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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부여여행)정림사지석불좌상. 부여 정림사지에서 거대한 석불좌상을 만나다


여러 곳의 석불을 둘러보면서 이번에는 부여여행에서 규모 면에서 압도하는 석불좌상을 만나고 왔습니다. 부여의 정리사지에 있는 정림사지석불좌상이며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함께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정림사지오층석탑과 정림사지석불좌상은 서로 마주 보게 일직선 상에 배치했습니다.





부여 정림사지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358

부여 정림사지 전화:041-832-2721




2017/10/22 - (충남여행/부여여행)정림사지5층석탑.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는 평제탑 정림사지5층석탑

2017/10/11 - (부여여행)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두 눈으로 확인했던 부여 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2015/08/17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부소산성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를 만나다. 사비성

2015/08/07 - (충남여행/부여여행)낙화암과 고란사. 마지막 백제의 흔적 부소산성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를 여행하다. 낙화암과 고란사

2015/08/05 - (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2017/09/29 - (부여맛집/부소산낙화암맛집)굿뜨래음식특화거리 구드래돌쌈밥. 부여 구드래돌쌈밥




정림사지의 창건연대는 6세기 중엽으로 추정하며 그 후 백제가 멸망하고 고려 시대까지도 정림사의 규모가 대단했음을 현재 남아 있는 문화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정림사지석불좌상이 고려 시대에 처음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웅장한 석불좌상을 보면서 당시 정림사의 사세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정림사지석불좌상은 현재 강단지었던 곳에 보호용 전각을 새로 세워 그 안에 따로 모셔져 있습니다. 강당은 석탑에서 대략 57m 떨어졌으며 보호각은 앞면 39.1m에 옆면 16.3m인 새장형으로 고려시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이는 기존 강당지의 초석에서 확인된 앞면 31.8m. 옆면 17.9m의 규모보다 더 크게 지었으며 기단은 기와를 합장식 와적기단과 평적식 와적기단으로 쌓아 만들었습니다.





정림사지석조여래좌상은 전체 높이가 5.62m이며 재질은 화강석입니다. 부처 머리는 후대에 다시 만들어져 올려졌으며 현재 불신은 처참할 정도로 깨어졌는데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마멸되어 그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석불좌상의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 등을 가늠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 합니다.







그러나 이곳 정림사지 강당지에서 발굴된 기와의 명문을 통해서 고려시대 때 절을 고치면서 석불좌상이 함께 만들어졌고 이 정도의 규모를 보면 정림사의 본존불이 아니었겠나 추정하고 있습니다. 1942년 강당지를 조사하던 중 “태평팔년무진정림사대장당초(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가 새겨진 기와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명문으로 정림사의 존재와 1028년 헌종 19년에 중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석불상을 보면 불두에 비해서 몸집이 왜소하며 좁은 어깨는 밋밋하게 내려오고 왼손은 가슴까지 올라가면서 오른손이 왼손을 감싸 쥔 '지권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정림사지석불좌상은 비로자나불의 특징을 보여주며 지권인은 "불법으로 모든 것을 감싼다"는 뜻입니다.





기단인 연꽃 대좌도 깨어지고 했지만, 석불좌상보다는 조금 상태가 양호한 편입니다. 하대석은 연꽃이 뒤집어져 핀 모습인 복련(覆蓮)에다 팔각형의 간석을 올렸고 각 면마다 안상을 새겼습니다. 또한, 상대석은 연꽃이 하늘을 보고 활짝 핀 모습을 한 앙련(仰蓮)을 하였습니다.

 


이때까지 많은 연꽃 대좌를 만났지만 거대한 석불좌상을 받치는 좌대답게 엄청나게 큰 규모였습니다. 정림사지석불좌상을 정면으로 만나보면 거대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작아진 나를 압도하였고 자연적으로 머리를 숙이게 하는 그 어떤 힘이 느껴졌습니다.





