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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하멜표류기와 하멜기념관. 서양에 최초로 조선을 알린 하멜보고서의 하멜표류기와 하멜 기념관 여행


바다에서 표류하다 조선 땅의 제주도에 닿아 13년간의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을 겪은 뒤 지은 책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하멜표류기'입니다. 네덜란드 선원이었던 하멜이 조선에서의 참담했던 생활을 하나의 기행문으로 남긴 보고서인데 ‘난선 제주도 난파기’와 부록에 해당하는 ‘조선국기’로 조선의 지리와 풍속, 군사와 교육등 당시 사회 전반과 겪었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2016/09/14 - (강진산행)강진 수인산 수인산성 산행. 여기에도 산길이 있을까? 멋진 가을 산행이 기다리는 철옹성 같은 산성이 있는 강진 수인산.

2016/09/12 - (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전라병영성. 지금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제주도와 전라도 육군 총지휘부였던 전라병영성 여행, 그 규모에 입이 쩍~~강진 병영성




 


하멜표루기는 1666년 하멜 일행이 조선을 탈출하여 본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가 1668년 조선이란 나라를 최초로 유럽에 소개했던 책입니다. 하멜은 왜! 자의든 타의든 조선 땅에 오게 되었을까요?? 하멜은 네덜란드 사람으로 동인도회사의 선원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일본과의 무역거래가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일본은 포르투갈과 교류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조총으로 한반도를 짓밟기도 했는데 단교하고 다시 네덜란드와 교류하여 유럽의 신식문물인 양학과 난학을 받아들이는 등 개혁개방을 추진하여 일본은 경제부흥을 일으키는 토대를 마련하면서 조선을 강제 병합하기에 이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그리 당하고서도 당시 정치꾼은 정신을 못 차리고 조선 말기에 일본에다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아픔을 당했습니다. 그 아픔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참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멜 돌담길:병영면에는 하멜 돌담길이 있습니다. 호박만한 크기의 돌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돌담길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또한, 돌담의 높이는 2~3m로 병영성의 군사가 말을 타고 다녀 민가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집안 내부를 볼 수 없게끔 높이 쌓았습니다. 흙 담에다 돌을 일렬로 쌓지 않고 납작한 돌을 15도 각도로 기울려 한방향이 아닌 지그재그 형태의 빗살무늬로 쌓아 견고함을 더욱 높혔습니다. 이런 형태의 담장이 네덜란드 담장의 축조 양식이라 합니다.

 

 

 


동인도회사는 1602년에 설립되어 중국과 일본,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등과 활발한 해상무역을 펼쳤습니다. 주로 동양의 향신료와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된 청화백자를 유럽으로 가져가 엄청난 이윤을 남겼습니다.


 

 

 

 


하멜이 탄 배는 1653년 1월 10일 네덜란드에서 출발하여 6월 14일 타이완의 안핑까지 운항하였고 동인도 회사 본사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날씨가 변하면서 악천후를 만나 배는 좌초하였고 제주도의 모슬포 인근에 겨우 닿았지만 66명의 선원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38명이었습니다. 이로써 하멜 일행은 조선에서의 험난한 생활이 시작됩니다.


 

 

 

 


제주 목사였던 이원진이 이들을 체포하여 조정에 장계를 올렸으며 하멜 일행은 제주도에서 생활하면서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사정하지만 효종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에 선원 6명이 탈출을 시도하였고 실패로 끝나자 효종은 하멜 일행을 서울로 압송하라는 어명을 내립니다.


 

 

 

 


효종은 네덜란드 선원의 대포, 조총 등 신무기 기술을 활용하여 당시 추진하던 불벌계획에 이용하기 위해 이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박연의 휘하에서 군사훈련을 받도록 조치합니다. 그해 청나라 사신이 조선에 들어오자 조정은 양인을 억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청나라 사신에게 오해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을 우려해 하멜 일행을 남한산성에 억류시켜버립니다.


 

 

 

 


일행 중 두 명이 빠져나와 청나라사신 앞에서 자신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하지만, 그마저 실패로 끝나고 하멜 일행 모두 전남 강진의 병영성에서 탈출 전까지 7년간의 유배 생활에 처해집니다. 하멜 표류기를 보면 유배생활 중 전라 병영성의 병마절도사가 총 5명이 바뀌었다 합니다.


 


 

 


풀 뽑기와 가벼운 청소 그리고 산에서 나무하기 등 호의적인 병마절도사도 있었지만 혹독하게 일을 시켜 입고 있던 옷이 누더기가 될 정도로 육체적인 노동을 강요했다 합니다. 1659년 현종이 즉위하고 조선은 가뭄과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하멜표류기에는 이때의 상황을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산에서 도토리를 줍고 소나무 껍질을 벗겼으며 잡풀까지 뜯어 먹어야 했다”라고 당시 참담했던 상황을 기술하였습니다. 하멜 일행도 3년 동안의 생활은 말로 표현할 수없는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멜 일행도 역병과 굶주림에 생존자는 22명만 남게 되었고 조정은 이들을 순천과 남원, 여수 좌수영에 각각 분산 배치하여 수용하게 합니다. 하멜과 함께 11명은 여수의 좌수영으로 옮겨갔고 이곳에서도 기다린 것은 또한, 고된 노역과 배고픔이었습니다.


 

 

 

 


하멜은 고된 노역과 질병, 굶주림에 일행이 자꾸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탈출 계획을 세웠습니다. 먼저 타고 갈 배를 구입하는 게 문제였습니다. 하멜은 닥치는 대로 돈되는 일을 시작하여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탈출계획은 착착진행되어 당시 배삯의 두배를 주고 배를 구입하였고 1666년 드디어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을 성공하여 본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됩니다.. 당시 생존자가 16명인데 8명만 탈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럼 강진군 병영성 앞의 하멜 기념관을 보겠습니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80 하멜 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최초로 서양에 알린 하멜보고서인 하멜표류기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의 생애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 및 자매도시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의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하였습니다.


