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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봉화여행을 하면서 1박을 청했던 곳이 아름다운 지명인 바래미마을의 소강고택입니다. ‘바래미’는 바다였다는 뜻이며 아주 오래전에 이 일대가 바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최근까지도 마을 안의 논과 웅덩이에서 조개들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마을이 포근하고 아늑한 게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봉화 해저 만회고택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485

중요민속자료 제169호





한옥스테이를 했던 소강고택 포스팅은 다음에 하고 우선 바래미마을 인근에 있는 해저만회고택을 포스팅하겠습니다. 소강고택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계속 누워 있기도 뭐하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마을 구경삼아 동네 한 바퀴 했습니다. 소강고택 이외에도 많은 고택이 즐비했는데 그중에서도 소강고택의 건너편 마을에 있는 해저 만회고택을 이정표만 보고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해가 떠오르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찾아가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외관만이라도 만나볼 욕심에 찾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대문이 없는 개방식 비슷한 고택이었습니다. 주위 고택은 솟을 대문에 높은 담장이 둘러싸여 바깥에서는 전혀 내부를 볼 수 없었는데 만회고택은 대문이 없어서 바깥에서도 훤하게 사랑채가 잘 보였습니다.

 


특히 새벽바람을 가르며 시골 마을을 걸을 때는 개 짖는 소리에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러워 마을을 둘러보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래도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만회고택은 집을 지키는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만회고택의 자랑인 사랑채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으며 집주인이 잠에서 깰까 싶어 조용하게 사진을 찍고 소리소문없이 나왔습니다.



만회고택은 봉화군에서 애국심으로 큰 자랑인 고택건물입니다. 건물의 웅장함도 있지만 만회고택의 사랑채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이라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봉화 해저 만회고택이 자리한 해저리에는 조선 숙종 때 관찰사를 지냈던 팔오헌 김성구 선생이 처음 자리를 잡아 의성김씨가 세 가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의 만회고택인 안채는 김건수씨 6대조께서 마을에 들어와 여씨(余氏) 성을 가진 분이 살던 집을 사들여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안채는 1690년대에 지어졌다 합니다. 이 집을 만회 고택이라 부르는 것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건수(1790~1854)선생의 호인 만회헌(晩悔軒)에서 따왔습니다.



만회고택의 사랑채인 명월루(明月樓)는 만회선생이 건립했으며 1850년에 전체적인 수리를 했다고 합니다. 백두대간의 흥 걸 찬 기원이 감도는 명월루의 지세는 예로부터 명산 대천을 찾는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닦던 곳으로 이곳에서 약 1,000여 편의 시가 쓰였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명월루는 봉화 해저리에서 독립운동의 산실역을 담당했다 합니다. 특히 해저마을 주민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14명의 독립운동가를 마을에서 배출한 독립유공자 마을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성주 대가면 출신인 심산 김창숙 선생이 명월루에 거처하면서 해저마을의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독립 자금도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랄 일은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열렸던 제2회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비밀리에 파견하면서 독립청원서를 보냈는데 독립청원서의 초안을 명월루에서 작성하였다고 하며 독립유공자 마을인 해저 마을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 외 많은 독립운동의 지원 등을 의논했던 장소에 명월루가 이용되었다 하니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현장입니다.



사실 만회고택의 안채는 이른 아침이라 내부를 볼 수 없어 많이 아쉬웠지만, 사랑채인 명월루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만회고택 명월루를 알아보겠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게 사랑채인 누각형태의 명월루입니다.





사랑채가 명월루임을 알리는 현판이 돌출한 누마루에 달렸어 눈에 확 띄었으며 이외에도 만회고택과 사랑채의 툇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을 느낀다는 청풍헌 현판도 따로 걸려 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4칸이며 옆면 1칸 반 규모로 만회고택은 앞쪽에 일자형의 중문간채와 'T'자 형의 사랑채, 안채는 ‘∩’자형이며 전체적으로 튼 ‘ㅁ’자 배치입니다.



