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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대구 불로동고분군. 엄청난 규모인 고분군 여행 대구 불로동고분군. 


올해 초 대구여행을 하면서 갔다 왔던 불로동 고분군을 이제야 포스트 합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우리나라의 많은 고분군 중에서 김해 대동면 예안리 고분군과 함께 1978년 6월 고분군으로서는 가장 먼저인 사적 제262호에 지정됐습니다. 

그만큼 규모 면에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대구 불로동고분군 주소: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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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의 고분 개수가 214기라 하니 당시 얼마나 큰 토착지배세력이 이곳 불로동을 근거지로 활동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팔공산의 남쪽 능선이 낮게 흘러내리며 금호강의 북쪽 충적 평야와 만나는 구릉지대에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역시 오래전인 삼국시대 이전의 주거지와 오늘날 주거지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분군이 발견된 주위로 현재에도 많은 집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서 주거지의 기본요소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주택가의 골목을 400m쯤 거슬러 올라가면 야산의 구릉지에 자리했습니다. 

그 넓이만 해도 약 312,000㎡인데 이는 94,000평이 넘는 대규모로 불로동과 봉무동, 도동 등에 분포합니다.





저도 전국의 여러 고분군을 쫓아다녔지만 아마 제가 본 고분군에서는 가장 대규모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규모 주택가에 있어서 그런지 정말 많은 시민이 휴식을 즐기려고 찾고 있었습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구릉지라 걷기에 딱 좋아 보였습니다.







경주의 고분군은 모두 멀찍이 떨어져 보게끔 구분해 놓았지만 불로동 고분군은 고분과 고분 사이로 길이 나 있어 가까이서 고분군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의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 처음으로 2기를 발굴 조사하면서 ‘해안면 고분’이라 불렸습니다.







1963년 경북대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 2기의 고분을 추가 조사하면서 해안면 고분을 포함해서 대구 불로동고분군이라 명명했습니다. 

해안면 고분은 벽면을 축조하면서 산 돌을 이용했으며 바닥은 생토를 깔고 그 위에 다시 모래를 덮고 시신을 올려 둔 듯 보인다합니다.

 






부장품에는 금제와 금동제 장신구, 철도끼, 철제꺽쇠, 무늬가 새겨진 토기 등 다량이 나왔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5세기 전후에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봉분의 크기를 보면 지름은 15~20m, 높이는 4m 내외인데 대형고분은 지름이 22m, 높이 6m의 원형 봉토분으로 당시 이 지역 토착세력의 지배층의 묘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내부를 보면 4기의 수혈식 석곽을 차례로 덧대어 만들었으며 대부분 지면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냇돌이나 깬돌로 4벽을 쌓아 넓고 납딱한 돌로 뚜껑을 덮은 직사각형의 수혈식석곽묘(구덩식 돌방무덤)입니다. 

이들 석곽은 시신과 부장품을 구분하는 칸막이를 가운데에다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위에다 자갈을 올리고 흙을 덮었습니다. 

1938년 18호와 22호 고분을 최초 발굴하였고 2007년 91호와 93호 고분 발굴조사를 마지막으로 했습니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탐방로 길이는 약 1.5k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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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맛집/남구맛집)앞산맛집, 앞산카페거리 일본가정식 도키도키의 독특한 매력에 빠지다. 대구 도키도키


‘도끼도끼’ 참 음식점 이름 한 번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일본 가정식 전문점이라지만 도끼도끼가 머꼬 하며 궁금했던 한사람입니다.

다시 확인하니 ‘도끼도끼’가 아니라 ‘도키도키’였습니다.

일본말로 ‘두근두근’ 이라 하던가





앞산 카페거리 맛집 도키도키 주소: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509-2(대명남로 188)

앞산 카페거리 맛집 도키도키 전화:053-215-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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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쪽에 일이 있어 찾았다가 마침 저녁 시간도 다되어 저녁을 먹고 가자는 일행.

“이곳에 대구에서 유명한 맛집 거리가 있다는데 그곳에 한번 가서 저녁 먹읍시다” 하기에 

“아무 데나 가서 먹자.”



일본 가정식이라니까 된장(미소)이 생각났는데 어떤 음식인가 싶어 먼저 마음에 끌렸습니다. 

그래 한번 가보자며 찾아갔던 대구 앞산 아래 카페 거리였습니다. 

그리고 보면 보수색채가 강한 도시라도 참 이런 것은 아주발 빠른 것 같았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도키도키를 찍었더니 일사천리로 안내되어 길 찾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키도키 매장 앞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이 따로 없어 아주 난감하였습니다. 

도로에 주차할 수 없고 해서 도키도키로 전화를 때렸습니다. 

돌아온 말이 주위 골목으로 들어가서 아무 때나 보고 주차하면 된다였습니다. 

그래서 골목으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도키도키에 찾아갔습니다. 



음식점 입구에서부터 색상과 분위기가 일본식의 아기자기한 면이 돋보였습니다. 

그런데 10대~20대가 가는 핫한 곳 아니가하며 조금은 어색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래 아직 나도 청춘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 앉아있는 손님을 보고 그리 젊은 층이 아닌 것 같아 

속으로 야 먹어도 되겠다며 남자 둘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분위기가 카페 같은 그런 좌석 배열이었습니다. 

분위 상으로 젊은 친구라든지 연인, 여성분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일단 이런 곳도 한 번씩 들어와 봐야 한다며 마음을 굳게 먹고 메뉴판을 기다렸습니다. 

메뉴판을 보고 이것저것 보다가 그중에서 가장 비싸다는 도키도키 스페샬(16,000원)을 둘 다 주문했습니다.



주위에 두 팀이 있었는데 모두 작은 숯을 놓고 구워 먹고 있었습니다.

“야! 야! 이 집에 저게 전문인갑다”

“이거 주문 잘못한 거 아이가”

“아이고 마, 형님 꿉기도 귀찮고 누가 꿉습니까”

“스페샬도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묵읍시다”

“그래 그라자. 다 똑 같겠제”하는 대화를 나누면서

“야! 그래도 저게 더 맛있어 안 보이나”하며 입맛을 쩍~ 다셨습니다.



물은 셀프였습니다. 

큰 유리 글라스에 담겨 있었는데 레몬이 들어갔는지 생수에 레몬 느낌이 나섭니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도키도키 스페샬이 나왔습니다. 

그때야 주문을 잘못했구나 싶었습니다. 

스페샬을 주문했다면 한 개는 다른 요리를 주문해서 같이 맛을 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주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각자 다른 요리를 주문하면 얼마나 귀찮게 생각할까 생각해서 

똑같은 요리를 주문한 중년의 아저씨들....



스페샬 요리를 먼저 눈으로 스캔했습니다. 

돈가스, 감자튀김과 새우튀김 1개 그리고 장어가 나왔는데 아마 도키도끼 모듬요리 같았습니다. 

그런데 장어가 몇 점 보였지만 너무 굵기가 작아서 참 아주 아쉬웠습니다. 

역시 음식은 단일품목으로 주문을 해야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겠다 싶었습니다.



음식에는 문외한이지만 일단 맛을 한번 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잘게 갈았던 깨소금을 돈가스 소스에 넣고 섞었습니다. 

그래도 대표 요리인 만큼 돈가스를 먼저 맛봤습니다. 

튀김 음식은 바싹한 게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분위기도 느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러 간 게 아니고

 저녁을 먹고 빨리 부산으로 돌아가야 해서 

급하게 이거 저것 먹다 보니 금방 그릇을 비웠습니다. 

아마 숯불을 앞에 놓고 구워 먹었다면 벌써 숨넘어갔을 것 같았습니다.

 


도키도키는 우리처럼 저녁을 먹기 위한 곳보다는 여러 음식을 놓고 천천히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며 분위기도 느껴보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오직 우리는 후두닥 밥만 먹고 나왔던 도키도키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온다면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이야기도 나누면서 도키도키의 음식 맛을 골고루 맛봐야겠습니다. 

도끼도끼가 아니고 도키도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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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육신사의 도곡재. 하빈면 묘리 한옥전통마을 도곡재를 여행하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는 박팽년과 사육신을 모신 사당인 육신사가 있습니다. 또한, 보물 제55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은 박팽년의 손자인 일산이 창건하였으며 묘골은 순천박씨 한옥마을 집성촌입니다.






◆박팽년과 사육신을 모신 사당 육신사가 보고 싶다면

☞2016/03/29 - (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박팽년 등 사육신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처참한 죽임을 당합니다. 박팽년의 후손은 이곳에 사당을 지어 매년 향사를 지내고 세거를 이루었습니다. 현재에도 순천박씨 종택 등 그 외 많은 전각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한옥 건물 중에서 도곡재도 있습니다.

 



도곡재는 육신사 입구 오른쪽에 있습니다. 역시나 박팽년의 후손으로 조선시대 정조2년(1778년)에 대사성 서정공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었던 건물입니다. 그리고 1800년대에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되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박종우는 인조 때의 문신으로 문장과 절의, 덕행에 능하여 동방의 일인자로 칭송받았던 인물입니다. 낙재 서사원을 사사하였고 병자호란에 참여하여 전사하였습니다. 도곡재 건물은 처음에는 앞면 4칸에 옆면 1칸으로 지어졌는데 뒤에 1칸의 퇴칸을 넣고 대청마루도 크게 넓혀 누각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남향을 보며 도곡재가 자리하고 그 오른쪽에 달린 중문을 들어서면 ‘ㄱ’ 형태의 안채와 고방채가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어 출입은 할 수 없습니다.




건물의 형태는 자연석 위에다 네모기둥을 세운 납도리 홑처마 팔작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일반적인 양반가옥을 잘 보여주는 사랑채 건물입니다. 1995년 5월에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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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수성구여행)국립대구박물관. 대구여행의 시작과 끝은 역시나 진귀한 문화재가 가득한 국립대구박물관입니다. 국립대구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일원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연구하며 전시와 교육 등 문화시설로서 1994년 12월 7일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규모면에서나 전시된 문화재를 보고 단연 으뜸이라 구경할 게 정말 많았습니다.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와 철기시대, 삼국시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왔던 그 시대의 문화상을 대구박물관은 일목요연하고 한눈에 알기 쉽게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실을 들어서면 만나는 고대 문화실과 중세 문화실은 우리 선조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며 남겼던 구석기시대 문화와 대구경북 지방에서 찬란하게 빛났던 삼국시대의 신라와 가야시대 문화와 역사를 한자리에 모아놓아 쉽게 파악하게끔 하였습니다.


 

신라하면 당연히 융성했던 불교문화에 많은 눈길이 갑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로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가장 관심이 많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역시나 국립대구박물관의 신라불교문화유산에서 작은 금불상은 나의 관심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기대 또한, 저버리지 않고 섬세하게 조각된 불상을 세점이나 국보로 지정하여 전시 관리 하고 있었습니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들어와서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유교 문화가 조선시대에 어떤 형태로 영향을 끼쳤는지도 알았으며 조선시대 대구·경북을 대표했던 역사속의 인물도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구는 근대에 섬유산업이 성장 발달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에 걸맞게 국립대구박물관에는 따로 ‘섬유 복식실’을 설치하여 천연염료인 오방색으로 만든 전통 우리 옷과 궁중 옷의 아름다움과 역사를 알게끔 전시하고 있습니다. 야외전시실에는 통일신라시대 석탑과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집터, 삼국시대의 토기가마 등 산책을 겸해 둘러보게끔 해놓아 자연 속에서 우리 문화재를 만나 정말 좋았습니다. 그럼 대구박물관 전시실로 들어가겠습니다.


사진에서 윗부분 칠초철검


그전에 우리일행의 리더는 문화해설사를 미리 신청해 놓아 아주 유용하게 박물관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설사님의 설명과 함께 곁들였더니 우리 문화재가 더욱더 귀에 쏙쏙 들어오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특히 대구박물관에서 눈여겨볼게 아무래도 지정문화재를 위주로 보게 되는데 이곳에는 국보가 3점 있습니다. 불상인 국보 제182호, 제183호, 제184호와 보물 제 325호 ‘송림사오층전탑 사리갖춤’과 보물 제202호 ‘사자’ 당간지주에 사용된 '용머리'는 보물 제1410호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야외전시실에는 보물 제357호 '정도사 터 오층석탑' 등이 있습니다.



장락 명동기. 경산시 임당동에서 출토됐는데 원삼국시대 명동기입니다. 중국한나라의 초엽문경을 가공하여 만든 동기로 '락(樂)'자는 판독 할 수 있으나 '장(長)'자는 상부가 잘려 다른 글자처럼 보인다합니다. 한나라 때 유행했던 길상구 '장락미앙(長樂未央)'의 일부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금동관

의성 탑리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금동관은 새 깃털모양의 장식을 달았는데 이는 4세기 말부터 전해온 고구려 의장을 본뜬 것이라합니다.


금동관

대구 달성고분군 37호분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금동관은 신라에서 가장 많이 쓰인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을 하였습니다.


 

 

 

금동제관장식

 

금귀걸이

 

 

 

오리모양토기

 

배모양토기

 

 

 

 

 

 

 

 

 

 

 

 

 

반가사유상

 

 

관음보살, 국보 제184호이며 신라 7세기 작품으로 구미 봉한동에서 나왔습니다.

부처, 국보 제182호이며 통일신라 8세기 작품이며 구미 봉한동에서 나왔습니다.

 

 

관음보살, 국보 제183호. 대구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문화재는 관음보살상으로 금을 입혔는데 연꽃대좌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져 우리문화를 알리는 전시회에 전시가 많아 해외출장이 아주 잦다합니다.


 

 


용머리인데요.  사찰 입구에 보면 사찰의 소속을 표시하거나 법회 때 깃발을 달려고 높은 장대를 새우는데 이를 당간지주라 합니다. 용머리는 당간지주의 보당 끝에다 장식하였으며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용머리는 딱 두점뿐이라 합니다. 용이 입에 물고 있는 여의주 안쪽에 줄을 거는 도르래가 있어 깃발을 쉽게 오르내리게 했습니다. 영주풍기에서 출토되었으며 통인신라시대 작품으로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의 상징입니다.


 

 

사리함인데요. 송림사오층전탑에서 나와 '송림사오층전탑 사리갖춤'(보물 제325호)이라 합니다. 특이한점은 사리함 가운데 초록색을 띠는 유리는 페르시아에서 수입했으며 그 안쪽 유곽에 사리를 보관했다는 설명입니다.



통일 신라 8세기에서 고려초기로 보며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에서 나온 사리함입니다. 1959년 송림사 오층전탑 해체 복원과정에서 2층 탑돌의 거북모양 석실에서 사리기와가 나왔고 5층 옥개석 윗면에서는 고려상감청자합이 발견되었습니다. 전각모양의 사리기 안에 녹색 유리로 만든 사리병과 잔을 안치하였습니다. 사리함은 금판을 오려 만들어 신라 금세공기술과 서역인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유리 제작 기술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더욱 아름다운 빛을 발합니다.


 

 

 

 

 


한훤당 김굉필선생 신도비명 탑본. 대구광역시 달성군 도동서원에 있는 비석 탁본으로 한훤당 김굉필의 생애와 관직, 후손, 일화 등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사우당 김대진이 후손과 사림의 협력을 받아 1626년 세운 신도비입니다. 김종직의 문하로서 1498년 무오사화로 연루되어 평안도 회천의 유배지에 정암조광조에게 학문을 전수하였으며 1610년인 광해군 2년에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동방5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었습니다.

 


사자, 사자는 불상의 대좌나 석탑, 석등, 승탑 등 불법을 지키는 수호상으로 불교에서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대구박물관의 사자상은 의성 관덕동의 보물 제188호 삼층석탑 기단의 네 모서리를 지키던 사자 석상입니다.


 

도동서원

 


섬유복식실, 오방색은 음양오행을 다섯색상으로 표현했는데 우리 고유 전통 염색의 기본색입니다. 이 색상을 이용하여 왕과 왕비의 대례복, 혼인과 폐백, 과거급제와 암행어사 앵무복, 조선시대 아기 돐옷 등 화려하면서 아름다운 우리 옷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왕이 입었던 대례복. 중국의 황제는 칠족도를 수놓지만 임금은 오족도를 흉배에 새겼는데 모양은 하늘을 뜻하는 둥근 형태이며 신하는 땅을 뜻하여 4각 모양의 흉배로 되어 있습니다

 

 

적의본인데 꿩문양과 오얏꽃을 수놓았습니다.

 


오른쪽은 조선시대 19세기 흥선대원군의 기린무늬 흉배입니다. 역시 땅인 신하를 뜻하는 사각 흉배입니다. 


활옷

 

묘족의 복식이 아주 화려합니다.

 

 

 

연꽃넝쿨무늬장옷

 

현풍곽씨 편지로 중요민속자료 제229호입니다. 대구시 달성군 진주하씨 묘에서 나왔는데 홍의장군 곽재우장군의 종조카인 곽주의 두 번째 부인 묘에서 나온 편지입니다. 1989년 4월 문중의 진주하씨 묘 이장과정에서 저고리와 장옷 등 의복 81점과 곽주가 부인에게 쓴 한글편지 172점이 발견되었습니다. 한글편지는 1602년부터 1646년까지 44년에 걸쳐 쓰였으며 당시 옷과 염색. 음식과 질병 치료 등 조선시대 양반가의 생활 전반의 내용이 담겨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자수봉황무늬 약낭

 

야외 전시실

 

 

 

 

 

 

태실

 정도사 터 5층석탑

정도사 터 5층석탑은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정도사터에 남아 있던 석탑으로 1924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1994년 국립대구박물관에 다시 옮겨왔습니다. 신라양식을 이어받은 고려 초기의 5층석탑인데 지금은 5층 지붕돌은 없어지고 몸돌위에 노반만 남아 있습니다. 정도사 터 5층석탑의 특이한 점은 기단 한면에다 건립년도와 탑을 세우게 된 연유를 명문으로 남겼는데 그 내용을 보면 “고려 현종 22년인 태평 11년(1031)에 국가의 안녕을 위해 건립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현재 명문을 보존하려고 2001년 면석을 새로 교체하였고 원래 면석은 별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국립대구박물관 영업정보

★국립대구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주소:우)42111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

★문의전화:053-768-6051~2

국립대구박물관 관람시간

평일:9시~18시, 

·일·공휴일:9시~19시 

토요야간개장:9시~21시(4월~10월 매주 토요일)

문화가 있는날:9시~21시(매월마지막주 수요일)

국립대구박물관 휴관일

국립대구박물관 연중 휴관일은 1월1일과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일 때는 그 다음날 휴관

국립대구박물관 관람료:무료(상설전와 기획전시)단 유료 특별기획 전시는 제외

국립대구박물관 문화해설사 안내

오전 10시, 11시. 오후 1시, 2시, 3시, 4시

국립대구박물관 홈페이지:http://daegu.museum.go.kr/

국립대구박물관 교통편과 주차장


국립대구박물관 홈피 캡쳐


2016/03/29 - (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2016/03/24 - (대구여행/달성여행) 대구 용문산~닭지만당 산행. 비슬산군립공원 용문산~닭지만당 산행.