이래서 그저 인간은 하나의 작은 먼지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저 우러러만 봐도 마음 한구석에 울림이 날 정도로 대단했던 정림사지석불좌상을 정리사지오층석탑과 함께 만나보세요. 정림사지 석불좌상 보물 제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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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부여여행)정림사지5층석탑.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는 평제탑 정림사지5층석탑


우리나라 초창기 석탑의 전형은 목탑이었습니다. 목탑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말합니다. 나무다 보니 화재와 눈·비 등에 노출되어 내구성이 약하며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 이를 해결하려는 차원에서 돌로 석탑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목탑이 석탑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탑이 미륵사지 석탑(국보제11호)과 정림사지5층석탑(국보제9호)입니다.





정림사지박물관 정림사지5층석탑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2015/07/26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서동 연꽃축제 궁남지. 백제의 도읍지 부여의 많은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축하. 부여 서동 연꽃축제가 궁남지에서 열렸습니다.

2015/07/31 - (충남맛집/부여맛집)부소산성맛집, 낙화암맛집,고란사맛집 부소산 칼국수. 구수한 콩국수로 여름도 이기고 백제의 사직과 함께한 삼천궁녀 낙화암도 구경하는 부소산 칼국수.

2015/08/05 - (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2015/08/07 - (충남여행/부여여행)낙화암과 고란사. 마지막 백제의 흔적 부소산성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를 여행하다. 낙화암과 고란사

2015/08/17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부소산성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를 만나다. 사비성



이 두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오는 초창기 과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합니다. 그중에서도 목탑의 전형이 가장 많이 남은 석탑이 미륵사지석탑입니다. 미륵사지석탑은 목재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여러 가지 면에서 정형화되지 못했다면 정림사지5층석탑은 그에 반해 외형상 현재 석탑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군더더기가 붙어 있지 않은 깔끔하고 세련된 양식의 석탑입니다.


 


그럼 ‘정림사지박물관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정림사지 5층 석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정림사지5층석탑에서 목탑의 형식을 보여주는 게 여러 부분 남아 있습니다. 먼저 기단석 부분입니다. 일반 석탑의 기단과는 다르게 좁고 단층이 낮은 기단입니다.



기단 각 면의 모서리에 새긴 기둥을 우주라 하는데 이는 민흘림 기법이며, 지붕돌인 옥개석의 끝은 살짝 들렸고 낙수면의 내림마루를 보면 목탑에 사용된 기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림사지5층석탑을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 부릅니다.

 



사용된 기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림사지5층석탑을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 부릅니다. 미륵사지석탑은 석탑인데도 목재의 형식을 많이 따랐으나 정림사지5층석탑은 목탑의 모방에서 벗어나 석탑만의 온전한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첫 작품이라 보고 있습니다..그만큼 의의가 있는 석탑이라 국보 제9호로 지정하여 정림사지오층석탑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의 구조를 알아보겠습니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높이가 8.33m인 거대한 석탑입니다. 정림사지오층석탑도 지대석과 기단부 탑신부와 상륜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기단부는 단면이 방형인 다듬은 긴 돌기둥 8개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다 기단은 단층이며 여러 개의 돌로 낮게 만들어졌습니다.






중석의 각 면 귀퉁이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이를 우주라 하고 가운데 지탱하는 돌을 하나씩 끼웠는데 이것을 탱주라합니다....그 위에다 갑석을 올려 기단을 마무리했습니다. 갑석 위에는 1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네 귀퉁이에 별도의 돌로 민흘림의 기둥(우주)을 만들었고 우주 사이에 각각 두 장의 판석을 끼웠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몸돌은 작아져 4개, 2개, 1개의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몸돌 위에는 지붕돌인 옥개석을 올렸습니다. 지붕돌 아래에는 2단의 지붕 받침인 옥개받침이 있으며 몸돌과 마찬가지로 위로 올라갈수록 옥개받침의 석재 수가 줄어듭니다.






