 수직 단애를 뭉개고 선 관음전이 으뜸의 장소입니다.







신라 시대의 대국통인 자장율사가 이곳에 머물렀던 암자 자장암은 관음전을 돌아가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습니다. 이곳의 부처님 사리는 태국전 전 풋나지나윙 태국승왕이 보관하고 있던 사리 중 7과를 태국 유학승인 정신 스님이 기증을 받아 불기 2542년(1998년)에 이곳에다 금강계단을 세웠습니다.











자장암에서는 뭐니뭐니해도 관음전 앞에서 오어사로 내려다보는게 압권입니다. 이곳에서 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은 ‘무섭다’입니다. 간담이 써늘할 정도 까마득하고 오어사에서 올려다보는 자장암의 위상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 준 난공불락의 요새 같습니다.









이름난 고승은 역시 이런 멋진 곳에서 수도를 하나 봅니다. 그래야 득도를 하고 고승의 반열에 오르나 봅니다. 포항여행에서 운제산 오어사와 함께 자장율사의 수도처 자장암도 함께 방문해보세요.


  











 



운제산 자장암


포항 운제산 자장암 주소: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1

포항 운제산 자장암전화:054-28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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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nnpenn 2016.09.30 07:17 신고

    포항 운제산 오어사는 미답의 곳인데
    사진으로보니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주말을 멋지게 보내세요~

  2. 핑구야 날자 2016.09.30 08:06 신고

    차분하게 둘러보면서 일상을 점검하면 좋겠네요

  3. 공수래공수거 2016.09.30 08:29 신고

    올봄에 다녀 온곳이라 더 반갑게 딕옵니다^^

  4. 에스델 ♥ 2016.09.30 09:49 신고

    수직절벽 위에 있는 관음전의 모습이 놀랍고,
    관음전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
    정말 무섭겠습니다. 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5. 울릉갈매기 2016.09.30 13:44 신고

    이곳은 저도 몇번 가본곳이네요~
    유명하기도 하죠~^^
    행복한 시간 되세요~^^

  6. 영도나그네 2016.09.30 15:30 신고

    포항의 운제산 자장암으로 다녀오셨네요..
    오어사만 들려보고 자장암은 가보지 못한곳 이지만
    역시 풍겨은 정말 아름다운 곳에 있는곳이군요..
    덕분에 좋은곳 소개 잘보고 갑니다.

    편안한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7. 루비™ 2016.09.30 16:03 신고

    오어사는 마니 가봤지만 자장암은 한번도 안 가보았는데
    이런 모습이었군요.
    다음번엔 자장암에 꼭 도전해봐야겠어요.

  8. 생명마루한의원 2016.09.30 23:49 신고

    가보고싶어지네요 멋진 10월되세요

  9. 귀여운걸 2016.10.05 01:16 신고

    생생한 사진을 보니 저두 얼른 가고싶어지네요~
    메모해두었다가 근처 들리면 한번 가봐야겠어요^^



 

 

(상주·의성여행/상주·의성가볼만한곳)낙동강 관수루. 위풍당당한 관수루, 낙동강 3대누각인 관수루에 오르다. 

 

상주와 의성을 경계하는 낙동강 강변에 안동의 영호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낙동강의 3대 누각으로 불렸던 관수루가 위풍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관수루가 지어졌을 때는 고려 중엽으로 보고 있으며 관수루의 중건기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반대편에 새워졌습니다. 그러나 홍수로 떠내려갔는지 조선 초에 지금의 자리인 동쪽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1653년, 1734년, 1842년에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다 조선말인 1874년 갑술년에 불어난 홍수로 유실되었습니다. 관수루는 창건과 함께 여러 번의 중수와 중창을 거듭하였으며 지금의 관수루는 1990년에 의성군에서 지역민의 힘을 모아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습니다. 관수루의 ‘관수’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따왔으며 누각은 이익공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5량가 기와 건물입니다.