2016/03/23 -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용연사 금강계단. 통도사 금강계단의 진신사리가 비슬산 용연사 석조계단에 모시게된 유래가 궁금하다면. 용연사 금강계단


2016/03/21 -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용연사. 용연사 석조계단과 극락전, 천년고찰 대구 달성 용연사를 여행하다.


2016/03/18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 사문진나루터. 우리나라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왔던 사문진나루터에 봄여행을 떠나다. 화원 사문진나루


2016/03/11 - (대구여행/달성여행)최정산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의 승병훈련소였던 천년고찰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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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골에는 전통한옥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먼저 육신사를 만났습니다. 육신사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며 단종의 왕위 복위를 꾀하다 처참하게 숨진 사육신을 모신 사당입니다. 사육신에는 박팽년·성삼문·이 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를 말합니다. 육신사를 알려면 먼저 단종의 폐위와 사약을 받았던 과정을 먼저 알아야합니다.






 

13세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조선 제6대 왕입니다. 그의 부왕인 문종은 즉위와 함께 2년만인 1452년 5월에 승하하면서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에게, 집현전학사 출신인 박팽년·성삼문·신숙주·하위지·이개·유성원 등에게 세종은 장손인 어린 단종을 특별히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1453년 10월이 되자 숙부인 수양대군은 정권찬탈을 도모하며 권람·한명회 등이 세운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기는데 당시 좌의정이던 김종서를 그의 집에서 주살하고 대신들을 모두 대궐로 불러들여 영의정 황보인, 병조판서 조극관, 이조판서 민신, 우찬성 이양 등을 죽였습니다. 이를 계유년에 일어 났다하여 계유정란이라 합니다.


 

그들은 숙부인 안평대군을 옹위해 종사를 위태롭게 하고 국정을 농단했다는 죄목을 붙여 안평대군은 강화도에 위리안치시켰다가 곧 사약을 내려 죽였습니다. 단종은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정권은 수양대군에게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또한, 단종의 측근이던 금성대군 이하 여러 종친과 신하 등을 죄인으로 몰아 유배를 보내고 임금의 측근은 모두 죽거나 쫓겨나자 단종은 더 견디지 못하고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이 되어 수강궁에 거처하였습니다.


 

그러나 1456년(세조2년) 단종 복위 사건이 일어나는데 주동자는 집현전 학사 출신과 무신인 성승과 유응부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초대하여 연화를 베푸는 날 세조를 죽이기로 모의하지만 밀고자 김질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상왕 복위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거사로 단종의 운신은 더욱 좁아졌으며 목숨까지 위태로웠고 1년 뒤인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유배지에서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운동이 발각되자 세조는 노산군을 다시 서인으로 강등하고 그해 10월에 사약을 내려 방년 15세에 단종은 한 많은 생을 마감합니다.


 

이때 죽음을 무릎서고 상왕 복위를 도모했던 집현전 학사 출신 박팽년·성삼문·유응부·하위지·이 개·유성원등 6명을 일컬어 사육신이라 부릅니다. 사육신을 보면 박팽년은 옥사하고 유성원과 허조는 집에서 자결하였으며 성삼문, 유응부, 이 개 등은 거사 7일 만에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숙주나물이라 아시는지요, 콩나물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여기에는 집현전 학사였던 신숙주에 의해 숙주나물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신숙주는 세종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극진한 사랑을 받았고 세종과 문종은 집현전학사 출신들에게 특별히 어린 단종을 지켜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나 신숙주는 세종과 문종과의 신의를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수양대군 편에 섰는데 이를 박팽년성삼문의 사육신에 빗대어 변절자라 부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신숙주는 동부승지에 추증되고 공신반열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숙주나물은 금방 쉬어버려 못 먹게 되는데 신숙주를 마음이 숙주나물처럼 잘 변한다하여 신숙주에 빗대어 숙주나물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묘골의 육신사는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사육신을 모신 사당입니다. 처음에는 박팽년만 후손에 의해 배향되었는데 박팽년의 기일에 현손 계창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사당 문 앞에 사육신의 여섯 어른이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난 뒤 박팽년과 다섯 분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제사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처음에는 낙빈사를 지어 제향하다 1691년(숙종17년) 낙빈서원을 세워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866(고종3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서원과 함께 훼철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을 재건하고 다시 사육신인 여섯 분의 위패를 봉안하였습니다.


 

 사육신의 행적을 새긴 육각기념비

 

1974년에는 ‘충효 위인의 유적 정화사업’을 펼치면서 '육신사'라하고 사당을 재건하였으며 숭정사에는 사육신과 박팽년의 부친인 박중림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였지만, 왼쪽 언덕에 충의사를 새로 짓고 문민공 박중림 선생의 위패만 옮겨 봉안하였습니다. 숭정사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웅장하며 아름다워 사육신의 충절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문민공 박중림 선생비

 

 





또한, 1979년 건립된 사육신의 행적을 새긴 육각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1981년에는 외삼문, 삼충각, 숭절당 등을 갖춘 사당이 되었습니다. 육신사를 들어서는 입구 주차장 옆에는 삼충각이 있습니다.



이는 박팽년(1417~1456)이 1755년(영조31년)에 영조에게 충신정려를 받았으며 박팽년과 함께 죽임을 당한 그의 아들 박순과 그의 유복자 박일산은 1831년(순조31년)에 순조에게 정려를 받았습니다. 3대가 정려를 받은 것을 기념하기위해 1832년 경상도관찰사 김양순이 사육신을 모신 숭의사를 참배하고 비석을 세우게 했는데 1835년에 ‘순천박씨삼세정충기실비’가 세웠졌습니다.



육신사

주소: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문의전화:053-583-6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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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용연사. 용연사 석조계단과 극락전, 천년고찰 대구 달성 용연사를 여행하다.


용연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801번지 비슬산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입니다. 용연사의 창건연대는 신라 신덕왕 원년 912년에 운문사를 창건한 보양국사에 의해 창건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세종원년인 1419년에 천일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가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용연사는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3년 선조 36년에 사명대사는 인잠과 탄옥, 경천스님을 불러 용연사 중창을 지시하여 용연사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1728년 영조 4년에 극락전을 위시한 건물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용연사는 현재 여러 중요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용연사 석조계단인 보물 제539호와 극락전에 봉안된 보물 제1813호 아미타여래불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인 극락전,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8호인 용연사 삼층석탑 등이 있습니다. 그 외 천왕문, 안양루, 삼성각과 명부전 등의 전각이 있으며 용연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계곡 건너편에 따로 모셔져 있습니다. 그럼 용연사를 포스트하겠습니다.

 용연사 일주문을 지나면 석조계단과 극락전 갈림길입니다. 먼저 오른쪽 극락교를 건너 용연사 극락전을 먼저 보겠습니다. 극락전은 먼저 사천왕이 지키는 천왕문을 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양루 밑을 지나면 정면에 용연사 극락전입니다. 

 

 

 극락전은 부처님 진신자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제외하면 용연사의 중심건물입니다. 영조4년인 1728년에 중건하였으며 좌우로 영산전과 삼성각을 배열하여 극락전은 한층 더 기품 있는 보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단을 높여 위풍당당한 모습은 천년고찰 용연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단은 화강석을 쌓았으며 앞면3칸과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인(人)자인 다포계 맞배지붕입니다. 그리고 배면기둥과 대량에 시주자의 이름을 새겨 놓았으며 극락전의 내부와 단청은 화려하게 꾸며져 18세기 조선후기 사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연사 극락전

용연사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2014년 1월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의 복장유물에서 나온 발원문에는 1665년에 도우스님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그 당시 대표적인 조각승 도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며 불상에 개금을 한 중수 개금기까지 있어 조선시대 불상개금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용연사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르나 1층의 기단은 줄고 지붕돌의 양식이 바뀐 것을 보면 고려시대 석탑이라 추정합니다. 석탑의 높이는 2.6m이며 기단은 1층에다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고 기단을 받치는 지대석은 최근에 새로운 돌로 보수했습니다.

 

 용연사삼층석탑

 기단과 탑신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고, 지붕돌은 낙수 면이 짧고 추녀가 얇으면서 밑면에 새긴 4단의 받침은 높아 극락전의 전체적인 모습에 비해 작아 보여 잘 어울리지 않는다하겠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전각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한 용연사 석조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왜 부처님의 진시사리를 이곳 용연사에 모시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용연사 영산전

 

 

 

 

 

 

 용연사 삼성각

 용연사 안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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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5 - (대구맛집/달성맛집)비슬산맛집 일월정, 내몸을 살리는 발우공양처럼 일월정의 비슬산발우비빔밥한정식으로 건강도 챙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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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 사문진나루터. 우리나라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왔던 사문진나루터에 봄여행을 떠나다.  


2013년 11월 초순쯤에 화원유원지인 사문진나루터를 찾았습니다. 그때는 사문진나루터 복원 공사를 막 끝낸 터라 어수선하면서 황량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지난 3월1일 대구 달성여행길에 화원유원지로 불렸던 사문진나루터를 가게 되었는데 세월이 2년여 지나서 그런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탐방객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2013년 당시 사문진나루터 포스트 보기:

2013/11/11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한국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온 곳은 어디, 사문진나루터와 화원동산 .




 교각에는 대구시 달성군 마비정 벽화마을의 벽화와 똑 닮은 그림이 여럿 그려져 있었으며 사문진나루터는 그때보다도 훨씬 짜임새가 있어 좋았습니다.

 

 

 사문진나루터는 오래전부터 배를 이용한 물류의 중심지였습니다. 조선 세종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대일무역의 중심지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일본물품 보관창고인 왜물고가 있었습니다. 모든 물산이 이곳에서 모여 내륙으로 공급하다보니 자연적으로 사람이 나루터에 몰려들었습니다.

 

 사문진의 유래를 보면 화원읍 본리리에 인흥사란 큰절이 있었는데 큰절로 가는 관문이라는 뜻으로 사문진(寺門津)이라는 설과 강가에 모래가 많으며 포구를 통해 많은 물산이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라는 뜻으로 사문진(沙門津)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후자인 사문진(沙門津)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문진나루터는 나루터의 기능도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대구시민의 유원지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역사는 1928년도인 일제강점기에 대구부에서 처음으로 유원지를 개발하였으며 1972년에는 대구 향토업체인 금복주에서 화원동산을 개장하여 운영하다가 지금은 대구시에 기증하여 현재는누구나 찾는 대구시민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이곳 사문진나루터는 우리나라에서 피아노가 처음으로 들어왔던 곳입니다. 1900년 3월28일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탐(1874~1908)부부가 피아노를 배에 싣고 낙동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사문진에서 피아노를 내렸습니다.

 피아노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지금의 약령시장의 숙소까지 옮겼는데 그 당시 피아노를 옮기든 인부들은 얄궂은 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피아노를 ‘귀신통’이라 불렀습니다. 요즘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법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처음보고 생판 처음 듣는 소리라 귀신이 내는 소리쯤으로 생각했나봅니다. 이대목에서 웃지 않을수 없습니다. 히히

 지금 사문진나루터에는 피아노 모형을 만들어 귀신통의 역사를 알리고 있으며 또한 일제강점기 때 이규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가 처음 촬영되면서 최근에는 많은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붐비는 나루터였다면 당연히 주모가 있는 주막이 성업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업 중인 사문진 주막에서 대구의 비슬산 막걸리에 부추전과 어묵으로 시원하게 목도 축였습니다. 먹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또한, 나루터에 주막 촌이 있는 것을 보면 그늘을 제공하는 큰 고목이 당연히 있었지 싶은데 이곳 사문진 나루터에도 사문진의 터줏대감인 팽나무가 있습니다. 팽나무 주위로는 과거 ‘나루깡’이란 장이 열렸으며 파, 참외, 수박 등 인근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거래하고 낙동강에 물이 범람 할 때에는 팽나무에다 배를 묶어두기도 했던 고마운 나무입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팽나무는 500여 년 동안 사문진의 역사를 기억하고 온갖 풍상을 견디어 왔는데 4대강 사업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어 자칫했으면 사라질 뻔 했습니다. 다행히 지역민·관의 각고한 노력으로 보존되어 사문진나루터의 산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되었습니다.

 

 소원을 적어 팽나무 주위에 걸어두고 1년 뒤 받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으며 최근에는 오리전기차를 운행하여 아이와 온가족이 함께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한 사문진나루터로 거듭났습니다. 이제 봄이 왔습니다.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화원유원지 사문진나루터에서 옛 추억을 만나보세요.


2016/03/11 - (대구여행/달성여행)최정산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의 승병훈련소였던 천년고찰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여행.


2016/03/07 - (경북·대구여행/청도·대구달성여행)청도읍성, 석빙고, 청도와인터널, 대적사, 남지장사, 녹동서원·한일우호관, 대구국립박물관, 사문진나루터, 육신사·달성태고정·달성도곡재, 달성 하..


2015/10/31 - (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우록리 청산~우미산 가을 산행.


2015/10/21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장군을 모신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여행하다.


2015/02/18 - (대구여행/달성가창여행)대구 주암산~최정산 산행. 올해 처음 눈꽃 산행을 즐긴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최정산 산행.


2014/03/15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대구 근교산 삼필봉~황룡산 산행.천리마의 전설과 함께하는이색산행 마비정 벽화마을.


2014/01/06 - (대구여행/달성여행)포레스트 스파밸리. 화려한 야경이 볼거리인 포레스트 빛의 축제에 깜짝 놀라다.


2013/12/18 - (대구여행/달성여행)팔공산 동화사에서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진행,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지로 될듯.


2013/11/27 -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도동서원의 아름다운 늦가을 모습.


2013/11/23 - (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 허브힐즈. 대구 허브힐즈에서 힐링을 하고 왔어요.


2013/11/17 - (대구여행/달성여행)국립대구과학관. '나도과학자' 국립대구과학관에 가면 누구나 과학자가 된다.


2013/11/16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읍 마비정벽화마을. 6~70년대 우리 어릴적의 모습 마비정벽화마을의 벽화로 만났어요.


2013/11/12 - (대구여행/달성여행/강정고령보)강정고령보 디아크, 물수제비 뜨기에 너무 좋을 것 같은 강정고령보 디아크.


2008/12/15 -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대견사지. 중국 당태종이 세숫대야에서 본 비슬산 대견사지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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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대구여행/청도·대구달성여행)청도읍성, 석빙고, 청도와인터널, 대적사, 남지장사, 녹동서원·한일우호관, 대구국립박물관, 사문진나루터, 육신사·달성태고정·달성도곡재, 달성 하목정여행 당일여행.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화유적답사 모임인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과 경북 청도와 대구 달성 일원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아주 잘 짜인 여행코스로 청도와 달성군의 여러 곳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청도 석빙고와 와인터널, 국립대구박물관과 육신사는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였습니다. 먼저 여행경로를 보면 청도 읍성~!청도석빙고~청도 와인터널~ 대적사~남지장사~녹동서원~국립대구박물관~사문진 나루~육신사~태고정~도곡재~하목정 순으로 여행했는데 우리 전통고가와 문화유적지 그리고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김충선장군,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을 만나는 알찬여행이었습니다. 먼저 청도읍성을 찾았습니다.




청도읍성

부산과 가까워 일찍 도착했던 청도읍성은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동상리, 동천리 일대에 석성과 토성을 혼합하여 쌓았습니다. 처음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청도읍성은 조선 선조 23년인 1590년 청도군수 이은휘에 의해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여 2년만인 1592년 완공하였으며 그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1.88km, 높이 1.7km, 성위에 덧쌓은 낮은 담장인 성가퀴는 600첩이었습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 그리고 읍성과 함께 청도 석빙고를 보았습니다.



 청도석빙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석빙고로 겨울에 얼었던 얼음을 봄·여름·가을에 사용하기위한 저장고로 만들었습니다. 빙고의 크기는 길이 14.75m, 너비 5m 홍예 높이는 4.4m로 화강석을 이용하였습니다. 청도석빙고는 신축당시를 기록한 비석이 석빙고 좌측에 남아 있습니다. 비석의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숙종 39년인 1713년에 축조하는데 3개월이 소요되었으며 소요인력과 물자 등을 알 수 있는 석빙고로 국내에서 축조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청도석빙고는 1963년 1월21일 보물 제3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청도와인터널

이제 청도 남성현 터널을 이용해 만든 청도 와인터널을 찾았습니다. 경상북도청도군 화양읍 송금리에 있는 청도 와인터널은 감와인 체험장입니다. 청도에서 유명한 특산물이 반시와 복숭아인데 청도 반시는 임금님께 진상될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와인터널은 원래 부산~서울을 운행하는 철도인 경부선 선로로서 경북 청도군과 대구를 잇는 옛 남성현 터널입니다.

 1896년 일제에 의해 착공하여 1904년 완공된 옛 남성현 터널은 잘못된 설계로 인해 1937년 새로운 남성현 터널이 개통하면서 폐쇄되었습니다. 옛 남성현 터널은 길이가 1,015m 폭은 4.5m, 높이는 5.3m 직육면체의 화강암과 적벽돌로 3겹의 아치형으로 건설하여 110년이 넘은 지금도 내부는 보존상태가 잘되었습니다. 터널의 연중 연중온도는 15, 16도이며 습도는 60~70%로 와인 숙성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 2006년 2월에 청도와인(주)에서 감와인 숙성고와 시음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소문이나 지금은 청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청도대적사

청도 와인터널을 나오면 왼쪽 골짜기에 신라 헌강왕 때 체징이 창건한 사찰 대적사가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모든 당우는 불탔으며 1635년과 1689년 중건과 중수를 거쳤지만, 현재는 극락전을 제외하면 초라한 모습입니다. 대적사 극락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이며 볼거리는 극락전을 받치고 있는 기단과 소맷돌입니다. 기단에 연꽃과 거북무늬의 양각과 소맷돌의 용비어천도 등 창건 당시의 화려했던 대적사의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발길은 청도 남성현 터널을 지나면 대구 달성군 가창 땅입니다.

 


 대구 남지장사

이곳 최정산 아래 우록리 골짜기에 684년 신라 신문왕 때 양한이 창건했다는 남지장사를 찾았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사세가 대단했는데 8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3천여명의 승려가 운집했을 정도로 대찰이었습니다. 그러나 궁예가 일으킨 전쟁으로 폐사되었다가 1263년인 고려 원종 때 일연이 중창하여 제법 사찰의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1592년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당 유정이 이곳에서 승병 훈련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왜적은 한양 공격 길에 이곳을 불 질러 초토화했습니다. 1653년과 1767년 중건과 중창을 하였으며 모계에 의해 팔공산의 북지장사와 대칭된다며 남지장사라 하였습니다. 부속암자로는 청연암과 백연암이 있으며 사명당이 승병을 훈련하면서 머물렀던 청연암은 1990년에 보수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포스트:http://yahoe.tistory.com/2321


 대구녹동서원, 한일우호관

남지장사를 보고 나오면서 우록리 입구에 녹동서원을 찾았습니다. 녹동서원은 삼란공신을 평정한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왜 일본 장수가 조선의 장군이 되었는지 녹동서원과 녹동서원 옆 한일우호관을 방문하면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김충선장군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좌선봉장으로 참전했다가 경상좌수사 박진에게 휘하 병사 3천명과 귀순합니다. 조선군에 조총 제작 기술을 전수하며 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선조는 그에게 사성 김해김씨의 성과 충선의 이름을 하사합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괄의 난을 평정한 삼란 공신입니다.

