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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월란정사. 천원 지폐 뒷면 그림 실제 모델지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월란정사 여행.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에는 월란정사가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 1546년 하계의 동암 뒤편인 양진암에 거처하면서 이곳 월란암을 자주 찾아 공부하고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닦았던 곳입니다. 또한, 농암 이현보 선생, 금계 황준량, 매암 이숙량 등과 함께 요성대(월란대)에 올라 시문을 나누고 꽃놀이를 즐겼던 곳으로 그만큼 주위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안동 도산면 월란정사 주소: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

(무허가는 아닌것 같은데 건물에 새도로주소가 보이지 않습니다.)


☞2017/06/15 - (안동여행)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2017/04/07 - (안동여행)안동 하회마을 여행. 풍산류씨 집성촌인 서애류성룡의 하회마을 여행

2017/04/01 - (안동여행)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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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8 - (안동여행)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하회마을 양진당을 만나다.



퇴계 선생은 많은 제자 중에서 만취당 김사원선생께 이 아름다운 정자 터를 물려주었다 합니다. 만취당 김사원은 22세 때에 퇴계의 제자가 되었으며 간재 이덕홍과 함께 10여 년간 동문수학했던 곳으로 1860년 월란암 옛터에다 사촌 문중의 만취당 후손들이 선조의 학덕을 기리며 지은 정자입니다.




월란정사는 1909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현재는 김사원의 안동김씨 사촌 문중 소유지만 퇴계의 진성이씨 후손들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합니다. 월란정사 가는 길은 내살미 마을에서 삭실로 가는 산길을 따라 오릅니다,

 


야자 카펫을 깔아 신발에 흙 하나 묻지 않을 정도로 잘 정리되었지만, 막상 월란정사를 찾았을 때는 허리까지 자란 잡초에다 고가의 관리가 부실한지 여러 곳이 허물어져 퇴계선생과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소문을 듣고 찾은 월란정사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주 무거웠습니다.








퇴계선생의 월란대시

月瀾臺(월란대)     

高山有紀堂(고산유기당) 높은 산에는 모서리도 있고 펀펀한 곳도 있는데

勝處皆臨水(승처개임수) 경치도 좋은 곳은 모두 강가에 있네.

古庵自寂寞(고암자적막) 오래된 암자 저절로 적막하니

可矣幽棲子(가의유서자) 그윽하게 사는 이에게 있을 수 있네.

長空雲乍捲(장공운작권) 넓은 하늘에 구름이 별안간 걷히니

碧潭風欲起(벽담풍욕기) 짙푸른 소沼에 바람 일 것 같네.

願從弄月人(원종농월인) 바라노니 달을 즐기는 사람을 쫓아서

契此觀瀾旨(계차관난지) 이 물결 이는 것을 관찰하는 취지에 부합하고자 하네.”

오묘한 한시 풀이를 할 수 없어 카페 '도산서원박약재(http://cafe.daum.net/dosanseowon)' 이동구님의 퇴계선생 월란대 시판 해석을 옮겨왔습니다.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는 월란정사가 있는 월란대에서 본 모습이라고 합니다. 겸재는 퇴계 선생을 추모하여 세 차례나 이곳을 찾아와 '계상정거도'를 완성했으며 대한민국 천 원권 지폐 뒷면에 나오는 그림입니다.






이곳을 방문 시에는 반드시 천 원권 지폐를 지참해서 서로 비교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월란정사 앞 천길 단애인 월란대에서 천 원권 지폐를 들고 맞추어 봤는데 지폐 속의 모습과는 조금은 달라 보였습니다. 아직 그림 보는 눈이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월란정사는 도산서원에서 5리 거리에 있습니다. 동향에 낙동강을 보며 앉은 품새와 정자를 두른 왕모산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퇴계 선생의 도산 서당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월란정사는 경사진 산을 깎아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다 막돌로 된 초석을 놓고 전면의 네 기둥은 두리기둥을 나머지는 사모 기둥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며 가운데 1칸은 마루를 넣고 좌우 양쪽은 1칸의 온돌방을 각각 꾸몄으며 전면에 반 칸의 툇마루를 길게 달아내었습니다.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http://cafe.daum.net/jangdalsoo/)’에서 낙민님의 월란정사의 이만각 중건기 해석을 참고하면 동쪽 방은 은구재(隱求齋) 가운데 마루는 월영헌(月映軒)이라하고 서쪽 방은 관선재(觀善齋)라하였습니다.