앞면 4칸에다 옆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2층은 통칸으로 개방하였고 우물마루에. 그 끝은 계자난간을 돌렸습니다. 관수루 누마루에는 많은 현판이 걸려 있으며 예로부터 관수루의 절경이 빼어나 많은 시인 묵객을 불러들였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 시대 성리학의 태두 점필재 김종직, 성종실록에 김종직의 사초로 극형을 당한 탁영 김일손의 현액은 스승 김종직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퇴계 이황, 백운 이규보, 수헌 권오복, 봉창 유항, 총계 조동좌, 강고 류심춘, 성재 허부 등의 현액이 사방을 빽빽하게 채우며 이곳을 읊은 한시를 보면서 조선 시대 선비들 사이에서 관수루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의 고고한 강물은 말없이 흘러 바위 절벽을 깎아내리는 게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선비 정신에 비유해선지 유달리 낙동강을 노래한 한시는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점필재 김종직은 낙동강의 관수루에서 한시를 통해 당시 탐관오리의 횡포를 질타하며 자신 또한 벼슬아치로서 뒤돌아 보게 된다는 민용풍의 한시를 남겼으며 점필재집에 수록된 ‘낙동요(洛東謠)’의 현액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낙동요_점필재 김종직


黃池之源?濫觴(황지지원재남상:황지의 시원은 겨우 잔을 넘칠 정도인데)

奔流倒此何湯湯(분류도차하탕탕:이곳까지 흘러와서 어찌 이리 넓어졌나)

一水中分六十州(일수중분육십주:한 물이 육십 고을의 한가운데를 가르니)

津渡幾處聯帆檣(진도기처연범장:나루터마다 돛대가 줄을 서있네)

海門直下四百里(해문직하사백리:바다까지 사백리를 바로 흘러)

便風分送往來(편풍분송왕래상:편풍을 이용해 오고가는 상인의 배는 분주하고

暮宿觀水樓(모숙관수루:저녁에 관수루에서 머무네 )

樓下綱船千萬緡(누하강선천만민:누각 아래 배에는 천만냥을 실은 배가 묶였으니)

南民何以堪誅求(남민하이감주구:남쪽 백성들은 어찌 노략질을 견디리 )

缾缾已罄橡栗空(병앵이경상률공:쌀독은 비었고 도토리와 밤마저 없는데)

江干歌吹椎肥牛(강간가취추비우:강가에서는 풍악을 울리며 살찐 소를 잡네)

皇華使者如流星(황화사자여유성:임금이 보낸 사람은 떨어지는 별처럼 빠르게 지나가니)

道傍觸誰問名(도방촉루수문명:길 옆 해골에게는 누가 이름이라도 물어보겠는가)

少女風王孫草(소녀풍왕손초:왕손초에 소녀 바람이 불어 )

望眼悠悠入飛鳥(망안유유입비조:아득하게 멀리 보니 새는 날아들고)

故鄕花事轉頭新(고향화사전두신:고향의 꽃소식은 계절따라 피며)

凶年不屬嬉遊人(흉년불속희유인:흉년이라 봄놀이를 즐기는 사람 아무도 없고)

倚柱且高歌(의주차고가:기둥에 기대어 노래나 불러보리댄체 )

忽覺春興(홀각춘흥간:봄의 흥취는 어느 듯 가고 )

白鷗欲笑我(백구욕소아:갈매기는 나를 비웃으려는 듯 )

似忙還似閑(사망환사한:바쁜듯 되려 한가하게 )





그리고 점필재 김종직은 ‘낙동요‘ 이외에도 ’낙동나루‘ 현액도 함께 걸려 있습니다.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진리비농리 관인즉읍인·나루의 아전은 농의 아전이 아니며 그 관리는 바로 읍사람이구나 )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삼장사성주 오마위자친·삼장으로 임금님을 떠나와 오마로서 인자한 어머님을 위로하구나)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백조여영도 청산관송빈·흰 새는 배 맞이하는 듯하며 청산은 손님 보내기에 익숙하구나)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징강무점철 지이율오신·맑은 강은 한 점 티끌조차 없으니 이를 나의 계율로 삼으려네





그리고 퇴계이황 선생의 한시 ‘관수루’입니다.