 


 국립대구박물관

이제 대구에서 꼭 보고 싶었던 국립대구박물관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대구 박물관에 가기 전에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점심을 맛있게 먹고 힘을 내어 대구박물관 여행을 시작합니다. 국립대구박물관은 대구시 수성구 청호로 321. 1994년 12월 개장했는데 대구와 경북일원에서 출토된 유물 1.700여점이 전시중입니다. 이곳에서 눈여겨 볼만한 유물은 국보로 지정된 금동여래입상(국보182호)과 금동보살입상(국보 183호, 184호) 두 점입니다. 또한 송림사 5층 전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보물 제325호)와 국보 제282호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불 복장유물, 보물 제202호 의성관덕동석사자, 보물 제357호 칠곡정도사지5층석탑 등을 만났습니다. 정교한 신라예술품의 극치를 만나는 뜻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대구사문진나루터

다시 낙동강의 화원 유원지 사문진나루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두 해전쯤 찾았는데 그때보다는 많은 조형물 등 시설물이 설치되었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여행객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문진은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진다”는 뜻이며 선교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왔던 곳입니다. 당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이곳 사문진 나루에 내려진 귀신통 피아노는 지금의 동산 외국인 선교사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대구육신사

이제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한옥 집성촌으로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인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함께 봉안한 박팽년의 부친 중림의 위패는 현재 따로 봉안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박팽년만 후손에 의해 배향하였는데 기일에 사당 앞에 여섯분이 서성거리는 꿈을 후손이 꾸면서 박팽년 이외 다섯 분도 함께 모시게 되었다합니다.



 대구 달성태고정

신사 옆 달성 태고정은 1479년 박팽년의 손자인 일산이 세웠습니다. 조선 중기의 정자로 일시루라 하며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구성되었는데 오른쪽에 2칸의 대청을 넣었습니다. 창건과 함께 박팽년의 절의 묘와 종택에 딸린 건물로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일부 소실되었다가 1614년 다시 중건하였습니다. 1971년 12월에 보물 제55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태고정의 현판글씨는 한석봉이 섰다하며 일시루는 안평대군의 글씨라는 해설사의 설명입니다.

 대구 달성도곡재

태고정 아래 도곡재는 1995년 5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778년 정조 때 대사성 서정공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었다가 1800년대에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그의 호를 따와 도곡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앞면 4칸, 옆면 1칸의 기와 건물인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헛간과 대청을 달아 누각형태로 꾸몄습니다.

 

 대구 달성하목정

이제 낙동강을 끼고 들어선 달성 하목정을 찾았습니다. 낙동강에 저녁노을이 붉게 비치면서 하목정의 분위기는 정말 남달랐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던 낙포 이종문이 1604년 세운 정자입니다. 하목정의 현판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인연으로 인조가 이종문의 아들 이지영에게 써주었습니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은 특이한 점은 처마가 부채모양 곡선으로 되었으며 일반 가옥에는 서까래에 부연을 달수 없지만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습니다.

 이번 청도와 대구 달성군을 여행하면서 빼어난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운 한옥의 곡선, 그리고 자신의 조국을 배반하고 귀화하여 조선을 전쟁에서 구한 일본 장수 등 한편의 역사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부산과 가까운 곳에도 이런 알찬 여행을 꾸밀 수 있었습니다. 당일로 가볍게 여행을 하는 청도와 대구 여행 이제부터 한곳한곳 포스트 하겠습니다.






2015/10/31 - (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우록리 청산~우미산 가을 산행.


2015/10/21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장군을 모신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여행하다.


2015/04/05 - (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2015/02/18 - (대구여행/달성가창여행)대구 주암산~최정산 산행. 올해 처음 눈꽃 산행을 즐긴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최정산 산행.


2014/06/24 - (대구여행/수성구여행)수성못 용지봉~병풍산 산행. 대구의 근교산 용지봉~병풍산 산행.


2014/03/15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대구 근교산 삼필봉~황룡산 산행.천리마의 전설과 함께하는이색산행 마비정 벽화마을.


2014/01/27 - (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2013/11/11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한국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온 곳은 어디, 사문진나루터와 화원동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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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중구여행)대구근대골목투어 동산 청라언덕. 근대 건축물 스윗즈주택, 블레어주택, 챔니스 주택을 대구 청라언덕에서 만나다. 


대구에는 많은 근대건축물이 몰려 있는 곳이 있습니다. 청라언덕이라 부르는 동산입니다. 동산은 경상감영이 들어서기 이전인 당시에는 달성 토성이 대구의 중심지였습니다. 달성 토성에서 볼 때 동쪽에 있어 자연스럽게 동산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의 대구 도심과는 완전히 딴 판입니다.



근대 이전의 동산은 보잘것없는 허허벌판에 지나지 않았지만 1898년에 들어서면서 미국인 선교사 아담스와 존슨이 동산을 매입하여 학교와 병원, 신학대학을 세워 동산이 지금은 근대건축물의 보고가 되었습니다.





이때 ‘대구 사과’의 시초였던 대구 최초의 사과나무를 동산에 심어 대구 사과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대구에 사과나무가 처음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899년 당시 동산 의료원 개원과 함께 미국에서 들여온 한국 최초의 사과나무의 자손목이 지금도 청라언덕에 뿌리를 내리며 대구 사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근대사의 역사가 전해지는 동산의 청라언덕을 지금부터 밟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창시절에 가곡으로 불렀던 박태준의 ‘동무 생각’은 모든 분이 아실 것입니다. 이 동무 생각의 배경이 이곳 동산이라는 사실은 아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태준은 당시 동산 인근에 있는 대구계성학교 5회 졸업생으로 재학시절 이곳 동산에서 만난 여학생을 보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표현은 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담아 두며 짝사랑을 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마산 창신학교 음악선생으로 근무하며 동료 선생인 노산 이은상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날 이은상은 가사를 쓰고 하여 탄생한 게 오늘날의 유명한 가곡 ‘동무 생각’입니다. 동무 생각의 1절 가사 중에 ‘청라언덕’이 나옵니다. 당시 동산에는 외국인 선교사 저택의 붉은 벽돌집이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어 ‘푸른 담쟁이덩굴이 있는 언덕’을 의미하는 뜻에서 청라언덕이라 하였던 것 같습니다.

2009년 동산이 청라언덕이라는 사실이 처음 알려지면서 지금은 ‘대구 근대 골목투어’에서 청라언덕으로 지칭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코스가 되었습니다. 동산에 선교사 주택이 들어서게 된 시기는 1906년~1910년 사이입니다.

스윗즈, 블레어, 챔니스로 모두 선교사의 이름을 따 현재 부르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생활할 주거공간인 건물을 짓기 위해 허물어진 대구읍성의 돌을 가져와 기초로 사용하였으며 선교사 주택은 현재까지도 원형을 잃지 않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스윗즈 주택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주택은 1893년부터 대구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 선교사들이 1910년경에 지은 서양식 건물에 한옥의 기와를 절충하여 지었습니다. 1907년 대구 읍성이 철거되면서 성벽을 쌓은 돌을 가져와 기초를 다졌고 그 위에 2층의 붉은 벽돌 건물을 올렸습니다.

1층은 현관을 통과하면 거실로 바로 들어서고 주방과 침실 등이 연결됩니다. 2층 계단에 올라서면 좌우로 2개의 침실과 욕실을 배치하였고 그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1920년 계성학교 제4대 교장 핸더슨과 계명대 초대학장 캠벨이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현재는 선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챔니스 주택은 바닥을 콘크리트 기초로 하였으며 붉은 벽돌을 올린 2층 건물입니다. 1층은 거실과 서재, 식당으로 사용하였고 2층의 목조로 된 베란다는 더욱 격조 높은 분위기와 운치를 더합니다. 챔니스 주택은 동산의료원 100주년 기념으로 1999년 의료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의료기기 중에서는 110년 전에 사용한 상아 청진기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청진기 그리고 1890~1900년에 사용된 각종 의료기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의 세균 배양기도 전시 중이라 지금과도 비교할 수 없지만, 그 당시 의료기기의 궁금증을 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블레어 주택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이며 1910년에 미국 선교사에 의해 지어진 2층 건물입니다. 들어서는 입구는 1층의 서쪽에 현관으로 통하는 베란다를 두고 현관을 들어서면 빛을 받아들이는 선룸이 현관 천정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현관을 마주하면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배치되었으며 계단 오른쪽에 거실과 응접실이 자리 잡고 좌우로 침실, 부엌, 식당 등을 배치하였습니다. 

2층에는 계단을 중심으로 3개의 침실과 욕실 등을 두었습니다. 블레어와 라이스, 동산병원 의사인 강진성이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내부 마감재는 조금 바뀌었지만, 형태와 구조는 처음 모습 그대로입니다. 현재 블레어 주택은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며 대구 3·1 운동의 발자취와 일제의 만행을 기록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높은 전시실입니다.















1919년 3월1일 들불처럼 번진 탑골공원의 3·1 독립만세 운동이 대구에서는 3월8일 일어났습니다. 대구지역의 많은 학생이 경찰의 감시를 따돌리기 위해 동산병원 솔밭 길을 이용하여 큰 장안 강씨 소금집 앞으로 접근했다 합니다. 지금은 그때의 오솔길인 소나무 숲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날의 역사는 ‘대구 3·1운동길’로 남아 후세에도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참고:'근대로의 여행 골목')




2015/01/08 - (대구여행/중구여행)경상감영공원. 대구 시민의 도심공원인 경상감영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2014/12/23 - (대구여행/대구근대문화골목여행)대구 마지막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에서 만나보세요.


2015/01/07 - (대구여행/대구 중구 골목투어)대구근대역사관.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서 대구 근대 역사를 한눈에 만나는 대구근대역사관 관람.


2014/01/17 - (대구여행/중구여행)'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영원한 가객 김광석 벽화거리에서 만나다.김광석


2013/12/14 - (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대구 여행의 필수 코스 청라언덕의 제일교회에 깜짝놀래다.


2013/12/14 - (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대구 여행의 필수 코스 청라언덕의 제일교회에 깜짝놀래다.


2013/12/09 - (대구여행/계산성당)"육영수군과 박정희양"의 결혼식이 열렸던 뾰쪽탑의 대구 계산성당을 여행가기


2013/12/05 - (대구맛집/중구맛집)대구중구 골목투어 미도다방, 보약 같은 쌍화차가 맛있는 옛날식 다방 미도다방을 찾아가다.


2013/12/03 - (대구여행/중구여행)북성로 공구 박물관,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어요, 북성로 공구 거리 박물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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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산와촌여행)불굴사와 홍주암. 팔공산 갓바위와 부부라는 불굴사 약사불괴 원효와 김유신의 수도처 홍주암을 여행하다. 


대구 팔공산의 기운이 능성고개에서 다시 한 번 힘차게 솟구쳐 무학산과 환성산, 그리고 초례봉 산군을 이루었습니다. 그 깊은 골짜기를 따라 팔공산 관봉인 갓바위와 마주 보는 자리에 불굴사가 있습니다.




불굴사는 690년인 신라 신문왕 10년 때 원효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굴사가 한창 번성할 때는 50동의 기와 건물에다 주위로 부속암자만 12개가 되었습니다. 또한, 쌀을 빻는 물방아가 8대를 돌릴 정도로 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불굴사를 찾고 머물렀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습니다.


그 후 불굴사의 정확한 역사는 알 수 없지만 1723년 조선 경종 3년 때 중창을 하였다가 영조 12년인 1736년 대홍수 때 일어난 산사태에 그만 수몰되어 불굴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 전라도 송광사 노스님이 현몽을 받아 이곳에서 새롭게 중건을 한 것이 오늘날의 불굴사가 되었습니다.

1860년 철종 11년에 유혜·쾌옥 두 스님과 1939년 은해사의 경파 백현스님이 다시 중창하였고 오늘날 불굴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88년 원조 주지스님이 불굴사 창건당시의 대웅전 초석을 찾아낸 뒤 스님은 그 자리에다 적멸보궁을 짓고 인도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면서입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외에도 불굴사는 많은 문화재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김유신의 전설이 남아 있는 홍주암이 있습니다. 불굴사 적멸보궁 앞의 삼층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 제4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삼층석탑의 전체적인 높이는 7.43m이며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쌓아 올린 형식입니다.

지붕돌은 넓고 추녀 밑이 수평이며 각부의 비례는 서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상륜부는 일부만 남아있지만 양호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삼층석탑입니다. 

불굴사 석조입상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약사보전 전각안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1736년에 발생한 산사태에 묻힌 것을 조계산 송광사의 노스님이 현몽으로 찾아낸 불상이라 전합니다.



석불입상은 연화대좌위에 불상을 세웠는데 전체높이는 233cm, 어깨너비 75cm, 머리높이 53cm로 규모가 큰 석불입상이며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한 모습입니다. 얼굴 부분은 훼손이 심해 이목구비를 다시 조각하였으며 왼손 또한 분실되어 현재는 보주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불굴사 석불입상은 팔공산 관봉의 갓바위 약사여래불과 부부라는 설이 전해옵니다. 갓바위 약사불은 갓을 쓴 남성이라면 불굴사 약사불은 족두리를 한 여성의 모습을 하여 음양의 이치에 맞춰 조성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불굴사 약사불과 갓바위 악사불은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불굴사 약사불은 대좌의 양식과 상호와 신체의 표현 등을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불굴사 옆 소나무 길을 따라 오르면 천년송이 뿌리를 내린 암반에 절묘하게 세워진 홍주암이 있습니다. 원효대사께서 이곳에 머물며 수도를 하여 원효굴로도 불리는데 이곳은 김유신이 17세 때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수도했던 곳이라 알려졌습니다.




김유신은 신인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삼국통일을 하게 되었다 하며 원효굴에서 나오는데 맞은편 산에서 백마가 울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불굴사와 마주한 산봉우리는 지금도 명마산이라 부르며 김유신의 화신인 장군바위가 오늘도 늠름한 기상으로 팔공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원효대사와 김유신이 기도하며 마셨다는 바위틈의 석간수는 우리나라에서 물맛이 가장 좋고 귀한 약수라 하여 ‘아동제일약수’라 부릅니다. 아랫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장군수라 불렀으며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소화불량과 신장염에 좋은 물로 소문나 이물을 마시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홍주암이라 불렀는지 알 수 없지만 ‘붉은 구슬’의 의미는 태양을 뜻합니다.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불굴사 경내에서 가장 먼저 양의 기운인 해를 마주하는 장소로 알려졌습니다.


내일이 대학 수능시험일입니다. 홍주암 독성각에 모신 나반존자는 500명의 나한중 제일 뛰어난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불을 기다리는 부처님으로 한가지소원은 꼭 들어 준다 합니다. 팔공산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불굴사에 들러 만병통치 아동제일약수도 맛보고 한가지 소원도 이루어 보세요.  



김유신의 화신이라는 명마산장군바위

묵혔던 불굴사 사진 이제 포스팅합니다.(참고:불굴사 문화재 안내판)

#불굴사 #홍주암 #여행 #사찰 #경산와촌여행 #대구여행




2015/11/07 - (경북여행/경산여행)팔공산 관봉 용주암. 불교예술품의 전시장 같은 팔공산 관봉 용주암.


2015/11/04 - (경북여행/경산여행)팔공산 끝자락 명마산 장군바위. 자연이 만들었다하기에는 정말 신기한 토르현상 3층 석탑 명마산 장군바위에 깜짝 놀라다.


2015/02/20 - (대구여행/팔공산 케이블카)대구 팔공산 케이블카. 팔공산 산행이 아닌 여행으로 케이블카를 타 보았습니다.


2015/01/14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구경하기.


2014/11/16 - (대구여행/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팔공산마애약사여래좌상. 약한자든 힘 없는 자든 모든 중생을 보살펴줄 것 같은 마애약사여래불


2014/11/10 - (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2014/07/04 - (대구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다.갓바위


2014/07/02 - (대구동구맛집)팔공산동화사맛집 돌방구가든. 건강함이 가득한 식탁이라면 이정도 되어야죠??? 산채진미 나물 밥상 돌방구가든.


2014/05/31 - (대구맛집/팔공산 동화사맛집)자연산 송이로 맛을 내는 6천원 순두부백반 너무 맛있어요. 팔공산 동화사, 갓바위 맛집 산골기사식당


2013/12/18 - (대구여행/달성여행)팔공산 동화사에서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진행,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지로 될듯.


2013/12/12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병들고 아픈 국민들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나다.


2013/11/06 - (경북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관봉).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준다는 팔공산 관봉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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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우록리 청산~우미산 가을 산행.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우미산 산행을 하기에 앞서 사야가 김충선 장군과 녹동서원, 달성한일우호관이 왜 이곳에 세워졌는지 그 설립 배경부터 알아야 합니다. 사야가 김충선 장군은 원래 일본 국적을 가진 분입니다. 왜 조선에 귀순을 선택했을까요?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중국 침략을 위한 길을 내어 달라고 요구하며 조선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킵니다. 1592년 임진년에 일어난 전란으로 임진왜란이라 부릅니다. 임진왜란의 선봉에 가토 기요마사가 있었고 그 우 선봉장에 사야가란 장수가 있었습니다.

사야가는 예절을 중시하고 군자의 도리를 지키는 조선에 흠모의 마음이 있었고 조선 침략의 명분을 얻을 수 없다며 그의 부하 3천 명과 함께 경상감영의 박진 장군에게 투항하여 조선을 지키는 선봉에 서서 왜군을 격파합니다.

또한, 조총과 화약 조제의 전문가로 조선에 조총과 화약기술을 전수하여 우리 병사에게 왜군과 맞서기 위해 조총을 갖추게 합니다. 이후 도원수 권율 장군과 어사 한준겸이 조정에 그의 공적을 상소하였고 선조는 김해김씨 김충선을 하사합니다.

그 후 정유재란도 참여하여 공적을 세웠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노구를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구하기 위해 출병하지만, 청나라에 무릎을 꿇었다는 임금의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돌려 우록리로 내려와 여생을 보냈습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겪었던 김충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녹동서원입니다. 1794년 정조 18년에 지역 유림의 상소를 받아들여 세워진 녹동서원은 다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885년 지역유림과 문중에 의해 재건되었고 1971년에 국가의 지원으로 지금의 위치에 옮겨 왔습니다.

최근까지 모하당 김충선 장군은 주목을 받지 못하다기 일본 관광객과 정치인들이 방문하면서 한일 양국에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인으로 조선에 귀화하여 정작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을 아끼고 사랑한 김충선 장군을 만나고 청산과 우미산을 둘러보는 의미 있는 산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미산 산행 경로는 녹동서원 주차장~녹동서원·달성한일우호관~김충선장군 묘~남지장사 갈림길~삼정산 갈림길~656봉 전망대~남지장사 갈림길~740.4봉 전망대~안부 삼거리~주리 갈림길~정자 쉼터~통점령 갈림길~최정산 목장~(통점령 갈림길)~청산 정상802m~백록마을 회관 갈림길~우미산·밤티재 갈림길~우미산 정상 747m~우미산장·식당~우록마을 정자 쉼터~녹동서원 주차장 순으로 산행은 우록리를 두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산행 길이와 난이도 또한, 만만찮은 코스로 무리한 산행을 원하지 않는다면 산행은 청산 정상을 지나 만나는 백록마을 회관으로 하산하면 됩니다. 실제 우미산을 거치는 코스는 그저 걷는 재미뿐입니다. 전체적인 거리는 약 15㎞에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5시간30분~6시간가량 잡아야 합니다.

