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경남여행/거창여행)샛노란 은행나무 단풍잎이 절정인 의동마을 은행나무길.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길


방가방가

ㅎㅎ

경남 거창여행을 갔다가 

거창에도 은행나무길이 있다고 해서 

의동마을 은행나무길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길 주소:경남 거창군 거창읍 의동 1길 36




2020/09/01 - (경남함양여행)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계절에 딱 찾기 좋은 함양 황석산 산행. 함양 황석산 황석산성

2020/08/01 - (경남거창여행) 거창 수승대 주위 마실 걷기로 하루를 시작하기. 거창 수승대

2020/07/25 - (경남거창여행)여름철 걷기 좋은 거창 월성계곡 서출동류 물길트레킹. 월성계곡 서출동류 물길

2020/07/23 - (경남거창여행)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눈가루가 흩날리는 듯하다는 월성계곡 분설담 여행. 분설담

2020/07/21 - (경남거창여행)4층 반석 위에서 바둑을 두는 기분은,,, 거창 월성계곡의 사선대, 거창 사선대

2020/07/20 - (경남거창여행)거창 여행 일번지 거창 수승대에서 거북이를 만나다. 거창 수승대 여행

2020/07/15 - (경남거창여행)거창 수승대 구연서원 관수루 여행. 거창 구연서원 관수루

2020/07/14 - (경남거창여행)새벽 댓바람에 찾았던 거창 수승대 최고의 정자 요수정 여행. 거창 수승대 요수정





거창여행을 여러번 하고 왔지만 ㅎㅎ

거창에도 은행나무길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알았습니다.



어제 금요일 의동마을 은행나무길 상황입니다. 

평일인데다 오후 5시가 넘는 늦은 

시간인데도 관광객이 정말 많았습니다.

깜짝 놀랬다는 ㅎㅎ 




의동마을 은행나무길은 

길이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한 200m 쯤 되는것 같았습니다.

ㅎㅎ





평일인데도 정말 

관광객이 많죠. ㅎㅎ

저도 깜놀했습니다.








그런데 거창군의 다른곳과 다르게 

단풍잎이 벌써 샛노랗게 보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창고 스레트 지붕에도 

떨어진 노란 은행나무 잎이 떨어져 

완전 은행나무 침대입니다.  

ㅋㅋ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라 

자량통행도 더러 있습니다.






도로에 떨어진 노란 단풍이 

지천으로 깔려 ㅎㅎ

진짜 운치 있어 

완전 가을 분위가 났습니다.



거창 학리 의동마을 은행나무길은 

이번 주까지 절정입니다.




거창여행을 한 다면 

의동마을 은행나무길에서 

가을 분위를 느껴보세요 

728x90

728x90


(경북여행/경주여행)알록달록 단풍색이 좋았던 경주 서출지 이요당 가을여행. 경주 서출지와 이요


경주 묘사를 지내고는 친지분들과 가까운 경주 남산리의 

서출지 인근에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ㅎㅎ

저는 밥보다는 서출지의 가을 풍경이 어떨까하며 내심 궁금했습니다. 





경주 서출지 이요당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973




2019/09/26 -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서라벌인 경주에는 없다고 생각한 암각화가 있어요? 경주석장동암각화

2019/03/03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에서 봄나들이 하기 좋은 보문단지에서 만나는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천군동삼층석탑

2019/02/08 - (경북여행/경주여행)나원백탑으로 불렸다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만나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2018/10/06 - (경북여행/경주여행)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장항리 사지 서 오층석탑

2018/09/19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남산에서 가장 당당한 경주 창림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다.

2018/07/03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신라 6대 지마왕릉을 찾아서. 경주 남산 지마왕릉




밥을 먹고 나오면서 친지분들은 가고 동생과 사촌만 남아서 

서출지를 한바퀴 돌면서 가을 정취를 만끽했습니다. 

서출지에도 이제 나무마다 가을빛인 단풍물이 서서히 들었습니다.



서출지는 둘레가 200m인 아주 작은 저수지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엄청나게 오래된 신라시대 저수지입니다. 





서출지에는 까마귀에 관한 전설로 까마귀가 소지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설화입니다. 

488년 신라때 소지왕 10년 정월 대보름날에 

남산 기슭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행차하였습니다.



그때 쥐와 까마귀가 나타나 쥐가 “까마귀 가는 곳을 따라가시오”하였습니다. 

소지왕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까마귀가 이 연못에 다다렀을 때 연못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내주었습니다. 

소지왕은 종이에 “거문고 집을 쏘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소지왕은 궁궐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집을 쏘자 

거문고 집에 숨어 있던 왕비와 중이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못에서 글이 나왔다하여 ‘서출지’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월대보름날에 까마귀가 소지왕의 모숨을 구해주었다하여 

찰밥을 주는 ‘오기일’ 풍속이 생겼습니다. 