옥개석은 얇고 넓은데 반해 전각에 약간의 반전이 나타나며 또한, 옥개받침 아래에는 사각형의 석재가 목탑의 공포 형태를 간략하게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지붕돌 위에는 몸돌을 받치는 1단의 탑신받침이 각층의 지붕돌 위에 있으며 상륜부에는 노반을 두었습니다.


 










현재 정림사지5층석탑은 몸돌보다 지붕돌의 폭이 넓고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석탑을 조성한 게 목탑과 유사한 모습이라 합니다. 그러나 정리사지오층석탑을 보면 우선 안정감 있는 비율로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한 마리의 학처럼 우아하고 격조 높은 모습에 백제 장인의 혼이 담긴 매우 뛰어난 예술 작품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정리사지오층석탑에는 특별한 이력의 글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나당 연합국으로 당나라의 소정방이 1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침공했을 때의 일입니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의 1층 탑신 4면에는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전승을 기념하는 치적인 “백제를 징벌한 기념탑”을 석탑에 새겼으며 이 때문에 정림사오층석탑을 ‘평제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정림사지5층석탑 탑재의 원재료인 석재는 강경읍에 있는 옥녀봉 일대에서 채취했다고합니다. 이는 이찬희 공주대 문화재과학과 교수의 ‘웅진문화21’에 수록한 논문에서 이곳의 돌이 정림사지5층석탑과 같은 석질로 밝혀졌다 합니다. 아마 다음에 정림사지오층석탑 복원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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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여행/부여가볼만한곳)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두 눈으로 확인했던 부여 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2년 전에 태안반도와 부여를 2박 3일 여행했습니다. 당시 잠은 태안반도의 끝에서 이틀을 자면서 여행은 부여에서 주로 했는데 그 이유는 부여의 여러 곳을 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우리가 부여 여행을 할 때 백제 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며 모든 문화재를 무료로 개방하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국립부여박물관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 18-2

국립부여박물관전화:041-833-8562




2015/08/17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부소산성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를 만나다. 사비성

2015/08/07 - (충남여행/부여여행)낙화암과 고란사. 마지막 백제의 흔적 부소산성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를 여행하다. 낙화암과 고란사

2015/08/05 - (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2015/07/26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서동 연꽃축제 궁남지. 백제의 도읍지 부여의 많은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축하. 부여 서동 연꽃축제가 궁남지에서 열렸습니다.

2017/09/16 - (부여맛집/부소산낙화암맛집)구드래유람선선착장 맛집 장원막국수. 부여 장원막국수



 


그때 궁남지와 부여박물관, 부소산, 정림사지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제 취미가 전국의 고적과 고대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좋아해서 부여에도 많은 문화재가 있지만, 당시 부여읍내의 궁남지, 부소산의 낙화암, 거대한 정림사지 5층 석탑 등을 만나는 계획만을 세웠습니다.



부여의 유물은 한 번도 구경을 못했지만 부여의 많은 석재유물은 부산과 가까운 경주에서 거대한 감은사지 오층석탑 등 신라의 정밀한 국보문화재를 많이 보았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던 터라 부여의 여러 고대 문화재는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딱히 많은 궁금증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신라와 백제는 문화재마다 특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그게 그것이 아닌가하며 다 비슷하다는 생각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부여 여행을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어떤 문화재일까하며 궁금증을 떨칠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부여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이는 부여박물관에 전시 중이던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금동대향로를 만남으로 부여여행은 모든 게 상쇄된다는 생각에 부여박물관 여행을 하면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장 먼저 백제금동대향로 전시관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통했는지 그곳에는 불이 꺼진 채 삼성에버랜드에 3개월 동안 대여한다는 짤막한 안내문만 붙어 있었습니다. 그 안내문을 보는 순간 억장이 무너지고 황당하여 얼마나 분통을 터트렸는지 모릅니다.