청산~우미산 산행은 모하당 김충선 장군 위패를 모신 녹동서원의 달성 한일 우호관 뒤쪽에서 시작합니다. 먼저 산행을 하기 전에 일본인으로서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달성 한일 우호관에서 그분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생각해 봅니다. 산행은 ‘김충선장군 묘소 가는 길’입니다.

데크로 된 나무계단 길을 쉬엄쉬엄 300m쯤 올라가면 단출한 묘소와 만납니다. 그분의 삶을 한눈에 느끼는 평범한 무덤입니다. 참배하고 오른쪽 산길을 오릅니다. 곧 능선에 오르고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입니다. 왼쪽 남지장사 방향으로 본격적인 청산~우미산 산행의 시작입니다.

남지장사는 684년 신라 신문왕 4년 때 창건된 고찰로 여러 번의 중창과정을 거친 뒤 1767년 영조 43년에 모계가 중창하면서 팔공산의 북지장사와 대칭되는 곳에 세워진 절이라하여 남지장사라 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 유정이 이곳 청련암에 머물며 승병을 훈련했습니다. 그 사실이 왜군에게 발각되어 남지장사와 청련암 등은 불태워졌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모든 전란이 끝나고 난 뒤인 1653년에서 1767년까지 4차 중창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슬며시 오르든 산길은 급한 오르막이 이어지면서 펑퍼짐한 작은 봉우리를 넘어갑니다. 30분쯤 올라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 다다랐습니다. 오른쪽은 삼정산 방향이며 우미산은 왼쪽 남지장사 방향 오름길을 따라갑니다. 산길은 키 큰 나무와 활엽수에 가려 바깥과는 차단된 듯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20분쯤 올랐을까 돌출된 656봉에 닿았습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보았습니다. 우록리는 눈에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며 꼭 함지박에 푹 쌓여 세상 밖과 단절된 모습입니다.

계단 논인 다랑논과 수확을 앞둔 누런 벼, 숲속에 둥지를 튼 남지장사와 청련암 부속암자의 모습을 감상하며 나중에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필자가 지나가야 할 능선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 뒤로 비슬산 조화봉 정상에 있는 기상관측소 건물이 바깥세상과 단절된 내 마음에 ‘도시인이시여 정신 차리소’ 하듯 흔들어 깨웁니다.

다시 북쪽을 봅니다. 가창면과 멀리 팔공산의 긴 능선이 기지개를 켜는 듯 허리를 쭉 피며 누워 있습니다. 능선을 따라갑니다. 곧 땅이 푹 꺼지듯 산길은 내려갑니다. 평점 심을 찾을 때쯤 안부사거리에 닿습니다. 왼쪽은 남지장사. 우록 경로당 2.6km 방향. 우미산은 ‘최정산 억새’ 방향인 직진 오르막길입니다.

산행의 진리는 항상 내리막이 있다면 오르막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런 굴곡과 같이 부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편하게 내려왔다면 이제 꾸역꾸역 오르막을 올라야 합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참고 견뎌내면 좋은 결과가 기다리듯 곧 시원하게 바깥 세상이 열리는 전망대가 기다립니다.


740.4봉의 삼각점이 있는 전망대에서 다시 쉬면서 우록리를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능선이 왼쪽에 한눈에 보이며 가운데 우미산이 우뚝 솟았고 우록리의 크고 작은 마을이 산비탈에 등을 비비듯 자리하였습니다. 이제 700m대 높이로 걷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능선의 굴곡도 심하지 않으며 간혹 나타나는 전망대에서 세상과 소통하며 걷습니다. 최정산과 주암산의 능선도 확인하고 걸어가면 어느덧 안부 삼거리입니다. 이정표는 없지만, 왼쪽으로 내려가는 선명한 하산 길은 남지장사로 향하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직진하면 능선은 그리 급하지 않게 이어집니다. 다시 주리 갈림길과 만나는데 이정표가 있던 남지장사 갈림길에서 60분이면 이곳에 도착합니다. 오른쪽은 주리와 최정산 탐방 입구인 임도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며 우미산을 가기 위해서는 백록마을 회관 방향인 직진 능선을 계속 탑니다.






곧 억새밭이 펼쳐지며 봉우리에 정자 쉼터가 있습니다. 건너편에 비슬산이 완전히 드러나고 최정산의 옛 목장도 가깝게 보이며 멀리 석화성 가야산도 보입니다. 약 200m쯤 산길을 따라가면 통점령 갈림길입니다. 사룡산에서 시작된 비슬지맥도 이곳에서 최정산 방향으로 꺾고 비슬산으로 가게되는 길목입니다.






가을 산행의 전령사인 억새를 만나기 위해 최정산 목장 부근으로 내려갔다 옵니다. 약 1km를 가는동안 솜틀처럼 부드러워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실컷 억새를 만나고 다시 통점령 갈림길로 돌아와 팔조령과 청산 방향으로 향합니다. 아쉬운 듯 최정산 목장 쪽을 자꾸 돌아보게 합니다.





산행길 좌우로 억새가 한껏 멋을 부리기도 하지만 곧 헬기장에 세워진 청산 정상 표지석과 만났습니다. 청산 정상에서는 주변 경관을 볼 수 없으며 우미산 방향으로 빠지는 산길도 주의하여 찾아야 합니다. ‘백록마을회관’ 방향은 청산 정상에 올라와서 바로 오른쪽 첫 번째로 빠져나가는 길입니다.




조금만 등산로를 따라가면 이정표가 또 있습니다. 팔조령 11.3km. 지금부터는 산길도 뚜렷하고 신나게 내려갑니다. 철탑이 나타나면 철탑 아래 백록마을 회관 갈림길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백록마을 회관으로 하산하느냐 아니면 우미산을 향하느냐 결정해야 합니다. 이곳을 지나면 더 이상의 탈출로는 없습니다.


필자는 직진해 우미산으로 향합니다. 평범한 능선길을 따라가다 안부에서 다시 우미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힘겹게 오릅니다. 그래도 지금은 산길이 뚜렷하지만, 필자가 아주 오래전에 이곳 우미산과 청산을 거쳐 산행할 때 고생을 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백록마을 회관 갈림길에서 약 20분이면 ‘밤티재 팔조령·우미산 갈림길’ 이정표와 마주합니다.

왼쪽 우미산(1.0km)을 향해 오릅니다. 힘겹게 마지막 사투를 벌여야 합니다. 겨우 우미산 문턱에 올라서고 산길은 왼쪽으로 능선을 바꿔 타고 약 30분이면 우미산 표지석과 마주했습니다. 이제 더 높은 봉우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힘겨운 하산길이 기다립니다. 우미산장·식당까지 앞으로 엎어질 듯 급한 내리막의 연속입니다. 하산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미끄러지지 않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남지장사로 향하는 도로에 내려서고 오른쪽으로 갑니다. 20분이면 우록마을 느티나무 쉼터를 지나고 곧 녹동서원 주차장에서 필자는 산행을 마무리하는 스키 스톡을 접어 넣었습니다.



☞(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대중교통편.  


대구시 달성군 청산~우미산 산행을 위해서는 우록리 녹동서원까지 갑니다.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대중교통편은 기차를 이용하면 먼저 동대구역까지 가야 편리 합니다.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칠성 시장역에 내려 2, 3번 출구로 나와 프라자 약국 앞 버스 정류장에서 ‘가창 2번’ 버스인 ‘우록리’를 반드시 확인하고 타야 합니다. 시외버스를 타고와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칠성 시장역에 내리면 됩니다. 칠성 시장역 출발 가창 2번 버스는 오전 8시07분, 8시43분, 9시21분, 9시59분, 10시37분, 11시15분, 11시51분에 있으며 약 40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우록리 달성우호문화관 앞에서는 오후 2시09분, 2시47분, 3시23분, 4시01분, 4시39분,5시17분,5시56분 등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달성한일우호관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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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우미산 고도표

청산~우미산 지형도




2015/10/23 - (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우록리 청산~우미산 가을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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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4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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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5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대구 근교산 삼필봉~황룡산 산행.천리마의 전설과 함께하는이색산행 마비정 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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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7 -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도동서원의 아름다운 늦가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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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여행/달성군여행)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장군을 모신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여행하다.


이방인이 자신의 조국을 버리고 귀화하여 어려움에 빠진 나라를 구한 인물이 대구광역시에 두 분 있습니다. 모두 비슷한 시기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귀화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웠는데 한 분은 명나라 이여송의 부관으로 참여한 두사충이며 또 한 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자진 귀순한 사야가 김충선 장군입니다.




 이번에 대구시 달성군에 있는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여행하게 되어 사야가 김충선 장군에 대해 소상히 알게 되었습니다. 김충선 장군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며 조선을 침략하자 가토 기요마사의 우 선봉장으로 출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선 침략의 명분을 찾을 수 없다하여 부하 3000명과 함께 박진 장군에게 투항하여 왜군으로부터 조선 방어의 선봉장이 됩니다. 특히 경상도 일원에서 왜군과 많은 전투를 벌였고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장과도 힘을 합해 왜군을 무찔렀습니다.

 특히 사야가는 조총과 화약제조의 전문가로 우리 병사에게 조총과 화약제조 기술을 전수해 조선에 조총 사용의 발판을 마련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김충선 장군은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또다시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전공을 세워 무관 3품 당상에 올랐고 울산 왜성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을 맞아 공을 세워 무관 정3품 자선대부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1603년 선조 36년 만주족을 징벌하기 위해 국경수비를 자임하여 수행하여 그 공로로 정헌대부에 재수 되었고 1624년 인조 때 일어난 이괄의 난을 평정함으로 인조는 사패지 칠읍(대구, 청도, 김해, 밀양, 창원, 영산, 경산)을 하사하지만 받지 않고 수어청에 헌납하여 둔전으로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66세의 노구를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임금을 구하러 달려갔으나 인조의 ‘삼전도 치욕’ 소식을 듣고 춘추대의도 끝났다고 통곡하며 우록리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습니다. 김충선장군은 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도원수 권율과 어사 한준겸이 조정에 장계를 올렸고 선조는 김해김씨 ‘김충선’이란 이름을 하사하였습니다.

 

 삼란공신으로 모하당 김충선 장군(金忠善·1571~1642)은 ‘사성 김해김씨’의 시조로 현재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를 본거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의 녹동서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녹동서원은 삼란공신 모하당 김충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서원입니다. 정조 때 지역 유림의 상소로 1794년 정조 18년에 김충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서원을 세웠지만 1864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과 함께 훼철된 뒤 고종 22년인 1885년 유림과 문중에서 다시 세웠습니다. 1971년 국가지원을 받아 현재 위치로 이건을 하여 오늘날의 녹동서원이 되었습니다.

 

 일본 장수로 조선에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 장군은 일본으로서는 배신자이자 역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토 기요마사의 휘하 장수로 임진왜란에 출병했지만 어디서도 그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일본으로서는 지우고 싶은 존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일 양국의 우호발전에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수많은 일본인 관광객과 정계에서 김충선장군을 모신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찾고 있습니다. 살아서는 귀하 한 조국에 목숨을 바쳤고 죽어서는 한일 화합의 장소로 이용되는 한일 우호의 선봉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달성한일우호관은 한일 교류와 역사를 볼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현장으로 달성한일 우호관을 방문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 처절하고 힘들었던 우리 선조들의 삶을 느껴보고 김충선 장군의 의로운 삶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근대까지 우리에게 많은 고난과 핍박을 주었지만, 일본인으로 의로운 김충선 장군 같은 분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우미산이 감싸는 우록리는 지금 한창 가을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가을 정취를 즐기기에도 정말 좋은 곳이며 가족과 함께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여행 추천합니다. 그리고 인근에 김충선 장군의 묘소도 있습니다.

 

 

 

 

 

 

 

 

 

 

 

 

 

 

 

 

 

 

 

 

 

 

 

 

 

 

☞(대구여행/달성군여행)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대중교통편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대중교통편은 기차를 이용하면 먼저 동대구역까지 가야 합니다.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칠성 시장역에 내려 2, 3번 출구로 나와 프라자 약국 앞 버스 정류장에서 ‘가창 2번’ 버스인 ‘우록리’를 반드시 확인하고 타야 합니다. 시외버스를 타고와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칠성 시장역에 내리면 됩니다. 칠성 시장역 출발 가창 2번 버스는 오전 8시07분, 8시43분, 9시21분, 9시59분, 10시37분, 11시15분, 11시51분에 있으며 약 40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우록리 달성우호문화관 앞에서는 오후 2시09분, 2시47분, 3시23분, 4시01분, 4시39분,5시17분,5시56분 등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달성한일우호관 입력

#김충선장군 #사야가 #김충선 #녹동서원 #달성한일우호관 #여행 #대구달성여행

참고:달성한일우호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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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에 천년사찰 운흥사가 있습니다. 운흥사는 가창 저수지를 절 앞 정원으로 둘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며 대구광역시 전통사찰 제3호 사찰입니다. 운흥사의 창건은 신라 흥덕왕 때인 832년 운수화상에 의해 동림사로 개산을 하여 1620년 조선 광해군 12년 무념스님이 중수를 하면서 수암사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1751년 조선영조 27년 치화대사 때 최정산 정상 인근에 있던 절을 현 위치에다 새롭게 옮겨 중건중수를 한 뒤 운흥사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천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개명을 여러 번 거쳤지만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운흥사도 한때는 대가람을 이룰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습니다. 임진왜란직전 까지만 해도 수백명의 스님이 구름 때처럼 몰려 수행도량으로 이름을 떨쳤고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 송운대사도 승병을 이끌고 이 절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운흥사에는 보물이 한점있습니다.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2014년 1월 보물 제181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복장 후렴통과 발원문 등 봉안사찰, 제작년도, 제작자 등 조성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기록한 불상으로 17세기 불상연구의 귀중한 자료 입니다.


 

1653년 조각스님인 도우의 첫 작품으로 용연사 삼존좌상과 같은 양식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필자는 문화재를 사진으로 남기는 게 취미라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찍기 위해 운흥사에 들렀습니다.


 

대웅전등 단출한 전각에 비해 마당에 자리한 벚나무와 고목에서 더욱 고풍스러운 모습을 느꼈습니다. 삼존상은 통유리로 막고 있어 사진을 담을 수 없어 앞 유리에 카메라를 데고 한 컷 찍었습니다. 대구 운흥사주위를 둘러보면서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아름다운 절집입니다.


 

 

 

 

 

 

☞(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교통편.


부산에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 운흥사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열차가 편리합니다. 부산역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무궁화와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하차를 합니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칠성시장 역에서 내려 칠성시장 역(서문프라자 앞)버스 정류장에서 ‘가창2번 정대행’ 버스를 반드시 확인하고 타면 끝 입니다. 종점인 칠성고가정류장에서 오전 6시31분, 7시48분 9시02분 10시18분 11시36분에 출발합니다. 오2리 정류장에서 하차. 운흥사 절집 구경을 했다면 대구시내 방향으로 나오는 가장2번 버스는 오후 3시11분 4시23분 5시42분 6시57분 등 10시40분(막차)에 있습니다. 오2리 정류장 도착은 약 10분 더하면 된다. ‘경상감영공원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동대구역으로 이동하여 부산으로 오면 됩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신대구~부산 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수성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월드컵로 대구 미술관(대구스타디움) 방면으로 좌회전합니다. 경기장 네거리에서 유니버시아드로 범물 방면 우측도로를 약 1.2km 가다 범안삼거리에서 범안로 범물동 방면으로 좌회전를 합니다. 삼덕톨게이트를 통과 후 4.8km 이동, 파동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청도 방면 우측도로를 약1.1km 이동합니다. 헐티로 각북 방면 오른쪽으로 꺾어 가창저수지 둑을 지나면 곧 운흥사가 나온다. 

내비게이션은 가창면 운흥사 입력.







2015/02/20 - (대구여행/팔공산 케이블카)대구 팔공산 케이블카. 팔공산 산행이 아닌 여행으로 케이블카를 타 보았습니다.


2015/02/18 - (대구여행/달성가창여행)대구 주암산~최정산 산행. 올해 처음 눈꽃 산행을 즐긴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최정산 산행.


2015/01/14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구경하기.


2015/01/10 - (대구여행/대구중구근대골목투어) 이상화·서상돈 고택 찾아가기. 대구 중구 근대 골목 이상화 서상돈 고택을 만나고 왔습니다.


2015/01/08 - (대구여행/중구여행)경상감영공원. 대구 시민의 도심공원인 경상감영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2015/01/07 - (대구여행/대구 중구 골목투어)대구근대역사관.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서 대구 근대 역사를 한눈에 만나는 대구근대역사관 관람.


2014/12/23 - (대구여행/대구근대문화골목여행)대구 마지막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에서 만나보세요.


2014/11/16 - (대구여행/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팔공산마애약사여래좌상. 약한자든 힘 없는 자든 모든 중생을 보살펴줄 것 같은 마애약사여래불


2014/11/10 - (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2014/07/04 - (대구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다.갓바위


2014/06/24 - (대구여행/수성구여행)수성못 용지봉~병풍산 산행. 대구의 근교산 용지봉~병풍산 산행.


2014/05/31 - (대구맛집/팔공산 동화사맛집)자연산 송이로 맛을 내는 6천원 순두부백반 너무 맛있어요. 팔공산 동화사, 갓바위 맛집 산골기사식당


2014/03/15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대구 근교산 삼필봉~황룡산 산행.천리마의 전설과 함께하는이색산행 마비정 벽화마을.


2014/01/27 - (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2014/01/17 - (대구여행/중구여행)'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영원한 가객 김광석 벽화거리에서 만나다.김광석


2014/01/06 - (대구여행/달성여행)포레스트 스파밸리. 화려한 야경이 볼거리인 포레스트 빛의 축제에 깜짝 놀라다.


2013/12/18 - (대구여행/달성여행)팔공산 동화사에서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진행,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지로 될듯.


2013/12/14 - (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대구 여행의 필수 코스 청라언덕의 제일교회에 깜짝놀래다.


2013/12/12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병들고 아픈 국민들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나다.


2013/12/09 - (대구여행/계산성당)"육영수군과 박정희양"의 결혼식이 열렸던 뾰쪽탑의 대구 계산성당을 여행가기


2013/12/03 - (대구여행/중구여행)북성로 공구 박물관,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어요, 북성로 공구 거리 박물관을 만나다.


2013/11/23 - (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 허브힐즈. 대구 허브힐즈에서 힐링을 하고 왔어요.