현재 연못가에는 이요당 정자가 있습니다. 

조선 현종 5년인 1664년에 임적이 지은 정자로 서출지와 함께 

아름다운 정자로 사계절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사적 138호




특히 서출지는 여름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못둑 이요당의 배롱나무, 연못에 연꽃이 필때는 

최고의 절경으로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합니다. 

 


가을의 서출지 또한 봄 풍경 못지 않게 아름답습니다. 

통일전의 큰 나무들도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끝자락의 서출지 여행....



서출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신라시대 때 생긴 못이라 그런지 큰나무도 많았습니다.  




서출지를  지켜주는 듯 마을 입구의 노거수였을 것으로 보이는 보호수도 있습니다. 



이요당입니다. 

출입문인 일각문은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볼수 없었습니다




서출지에 수풀이 웃자라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ㅎㅎ

 


그래도 서출지 언덕에 자리한 이요당의 풍경은 그림이라 해도 좋을 아름다웁니다.



서출지 유래 안내판도 있습니다.




이리보니까 이요당이 

꼭 논두렁에 있는 듯 ㅋㅋ




늦가을이라 연잎이 완전 쪼그라 들었고요



봄에 오면 수풀을 모두 제거한 깔끔한 

서출지로 바뀌니 그때 다시 한번 와야겠습니다.






소나무와 중년의 사내들 ㅋㅋ

어울리기도 합니다. 






낙락장송인 경주 서출지 

뒤틀린 소나무는 흘러온 세월만큼 오래되었습니다. 



이요당 뒷산은 야외박물관이라는 경주 남산입니다. 

남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서출지와 이요당

가을 여행에 참 좋습니다. 

728x90

728x90


(경남여행/하동여행)가을에 가장 찾고싶은 여행지 하동 악양 박경리 토지길, 하동 악양 박경리 토지길


하동 악양면을 이야기할 때 함께 거론되는 분이 있습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입니다. 

정작 박경리 선생의 고향은 통영이지만 선생의 고향이 통영이란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혹시 하동악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 이유가 선생의 대하소설인 토지가 장장 25년 동안 오랜 세월을 연재한 데다가 토지의 주 무대가 악양을 배경으로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악양을 토지의 주 무대로 택한 가장 큰 이유가 최참판은 만석지기로 나오는데 섬진강 가에서 만석꾼의 농사를 지을만한 땅이 악양 들판이라 고향 통영도 마다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실제 악양들·평사리들이라 불리는 무딤이들은 비옥한 토지가 정말 넓어 만석꾼의 소출을 어림짐작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하동 악양은 부산과 가까워 자주 찾는 곳입니다. 

이번에 고향인 통영과 선생의 토지 집필지였던 강원도 원주보다 먼저 생겼다는 박경리 토지길을 걸었습니다. 

토지의 주 무대였던 평사리들판과 최참판댁 실제 모델이 되었다는 화사별서 조부자댁도 찾아보았던 뜻깊은 박경리 토지길 걷기였습니다. 

박경리 토지길 경로를 보겠습니다.

출발은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 최참판댁 주차장~최참판댁 버스정류장~동정호~부부소나무~악양배수장~축지교 갈림길~대축교(잠수교)~악양교~취간림~정동마을 포지석~부계마을 위 갈림길~화사별서조씨고가~정서마을~황토민박갈림길~입석다목적모임터~보문사표지석갈림길~최참판댁~최참판댁주차장 순이로 거리는 약 13㎞입니다. 

소요시간은 4시간 안팎입니다.




하동 악양면 박경리 토지길의 출발과 도착 최참판댁 주소: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483

하동 악양면 박경리 토지길의 출발과 도착 최참판댁 전화:055-880-2385




2019/09/21 - (경남하동여행)깊어가는 가을의 소리를 들을수 있는 곳 하동 악양 평사리 들 동정호 여행

2019/09/20 - (하동여행/악양여행)가을이 익어가는 황금 들판 소설 토지의 악양들 부부소나무 여행.

2019/09/15 - (경남여행/하동여행)단풍 들면 더욱 좋을 곳, 하동 악양면 숨은 여행지 취간림. 하동 악양 취간림

2016/04/14 - (경남여행/하동여행)지리산 옛길 서산대사 길. 봄에 걷기 좋은 둘레길. 서산대사 휴정이 신흥마을과 의신마을을 오고가며 걸었던 지리산 옛길인 서산대사 길

2016/03/28 - (경남여행/하동여행)칠불사 아자방. 한번 불을 지피면 석달 열흘간 따뜻하다는 칠불사 아자방을 욕심내어 찾아갔지만 보수공사로 보지도 못하고 왔네요. 칠불사 아자방

2014/10/24 - (경남여행/하동여행)화개장터. “있어야 할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2014/10/29 - (하동여행/악양여행)박경리 토지 최참판댁, 대하소설 '토지' 무대 평사리 최참판댁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최참판댁






트랭글캡쳐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박경리 토지길은 최참판댁 소형주차장에서 출발했습니다. 