 


오직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기위해 부여여행을 계획했었는데 그게 모두 수포가 되어 버리는 순간 너무나 황당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념 축제를 한다면서 부여 최고이자 최대의 백제 걸작품인 금동대향로를 삼성에다 대여하는 처사를 비난하면서 돌아섰던 기억에 부여 생각을 하면 지금도 그저 개똥쑥을 씹은 듯 씁쓸합니다.




이번에 다시 공주와 부여를 여행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일정표를 보니 당연히 부여박물관과 정림사지5층석탑이 들어가 있었으며 이번에도 부여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가 다른 곳에 대관했다면 어찌하노 하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했습니다.



백제관광호텔에서 일찍 조식을 해결하고 바로 부여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이는 가장 먼저 금동대향로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막상 부여박물관을 찾았는데 그때 시간이 오전 9시30분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개관 시간이 10시로 변경되었다며 지금 청소중이라 입장을 할 수 없다고 10시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아! 이번에도 일이 꼬이는구나 싶었습니다. 오늘 일진이 초반부터 틀어지는 것을 보니 백제금동대향로를 애시 당초 못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그래도 볼 수 있을 거라며 자신을 위안하고 기다렸습니다. 10시가 되어 부여 박물관에 입장 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금동대향로 전시실로 혼자 향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잘 있나 싶었습니다. 전시실을 들어서는 순간 붉은 광채를 내며 빛을 발하는 금동대향로를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사진으로만 만났던 금동대향로를 이리 두 눈으로 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과연 명품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사람의 손재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신인이 만든 예술품이었습니다.



신인이 만든 예술품답게 백제금동대향로의 출토과정도 드라마틱했다합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까딱했다면 영원히 지구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파괴나 사장될 뻔 했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백제금동대향로의 출토장소가 능산리고분군 주차장 확장공사장이었습니다.



그때까지 큰 유구나 유물이 딱히 나온 게 없었기 때문에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해 다른 큰 이유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불도저로 밀고 주차장으로 만들어도 별 무리가 없었다합니다.



사적 제14호인 능산리 고분군과 사적 제58호인 부여나성 사이의 작은 계곡에 자리한 계단식 논은 혹시나 하는 당시 부여박물관장이었던 신광섭의 직감에 당시 문화재관리국 기념물과과장인 노태섭의 지원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두 분의 촉이 통했기에 오늘날의 백제금동대향로는 우리 눈앞에 찬란한 빛을 발하며 있게 된 것입니다.  1992년의 발굴조사에서 나온 유물로 보아 그저 금속제품을 만드는 공방 정도로 생각했던 곳이 1995년 금동대향로가 발견됨으로써 백제궁궐의 왕실 절터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발굴된 목탑의 흔적에서 사리장엄구를 보관했던 석조사리함이 발견되었으며“ 567년 창왕 13년에 정혜공주가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합니다. 이를 보면 금동대향로의 조성연대를 대략 유추할 수 있으며 백제 황실의 의식과 제사용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 가능합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향로 뚜껑과 몸통이 서로 분리된 상태로 물이 흠뻑 고인 진흙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1300여년의 오랜 세월 동안 녹슬거나 부식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는 진흙이 진공상태를 만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99% 상태의 완벽한 대향로가 기적같이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금동대향로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받침대를 한 용이 발가락에 힘을 주며 꼭 하늘로 솟아오를 듯 당찬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귀하디귀한 보물 중에 보물인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해 세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금동대향로는 크게 뚜껑 부분과 몸체로 나누어지며 뚜껑 위쪽에는 봉황 장식에다 뚜껑을, 몸체는 향로와 용의 형상인 받침대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뚜껑의 끝부분에는 턱 밑에 여의주를 품은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갈 듯한 모습입니다.