안채를 중심으로 좌우로 연결된 건물이 사랑채로 이어지며 안채의 동쪽 날개 끝에서 동쪽으로 치우쳐져 사랑채가 자리했습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했으며 전면의 툇마루와 누마루에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사용하여 건물의 멋과 권위를 한층 더 높였습니다.





사랑채 옆의 안채로 드나들던 출입문인 중문간채는 퇴락하여 1981년에 철거했다가 다시 복원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찬찬히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 남의 집을 찾아서 내 욕심대로 보는 것도 실례이고 그리고 소강고택에서 다음 일정으로 일행들도 기다릴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 나왔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해저 만회고택에서 한옥체험 민박도 하고 보지 못했던 안채와 수박 겉핥기로 보았던 사랑채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챙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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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제주숙박)서귀포 표선면 숙박 유채꽃 프라자. 성읍민속마을과 에코랜드테마파크 인근 숙박지 유채꽃프라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는 옛 부터 말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우수마를 길러 냈던 곳입니다.  가시리마을은 화산으로 이루어진 편평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제주의 목축 농업을 선도하였고 현재 유채꽃 프라자를 출발하여 드넓은 가시리의마을을 잇는 초원 길 갑마장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2009년 부터 가시리마을 농촌마을 종합개발과 신문화조성공간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가시리마을은 마을 주민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아름다운 풍경인 가시리 유채꽃 프라자가 탄생했습니다.



가시리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는 유채꽃 프라자는 봄이면 이 일대에 유채꽃이 소금을 뿌린듯 보석으로 빛이나고 가을철에는 바람에 질정 없이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룹니다. 

 


유채꽃 프라자 전망대에서 본 풍경입니다. 아름다운 소풍길이 다듬어져 있고 큰사슴이 오름과 작은사슴이 오름이 양팔을 벌리며 유채꽃 프리자를 보듬고 있습니다. 이름 처럼 아름다운 사슴오름. 혹 한라산 백록담에서 물을 먹는 그 전설속의 꽃 사슴이 이곳 큰사슴이 오름과 작은 사슴이 오름이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며 꽃사슴과 함께 초원 길을 따라 한바퀴 돌고 싶다는 충동이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제주도는 세가지 많은게 있습니다. 돌과 바람과 여자입니다. 어디를 가도 발에 채이는게 화산석입니다. 그만큼 돌이 많은 곳입니다. 또한 제주도는 한반도의 가장 아랫쪽에 위치를 하여 태풍을 당당하게 몸으로 막아주는 바람막이 역할로 제주도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게 심합니다. 그 엄청난 바람을 이용하여 제주도는 여러곳에 자연친화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단지가 많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곳 가시리 유채꽃 프라자 앞의 너른 초원에도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날개가 모두 한방향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 각자 방향을 달리하며 바람의 방향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국적인 풍경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풍력발전 단지 뒤로 보이는 오름은 따라비오름입니다. 오름중에 으뜸 오름이라 하여  오름의 여왕 따라비오름입니다. 따라비오름은 할아비오름으로 주위에 여럿 자식 오름을 거느리고 있습니다.새끼오름, 모지오름, 장자오름등을 거느린 따라비 오름을 필자도 올라가 보았는데 오름의 할아버지 답게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제주도 지인중에 오름 전문꾼은 올라본 제주오름중에 가장 아름답다하였습니다.



유채꽃 프라자 전망대에서 본 동서남북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경이로운 풍경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장엄한 한라산의 모습을 이곳 유채꽃 프라자 전망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큰사슴이 오름에서 왼쪽으로 눈을 돌리다 보면 가장 우뚝한 한라산 정상부의 모습입니다 비록 굼부리인 분화구 백록담은 볼 수 없지만 멋진 한라산과 조우하는 행운도 만나보세요.



주위를 산책하기 위해 유채꽃 프라자 전망대를 내려 갑니다. 



풍력 발전 단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봅니다. 이길이 갑마장길과 연결되며 길게는 20kmr가 넘는 길과 짧게는 쫄븐갑마장길 외에도 5km 정도의 걷고 싶은 분의 체력에 맞추어 둘러 볼 수 있습니다. 풍력단지 아래를 한번 걸어보세요.