박경리 토지길은 먼저 최참판댁을 보고 나서 시계방향으로 조씨고가를 돌아 동정호를 거처 이곳으로 돌아오는코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반대 방향인 동정호를 먼저보고  조씨고가를 거쳐 최참댁에 도착하는 코스를 잡았습니다.



자 먼저 동정호 방향인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갑니다.

곧 바로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무대임을 보여주는 박경리토지문학비가 있습니다. 




그 맞은 편에 평사리 상평마을 유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중국 후난성 악양 소상팔경의 평사낙안과 같다하여 '평사'라한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상평과 외둔마을을 합해서 평사리라하며 박경리선생의 작품인 소설 토지의 주무대입니다. 



상평마을 입구의 소나무숲이 운치 있습니다. 

정자도 보입니다. ㅎㅎ

이곳에 올라 쉬어가고 싶지만 토지길이 이제 시작이라 패스하고 갑니다. 



상평마을 최참판댁 입구에 있는 최참판댁 버스정류장입니다. 

원래는 상평마을 버스정류장이라 해야하는데 토지의 최참판댁이 워낙 유명하고 찾는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군내버스정류장이  아예 최참판댁 정류장입니다. ㅎㅎ

이곳에서 동정호는 오른쪽으로 소나무 슾 아래를 돌아갑니다. 



최참판댁버스정류장 맞은편에 달팽이 조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왠 달팽이 조형물 하시겠지만 ㅎㅎ 

달팽이는 아주 느림을 뜻해서 늦게 오는 것을 흔히 '달팽이 걸음'이라 합니다.  

박경리의 토지길 1·2·3코스를 걸을 때는 달팽이 같은 걸음으로 아주 느리게 걸어보세요. 

그럼 이때까지 빨리빨리만 외치며 지나쳤던 여러가지를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이 보여집니다.  



박경리 토지길을 걷기전에 안내판을 먼저 보았습니다. 

여기 안내판에는 토지길 1코스가 최참판댁버스정류장 앞에서 평사리 들판으로 가로질러 가도록 나와 있습니다. 

토지길 안내도가 워낙 제각각이라 어떤 안내도는 동정호와 부부소나무를 거치도록 된 안내판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동정호와 부부소나무를 거쳐 가도록 코스를 잡았습니다.



박경리 토지길에서 동정호와 부부소나무를 보지 않고 간다는 것은 찐빵에 앙코 없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꼭 동정호와 부부소나무를 둘러보고 가기를 추천합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평사리들판에 사랑을 확인하는 든 서로 의지하는 부부소나무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한폭의 그림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닌지 ㅎㅎㅎ




동정호로 향하면  정자가 있던 소나무 숲 끝에 아주 굵고 큰  소나무가 아름다운 숲을 만들어 눈을 호강스럽게 했습니다. 



평사드레문화교류센터를 지나갑니다.



해바라기꽃이 화사하니 예쁨니다.



평사드레문화교류센터를 지나면 동정호입구가 나옵니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동정호입니다. 



동정호는 중국 악양의 동정호에서 그 이름을 따왔습니다. 

그 연유를 보면 하동의 악양역시 소정방이 나당연합군으로 참여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이곳을 지나면서 이곳의 경치가 중국의 악양 못지 않다고 한데서 악양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연못을 중국 악양의 동정호에서 따와 동정호라 하였다합니다. 

중국 악양의 동정호에는 악양루가 있습니다. 

중국의 대시인인 두보의 '등악양루'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하동 악양의 동정호에도 악양루가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 악양루는 이곳과 가까운 개치마을에 있으며 2004년 동정호에 누각을 세우면서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를 차입한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ㅎㅎㅎ

 사연이야 우찌하던지 간에 악양루에서 보는 경치는 정말 좋았습니다. 

당시 동정호를 수리 한다고 호수의 물을 모두 빼낸 상태지만  그래도 그 경관만은 끝내주게 아름다웠습니다. 

  


동정호를 한바퀴 돌면은 만나는 가로수길입니다. 

붉게 단풍물이 들면은 정말 예쁠듯 합니다.



동정호 둘레길를 70% 정도 돌았다면 나무로 만든 '지리산둘레길'이정표가 있습니다. 

붉은색 화살표는 최참판댁 가는길이고 검은색 화살표는 부부소나무 방향입니다. 

저는 부부소나무인 검은색 화살표를 따라갑니다. 



콘크리트 포장길인 농로길입니다. 

평사리들판, 악양들판이라고도 불리지만 원래는 무딤이들이라 불렸습니다. 

섬진강 길이가 500리라 하는데 무딤이들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가장 너른 들판이라합니다. 