 




또한, 봉황의 목과 가슴에는 작은 구멍이 3개 뚫려 있으며 여러 개의 구멍이 뚜껑에 더 있어 이는 향을 피우면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이라 합니다. 봉황 밑으로는 금, 완함, 꽹과리, 종적, 피리를 들은 5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뚜껑을 자세히 보면 산봉우리가 여러 개 겹친 모양인데 모두 74개라고 합니다. 이는 신선들만 드나든다는 삼신산인 봉래산을 뜻합니다. 그 안에 17명의 신선이 있다하며 사자, 거북이, 원숭이, 코끼리를 포함한 37마리의 각종 상상의 동물상에다 나무와 폭포, 호수 등을 표현하여 무릉도원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 또한 향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신선이 되어 함께 그 속에서 놀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했습니다. 향로의 몸체는 연꽃으로 장식했습니다. 이는 뚜껑의 5단 산봉우리와 균형을 맞추려고 5단의 연잎으로 처리했습니다. 여기에도 신선 2명과 25마리의 동물을 새겼는데 뚜껑과는 다르게 물속과 물가 주위에다 물고기 등 수중생물을 나타내었습니다.






향로를 받치는 받침대는 상상속의 동물인 용의 형상입니다. 향로를 지고 하늘로 박차고 오르는 듯한 모습은 박진감과 힘이 넘쳐보였습니다. 상상속의 동물이지만 몸통과 꼬리 수염, 발, 머리카락 의 표현 등을 섬세하게 하여 꼭 움직이는 착각에 살아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금동백제대향로를 박산향로라고 한답니다. 이는 중국 한대에 구리로 만든 향로로 바다에 신선이 사는 전설상의 산을 박산이라 하며 그 박산은 산과 신선 동물 등이 사는 이상의 세계인 무릉도원인데 이를 표현한 향로를 박산향로라 부른답니다.

 


박산향로는 도교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를 박산향로로 보는 이유이며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도 외국에 나가 우리 문화재를 알리는 전시를 많이 합니다. 그중에서도 반출 할 수 없는 문화재가 딱 두 점이 있다고 합니다. 영조어진과 이 백제금동대향로이며 도난과 이동 중 파손, 여러 가지 여건 등을 고려한 조치로 백제금동대향로는 꼭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 높이 61.8㎝,

백제금동대향로 무게 11.85㎏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제2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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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부소산성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를 만나다. 사비성


백제의 의자왕은 신라를 공격하여 40여 개의 성을 빼앗는데 신라는 백제의 공격에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이에 백제를 치기위해 고구려에다 김춘추를 파견하지만,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옛 땅인 죽령 이북 땅을 돌려주면 같이 백제를 공격하겠다합니다.




 할 수 없이 신라는 바다 건너 왜에게 협조를 요청하였고 백제와 돈독한 유대를 맺고 있는 일본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 할 수 없이 김춘추는 당나라 태종에게 가서 함께 백제를 치고 고구려를 멸망시키면 신라는 대동강 이남의 땅만 차지한다는 조건을 제시하여 나당 연합군을 맺고 눈엣가시였던 백제를 침공하게 됩니다.

 이러하여, 660년 당나라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소정방이 이끈 13만 대군과 김유신이 이끄는 5만여 신라군이 백제를 향해 출정하였습니다. 소정방은 지금의 백마강에 다다랐고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끈 결사대 5천여 백제군과 일진일퇴의 혈전을 벌렸습니다.

 백제군은 죽기를 각오하며 싸우다 보니 신라군은 쉽게 백제군을 이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랑도의 관창이 백제의 계백에게 포로가 됩니다. 계백이 관창을 보니 16세의 어린 나이라 수급을 거두지 않고 신라 진영으로 돌려보내지만, 관창은 또다시 백제군의 포로가 됩니다.

 이에 계백은 그의 수급을 거두어 김유신 앞으로 보냈는데 어린 관창의 용감한 행동을 본 신라군은 이에 자극받아 계백이 이끈 백제군과 용감히 싸워 황산벌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그 여세를 몰아 나당연합군은 사비성을 협공하여 함락하고 공주(옹진)로 피난 갔던 의자왕은 항복하며 백제는 멸망하게 됩니다.

