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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삼릉 가는길 천관사지 여행. 경주 천관사지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과 그의 젊은 날 연인이었던 천관녀의 전설이 있는 경주 천관사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학창시절 김유신과 함께 등장하는 천관녀의 이야기는 골치 아픈 다른 수업시간에 비해 머리에 쏙쏙 들어와 저장되어 장년의 나이가 된 지금도 잊지 않고 김유신 이야기만 나오면 천관녀가 함께 떠오릅니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천관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43

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천관사지 연락처:054-481-4763




2018/06/22 - (경북여행/경주여행)임진왜란 의병장 김호장군고택 경주 월암종택.

2018/01/19 - (경북여행/경주교동여행)경주 교동 최씨고택.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 최씨고택 여행.

2016/10/16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에밀레종, 성덕대왕신종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2016/10/14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 최치원의 사산비명 비석 귀부였던 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을 보다

2016/10/13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불두(부처머리). 1959년 사라호 태풍의 선물(?)이라는 경주 남산 철와골에서 발견된 초대형 불두를 경주 박물관에서 보다.

2016/10/12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장항리 석조불입상. 도굴꾼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된 장항리 석조불입상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복원된 상태로 만나다.



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경주의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경주 남산과 연결된 마석산 산행을 하고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곳 지명이 말무덤이 있었고 산 이름도 마석산이고 저수지도 있고 해서 막연하게 이곳이 천관녀 집 앞에서 김유신에게 칼을 맞아 죽었다는 그 말무덤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천관녀가 있었다는 집이 이곳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위를 보면 절터가 있었을 듯한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김유신이 술 한잔을 걸치고 졸면서 말을 타고 오는 길과 오버랩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경주시 외동읍 북토리의 그 말무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말무덤은 맞는데 김유신에게 칼로 베어 죽었다는 그 말의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울산 치술령의 망부석으로 유명한 신라충신 박제상이 일본으로 왕자를 구하러 가면서 타고 온 말의 발목에 편지를 매달아 집으로 돌려 보냈는데 이게 그만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헤매다 지쳐 이곳에서 죽었었습니다.

마을 사람이 불쌍해서 고이 묻어주었던 게 지명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오며 현재도 그 말무덤이 남아 있다 합니다.

 


김유신의 그 말과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경주시 교동 인근 탑동에 천관이란 지명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천관사의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최근에 경주 ‘삼릉 가는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마침 천관녀의 전설이 있는 천관사지 앞을 지나기에 얼마나 반가웠던지 전설로만 알고 있던 곳을 또 한곳 지나가는구나 싶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그저 김유신과 천관녀의 이야기만 아주 짧게 나와 있어 인터넷을 뒤적이다 국립문화제 연구소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2004년)’를 보게 되었습니다. 

천관사지에 관한 방대한 사진과 자료가 상세히 나와 있어 내심 반가웠습니다. 

천관사지보고서를 보면 천관사에 관한 남아 있는 기록 중 가장 빠른 게 고려 명종 때 이인로(1152~1220)가 지은 파한집(破閑集)이며 그다음은 고려 중기 이공승(李公升 1099~1183)이 천관사를 지나면서 지은 시가 있다 합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김경신(金敬信 785~798)이 천관사의 우물로 들어간 꿈을 꾸고 왕위에 올랐다는 원성왕에 관한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경주부 고적조에서 천관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고려 중기 이공승이 찾았을 때까지는 천관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인로의 파한집에는 우리가 전설로 알고 있는 김유신과 천관녀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김유신이 젊었을 때입니다. 

어머니인 만명부인은 항상 김유신에게 엄한 가르침으로 가정교육을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김유신이 천관의 집에 머무르고 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만명부인은 김유신에게 따끔한 가르침으로 아들을 타일렀습니다. 김유신은 어머니에게 앞으로 다시는 천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맹세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김유신은 술을 먹고 피곤한 나머지 말 위에서 잠깐 졸았는데 깨어나서 보니 천관녀의 대문 앞이었습니다. 

천관녀가 반가운 마음에 벗은 발로 뛰쳐나왔지만, 김유신은 “어찌 주인의 마음을 모르느냐”며 타고 온 말의 목을 베고 말안장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이에 천관녀는 실망하여 김유신을 원망하는 노래를 한 곡 지었으며 그게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성취하고 천관녀의 집을 다시 찾았으나 집은 사라지고 터만 있어 절을 짓고는 옛 여인의 이름을 따서 천관사라 하고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합니다. 

천관사지는 경주시 교동 244번지 일대이며 사적 제340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천관사지는 도당산아래 구릉지로 1960년 이전에는 대부분 밭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다 보문호가 완공되고는 이곳에 농수로가 연결되어 밭을 계단식 논으로 개간했습니다. 

지금의 옛천관사지는 빈터로 변해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당시 논으로 바꾸는 개간공사를 하면서 천관사지의 유구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당시 보고서에는 “탑지는 작은 둔덕을 이루며 지대석 서면이 노출된 상태였고 논두렁에는 기단갑석 3매와 장대석 초석 등이 논의 축대를 쌓으면서 보강하는데 사용되었다”라했습니다.