그 크기가 무려 80여만평이라 하니 만석꾼 최참판댁 토지의 규모를 짐작해볼수 있습니다.



평사리들판의 마스코트인 부부소나무입니다.

평사리들판만 아니고 악양면의 마스코트 이기도 한 부부소나무 ㅎㅎ 

 


부부소나무를 처음 심었을 때는 작고 정말 볼품 없었습니다. 

세월도 흐르고 해서 그런지 이제는 수관도 넓고 당당한 부부소나무의 모습을 하여 정말 보기가 좋았습니다.




부부소나무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박경리 토지길을 걷습니다. 쭉 뻩은 콘크리트 농로길 끝에는 악양배수장이 있습니다. 

악양배수장옆에 지리산둘레길 이정표가 강뚝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수풀이 덧자랐지만 그런데로 오를수 있었습니다. 

오른쪽 악양배수장을 지나 뚝으로 오르는 너른길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이제 악양천을 끼고 흙길의 강뚝길을 신나게 걸어갑니다. 

왼쪽은 형제봉 능선이 펼쳐지고 오른쪽은 구재봉 칠성봉 능선과 정면의 회남재 능선이 모두 구름모자를 뒤집어 쓰고 그모습을 숨기고 있습니다.

처음만나는 번듯한 다리인 축지교 갈림길입니다. 최참판댁버스정류장에서 평사리들판을 가로질러오면 이곳에서 서로 만납니다. 

지리산둘레길 표지목에서 검은 화살표는 축지교를 건너 문암송 방향이라면 가야할 조씨고가는 직진인 오른쪽 붉은 화살표 방향입니다. 



이런 악양천 안내판이 있습니다. 

계속 악양천의 뚝길을 따라갑니다. 

지리산 둘레길은 축지교 갈림길에서 여러코스로 갈리지는데 그중 한 경로입니다.



정면은 회남재와 깃대봉이 오른쪽은 구름에 가려진 칠성봉 능선입니다. 

 계속가서 저기 보이는 악양천에 걸린 잠수교를 건너야 합니다. 




잠수교 직전에 만나는 지리산둘레길 이정표와 박경리 토지길 표지목입니다. 

참고하세요 ㅎㅎ



잠수교 갈림길입니다. 

이곳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악양천 뚝을 계속 따라 갑니다. 

그러나 박경리 토지길은 오른쪽 취간림 방향이며 난간없는 다리인 잠수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악양천변을 따라 갑니다.



잠수교에서 본 한가한 악양천입니다. 

정면은 회남재와 깃대봉 능선 그 아래쪽에 악양면소재지가 있습니다.



왔던 길을 잠수교에서 보았습니다. 

저멀리 축지교가 보입니다. 



악양면 취간림으로 가는 악양천변길 ㅎㅎㅎ 

콘크리트 포장길을 걸어갑니다.

 


그림 같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ㅎㅎ

 구름을 뒤집어쓴게 철쭉 산으로 유명한 하동 성(형)재봉압니다. ㅎㅎ

산이 놉긴 높은 모양입니다. 구름을 덮어 쓴게요.




그림같은 풍경 한장 더 ㅎㅎ



 콘크리트 포장길 사거리 오른쪽에 토지길 이정표가 있습니다. 

취간림(1,115m)은 왼쪽 붉은 파이프난간 다리를 건너갑니다.


악양천을 흐르는 물이 얼마나 맑은지 하늘의 구름과 산의 반영이 잘 보였습니다.

 


어느 재실 앞의 키큰 고목 옆을 지나갑니다. 

멀리 악양천에 걸린 악양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제 악양천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왼쪽 악양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취간림이 보입니다.



악양천 안내판과 악양교 



취간림입니다. 

대형 표지석이 취간림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취간림의 유래를 보면 고려말 녹사 한유한이 낙향하여 세상과 등지며 서당을 열고 후진을 양성했습니다. 

훗날에 선생을 추모하며 동정호에다 모한정을 건립하려 했으나 그 뜻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1931년에 와서 악양천의 섬등에 모한정을 세웠으나 다시 취간정으로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현재 정자는 없어지고 숲만 남게되어 취간림이 되었습니다.




근래에 세워진 팔각형의 취간림 정자.  

박경리 토지길의 조씨고가는 오른쪽 악양천뚝길을 따라갑니다. 



두줄로 가르마 길을 따라갑니다. 

정면에 보이는 다리가 정동마을 입구에 세워진 정동교입니다. 



정동교 직전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도로가에 정동마을 큰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표지석을 만났다면 길은 잘 찾았습니다. 



이제 도로를 쭉 쭉  따라갑니다.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ㅎㅎ

복숭아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ㅎㅎ 대봉감 입니다.

하동 악양은 대봉감이 유명합니다.



부계마을 앞을 지나갑니다. 