2013/11/16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읍 마비정벽화마을. 6~70년대 우리 어릴적의 모습 마비정벽화마을의 벽화로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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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 케이블카)대구 팔공산 케이블카. 팔공산 산행이 아닌 여행으로 케이블카를 타 보았습니다.


대구여행길에서 팔공산 동화사를 둘러보고 산행이 아닌 팔공산 구경을 하였습니다. 뭐 팔공산을 가장 쉽게 조망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팔공산 케이블카로 올라 바라보는 방법으로 전망이 기가 막힙니다.




팔공산은 그 높이가 1192.8m로 영남의 명산 중에서는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봉입니다. 가산에서 관봉으로 부르는 갓바위까지 능선의 길이만 지리산과 맞먹는 25km로 장대합니다.

이를 대구 산꾼들은 팔공산맥이라 하며 대구의 자존심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대구 팔공산을 가장 조망하기 좋은 곳이 동봉에서 흘러 내려온 약 820m의 신림봉으로 이곳 상봉에 케이블카 상부승강장과 함께 전망대가 있습니다.

뭐 꼭 산행이 아니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과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도 힐링을 하기에 너무 좋습니다. 젊은 여인들을 위한 사랑의 자물쇠등 다양한 놀이공간을 조성하여 팔공산에서의 언약은 특별할 것 같습니다.

팔공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웅장한 팔공산의 산세를 바라보면 어느 듯 마음까지 장대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 만큼 팔공산에는 강한 기운이 흐릅니다. 고려의 왕건과 여덟 장수가 이곳 팔공산 전투에서 백제의 견훤과 일전을 치른 곳도 이곳입니다.

왕건은 전투 중에 그의 부장 신숭겸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며 후에 후삼국을 통일합니다. 대구의 팔공산은 그런 역사의 기가 흘러 왕건의 여덟 장수에서 팔공산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입니다. 

팔공산 케이블카 전망대는 그런 광활한 역사의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팔공산을 산행이 아닌 여행으로 한번 쯤 즐겨 보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하얀 겨울에 떠나 보는 팔공산 케이블카 여행은 또 다른 맛을 느끼고 돌아 왔습니다. 

사진으로 만나보는 팔공산 케이블카 전망대◆






















2015/01/14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구경하기.


2014/11/16 - (대구여행/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팔공산마애약사여래좌상. 약한자든 힘 없는 자든 모든 중생을 보살펴줄 것 같은 마애약사여래불


2014/11/10 - (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2014/07/04 - (대구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다.갓바위


2014/05/31 - (대구맛집/팔공산 동화사맛집)자연산 송이로 맛을 내는 6천원 순두부백반 너무 맛있어요. 팔공산 동화사, 갓바위 맛집 산골기사식당


2013/12/12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병들고 아픈 국민들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나다.


2014/07/02 - (대구동구맛집)팔공산동화사맛집 돌방구가든. 건강함이 가득한 식탁이라면 이정도 되어야죠??? 산채진미 나물 밥상 돌방구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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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가창여행)대구 주암산~최정산 산행. 올해 처음 눈꽃 산행을 즐긴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최정산 산행.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최정산과 주암산은 대구권역에서는 청정의 산에 들어갑니다. 비슬산에서 내려온 능선이 솟구쳐 만든 미봉에다 청도군과 경계를 이루는 주위의 산군과 함께 어울려 깊은 산속을 걷는 착각이 들 정도로 덜 알려진 산입니다. 특히 주암산은 정상을 이룬 바위가 꼭 배를 묶어둔 모습을 하고 있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고 배바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특출하여 대구에서는 일출산행지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필자도 최정산과 주암산 산행은 15년 전 쯤에 산행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최정산 정상부에는 군사 시설물이 있어 출입을 할 수 없지만 당시에도 산행을 즐기기에 꺼림칙한 산으로 여겼던 곳입니다. 발목지뢰 안내판이 여기저기 보이고 하여 마음 적으로도 많은 부담감을 느꼈던 산행지로 최근에 다녀온 주암산~최정산의 느낌은 그래도 당시 보다는 마음이 홀가분하였습니다. 등산안내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는 믿음이 갔기 때문입니다. 주암산~최정산 산행을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먼저 주암산~최정산 산행경로입니다. 광덕사~옥낭 각씨 베짜는 바위~원광사 갈림길~582m봉~608m 봉 가창저수지·대원사 갈림길~763m봉~스파밸리 갈림길~배바위~가창중학교 갈림길~주암산 삼각점 봉~855m봉~kt이동통신 입구~헬리포트(최정산 정상)~이정표 삼거리~운흥사~오1리 버스 정류장~광덕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으로 전체거리는 약 13km에 산행시간은 5시간 안팎이면 충분합니다.



산행을 위해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파동 광덕사로 가야합니다. 용계천의 물이 흘러 큰 가창 댐에 오롯이 흘러드는데 제법 큰 규모를 이룹니다. 가창 저수지를 보면서 가다보면 곧 광덕사를 알리는 안내판이 나오고 산행을 위해 광덕사 마당을 들어서는 입구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습니다.



모든 산행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숫제 낮은 산이라도 산행을 하다 보면 호락호락하지 않는게 다반사입니다. 항상 산행을 하면서 겸손한 마음을 주문하는데 이번 주암산 최정산은 결코 낮지 않은 산인데다 처음부터 능선을 향하여 돌격하듯이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져 처음 산을 접하는 초보자는 쉽게 지치게 만드는 그런 산입니다. 그래서 등산을 인생과 비유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오른다면 누구나 산행을 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정갈하게 가꾸어진 광덕사의 절 규모가 대단합니다. 작은 주차장에서 안쪽으로 최정산 숲길안내도와 이정표가 산길을 알리고 있습니다. 주암산까지는 3.5km, 최정산 정상까지는 이정표에 5.3km라 표시되어 있습니다. 산행을 하다보면 최정상 정상까지의 거리가 만나는 이정표 마다 제각각이라 산행을 하면서 헤 깔리게 하여 참고만 하고 믿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큰 소나무 사이로 난 산길을 따라 오릅니다. 큰 바위도 나타나며 오늘 산행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암시를 해 줍니다. 직진으로 향해 올라가는 산길은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사면을 타고 나갑니다. 얼마 안가 다시 지능선에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최정산 헬기장 5.44km 오른쪽으로 꺾어 가파르게 고도가 높아집니다.





안전 로프가 묶여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큰 바위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습니다. 전망은 신통찮습니다. 그래도 가창저수지 하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곧 지형도상 ‘옥낭각씨 베짜는 바위’로 생각 됨직한 전망바위가 나옵니다. 등산로와 조금은 떨어져 있지만 운무에 싸인 가창저수지와 오리마을의 조망이 압권입니다.. 지금부터 오른쪽으로 간간히 조망을 열어주는 전망대를 여럿 지납니다. 









광덕사에서 60여분 쯤 올라서면 무덤이 있는 봉우리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왼쪽 원광사와 냉천컨트리클럽에서 올라오는 산길을 이곳에서 만나 오른쪽 최정산 헬기장 4.59km 방향으로 향합니다. 이곳부터 산길은 편안하게 능선을 타고가다 또 다시 봉우리를 오르는 것을 반복합니다.





발밑에는 지난해에 떨어진 낙엽의 감촉을 느끼며 걸어도 봅니다. 산길은 산행의 잔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한 코스로 꾸준히 발걸음을 움직여 또 하나의 이정표와 만났습니다. 가창저수지, 대원사에서 올라오는 코스로 산행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는지 등산로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최정산 헬기장은 왼쪽입니다. 다시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넘어 갑니다. 이번에는 스파벨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바위 전망대에 올라가 봅니다. 날씨가 흐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씩 눈발도 날리지만 아직은 걱정할 단계는 아닙니다.



갑자기 사람소리가 막 들립니다. 깊은 산릉에 무지개 색 파라솔도 눈에 들어오며 가건물이 보입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주암산 기도원의 기도객이 머무는 곳입니다. 곧 큰 바위가 보입니다. 배바위로 불리는 바위이며 이곳까지 기도객들이 올라와 고함을 지르며 죄의 사함을 해달라고 합니다. 아무리 종교의 자유도 좋지만 보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배바위를 내려옵니다. 곧 가장중학교 갈림길 이정표를 만나고 삼각점이 있는 주암산 정상입니다. 그런데 주암산 정상은 배바위로 봐야 맞을 것 같습니다. 산 밑 마을에서는 846.8m 삼각점 봉을 정상이라 하지 않고 846m의 큰 바위인 배바위를 보고 정상이라 불렀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편안하던 능선이 내려갑니다. 그러나 건너편에 봉우리가 보이는게 또 다시 오르막이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간간히 날리던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칠할 요령인지 굵은 눈발이 흩날립니다. 잠시 만에 온 세상을 하얀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올 들어 처음 만나는 눈이 너무 반갑습니다.





눈을 맞으며 정말 오랜만에 산행을 해 봅니다. 빠르게 걸음을 재촉합니다. 산길은 이동통신 기지국입구인 임도에 닿습니다. 여기서 왼쪽으로 임도를 따라 160m만 가면 최정산 헬기장입니다. 지형도상의 정상은 출입을 할 수 없는 통제지역으로 실질적인 최정산 정상입니다. 




이제 헬기장에서 하산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헬기장 오른쪽 맨 끝에 가창저수지 운흥사 방향 이정표와 함께 하산로가 열려있습니다. 함박눈이 온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분위기 있는 하산길을 내려 갑니다. 다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입니다. 




필자는 직진 길 대신 오른쪽 이정표 방향으로 꺾습니다. 운흥사 방향 하산길은 최정산의 북사면으로 이루어져 겨울철에는 빙판등 보이지 않는 위험에 주위를 해야 합니다. 또한 급사면에 너덜 길로 이어진 구간도 종종 나타나 주의를 하며 내려갑니다. 





그러나 함박눈을 이고 있는 용계천의 골짜기는 선계의 모습을 보여주며 너무 아름답습니다. 눈발도 그치고 고도를 낮출수록 완만한 산길로 바뀝니다. 헬기장에서 약 100분 걸려 운흥사로 하산하였습니다. 이제 위험한 곳은 없습니다.








운흥사는 천년고찰입니다. 대구광역시 전통사찰 3호로 신라 흥덕왕 때 운수화상이 동림사로 창건을 하여 조선 광해군에는 수암사로 바뀌었다 조선 영조인 1751년 치화대사에 의해 운흥사가 되었습니다. 대웅전에 봉안 된 목조아미타여래불이 보물제1814호로 지정이 되어 잇습니다.



이제 산행 출발지인 광덕사까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됩니다. 헐티재로 넘어가는 도로를 만나면 오1리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오동나무가 많았던 곳으로 보이며 전설속의 새인 봉황이 오동나무 꽃을 먹고 살았다는데 이곳 지세가 그 만큼 신비스러운 모습입니다. 가장저수지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얼마 안가면 광덕사에 도착합니다.



☞(대구여행/달성가창여행)대구 주암산~최정산 산행. 올해 처음 눈꽃 산행을 즐긴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최정산 산행 교통편.


부산에서 주암산~최정산 산행 출발지인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광덕사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열차가 편리하다. 부산역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무궁화와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하차를 한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칠성시장역에서 내려 칠성시장역(서문프라자 앞)버스 정류장에서 ‘가창2번 정대행’ 버스를 반드시 확인하고 타야 한다. 종점인 칠성고가에서 출발 시간은 오전 6시31분, 7시48분 9시02분 10시18분 11시36분에 있다. 산행을 마친 후 정대리에서 대구시내 방향으로 나오는 가장2번 버스는 오후 3시11분 4시23분 5시42분 6시57분 등 10시40분(막차)에 있다. 오2리와 광덕사 버스 정류장 도착은 약 10분 더하면 된다. ‘경상감영공원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동대구역으로 간다.

원점회귀산행이라 승용차를 이용할 수 있다. 신대구~부산 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수성 톨게이트를 빠져나온다. 월드컵로 대구 미술관(대구스타디움) 방면으로 좌회전하여경기장 네거리에서 유니버시아드로 범물 방면 우측도로를 약 1.2km 간다. 범안삼거리에서 범안로 범물동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삼덕톨게이트를 통과 후 4.8km 이동, 파동톨게이트에서 빠져나온다. 파동IC삼거리에서 청도 방면 우측도로를 약1.1km 이동하면 오른쪽 헐티로 각북 방면으로 꺾어 가창저수지 둑을 지나면 곧 광덕사가 나온다. 내비게이션은 가창면 광덕사 입력.




주암산~최정산 고도표


주암산~최정산 지형도









2015/01/14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구경하기.


2015/01/10 - (대구여행/대구중구근대골목투어) 이상화·서상돈 고택 찾아가기. 대구 중구 근대 골목 이상화 서상돈 고택을 만나고 왔습니다.


2014/03/15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대구 근교산 삼필봉~황룡산 산행.천리마의 전설과 함께하는이색산행 마비정 벽화마을.


2014/01/27 - (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2014/01/06 - (대구여행/달성여행)포레스트 스파밸리. 화려한 야경이 볼거리인 포레스트 빛의 축제에 깜짝 놀라다.


2013/12/18 - (대구여행/달성여행)팔공산 동화사에서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진행,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지로 될듯.


2013/11/27 -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도동서원의 아름다운 늦가을 모습.


2013/11/23 - (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 허브힐즈. 대구 허브힐즈에서 힐링을 하고 왔어요.


2013/11/17 - (대구여행/달성여행)국립대구과학관. '나도과학자' 국립대구과학관에 가면 누구나 과학자가 된다.


2013/11/16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읍 마비정벽화마을. 6~70년대 우리 어릴적의 모습 마비정벽화마을의 벽화로 만났어요.


2013/11/12 - (대구여행/달성여행/강정고령보)강정고령보 디아크, 물수제비 뜨기에 너무 좋을 것 같은 강정고령보 디아크.


2013/11/11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한국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온 곳은 어디, 사문진나루터와 화원동산 .


2013/11/01 - (대구달성군여행)100년 달성 꽃피다, 문화가 살아 숨쉬다 달성군 초청 여행블로거기자단 달성애 팸투어 달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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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구경하기.


대구에는 팔공산이 있고 팔공산에는 동화사가 있을 정도로 대구에서 유명한 사찰 동화사를 보고 왔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는 중생들의 병을 치료하는 약사여래 근본 도량입니다.



동화사적비를 근거로 신라소지왕 15년인 493년에 극달 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로 부르다가 흥덕왕 7년인 832년 심지 대사가 중창을 하면서 오동나무가 겨울에 상서로운 꽃을 피워 동화사로 개칭하였다는 설이며 또 하나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진표율사로부터 영심대사에게 전해진 팔간자를 심지대사에게 받은 뒤 팔공산에 와 이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세우니 이곳이 동화사로 첨당 북쪽 우물이 있는 곳이라 합니다.



이 두 설화에서 신라흥덕왕 7년에 심지대사가 중창이 아닌 창건을 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또한 중창과 중건을 거듭했는데 신라 말인 934년 영조선사, 고려시대로 넘어와 명종 20년인 1190년에 지눌보조국사, 충렬왕 24년인 1298년 홍진국사에 의해서 각각 이루어졌습니다

.


또한 조선시대에는 선조39년인 1606년 유정사명대사, 숙종3년인 1677년 상숭대사, 영조8년인 1732년 관허, 운구, 낙빈, 청월 대사 등에 의해 중창과 중건을 이루어 현재의 대가람이 이루어 졌습니다. 동화사의 당우는 대웅전을 위시하여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등 이 영조 대 중창 된 건물이고 1992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이 낙성 되면서 많은 건물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천왕문 격인 용호문을 들어서면 동화사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상서로운 새인 봉황은 대나무의 열매만을 먹고 오동나무에서 집을 짓고 알을 품습니다. 동화사 터를 풍수지리적으로 봉황이 알을 품은 모습인 ‘봉소포란형’의 지세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봉서루 앞 넓은 바위에 3개의 둥근 돌인 봉황알이 놓여져 동화사에 봉황의 정기가 서려서 인지 경건한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합니다.







먼저 봉서루를 지나 동화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을 향합니다. 보물 제1563호로 지정되었고 조선 영조 3년인 1727년 중건된 건물입니다. 정면3칸에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의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임진왜란 이 후인 1606년 사명대사가 학인에게 중창을 하게하고 1677년 개창을 하였습니다. 1725년 을사년 큰불로 소실 된 것을 1727년에 천순, 낙빈당 홍제, 홍우, 의삼등에 의해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전에는 어칸과 협칸에 꽃살문인 연꽃, 국화꽃, 금강저를 새겨 넣어 더욱 우아하고 화려하게 보입니다.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으며 보물 제 254호로 지정되어 금당암 입구에 있습니다. 당간을 세우기 위해 좌우에 지탱하는 돌기둥입니다. 통일신라 때부터 사찰 앞에 설치했던 구조물로 두개의 기둥사이에 기다란 장대를 세우고 의장용 깃발인 당(幢)을 매달아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였습니다.






현재 동화사에서 가강 많은 관광객과 불교신자들이 찾는 곳은 1992년 11월27일 완공하여 점안 봉안한 통일약사여래대불입니다. 높이가 17m, 거기다 좌대 높이만 13m 에 달하는 불상으로 15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갔습니다. 현재 약사여래불의 최대 둘레는 16.5m이며 총높이는 30m로 국내 최대의 입불상이다. 불교인 만이 아닌 국민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동화사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은 병들고 아픈 전 국민의 상처를 꼭 어루만져 낳게 해줄 것을 믿습니다. 이외에도 동화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동화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산내 암자에 흩어져 있는 비로자나불좌상, 비로암 삼층석탑, 금당암삼층석탑, 흥진국사부도 등의 보물과 문화재가 있습니다. 한참에 다 불러 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으로 다음 팔공산 동화사 여행에서는 이번에 보지 못한 여러곳을 꼭 찾고 싶습니다.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입장료와 관람안내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찾아가기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를 찾는 방법 

봉황문에서 오르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동화사의 주 출입구로 필자도 이곳으로 많이 올라 다녔습니다. 아마 동화사를 찾아오면 집단시설 지구로 오르는 도로 입구에 있습니다. 봉황문의 일주문을 통과하면 바로 우측 절벽에 창건당시 조성된 보물 제243호인 마애불좌상을 보게 됩니다. 옛 동화사를 오르는 길이라 창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걷다 108계단을 오르면 통일대불전 갈림길이 나옵니다. 지금부터 동화사를 둘러 보시면 됩니다. 또한 방법은 새로 조성된 집단 시설지구에서 동화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현재 동화문이 주 출입문이 되었습니다. 연못 앞에 걸린 다리를 건너면 관광안내소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여느 사찰의 천왕문격인 용호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동화사를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참고;동화사 홈페이지)




2014/11/10 - (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2014/07/02 - (대구동구맛집)팔공산동화사맛집 돌방구가든. 건강함이 가득한 식탁이라면 이정도 되어야죠??? 산채진미 나물 밥상 돌방구가든.


2014/05/31 - (대구맛집/팔공산 동화사맛집)자연산 송이로 맛을 내는 6천원 순두부백반 너무 맛있어요. 팔공산 동화사, 갓바위 맛집 산골기사식당


2013/12/18 - (대구여행/달성여행)팔공산 동화사에서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진행,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지로 될듯.