洛水吾南國(낙동오국남·낙동강 물은 우리 남국의 자랑)

尊爲衆水君(존위중수군·뭇 강물의 으뜸이라네)

樓名知妙悟(누명지묘오·누각 이름은 묘리의 깨달음을 알게 하고)

地勢見雄分(지세견웅분·지세는 웅대하게 분리됨을 보네)

野濶烟凝樹(야활연응수·들은 넓어 안개가 나무숲에 엉기고)

江淸雨捲雲(강청우권운·강물은 맑아 비온 뒤 구름이 걷히었네)

匆匆催馹騎(총총최일기·총총히 역마를 재촉해 달리니)

要爲趁公文(요위진공문·공문을 진달하기 때문일세)


 한시 풀이는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의 퇴계학맥 누정편 관수루를 인용했습니다.




성재 허부 관수루(觀水樓)


公事頻過洛 공무(公務)로 인해 자주 낙동강을 지나니

舟人識使君 뱃사공도 또한 나를 알아보네.

江聲千里大 강물 소리는 천리 길에 확대되고

地勢二州分 지세는 웅장하게 두 고을로 나뉘었네.

漁戶排津樹 어부의 집 앞에는 나룻나무 즐비하고

鹽帆掣海雲 소금 실은 돛단배는 바다구름 끌고 왔네.

陶山空悵望 도산(陶山) 쪽을 향해 공연히 슬프게 바라보는데

歌短不成文 노래 짧아 글 이루지 못하겠네.

한시 풀이는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의 퇴계학맥 누정편 관수루를 인용했습니다.







봉창 유항 관수루(觀水樓)

 

宿客携琴夜入樓(숙객휴금야입루·자고 갈 손님 거문고 들고 누각에 오르는 밤)

碧簷星月耿新秋(벽첨성월경신추·푸른 처마 머리엔 별과 달이 빛나니 가을이 새롭네)

櫓聲驚夢江天曉(노성경몽강천효·노 젓는 소리에 놀라 꿈을 깨니 강가에 하늘이 밝아 오는데)

身世渾疑幻白鷗(신세혼의환백구·내 신세 혼연히 흰 갈매기로 화신한 신선인 듯 의심해보네)

한시 풀이는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의 퇴계학맥 누정편 관수루를 인용했습니다.




수헌 권오복 관수루(觀水樓)


客裏羈懷惡(객이기회악·객지에서 나그네 마음이 울적한데)

逢君又送君(봉군우송군·그대를 만나자마자 또다시 보내다니)

孤帆和雁落(고범화안락·외로운 돛은 기러기와 함께 떠나가고)

遠岫點螺分(원수점나분·먼 산봉우리 소라껍질같이 나뉘어섰네)

樓上一盃酒(누상일배주·누각 위에서는 한잔 술이 오고 가는데)

洛東千里雲(낙동천리운·낙동강에는 천리 길 구름만 이네)

蒼茫天欲暮(창망천욕모·창망히 저 하늘마저 저물고자 하니)

吟斷不成文(음단불성문·읊는 소리 막히어 글을 지을 수 없네)

 한시 풀이는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의 퇴계학맥 누정편 관수루를 인용했습니다.




탁영 김일손 관수루(觀水樓)


晩泊沙汀葉葉舟(만박사정접주·모래톱에 늦게 댄 조각배)

紛紛去馬與來牛(분분거마여내우·어지러이 마소들이 지나가네)

江山萬古只如此(강산만고지여차·강산은 만고에 다만 이 같은 것)

人物一生長自休(인물일생장자후·인물의 일생 또한 길이 쉬누나)

西日已沈波渺渺(서일이침파묘·저녁 해 벌써 지니 파도는 아득하고)

東流不盡思悠悠(동류불진사유유·흐르는 물 쉬지 않아 생각이 길어지네)

停舟獨立矄黃久(정주독립훈황구·배가 멈춰 홀로 서니 황혼이 깊은데)

掠水飛回雙白鷗(약수비회쌍백구·쌍쌍이 나는 갈매기는 물을 치며 돌아가네)

 한시 풀이는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의 퇴계학맥 누정편 관수루를 인용했습니다.




탁영 김일손의 관수루(觀水樓)


江花江月十登船(강화월십등선·강가에 꽃피고 강물에 달이 비치어 십여 명이 배에 오르니)

司馬靑衫已五年(사마청삼이오년·사마에 오른 청삼 벼슬 벌써 오년이나 지났구나)

莫謂宦遊無所得(막위환유무소득·벼슬길에 노니는 몸 소득이 없다고 이르지 마오)

風流長夜鏡中天(풍유장야경중천·풍류를 즐기는 경중천(鏡中天)의 아름다움이여!)