부계마을 표지석과 버스정류장입니다. 



부계마을을 벗어 났다면 곧바로 왼쪽 산비탈을 오르는 콘크리트 길이 나옵니다. 

아마 이정표는 파손 되었는지 없으며 그냥 지나치기 쉬워 주의해야 합니다.

왼쪽으로 꺾어 오르막을 살짝 올라서면 정면에 성제봉이 보입니다. 

그아래 삼각형의 툭 불거진 호봉(꽃뫼)이  보이면 길은 제대로 찾았습니다. 

.  


콘크리트길을 올라서면 토지길 이정표가 왼쪽을 가르킵니다.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꺾어 조씨고가로 향합니다.



오른쪽 형제봉과 호봉(꽃뫼)의 모습입니다.



마을길이 참 아름답습니다.



담장에 이런 큰바위가 박혀 있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이정표도 없고 해서 처음에 왼쪽 골목으로 갔습니다. 

이골목도 조씨고가로 바로 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식 박경리 토지길이 아니라 도로 삼거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꺾었습니다.

 



20m쯤 뒤에 위와 같은 조씨고가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정표를 보고 왼쪽으로 가면 조씨고가는 오른쪽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만나는 갈림길의 이정표는 왼쪽입니다.



조씨고가의 흙담입니다. 

담장을 따라갑니다. 

최참판댁의 모델집 다운 모습입니다.



조씨고가 맞은편 담의 벽화입니다. 

청사초롱이 켜지고 신랑각시 혼례 벽화입니다.





조씨고가를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연못안의 작은섬에 백일동안 꽃이 피었다 졌다를 반복한다는 백일홍이 마지막 열정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조씨고가 안채입니다. 

단아래 아마 사랑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 옆애 연못이 있으며 안채 뒤쪽인 현재 차밭에 초당이 있었다고합니다. ㅎㅎ

조선개국 공신인 조준(1346~1405)의 직계손인 조재희가 낙향해서 16년에 걸쳐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마을에서는 조부자집으로 불렀다고합니다. 

현재는 안채와 아래채만 남아 있는데 동학혁명과 6.25 한국동란에 사랑채와 행랑채, 후원에 초당과 사당 등이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박경리 소설 토지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집입니다.




상신마을에 그려진 벽화 몇곳을 보았습니다. 









이제 조씨고가를 출발해서 최참판댁드라마세트장으로 향합니다.

조씨고가 담장 아래를 걸어갑니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 콘크리트길은 서서히 내려갑니다. 



뒤돌아서 본 조씨고가가 있는 마을 풍경입니다. 



다시 최참판댁을 향해 갑니다. 

이정표도 보입니다 ㅎㅎ

저아래쪽이 제가 조씨고가를 향해 올라왔던 도로가 있습니다. 



이곳은 지대가 아주 높은 곳입니다. ㅎㅎ

누렇게 벼가 익으면  추수를 해야하니까 곧 벼베기를 할것 같습니다. 




마을의 풍경이 정말 한가롭고 예쁘고 ㅎㅎ 전원생활로 딱 좋은 동네 같았습니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입니다. 

여기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갑니다.



갈림길이 많다보니 주의해야 할곳이 여러곳 나옵니다. ㅎㅎ

이곳을 지나면 다시 도로를 만나 직진합니다.

정면에 황토방민박이 보입니다.



황토방민박에서 왼쪽으로 꺾습니다. ㅎㅎ

마을 외곽길이라 그런지 대부분 논밭과 과수원이었습니다.



정면의 산은 칠성봉 능선입니다. ㅎㅎ





넓게 잡아 본 칠성봉 능선입니다.



이길을 걷다가 대봉감에 이마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온 전체가 대봉감 천지였습니다. ㅎㅎ

 그냥 구경만 하며 걸었습니다.



콘크리트길 전체가 대봉감으로 뒤덮인 길을 빠져나오면 안부의 임도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고개에서 다시 직진하여 내려갑니다. 

 


다시 돌아나가면 입석마을에 닿습니다.



입석마을을 알리는 이정표21번이며 최참판댁은 왼쪽 아래로 내려갑니다.



담벼락이 인상적이라 담아 보았습니다. 

요즘 이런곳은 정말 보기 힘듭니다.




입석다목적모임터 앞갈림길입니다. 

지리산둘레길 표지목만 있어서 모르고 입석다목적모임터 앞을 지나 쭉 내려가 버렸습니다. 

다시 토지길을 확인해보니까 잘못내려왔음을 알고  되돌아 올라갔습니다. ㅎㅎ

이곳에서 지리산둘레길 방향인 왼쪽입니다. 



다시 갈림길에서 정면인 지리산둘레길이 최참판댁 가는 길입니다. 

바닥에 희미하지만 노란 화살표가 토지길임을 보여주 있습니다.