2013/12/12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병들고 아픈 국민들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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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대구중구근대골목투어) 이상화·서상돈 고택 찾아가기. 대구 중구 근대 골목 이상화 서상돈 고택을 만나고 왔습니다.


대구 중구 근대 골목 투어를 해보셨나요?  대구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대구중구근대골목길을 걷다보면 두 분의 고택을 만납니다. 저항시인이자 민족시인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이상화님과 국채보상운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민족운동가 상돈님 고택입니다 



이상화님과 서상돈님이 거한 고택은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참 그것도 우연한 인연인가요?. 먼저 이상화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이상화 하니까 먼저 생각나는게 스케이트 선수 이상화가 생각납니다. 그러나 그 이상화선수가 아닌 일제강점기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민족 정신을 일깨운 저항시인 이상화님 이야기입니다. 



대구중구근대골목 투어에서 동산·청라언덕을 내려와  3.1운동 거리와 계산 성당을 보고 나오면 도로 옆 인도에 이상화 서상돈님 고택을 알리는안내판이 있습니다. 왼쪽이 저항시인 이상화님, 오른쪽은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 서상돈님, 두분의 모자이크 인물화가 벽면을 장식합니다. 



이상화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에서  '지금은 남의 땅'으로 시작되는 첫소절이 보도블럭으로 깔려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이상화 서상돈 고택을 걸어 갑니다. 자연스럽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를 읊어봅니다. 


계산 성당의 모습도 모자이크로 만날 수 있습니다. 

대구 근대 역사를 한눈에 만날 수 있는 '대구 근대로의 여행' 안내판도 있습니다.



계산성당을 배경으로 한 이상화님의 멋진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제부터 이상화, 서상돈님 고택이 있는 골목이 시작됩니다. 


안내판도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그리고 근대문화 체험관 '계산예가'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웠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님의 고택을 찾아  가는 길은 수업시간 처음 시로 접할 때 그 감정이 되살아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골목길을 따라 60m 을 들어서면 만년에 그가 병마와 싸우며 마지막 여생을 보낸 아담한 고택이 나옵니다.  

 

이상화님의 간단한 프로필입니다. 


근대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계산예가의 모습입니다.

이상화님의 고택입니다.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 중심에 자리잡은 이상화 고택을 관람합니다. 




시인 이상화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1926년 '개벽'에 처음 발표가 됩니다. 작품의 배경지로 알려진 대구시 수성들은 시의 배경처럼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지금 수성들은  당시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하여 아파트가 밀집한 주택지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수성못에 가면 그 당시의 흔적인 이상화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배경지임을 보여주는 선생님의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대구고보 학생시절 부터 이상화님은 항일 운동을 시작합니다. 1918년에는 일제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은 '신라제의 노래'를 발표하고 1919년 3월8일에는 '대구 3.1운동'의 연락책을 맡아 만세시위를 주도합니다. 



 선생은 '금강송가' '역천' '이별'과 같은 일제에 저항하는 많은 시를 발표하여 우리의 민족혼을 살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 뒤 일본 도쿄로 유학길에 오르고 일본에서 그의 생활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선생 독립운동을 하는 친형 이상정을 중국에서 만나고 귀국하여 대구로 들어와 곧 공안에 체포가 됩니다. 그의 형 이상정을 만났다는 이유로 갖은 고문과 함께 옥고를 치르다 풀려납니다. 1937년 조선일보사 경북총국을 맡아서하다 그만두고 교남학교(대륜중·고교)에서 교편을 잡아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광복 2년 남겨 둔 1943년 3월 선생은 위암 선고를 받고 한달만인 4월25일 눈을 감습니다. 선생이 그렇게 소원하던 빼앗긴 들에 봄이 온것을 보지 못한채 말입니다. 대구 계산동 이상화 고택은 선생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머물렀던 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집의 구조를 보면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마당의 장독대, 선생이 울적할때면 항상 찾아 마음을 달래곤 하던 마당의 감나무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때 이상화 고택은 헐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2001년 11월 도로계획으로 곧 뜯기는 것을 알게된 대구시민은 '이상화 고택 보존' 서명 운동을 실시하고 고택을 보존하자는 염원이 일어 50만명이 서명운동에 동참 하였고 성금도 모금 되었습니다. 

 


이상화 고택 보존은 대구 시민 모두의 염원이라 하늘도 감동을 하였는지 군인공제회에서 아파트를 짓기위해 부지를 매입하면서 고택도 함께 매입하여 대구시에 기부체납을 하여 오늘의 이상화 고택이 남게 되었습니다. 고택은 고증을 거쳐 복원이 이루어 졌고 2008년에 대구시민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시인 이상화님은 생전에 네개의 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초창기에는 불교 용어인 '무량'으로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름과 똑 같은  두개의 발음으로 상화(尙火, 想華)를 사용하였습니다. 시인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1922~1926년에 사용된 尙火의 호는 '항상 불같이'란 뜻으로 저항시와 항일 운동으로 민족혼을 깨우치려는 선생님의 마음을 그대로 호에 나타내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호는 '백아 (啞)'로 백치와 벙어리를 뜻합니다. 광복을 갈구하던 선생의 참담한 마음이 담겨져 있는 듯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들어 봤던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의 시인 이상화님, 대구 중구 근대 골목 투어에서 꼭 한번 만나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구 용지봉에서 본 수성들입니다. 저기 일제강점기때 만들어진 수성못도 보입니다.




이상화 고택을 나와 맞은 편에 있는 서상돈 고택을 찾아갑니다. 평소에 역사 공부를 소홀이 했는지 필자는 조금은 생소한 분입니다. 그러나 국채보상운동 그 중심에서 앞장을 선 분으로 대구 제일의 갑부였다합니다. 먼저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조금은 알아보겠습니다. 대한제국때에 일본은 반강제로 우리 조정에 차관을 제공합니다. 그  속내는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한 야심으로 차관은 자꾸만 불어나 1907년에는 1,300만원 까지 불어나 우리나라로서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는 금액이 되었습니다. 요즘 뉴스에 종종나오죠. 그리스 등등 나라가 빛더미에 파산 일보 직전이라고요?. 그 당시 대한제국은 나라가 거들날 판이었습니다. 이를 기회로 일본은 서서히 야심의 발톱을 드러내면서 대한제국의 경제권을 조금씩  빼앗아 갔습니다. 나라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고 그것을 빌미로 일본에게 주권까지 빼앗길 판이 된 것입니다. 이에 국채를 보상하여 주권을 되찾자는 운동이 들불처럼 벌어진게 국채보상운동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에 대구 갑부 서상돈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1907년 2월 담배를 끊어 국채 1,300만원을 갚자며 제안을 하였고 본인 또한 담배를 끊고 그 당시 거금 800원을 의연금으로 기탁합니다. 이리하여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를 합니다. 그러나 일제는 국채보상운동 금지령을 발표하고 온 갖 방해 공작을 벌여 국채보상운동은 끝내 좌절을 합니다.

 


대구 최고의 갑부로 알려진 서상돈의 고택은 그저 평범한 모습으로 그 만큼 근검과 절약 정신으로 생활하여 대구 갑부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내만 잘 살고 배부르게 먹는 것은 큰 죄라며  봄, 가을 춘곤에는 그의 곳간을 열어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위에 배 굶는 사람을 없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선생은 꿈을 채 이루어 보지도 못하고 1913년 6월30일 64세로 타계 하였습니다. 대구중구근대골목 투어에서 위대한 저항시인 이상화님과 민족운동가 서상돈님을 만나는 여행은 무엇보다 나에게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2015/01/08 - (대구여행/중구여행)경상감영공원. 대구 시민의 도심공원인 경상감영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2015/01/07 - (대구여행/대구 중구 골목투어)대구근대역사관.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서 대구 근대 역사를 한눈에 만나는 대구근대역사관 관람.


2014/12/23 - (대구여행/대구근대문화골목여행)대구 마지막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에서 만나보세요.


2014/07/04 - (대구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다.갓바위


2014/06/24 - (대구여행/수성구여행)수성못 용지봉~병풍산 산행. 대구의 근교산 용지봉~병풍산 산행.


2014/03/15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대구 근교산 삼필봉~황룡산 산행.천리마의 전설과 함께하는이색산행 마비정 벽화마을.


2014/01/27 - (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2014/01/17 - (대구여행/중구여행)'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영원한 가객 김광석 벽화거리에서 만나다.김광석


2014/01/06 - (대구여행/달성여행)포레스트 스파밸리. 화려한 야경이 볼거리인 포레스트 빛의 축제에 깜짝 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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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 (대구맛집/중구맛집)대구중구 골목투어 미도다방, 보약 같은 쌍화차가 맛있는 옛날식 다방 미도다방을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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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대구 중구 골목투어)대구근대역사관.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서 대구 근대 역사를 한눈에 만나는 대구근대역사관 관람. 


대구여행에서 대구의 근대 역사를 한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하여 찾아갔습니다. 위치는 대구 경상감영공원 옆에 있습니다. 새 주소로는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67(포정동 33번지)입니다.



지금은 대구근대역사관으로 활용을 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 건물로 1932년 조선식산은행으로 건립이 되었습니다. 그 후 해방과 함께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 건물로사용이 되었고 대구도시공사에서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매입을 한 뒤 복원과정을 거쳐 대구시에 기증을 하여 현재에는 대구시민의 휴식처인 ‘대구근대역사관’이 되었습니다.



대구근대역사관 건물의 형태를 보면 지상 2층에 지하 1층으로 르네상스풍의 근대 건축물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아 2003년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대구의 근대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한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실, 체험실, 문화 강좌실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대구근대역사관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구여행/대구 중구 골목투어)대구근대역사관.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서 대구 근대 역사를 한눈에 만나는 대구근대역사관 관람 안내.


대구근대역사관 관람 안내입니다. 대구근대역사관 관람시간은 하절기인 4월~10월에는 오전 9시~오후 9시, 동절기인 11월~3월에는 오전 9시~오후 8시 마감. 또한 토·일·공유일에는 하절기 오전 9시~오후 7시, 동절기에는 오전 9시~오후 6시 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 합니다.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휴관이며 1월1일 추석, 설날 당일은 휴관입니다. 대구근대역사관 관람 문의는 053-606-6430
























2014/12/23 - (대구여행/대구근대문화골목여행)대구 마지막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에서 만나보세요.


2014/11/16 - (대구여행/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팔공산마애약사여래좌상. 약한자든 힘 없는 자든 모든 중생을 보살펴줄 것 같은 마애약사여래불


2014/11/10 - (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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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대구근대문화골목여행)대구 마지막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에서 만나보세요.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 2코스를 걷다가 해설사님의 안내로 찾아간 곳입니다. 대구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요정 ‘가미’입니다. ‘가미’에 대해서 포스팅 전에 먼저 대구의 요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대구의 요정시대는 ‘근대로의 여행 골목(대구 광역시 중구 발행)’을 참고하였습니다.



대구에서 요정이 성업을 하게 된 배경은 일제강점기 때입니다. .1904년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면서 대구에 일본인들의 거주가 많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구역 인근에 달성관, 명석, 화월, 대화, 야상옥, 동경관, 자유사, 대판옥등 많은 요릿집이 들어섰습니다.




그 후 1909년 4월 조선시대로부터 내려왔던 기생의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 기존의 기생들은 생업을 위해 1910년 5월에 대구기생조합을 결성하게 됩니다. 기생들은 대구역 근처의 요릿집 등에서 춤과 노래를 부르며 가야금 등을 탓 고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대구권번이 1922년 6월, 대구 기생조합 후신인 달성권번은 1924년 1월에 설립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아이들 그룹의 기획사쯤 될 것 같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기생들의 교육과 관리 그리고 알선, 화대 징수 등 기생들의 전반적인 업무 일을 맡았습니다. 대구와 달성권번에서는 도수원, 금호관, 해동원, 식도원, 청수원, 수향원 등 그 당시 대구에서 유명한 요릿집에 기생을 공급해오다 1942년 권번제도가 폐지됩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요릿집과 권번을 합친 ‘요정시대’가 들어서는데 권번에서 공급을 하던 기생을 요정에서 숙식과 금전, 교육 등을 모두 담당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바뀌게 됩니다.



대구에서 유명세를 날리던 요정은 1950년대 죽림헌, 칠락, 삼한관, 계림관, 대구관 등이 있었고 1960년에 들어와 춘앵각, 청수원 신남정등이 성업을 하였습니다. 그 명맥은 80년대 초까지 단추방, 가람, 가락, 십전방, 태금 등의 요정으로 이어져 오다 국민정서와 맞물려 차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당시의 대구 요정 명맥을 잇는 곳이 ’딱‘ 한곳 남아 있는데 대구 요정의 전통을 잇는다는 ’가미‘입니다. 대구중구 종로1가의 주택가 골목에 있습니다. 1962년에 ’식도원‘으로 처음영업을 시작하여 1986년에 ’가미‘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현재에도 예약으로 요정 영업을 하고 있는 가미는 이방인으로서는 궁금했던 요정에 대해 많이 알 고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제시대의 기생과 권번, 1960년대로 넘어오면서 시작된 요정이 대구에 130여개나 있었다는데 그 당시 요정의 위치가 미니어쳐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기생과 권번에 관한 문헌과 진술을 수집한 한 개인의 열정이 만들었습니다. 고지도인 혼천전도, 북한 화가의 금강산 등 풍경화와 태극 문양인 세필 금강경 반야심경, 농산스님 서예작품등이 방마다 전시되어 있으며 기생과 요정의 역사관이 2층에 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곳을 보면서 필자가 생각하고 있던 ’요정‘의 개념도 많이 바꾸게 되었습니다. 티비에서만 봐 왔던 요정의 이미지를 가미에서 불식시키게 되었던 그죠. 대구에서 딱 하나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에서 만날 수 있는데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입니다. 그러나 문화해설사님의 해설에 의하면 평소에는 개방을 하지 않는 곳이라 하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에서 만나는 대구에 남은 마지막 요정 '가미'를 사진으로 만나보기

































2013/12/14 - (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대구 여행의 필수 코스 청라언덕의 제일교회에 깜짝놀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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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팔공산마애약사여래좌상. 약한자든 힘 없는 자든 모든 중생을 보살펴줄 것 같은 마애약사여래불


팔공산은 대구광역시와 군위, 경산등에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너른 품이며 시내에서 바라본 팔공산은 독수리 가 날개를 펼쳐든 산릉이 길게 이어져 대구사람들은 팔공산맥이라 부릅니다. 팔공산의 최고봉은 비로봉입니다. 정상을 호위한 위성봉은 좌청룡 우백호의 동봉과 서봉으로 이들 두 봉우리와 함께 삼두마차를 이루고 있습니다.

 



 

좌우로 뻗어 나간 능선과 봉우리에 보석처럼 빛을 내는 바위는 마치 기치창검을 두른 모습입니다. 그런 만큼 능선에는 옹골찬 기세로 기암괴석이 많아 사시사철 탐방객과 산꾼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넓은 품에서 수많은 계곡을 타고 내리는 명산명수의 팔공산은 많은 암자와 사찰이 곳곳에 포진하여 요즘 같은 가을철에는 더욱 즐거운 곳이 됩니다.


 

이제 자신의 몸을 불태우든 정열의 단풍도 한풀 꺾였고 대구 근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많은 문화재를 이곳 팔공산에서는 수시로 만나고 볼 수 있어 그 재미가 솔솔 합니다. 팔공산 사찰 순례를 하다보면 대부분 사찰과 암자들이 등산로 입구나 7부 능선에 자리를 잡아 수월한 편이지만 관봉으로 불리는 갓바위와 비로봉 정상 아래에 있는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은 여간 큰마음을 먹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부처님입니다.


 

갓바위 부처님은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 준다”는 소문으로 행렬의 줄이 꼬리를 물어 선본사에서 편하게 오를 수 있지만 비로봉 암벽에 새겨진 마애약사여래좌상은 어지간한 불심이 아니라면 엄두를 낼 수 없는 곳입니다. 팔공산 쪽 서봉을 찾는 다면 꼭 찾아보는 필자는 오랜만에 서봉~파계사 산행을 하면서 산행 경로를 벗어나 찾아 갔습니다. 가을의 정취도 불어오는 겨울 앞에는 맥을 추지 못한 듯 마애약사여래좌상에는 세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누구의 정성인지 일찍부터 부처님 좌우로는 긴 촛대에 불을 밝혀 두었습니다. 이곳의 부처님도 갓바위 부처님과 같은 약사여래불로 약사발을 든 모습이며 중생들의 질병과 아픔 ,고통, 재앙을 소멸 시켜주는 부처님 입니다. 먼저 합장을 하며 기도를 합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인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불상의 왼손에 둥근 약그릇을 무릎위에 올려둔 모습이며 통일신라때 불상으로 자연암벽에 돋을새김을 하였습니다. 전체적인 불상은 선이 뚜렷하며 이목구비 또한 조화와 균형을 잘 이룬 모습입니다. 


 

오똑한 콧날에다 힘있는 턱과 눈썹, 잘록한 허리는 한결 세련미을 나타내 줍니다. 어깨는 둥글고 탄력감이 있으며 편단우견에 오른쪽 어께를 드러내며 왼쪽 어께로는 흘러내리며 비쳐지는 얇은 옷의 옷 주름 간격이 유려하며 규칙적이고 가슴에서 옷깃이 한번 뒤집어지는 것은 8세기에 제작된 불상임을 보여 줍니다.


 

불상 뒤로는 이중의 광배를 표현하였는데 화려하게 조각된 무늬가 부처님의 몸에서 나는 빛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광배의 안쪽과 바깥쪽에는 당초무늬와 불꽃무늬를 새겼고 불상을 안치한 연꽃대좌는 복련과 2겹의 앙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좌 아래에 두 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떠받드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대좌 밑을 받치는 용의 모습은 처음 보았고 특이하게 여겨졌습니다.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산 1번지에 위치를 하며 해발 약 1000m의 높이에 있습니다.(참고:문화재 안내판)


 

 

 




2014/11/10 - (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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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대구 팔공산 파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입니다. 804년 애장왕5년에 심지왕상이 창건을 하였는데 파계사의 유래를 보면 ‘파계(把溪)’란 ‘물길을 잡는다’란 뜻으로 절 주위로 아홉 갈래의 계곡이 어지럽게 흩어져 땅의 기운을 한곳에 모우기 위해 절 아래 연못을 파고 파계사를 창건하게 되었다합니다.

 


현응대사나무

그 후 1605년인 선조38년에 계관이 중창을 하였고 1695년 숙종21년에 현응이 삼창을 하여 오늘날의 파계사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파계사는 영조임금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에도 영조대왕의 도포와 영조임금 나무인 느티나무가 파계사에 남아 있습니다.



왜 영조대왕의 원찰을 파계사라 할까요. 그 이유를 보면은 조선의 19대 임금은 숙종입니다. 숙종은 후궁 화경 숙빈 최씨를 위해 파계사의 현응에게 세자 잉태를 위한 백일기도를 부탁 합니다.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숙빈 최씨의 꿈에 농산화상이 전세의 과보에 따라 숙종의 왕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을 현몽하였고 훗날 백일기도로 태어난 분이 연잉군입니다.