 

 

 

 

 

 


하멜 기념관의 건물은 타원형의 목조건물로 왼쪽 건물은 하멜이 처음 도착한 제주도를 상징하며 오른쪽 건물은 하멜이 일본 나가사키로 가기 위해 탓 던 조난선인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뜻한다 합니다.


 

 


하멜 기념관의 전시실은 ‘하멜보고서’ 외에도 하멜의 생애와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회 문화와 역사적 상황, 강진군과 네덜란드 호르큼시와 자매결연 등 주제별로 전시실을 꾸며 하멜 기념관을 더욱 알차고 풍성하게 꾸며놓았습니다. 하멜 기념관은 총 2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상설 전시 중입니다.


 

 

하멜기념관 사진으로 만나기


 

 

 

 

 

 

 

 

 

하멜보고서 원본 복제품

 

 

 

 

 

 

 

 

 

 

 

 

 

 

 

 


◆하멜기념관 관람정보안내

★하멜기념관 주소:전남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80

하멜기념관 전화:061-430-3318

관람시간:연중 09:00~18:00

휴관일:신장, 구정, 추석, 매주 월요일

관람료:무료

주차시설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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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여행/영도가볼만한곳)청학동 해돋이 전망대 청학마루. 영도 최고 전망대로 손색없는 봉래산 둘레길 청학동 해돋이 벽화 마을 해돋이 전망대 청학마루를 만나다.


 어제 5일간의 긴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아쉬움을 달래고자 집 앞 남항에 놓인 남항대교를 걸어 영도로 콧바람을 쉬러 갔습니다. 영도는 이름 그대로 섬입니다. 섬인 영도를 이루는 게 영도의 최고봉인 봉래산입니다.







봉래산은 신선이 산다는 곳으로 강원도 금강산과 동격인 산입니다. 금강산은 사시사철 부르는 이름이 달라 여름에만 봉래산으로 부른다지만 부산 영도의 봉래산은 일 년 내내 주야장천 봉래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산이면 신선이 사는 경치일까요?? 실제로 영도 봉래산 자락에는 신선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신선동이 그러하고, 청학동도 그러하고 영선동, 봉래동 등 모두 신선과 관계한 신비로운 이름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중에서도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푸른 학인 청학이 산다는 청학동 해돋이 마을에 올해 초 새롭게 해돋이 전망대 청학 마루가 조성되었습니다. 봉래산 둘레길을 걷고 할 때 한창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정상을 찍고 내려오면서 봉래산 둘레길에서 해돋이 전망대 청학 마루가 완공되어 우연히 보았습니다.



청학마루는 봉래산 둘레길에서 전망대 구실을 톡톡히 하였습니다. 해돋이 마을은 새뜰마을이라 부릅니다. 지난 2015년에도 해돋이 벽화 마을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해돋이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돋이마을의 해돋이 전망대인 청학마루 포스팅 입니다. 해돋이 마을의 처음 시초는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분들이 이곳에 하나둘 모여들면서 지금의 마을을 이루어 다른 지역보다도 많이 낙후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영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의 마을로 그만큼 조망이 끝내주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라는 해돋이 마을의 애칭을 얻었습니다. 해돋이 벽화 마을 포스팅을 따로 올려 섰지만 벽화가 하나같이 어릴 적 동심을 끄집어 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딱지치기, 비석 치기, 동꼬찌르기, 말뚝박기 등 개구쟁이 아이들은 모두 한 번쯤 해보며 뛰고 놀았을 추억을 그림으로 만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2016년 2월 23일에 또 하나의 볼거리가 완공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전망 좋은 곳에 청학 마루 전망대까지 떡하니 만들어져 이제는 영도 최고의 조망처가 되었습니다.



영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청학동 해돋이 마을 전망대 청학 마루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주민지원공모사업의 일환인 봉래산 둘레길 휴게소 조성사업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예산 3억 원으로 전체면적 58.35㎡에 번듯한 지상 3층 규모의 전망대입니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렸으며 2층의 청학 마루 카페도 연휴라 그런지 문이 꼭꼭 잠겨져 3층 전망대에서 부산항대교와 신선대 부두 등 주변 경치만 보고 내려왔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음미하면서 밖의 경치를 보고 싶었는데 참 많이 아쉬웠습니다. 또다시 봉래산 둘레길을 걸을 때는 삼각대를 들고 올라가 부산항 대교 야경도 담아야겠습니다.


청학동 해돋이 벽화 마을 해돋이 전망대 청학마루



해돋이 벽화마을에서 본 부산항 대교 



◆청학동 해돋이벽화마을이 궁금하다면 

2015/09/09 - (부산여행/영도여행)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피난민촌 마을 청학동 해돋이 마을 벽화 여행을 하다. 청학동 해돋이마을.








해돋이마을 청학배수지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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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여행/양산가볼만한곳)양산 천성산 원효암. 천성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 천성산 원효암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만나다.



경남 양산의 천성산 산정상인 원효봉 아래 해발 750여m에 선덕여왕 15년인 646년에 원효대사께서 창건한 암자가 있습니다. 암자 이름은 물론 원효대사의 이름을 따와 원효암으로 불리며 920.7m 정상 또한 원효산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천성산 원효봉으로 제 이름을 정리한 상태입니다.