 천관사지의 석탑 기단부에서 발견된 팔부신장상등과 1974년 3월에 ‘대태각’ 명의 석장이 발견되어 고물상에서 찾는 등 천관사지에서 출토된 석재와 초석의 많은 석물이 외부로 반출되어 인근 학교 정원의 조경과 가정집의 장독대나 담장, 디딤돌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천관사지의 훼손상태를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천관사지의 규모를 보면서 한쪽에 남아 있는 깨어진 석재가 사실 몇 개 없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천관사지 발굴조사는 2000년 5월 25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탑지 1개소와 건물지 2곳, 우물 1곳, 석조시설 1곳 등을 조사하였고 그 이듬해 5월에 건물지 6곳과 우물 2곳, 석조시설 1곳과 담장, 배수로 등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3월에 유구 훼손 방지로 복토한 상태입니다.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

국립문화제 연구소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2004년) 사진 캡쳐



천관사지에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특이한 점은 팔각삼층석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천관사지 팔각삼층석탑 부재인 팔각연화문옥개석이 전시 중이며 다음 기회에 경주박물관 여행을 할 때 꼭 챙겨보아야겠습니다.

 탑지의 부재와 상세한 천관사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문화재청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WGB8Vd8JfK0javzSzjuPqLZuaOaBc3jd1pbyGJTF8gFdqRazgD9sMdjOjuYWWhlZ?nttId=18160&bbsId=BBSMSTR_1021&pageUnit=1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NS_03_07_01)를 참고하세요. 내용이 빵빵합니다. 

저도 보고서를 저장해 놓고 다시 한 번 더 보고서를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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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둘레길 제3코스)울산의 강원도라 불리는 영남알프스 둘레길 3구간:상북 신광사~두서 내와리


 

근교산&그너머 <711> 제3코스 : 상북 신광사 ~ 두서 내와리
600년 버틴 은행나무 지나니 여기가 '울산의 강원도'


 
- 옛 사람들 발자취 따라 걷는 18.5㎞
- 전설 어린 고헌·백운산 자락 휘돌아
- 울산 오지 마을들 잇는 청정 오솔길
- 둘레 12m 구량리은행나무 지금도 생생


국내 최대 공업도시로 알려진 울산광역시. 하지만 알고 보면 울산은 영남알프스 주요 봉우리들을 7개나 끼고 있고 태화강도 되살린 친환경도시. 특히 울주군은 영남알프스 자락의 넉넉한 품에 안겨있다 보니 보존이 잘 된 청정 산골마을이 매우 많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3코스는 울산의 오지 마을들을 이어가며 산골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품고 있는 전설, 역사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걷는 길이다. 갈대 무성한 반곡천을 건너는 개척단원들 왼쪽 멀리 언양의 진산인 고헌산이 우뚝 솟아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3코스는 '울산 속 오지'라고 부를 만한 마을들을 옛길을 따라 이어가는 코스다. 나뭇꾼 총각이 버섯 따는 사람에게 고함을 쳐서 살렸다는 전설의 고헌산과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기도한 후 신검에 두 줄기 빛을 받았다는 백운산 오른쪽 자락 작은 능선들을 수차례 넘어가며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풍광과 전설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길이다. 다만 이전 1, 2코스에 비해 구간이 길고 4차례나 크고 작은 고개를 넘어야 하기때문에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

제3코스는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 못안못 인근 신광사 앞에서 두서면 내와리 내와마을 서어나무 앞까지 총 18.5㎞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신광사~재궁곡못~능선 안부~언양읍 평리 원평리마을~반곡천~256봉~삼각점봉~구량리 은행나무~차리 상차리마을 경로당입구~고개마루 사거리(소호령 갈림길)~두서면 인보리 중선필마을 갈림길~상선필마을~능선안부 사거리(백운산 등산로 입구)~탑곡 삼거리~샬롬수련원 앞~호미지맥 능선 통과~내와마을 서어나무 앞에 이르는 긴 코스다. 걷는 시간만 5시간 정도. 식사 및 휴식까지 감안하면 6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신광사 주차장에서 우측 들판 길로 들어선다. 재궁곡마을(쟁골마을) 방향이다. 들판 사이로

 열린 콘크리트길 왼쪽으로 오리농법 벼 재배시설들이 보이고 그 뒤로 언양 진산 고헌산(1034m)이 넉넉한 품을 자랑하며 솟아 있다. 계속 직진하면 10여 분 뒤 마을 앞 재궁못. 한겨울인 탓에 꽁꽁 얼었다. 지궁곳으로도 불린다. 마을을 통과해 대숲길을 지나 유달리 굵은 둥치의 소나무가 멋스러운 지점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작은 골을 통과해 오솔길로 오르면 10분이면 능선 안부사거리에 닿는다. 왼쪽으로 틀어 송림이 울창한 능선길을 3분쯤 걷다 무덤 30m 앞 삼거리에서 우측 내리막길로 꺾는다. 밀양 박씨묘와 과수원, 경주 이씨묘를 잇따라 지나 오룡길 63번지 앞 삼거리까지는 7분 정도면 내려선다. 일단 우측으로 꺾어 곧바로 대불사 표지판이 있는 포장로 삼거리에 닿으면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200m쯤 간다. 축사를 지나자마자 왼쪽의 제법 소담스러운 송림이 보이는 갈림길에서 왼쪽 평리 들판 길로 들어선다.