갈림길에 이화살표를 한번 확인해보세요 ㅎㅎ

가끔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지리산둘레길 이정표입니다. 

직진은 지리산 둘레길 가는길이라면 

최참판댁은 왼쪽 콘크리트길 입니다.



갈림길에서 좌우는 지리산둘레길이고  오른쪽이 최참판댁 가는 길입니다. 

저기 보문사 간판이 보입니다. ㅎㅎ



내려서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아래쪽에 보문사 표지석이 있습니다. 

보문사 표지석에서 왼쪽이 최참판댁 가는 길입니다.





최참판댁이 가까이오니까 이제 평사리 들판이 보입니다. 



최참판댁 못미처 만나는 갈림길입니다. 

직진하면 최참판댁 매표소와 주차장으로 바로간다면 최참판댁 드라마세트장은 오른쪽입니다.



이제 막바지 최참판댁드라마세트장에 도착했습니다. 

5일장을 재현해놓았습니다. 



드디어 최참판댁에 도착했습니다.ㅎㅎ

이곳에서는 부부소나무도 보였습니다. 

조씨고가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최참판댁은 전에 와서도 보았지만 다시 내부 관람을 했습니다.



저기 박경리 토지길 초반에 걸었던 부부소나무와 왼쪽인 동정호입니다.



최참판댁 촬영포인트 ㅎㅎ

 모델이 여기 평상에 딱 앉아서 저기 부부소나무를 바라보고 그 장면을 촬영하는데 모델이 없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모델 빼고 한번 담아 보았습니다. ㅎㅎ



최참판댁 ㅎㅎ 옥수수 등 완전 가을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최참판댁 입구에 앉아 독서하는 최참판 ㅎㅎ

최참판댁을 끝으로  주차장을 내려오면서 박경리 토지길을 마무리 했습니다. 

728x90

728x90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요산 김정한 생가, 요산문학관. 하늘은 높고 말을 살찐다는 계절 요산 김정한 생가, 요산문학관 여행 정말 추천합니다.


소설가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 생가와 요산문학관에 다녀왔습니다. '사하촌' '수라도'와 '사밧재' 등 요산 선생님의 소설을 여러 권 읽었지만, 막상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 있다는 생가와 요산 선생님의 문학관을 가보질 못해 무언가 항상 허전했습니다. 이번에 범어사를 가면서 선생님의 생가를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선생님의 생가 주위로 집들이 들어차 도리어 생가의 규모가 아주 작아 보였는데 1970년 중반에 필자가 다닌 금정중학교 일원은 논밭투성이로 완전 허허벌판이었습니다. 토요일이면 오전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온천장에 있는 집까지 걸어가면서 구불구불 논밭 사이로 이어진 농로를 따라 다녔으니까 지금의 모습을 보면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그 당시만 같아도 지대도 높고 논밭 사이로 선생님의 생가는 우뚝 솟아 주위 근방 모든 곳이 보였을 것이지만 이제는 주위에 큰 건물로 가려져 찾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요산 김정한 선생님은 동래구 북면 남산리 김해김씨 삼현파 집성촌인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본향은 경북 청도이신데 1498년 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 때 16대 할아버지 김일손이 성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의 사초 사건으로 참형을 당하셨습니다. 그 후에 후손들은 이곳으로 옮겨와 새 거를 이루었습니다.







선생님 또한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으로 격동의 20세기를 온몸으로 겪어 내신 분입니다. 1936년 단편소설 ‘사하촌’이 조선일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여러 번 옥고를 치르셨고 손수 우리말 사전과 식물도감을 만들어 우리의 민족혼을 일깨우셨으며 광복이 된 후에는 경남 건국준비위원회와 ‘민주신보’ 논설위원으로 일하셨습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부산중학교를 거쳐 부산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시며 많은 작품 활동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생가는 2002년 12월에 허물어져가던 옛집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일자형의 팔작지붕 한옥을 원형 그대로 2003년 6월에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생가 옆에는 요산문학관이 있습니다. 들어서는 입구에 선생님의 흉상이 세워져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3층의 현대식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1층은 세미나실, 2층은 전시실과 도서관, 3층은 후배 문학가들의 창작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먼저 세미나실로 들어갔습니다. 한쪽으로 선생님의 소설들이 전집과 판권으로 진열되었으며 판매도 하고 있었습니다.


 

요산 김정한선생님 작품 사하촌, 옥심이, 항진기, 모래톱이야기,


그물 당대풍 축생도, 낙일홍, 수라도, 제3병동 개와 소년, 사밧재 등










2층의 전시실은 선생의 유품과 육필원고, 그리고 선생님이 직접 만드신 우리말 낱말카드와 식물도감, 습작 노트 등을 전시 중이며 소설 속의 무대를 사진으로 소개하여 방문객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사밧재라든지 수라도의 화제리 등 실제로 저도 여러 곳을 다녀보아 이번 전시실을 보면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이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입니다. 요산 김정한 선생님의 생가와 요산문학관도 여행하시고 평생을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삶을 사신 선생님의 뜻을 생각하며 선생님의 소설을 읽어보세요.