2016/09/13 - (양산산행/양산가볼만한곳)천성산 화엄벌. 가을 손님 맞이 천성산 화엄벌 억새 산행, 천성산 화엄벌 산행

2012/09/21 - (경남양산여행)천성산원효암. 원효의 전설이 가득한 천성산 원효암이 암자중 으뜸


 



원효암은 1905년 효은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내원사 말사입니다. 원효암의 현재 당우는 모두 근래에 불사 되어 새로운 모습이지만 원효암의 대웅전 옆 절벽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인 양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이 섬세한 조각 솜씨를 뽐내며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법당 내부에는 1648년 인조 26년에 조성되었다는 양산 원효암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먼저 양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을 알아보겠습니다. 삼존불 입상은 가운데 아미타여래를 그리고 왼쪽에는 관음보살상과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상을 모셨습니다. 양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은 전체적으로 얕게 조각하여 평면에 가까우며 화화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아미타여래불은 입상으로 밑에서 쳐다보면 상반신보다 하반신이 훨씬 길게 보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느낌입니다. 좌우 두 보살 상은 본존불을 향해 합장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원형의 두광을 갖춘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화려한 보관인 긴머리가 어깨를 지나 허리까지 흘러내린 게 아주 유려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바위 상단에는 나무아미타불 명문과 대세지보살 오른쪽에 세존응화2933년의 명문으로 주불이 아미타불이며 1906년인 근대 시기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의 전체적인 느낌은 한 폭의 불화를 그린 듯 정교하고 섬세하며 안정감이 뛰어난 문화재로 길지 않은 역사에 비해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당에 봉안된 원효암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입니다. 사찰에서 촬영하기가 가장 껄꺼로운 게 법당 안에 모셔진 불상 촬영입니다. 그것도 종무소나 스님, 불자님이 법당 내부에 안 계시거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사진 촬영에 덜 거슬리는 데 가까이 있다면 촬영이 된다고 해도 불상을 담기에는 항상 마음이 무거워 원효암 법당의 석조약사여래좌상 사진도 딱 석 장 찍었는데 석 장 모두 흔들려서 아쉬웠습니다.


 



천성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






아미타여래불


그래도 아쉽지만, 포스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장이라도 올립니다. 원효암의 약사여래좌상은 높이는 77cm이며 하나의 돌을 조각한 석조불상입니다. 불상 조상기에는 통도사 약사전에 모셔진 것을 통도사 말사였던 원효암에 봉안하였다 합니다.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불상의 머리는 앞으로 약간 숙이며 등은 구부린 상태로 오른손은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입니다. 왼손은 약사불상의 트레이드마크인 약함을 생략한 게 특이합니다. 그리고 결가보좌한 양다리 사이의 법의 자락은 단면이 두꺼워서 조선 후기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산 원효암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


복장유물로는 불상조성 발원문과 인쇄본인 다라니경, 오곡, 오향, 오색사를 포함한 후령통 등이 나왔습니다. 조선 후기의 다른 불상과는 다르게 석조불상으로 제작시기가 정확하게 밝혀져 조선 후기의 석불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양산 천성산 원효암 주소: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1-1

★양산 천성산 원효암 전화 055-375-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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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산 병풍바위 



(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강진 수인산 수인산성 산행. 여기에도 산길이 있을까? 멋진 가을 산행이 기다리는 철옹성 같은 산성이 있는 강진 수인산.



전라남도 강진은 이름만 대면 모두 알 수 있는 산이 많습니다. 국립공원 월출산이 그러하며 호남의 공룡능선이라는 주작산과 덕룡산, 다산 정약용의 만덕산 등 산행과 역사성까지 모두 갖추어 요즘 대세인 스토리 텔링의 산이라 인기가 높습니다. 그 가운데에도 강진 하면 수인산도 그에 못지않은 찰진 산입니다.







2016/09/12 - (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전라병영성. 지금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제주도와 전라도 육군 총지휘부였던 전라병영성 여행, 그 규모에 입이 쩍~~강진 병영성





홈골저수지 


수인산은 병영성과 네덜란드인으로 조선에서 억류되었다 탈출하여  조선 보고서인 하멜 표류기를 쓴 하멜 이야기, 수인 산성 등 역사성을 두루 갖춘 작지만 큰산입니다. 수인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홈골저수지 둑 오른쪽 끝 산행 출발지 


수인산성 동문 앞 암벽에 ‘수덕인산세(修德因山勢:산의 기세를 보고 덕을 닦는다)’라는 각자가 있는데 여기에서 수인산(修仁山)이 나왔다 합니다. 또한, 수인사에서 그 유래가 나왔다는데 “수인사의 스님들이 마음을 어질게 다스리고 수도에 정진하여 모두 성불한다”는 뜻으로 수인산으로 불렸다 합니다.


 

 


수인산에는 길이 6km, 높이 5m, 너비 4m의 산성이 있으며 동서남북 네 곳에 성문이 있습니다. 성벽의 일부 축성법을 보고 백제 때의 산성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려말에서 조선말 까지 전라병영성의 전략적 요충지로 왜구의 침입이 있을 때는 인근의 도강·탐진·보성·장흥·영암 등의 백성이 이곳에서 피란을 했던 곳입니다.


 

 


병영면은 조선 시대 태종 때 왜구를 막고자 병영을 설치한 데서 유래하며 정상인 노적봉에는 장흥의 억불산에서 봉화를 받아 위급함을 알렸던 봉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인산 산행은 산행 그 자체도 아주 좋으며 전라병영성과 하멜, 수인산성의 이야기도 산행의 재미를 배가시켜 재미있는 가을 산행을 만들어줍니다.


 

병풍바위 위용 


강진 수인산 산행 경로는 홈골저수지~270m봉~480m 성불리·탕근바위 갈림길~남문~느티나무 숲 삼거리~서문(공적비바위)~북문(홈골재)~수인산 노적봉~정상갈림길(수인 산성 동문 1.3km·주차장 1.9km)~도둑골·한바위재 갈림길~북문(홈골재)~홈골~홈골저수지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으로 산행 거리는 8.5km, 이며 산행시간은 3시간 30분~4시간쯤 걸립니다.