 백제인의 마지막 항쟁의 장소였던 사비성은 ‘소부리성’으로도 불렸지만, 지금은 부소산의 이름을 따 부소산성으로 더 불리고 있습니다. 부소산성은 사적 제5호이며 도성을 방어하는 산성으로 군창지와 사자루의 봉우리에 백제 때 쌓은 테뫼식 산성과 통일신라 때의 포곡식 산성이 혼합된 모습입니다.

 마치 산봉우리에 머리띠를 두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소산 아래 옛 왕궁터는 ‘부여 관북리 유적’으로 사적 제428호이며 대형전각 건물지, 연못, 석곽저장고, 공방시설, 도로 등의 유적이 확인되었습니다.

부여 동헌 건물입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로 조선시대 부여현의 관아 건물입니다.  동헌, 객사, 내동헌 등의 건물이 현재 남아 있습니다. 고종 6년인 1869년에 지었고 앞면 5칸, 옆면 2칸의 규모에다 여덟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입니다.

 

 

 

 부소산성 입구입니다.

 

 

 하동정씨 정려각입니다. 임진왜란 대 사천현감으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정득열과 그의 아들 택뢰와 그의 동래 정씨 부인, 손자 천세 네 분을 기리는 정려각으로 조선 숙종 때 건립하였습니다.

 

 부여 부소산성 서복사지입니다. 지금은 초석과 터만 남아 있지만 목탑지, 기단, 심초석에서 금동재과판이 출토된 것을 보면 왕실의 기원 사찰로 추정됩니다.

 

 

 

 부소산 정상에 세워진 사자루입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 1919년 임천면의 관아 정문인 개산루를 이곳 송월대에 옮겨 짓고 사자루로 바꾸었다합니다. 2층 문루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2층은 누각을 설치하였고 겹처마 팔작지붕입니다. 사자루 현판은 한말 의친왕 이강의 글씨이며 ‘백마장강’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입니다.

 

 

 

 

 이곳 부소산에는 백제의 멸망과 함께 백제여인들이 몸을 던졌던 곳이 있습니다. 백마강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암벽인 낙화암입니다. 마치 한 송이 꽃잎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에는 이제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만 보일뿐입니다.

 

 

 낙화암과 함께 회자되는 고란사는 백제여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사찰로 이곳에는 젊어진다는 고란약수의 전설로 유명합니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낙화암을 끼고 절묘하게 터를 잡았습니다. 고란약수터의 약수를 백제왕이 즐겨 마셨다하며 궁녀들이 매일 고란초 잎을 띄운 약수를 바쳤다합니다. 지금은 고졸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으며 그 당시의 흔적을 쫓기 위해 관광객만 북적북적 할뿐입니다.

 

 

 

 황포돛배 선착장 옆에는 조룡대로 부르는 작은 바위섬이 있습니다. 백제의 멸망을 미리 예견했는지 당나라 소정방이 사비성을 공격하기 위해 백마강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데 갑자기 풍랑이 심해 더는 전진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정방은 그 연유를 알아내곤 이곳 바위에 걸터앉아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백제 무왕의 화신인 청룡을 잡아 올렸던 곳입니다. 지금도 그 발자국이 남아 있으며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청룡을 잡아 올렸다하여 백마강이라 부르게 되었다합니다.

 

 

 

 

 황포돛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구드래 나루터입니다. 삼국유사에 보면 백제왕이 왕궁을 나와 강 건너 왕흥사를 가기위해 잠시 쉬며 예불을 드리던 바위가 있었는데 왕이 도착하면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졌다하여 구드래, 구드리, 구들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합니다.

 백제의 도읍지 부여는 흘러온 세월만큼 많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백제의 부소산성은 부여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듯이 황포돛배를 타고 낙화암과 조룡대도 꼭 만나보세요.