 한시 풀이는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의 퇴계학맥 누정편 관수루를 인용했습니다.




탁영 김일손 관수루(觀水樓)

 

落日長程畔(낙일장정반·해는 지고 가는 길 먼 들판 가에서)

把盃持勸君(파배지권군·잔을 잡아 그대에게 권하노라)

危樓天欲襯(위루천욕친·높은 누각은 하늘에 가깝고)

官渡路橫分(관도로횡분·나루터에는 길이 가로로 나뉘었네)

去客沒孤鳥(거객몰고조·손님 떠나니 외로운 새만 부침하고)

浮生同片雲(부생동반운·부평초 같은 삶이 조각구름과 같구나)

江風不解別(강풍불해별·강바람 우리 이별을 풀어주지 못하고)

吹到動波文(취도동파문·물위로만 불어대어 물결 일으키네)


 한시 풀이는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의 퇴계학맥 누정편 관수루를 인용했습니다.


수헌 권오복 관수루(觀水樓)


是身天地一虛舟(시신천지일허주·이 몸은 이 세상에 한 빈 배와 같은 것)

劒氣當年射斗牛(검기당년사두우·무술을 닦던 그 당시엔 두우성을 쏠 듯 했네)

羈思向來何落落(기사향래하락락·나그네 생각 돌이켜 보니, 낙낙할 뿐)

宦情從此便休休(환정종차편휴휴· 벼슬길 이로부터 쉬게 되리라)

英雄萬古幾人在(영웅만고기인재·만고의 영웅들이 몇 분이나 계셨던가)

烟月空江引興悠(연월공강인흥유·연하에 가린 달빛만이 빈 강에서 흥을 돋우네)

觀水觀山皆可樂(관수관산개가악·산수(山水)에 관심 두는 것은 모두 즐거운 것)

鷗來忘我我忘鷗(구래망아아망구·갈매기는 나를 잊고 나도 갈매기를 잊네)


 한시 풀이는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의 퇴계학맥 누정편 관수루를 인용했습니다.





총계 조동좌 관수루(觀水樓)

 

東風孤倚驛西樓 (동풍고의역서루·봄바람 의지하고 관수루에 달려오니)

物色蕭然滿兩眸(물색소연만량모·물색은 쓸쓸하게 두 눈에 가득 차네)

沙伐江山餘百戰(사벌강산여백전·사벌(沙伐)의 옛 강산은 백 번 전쟁 치른 터 남아있고)

徐羅時事杳千秋(서라시사묘천추·신라 때 찬란한 일 천추에 아득하네)

依俙芝曲商顔裏(의희지곡상한이·지원의 곡조는 상안 속에 의회하고)

寂寞龜書洛水頭(적막구서낙수두·거북에 쓴 글은 낙수 위에서 적막하네)

往蹟微茫何處問(황적미망하처문·지난 사적 미망하여 물을 곳 어디 있는가)

碧江無語夕陽流(벽강무어석양류·푸른 강물만 대답 없이 석양 따라 흐르네)


 한시 풀이는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의 퇴계학맥 누정편 관수루를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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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 관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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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키니짐(VKNY GYM) 2016.09.28 18:37 신고

    오우~~ 멋진 사진 잘 보고갑니다.
    오늘 하루도 어김없이 흘러 갑니다. 남은하루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2. *저녁노을* 2016.09.29 05:59 신고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목요일 되세요^^

  3. pennpenn 2016.09.29 07:24 신고

    제가 다녀왔던 관수룰 보니 정말 반갑군요,
    누각에 걸린 한시풀이까지
    정말 정성이 대단합니다.

    날씨가 우중충합니다.
    목요일을 멋지게 보내세요.

  4. 핑구야 날자 2016.09.29 07:32 신고

    누각이 참 기세있게 서 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5. 공수래공수거 2016.09.29 09:15 신고

    예전 처가집 가는길에 있어 항상 먼 발치로만 지나가면서 본곳인데
    언제 한번 찾아 자세히 봐야겠습니다^^

  6. 솜다리™ 2016.09.29 09:24 신고

    와.. 정말 멋지내요...^^
    어찌 저렇게 멋진곳에...