 

 도룡저수지

 

 국립공원 월출산


강진의 수인산은 병영면 지로리 홈골저수지에서 모두 시작합니다. 주로 홈골저수지에서 왼쪽 홈골을 올라 수인산 정상을 거쳐 하산은 병풍바위에서 수인사로 하산하는데 필자는 조금 더 길게 산행 계획을 세워 역으로 홈골저수지에서 오른쪽 481m 봉을 올라 수인산 남문을 거쳐 정상을 찍고 홈골로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수인산 산행을 출발합니다.


 

 

 

 


홈골 저수지에서 오른쪽 끝에 ‘수인사(0.66km)·수인산성남문(2.8km)’ 이정표를 보고 얕은 능선을 올라 수인 산성 남문 방향으로 오릅니다. 포근한 솔숲이 좋은 오솔길을 한참동안 오릅니다. 머리를 들면 왼쪽으로 병풍 같다는 웅장한 암벽인 병풍바위는 볼 수 없었고 수인산의 모습은 그저 평범한 수준의 수더분한 모습입니다.


 

 

 

 


전망이 드러나는 270m 봉에 도착하면 시야가 환하게 열리면서 누른 강진의 황금 들판이 뾰쪽뾰쪽한 산세인 월출산까지 이어져 보기가 정말 좋습니다. 왼쪽 발아래에는 도룡리 저수지도 보이고 도룡마을 하산길이 희미하게 능선으로 연결됩니다.


 

수인산 병풍바위 

 

 

 

 


남문으로 가는 뚜렷한 능선 길을 따라가면 뜬금없는 도룡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주위로 하산 루터를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습니다. 수인 산성 남문까지는 1.88km, 홈골저수지에서 약 900m쯤 왔습니다. 무시하고 계속 능선을 오릅니다.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던 바위전망대가 수시로 나타나 수인산 산행을 더욱 기대를 하게 합니다.


 

 

 

 


수인산 병풍바위도 방향을 달리하면서 평범하던 육산에서 서서히 바위산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장 왼쪽에 송이버섯을 닮은 남근석과 미끈한 바위가 우뚝 솟았는 게 탕근바위 같고 바위 전체는 넓게 펼쳐진 게 병풍을 펼쳐 놓았습니다. 과연 수인산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성이라 해도 괜찮을 듯 한 험준한 산세입니다.


 

481봉 삼거리 이정표 

 

 

 

 


40분이면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481m 봉에 오릅니다. 오른쪽은 성불리(2.15km)로 내려가며 왼쪽은 탕근바위(0.82kn) 방향입니다. 정면에서 보는 수인산은 병풍암과 탕근바위로 산세는 전형적인 골산이며 그 위에 연꽃 봉우리처럼 뽕긋 솟은 봉우리가 수인산 정상인 노적봉입니다.


 

 

 

 병풍바위

 

 


꼭 외계인이 타고 온 듯한 비행접시를 닮았습니다. 노적봉 봉우리의 뚜껑이 갈라지면서 비행접시가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는게 ㅋ ㅋ 혹시 수인산이 외계인의 전진기지가 아닌지 생각해 봤습니다. ㅎ ㅎ 너무 나갔나요? 병풍바위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가는 능선이 장흥의 수리봉 능선입니다.


 

 

 

 


언제가 장흥 쪽에서 수리봉을 올라 동문으로 산행 계획을 한번 세워야겠습니다. 전망대에서 장흥 쪽을 보면 제암산과 사자두봉, 억불봉, 천관산 등 보성과 장흥·강진의 명산이 병풍을 펼친 듯 쭉 연결되는 게 참 호남은 명산의 보고입니다.


 

수리봉 능선 


수인산성의 병풍바위를 보면서 탕근바위 방향으로 능선을 내려갑니다. 더욱 크고 웅장한 수인산 병풍바위는 나의 머리 위에서 짓누를 때쯤 안부에 닿고 다시 병풍바위 방향으로 능선을 오릅니다. 꼭 공룡의 등줄기 같이 내려온 바위를 비집고 난 산길은 교묘하게 수인산성 안으로 들어가게끔 산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수인산성 남문 


임진왜란 등 여러 전란 때에도 이 길을 통해 산성 안으로 의병과 군인이 다녔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른쪽에 끊어진 성벽이 남문입니다. 여느 산성의 풍채 좋은 문루 등은 갖출 수 없었지만 수인산성에서는 요긴했을 듯한 낮은 성벽이 꼭 암문같이 느낌입니다.


 

 

 



성안은 곳곳에 건물의 흔적인 듯 평평하며 무심한 세월 앞에 지금은 조릿대만 무성하여 당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게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5분이면 노적봉과 성불리(3.3km)임도 갈림길입니다. 왼쪽 노적봉 방향이며 곧 우물터와 기왓 조각 등 당시 건물 흔적의 너른 터에 큰 느티나무와 이정표가 있습니다.

 

 

느티나무 숲 삼거리(별장터) 


아마 별장터로 추정되는 곳이며 노적봉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모두 정상아래 북문에서 만납니다. 오른쪽의 ‘노적봉 봉수지(1.0km)·주차장(2.5km)’방향은 무시하고 왼쪽의 노적봉 봉수지(1.0km)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30m쯤 가면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 오른쪽에 산행리본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노적봉봉수지로 가는 길이지만 조금 직진하여 서문까지 갑니다. 수인사(1.34km)로 하산하는 서문에도 너른 공터와 많은 유구가 굴러다니며 창같이 뾰쪽한 바위에 강진과 장흥 멀리는 광양 관리의 치적을 바위에다 새겨 놓았습니다.