왼쪽 저 멀리 고헌산을 바라보며 직진하다 정면 야트막한 언덕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 들판 길을 걷는다. 평리 버스정류소가 있는 삼거리에서 일단 '오룡길' 표시가 된 전신주 우측으로 20m쯤 가다가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 좌측 밭 사이 원평리 마을 길로 접어든다. 70m만 가면 동네 안 사거리. 원평길 14-1번지 대문 쪽으로 직진해서 곧장 가면 반시계 방향으로 마을 안길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우측 멀리 흰색 집이 보이는 길로 향한다. 3분 뒤 원평1길 16-21번지 흰색 집 앞에서 반곡천을 건넌다. 갈대숲이 장관이다.

반곡천을 건너면 우측으로 비스듬히 오르는 포장임도. 솔가리가 수북이 덮여 있어 걷기엔 그만이다. 5분쯤 오르면 좌측으로 이조판서 안동 권씨묘가 보이는 갈림길. 우측 한적한 산길로 오른다. 3분 후 능선 갈림길에 닿으면 왼쪽 능선 오르막을 탄다. 솔향기 그윽한 오솔길. 15분 뒤 묘지 3기와 삼각점이 있는 256봉. 송림이 바람을 막아줘 잠시 쉬었다 가기 좋은 지점이다.

 
  천연기념물 제64호인 울주 구량리은행나무.
50m쯤 직진하다 주능선을 버리고 우측 지능선의 희미한 산길로 내려선다. 진주 강씨묘까지 길은 희미하지만 100m 떨어진 김해 김씨묘부턴 또렷해진다. 능선이 왼쪽으로 살짝 휘어지는 듯하다. 임도 갈림길에서 직진, 산길로 향한 후 3분이면 서녁지 앞 산모퉁이 들판 길에 닿는다. 오른쪽 중리마을 들판 한가운데 천연기념물 제64호이자 이 고장의 자랑인 구량리 은행나무가 서 있다.

직진하다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이후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올 예정이다. 구량리 은행나무는 고려말 익재 이재현 선생의 후손이자 조선 세종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죽은 이지대 선생이 세조의 정권찬탈 등으로 이어지는 정변을 보며 낙향한 후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은행나무는 높이 22m, 어른 가슴높이의 둘레가 12m나 되는 거목이다. 올해로 559세지만 높이 22m, 둘레 12m나 되는 거목으로 여전히 굳건한 생명력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훼손하면 반드시 화 입고 아들이 없는 부인이 정성껏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져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한다. 은행나무 옆 20m 지점의 작은 샘은 다른 하천과 저수지가 얼어붙은 영하 5도의 날씨에도 되레 따뜻함이 느껴질 정도여서 신비함을 더한다.




 
  재궁곡에서 평리로 넘어갈 때는 밭두렁길도 지난다.
되돌아온 갈림길에선 고헌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왼쪽으로 간다. 둥지교회 앞을 거쳐 15분이면 다시 아스팔트 길 삼거리에 선다. 우측으로 5분쯤 걸으면 구량천의 차리교를 지난다. 왼쪽 하차리 버스정류소 앞을 지나 정미소와 예배당을 거쳐 차리저수지 방향으로 20분쯤 가다가 상차리경로당 입구에서 우측 경로당 방향으로 골목길로 접어든다. 이 마을에는 남녀의 성기 모양을 닮은 남근바위와 음석바위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지만 두 바위 모두 남녀의 바람끼와 연관 있다고 해 남근바위는 묻어버렸고 음석바위도 외부 공개를 꺼린다고 한다.