  7. 에스델 ♥ 2016.09.29 09:59 신고

    관수루의 경치가 정말 빼어납니다.
    저는 한시 중에서 탁영 김일손의 관수루가
    가장 마음에듭니다.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8. 영도나그네 2016.09.29 15:02 신고

    낙동강변에 아름답게 서 있는 관수루의 누각에 올라서면
    저절로 시한수가 읊어질것 같은 아름다운 누각이군요..
    누각에 붙어있는 선인들의 시한수를 음미해보는 의미있는
    시간도 보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덕분에 좋은 곳소개 잘 보고 갑니다..



 


(포항여행/포항가볼만한곳)운제산 오어사. 1300여년전 원효대사가 쓰든 삿갓과 보물 제1280호 오어사 동종을 포항 운제산 오어사에서 만나다.



포항의 운제산에는 천년고찰 오어사가 있습니다. 오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 말사로서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되어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라 불렀습니다. 이후 오어사는 신라의 4대 성인으로 추앙하는 자장, 혜공. 원효, 의상스님 등 고승이 수행한 사찰로 유명해졌습니다.







 


항사사가 왜 오어사로 바뀌게 되었느냐면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오어사에는 당시 원효와 혜공스님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토굴에서 수행에 전념하다 하루는 두 스님이 누가 더 도력이 센지 물고기를 두고 시합을 했습니다.


 

 


두 고승은 개천에서 각각의 물고기에게 법력을 넣어 물속으로 살려 보내는 내기를 하였는데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헤엄을 치며 물속으로 사라지자 서로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를 보고 자신이 살려낸 물고기라 주장하여 오어사(吾魚寺)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원효대사 삿갓



오어사 경내는 따로 포스팅하겠지만 이번 포스팅은 오어사 유물전시관에 전시 중인 7세기 신라 시대 원효대사께서 머리에 쓰든 삿갓과 오어사 동종입니다. 원효대사의 삿갓은 실로 대단합니다. 1,300여 년 전의 삿갓이라 하니 어쩐지 얼떨떨합니다.


 

 


지금 신라 시대 유물로서 남아 있는 게 대부분 석물과 철물뿐인데 말입니다. 원효대사의 삿갓을 보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듯 헤어지고 바래지고 한 모습이 삿갓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삿갓은 종이와 실로 연결하여 만들었는데 안에는 솜을 넣고 바깥에는 풀뿌리로 만들었다 합니다.


 

 오어사 동종

 

 


그리고 오어사 동종 또한 기구한 운명을 겪었습니다. 오어사 앞에는 큰 연못을 정원으로 두고 있는데 오어지입니다. 그 크기가 만수 면적 12만 평에 500만 톤을 저장하는 담수호입니다. 그런데 1995년 11월에 저수지 공사를 하다가 바닥 진흙 속에 묻혀 있던 동종을 발견했습니다.


 

 용뉴

 

 비천상


범종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출토 후 바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로 보내져 보전처리 과정을 거쳤습니다. 보물 제1280호의 직함을 가지고 1997년 7월에 오어사로 돌아와 지금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오어사 동종은 1216년 고려 고종 3년이라고 조성연대와 종을 만든 책임자는 대구 동화사 순성대사 및 주조하여 종을 제작한 기술자는 순광이라 이름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범종의 높이는 96cm이며 신라 시대 법종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습니다.


 

 


동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돋보이는 게 범종의 가장 위쪽에 용의 모습을 한 고리에다 쇠줄을 연결하는 게 용뉴입니다. 용뉴는 범종각에 종을 메 달며 용뉴와 함께 소리 대롱인 음통이 있는데 용통 또는 음관이라 합니다. 음통은 우리나라 범종에서만 찾을 수 있다합니다.


 

 

 

 


오어사 동종의 용뉴는 섬세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데 조각된 용의 문양은 힘차며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한 모습입니다. 또한, 종의 몸체에는 보살 모양을 하고 천의를 휘날리는 비천상과 종신의 밑부분에는 섬세한 문양을 돌렸고 전체적으로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줍니다.