은구재와 관선재는 퇴계 선생이 써 준 주자의 무이잡영에서 따왔으며 마루의 월영은 퇴계선생이 서림원에 화답해 쓴 시인 “산 위의 달이 외로운 이불 비추는 것을 스스로 가련하게 여기네”에서 따왔다 합니다. 편액 또한 “달빛이 여울에 아름답게 비춘다”는 뜻에서 월란정사(月瀾精舍)라 하였습니다. 실제 이곳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면 여울 속에 들어간 또 하나의 달이 월란정사를 아름답게 비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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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기장여행)기장향교. 선현들의 가르침과 옛스러움이 묻어나는 기장향교 둘러보기

지방마다 꼭 빠지지 않는 지명이 있다. 그것은 교촌이나 교리, 교동으로 불리는 마을이름으로 그 마을에 향교가 들어서 있었기에 자동적으로 마을이름도 교동으로 불리워져 내려 오기 때문이다.
여기 기장군의 읍내에도 향교가 있다 그곳의 지명은 물론 교동이다.
교동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좌측 흙시루 안내판이나 교리초등학교 왼쪽 담장을 끼고 따라가면 된다.
기장향교는 ‘흙시루’ 옆에 위치를 하고 있어 누구나 찾기가 쉽고 멀리서도 눈에 뛴다.

 


 





위엄과 장대함이 느껴지는 옛 교육기관으로 먼저 향교 앞에 다달으면 돌계단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
그리고 외삼문인 솟을대문에는 마음을 씻는 다는 세심문을 통과해야 한다.
언제나 이문을 지날때는 마음을 깨끗하게 씻고 단정한 마음가짐으로 학문에 임하고 제자는 스승에게 제자로서 학생의 도리를 다하고 스승은 참스승의 마음가짐을 다지는 문인 세심문을 요즘 교육기관인 학교 정문에다 세웠서면 한다.
그러면 요즘 전국을 도가니로 몰아 넣고 있는 인화학교의 ‘도가니’같은 스승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

 



기장향교는 1617년 광해군 9년에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철종6년인 1855년 새로 중수를 거치면서 ‘성묘중수기’를 남겼다하는데 지금 남아 있는 건물도 대부분 이때 조성되었다한다.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39호.

 




 


모든 항교의 배치도가 그러하듯 기장학교도 전학후묘의 기법을 따르고 있다. 일직선으로 배치되는 대성전은 옛 선현들의 위폐를 받들어 모시며 그 아래 유생들의 강학장소인 명륜당을 배치하였다.
명륜당 좌우로 유생들의 숙소인 동,서재를 두어 여타 향교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밀양향교, 동래향교등 모든 향교의 건물을 보면 외삼문의 존재가 없으며 누각을 대문과 같은 기능을 두었는데 기장향교는 세심문을 두었다. 그 세심문 뒤로는 풍화루로 정면3칸 측면2칸의 중층으로 지어졌고 익공양식으로 겹처마의 형태이며 팔작지붕의 조선후기 양식을 따르고 있다.
외관의 장식 또한 네 귀퉁이에 화려한 기법으로 황룡과 청룡을 조각하여 물을 다스리는 용이 이곳을 화재로 부터 보호하도록 하였다.
풍화루의 내부 또한 좌우로 용을 넣었고 연꽃의 모습이 누각 천정에 표현되어 있어 예사롭지 않은 건물이다. 유생들의 강학장소인 명륜당도 경사진 절개지를 적절히 이용하여 대성전과 함께 서로 계단을 만들어 위계 질서를 나타내었고 선현들의 위폐를 봉안한 대성전은 좌우로 동서무가 없으며 정면3칸 측면3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졌다,
다른 건물과는 특이한 점은 정면의 기둥중간부분까지 초석이 올라와 있고 양측벽에도 잡석을 쌓아 올려 방화벽의 역할과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장향교 교통편
대중교통편은 요즘 도시철도 4호선이 생겨 기장으로 가기가 아주 편리해 졌다. 4호선 종점인 안평역에 내려 하다. 시내버스 183번 좌천행을 타고 교동에 하차를 하면 된다.

승용차 이용시에는부산시청앞에서 출발하면 왼쪽으로 꺽어 동래방면인 연산교차로 방향으로 4.8km 내려가면
연산교차로와 만나고 충렬사 방향으로 직진한다. 명장교차로-금사교차로에서 반송로 반송 또는 기장방면 우측도로로 12.2km 이동한다. -금사램프교차로를 지나  석대사거리를 통과하면 해운대 반송동과 만나고 도시철도 안평역을 지나  14번 국도를 따라 기장휴계소 고개를 넘어면 기장읍, 내리막도로를 따라가다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중앙사거리 직진후 만나는 사거리에서 차성로 418번길인 원조청진동해장국집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이길을 따라 직진하면 교리초등학교 사거리길에서 직진 교리초교 왼쪽 담장을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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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향교

1972년 6월26일
부산유형문화재제6호지정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 235번지 명륜초등학교옆에 위치

동래향교인 정면의 2층누각으로 반화루이다. 그 뜻이“성인을 따라 덕을 쌓고 임금을 받들어 공을 세우기를 원한다”는 교육이념을 나타낸다.