 

 

 비석바위


 

수인산 정상 노적봉



느티나무 숲 삼거리로 되돌아가다 왼쪽 능선의 산성 길을 따라 북문을 거쳐 노적봉 봉수지로 향합니다. 작은 봉우리를 넘으면 수인산 정상인 노적봉이 원추 모양으로 우뚝하고 느티나무 숲 삼거리에서 20분이면 홈골재(북문)에 도착합니다. 여름이 끝나간 무렵이라 홈골재 삼거리 길섶에는 잡초가 무성하며 산행안내도와 이정표는 빛이 바래져 있으나 마나 합니다.

 

 

 

 

홈골재(북문) 


정상을 올랐다 다시 이곳에서 왼쪽 홈골절터(1.0km) 방향으로 하산하니 참고하세요. 오른쪽 노적봉(0.33km)으로 오르는 길은 한마디로 코가 땅에 붙을 만큼 된비알입니다. 그래도 300m 거리니까 여유를 가지고 오르면 옛날 봉수지였다는 노적봉 정상에서 거침없는 조망의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수인산 정상에서 본 병풍바위

 

수인산 노적봉


 올라왔던 남면에 비해 정상석 오른쪽의 동면과 북면은 내려다보면 천길 단애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보았던 주위 조망을 정상에서 한 번 더 둘러봅니다, 이제 본격적인 하산입니다.


 

수리봉 능선 

 

수인산 정상 이정표


 하산은 정상석 왼쪽인 ‘수인산성 동문(1.5km) 주차장(2.1km)’ 방향입니다. 이곳도 역시 성곽길로 200m 내려가면 다시 수인산성 동문(1.3km) 갈림길에서 왼쪽 병풍바위(1.4km) 방향입니다. 5분쯤이면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에서 직진은 도둑골과 한바위재 방향. 북문인 홈골재는 왼쪽입니다.


 

정상 갈림길 이정표 

 

 수인산성 성곽길

 

 

 

 


7분이면 다시 정상을 오를 때 지났던 홈골재(북문)며 하산은 오른쪽 홈골절터입니다. 홈골은 이름 그대로 편편한 곳을 삼각형의 조각끌로 끍어 낸 듯 패인 협곡입니다. 또한, 너덜겅이 연속으로 이어져 주의해서 하산합니다.


 

홈골 

 

 

 

 

 

 


계곡을 빠져나오면 홈골 저수지를 돌아 다시 산행 출발지입니다. 산행을 출발하면서 볼 수 없었던 수인산의 남근석과 탕근바위인 병풍바위 능선이 괴물의 성(城)처럼 다가왔습니다.


 

 

 

 

 

홈골저수지에서 본 수인산 


(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강진 수인산 수인산성 산행 대중교통편. 


강진터미널에서 병영면 농어촌버스를 타고 모개나무거리 정류장에서 내려 산행 출발지인 홈골저수지까지 1㎞가량 걷는다. 강진터미널에서 병영면으로 가는 농어촌 버스 시간표 참고하세요. 강진교통 061-432-9666


 

(2016년 2월 현재 버스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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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산행/양산가볼만한곳)천성산 화엄벌. 가을 손님 맞이 천성산 화엄벌 억새 산행,  천성산 산행



와!! 가을이다.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은 듯 한낮에는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지만 그래도 달력이 9월로 넘어가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게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이 가까이 오는가 봅니다. 가을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바람에 몸을 맡기며 주책없이 흔들리는 코스모스와 여린 몸에 힘찬 날갯짓에 여념 없는 빨간 고추잠자리입니다. 길가 언덕에도 장독대에도 어김없이 가을을 상장하는 코스모스와 고추잠자리가 반기는 이맘때면 필자는 항상 배낭을 꾸려 산에 오릅니다. 






내연경로당 


산에는 어김없이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기 때문입니다. 산에는 여름 손님은 가고 또 다른 가을 손님인 억새가 주인인 양 손님을 맞습니다. 올라온다고 고생했다며 말입니다. 이때까지는 내가 이산의 주인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지가 주인이라며 꼭 주인 행세를 하는 듯 살짝 와서 내 어깨를 툭툭 칩니다.







 


병아리의 부드러운 깃털 마냥 뽀송뽀송한 하얀 솜털은 파란 하늘에 낀 먼지라도 쓸어낼 욕심에 자꾸만 제 몸을 움직이는 억새, 어떤 때는 몸이 부러질 듯 빠르게 흔들고 어떤 때는 굼벵이 기어가듯 아주 느리게 흔들며 한결같이 “사각사각” “스르륵~” 소리를 내며 야단법석입니다.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억새를 만나기 위해 부산과 가까운 양산의 천성산을 찾았습니다.


 

 


철쭉과 억새로 봄과 가을에 다시 한 번 더 산으로 태어난다는 천성산은 화려하게 치장한 가을옷 단풍은 마음 좋게 덤으로 내어줍니다. 천성산의 가을 하면 당연히 화엄벌입니다. 이번에 가을 잔치인 화엄벌의 억새를 먼저 만나고 왔습니다. 반갑다고 몸을 흔들며 반기는 억새를 보면서 가을 속에는 꼭 ‘쓸쓸함’과 ‘낭만’만 있는 게 아니었으며 ‘반가움’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천성산 억새 산행의 산행 경로를 보면 양산시 웅상읍 평산리 내연경로당에서 출발합니다. 체육공원~파란 물탱크 사거리~등잔산~임도 갈림길~큰바위 석굴 밑 임도~큰바위석굴~평산 임도 천성산 철쭉제 표지석~천성산 2-10 표지목 삼거리~은수고개~원효암 갈림길~천성산 정상~화엄벌·원효암 갈림길~홍룡사 갈림길~원효암~원효암 주차장~죽림 정사 입구~죽림 정사~무지개 폭포~장흥 저수지 16번 마을버스 종점~내연 경로당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으로 거리는 대략 18km에 6시간~6시간 30분이며 인내심을 요구하는 산행입니다. 그러나 천성산 정상과 화엄벌의 억새가 힘들었던 산행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습니다.


