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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여행/의성군가볼만한곳)의성군 비봉산 대곡사 대웅전.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보여주는 의성 대곡사 대웅전 여행.


의성군의 비봉산 아래 고찰인 대곡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대곡사는 산이 낮지만, 봉황이 날개를 펼친 듯 옹골찬 모습을 한 비봉산 기슭에 1368년 고려 공민왕 17년 지공스님이 원나라와 고려를 왕래하면서 불법을 펼친 것을 기념해 지은 절이라 합니다. 이는 처음 세운 목적에 따라 대국사로 불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대국사는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의성 대곡사 주소: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894

의성대곡사 전화:054-862-4222


2016/11/07 - (경북의성여행)대곡사 적조암. 비봉산 대곡사 적조암의 독특한 건축양식인 구포루 인법당.


 


그러다 1605년 선조 38년에 탄우대사가 중창하였는데 그 뒤부터 대곡사로 절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대곡사의 창건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1960년 대곡사 앞의 작은 텃밭에서 통일신라 후기 것으로 보이는 금동 불상이 나왔고 고려 초기로 보이는 대웅전 앞의 다층석탑, 백운 이규보의 대곡사 탐방시구 등을 보면서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의성 비봉산 대곡사에는 현재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곡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문화재는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은 원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였다가 보물 제1831호로 2014년 6월에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보물로 승격된 대곡사 대웅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왜 보물로 지정되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한데 대곡사 대웅전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규모의 다포계양식의 팔작지붕으로 5량가 건물입니다. 1605년 탄우대사가 중창했던 대웅전을 1687년 숙종 13년에 태전선사께서 다시 중건했습니다.





대웅전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불단이 뒷줄의 평주선 보다 뒤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불단의 위치가 평면구성이 같은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인 불전에서는 18세기 이후 점차 줄어드는 추세로 대곡사 대웅전은 17세기 후반인 중건 당시의 불교 건축물의 건축사적 흐름을 읽게 해줍니다.





또한 후면 서측협칸에는 창호 중간에 기둥을 두어 창문을 두 개처럼 보이게 하는 영쌍창구조이며 좌우 측면과 배면의 벽체에는 중인방 없이 세로 벽선을 세웠으며 정면과 양 측면의 기둥 아래쪽에는 쪽마루를 달아 낸 흔적인 큰 구멍이 남아 있습니다.





불전 정면에 마루를 둔 사례나 영쌍창과 세로 벽선은 18세기 이전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양식입니다. 다포계 형식의 포작은 내외 3출목이며 건물의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면 기둥 간격을 똑 같게 하고 주간에 두 구씩의 공포를 배치하여 지붕 하중을 안정되게 받게 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건축공간계획과 구조계획이 함께 설계된 세심하고 능숙한 기법을 볼 수 있습니다. 기둥과 보 등의 부재를 보면 섬세한 가공이나 미적인 의장성은 최소화하고 가구의 구조는 간결하며 명확하게 결구된 양식입니다.





한마디로 대곡사 대웅전의 특징은 공포의 동일한 내외출목수, 배면 개구부의 영쌍창, 불단의 배치와 건의 마루 흔적 등을 보면서 대곡사 대웅전의 중건 당시 시기적 경향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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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사 대웅전은 의성지역의 불교사찰이 부흥하던 시기의 건축 양식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건축사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화재청 보도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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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성여행/경북의성가볼만한곳)대곡사 적조암. 비봉산 대곡사 적조암의 독특한 건축양식인 구포루 인법당. 


경북 의성을 여행하다가 찾았던 비봉산 대곡사 적조암. 적조암은 대곡사의 9개 암자 중에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먼저 적조암을 거느린 대곡사를 간략하게 언급하면 1368년인 고려 시대 공민왕 17년에 인도 승려 지공과 당시 왕사였던 나옹선사 혜근에 의해 창건하였다 합니다.



 

대곡사 적조암 주소: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200

 대곡사 적조암 문의전화 054-862-6322


 


그러나 대곡사의 창건연대를 두고 다른 설도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말에서 고려 초로 보는 견해입니다. 백운 이규보의 대곡사 탐방에 관한 시와 인도 승려 지공 생몰연대, 그리고 대웅전 앞 다층석탑의 양식 등을 종합해 보면 더욱 그러하며 또한, 1960년에 통일신라 후기의 금동불상이 대곡사의 텃밭에서 발견되어 통일신라말에서 고려 초의 창건연대에 더욱 신빙성을 높여줍니다.



이번 포스트는 대곡사의 암자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적조암입니다. 대곡사 부속암자로 적조암만 남게 된 연유가 있습니다. 이는 정유재란으로 인해 대곡사와 함께 9 암자가 전란으로 모두 소실하였기 때문입니다. 대곡사에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암자 적조암에는 여느 산속 암자의 단출한 전각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높은 계단을 올라 적조암 경내에 들어서면 왼쪽에 조선 시대 사대부 집의 누마루식 건축 양식에 눈길이 갑니다. 사찰에 이런 건축양식은 좀체 볼 수 없는데 특이하게도 대곡사 적조암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적조암을 품은 산은 비봉산입니다. 적조암의 상량문을 보면 "봉황이 머문다는 뜻이며 비봉산의 주맥에 적조암이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적조암 구포루 인법당



현재 독특한 건축 양식과 희소성으로 2014년 12월 18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2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대곡사 적조암의 구포루는 인법당으로 19세기 중반인 1847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18세기의 구포루 중창설을 보면 그 이전에도 건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지금과 같은 건물 모습과는 다르겠지만 구포루 인법당은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곡사에 머물렀던 고승들의 진영을 모시는 진영각으로 사용했지만, 현재는 불교중앙박물관을 이관한 상태입니다. 구포루 인법당은 앞면 4칸에 옆면 4칸 규모의 ‘ㄱ' 자형이며 5량가의 이익공건물입니다.





건물은 경사진 대지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앞쪽에다 앞면 2칸, 옆면 2칸은 마루를 넣었습니다. 누마루 밑을 보면 마루를 받치는 기둥을 세웠고 누마루 주위로는 툇마루를 달아내어 그 끝에는 계자 난간을 둘렀습니다.







뒤쪽 2칸은 온돌방을 넣었으며 이외에도 처마에는 활주를 세우고 사자 모양의 화반을 설치하는 등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당이 방으로 바뀌고 벽장을 내는 등 부분적인 건물의 변형으로 인해 아쉬움은 많으나 건축물의 문화재적 의미는 상당한 가치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조계암의 중심건물인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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