 



학생들이 수업을 하던 곳으로 명륜당이라 한다.

대성전으로 성현들을 모셔 놓은 곳이다. 

동래향교는 조선태조1년 때인 1392년에 신설된 교육기관으로 현재 동래읍성 밖의 동래고등학교 자리에 위치하였다 한다. 그후 현재의 위치에는 순조12년인 1812년에 동래부사 홍성만에 의해 지금의 명륜동 명륜초등학교 옆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향교의 기능은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국립교육기관이었다. 지금의 중등교육기관에 해당을 한다. 동래향교는 교육을 담당하는 명륜당과 성현을 모신 대성전을 나누는데 그사이에 내삼문을 두고 있다. 그리고 명륜당과 일치하지 않고 명륜당 우측으로 비껴나 않게 대성전이 위치하고 있는 점도 다른 향교와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정문인 반화루가 있는 2층 누각은 특별한 행사 이외에 현재는 밑으로 출입을 할 수 없으며 좌측 관리사무소 옆으로 쪽문이 열려 있다. 쪽문으로 들어서면 좌측 반화루와 서로 마주보게 앉은 명륜당이 자릴 잡고 좌측으로 서재, 우측은 동재로 3동의 건물이 있다. 명륜당은 요즘 말하는 수업하는 교실이라면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이 기거하는 기숙사인 것이다. 그리고 반화루 옆에는 많은 빗돌을 볼 수 있는데 동래부사로 부임한 관리들의 빗돌로 동래향교에서 부사들의 공적비를 세운 것이라 하였다. 이 공적비를 흥학비로 부른다.

명륜당과 대성전은 정면5칸이고 측면이2칸인 겹치마 맞배지붕으로 건축되었고 그 앞 부속건물인 동재와 서재는 정면3칸과 측면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양식으로 지어졌다. 동래향교의 중심건물인 명륜당과 마주하고 있는 반화루는 그 뜻에 걸맞게 동래향교의 교육이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성인을 따라 덕을 쌓고 임금을 받들어 공을 세우기를 원한다”는 2층 누각 반화루는 정면3칸 측면2칸이며 주심포양식의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려 중후한 맛을 내게하였다. 대성전 아래 동무와 서무는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동재와 서재와 비슷하지만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명륜당 좌측에는 수령220년 된 은행나무가 지금 노란 물을 들이고 있고 보호수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동래향교의 학사관리를 위해 학전7결이 지급되었고 종6품의 교수1명과 70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았다 한다.

필자가 동래향교를 찾아가기 위해 자신을 하고 찾아갔는데 동래향교를 찾을 수가 없었다. 30년전 고등학교를 다닐때 그 훤하던 길들이 지금은 샛길이 되어 있고 많은 도로가 새로 생겨 30년 전의 기억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우성베스토피아 입구의 전봇대에서 안내판을 찾았는데 그 안내판을 보고 찾을 수가 없어 부근의 여중생2명에게 동래향교를 물어보니 그런곳 모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00m 거리의 문화재도 모른다고 하니 말이다. 아님 요즘 어린이 납치범들이 많아 얼른 짜리를 피할여고 그런지... 내 기억으로도 명륜초등학교 옆에 있다고 기억을 하는데 그 예들도 그 학교를 졸업을 하였을 껀데 모른다고 하니 뭔가 교육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동래향교와 복천동고분군, 박물관을 한 이정표에 삐딱하게 붙이고 비슷한 방향으로 화살표를 그어 놓아서 그것을 보고는 복천동고분군과 박물관은 찾아갈 수 있는데 동래향교는 찾을 수가 없었다. 동래구청에 부탁하고 싶은 게 안내판을 나누어 동래향교의 안내판은 그 방향에 제대로 붙여주었으면 한다.

반화루 앞 입구에 넓은 주차장을 두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명륜당 좌측에 서재 우측에 동재로 학생들의 기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동재와 서재로 정면3칸과 측면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의로 되어 있다

흥학비로 동래부의 관리로 부임한 부사들의 공적비를 적은 빗돌이다.

명륜당에서 마주 바라본 반화루로 2층 누각을 이루고 있다.




명륜당 내부 모습입니다.

명륜당 현판과 내부 천장의 모습입니다.




대성전으로 성현들을 모시고 재사를 지내던 곳

동무와 서무로 성현들의 위폐를 모신 곳이다.


명륜당과 대성전을 가르는 내삼문

안내판의 그림대로라면 같은 골목으로 이해가 되지만 실제 찾아가면 고분군과 읍성지는 같은 길이지만 동래향교는 엉뚱한 방향의 길입니다. 같은 도로가 아닌 길입니다. 그리고 작고 너무 높이 붙여 놓아 쉽게 안내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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