◆부소산성 관람요금과 관람시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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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부여여행)낙화암과 고란사.  마지막 백제의 흔적 부소산성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를 여행하다. 


백제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부여의 낙화암은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660년 의자왕 2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 여인들은 적에게 몸을 더럽히니 충절을 지키기 위해 이곳 낙화암에서 백마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 낙화암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마치 한 송이 꽃잎이 바람에 나부 껴 떨어지듯 백제 여인의 굳은 절개와 고귀한 충절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지금도 낙화암 암벽은 붉은색을 띄는데 그때 몸을 던진 삼천궁녀의 선혈이라 하며 낙화암이란 붉은 글씨체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알려졌고 황포돛배를 타고 백마강을 유람하면 붉은 글씨가 선명합니다.




낙화암 바위에는 육각의 백화정 정자가 있습니다. 1929년 ‘부풍시사’란 시우회에서 세운 것으로 알려졌고 중국의 소동파가 지은 “강금수사백화주”에서 그 음을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화정과 함께 낙화암의 풍경은 슬픈 역사 속에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곳입니다. 또한, 낙화암과 함께 꼭 등장하는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98호 ‘고란사’란 작은 사찰입니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떨어진 백제 여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어진 사찰로 전하며 백제 말기에 창건되었다 합니다.




고란사 사찰의 유래는 암벽에 자라고 있는 고란초에 의해 유래 되었습니다. 백제 때 임금이 이곳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 같이 약수를 떠 오게 했는데 궁녀들이 약수터 주변의 고란초 잎을 물에 띄워와 고란 약수임을 증명했다고 하며 고란 약수는 젊어지는 명약으로 전해지는 전설이 있습니다.




고란약수를 한번 마시면 삼 년씩 젊어진다고 하여 고란 약수를 마신 할아버지가 갓난아이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젊어지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곳 고란 약수터에는 젊어지기 위해 연중 많은 관광객이 몰려듭니다.




젊어진다고 너무 많이 드시지는 마시길, 혹시 압니까? 간난애가 되어 “응애 응애” 할지도 모릅니다. 욕심은 금물. 고란사의 건물은 정조 21년인 1797년 은산 숭각사를 이건 하여 재건했다 하며 사찰 전면에 두 개의 연화문 방형초석은 고려 시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란사 아래 황포돛배 선착장에서 백마강 물길을 타고 나가 낙화암 전체를 바라봅니다. 60m 수직 절벽은 그때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은 한여름 불볕 속에 고졸(古拙)한 모습입니다. 부여 방문에 반드시 찾는다는 낙화암과 고란사 여행을 한번 계획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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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충청남도 부여.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얼이 오롯이 남아 있는 전통 문화도시입니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서 26대 성왕이 지금의 공주인 웅진에서 천도한 곳이며 소부리 또는 사비라 불렀습니다.








 

그 후 123년 동안 이어오다 660년 의자왕(의자왕 20)이 집권하면서 나당 연합군에 패배해 백제는 멸망하였고 신라에 예속되어 문무왕 때인 672년 부여 도독부가 설치되었고 경덕왕 10년에 부여현이 되었습니다.


 

백제의 수도인 옛 사비를 상징하는 많은 문화재가 이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백제시대부터 이어진 부여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 국립 부여박물관입니다. 그래서 찾아간 부여박물관은 부소산의 낙화암과 고란사, 백마강, 정림사지, 궁남지 등 모든 문화재가 주위에 함께 있어 부여여행에서 참 편리했습니다.


 

부여박물관은 현재 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국보 제287호인 백제 금동대향로와 국보 제288호인 백제 창왕 명석조 사리함, 국보제 293호인 금동 관세음보살입상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부여의 국보는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함께 모두 4점인데 그중 3점의 문화재가 이곳 부여박물관에 전시중입니다.