 
  울주군 언양읍 평리 들판길을 걷고 있는 개척단.
상차리 경로당을 지나면 호젓한 오르막 임도. 20분이면 이정표가 있는 고갯마루 사거리. 왼쪽은 옛날부터 이 지역의 주요 교통로로 이용됐던 낙동정맥 상의 소호령으로 가는 오르막길이고 왼쪽은 마병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지만 개척단은 선필마을 쪽으로 직진한다. 내리막길이다. 점점 오지마을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20분 뒤 민가 앞에서 우측으로 꺾어 5분쯤 더 가면 중선필마을 앞 삼거리. 왼쪽으로 크게 꺾어 상선필마을 방향으로 오른다. 정면 저 멀리 백운산(893m)이 보이고 마병천 계곡을 따라 길은 하염없이 이어진다. 15분 뒤 동래중앙교회 예람수양관 표지판이 있는 닭알집골 입구 갈림길에서 계속 직진, 오르막길을 계속 탄다. '닭알집골', 이름이 재밌다. 이창우 개척단장은 "백운산에 둘러싸인 마을이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소위 금계포란형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해발 380m의 오지인 상선필마을까지는 15분쯤 걸린다. 선필마을이란 이름은 '선한 사람들이 모여서 평화롭게 사는 곳'이란 의미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상차리마을에서 소호령 갈림길 쪽으로 향하는 개척단.
마을회관 앞을 지나 2분이면 우측으로 빠지는 골목길로 접어든다. 거울 달린 전신주의 표지판에 '마당미기길 1→252'라고 표시된 지점에서 우측으로 꺾은 길이다. 골목길을 통과하면 곧바로 오르막 임도로 이어진다. 차량 통행도 가능할 만큼의 너른 길이지만 이 구간이 제3코스에서 가장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17분쯤 오르면 백운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한고갯마루 사거리. 해발 515m나 되는 이 고갯마루에서 뒤돌아보면 지나온 길과 고갯마루가 산과 산이 겹치는 사이로 아득하다. 영락없는 '울산의 강원도'다. 구제역 때문인지 도로 한가운데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커다란 흙무더기가 놓여있다. 이제 내리막. 녹지 않은 눈이 사각거린다. 18분 만에 벽운암 앞을 지나 탑곡삼거리에 닿는다. 내와리 탑곡마을에는 풍천 임씨 문중의 '호식(虎食)과 명당' 전설이 있다.

삼거리에서 '삼백육십오일사'라는 특이한 이름의 사찰 표지판을 보면서 왼쪽으로 꺾어 3분 뒤 샬롬수련원 앞에서 다시 우측 골목으로 들어선다. 작은 개울을 건너 짧은 논두렁길로 직진하면 곧바로 V자 형태의 오솔길. 3분 뒤 호미지맥 능선 안부 사거리를 만나면 직진한다. 종점인 내와마을 서어나무(수령 100~150년)까지는 15분쯤 걸린다.


# 시민개척단 참가- 권윤혁 씨

- "영남알프스 특징 극대화 시킨 길로…"

 
"영남알프스 자락인 밀양 얼음골에서 태어났다. 건강을 위해 걷기운동을 시작한 후에도 발길은 자연스럽게 영남알프스로 향하게 됐다. 그래서 많은 산들을 오르내렸다. 그런데 이제는 산아래 길들도 걷고 싶어졌다. 지리산둘레길, 제주올레길 등과 비교하지 말고 영남알프스만의 특성과 가치를 살려 내는 둘레길로 조성됐으면 좋겠다."

시민개척단의 일원으로 제3코스 답사에 함께 한 권윤혁(47·김해 효민독서실 대표·사진) 씨는 김해 시내에서 학원과 독서실 3개를 운영하는 '원장님'이다. 밀양시 산내면에서 태어난 그는 밤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체력을 기르기 위해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취재팀과 함께 걷는 시간 내내 "둘레길 개척단에 참여하고 보니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등 산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영남알프스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따스한 '속살'을 느끼게 돼 정말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객관적인 시각의 기사와 깊이 있는 칼럼을 학원생들에게도 읽혀야겠다는 생각으로 국제신문만 3부를 구독 중인 애독자이며 '근교산&그 너머' 시리즈의 열혈 팬이기도 하다.


# 교통편&먹을 곳

- 종착점 내와마을서 택시 이용이 편리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 언양 경주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다시 밀양 석남사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갈아탄다. 석남사 방향으로 3분쯤 가다가 지내교차로에서 내려 지내리 방향으로 들어선 후 작은 고개를 넘어 우회전하면 신광사 앞에 도착한다. 절에 주차장이 있다. 일행이 차량 2대를 이용할 경우 종착점인 내와마을에 미리 1대를 주차해 놓으면 편리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부산도시철도 명륜동역 앞에서 12번 버스를 타고 언양터미널에서 하차해 후문쪽으로 이동해서 향산리 차리행 대우여객 313번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지내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6시40분 8시10분 10시10분 오후 1시10분 2시40분 6시50분 8시50분에 있다. KTX울산역에서도 탈 수 있다. 313번 버스는 제3코스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상차리 중차리 하차리 등에서도 이용 가능하기 때문에 중간에 탈출하고 싶을 때 활용하면 된다. 종착점인 두서면 내와리 마을회관 앞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데 오전 7시, 9시30분, 오후 2시, 6시50분 등 하루 4회 밖에 없어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언양콜택시(052-254-4545)를 이용해 언양정류소까지 가면 편리하다. 2만 원 안팎.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6~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 '울산의 오지' 선필·내와마을

- 구한말 천주교인 추격 피해 숨어 들고 한국전쟁기 빨치산 습격에 학살까지…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3코스 후반부에 거치게 되는 울산 울주군 두서면 선필마을과 종착점인 내와마을은 모두 김유신 장군의 보검 전설을 품고 있는 백운산 자락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해발 300m대 마을이다.