 

 


천성산과 무지개 폭포를 잇는 원점회귀 산행 출발은 양산시 웅상읍 평산리 내연 마을 경로당 맞은편입니다. 장수 산악회에서 세운 천성산 등산로 출발점 때문에 산행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 평산리 마을 주민의 아침 등산로로 통행이 잦은지 길이 넓고 산길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키 큰 소나무 숲에 난 계단에 올라서면 신발과 바짓가랑이에 묻은 먼지 털이 기기를 지나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체육공원

 

 

 

파란 물탱크 사거리 


10분이면 정자를 만나고 바로 갈림길입니다. 나무 덱이 깔린 길이 아닌 왼쪽 흙길이 천성산으로 향합니다. 324봉의 산허리를 돌면 체육공원이 있는 능선입니다. 이곳까지 계곡 물을 끌어들여 수도꼭지를 달아 놓았습니다. 편편하고 넓은 임도를 5분쯤 걸으면 정면에 파란 물탱크가 놓인 사거리입니다. 천성산, 은수고개는 왼쪽 넓은 임도를 따라 어영골로 가는 게 가깝고 편하지만 이번 산행은 능선을 따라 천성산 철쭉제 표지석이 있는 평산 임도로 향하는 계획이라 직진하여 물탱크 오른쪽으로 오릅니다.


 

등잔산 정상 


다시 만나는 사거리 길에서 직진하면 산길은 좁아지면서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다시 지능선의 사거리와 만납니다. 이번 사거리에서는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파르게 이어집니다. 15분이면 451m인 등잔산에 오릅니다. 돌탑이 세워진 정상에서 심호흡을 크게 합니다. 산이 높지 않아 힘들지는 않았는데 이제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생각하고 출발합니다.


 

 

 

 

 

 

 

 

 

 


양산 웅상읍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건너편 대운산의 마루금이 길게 이어집니다. 등잔산에서 직진하면 다시 내리막 산길이고 사각 쉼터가 있는 안부까지 300m, 임도에 내려섭니다. 왼쪽은 임도를 거치는 은수고개(3.4km) 방향, 오른쪽은 유엔 아이 아파트(1.1km) 하산길, 천성산 산행은 은수고개(3.3km), 천성 2봉(5.1km) 이정표 방향인 직진하여 능선을 탑니다.


 

임도 갈림길 

 

천성산 정상 

 

큰바위석굴 능선의 바윗길 

 

큰바위 

 



조금씩 고도를 높이지만 능선길만 따르면 바위 능선이 나타나며 시원하게 전망이 열립니다. 가야 할 천성산 정상과 은수고개, 정면에 툭 불거진 큰 바위와 원적봉이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듯 더욱 선명합니다. 임도 쉼터에서 50분이면 다시 한 번 임도와 만나고 직진하여 큰바위석굴 200m, 천성산 제2봉 방향 능선을 탑니다.

 

 



 200m쯤 오르면 태산 같은 바위봉우리가 우뚝 솟았습니다. 큰 바위며 석굴을 보기 위해서는 바위 왼쪽으로 돌아 오릅니다. 큰 바위 밑에 길이 10m 높이 1.5m인 꽤 큰 석굴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신라 시대 원효는 천성산과 대운산 일원에서가 수행에 전념했는데 미타암 굴과 적멸굴, 반고굴, 금수 굴과 함께 면벽 수행하던 원효의 석굴로 알려져 있습니다.


 

큰바위석굴 

 

 큰바위

 

 

 

 

 

 

 

 


이곳을 지나면 산길은 조금 험해지고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갑니다. 봄이면 철쭉이 만발한 산 사면에 지금은 억새가 지천으로 올라와 부는 바람에 “꼭 흔들리는 게 여자만이 아니라는 듯 이리저리 제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큰 바위 석굴 밑 임도에서 30분이면 평산 임도의 천성산 철쭉제 표지석에 닿습니다. 천성산 철쭉제 행사가 매년 이곳에서 열립니다.


 

 

 

 평산임도 천성산 철쭉제 표지석

 

 


이정표를 보고 은수고개(1.3km) 방향은 직진하여 능선을 탑니다. 5분이면 벤치 쉼터가 있고 천성산 2-10 표지목이 있는 갈림길입니다. 오른쪽은 천성산 2봉 방향이며 은수고개는 왼쪽입니다.


 

은수고개 


산자락을 에돌아 10여 분이면 은수고개에 닿고 사통팔달로 길이 열려 있습니다. 왼쪽은 어영골을 거쳐 등잔산 방향, 장흥저수로로 하산하고 오른쪽은 천성산 2봉과 또 한 갈래는 내원사로 향합니다. 이곳에서 천성산 원효봉은 직진 길입니다.


 

 

 

 


300m쯤 가파른 오르막이며 갑자기 하늘이 뻥 뚫리는 게 천성산의 트레이드마크인 억새가 산 사면에 넓게 펼쳐져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지금부터 놀라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습니다. 900m 능선에 펼쳐진 억새는 천성산 억새 산행의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그 무덥든 더위도 한풀 꺾이고 언제부턴가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이 산정을 휘감으며 등줄기로 타고 흐르는 땀을 식혀줍니다.