 

 

 

 

 

 음통

 

 


오어사 동종은 신라 시대에서 고려 시대로 넘어오면서 종의 변천 과정과 고려 시대의 공예·주조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원효대사와 혜공대사의 영정 


 

 

 

 

 

 

 

 

 

 

 

 

 

 

 

 

 


◆포항 운제산 오어사 정보 안내


★포항 운제산 오어사


포항오어사 주소: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


★포항 오어사 전화:054-292-9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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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 | 오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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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6.09.28 04:57 신고

    종에 새겨진 문양..정교해 보이네요.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수요일되세요^^

  2. pennpenn 2016.09.28 07:22 신고

    포항 오어사도 천년고찰이로군요.
    원효대사의 삿갓이 진품인지잘 모르겠습니다/
    ㅎ ㅎ

    조석으로 매우 서늘해 졌습니다.
    수요일을 잘 보내세요.

  3. kangdante 2016.09.28 08:03 신고

    독특하고 아름다운 종입니다..
    오늘도 멋진 하루되세요.. ^^

  4. 핑구야 날자 2016.09.28 08:13 신고

    원효대사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네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5. 워크뷰 2016.09.28 08:33 신고

    오어사 정보 감사합니다^^

  6. 에스델 ♥ 2016.09.28 10:03 신고

    1300여년 전의 삿갓을 실제로
    볼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그리고 오어사 동종도 잘 보았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문경여행/문경 가볼만한곳)문경 대승사 마애여래좌상. 머리에 뿔처럼 꽃무늬를 돋을 새김한 이색적인 불상을 만나다.  대승사 마애여래좌상



문경 공덕산(사불산) 대승사에서 윤필암을 거쳐 묘적암으로 향하는 중간에 대승사 마애여래좌상이 숨은 듯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애여래좌상의 전체적인 높이는 대략 6m로 매우 큰 규모입니다.







◆경북 문경  가볼만한 여행지


2016/07/07 - (문경여행/문경 가볼만한 곳)공덕산·사불산 사불암. 그럴싸한 전설이 정말 잘 어울리는 신비의 세계 사불암 사면석불, 공덕산·사불산 사면석불 사불암을 만나다.

2016/06/04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일년중 부처님오신날 딱 하루만 산문을 개방하는 천년고찰 문경 희양산 봉암사 여행을 하다. 문경 봉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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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편편한 자연석 바위에 양각과 음각으로 새겨 조성하였으며 불상의 위와 아랫부분에 균열이 간 것을 빼면 마애여래좌상은 아주 온전한 상태입니다. 어깨너비가 2.2m, 무릎넓이는 3.1m이며 그리고 마애불을 받치는 연화 대좌의 높이는 1.3m, 넓이는 3.7m로 음각된 이중 연화 대좌입니다.






그리고 신광과 두광은 음각하였으며 불두 위에는 모서리가 깨어진 사각 모양의 판석을 지붕돌로 끼웠습니다. 마애여래좌상의 유래와 만든이 등은 알 수 없으나 오래전부터 이곳에 미륵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는 것을 추정하면 미륵불로 조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애여래좌상을 천천히 둘러보면 머리는 소발에 육계는 편편한 게 솟았고 그 양편에 뿔처럼 꽃무늬를 돋을새김하여 아주 이색적입니다. 필자가 불상을 처음 보며 느낀 게 “토끼 귀를 달은 부처는 처음 본다”였습니다. 머리에 뿔을 새긴 부처님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두 귀는 아래로 처졌으며 얼굴은 정면으로 보면 약화현상이 뚜렷하고 통견에 매듭 띠는 가슴 밑으로 길게 늘어뜨린 모습입니다. 옷의 주름은 음각으로 나타냈으며 보통 목에는 3줄의 삼도를 새기지만 대승사 마애여래불좌상은 2줄의 삼도로 음각한 게 일반적인 불상 양식에서 벗어났다 하겠습니다.





왼손은 어깨까지 올리고 오른손은 복부에 붙이고 손가락은 약간 오므렸습니다. 광배는 머리와 상체를 감싸는 거신 광배이며 두광은 동심원형에 불꽃무늬를 채워 상체와 가부좌를 한 하체에 비해 더욱 뚜렷한 느낌입니다.



