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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여행/문경가볼만한곳)운달산 김룡사. 명품 숲 전나무가 좋은 운달산 김룡사 여행. 


운달산 아래 자리한 천년고찰 김룡사. 김용마을에서 김룡사까지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은 가히 명품 숲길입니다. 전나무 숲을 지나면 김룡사의 입구를 뜻하는 일주문이 위풍당당한 모습입니다. 김룡사는 588년 신라 28대 진평왕 때 온달조사가 창건하면서 운봉사라 불렀습니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불탔으며 1624년 조선 인조 2년에 혜총선사가 중창하였으나 다시 소실된 것을 1649년인 인조 27년에 의윤, 무진, 태휴 세분 대사께서 삼창하여 운봉사의 옛 모습을 되살렸습니다.



문경 운달산 김룡사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10

문경 운달산 김룡사 전화:054-552-7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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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김룡사는 48동의 전각에 건평이 1,188평이었을 정도로 큰 대찰이었으나 1997년 불의의 화재로 대웅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전각이 불탔다가 창건에 버금가는 대 불사를 진행하여 현재 30여 동의 전각이 복구되었습니다. 운봉사가 김룡사로 바뀌게 된 것은 18세기에 절 밑 마을에 살던 김장자에 의해서입니다.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라에 큰 죄를 짓고 도망쳐 운봉사아래 몸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신인의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이들은 김룡사 부처님 앞에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러다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용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에 집안이 크게 흥하며 부자가 되었으며 마을 사람은 그를 김장자라 불렀습니다. 부자가 된 김장자는 운봉사에 희사를 많이 했는지 모르겠지만 운봉사는 김장자의 아들 이름인 김룡사로 바뀌었으며 자연스럽게 마을 이름도 김룡(용)이 되었다 합니다.

 




일주문에는 ‘운달산김룡사’와 ‘홍하문’ 편액이 걸렸는데 이는 절제된 김룡사의 현재 모습을 보는듯합니다. 홍하(紅霞)의 뜻을 풀이하면 붉은 노을이라 하며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에서 그 음을 취했습니다. 이는 운문종을 창시한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선사께서 남기신 게송의 일부분입니다.


 


생전에 성철스님도 이 게송을 좋아해 즐겨 운문선사의 음을 취했으며 그 때문인지 현재 겁외사를 들어서는 입구 누각에 벽해루 편액이 붙어 있습니다. 일주문의 두 편액은 독립운동가이자 구한말 서예가로 이름을 떨쳤던 동농 김가진(1846~1922)선생의 글씨라 더욱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김룡사 절집을 둘러보겠습니다. 어느 대감 집 출입구 같은 솟을대문에는 보장문 편액이 붙었습니다. 이는 보물을 품은 절을 들어선다는 뜻인데 절에서의 보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이곳의 문을 들어섬으로써 진짜 부처님 세상인 불국토에 들어간다는 뜻을 품고 있으며 일주문의 편액을 쓴 동농 김가진선생의 글씨입니다.




 




일주문 오른쪽에는 근심을 푸는 해우소가 있습니다. 이 화장실이 대웅전과 함께 화마가 비껴간 건물이며 300여 년 긴 세월을 이겨냈다 합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는 해우소 건물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머무는 처서 뒤편의 고방가 곧 쓰러질듯하며 진짜 오래된 건물로 보였습니다.








보장문을 들어서면 절 마당이며 김룡사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옵니다. 먼저 만나는 전각은 천왕문입니다. 천왕문은 절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상을 모신 곳입니다. 아마 불타고 복원하면서 돌이라면 불에도 끄떡없다고 생각했는지 석물로 만들어 안치했습니다.

 







증장, 지국, 다문, 광목천왕을 모셨는데 이분들을 사천왕이라 합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다시 돌계단을 오릅니다. 보기에도 건물은 근래에 새로 지은 전각입니다. 왼쪽 건물은 스님들의 요사채와 강원인 설선당 건물이며 오른쪽은 2층 누 형태인 보제루입니다. 두 건물 사이로 오르면 대웅전 앞마당입니다.

 




먼저 왼쪽 설선당을 보겠습니다. 앞면 9칸에 옆면이 6칸인데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아마 김룡사에서 가장 큰 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재로 타기 전에는 300명이 동시에 들어가서 큰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합니다. 1955년 성철스님은 팔공산의 파계사 성전암에다 철조망을 치고 한 번도 암자 밖으로 나오지 않는 ‘동구불출’의 수행을 10년간 하셨습니다. 1965년에 스님은 성전암 문을 저음 나서면서 김룡사의 강원인 이곳에서 가장 먼저 법문을 행했던 곳입니다.

 


보제루는 입구에서 보면 2층 형태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마당 높이와 맞춘 단층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보제루와 운달산 김룡사의 편액이 걸렸으며 설선당 등 많은 편액이 서예가 권창륜씨 글씨입니다.





마당 좌우에는 윗면이 넓고 편편한 돌기둥이 두 개 있으며 이를 노주석이라 합니다. 밤에 행사가 있으면 이곳에다 불을 피워 주위를 밝혔습니다. 노주석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일본풍의 느낌이 많은 데 아니나 다를까 노주석의 뭉갠 글씨는 일본 연호인 소화 15년을 뜻하며 또 다른 노주석에는 희사한 분 이름인 득민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김룡사의 대표 전각인 대웅전을 보겠습니다. 이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외 3출목, 내 4출목에 상부 가구는 5량 가입니다. 김룡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은 1624년 인조 2년에 중창했지만, 다시 1643년 불탔다가 1649년에 새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인 1997년 김룡사 대화재 때에 소실을 면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건물입니다.
















































이외에도 김룡사는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보물 제11-2 문경김룡사동종과 보물 제1640호 문경김룡사영산회괘불도 등 전각과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있습니다. 운달산 산행과 함께 짧은 시간에 훑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으로 문경 김룡사 구경을 했습니다. 특히 문경 김룡사에서 유명한 약수도 빠트리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운달산의 산세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며 그중에서도 김룡사는 소의 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꼭 집어 말하면 김룡사 명부전 자리가 핵심인 진짜 소의 눈으로 명부전 마당에 있는 약수터는 소의 눈물이며 항상 우윳빛을 띠는 명수라고 합니다. 운달산 김룡사 여행 시에 저처럼 빠트리지 말고 꼭 마시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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