 ◆요산문학관 정보 안내◆

★관람안내: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오후5시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휴관, 입장료는 무료

★요산문학관 주소:600-815 부산광역시 금정구 팔송로 60-6

★교통편: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에서 청룡초등교 정문을 지나 600m, 도보 15분, 또는 도시철도 1호선 장전역 3번 출구로 나와 80번 버스로 환승하여 남산동 버스정류장에 하차하면 60m거리.

728x90

728x90


☞(전북여행/임실여행)임실 사선대. 임실군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 오원천 사선대. 


임실군에서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궁금하여 찾아간 곳입니다. 오원천이 흐르는 관촌면 사선대는 맑은 물과 함께 주변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하여 예로부터 신선과 선녀가 함께 즐겨 내려와 놀고 갔다는데서 유래했다합니다.




또한, 천혜의 절벽을 이고 선 운서정과 함께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이 가을에 정말 찾고 싶은 사선대 관광지입니다. 섬진강의 모태인 오원천 상류에 벌써 가을이 물들고 하나둘 붉은 색으로 치장을 하는 낙엽을 보면서 사선대의 가을 풍경을 즐겼습니다.

또한, 신덕면 오궁리 미술 촌에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모여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조각 작품을 이곳 사선대 한자리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사선대 국제 조각공원에서 직접 작품 감상도하면서 주변의 빼어난 경치와 어울리는 예술작품의 세계를 느끼며 즐겼던 하루였습니다.


사선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갑니다. 진안의 마이산과 임실 운수산의 네 신선은 오원천에 병풍처럼 두른 기암절벽의 수려한 경치에 반해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흥에 취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어느 날 어디선가 까마귀 무리가 날아와 신선과 함께 무리지어 놀고 있는데 하늘에서 네 선녀가 내려와 신선을 호위하면서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합니다. 그 뒤부터 이곳을 네 신선과 네 선녀가 놀고 갔다하여 사선대라 하였고 까마귀가 놀던 내라하여 오원천이 되었다합니다.

사선대는 일찍이 이곳의 경치가 빼어나 많은 문인이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정조시기에 관촌면 주천리에 시문에 뛰어난 이달호란 분이 살았습니다. 호는 호산이며 ‘호산집일책’을 남겼을 정도로 문장가였습니다.


임실 덕천리 산개나리군락지

뛰어난 글솜씨로 그는 호남의 명사들과 많은 교류를 했는데 그중에서도 임실현감 이도재와는 막역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임실현감은 전주판관과 남원부사 그리고 이도재와 함께 수시로 이곳 오원천에 배를 띄워 놀면서 시문을 겨루었습니다.

동년배로 서로 허물없이 놀다보니 관복을 모두 벗고 평복으로 갈아입었으며 노는 모습이 마치 네 사람의 신선이 내려와 놀던 모습으로 비추었다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놀던 곳을 사선대라 부르게 되었다합니다.

지방유형문화재 제153호인 운서정 옛길을 따라 사선대로 내려오는데 개나리군락지가 천연기념물 제388호로 지정된 곳이 있었습니다. 사실 개나리도 천연기념물인 것을 보고 놀랐는데 다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산개나리라 하며 꽃은 4월에 피는데 서울 북한산과 중부지방에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남부지방에서는 이곳 임실 관촌면 덕천리가 처음이라 합니다.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산개나리는 사선대 언덕에 약 230그루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어린가지는 자줏빛 털이 없으며 2년쯤 지난 가지는 회갈색을 띠며 줄기는 곧게 자라고 암술에 털이 있는 게 일반 개나리와 다르다합니다. 가을에 찾았던 임실 덕천리 산개나리 군락지에 노란 개나리꽃은 볼 수 없었지만, 활짝 핀 개나리꽃을 상상하며 임실 사선대에서 네 신선과 선녀를 만났던 즐거운 여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사선대 사진으로 보기




























#운서정 #사선대 #임실여행 #여행 #국내여행 #가을여행 

#사선대국제조각공원




728x90

728x90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면 망덕포구. 섬진강과 호남정맥의 끝과 시작인 망덕포구로 가을 여행을 떠나보세요.


강물이 흘러와 자연스럽게 바다와 한 몸이 되는 곳이 있습니다. 새벽에 나갔던 고깃배가 석양빛을 받으며 갯가로 들어오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있습니다. 누구나 아련한 추억 한 줄은 남아 있을 것 같은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그런 곳 망덕포구를 지난여름에 댕겨 왔습니다. 전날 엄청 내린 폭우로 포구에 묶어 둔 쪽배의 뱃머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아픈 듯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바다 바람에 온 몸을 맞고 있습니다.