 


이 불상은 조각수법 등 여러 상황을 추측해보면 고려 시대 불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9호. (참고:대승사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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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 대승사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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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솜다리™ 2016.07.08 09:51 신고

    아하... 정말 특이하내요..
    이런 불상은 첨 보는듯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07.08 09:51 신고

    마애여래불 순례를 하는 친구가 생각이 나네요
    물론 여기도 다녀 왔겠죠..ㅎ

  3. 에스델 ♥ 2016.07.08 09:58 신고

    전체적인 높이가 대략 6m라니
    정말 규모가 크네요.^^
    그리고 불상 위와 아래의 균열을 빼면
    온전하게 남아있는 모습이 보기좋습니다.

  4. 드래곤포토 2016.07.08 14:40 신고

    특이한 불상이네요
    문경에 가거든 찾아가봐야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

  5. 핑구야 날자 2016.07.09 08:21 신고

    인자하면서도 상념에 잠긴듯한 모습이 인상적이군요





(부산동구여행/부산동구가볼만한곳)조선통신사역사관. 조선통신사의 모든 기록을 알수 있는 조선통신사역사관 여행 추천이요. 자성대 공원 영가대와 조선통신사역사관



부산 동구 자성대 공원 남쪽에 영가대와 함께한 ‘조선 통신사 역사관’이 있습니다. 영가대는 임진왜란 이후인 1607년 일본으로 향하는 '회담겸쇄환사'와 조선통신사 행렬의 출발과 환송이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부산 동구 조선통신사역사관 인근 가볼만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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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용두산공원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축제 조선통신사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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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조선 통신사의 모든 것을 전시한 ‘조선통신사역사관’이 과연 어떤 곳인가 궁금하여 방문하였습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총 12회를 일본에 파견한 ‘회담겸쇄환사,’와 ‘통신사’에 대한 전시관으로 누구나 알기 쉽고 이해하게끔 전시한 조선통신사 역사교육관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조선통신사의 모든 것을 훤히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뿐만 아니라 그 이전인 고려 우왕 1년인 1375년에 나홍유란 분이 처음 ‘통신사’란 직함으로 일본 아시카가 막부에 파견하였습니다.





그 후 1428년 조선 세종10년에 조선 국왕이 통신사 박서생(朴瑞生)을 파견하는데 이는 일본의 막부 장군 습직을 축하하기 위한 외교사절이었습니다. 통신사라는 뜻은 “서로 신의를 통하는 외교사절”이라 합니다.


 



 



조선에서 통신사를 파견하게 된 이유를 보면 고려 시대 이전부터 남해와 동해 등 한반도 연안에 수시로 왜구가 나타나 조선인을 헤치고 납치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등 악행을 서슴지 않아 일본의 막부에게 왜구 단속의 확답을 얻기 위해 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1590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조선국왕인 선조는 김성일과 황윤길을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일본 통일 축하 사신으로 보내지만, 실제적인 목적은 일본의 조선 침략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조정의 의도와는 다르게 두 사신은 귀국하여 선조에게 보고하기를 "반드시 조선을 침략한다"와 "그런 조선 침략의 의도를 전혀 느낄수 없었다"로 양분하여 보고하는데 서로 당파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상반된 보고로 임진왜란의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요즘의 우리 국내 정치상황도 그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일반 민초는 생각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 난 뒤 일본은 조선에 단절된 양국의 외교를 강화하자며 끈질기게 요구를 하였고 이에 선조는 1604년 사명대사를 전쟁 전후 처리를 위한 강화사로 파견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담판하여 일본에 끌려갔던 조선인 포로 3500여명과 함께 귀국합니다.


 





그리고 조선은 일본에 강화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국서와 전란 때 선릉과 정릉을 파헤친 범인을 보낼 것을 요구하였고 대마도(쓰시마)의 도주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조선 조정에서는 그사실을 알았지만, 조건을 받아들인 것으로 하여 1607년 처음으로 외교사절인 조선 통신사가 출발합니다.