연잉군은 숙종과 장희빈에서 태어난 20대 경종의 뒤를 이어 조선 제21대 임금에 오른 영조입니다. 왕자를 생산하게 된 숙종은 그 보답으로 파계사 주위의 40리를 파계사에서 세금을 거둘수 있도록 명을 내리지만 현응은 그 대신 선대임금의 위패를 모실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올려 선조, 숙종, 덕종, 영조 네 분의 신위를 기영각에 모심으로 조선 후기에와 더욱 기세가 높았던 숭유억불정책의 칼바람을 피해 갈 수 있었다합니다.



1979년 파계사 원통전 관음보살상을 금칠하게 되었는데 불상안에서 영조의 어의가 나왔다 합니다. 1740년 건륭 5년 9월에 제작된 도포와 발원문에는 ‘탱불 일천불’을 희사하고 파계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며 대왕의 청사상의를 복장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럼 파계사의 문화재를 하나하나 만나 보겠습니다.



먼저 매표소 전에 만나는 오래된 나무를 현응대사 나무라 부릅니다. 현응대사는 파계사를 삼창하고 숙종의 부탁을 받아 백일기도로 숙빈최씨에게 훗날 영조대왕인 왕자를 잉태케하였습니다. 수령이 260년 쯤 된 느티나무로 현응대사의 공덕을 기려 부르는데 팔공산에 단풍이 한창 들때 찾아간 파계사. 천년세월의 절집과 함께 너무 잘 어룰리는 고목이었습니다. 

 


파계사는 문화재 관람을 위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통과해야 합니다. 일반 1,500원이며 승용차 주차비는 2,000원입니다.일주문을 통과하고도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파계사 주차장에 닿기 전에 왼쪽에 파계지로 불리는 저수지입니다. 파계사의 아홉갈래 물길을 한곳에 모아 땅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팠다는 연못으로 파계사 창건 유래와 함께 합니다. 

 


먼저 파계사 안내도를 일별합니다. 파계사 경내를 들기위해서는 반드시 만나게 되는 큰 나무가 있습니다. 영조임금나무로 키가 엄청 큰 나무입니다. 


영조임금나무

수령이 약 250년 느티나무로 보호수며 높이가 17m, 둘레는 3.8m. 영조임금의 치적과 현응대사의 백일기도로 영조임금이 탄생하였고 왕실의 원당에 영조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어 영조임금나무로 이름을 붙였다합니다.




먼저 진동루 입니다.진동루는 파계사의 유래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절 주위로 아홉갈래의 물줄기를 따라 새어나가는 땅의 기운을 잡기 위해 연못을 파고 파계사라 하였는데 그것으로는 이곳의 기운을 모두 다스릴 수 없어 경내로 들어오는 입구에 문을 세우고 ‘진동’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먼저 계단을 올라 1층의 누문을 들어서면 파계사 경내에 들어서게 됩니다. 100여평의 넓이에 정면5칸, 측면3칸의 2층 규모로 팔작지붕을 올렸습니다. 현판에 팔공산 파계사가 걸려 있습니다. 정면으로 원통전과 좌측에 설선당, 우측에 적묵당입니다. 




 원통전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파계사 적묵당입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9호이며 조선 광해군 12년인 1620년에 처음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 후 숙종21년인 1695년 현응이 삼창을 한 후 1920년에 중건을 한 후 보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적묵은 ‘눈을 감고 조용히 명산한다’는 뜻으로 스님의 수양 공간 같습니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규모로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팔작지붕이며 기둥 위에 공포를 두지 않고 기둥사이에 작은 접시 모양을 한 소로를 끼운 조선후기 건물로 소박한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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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전을 기준으로 왼쪽은 설선당입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이며 대중의 공양간과 강습소로 사용하였던 건물입니다. 1623년 인조 1년에 계관법사가 중수를 하였으며 1646년과 1725년에 중건을 거듭하여 1976년에 현재의 모습을 하였습니다. 건물은 정면7칸, 측면7칸의 규모로 적묵당과 함께 아름다운 곡선를 가진 팔작지붕입니다. 초석은 북을 엎은 모양으로 그 위에 공포를 두지 않은 둥근 기둥을 세웠습니다. 간결하며 견실한 모양의 민도리집 구조양식입니다. 








원통전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20호 영조임금의 도포와 보물 제992호인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 유물이 있습니다. 파계사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대웅전이 아닌 원통전에 관세움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습니다. 원통은 ‘진리는 원만하여 모든 것에 통해 있다“는 뜻으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지붕 처마를 박치기 위해 커다란 역삼각형으로 짜 맞춘 공포를 두 기둥사이에 장식한 다포양식으로 17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삼베에 여러번 옻칠을 도포한 방식의 불상입니다. 1979년 불상을 금칠할 당시 복장유물로 영조임금의 도포와 발원문이 함께 나왔고 1447년 세종29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1m8cm이며 머리에는 3중의 화관을 씌었고 목의 삼도와 오른손과 왼손에 나타난 손가락과 손바닥 모양을 보면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보물 제1214호 파계사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담은 불화입니다. 1707년인 숙종33년에 연잉군이 왕자일 당시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시주한 불화이며 길이가 340cm, 폭은 254cm.  



파계사 기영각은 연인군이 탄생하면서 그 보답으로 현응의 청원을 받아들여 조선왕실의 위패를 모신 전각입니다. 숙종35년인 1696년에 현응이 창건. 정면3칸 측면2칸으로 팔작지붕이며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혀처럼 앞으로 나온 두 개의 익공에 연화와 연봉 등으로 위와 아래에 화려한 장식을 한 조선 후기 이익공계 양식을 한 모습입니다.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11호.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8호인 파계사 산령각의 창건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1976에 중건을 한 후 1979년에 보수를 하였습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옆면에서 보면 사람인자인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기영각과 같은 공포를 사용하였는데 익공에 연봉과 연화로 장식하고 보 머리에 봉황머리를 끼운 초익공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팔공산 파계사를 찾았을 당시 추색으로 완전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지장전 가는 길에서 본 파계사 왼쪽 언덕은 그야말로 만추의 분위기를 보여 주어 아름다운 절집에 매료되어 넋을 빼고 바라보다가 일행의 그만 내려가자는 말에 부랴부랴 내려 왔습니다. 고즈넉한 파게사의 가을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안내판을 참고하였습니다. 





영조임금나무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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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다.

대구의 팔공산은 신라5악의 하나인 중악으로 신라시대 때부터 불교 성지로 여겨졌는지 많은 유서 깊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중 팔공산을 대표하는 불교 유적은 팔공산 맨 동쪽 끝에 자리한 관봉 석조여래좌상으로 머리에 이고 있는 편편한 돌이 갓 같아 갓바위 부처님으로 부릅니다.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곳을 관봉이라 합니다. 이 높은 꼭대기에 이런 큰 부처님을 조성해 놓은 것을 보면 옛 신라인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 바위를 끼워 맞추어 조각을 한 것이 아닌 모두가 하나의 큰 자연석으로 조성하여 4m가 넘는 아름다운 불상으로 빚었고 더군다나 불상과 대좌를 한 돌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천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미륵신앙이 발로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갓바위 부처님을 1930년때까지는 미륵불로 불렀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56억7000만 년 뒤에 사바세계에 나타나 구원해 준다는 미래의 부처님으로 이곳 관봉 석조여래좌상이 곧 미륵불이라 필자도 생각됩니다.


 

 

그만큼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앉아 있는 위치와 석불의 모습이 사바세계의 중생을 모두 구원 해 주고도 남을 것 같은 모습입니다.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는 미륵불로 불리던 관봉석조여래좌상을 약사여래불로 불렀습니다.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의 왼손 바닥에 작은 약함을 들고 있어 병들고 아픈 중생을 모두 구원해주는 약사여래불에 오늘도 많은 신도분이 이곳 갓바위부처님을 찾고 소원을 빌며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보면 갓바위부처님은 멀리 부산 쪽을 바라보고 계시다하여 특히 부산에서 찾는 신도가 많으며 소원도 잘 이루어 준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편견을 두고 그러 실리야 있겠습니까. 우리 3천500만 국민에게 골고루 모두 복을 내려 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갓바위부처님은 부처님 몸에서 나는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없습니다. 그 대신 자연석 암벽이 부처님을 호위하듯 병풍을 치고 있습니다. 불상의 민머리 위에는 큰 육계가 뚜렷하며 얼굴은 풍만하고 탄력이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 상호인 백호가 도드라져 있습니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며 목에는 삼도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대좌는 신체에 비해 작고 상현좌를 하고 있으며 군위 제 2석굴암의 본존불 대좌와 유사하고 무릎위에 올려진 두 손은 석굴암의 본존불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는 것인데 이를 두고 약사여래좌상이라 하며 9세기의 대표적이 불상입니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하여 오늘도 갓바위부처님을 찾아 긴 행렬이 이어집니다.  보물제431호

 


 

 

☞(대구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다. 갓바위 대중교통편

 

갓바위 오르는 입구 교통편은 두곳이며 오르는 산길도 두곳입니다. 대구역에서 나와 오른쪽 육교 방향으로 내려가 육교를 건너지 말고 육교 아래에서 401번 버스를 타고 진인동 종점(갓바위집단시설지구)에서 내리면 됩니다.  이곳 갓바위 오르는 코스는 엄청 힘이 듭니다. 또한 방법은 경산역에서 나와 경산역(서부1동주민센터)앞 버스정류장에서 803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를 한 후 30분 길을 올라가면 갓바위에 닿습니다(산보수준). 버스 시간은 경산출발 6시45분 첫차를 시작으로 막차 오후7시45분까지 매시 15분과 45분에 출발을 합니다. 자가운전시에는 내비게이션에 경산 선본사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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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수성구여행)수성못 용지봉~병풍산 산행. 대구의 근교산 용지봉~병풍산 산행.


대구를 대표하는 산은 팔공산과 비슬산으로 산림청 선청 100대 명산에 올라 있다. 이외에도 분지답게 대구를 두르며 많은 산들이 능선을 연결하고 있는데 그중 용지봉과 병풍산은 수성구 수성못을 등지고 솟았고 비슬지맥과 능선이 연결된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 용지봉은 오래 옛날 대홍수가 났을 때 정상에 용 한 마리 앉을 자리밖에 남지 않고 물에 잠겼는데 멀리서 보면 그 모양이 흡사 뾰쪽한 용의 뿔과 같은 모습을 하여 용지봉이라 불렀다. 지금보면 딱 맞아 떨어지는 전설로 그 용의 끝터머리인 꼬리에 수성못이 자리하니 말이다. 또한 들머리에 있는 수성못과 수성들은 민족시인이자 저항시인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오는가’의 배경이 된 곳이다. 수성못은 1925년 일제 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건설되어졌으며 현재에는 대구시민이 가장 즐겨 찾는 수변 공원이 되었다. 일본인 미쓰사키린따로가 총독부와 자신의 재산을 보태어 완공하였던 수성못은 1983년 유원지로 개발되었고 2007년 10월에는 수성못 영상음악분수시설을 완공하여 5~10월까지 레이져 쇼, 워터스크린, 고사분수등 매일 2회 야간 공연을 실시하여 대구에서는 물론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수성못

 




 




'수성목 그 100년의 길' 갤러리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수성못 용지봉 등산로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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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니봉~용지봉~병풍산의 산행 경로를 보면 수성못 등산로 입구~화장실~법이산 전망대~법이산 봉수대~배트민턴 연습장~산불초소~애기봉~용지봉~백련사 갈림길~진밭재 갈림길~감태봉 직전 갈림길~감태봉~광산고개표지석~병풍산~비내고개~상원리 버스 정류장 순으로 GPS거리는 약14.5㎞며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5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나쁜 청설모

 




 




 




 




 




법이산 정상 삼각점이 있다.

 



용지봉 들머리는 대구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이라 많은 곳에 열려 있다. 아침 등산 코스로는 물론이며 주말 대구시민이 찾는 근교산으라 많은 사람들로 평일에도 붐비는 산이다. 필자가 찾았던 수성못은 겨우네 숨죽였던 묵은 때를 털어내는지 나무마다 봄물이 한창 올라 푸르름이 막 돋아 나고 있었다. 수성못 나무덱에는 80여년 전 피를 토했던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의 배경을 나타내는 ‘수성못 그 100년의 길’ 이상화선생를 보고 시도 감상하며 수성못 남서쪽 끝 도로건너에 ‘수성유원지 숲길 안내도’ 앞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화장실과 법이산~용지봉~병풍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어 산행 전에 참고를 하자. 유원지답게 키큰 소나무가 잘 정비되어 있고 등산로 또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법이산 봉수대

 




 




 




 




 




 




 




 



산행로의 이정표에 용지봉과 숲속쉼터 방향을 보고 오른다. 수성못 유원지를 끼고 있는 등산로라 시민들이 많이 나와 산책을 즐기며 능선에 닿으니 청설모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았는지 떠나지 않고 있다. 수성못 인근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많이 개설되어 있지만 무시하고 능선길만 타면 된다. 30여분을 걸으면 삼각점이 있는 법이산 정상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면 정면에 앞산의 능선이 길게 펼쳐진다. 50m 후면 법이산 봉수대와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을 보면 돌로 쌓았고 둘레는 50m 정도다. 남쪽의 밀양에서 청도를 거쳐오는 신호를 북쪽의 경산 성산봉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베트민트장이 있는 체육시설, 사거리 고개다.


 




 




 




 



멀리 산불초소가 보인다


 



O자형 소나무


 




 



애기봉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그리 험하지 않으며 10여분 후 우측의 전망대에서 주변 풍광을 일별할 수 있다. 30여분 부지런히 걸어면 안부사거리에 배드민턴장이 설치된 체육시설을 만난다. 이정표에는 오른쪽은 가창 저수지 1.6km, 왼쪽은 용지체육공원 1.5km, 범물배수지 1.0km, 이곳에서 직진 용지봉 1.7km 방향이다. 잠시 숨을 고르면 산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올라간다. 산불감시초소직전에 파동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산불초소를 지나고 용지봉 직전의 봉우리인 애기봉(556.0m)에 오른다. 정상 부근에 송전탑이 있다. 오른쪽의 가창면 행정리와 상원리가 움푹 파여져 아늑한 느낌을 준다. 왼쪽의 병풍산을 보면 갈길이 까마득하다. 용지봉 정상 아래 보이는 팔각정에서 앉아 쉴 욕심으로 걸음을 옮긴다. 덱계단으로 이루어진 용지봉 정상 오름길은 조망 또한 시원하다. 10분이면 헬기장이 설치된 정상에 닿고 360도 시원한 조망을 열어준다. 대구 시내와 출발지 였던 수성못이 보이며 5㎞를 걸어온 긴능선이 완전히 확인된다. 대구 앞산과 산성산, 대덕산 능선도 하늘금을 긋고 가야할 능선에는 길게 가르마가 파여져 감태봉과 병풍산으로 이어진다.




 




 




 




 




 




 

 




용지봉 정상


 




 




 



백련사 갈림길


 



하산길을 재촉해야 시간내에 내려 갈 것 같다. 능선을 따라 진행 방향으로 5분만 내려서면 이정표에 왼쪽 백련사 0.8km 방향 갈림길이 나온다. 병풍산은 직진인 진밭골 방향. 방화선인지 임도길인지 넓게 파여진 능선을 따른다. 임도급의 능선길이라 산악오토바이가 굉음을 울리며 올라와 있다. 평탄한 소나무 능선길을 40분쯤 가면 사거리인 진밭재가 나온다. 걸어온 능선이 마치 용이 물결을 치듯 꼬리를 흔들며 용지봉 방향으로 달려 가는 모습일 정도로 유순하다. 왼쪽은 진밭골입구(0.25km)로 내려간다. 이곳 골짜기는 논과 밭농사를 짓지 못할 정도로 물구덩이를 이루어 수전 도는 물밭으로 부르다 질다는 의미인지 진밭골이 되었다. 이정표상 감태봉은 0.8km 직진한다.




 




 




 




 




 




 




 




 




 




 



10여분 후 왼쪽 대덕산 갈림길이 나오고 병풍산은 오른쪽이다. 오늘 산행의 최고 급경사를 오르는 코스로 코가 지면에 닿을 정도다. 대덕산 갈림길의 능선에 오르면 한숨을 돌리게 된다. 이정표를 보면 왼쪽 진밭골 정상 0.28km, 진행방향은 오른쪽 성암산 5.05km 방향. 2분 뒤에 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감태봉에 도착한다. 오른쪽 멀리 소나무 숲 사이로 용지봉과 걸어온 능선길이 길게 이어지며 사람의 발걸음이 세삼 무섭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왼쪽으로는 경산역 인근의 성암산도 보인다. 능선길을 5분정도 내려서면 사거리를 지난다. 왼쪽은 욱수정 0.8km, 오른쪽으로 봉우리를 돌아나가 능선에 닿고, 다시 5분이면 광산고개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성암산과 병풍산이 이곳에서 갈라진다.




 


감태봉 정상


 





 




 




 




 




 




 




 




 



또한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경산시의 경계를 짓는 봉우리로 달성군 가창면의 주석 광산 인부들이 경산지역으로 넘어 다닌 고개마루라는 설명이다. 왼쪽은 성암산 5.0km, 비내고개로 가기위해서는 오른쪽 경흥사 병풍산 방향으로 들어선다. 살짝 내려서고 병풍산 우회길이 왼쪽으로 내려간다. 병풍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10여분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정상에는 병풍산 정상석이 서 있고 조망은 신통 찮다. 하산을 위해서는 직진해야 비내고개로 내려간다. 잠시 후 병풍산 우회길과 만나고 정상에서 15분이면 임도가 지나가는 사거리 비내고개에 닿는다. ‘달성가창 누리길 3구간 안내’안내도가 설치해 있고 오른쪽 가창 방향 임도를 내려간다. 40여분 임도를 내려오면 산행이 끝나고 상원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수성IC에서 내려 톨게이트를 지난 후 좌회전, 다시 경기장네거리에서 우회전한다. 1.2㎞ 이동 후 범안삼거리에서 범물동 방면으로 좌회전, 1.1㎞ 가다가 앞산순환로 삼덕톨게이트를 지난 후 2.4㎞쯤 직진한다. 범일초등학교 앞에서 범안로3길을 따라 우회전해 500m쯤 가서 수성못 방면으로 좌회전, 2㎞가량 이동하면 수성못에 닿는다. 산행 후 차량 회수를 위해서는 날머리인 상원리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야한다. 가창2번 버스는 오후 3시50분, 5시5분, 6시20분, 7시40분 등이 있고 택시 요금은 7000원~8000원선이 나온다. 이 버스는 대구역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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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어디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여행을 떠날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럴 경우 숙소가 가장 많은 문제점이 되는데 대구여행에서는 그런 경우를 싹~~ 지울 수 있었습니다. 

1박2일 대구여행에서 포레스트12의 숙박시설을 이용하였는데 입구의 스파밸리에서 ‘포레스트 빛의 정원’도 둘러보고 겨울철에 개장한 야간썰매장에서 신나게 아이들과 즐기며 뛰놀다 ‘빌라드포레’에서 따뜻하게 피로를 풀 수 있습니다. 