 

 

 

 

 

 

 

 

 



그리고 보면 계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군부대가 있어 정상에 오를 수 없었지만 몇 해 전에 정상을 개방하여 지금은 누구나 정해진 산길로 정상 등정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화엄벌로 바로 내려가는 길은 폐쇄되었고 원효암과 천성산 정상가는 길만 열린 삼거리를 지나면 안전 펜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천성산 자연 생태계보호와 습지 보호, 그리고 매설된 지뢰를 제거했다지만 안전사고를 미리 방지하려는 조치입니다. 800m를 은빛 물결과 함께 호흡하며 오르다 보면 천성산 최고봉인 원효봉(920.7m) 정상입니다. 큰 정상석과 빼어난 조망에 천성산은 주위 산에 비해 거칠 것 없는 독보적인 모습입니다. 눈을 들면 이웃한 영남알프스의 준봉들이 만리장성인양 긴장 벽을 두른 게 그곳에도 가을 손님이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것 같습니다.


 

 

 

 

 

 

 

 

 

 

 

천성산 원효봉 

 

 

 

 


발아래 넓은 들판이 화엄벌입니다. 고산 습지로 인해 화엄늪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꼭 정상에서 보면 황금 들판 같습니다. 농부들이 보면 올해 농사가 풍년이라며 아주 흡족해할 것 같은 화엄벌을 향해 내려갑니다. 역시 하산길에도 울타리가 둘리어 있습니다.


 

 

 

 


곧 천성산 정상 우회 길로 연결되며 역시나 오른쪽은 출입을 금지한다며 막아 놓았습니다. 왼쪽으로 향합니다. 지금부터 억새군락지 화엄벌의 시작입니다. 화엄벌의 습지를 화엄늪이라 부릅니다. 신라 시대 원효가 천여 명의 승려들을 모아놓고 화엄경을 강설했던 곳입니다.


 

 

 

 

 

 


화엄벌은 축구장 17배인 약 2만8천 평 크기인 산상 습지로 이탄층이 형성되어 있으며 앵초, 물매화, 잠자리난, 흰제비난,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등 다양한 습지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화엄벌의 억새를 보는 순간 지금껏 고생하며 올라왔던 그 힘든 순간이 모두 눈 녹듯 사라지며 아름다운 억새가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화엄벌

 

 

 

 

 

화엄벌 원효암 갈림길  


다시 원효암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입니다. 직진하면 너른 화금 들판인 화엄벌을 지나 홍룡사, 용주사, 내원사 등 다양하게 연결됩니다. 이정표를 보면 왼쪽이 원효암(1.3km) 방향인데 이곳에서 주의를 해야 합니다. 왼쪽으로 바로 내려가면 엉뚱한 곳으로 내려가 버립니다. 다시 왔던 방향으로 30m 정도 꺾어 올라갑니다. 그 뒤 오른쪽 억새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다시 뚜렷한 숲 속의 원효암 산길과 연결됩니다.


 

 

 

 

 

 

 

홍룡사 갈림길 


지금은 억새가 산길을 덮고 있어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원효암 등산로는 천성산 허리를 돌아갑니다. 바윗길도 만나고 흙길도 만나는 길입니다. 이 길 끄트머리에 홍룡사 갈림길 이정표가 있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 오른쪽으로 계속 하산한다면 홍룡사(1.4km)로 내려가니 주의해야 합니다. 반드시 이정표를 찾으세요.


 

양산 원효암 마애 아미타삼존불입상


이곳에서 원효암은 왼쪽으로 돌아 산허리 길을 따라갑니다. 약 400m 쫌이면 숨은 듯이 바위틈에 자리 잡은 암자 원효암입니다. 원효암은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암자지만 지금의 당우는 모두 최근에 불사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효암 대웅전 옆 깎아지른 암벽 아래에 ‘양산 원효암 마애 아미타삼존불입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1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성연대는 1906년이지만 예술성과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 솜씨가 돋보입니다.


 

원효암


원효암 법당에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30호인 ‘양산 원효암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통도사 약사전에 있던 것을 말사인 원효암으로 옮겨왔다는데 조성연대는 1648년인 인조 26년입니다. 특이한 점은 조선 후기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석불 상입니다.



죽림정사 입구


원효암에서 큰길을 따르면 옛날 원효암 정상부의 군부대로 오르던 작전도로 옆의 대형 주차장에서 낙동정맥 길을 따릅니다. 주차장 끝에는 많은 산악회 리본이 걸려 있습니다. 등산로를 내려서면 다시 원효암 도로에 닿고 오른쪽으로 100m쯤 가면 죽림 정사 입구, 왼쪽으로 급한 내리막 임도를 1km쯤 따르면 한적한 암자인 죽림 정사입니다.


 

죽림정사


무지개폭포




암자 입구에서 오른쪽 대숲길 방향, 만나는 이정표는 모두 무지개 폭포, 장흥 저수지 방향입니다. 곧 무지개 폭포 갈림길, 무지개 폭포를 보고 돌아 나와 장흥 저수지까지는 1.4km입니다. 은수고개 갈림길을 지나 계곡을 건너고 다시 한 번 계곡을 건너면 무지개산장를 지나고 장흥 저수지를 끼면 16번 마을버스 종점입니다.







무지개산장


 16번 마을버스 종점


이곳에서 스틱을 접어도 되고 산행 출발지인 내연경로당을 가기 위해서는 도로를 따라 장흥마을과 웅상정수장을 지나 24시 찜질방 건물을 지나자마자 왼쪽 경보 4차 아파트를 보고 꺾습니다. 작은 다리를 건너고 도로를 따라가면 출발지 내연경로당에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천성산 화엄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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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전라병영성. 지금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제주도와 전라도 육군 총지휘부였던 전라병영성 여행, 그 규모에 입이 쩍~~


전라남도 강진에는 이름만 들어도 많은 군 병력이 주둔했음을 알 수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강진군 병영면이며 이곳은 지리적 역사적으로도 알 수 있는 게 1895년 고종 32년의 갑오개혁 때까지 조선 시대를 통틀어 500여 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를 포함하는 53주 6진을 총괄했던 전라도 육군의 총 지휘부가 있었습니다.