그래서 이들 마을에는 여러가지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들이 혼재 되어 전해오는데 특히 구한말과 현대사에 얽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은 일단 잡히면 큰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었고 심할 경우 처형까지 당했다. 이때 선필마을과 내와마을 인근 탑곡마을 주변 등으로 여러 명의 천주교인들이 피신해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마병천 계곡을 따라 백운산 깊숙이 이어지는 하선필 중선필 상선필마을(사진)이 옛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얼마나 오지마을이었던가를 대변해 주는 대목이다. 35번 국도변의 봉계교차로나 활천리에서 계곡을 따라 20리 길을 걸어 들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내와마을과 탑곡마을 역시 천주교인들의 피신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내와마을은 근대화 이전만 해도 도로 사정이 나빠서 산나물 등을 채취해 언양장 등에 팔러 갔던 주민들이 사흘만에 돌아왔다는 동네다.

한편 선필마을은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들에 의한 주민 학살 현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대사의 비극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당시 신불산 가지산 일대 빨치산들은 선필마을 습격, 전읍마을 습격, 두동면 이전마을 습격 사건 등을 일으켜 양민 200~300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중악 토굴에서 기도 끝에 난승을 만나 보검을 얻은 후 백운산에서 다시 기도 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보검에 두 줄기 빛을 얻은 김유신 장군 이야기, 장군이 백운산에서 천마를 타고 훌쩍 뛴 산이 천마산이라는 이야기 등도 의미가 있지만 근현대사에 얽힌 울산 오지마을들의 이야기도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 제3코스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재궁곡 마을길을 따라가는 취재팀

재궁마을을 통과하고

소나무가 멋진 농로길도 지난다. 그 뒤로 영남알프스 신불산의 모습이 웅장하다.


장쾌한 고헌산 능선과 취재팀

반곡천의 갈대와 고헌산


운치 있는 솔가리 임도길

답사때의 구량리 은행나무

차리마을를 찾아가는 취재팀


하차리마을과 고헌산

차리와 선필을 가르는 고개로 4거리 임도 직진하여 넘어서면 선필마을

중선필마을로 내려서다 본 백운산과 상선필 마을 방향, 취재팀이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중선필마을로 선필이란 어질고 착한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뜻으로 모든 사람들이 순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닭알집골로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골짜기라 한다.

상선필마을 우측 잘록이가 탑골로 넘어가는 길이다.

상선필마을의 모습


백운산

탑골로 내려서기전 운치 있는 임도길

탑골 삼거리로 다리를 건너 왼쪽 삼백육십오일사 방향을 따라간다.


작은재를 넘어면 내와리 내와마을

김유신이 백운산 정상의 바위에서 천마를 타고 이곳 천마산으로 뛰어 내렸다한다.

내와리 서어나무

3구간 최종 목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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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진덕여왕 여행.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진덕여왕릉 찾아가기

 

경주시 현곡면오류리 등나무에서 500m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진덕왕릉 앞 주차장. 200m쯤 떨어진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2대 여왕에 오른 진덕왕릉을 찾아 보았다. 사촌언니인 선덕여왕과는 사촌지간으로 여왕의 위치에 오른 진덕여왕. 그의 왕릉은 한적한 변두리 안태봉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어 쓸쓸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돈다.잘 닦인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 닿은 진덕왕릉은 그 흔한 석상조차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삼국사기에는 왕을 사량부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왕릉은 흙을 높이 쌓아 올려 봉분을 둥글게 만들었고 높이는 4m 지름은 14m이다. 그리고 봉분의 둘레에 지대석을 돌려 안기둥을 만들었으며 그사이에 직사각형의 면석을 넣어고 그위에 눈썹돌을 올려 봉분의 아랫단을 보호할뿐 특별한 장식이 없는 수더분한 왕릉으로 안기둥 에는 12지신상을 돋을 새김하여 왕릉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1975년 보수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선덕여왕 말년에 발생했던 비담의 난을 김유신 김춘추와 함께 평정하며 즉위한 진덕여왕(647~654)은 비담과 그 일당 30명을 처형하고 백제의 계속된 침략에 맞서 김유신으로 하여금 국방을 튼튼하게 했던 신라 제28대 왕이다. 사촌 언니였던 선덕여왕과 마찬가지로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즉위 7년 만인 654년 사망, 김춘추(무열왕)에게 왕위가 이어졌지만 후일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진 업적은 높이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후사가 없었던 탓인지 왕릉의 분위기가 어쩐지 쓸쓸하다. 솔숲 사이로 부는 서늘한 바람을 벗 삼아 왕릉을 돌아보며 백제의 침범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나라와 불평등 동맹까지 맺어가며 고군분투했을 여왕의 고뇌와 삶에 대해 생각한다.