유채꽃 프라자 내부의 모습입니다. 가시리 주민이 직접 손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모두가 정성이 가득합니다.




방문한 분들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겨져 있고............



가시리마을을 홍보하는 홍보물도 비치가 되어 있습니다. 



가시리마을은 여러 방송매체에도 소개가 되었지만 월간지에도 소개가 되었습니다. 



내부에서 입구를 본 풍경입니다.



유명 인사들이 방문하여 남긴 사진 모음입니다. ㅋㅋ 연애들도 볼 수 있습니다.



밖에서 본 유채꽃 프라자입니다. 건물 외관 디자인도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잘 꾸며져 있습니다. 이곳은 또한 숙박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모든 객실에서 한라산과 큰사슴오름을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그 날 내부 숙소는 청소가 끝나지 않아 사진으로 담아오이 못했습니다.객실은 총 7개이며 수용 인원은 2~6명입니다. 2인 기준 객실요금은 5만원이며 성수기(7월15일~8월15일)에는 7만원. 1인 추가시 요금은 1만원이 더 가산됩니다. 



객실별로 화장실과 샤워실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며 유채꽃 프라자의 물은 가시리마을에서 개발한 암반수로 지하 300m 에서 끌어 올려 사용한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전체가 삼다수라 하는데 빈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약(064-787-1665)은 필수입니다.



 



전체 유채꽃 프라자의 조감도입니다. 지금도 앞쪽으로는 건물 공사가 진행중입니다.




내부 벽면은 이곳이 조선시대 최고의 마방목지 갑마장이였다는 상징인 말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역동적인 제주말의 모습이 활기차 보입니다.



의자와 풍력발전기. ㅎㅎ 키다리 아저씨가 앉아야 될 높은 의자입니다. 이곳에서 보면 이제 제주에도 가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할 것 같습니다.  의자에 앉아 책이라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가시리마을 유채꽃 프라자는 여러가지 체험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조랑말 체험공원에서 다양한 코스의 승마 체험을 즐길 수 있고 가시리마을 작가 초록누룽지와 자연그리기 수업, 국궁장에서 활쏘기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감물을 가지고하는 천연염색 체험과 야생차를 만들어 시음도 하며 유채꽃 프라자의 카페지기 체코인의 프란티섹과 래가  건강음료 만들기를 운영하며 체험도 할 수 있고 건강을 다지는 갑마장 둘레길 걷기등 다양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유채꽃프라자의 시설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전에 예약시 숙박객만을 위한 아침식사도 준비가 됩니다. 제철에 나는 식재료와 천연조미료만을 사용하여 만든 건강한 식당은 가시리 유채꽃 프라자에서만 맛볼 수 있습니다. 카페에서 차한잔과 즐거운 시간을 만들고 학교와 회사 워크숖등 단체객을 위한 40평 규모의 세미나실, 그리고 여가를 족구로 보낼 수 있도록 유채꽃 프라자 앞에 족구장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주 여행에서 경관 좋은 숙박지, 회사와 학교등 단체여행객에게 안성맞춤식으로 즐길 수 있는 가시리마을 유채꽃 프라자를 구경하고 걷고 족구도 하고 왔습니다.



(제주 가시리마을 홈페이지를 캡쳐)


◆제주 서귀포 숙박지 유채꽃프라자 영업정보◆

★상호:유채꽃프라자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3665-85(녹산로 679-257)

★예약전화:064-787-1665

★숙박시설과 체험

★승용차와 대형 주차 공간 유.

내비게이션:가시리유채꽃프라자입력

★홈페이지:http://www.jejugasi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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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용산서원. 정무공 최진립장군 용산서원, 한옥 고가 숙박도 할 수 있습니다.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 가면 용산 서원이 있습니다. 조선의 무신인 정무공 최진립(1568~1636)을 제향하며 자는 사건, 호는 잠와, 본관은 경주입니다. 경주최씨 최진립 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그의 고택은 인근에 경주 최부자 집으로 유명한 충의당입니다. 처음 흡흡당으로 부르던 건물은 1760년경에 와 건물을 수리하면서 충의당으로 현판을 바꾸었습니다.

