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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안태봉~금곡산 산행. 경주 원광법사와 진덕여왕의 향기 산행 안태봉~금곡산

근교산&그너머 <685> 경주 안태봉 ~ 금곡산

진덕여왕 향기 맡고 올라, 원광법사 자취 찾아 하산

야트막한 능선길에 옛 이야기 '주렁주렁'

300~500m대 낮은 산이지만 걷는 길 18㎞

오류리 등나무 얽힌 애틋한 사연도 재미

금곡산 하산 급경사 내리막 미끄럼 조심

 


 

높지는 않아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근교산이 더러 있다. 이런 산들을 찾아가보면 빼어난 암릉이나 조망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산길 구석구석에 녹아 있는 역사와 전설 설화 등과 그에 얽힌 현장을 직접 확인하며 야트막한 능선을 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는 도시 자체가 이야기 덩어리이긴 하지만 권역 내 어느 산을 가더라도 한두 개씩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 마련이어서 근교산을 즐기는 산꾼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고장이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경주 금곡산 하산 길에 만난 조용한 계곡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안태봉~금곡산 코스는 위압감을 주지 않는 편안한 산길이 이어지는 산행지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이번 주 답사한 경주 안태봉(安胎峰·339m)~금곡산(金谷山·521m) 코스 역시 산 자체가 뿜어내는 웅장함이나 아기자기함은 덜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산자락에 마치 보석처럼 박혀 있다. 게다가 여름 휴가철이 가까워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으니 한가롭게 걸을 수 있어 더욱 좋다.

안태봉~금곡산 코스에 숨어 있는 옛날 이야기는 총 네 편이고 공간적 배경도 네 곳이다. 우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들른 진덕왕릉(사적 제24호)에서는 신라 제28대 왕인 진덕(여)왕을 만난다. 그에 앞서 들머리로 향할 때 거쳐가는 오류리 등나무(천연기념물 제89호)에서는 신라 때 이름 없는 자매와 그들이 동시에 사모했던 이웃 총각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안태봉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만삭의 몸을 이끌고 산꼭대기까지 올라야 했던 신라 수도 서라벌의 이름 모를 여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날머리 인근의 금곡사에서는 신라 화랑의 절대 규율인 세속오계를 전한 원광법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안태봉~금곡산 코스는 천년왕국 신라의 옛 이야기 속으로 떠나는 산행길이라 할 수 있다.

전체 산행은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진덕왕릉 앞 주차장에서 출발, 남쪽에서 북쪽으로 진행한 후 금곡사에 들렀다가 안강읍 두류1리에서 끝맺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진덕왕릉~능선 갈림길~292봉~송전철탑~안태봉~말구불재~나원재~금욕산~내태재 금곡산 갈림길 삼거리~금곡산~계곡~금곡사 입구 삼거리~금곡사(되돌아 나가서)~삼거리~화산곡지~두류1리 버스 종점으로 진행된다. 총거리 18.5㎞에 달하니 만만찮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5시간30분, 휴식시간 등을 더하면 7시간쯤 걸린다.

우선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오류리 등나무를 만나보자. 천연기념물 제89호로 지정돼 있는 이 등나무는 신라 때부터 왕의 사냥터 역할을 했다고 해서 '용림'이라고 불렸던 곳. 네 그루의 거대한 등나무와 두 그루의 팽나무가 있는데 등나무 두 그루가 팽나무 한 그루씩을 감아 오르는 모양이다. 높이만 17m에 달하는 이 등나무에는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신라 때 이 마을에 살던 친자매가 둘이 동시에 이웃집 총각을 연모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애가 좋았던 이 자매는 서로에게 총각을 양보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평화롭게 살아갔다. 그러던 중 백제군이 침범해 오자 이 총각은 전쟁터에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접한 자매는 우물에 몸을 던져 숨졌다. 하지만 정작 죽었다던 총각은 늠름한 화랑이 되어 귀향했다. 그런데 자매의 소식을 들은 총각도 곧바로 우물에 몸을 던져 자매의 뒤를 따랐다. 자매가 몸을 던진 후 등나무 두 그루가 자랐고 총각이 숨지자 팽나무 한 그루가 자랐는데 두 그루의 등나무는 1000년이 넘도록 이 팽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감아 안고 있다는 이야기다.


천연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된 경주 오류리 등나무.