찾아가는 길: 부산 금정구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운임은 4000원, 소요 시간은 50분이다. 경주터미널 앞에서 현곡행 30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금장2리 정류장에서 하차, 오른쪽 오류리 방향으로 걷는다. 200m쯤 가면 오류리 등나무 앞을 지나고 이곳에서 진덕왕릉까지는 걸어서 15분쯤 걸린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내려 서라벌대로를 타고 가다 금성삼거리에서 시청 오릉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황남동주민자치센터 앞 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강변로를 따른다. 터미널과 동국대 앞을 지나 금장교 앞에서 좌회전, 1㎞쯤 가면 새로 뚫린 안강 포항 방면 68번 지방도를 타지 말고 굴다리 밑을 통과해 영천 방향으로 200m쯤 가면 우측에 진덕왕릉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회전, 1.5㎞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왕릉 앞 주차장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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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국보 제199호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89



많운 등산객들이 찾는 신선사의 마애불상군으로 누군가 카메라 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입구 좌측 상단에 모셔진 독립여래 한분과 미륵보살, 석가모니불,제화갈라보살을 모신 삼존불 




 버선 같은 모자를 쓰고 손에 나뭇가지를 든 공양상 2구


미륵 장육 여래 입상


경주 단석산은 신라 오악중 중악으로 단석산은 김유신과 뗄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삼국통일의 염원을 안고 단석산 석굴인 상인암에서 수행을 하던중 괴승으로부터 비보를 받아 보검으로 바위를 잘랐다는 이야기는 일찍이 들어 왔다. 그 단석산은 항상 경애의 대상으로 여러번 찾아 왔지만 하나의 지나가는 경유지에 불과하였다. 오늘 또 산행 중 일부로 신선사를 경유지로 정해 신선사 마애불을 찾아보았다. 그래도 바쁜 산행으로 그냥 보지 못하고 지나간 불상이 여러 개 있어 그저 아쉬울 뿐이다.

“신선사 우측 산사면에 큰 바위들이 여러개 겹쳐져 서 있는 바위 군을 볼 수 있다. 신선사 마애불상군으로 반대편에서 보면 ㄷ 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 안쪽으로 하나의 석실형태를 하고 있으며 인공으로 지붕을 만들어 덮은 신라최초의 석굴사원으로 기록을 하고 있다. 남쪽 바위 보살상 안쪽에 새겨진 명문에 의해 선석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한다. 본존불인 미륵 장육상이며 안쪽 바위 면에는 여래상과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있고 그 밑으로는 버선 같은 모자를 쓰고 손에 나뭇가지를 든 공양상 2구등 불,보살 10구가 돋을 새김되어 있다. 신라 7세기 불상군의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인정되며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으로 고 신라 불교미술이나 신앙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평가 받고 있다한다.“

그러나 일부로라도 다시 들러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마지막 단풍과 함께 어울려 장관을 연출하는 신선사 일원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ㄷ 자의 석실형태로 신라시대 최초의 석굴사원으로 좌우 벽면과 전면으로 석불상이 돋을 새김되어 있다.



좌협시보살 입상

우협시 보살입상으로 현재 마모 상태가 심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대웅전과 마애불상군 사이에 붉은 단풍잎으로 치장을 하였다.







대웅전 법당 앞에 걸려 있는 범종



대웅전 우측으로 올라서면 만나는 산령각

최근에 새로 불사를 한 대웅전 앞으로 등산객들과 참배객으로 분주하다.

선석사 대웅전에서 우측으로 울긋불긋한 단풍길을 따라가면 국보 제199호 마애불상군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ㄷ 자의 석실위에 인공구조물을 설치하여 비로인한 마모를 방지하고 있다.






단석산 신선사 마애입상군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 되어 있습니다. 
http://www.silla.or.kr/gyeongju/ntltrs-p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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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이 단칼에 쪼갰다는 가운데가 '쩍' 갈라진 단석이 바로 옆에 있는 정상에 서면 경주의 최고봉답게 경주 시가지(우측 돌탑 뒤)와 선도산 남산 토함산 동대봉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반대편으론 백운산 고헌산 등 낙동정맥과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운문산 등 영남알프스 주능선이 손에 잡힐 듯하다.





돔 형태의 인공지붕이 덮여 있는 국보 제199호인 신선사 마애불상군.


김유신 숨결 느껴지는 경주 최고봉
정상석 옆 반토막 난 1m 단석 눈길
신선사 국보 마애불상군 감탄 연발
백운산 고헌산 등 낙동정맥 한눈에




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산 중에는 역사 속의 인물과 인연이 깊은 경우가 왕왕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구미 금오산과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고려말 삼은(三隱)으로 불리는 야은 길재는 조선이 건국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고향인 구미 금오산으로 내려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로 시작되는 시조는 그가 초야에 묻혀 지내다 옛 도읍지 송도를 돌아보며 망국의 한을 읊은 노래이다.

의령의 진산 자굴산은 남명 조식을 떠오르게 한다. 말년엔 지리산 기슭으로 옮겨와 산천재를 짓고 후학을 양성했지만 28세 때 자굴산 명경대에서 글을 읽으며 뜻을 세웠다.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안타까운 전설이 서려있는 월악산이나 고려말 이성계에게 끝까지 저항하며 지조를 지킨 안동장군 이미숭의 절개가 흐르는 고령 미숭산 등도 같은 맥락이다.