 

 

경주 최부자하면 아마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 용산서원과 이웃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이 이어진 경주최부자 이야기는 근대에 와서도 그 명성이 자자합니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해주는 대목입니다.

 

 

벼슬은 진사이상을 금하며 재산 또한 만석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고 흉년에 남의 논밭 사는 것을 금하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입니다. 이외에도 경주최부자의 쌀뒤주는 지금도 우리에게 회자하는 바가 큽니다.


 

경주 최부자의 유래는 최진립 장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육의당 최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장에 나갔습니다. 또한 1597년 정유재란때도 서생포에서 왜군과 싸워 이겼고 권율장군과 합세하여 도산에서 승전을 하여 ‘선무원종공신’에 오르며 훈련원정을 제수 받습니다.

 

 

금나라의 침입으로 조정은 명나라 구원병을 요청하지만 반대하여 유배길에도 오릅니다. 인조반정 이후 사면되어 첨절제사에 복지하고 공조참판을 거쳐 1630년 전라좌수사에 올랐고 경기수사에 제수되어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합니다.

 

 

1634년에는 전라수군절도사가 되며 1636년 병자호란이 일으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합니다. 적에 의해 남한 산성은 포위되고 최진립은 인조를 구하고자 출전하여 용인 험천 전투에서 전세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청군에게 패해 전사를 합니다.




 

 

1937년 병조참판에 추서와 함께 청백리에 이름이 오르며 시호 정무를 하사 받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용산서원을 참고하면 용산서원은 1699년(숙종25) 경주부윤 이형상이 최진립 장군을 향사하기 위해 지역 유림과 함께 건립 하였고 1701년 강당과 남북재를 세워 강당을 민고당, 양 협실을 흥인재, 명의재라 하고, 남재를 호덕재, 북재를 유여재 문을 식강문이라 하였습니다. 1711년에는 '숭령사우'의 묘액이 내려졌고 원호도 용산서원이라 하였습니다. ‘숭열사우’의 글씨는 이익의 형 이서의 글씨라 합니다. 1870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 되었다가 1924년 에 다시 세웠습니다.


 

용산서원은 전면에 교육시설인 민고당을 배치하고 그 뒤쪽에 단을 올려 숭렬사를 둔 전학후묘의 구조도 되어 있습니다. 숭렬사는 정면3칸 측면 1칸이며 민고당은 정면4칸, 측면2칸의 규모로 중앙의 2칸은 마루를 두고 양쪽편에 흥인재와 명인재의 1칸 방을 넣었습니다. 또한 전사창은 정면3칸, 측면 1칸 규모로 향사나 제사등 행사때 제수를 마련하는 곳이며 고사와 유사실도 두었습니다. 용산 서원입구에는 그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으며 1993년 2월에 경상북도기념물 제88호로로 지정되었습니다.


◆용산서원 사진으로 둘러보기

 

 

 

 

 

 

 

 

 

 

 

 

 

 

 

 

 

 현재 용산서원 부속건물인 한옥고택에는 민박을 할 수 있습니다. 2인실부터 대형 10~15인실까지 갖추어져 있습니다. 한옥고택 민박체험은 2인 기준 5만원이며 예약 및 문의는 054-748-2507


 

◆용산서원 한옥 고택에서 숙박도 가능합니다. 사진으로 둘러보기


 

 

 

 

 

 

 

 

 

 

 

 

 

 

 

 

 

 

 

 

 