 

오류리 등나무에서 500m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진덕왕릉 앞 주차장. 잠시 200m쯤 떨어진 진덕왕릉에 들른다. 잘 닦인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 닿은 진덕왕릉은 그 흔한 석상조차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선덕여왕 말년에 발생했던 비담의 난을 김유신 김춘추와 함께 평정하며 즉위한 진덕여왕은 비담과 그 일당 30명을 처형하고 백제의 계속된 침략에 맞서 김유신으로 하여금 국방을 튼튼하게 했던 신라 제28대 왕이다. 사촌 언니였던 선덕여왕과 마찬가지로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즉위 7년 만인 654년 사망, 김춘추(무열왕)에게 왕위가 이어졌지만 후일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진 업적을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후사가 없었던 탓인지 왕릉의 분위기가 어쩐지 쓸쓸하다. 솔숲 사이로 부는 서늘한 바람을 벗 삼아 왕릉을 돌아보며 백제의 침범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나라와 불평등 동맹까지 맺어가며 고군분투했을 여왕의 고뇌와 삶에 대해 생각한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초소를 지나 오른쪽에 고등골못을 끼고 20m쯤 가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선다.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 진분홍 패랭이꽃이 반겨주는 능선 갈림길까지 15분가량 된비알을 치고 오르는데 어느새 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나원리 나원사 방향에서 오르는 길이다. 나원사에는 국보 39호인 나원리오층석탑을 볼 수 있다.


진덕왕릉은 호젓한 소나무 숲길의 끝에 있다.

 

능선길을 따라 왼쪽으로 오른다. 10분쯤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가면 갈림길. 왼쪽은 진덕왕릉에서 곧바로 올라오는 길이다. 직진한다. 2분 후 292봉을 지나 10분쯤 더 가면 영일 정씨묘를 지난다. 길은 별로 헷갈릴 것 없이 뚜렷하다. 첫 번째 송전철탑이 있는 작은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우회해 계속 오르면 20분만에 안태봉 정상에 닿는다. 삼각점이 있을 뿐 정상 표지석은 없다. 이 안태봉이라는 이름은 옛날 가뭄이 들 때면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밴 만삭의 부녀자를 데리고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고 해서 붙은 것이라 한다. 아이 밴 몸으로 어쩔 수 없이 산 꼭대기까지 올라야만 했을 여인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하자니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산꾼의 마음이 썩 편치만은 않다.

완만한 내리막길은 걷기에 더없이 편안하다. 25분쯤 걸었을까. 능선이 탁 트이는 곳에 송전철탑과 연일 정씨 묘가 있는 말구불재에 닿는다. 발아래로 경부고속도로 건천IC에서 포항으로 가는 국도 20호선 말구불터널(나원터널)이 지나가고, 마치 고속도로 같은 도로 위를 신나게 질주하는 자동차들도 보인다.

말구불재에서 나원재를 지나 금욕산까지는 45분가량 걸리는데 뚜렷한 능선 길만 잘 따르면 된다. 도중에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마침내 울음을 터뜨려 버렸는지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정상석이 없는 금욕산 정상에서는 Y자 갈림길을 만나는데 오른쪽은 무릉산(471.6m)으로 가는 방향이니 헷갈리면 안 된다. 뚜렷한 왼쪽 길을 따르자. 그런데 살짝 안부를 거쳐 5분 후 도착한 다음 봉우리에 '금욕산'이라는 나무 푯말이 있다. 누군가 착각을 한 듯하다.

산행 도중 장맛비가 내리자 비옷을 꺼내 입는 취재팀.

 

빗속을 걸어 10분 후 세 번째 송전철탑을 만난다. 물방울 맺힌 노란 원추리꽃이 길손들을 맞아준다. 철탑을 왼쪽에 끼고 우측 1시 방향으로 난 길을 따르면 작은 무덤을 지나고 능선은 좀 더 이어지는데 네 번째 철탑을 지나면서는 작은 봉우리 왼쪽 허리를 감아 돈다. 이윽고 널따란 안부 갈림길. 왼쪽은 내태제를 거쳐 낙동정맥에 합류, 어림산까지 갈 수 있는 길이지만 금곡산은 오른쪽이다. 눈앞의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오른쪽 사면길을 따라 안부에 합류한 뒤 10분쯤 더 가면 금곡산 정상. 이곳에서도 길은 두 갈래다. 오른쪽은 곧바로 화산골 상류로 떨어져 금곡사로 갈 수 있는 길이지만 사람이 다닌 흔적은 거의 없고 빗줄기도 강해진 탓에 왼쪽 길을 잡아 하산한다. 안부에서 또 한 번 Y자 갈림길인데 봉우리 왼쪽을 돌아가는 길이 옳은 방향이다. 살짝 봉우리를 돌아가면 경주 최씨 묘가 나오는데 이곳을 지나자마자 길은 왼쪽으로 휘어지며 급경사 내리막을 이룬다. 잔돌이 많고 경사가 급해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목과 무릎에 힘을 주며 빠짝 긴장한다. 20분쯤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어느새 물이 흐르는 계곡 바닥이다. 층계를 이룬 작은 바위의 모습이 멋스럽다. 계곡을 건너 5m가량 올라서면 임도다. 왼쪽 오르막은 영천군 황물탕으로 넘어가는 길이지만 오른쪽 내리막을 따른다. 10분 후 금곡사 입구 삼거리. 금곡사를 들르기 위해 오른쪽 길을 따른다. 200m쯤 가면 민가와 금곡사 관사가 마주보는 갈림길을 지난다. 왼쪽 좁은 임도는 덕고개를 넘어 검단리로 가는 길이지만 금곡사는 오른쪽 큰 계곡을 따르는 방향에 있다. 1950, 60년대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낡은 트럭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은 채 길가에 서 있다. 10분 후 도착한 금곡사는 원광법사 부도탑이 있는 곳이다. 선덕여왕의 부친인 진평왕 때 세속오계를 설파했던 고승의 부도탑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부도로 알려져 있다.