 

 망덕포구는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의 망덕산 아래에 복주머니처럼 옴폭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와 갈사리를 끼고 흘러온 섬진강이 물을 토해 내놓는 곳입니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있는 팔공산 북쪽 천상데미로 불리는 봉우리 기슭에 있는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550리를 흘러 이곳 망덕포구에서 몸을 한결 낮추며 광양만에서 몸을 눕힙니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강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는 봉우리를 뜻하는 더미에서 나왔습니다. 데미샘의 발원지인 천상데미는 섬진강을 거슬러 천상으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그의미가 자뭇 심장합니다. 


 

섬진강을 혹자는 아픔의 강이라 합니다. 좌우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아픔과 상처를 모두 보듬고 안아 말없이 흘러가는 섬진강. 그 섬진강을 감사는 산이 성스러운 여신의 산이라 부르는 지리산입니다. 모든 것을 품을 것 같은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라 부릅니다. 너른 품으로 섬진강을 품고 쓰다듬어 그 아픔을 말없이 토해 내는 ‘엄마’의 눈물처럼 섬진강은 그렇게 강이 되어 강과 바다의 경계인 망덕포구로 흘러갑니다.


 

 

 

망덕포구는 끝과 시작의 점입니다. 섬진강물은 이곳에서 끝을 맺지만 백두대간의 또 다른 시작점입니다. 한반도의 등뼈로 통하는 백두대간의 최남단은 망덕포구입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호남정맥은 망덕산을 올라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인 영취산을 만나고 백두산으로 거침없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망덕포구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먹거리가 있습니다. 섬진강과 남해가 서로 만나는 기수지역이라 이른 봄 벚꽃이 필 때 가장 물이 올라 맛있다는 벚 굴을 시작으로 전어, 맛조개, 백합, 재첩, 장어 등이 많이 나와 광양, 하동을 더욱 풍부한 먹거리로 만듭니다.

 

 

 

망덕포구의 가을은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가 망덕포구의 또 다른 별미입니다. 왠 집 나간 며느리가 그리 많은지 망덕포구의 9월은 모두 집나간 며느님이 와서 그런지 9월에 열리는 '망덕전어축제' 때는 방문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 합니다.


 

그 것을 증명이라 하듯 망덕포구 안에는 ‘전어고을 망뎅이’ 조형물이 큼지막하게 세워 놓았습니다. ‘여기가 바로 전어고을이제’하며 말입니다. 지금이야 교통의 발달로 이곳저곳 마음대로 다닐 수 있지만 예전에는 뱃길이 가장 빨랐습니다.





 

망덕포구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하동, 다압, 구례, 곡성까지 올라가는 유일한 길목 역할을 망덕포구가 하였다니 그 당시의 망덕포구가 상상이 됩니다. 망덕의 유래는 망덕산에 오르면 광양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하여 ‘망뎅이’라 하였는데 한자음에서 망덕(望德)이가 되었다는 이야기. 사진으로 보는 작은 산이 망덕산입니다. 

 

 


 

 

 

 

2001년 광양시장이 세웠던 ‘진남루기’ 표지석에 망덕포구를 잘 표현하여 옮겨 옵니다.“ 아, 이곳은 명지(名地)이다. 노화(蘆花)를 적신 물이 칠문(七門)을 통하여 배알도(拜謁島)를 휘감고 돌아 남해(南海) 물결과 만나고 영봉(靈峰) 억불봉(億佛峰)을 뒤로하고 풍치 좋은 무접도(舞蝶島)와 망덕산(望德山)을 좌우로 거느리고 여름이면 물결 출렁이는 소리와 겨울이면 갈대 서걱 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 .망덕포구의 가을은 이제 부터 시작입니다. 


 

 


 

망덕포구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08년 9월에 어업권을 찬탈한 일본인을 처단하기 위해 황병학(1876~1931)이 의병을 일으킨 곳입니다. 그해 여름 광양의 영산 백운산에서 산포수 100여명을 모아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망덕포구의 어장을 빼앗은 일본어민과 잡화상을 공격하여 가옥과 어선을 모두 불태우며 저항을 하였던 곳입니다. 지금은 광덕포구 쉼터가 마련되어 그 당시를 알리는 작은 안내판만 따가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습니다.


 

4월의 망덕포구는 벚꽃이 장식을 합니다. 망덕포구 전체가 하나의 벚꽃이 된다는 마을 분의 설명을 들으며  4월에 벚꽃이 필때  벚굴을 먹으러 다시 한번 찾고 싶은 망덕포구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서시'.' 별헤는 밤' 등 윤동주의 필사본이 왜인의 눈을 피해 보관되었던 정병욱 가옥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이 정병욱 가옥입니다. 지금은 근대 문화유산인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1925년 건립이 되었습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