산행팀이 이번에 소개하는 경주의 최고봉 단석산(斷石山·827m)은 김유신 장군과 인연이 깊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따르면 김유신은 17세 때 삼국통일의 염원을 담고 단석산에서 수련하던 중 난승(難僧)으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아 단칼에 큰 바위를 쪼갰다. 실제로 단석산 정상에는 김유신이 칼로 베어냈다는 큰 바위가 있다.

산행은 경주 내남면 비지1리(학동마을) 구판장(또는 마을회관)~단석산 등산안내도~사곡지~절골~낙동정맥 주능선 사거리~단석산 갈림길~신선사 갈림길~신선사~통천문~헬기장~단석산 정상~갈림길~전망대~잇단 무덤~사거리(비지고개)~입암산·백석암 갈림길~입암산 정상~경주김씨묘~비지1리 구판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20분 정도. 주능선으로 오르는 계곡길과 입암산 이후 하산길은 거의 개척 수준이라 길찾기가 까다롭다.

  
 

비지1리 구판장 앞에서 포장로를 따라 간다. 정면 '한 일(一)' 자 능선은 낙동정맥. 250m쯤 뒤 세 갈래길. 가운데로 향한다. 빛바랜 단석산 등산안내도를 지나 다리를 건너 100m쯤 가다 곡각지점에서 포장로를 버리고 우측 논 쪽으로 간다. 계속 직진하면 방주교회와 OK그린목장.

정면 절골못이라 불리는 사곡지의 둑을 기준으로 왼쪽 골짜기가 절골, 오른쪽이 화장골이다. 산행팀은 사곡지 좌측으로 절골을 택한다. 차츰 길이 좁아진다. 계류를 건너 오른 뒤 또 건넌다. 겨우내 얼었던 계곡물이 녹아 시원하게 흐른다. 이내 갈림길. 우측으로 계류를 건너 옛 농지였던 너른 터를 가로질러 파평 윤씨묘를 지난다. 묵은 길이라 낙엽이 수북하다.

이때부터 계곡을 따라 걷는다. 유량도 적고 묵은 길을 일일이 찾아 계류도 수 차례 건너야 하는 녹록지 않은 구간이다. 잡목을 헤치고 산딸기 등 가시나무를 뚫고 때론 산허리를 돈다.

이렇게 40여 분. 운지버섯이 가득 자란 쓰러진 고목을 지날 즈음 계곡도 그간 숨겨 놓은 와폭 등 절경을 하나씩 내놓는다. 멀게만 느껴지던 낙동정맥 능선이 어느새 눈앞에 와 있다.

점차 유량이 줄면서 발아래 계곡 쪽엔 과거 물을 가둔 흔적으로 추정되는 석축이 보인다. 사실상 계곡 막바지. 생각보다 긴 절골은 90분쯤 지나야 끝이난다. 집채만한 바위를 지나 마지막으로 계류를 건너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이때 '반환점'이라 적힌 팻말이 나무에 걸려 있다. 곧 반듯한 등로를 만난다.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5분쯤 가면 낙동정맥 사거리. 왼쪽은 수의동 방주교회 백운산 고헌산. 산행팀은 우측으로 오른다. 7분 뒤 갈림길. 왼쪽은 땅고개 사룡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산행팀은 우측 단석산 방향으로 향한다. 단석산은 낙동정맥에서 약간 비켜나 있다.

이어지는 능선길. 좌측 저 멀리 숲 사이로 사룡산이 보인다. 10분 뒤 다시 갈림길. 직진하면 단석산 정상, 산행팀은 국보 제199호 마애불상군이 위치한 신선사를 둘러보기 위해 왼쪽으로 내려선다. 이 길은 또한 단석산 산행의 대표적 들머리인 우중골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독립가옥 한 채를 지나 임도 수준의 제법 너른 길로 가다 보면 우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리본도 많이 걸려 있다. 신선사까지는 20분. 전체적으로 오름길이나 꼬불꼬불한 솔가리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다.

산모퉁이를 돌면 'ㄷ'자 모양의 거대 암벽을 덮고 있는 돔형태의 인공지붕이 눈길을 끈다. 신선사 마애불상군이다. 10m쯤 되는 각 암벽에, 그것도 1500여 년 전에 여래상 등 다양한 불상과 보살상을 새긴 선조들의 불심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신선사에서 정상까지는 대략 35분. 나무뿌리가 도처에 드러날 만큼 등로가 황폐해져 있다. 금정산이 연상된다. 통천문과 진달래터널, 그리고 헬기장을 잇따라 거친다.