 ◆정무공 최진립 장군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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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누마루.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운조루. 날다 지친 새가 둥지로 돌아온다는 운조루. 도연명의 귀거래혜사에서 취합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흘러 내린 능선이 형제봉을 솟구치고 그 끝이 섬진강으로 사라지기 전에 ‘구만들’를 만들었다. 그 중심에 조선영조 52년인 1776년에 경북 안동태생인 유이주란 분이 이곳에다 99칸의 대저택인 살림집을 지었다. 그는 낙안군수등 여러곳에서 국가건축의 책임자로 있었는데 건축에 다양한 식견이 많아 그 영향으로 운조루가 현재의 모습으로 건재하게 남아 있다. 운조루는 전라남도 중요민속자료 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뜻을 살펴보면 “구름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 또는 ”구름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 어원은 중국의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혜사“에서 따왔다.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이글을 풀이하면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지로 돌아오네”에서 앞 글자인 운자와 조자를 조합하여 “운조루”의 택호를 정하였다. 유이주란 분도 종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낙향하기 위함의 뜻으로 보인다. 오미마을과 운주루가 차지하고 있는 이곳은 남한의 3대명당으로 알려진 금환낙지형으로 “하늘에서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명당터"로 세상의 난세를 피할 수 있다는 지리산의 청학동에 비견되는 곳이다. 그것을 입증하듯이 토지면(土地面)이 원래는 금가락지를 토해낸다는 吐指面(토지면)이었다하니 지리산의 풍수설에서 지명이 나왔다하겠다.





운조루 전경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운조루. 날다 지친 새가 둥지로 돌아온다는 운조루는 누마루. 금환낙지형의 천하명당 운조루.



운조루의 가옥구조를 보면 ‘장자구처기’에 운조루의 가옥을 78칸집으로 나와 있다. 7년간 공사가 이루어 졌다니 그 규모는 짐작하고 남겠다. 화재로 대문간의 행랑채와 안사랑등 거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는데 다시 복구를 하여 현재는 73칸으로 129평이다. 민도리형의 구조양식으로 크게 나누어 보면 안채, 사랑채, 행랑채, 제실로 구분되며 유이주가 거처하였던 사랑채는 큰사랑채와 아랫사랑채로 나뉘고 큰사랑채에 거처하면서 아랫사랑채에서 손님을 맞이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큰사랑채 서쪽에는 세 방향이 툭터인 누마루가 놓여져 있는데 운조루는 이곳을 두고 말한다. ‘이산루’ ‘족한정’ ‘운조루’‘귀만와’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입구의 대문칸을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곳이 아랫사랑채다. 손님을 이곳으로 모시며 잠도 청한 곳으로 귀래정으로 불린다. 큰 사랑채에서 붙어 ‘ㄱ'자로 툭 튀어 나와 있고 ’농월헌‘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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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는 사랑채 사이의 중문을 통해 들어가며 부엌과 찬칸, 곡간, 대청이 배치되는 전형적인 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취하고 있다. 솟을대문의 입구에는 뼈따귀가 걸려 있다. 원래는 호랑이 머리뼈가 걸려 있었는데 도둑맞고 현재는 말머리 뼈가 대신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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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운조루 둘러보기◆






























아랫사랑채로 귀래정으로 불렸다.




큰사랑채와 왼쪽 끝이 운조루 누마루,








안쪽에서 본 솟을 대문. 좌우로 행랑채며 현재는 한옥 민박을 겸하고 있다.







아랫사랑채.




아래사랑채와 운조루




운조루,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타인능해의 쌀 뒤주.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운조루. 날다 지친 새가 둥지로 돌아온다는 운조루. 나눔의 실천 타인능해 운조루.


운조루에는 독특한 쌀 뒤주가 있다. 쌀 3가마가 들어간다는 뒤주의 용도는 무엇일까. 200년이 넘은 원통형 뒤주에는 누구나 쌀 뒤주를 열수 있다는 ‘타인능해’가 적혀 있다. 경주 최부자처럼 이곳 운조루의 주인도 나눔을 실천하여 배고픈 사람은 누구든 뒤주를 열어 쌀을 퍼 갈 수 있도록 하였다. 한해 수확양의 20%나 되었다니 그 양도 엄청나 이 일대에는 배를 굶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안채의 모습.













운조루 편액.































운조루.



























◆운조루의 전체 내용은 아래 운조루 홈페이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더욱 많은 운조루 정보를 원하시면 방문을 해 보세요 

http://www.unjoru.net/

http://unjoru.com/bbs/board.php?board=homemain&command=skin_insert&exe=insert_iboard1_home


운조루 홈페이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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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12코스 종착점이 원부춘마을이다.