 

또한, 보물 제21호인 당유인원기공비, 보물 제107호인 보광사 대보광선사비, 보물 제194호인 부여석조, 보물 제196호인 금동 석가여래입상과 군수리 금동 미륵보살입상이 전시 중입니다. 그럼 부여박물관 입구로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내부로 들어서기 전에 많은 석물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먼저 ‘당유인원기공비’입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행적을 기록한 비입니다. 원래 부소산 중턱에 있었다하며 몸돌과 용 6마리가 새겨진 머릿돌을 한 돌로 깎은 전형적인 당나라 형식의 비석입니다.



보광사대보광선사비는 보물 제107호로 보광사 중창을 주도한 원명국사 충감(1275~1339)의 행적과 보광사 중창과정을 기록한 비로 보광사 터에 있었습니다. 비문의 글씨는 그 뒤 마모가 되어 1750년 보광사 능일에 의해 다시 글씨를 새겼다 합니다.


 

 

동사리 석탑, 부여 금성산 천왕사지에서 발굴된 석조여래입상, 이수와 귀부, 연꽃 좌대 등이 야외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부여박물관 내부로 들어갑니다. 먼저 중앙에 보물 제194호인 부여석조가 웅장한 모습입니다.


 

 

 

절 등에서 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된 석조물로 백제의 왕궁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석조표면에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1층 탑신에 새겨진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내용이 석조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가슴 아프네요.


 

지금부터 전시실 구경을 하겠습니다. 먼저 만나는 게 부여의 선시와 고대문화로 다양한 토기류와 철기류 등이 전시 중입니다.


 

 

 

 

 

 

 

 

 

 

 

 

 

 

 

 

 

 

 

 

 

 

 

사비 백제와 부여박물관의 대표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가 전시된 전시실입니다. 백제 창왕명석조사리감은 국보 제288호이며 부여 능산리 사지의 탑 심초석에서 출토되었는데 앞뒤로 같은 모양의 감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면에 뚜껑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껑 턱이 있으며 사리를 봉안했던 용도로 사용되었고 출토 때 사리감은 폐기되어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리감은 성왕의 아들로 554년 왕위에 오른 창왕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창왕의 여형제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내용이 명문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부여박물관을 대표하는 문화재는 역시 백제금동향로입니다. 국보 제287호. 1993년 12월 12일 백제 나성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에서 출토되었고 높이는 61.8cm, 무게 11.8kg인 대형향로로 몸체와 뚜껑, 봉황과 받침대로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정교하고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백제시대의 공예술과 미술문화의 우수성을 알 수 있습니다.(호암미술관에 대여되여 부여박물관 홈피 사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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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여 박물관 관람에서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처럼 백제 금동대향로가 호암미술관에 대여 되어 정작 부여박물관 전시실은 텅 비어 있었고 아쉽게도 실물을 볼 수 없었습니다. 멀리 부산에서 달려갔는데 그것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 중에 매우 아쉬웠습니다.(사진은 부여박물관, 부여군청 홈페이지 사진을 캡쳐했습니다.)


 

이외에도 부여박물관에는 보물 이외에도 많은 우리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여여행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모두 관리자께 허락을 받고 찍은 사진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금동관세음보살입상은 국보 제293호. 1970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의 절터를 발굴하면서 무쇠솥에서 관음보살 입상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높이가 21.1cm로 작은 불상입니다. 머리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진 관을 쓰고 있으며 둥근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에다 목에는 가느다란 목걸이를 걸쳤고 옷의 주름 선까지 표현할 정도로 아주 정교하게 제작된 7세기 초 백제시대 불상입니다.


 

 

 

 

 

 

 

 

 

 

 

 

 

 

 

 

 

 

이곳은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기 위해 찾았는데 아쉽게도 늦어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밖에서 눈팅만하고 돌아섰습니다.


 

 

 

 

부여박물관 안내정보

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토,일, 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전 9시~ 오후 7시

야간개장: 매주 토요일(4월~10월) 오전 9시~오후 9시

단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휴관일

매주 월요일, 매년 1월1일

관람료: 무료

주차장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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