황토방으로 각각 독립된 형식으로 지어져 기족끼리 너무 좋았습니다. 포레스트12는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조용하며 숲과 함께 상쾌한 기분을 마음껏 느낄 수 있습니다. 

숲과 바람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가 문지방 앞에서 들리고 각종 나무들이 내뿜는 생명의 소리는 우리를 더욱 건강하고 풍성하게 해줄 것 같습니다. 이곳 포레스트12의 빌라드포레는 편백나무와 황토벽돌로 마감을 하여 음이온과 피톤치드가 다량으로 뿜어져 나와 들어서면 내내 상쾌한 기분을 만들어 줍니다. 

건강하고 여유롭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포레스트12 빌라드포레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 고 왔습니다. 빌라드포레는 빌라드포레 한실과 스위트, 그리고 호텔타입 스텐다드로 꾸며져 있습니다. 저희는 한실을 택했는데 역시 따뜻한 온돌이 최고였습니다. 아 침대도 있더군요.


 





이용시간은 입실 15:00/퇴실 오전11:00

빌라 드포레 이용요금

 객실명  객실종류  객실수  기준인원  최대인원  주중1월1일~3월31일  주말 1월1일~3월31일
 빌라드포레  호텔스텐다드  12  2명  3명  15만원  20만원
   한실스텐다드  14  2명  4명  15만원  20만원
   한실(취사형)  3  2명  4명  17만원  22만원
   스위트  3  4명  6명  30만원  40만원

 20:00시이후 체크인시 070-7005-5312로 사전에 연락바랍니다.


  • 조식(기준인원에 한함)포함, VAT포함

  • 기준인원 : 조식이 제공되는 인원 수 


  •  최대인원 : 객실당 최대로 수용 가능한 인원 수



◆빌라드포레 이용 안내와 객실 이용 안내




◆포레스트12 한실 스텐다드와 취사형 숙소◆










































































































☞2013/12/03 - (대구여행/중구여행)북성로 공구 박물관,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어요, 북성로 공구 거리 박물관을 만나다.


☞2013/12/09 - (대구여행/계산성당)"육영수군과 박정희양"의 결혼식이 열렸던 뾰쪽탑의 대구 계산성당을 여행가기


☞2013/12/12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병들고 아픈 국민들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나다.


☞2013/12/14 - (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대구 여행의 필수 코스 청라언덕의 제일교회에 깜짝놀래다.


☞2013/12/18 - (대구여행/달성여행)팔공산 동화사에서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진행,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지로 될듯.


☞2014/01/17 - (대구여행/중구여행)'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영원한 가객 김광석 벽화거리에서 만나다.김광석


☞2014/01/06 - (대구여행/달성여행)포레스트 스파밸리. 화려한 야경이 볼거리인 포레스트 빛의 축제에 깜짝 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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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중구여행)'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영원한 가객 김광석 벽화거리에서 만나다.


서 대구광역시 중구 방천시장에가면 가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전국의 벽화거리를 많이 다녀 보았습니다. 통영의 동피랑벽화마을, 수원의 행궁동과 지동벽화마을, 대구 달성의 마비정벽화마을등 모든 벽화마을은 고전이나 동화 또는 작가의 예술을 승화시켜 벽화 작품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러나 대구 중구의 봉천시장 벽화는 조금은 특별한 벽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8~90년대를 청년기로 보낸 분들은 모두 다 알고 있는 김광석을 기리는 골목입니다. 그는 방천시장의 전업사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은 시장에서 뛰어 놀고 자랐습니다. 커서는 방천시장이 그의 속을 채워주는 고향이었습니다. 그는 현재 없지만 그는  이곳을 떠난 것이 아니라 영원히 방천시장 골목에서 노래를 하며  웃고 떠들고 팬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호흡하고 있습니다. 방천시장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영원히 그의 주옥 같은 노래로 채워질 것 같습니다. 



 

 

대구여행중 ‘근대로의여행 골목’ 4코스인 ‘삼덕봉산문화길’ 중간에 있는 영원한 가객 김광석의 삶과 그의 음악등 그의 모든 것을 테마로 조성한 벽화거리입니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일어나’등 그의 주옥 같은 노래를 그가 뛰어 놀았던 350m의 둑방길 아래를 걸으면서 그와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그의 모든 것이 이곳 벽화거리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김광석 벽화거리. 대구여행에서 요즘 꼭 보고 온다는 김광석 거리를 저도 보고 왔습니다.


   

 

 

☞(대구여행/중구여행)'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영원히 노래하는 가수 김광석 하늘의 별이 되다.


김광석(金光石. 1964.1.22~1996.1.6)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로 그는 이곳 방천시장에서 출생하고 취학 전까지 그 곳에서 살았습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을 하며 동아리 활동을 하였고 1984년 12월에 김민기를 만나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1집에 참여하여 가수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후 1,2회 정기 공연회에도 참여를 하고 ‘동물원’을 결성하여 보컬로서 1집과 2집을 녹음하며 가수로서 인정을 받아 1989년 솔로로 데뷔합니다. 1994년 까지 4집 음반을 발매하며 가수로서 바쁜 생활을 하던 중 1996년 그는 뜻밖에 자살로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워키백과 참고)



◆대구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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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포레스트 스파밸리. 포레스트 빛의 축제에 깜짝 놀라다.


대구의 포레스트 스파밸리에 지난 늦가을에 다녀왔습니다. 하늘은 빵구가 났는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런 밤이였습니다. 그런 밤에 찾아간 ‘포레스트 스파밸리와 스파밸리 휴양림’ 밤이라 그런지 주위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어둠이 깔렸습니다. 그러나 스파밸리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하늘이 열리는 느낌이라할까요? 순간적으로 천지개벽이 이런것이구나 할 정도로 화려한 빛의 정원이 펼쳐 제 자신이 너무 놀랐습니다. 가창면의 주암산 아래 냉천리 일원에서 펼쳐지는 ‘포레스트 빛의 정원’이 너무 좋다는 대구의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무작정 찾아갔는데 역시 소문만큼 화려하게 밤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550만개의 화려한 LED 조명불빛이 형형색색 자신만의 빛을 발하며 밤하늘을 수놓는 그야 말로 빛의 축제였습니다. 스파밸리의 넓이는 어마어마한 12만평 부지라는군요. 이곳에 온천목욕장, 수영장, 에어로빅장, 체력단련장과 일반음식점 그리고 유원시설 등이 설치되어 지역 최대의 온천 워터파크입니다. 사계절 휴양시설로서도 손색이 없는 포레스트 스파밸리 추운 겨울날도 걱정하지 마세요. 따뜻한 온천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족또는 연인이 함께 찾아간다면 겨울밤 화려한 불빛과 추억도 쌓고 따뜻한 온천욕도 즐기며 예쁜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습니다.


◆포레스트 스파밸리 불빛 정원 구경하기◆


















































































































































































































◆포레스트빛의 정원 관람시 주의 사항◆



◆포레스트 빛의 정원 안내도◆



◆포레스트12 불빛축제 이용요금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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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대구 경북 최초 개신교 제일교회에 깜짝놀래다.


청라언덕의 대구제일교회는 대구 경북 최초의 개신교회라 합니다. 1893년 부산에 있던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가 대구로 와 약령시장에 처음으로 선교 활동을 한 것이 제일교회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베어드 목사는 교회 부지를 구입하고 그 당시 예배당으로 사용함에 이게 대구경북 최초의 기독교교회인 남성정교회가 되었습니다.

남성정교회와 함께 대구 최초의 의학병원인 동산의료원의 전신인 제중원도 함께 들어와 양 의술을 소개하였습니다. 현재 제일교회 선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1933년에 교회 건물로 완공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교회명칭도 제일교회로 바뀌었다합니다.

이 선교관은 그 당시 내부와는 약간의 변형이 있으나 외관은 건축당시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현존하는 건물 중 적벽 돌을 이용한 고딕건축물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하여 대구시에는 유형문화재 제30호 지정을 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1

937년 벽돌 조 5층 높이 종탑을 세움으로 현재의 골격을 갖추게 되며 지금은 제일교회 선교관으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관인 이곳은 조선시대 경상감영 때에는 옥사가 있었던 자리로 전하며 교회를 지을 때 1907년 헐렸던 대구읍성의 석축 일부를 주춧돌로 사용을 하였다합니다.

 

 








☞(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근대문화골목 투어에서 최고 볼거리는 청라언덕의 제일교회와 선교사 사택.


현재의 동산에는 새로운 제일교회가 들어서 있습니다. 영남신학교의 터를 구입하여 1989년 10월에 교회건물을 착공하여 1994년 4월에 준공을 하였습니다. 2002년에 57m의 종탑을 완공하여 5만여평의 부지위에 대구의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두 개의 종탑이 자 뭇 웅장합니다.

본 교회는 지하2층 지상 5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로 2,160평에 좌석수만 3,100석이라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 18면과 용담석의 화강석이 외벽으로 마감을 하였습니다. 화려한 외관에다 웅장하며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건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필자도 청라언덕에 올라 제일교회를 바라보며 규모와 예술성에 어안이 벙벙하였습니다. 동산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대구에 가장 많은 문화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근대 건축물이 즐비한곳으로 아름다운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 스윗즈 주택보다도 더 눈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이 이곳 제일교회입니다.

앞으로 대구 골목투어 2코스인 ‘근대문화골목’에서도 한자리를 꿰어 차고 있습니다. 대구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꼭 대구 동산의 제일교회와 주위의 선교사 건물들을 둘러 볼것을 권합니다. 신 건축물과 구 건축물의 조화가 너무나 아름다운 여행지입니다.











































 

 




1933년에 완공된 제일교회의 모습. 대구 경북 최초의 개신교회였고 현재는 제일교회선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형문화제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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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병들고 아픈 국민들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나다.

 

대구의 진산인 팔공산 아래에는 봉황이 알을 품는 명당터가 있어 그곳에 절을 세우니 동화사가 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 중생들의 병을 고치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도량으로 1990년  통일약사여래대불을 착공하여 2년만인 1992년 11월27일 완공하여 점안 봉안 법회를 열었다. 15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통일약사여래대불은 높이만 17m이고 좌대 높이는 13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불상이다. 대불 아래에서 불상을 바라본다면 목을 뒤로 90도 꺾어야 불두까지 바라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불상이며 동화사에서 반드시 보고와야 할 명소로 자라 잡았다. 약사여래불의 최대 둘레는 16.5m이며 높이는 30m의 초 대형 국내 최대의 입불상이다.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전북 익산의 황동석으로  만든 국내 최대 입불상인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

 

팔공산 동화사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들기 위해서 전라북도 익산군의 황동석 원석을 300km나 옮겨왔다. 총5,000톤의 원석은 불상이 2,000톤이며 좌대원석은 3천톤으로 만들어 졌다. 2,000톤의 석조대불 원석은 8등분되어 300톤의 원석으로 나누어져 약사여래대불이 되었다. 그 이외 부속시설인 석탑2기, 석등2기, 지하석실등을 갖추어 모두 10,000톤의 화강암이 들어 갔다. 현재 약사여래대불은 웅장암과 예술성을 모두 갖추어 팔공산 동화사의 중심적인 위치를 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주말에 대구 여행을 준비하며 대구 근대문화골목길 투어와 이곳 동화사를 찾았다. 또한 동화사는 팔공산을 찾는 입구에 있어 팔공산 산행시에 심심찮게 방문을 하던곳이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곳이 통일약사여래대불이며 그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나 지신의 모습을 보게된다. 그만큼  동화사의 약사여래대불은 병들고 아픈 전국민의 상처를 꼭 어루만져 낳게 해줄 것 같다.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의 불교문화관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

 

현재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의 불교문화관 지하에는 스리랑카 쿠르쿠데 사찰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비슬산의 대견사 중창 복원 불사가 완료되면 그곳 금강계단에 모셔진다고 한다. 현재는 오전10시 30분부터 오후4시까지 동화사 불교문화관에서 진신사리를 친견 할 수 있다.(매주 월요일은 불교 문화관만 휴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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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계산성당)뾰쪽탑으로 불렸다는 대구 계산성당 찾아가기


1899년 12월 25일 봉헌 축성된 한국식 건축의 십자형 성당은 축성후 40일 만인 1900년 2월 4일 때마침 대구 지방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촛대가 넘어져 화재가 일어났다. 김보록 신부님은 그 해 2월10일에 다시 새로운 성전을 세우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였고 파리외방선교회의 프와넬 신부님이 적화벽돌 구조의 계산성당을 설계를 하여 그 이듬해인 1901년에 성당 착공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조선에는 양오집 짓는 기술자가 없어 중국의 건축 기술자가 성당 건축에 참여하였다.


  

 

 




12사도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함석류등 그당시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건축자재는 불란스에 주문하여 들어오고  1902년 5월에 완공을 되었다. 계산성당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유명하다. 



 

 

현재의 계산 성당은 2개의 종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립 당시 두 개의 종은 서상돈 아우구스띠노와 정규옥의 부인 김젤마나가 기증을 하여 종의 이름도 아우구스띠노와 젤마나로 불려지고 있다.


 

 

 


1911년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종각을 두배 높이는 증축공사를 하여 계산성당 외각의 모습이 완성 되었다. 


 

 

 

1991년 6월21일에는 1902년 성당 완공 후 처음으로 보수공사를 착공하여 1992년 8월14일 공사를 마쳤다. 이때 지붕의 함석을 동판으로 바꾸고 목재였던 바닥을 대리석으로 교체하였다. 현재의 창호에 스테인글라스등의 공사가 이루어져 오늘의 계산성당이 되었다한다. 건립당시 대구에서는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두개의 종각 때문에 ‘뾰쪽탑’의 애칭을 얻었다. (워키백과 참조)



김보록신부님의 흉상

 

 


적 제290호(1981년 지정)

소재지:대구중구 서성로 20(계산동2가)

소유자:대구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1950년 12월12일 계산성당에서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여사의 결혼식이 열렸다. 주례사에서 "육영수군과 박정희양"으로 불려 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계산성당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방문과 김수환 추기경이 이곳에서 사제 성품을 받았다.



 

 

 

 

 

 

 

성당 내부의 모습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한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때 순교한 성인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인성 나무

 

 이인성(1912~1950) 대구출신의 천재화가로 1930년대 그린 계산 성당의 배경이 된 나무로 현재 100년으로 추정하며 이인성나무로 이름 지어졌다.

1899년 한국형 건축양식으로 짓고 있는 십자형 계산성당 사진(계산성당 홈페이지 캡쳐)




1935년 계산 성당과 계산동 주위 모습(계산성당 홈페이지 캡쳐)




계산성당 찾아오는 길(계산성당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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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맛집/중구맛집)근대문화골목 진골목식당, 대구 골목길 투어에서 먹는 진골목식당 육개장 별미.

 

1박2일 대구 여행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청라언덕에서 시작하는 대구 근대로의 여행, 골목투어인 "근대문화골목"길이다. 청라언덕에는 유독 붉은 벽돌의 건물이 많다. 선교사였던 스윗즈, 블레어, 챔니스의 주택을 보며 하늘을 짜를듯이 솟은 제일교회의 모습과 3.1만세 운동길, 계산성당, 그리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저항시인 이상화의 고택등 근대 우리의 고달팠던 생활상을 오롯히 볼 수 있는 그런 골목길이다. 

 

 

 

 

유난히 많은 전통의 기왓집을 보면서 어느듯 우리는 '진골목'에 다다른다. '골목이 좁고 길다'를 경상도 버전으로 '질다'의 뜻이다. 질다가 줄여져 진골목으로 긴골목을 말한다. 골목길 투어를 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디선가 구수한 장국밥 냄새가 허기진 뱃속을 두드린다. 밥을 좀 넣어 달라는 신호다.

 

 

 

 



안성맞춤이란 이를두고 한 말일까. 진골목 안에 '진골목식당' 간판에 팍! 팍! 하고 눈에 꽂히는게 아닌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또 다른 진골목이 이어진다. 그 안쪽 끝의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진골목식당의 풍경은 그야말로 고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은 1890년 경에 지어졌고 대구 섬유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한 코오롱그룹의 창업자인 이원만의 집이다.

 

 

 

 

내부 인테리어도 건축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켜켜히 찌든 세월의 흔적에 찾아든 여행객의 마음은 꼭 외갓집에 놀러온 기분이다. 반질반질 윤이 파르르 나는 대청마루에 누구의 흔적인지 모를 발도장이 찍혀 있고 이방 저방에 가득들어찬 누런 호박은 고향의 초가 지붕에 올려진 지난 가을의 모습을 생각나게한다.

 

 

 

골목투어의 최고맛집인 진골목 식당에서는 유독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잦다. 진골목 입구의 미도다방이 있기도하지만 대구음식인 얼큰한 육개장 전문점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진골목식당의 육개장은 고춧가루를 넣은 칼칼하고 얼큰한 고깃국으로 화끈한 경상도식이다. 먹고나면 속이 시원하다는 육개장.

 

 

 

 

진골목식당의 육개장을 보면 사골육수에다 대파, 토란대를 넣고 고기는 사태와 양지머리만으로 국을 끓여내어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동짓달에 먹는 동치미 국물처럼 시원하고 맑다는 평이다. 일행은 육개장과 이집에서 개발한 육국수를 함께 주문하였다. 생소한 육국수는 육개장에 국수가 나오며 밥대신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을 말한다. 독특한 별미다. 두가지 맛을 보기 위해서는 두사람이면 육개장 하나와 육국수 하나를 주문하면 된다.

 

 

 

 

따라나오는 밑반찬은 아주 토속적인 음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요요 멸치무침은 집에서도 너무 좋아해서 다 먹고 또 추가해서 먹었다. 방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누런 호박의 용도는 호박전을 부치기위한것으로 엄청 호박이 많다. 어릴적 엄마가 숟가락으로 끍어서   솥뚜껑에  구워주던 호박전이 생각나 같이 주문을 하였다. 노릇노릇 구워진 호박전 어릴때 먹었던 고소한 그맛 그대로다. 100년된 골목길을 걸어보고 100년이 넘은 고택에서 대구만의 전통음식인 육개장을 먹을 수 있는 '진골목 식당'을 찾는 것도 큰재미이다. 밥을 먹었다면 진골목 입구에서 건강차인 미도다방의 쌍화차로 입을 달래보자.  

 

 

 

 

진골목식당의 육개장 6천원

 

 

진골목의 호박전 5천원

 

 

진골목식당의 육개장과 육국수 그리고 호박전,

 

 

진골목식당의 육국수 6천원.

 

 

 

 

 

 

 

 

 

 

 

 

 

 

 

 

 

 

 

 

 

 

 

 

 

 

 

 

 

 



 

 

 

◆대구 진골목식당 영업정보◆

★상호:진골목 식당

★주소:대구광역시 중구 진골목길 9-1호(종로2가 66-5)

★전화:053-253-3757

★메뉴: 육개장 6천원, 육국수 6천원, 콩국수 6천원, 콩나물밥 5천원, 칼국수4천5백원, 호박전 5천원 빈대떡 5천원

★주차장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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