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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분황사 여행. 가보지 않아도 가본것 같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정, 화쟁국사비부,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만나다.


경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분황사모전석탑 여행을 하면서 이번에는 분황사 모전 석탑을 제외한 분황사 내에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인 원효대사의 비석을 받쳤던 화쟁국사비부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호로 신라 호국용의 전설이 있는 석정, 그리고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9호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소개하겠습니다.





분황사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12

분황사 전화: 054-742-9922




그러나 먼저 분황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가야겠습니다.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창건하였습니다. 창건과 함께 모전 석탑이 완성되었는데 당대의 유명한 선승인 자장율사와 원효대사가 주석하면서 분황사의 사격을 더 높였습니다


분황사 석정


솔거가 그렸다는 관음보살상 벽화가 있었다 하며 755년 신라 경덕왕 14년에 강고내말이 구리 306,700근으로 약사여래상등을 주조하여 봉안했던 약사여래좌상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또한, 분황사는 당간과 지주, 중문, 석탑, 3금당, 강당, 회랑을 갖춘 대가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말인 1238년 고종 25년에 몽골군과 조선 시대에 일어난 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분황사의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습니다.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분황사는 두 전란이 끝나고 1609년인 광해군 1년에 중창하였으며 보광전에는 약사여래입상이 현재 분황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먼저 분황사의 석정을 보겠습니다. 신라 호국용의 설화가 전해오는데 돌우물로 겉면은 8각이며 내부는 둥근 원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우물을 ‘호국룡변어정’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합니다. “분황사 우물과 금학산 아래 동천사의 동지와 청지로 각각 불리는 우물에는 통일신라를 지킨다는 호국용이 살고 있었습니다. 때는 원성왕 11년인 795년입니다. 중국 당나라 사신이 와서 각각의 우물에 있는 호국용을 물고기로 만들어 잡아갔습니다.



어느 날 두 여인은 이 사실을 알고 원성왕을 찾아와 남편을 찾아달라 부탁하였습니다. 이에 원성왕은 사람을 시켜 당나라 사신이 잡아간 물고기로 변한용을 다시 돌려받아 자신들의 우물에 각각 풀어주었습니다.



이 우물은 통일신라 시대에 설치한 우물로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 탄압으로 고려까지 국교로 이어온 불교가 유교에 억압을 받았습니다. 급기야 사찰 내의 모든 돌부처의 목을 날라갔으며 이 석정에다 처박아 넣었던 아픔이 있습니다. 현재 통일신라의 돌우물 중에서 가장 크며 오늘날까지 우물로 사용될 만큼 상태가 깨끗하다 합니다.

 


이번에는 인근의 원효대사 받침돌로 사용된 분황사 화쟁국사비부입니다. 화쟁국사비는 1101년인 고려 숙종 6년 8월에 내린 조서에 분황사에 세워졌습니다. 숙종은 원효가 동방의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원효대사를 칭송하는 비석이나 시호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대상화쟁국사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유사가 비를 세우게 했습니다.



현재 비신은 사라지고 없으며 비 조각만 한두 개씩 발견되어 화쟁국사비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합니다. 비를 꼽았던 비대석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인 ”차신라화쟁국사지비적“이 음각되어 있으며 직육면체인 비대에 비신을 꽂는 직사각형의 홈이 패여 있습니다. 이번에는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입니다.


분황사 보광전 약사여래불


보광전은 1998년 3월에 수리하면서 건물을 해체하였습니다. 그때 벽화를 볼 수 있었으며 임진왜란에 소실되었다는 기록과 1680년 5월에 중건하였으며 약사여래상은 만력 기유년인 1609년에 구리 5,360근으로 주조하여 봉안했다고 상량문에 나와 있다 합니다.

 


약사여래입상의 높이는 3.45m로 1800년대에 만들어진 청동제 불상입니다.  왼손에 들은 건칠제 약함 뚜껑 안쪽에 “건륭 39년 을미 4월 25일 조성야 “란 붉은 글씨가 남아 있으며 이는 1774년인 영조 50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입상은 처음에는 755년 강고내미가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원형은 거의 파괴되어 조선시대에 들어와 새롭게 보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분황사 약사여래입상은 얼굴이 둥글고 넓으며 낮은 상투 모양이 표현된 머리에는 석회를 뭉쳐 만든 나선형 머리카락을 부착하였습니다. 





양 어깨에 걸친 법의는 두껍게 처리했는데 이는 장대한 신체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대의 사이에 화형으로 접고 띠를 두른 군의가 ‘U '자형으로 층단을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무릎 밑에 이르러 3단으로 접혀 있습니다.



대좌는 아무런 조식이 없는 판석으로 대신하고 불상 앞에 놓인 석제 불단은 사천왕상이 새겨진 통일신라 시대의 탑몸돌의 받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불상의 양식을 보면 조선 후기로 제작연대가 확실하여 불상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 참고)


 

분황사 관람안내

분황사 입장료: 어른 1,300원, 청소년및 군인 1,000원, 어린이 800원

 분황사 입장시간:08:00~17: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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