 



그러나 1607년, 1617년, 1624년의 통신사 정식명칭은 ’회담겸 쇄환사‘이며 조선통신사의 정식명칭이 사용된 것은 1636년부터 1811년까지를 말합니다. 이 모든 조선 통신사의 역사를 조선통신사역사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통신사 역사관은 제1 전시관과 제2 전시관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 전시관을 보면 조선 통신사의 정의와 임지왜란 이후 일본과의 국교회복까지 모든 과정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볼 수 있게끔 하였고 통신사의 파견과 절차와 6개월간의 긴 여정, 그리고 참여한 인물, 당시 한일 외교의 중심지였던 왜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동반하면 내용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3D 입체영상을 시청하는 영상실도 갖추어져있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2 전시관은 2층에 있습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면 통신사에 참여한 분들이 일본으로 가기 전 영가대에서 기다리며 남긴 시구들을 보고 오릅니다. 2층 전시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조선통신사 일행이 타고 간 배의 모형인 판옥선과 일본까지의 험난했던 뱃길 여정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통신사의 행로인 모형지도와 애도(도쿄) 성에 들어가는 통신사 행렬을 재현한 영상 등 그야말로 생생한 정보를 한눈에 보게끔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눈길을 끄는 것은 말을 타고 곡예를 부리는 마상재도 조선통신사 행렬에 참여했었습니다.













이는 일본의 3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요청을 받아들여 1636년 조선 통신사에서부터 참여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야외전시장의 영가대 복원 등 조선 통신사 역사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현재 한일 공동으로 유네스코 ‘외교기록’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합니다. 짐심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조선통신사역사관 정보 안내◆ 


조선통신사역사관

★조선통신사역사관 주소:부산광역시 동구 자성로 99(범일동 380-4)

★조선통신사역사관 개관시간:오전9시~오후6시

★조선통신사역사관 관람료 무료

★조선통신사역사관 휴관일:1월1일,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시 그 다음날 휴관

★조선통신사역사관 문의전화:051-631-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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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범일동 380-4 | 조선통신사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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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래곤포토 2016.07.01 19:35 신고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2. pennpenn 2016.07.02 07:14 신고

    부산진에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있군요.
    자그마한 인형들이 눈길을 끕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말을 즐겁게 보내세요~

  3. 핑구야 날자 2016.07.02 08:21 신고

    캐릭터 동산 덕분에 더 친숙한 곳이네요

  4. 공수래공수거 2016.07.02 08:58 신고

    예나 지금이나 일본 가는 관문이어서 그런지 볼만한게
    있군요^^

  5. 솜다리™ 2016.07.03 15:49 신고

    이런 역사관이 있었군요...^^

  6. 핑구야 날자 2016.07.04 07:31 신고

    주말에 가족단위로 찾을 수 있어 좋은데오

  7. kangdante 2016.07.04 08:02 신고

    조선통신사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곳이라 하니
    역사공부에도 좋겠어요.. ^^

  8. 에스델 ♥ 2016.07.04 10:08 신고

    여름방학때 부산에 내려가면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가봐야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9. 도느로 2016.07.04 13:47 신고

    오~ 거대한 행사뿐만 아니라
    저런 역사관도 있었군요^^
    조신통신사는 부산역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ㅎㅎ

  10. *저녁노을* 2016.07.05 05:48 신고

    이런곳도 있었군요.ㅎㅎ

    잘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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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부산 동구에는 자성대공원이 있으며 그곳에는 영가대(永嘉臺) 정자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영가대는 원래 이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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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대는 1614년(광해군 6) 지금의 자성대 인근인 부산진성 해안가에 그동안 사용했던 선착장이 좁아 경상도 순찰사 권반이 확장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큰 배를 대기 위해서 바다를 깊게 파낸 흙을 해안에 쌓았더니 언덕이 생겼습니다.


 

 


자연스럽게 이곳에다 나무를 심고 하면서 정자도 세웠는데 뒷날 그게 영가대가 되었습니다. 영가대란 명칭은 1624년(인조 2) 선위사 이민구가 일본에서 온 사절단을 접대하려고 와서 정자를 보고는 권반의 고향인 안동의 옛 이름 영가를 따 영가대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가대의 역할을 알기 위해서는 조선과 일본 간의 교류와 밀접한 조선통신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럼 영가대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간략하게나마 알아보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모두 끝나고 정국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무렵이었습니다.


 

 

 

 


일본은 끊임없이 국교 정상화를 요구해 왔으며 조선 조정은은 두 전란 속에 일본을 쉽게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일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는데 1604년 포로송환을 위해 사명대사를 파견하면서 일본의 정세와 국교 정상화의 속마음을 알아오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