삼거리로 돌아와 임도를 따라 화산곡지를 거쳐 날머리인 두류1리 버스 종점까지는 약 3.5㎞를 더 내려가야 한다. 넉넉히 잡아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오류리에서 시작한 산행을 두류리에서 마친다.

◆ 떠나기 전에

- 금곡산 명칭 3개 모두 원광법사와 관련

금곡사 경내에 있는 원광법사부도탑.

 

경주 금곡산은 삼기산(三岐山) 비장산(臂長山) 등의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금곡산이나 삼기산 비장산 등 3개의 이름을 현대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원광법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금곡산의 원래 이름은 삼기산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 의해(義解) 편 첫머리에 나오는 원광법사 이야기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원광은 10대 때이던 6세기 중반 출가해 삼기산 아래 계곡에서 수도를 하다가 그 자리에 금곡사를 창건했다.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 이 절을 떠나 중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진나라와 수나라에서 큰 깨우침을 얻고 명성을 떨친 뒤 서기 600년(진평왕 22년) 신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절을 찾았다. 이후 가슬갑사로 불렸던 청도 운문사 주변에서 귀산과 추항 등에게 '세속오계'를 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630년께 숨을 거뒀는데 진평왕이 왕족의 장례에 못지않을 만큼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게 했으며, 부도탑을 삼기산 금곡사에 건립했다고 한다.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삼기산은 금곡사의 이름을 따라 금곡산으로 바뀌었다. 또 하나의 이름인 비장산도 원광법사와 관련이 깊다. 원광법사가 금곡사에 머무를 때 산신이 나타나 유학을 권유했는데 귀국 후 다시 이 절에서 재회한 산신에게 "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자 산신이 "내일 아침 동쪽 하늘 끝을 보라"고 알려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원광법사가 바라본 동쪽 하늘에 거대한 팔뚝이 하늘 끝까지 뻗어 있는 모습이 나타났는데 이 때문에 비장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 교통편

- 경주터미널에서 현곡행 30번 버스 타야

부산 금정구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운임은 4000원, 소요 시간은 50분이다. 경주터미널 앞에서 현곡행 30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금장2리 정류장에서 하차, 오른쪽 오류리 방향으로 걷는다. 200m쯤 가면 오류리 등나무 앞을 지나고 이곳에서 진덕왕릉까지는 걸어서 15분쯤 걸린다.

 

날머리인 경주 안강읍 두류1리 버스 종점에서는 경주터미널행 202번 버스를 이용하는데 오후 2시35분, 5시05분, 8시(막차)에 있다. 하루 6회 운행.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내려 서라벌대로를 타고 가다 금성삼거리에서 시청 오릉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황남동주민자치센터 앞 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강변로를 따른다. 터미널과 동국대 앞을 지나 금장교 앞에서 좌회전, 1㎞쯤 가면 새로 뚫린 안강 포항 방면 68번 지방도를 타지 말고 굴다리 밑을 통과해 영천 방향으로 200m쯤 가면 우측에 진덕왕릉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회전, 1.5㎞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왕릉 앞 주차장에 닿는다. 하산 후 차량 회수를 하려면 두류1리 종점에서 202번 버스를 타고 황성공원 정류장에서 하차, 오류리 진덕왕릉까지 택시(5000~6000원)를 이용하는 편이 그나마 간편하다. 날머리에서 버스를 놓치면 안강콜택시(054-761-8788)를 이용하면 된다.

문의=국제신문 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http://yahoe.tistory.com)

글=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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