마른 억새평원인 정상에는 크고 작은 바위와 돌탑이 널려 있고, 그 가운데 중심부가 쩍 갈라진 높이 1m쯤 되는 단석(斷石)이 정상석 바로 옆에 서 있다. 무엇보다 경주의 최고봉답게 조망이 빼어나다. 북동쪽으로 건천읍과 그 뒤로 구미산, 동쪽으로 경주시가지. 그 앞으로 선도산과 철탑이 서 있는 벽도산, 그 뒤로 근육질의 바위산인 남산의 금오봉과 고위봉 마석산 치술령 연화산이, 금오봉 뒤로 동대봉산 토함산 삼태봉이, 동대봉산 앞으로 보문단지도 확인된다. 남쪽으로 봉우리 셋이 나란한 백운산과 그 우측으로 영남알프스 고헌산과 문복산, 그 사이 뒤로 신불산과 간월산, 문복산 뒤로 억산 가지산 운문산이, 북서쪽으로 만봉산 석두봉이 보인다. 가히 산의 물결이다.

하산은 남동쪽으로 향한다. 100m쯤 뒤 갈림길. 왼쪽 선명한 길은 방내리 가는 길, 산행팀은 우로 간다. 5분 뒤 우측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낙동정맥 상의 피라미드 건물인 방주교회와 OK그린목장, 그 뒤로 백운산과 고헌산이 손 앞에 잡힐 듯하다. 이어 만나는 전망대에선 정면의 입암산과 그 우측으로 들머리인 학동마을과 사곡지가 동시에 보인다.

오천 정씨묘를 지나면 갈림길. 우측은 절골 방향, 산행팀은 좌측으로 간다. 잇단 무덤과 송림길을 지나면 사거리. 왼쪽 방내리, 오른쪽은 비지리, 산행팀은 백석암 방향으로 간다. 15분 뒤 능선 갈림길에선 좌측 백석암 쪽 대신 우측 입암산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3분 뒤 입암산 정상. 스쳐가는 봉우리로 그 일대에서 제일 높다. 5분 뒤 다시 갈림길. 왼쪽 백석마을, 산행팀은 오른쪽 학동마을 쪽으로 내려선다.

아뿔싸! 이때부터 아예 길이 없다. 다만 능선길 우측이 학동마을이라는 큰 방향만 잡고 내려설 뿐이다. 수목 간격이 넓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다. 경사가 무척 가파른 쪽은 가급적 피하며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조심해서 내려선다. 리본을 아주 촘촘히 달아 놓았다. 35분쯤 정신없이 내려오면 경주 경씨묘를 끝으로 산을 벗어난다. 여기서 들머리 마을회관까지 10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우중골 코스 대신 비지리 원점회귀

단석산 산행의 90% 이상은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우중골에서 출발해 신선사 마애불상군을 보고 정상에 오른 뒤 진달래능선을 따라 가다 천주암를 거쳐 건천읍 방내리로 하산한다. 그 역으로도 가능하다. 이미 이 길을 소개한 산행팀은 이 산 반대편인 내남면 비지1리(학동)에서 단석산을 돌아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택했다.

단석산 코스에서 신선사를 빼면 '앙꼬없는 찐빵'. 해서 산행팀은 정상 직전 갈림길에서 20분쯤 걸리는 정상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신선사를 거쳐 정상으로 올라가는 75분쯤 걸리는 고행의 길을 택했다. 물론 체력이 부치면 정상으로 바로 가도 상관없음을 밝혀둔다.

김유신 장군은 단석산 이외에도 경주와 그 인근의 여러 산에서 수련을 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주와 인접한 울주군 백운산 정상 아래 석굴에서도 수련을 했으며, 경주시내에 위치한 망산과 선도산에서도 말을 타고 훈련을 했다고 고향이 경주인 이창우 산행대장이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단석산은 삼국통일 이전에는 동쪽 토함산, 서쪽 선도산, 남쪽 남산, 북쪽 소금강산과 함께 신라인들이 신성시해 오악(五岳) 중 중악(中岳)으로 모셔졌다.


# 교통편

- 노포동 터미널서 경주행 버스 10분 간격

  

노포동 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 걸리며 4000원.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332번 버스를 타고 학동(비지1리)에서 내린다. 오전 6시56분, 8시24분, 10시37분. 35분 걸리며 1500원. 날머리 학동에서 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2시25분, 5시5분, 7시10분(막차)에 있다. 경주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15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밤 9시50분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시청 시의회 좌회전~동국대 버스터미널 경주대학교 좌회전~건천 경주대학교 4번 좌회전~서천교 건너~무열왕릉 좌회전~무열왕릉~광명기사식당 앞 광명5길, 백석사 방향 좌회전(광명GS주유소 직전)~철길 건너 굴다리 통과~제1화천교~한미정공 화강서당 경주재일농산 방향~화천2교 건너자마자 갈림길서 오른쪽~경부고속철도 공사 구간~화천보건진료소, 경주초등 화천분교 잇따라 지나~제3화천교~내남면~비지 방향 오른쪽~학동마을 이정석~학동(비지) 버스정류장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비지1리 구판장(마을회관 및 경로회관) 순. 비지1리를 학동마을이라 부르는 이유는 버스정류장 옆 '숲속명상학교'가 옛 학동초등학교였기 때문이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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