지리산에서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같은 형제봉에서 흘러 내리는 부춘골의 원시비경에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휴양차 왔다가 가는 지리산의 숨은 명소이다.


 



 

 

 

그래서인지 이곳도 많은 펜션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의 토박이 서사장님이 운영하는 전원차농원(055-883-7468),

녹차는 물론이고 민박도 가능한 곳이다.


 

 

 

 

 

 

이곳은 진귀한 나물로 저녁밥상을 차려 나오는데

도시에서 생활하는 우리로서는 처음 듣는 나물들이 밥상의 주를 이룬다.

주로 예약으로 운영되는데 관공서 분들이 출장차 내려와서

이집의 진귀한 나물과 밥을 먹고 간다는 사모님의 귀뜸이다.


 

 

 

 

 그래서인지 서사장님께서는 동이 터기 전에 벌써

인근 형제봉 아래를 한 바퀴 휙 돌고 오시는데

고사리며 갖은 나물들이 가득 담겨져 있는게 아닌가.

 오늘 저녁 예약 손님을 위한 반찬꺼리라 하며 말이다.


 

 

특이한 곶감장아찌


 

 도심생활에서 찌든 속을 정화시켜줄 산속의 약초로 만든 밥상,

누군가 밥상에 풀만 가득하다며 뱀나올까 무섭다며

애교 섞인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

처음 받아 보는 나물 밥상에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본다.


 

 

 

 

 

 

 

 

 

 조식은 1인분에 1만원으로 3만원 밥상


 

 

 약초, 버섯으로 담근 술....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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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동화마을 정류장 바로 옆에는 민박을 겸한 '휴정'(休情·055-356-3878, 016-880-6881) 이란 쉼터가 있다. 낮은 돌담에 옛날 황토방과 조그만 찻집을 갖춘 전형적인 시골집으로 제법 운치가 있다. 도로변 재약산 미나리 1호점 맞은편이다.

하산 후 산행팀은 비빔밥 등 간단한 요기를 위해 이곳에 들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주인장 배정희 씨는 지난해 10월 '근교산& 그 너머' 500회 특집으로 본사가 주최한 일본 나가노현 북알프스 산행에 동행한 부산 푸른산악회의 열성 아줌마 회원이 아니던가. 세상 참 좁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배 씨는 자식들이 자립할 만큼 성장하자 지난해 5월 이곳으로 이주했다. 평소 산행을 다니면서 봐둔 곳이라 이주를 결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단다. 알고 보니 그는 국제신문 근교산 마니아였고 이곳은 부산 산꾼들의 소위 말하는 아지트였다. 손님 중 80%가 부산 산꾼들이란다.

주 메뉴는 비빔밥 파전 외에 한방 오리백숙(사진) 및 닭백숙.

가마솥에 당귀 구지뽕 삼백초 오가피 등을 달인 물에 오리나 닭을 고운다. 밥도 그 약물에 짓는다. 쌈은 상추와 깻잎 외에 오가피순 씀바귀 산달래 등 계절에 맞게 나온다. 나물이나 약초는 관련 전문가인 배 씨 이외에도 부산의 지인들이 평소 산행하면서 직접 캐온 것을 사용한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묵은지나 깻잎도 기가 막히다. 3만5000원. 오리백숙 약물과 함께 나오는 밥은 공짜다. 특히 5월 초까지는 길 건너 위치한 재약산 청정 미나리(㎏당 7000원)도 곁들여 먹을 수 있다.

백숙 외에도 손님들이 원할 경우 삼겹살이나 오리고기를 마당에서 직접 구워먹을 수 있게 준비도 해준다. 민박의 경우 성수기인 여름엔 주변 민박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인당 2만 원을 받지만 평소에는 식사를 할 경우 잠도 공짜로 재워준다.

배 씨는 "이곳은 피로에 지친 산꾼들이 식사를 하면서 휴식도 하는 만남의 장으로 이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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