병영면에 전라 병영성이 설치되기 이전에는 오늘날의 광주시 광산구에 병마절도사 영이 있었지만 1417년인 태종 17년에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전라 병영성의 초대 병마절도사는 마천목 장군이었으며 병영성을 처음 축조하신 분입니다.





전라병영성 치성


전라 병영성을 세류성(細柳城) 또는, 설성(雪城)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마천목 장군이 꿈속의 계시를 받아 눈이 내린 자국을 보고 성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험준한 산세인 수인산을 등지고 평지에다 세운 성으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에 전체 길이는 1.06km이며 높이는 3.5m, 면적은 93,139㎡입니다.





전라병영성 옹성


병영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이 끝난 뒤인 1599년 선조 32년 도원수였던 권율 장군의 상소로 장흥으로 잠시 이전하지만 두 전란으로 파괴된 성곽을 보수하고 5년만인 1604년에 다시 지금의 병영성으로 옮겨왔습니다.







병영성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오면서 숱한 왜구와의 침략에 맞서다 1894년 12월 10일 동학농민전쟁으로 병영성이 동학군에 함락되어 폐허가 되자 1895년 고종은 갑오경장으로 병영성을 폐지하는 조처를 합니다.







강진 병영성은 또한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다 태풍에 좌초하여 표류하면서 제주도의 모슬포로 상륙하였습니다. 뒤에 하멜 일행은 전라남도 강진의 전라 병영성에서 7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다 1666년 현종 7년 9월 4일 원래의 목적지였던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는데 조선에서 13년간 억류 생활이었습니다.







하멜은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가 1668년 ‘하멜 표류기’란 이름으로 서양에다 조선을 최초로 알리는 책을 출간합니다. 병영성은 이방인 하멜의 7년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입니다.





전라 병영성은 2012년도의 1·2·3차 발굴조사에서 전라 병영성의 북서쪽 일원을 조사하여 건물지 15곳과 연지 4곳, 담장과 배수로, 우물 등의 유구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여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발굴조사에서 15곳의 건물지를 확인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슈는 객사 터의 발굴입니다. 정면 11칸에 측면 4칸으로 그 규모가 54m*18m 크기로 상당히 큰 규모를 가졌습니다. 앞면 15칸, 옆면 5칸인 우리나라에서 목재 건축물로 두 번째로 크다는 여수 진남관의 규모가 54.5m*14m 입니다. 따지고 보면 규모 면에서는 진남관보다도 더욱 크고 웅장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객사 건물은 당시 발굴조사에서 3차례 축조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1차 때는 발굴 유물인 기단의 배열과 초석, 온돌 등에 근거하여 조선 초기로 보이고 2차와 3차도 기단의 축조와 발굴된 유구 등에서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객사가 있는 서쪽에는 4개의 연못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병영성의 식수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연못 터 사이에서 건물터 3곳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연못의 크기는 큰 게 27m*20m*1.8m였고 당시 문헌의 기록을 보면 연못 터 사이의 건물이 연희당 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연희당은 병영성의 최고 책임자인 병마절도사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거나 부하장수들과 연회와 회의장소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 외곽을 둘러쌓은 성은 동서남북에 성문 앞을 반월형으로 가려 성문을 보호하는 작은 성인 옹성을 두른 성문에다 네귀퉁이와 동·서쪽벽은 성벽에서 돌출하여 쌓은 성인 치성을 각각 2개씩 복원하였습니다. 발굴에서 남서쪽에는 두 곳의 배수구 시설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필자가 이번에 강진을 여행하면서 전라 병영성의 규모가 대단하다하여 병영성을 찾았습니다. 현재 강진 전라 병영성은 2016년 4월 5일~2016년 11월 14일까지 160일간 5·6차 정밀 발굴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병영성은 지금 먼지가 펄펄 날리며 한창 발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지난번 남측의 4차 발굴조사와 연계하여 남측의 5차와 남동측의 6차 발굴이 무더위 속에서도 건물의 부재인 작은 파편이라도 찾는다는 일념으로 땀방울을 쏟아내었습니다.





 


현재 사적 제397호로 지정된 전라 병영성은 외곽인 성벽과 동서남북의 성문, 문루 등을 복원했다면 이번 발굴조사는 전라 병영성 관련 유구의 잔존 규모 등을 정밀히 조사하여 병영성의 내부인 여장 복원공사와 성 내부의 건물 및 주요시설 복원을 위한 추가 발굴조사로입니다. 모든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복원할 전라 병영성의 웅장한 건물 모습이 정말 기대됩니다.


전라 병영성 주소: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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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현고개 버스 정류장 

 

☞(거제도여행/거제도가볼만한곳)거제도 망산 와현 봉수대~서이말 등대~공곶이 둘레길. 환상의 섬 거제도 둘레길 망산 와현 봉수대~서이말 등대~공곶이를 걷다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라 자주 산행이면 산행, 둘레길이면 둘레길, 여행이면 여행하며 찾는 곳입니다. 특히 거제시에서 거제도의 명산을 지정했는데 그 수가 무려 11곳이 됩니다. 거제 명산을 나열해 보면 노자산·가라산·계룡산·선자산·산방산·옥녀봉·금성산·대금산·북병산·망산·앵산으로 거제시에서는 11 명산이라 부릅니다. 저 또한 산을 좋아하여 거제 11명산 모두 산행하였고 취재하여 국제신문의 최고 인기연재인 ‘근교산’에 모두 소개하였습니다.








 


취재 말고도 개인적으로 산행 한 곳도 부지기수 였습니다. 그 이유는 거제도는 거가대교 덕분에 내 고장의 금정산과 같이 찾아가기 쉬운 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다와 산을 동시에 경험하는 부산과 똑같은 산의 느낌이라 더욱 애착이 가면서 자주 찾게 됩니다. 이번에도 거제도를 찾았습니다. 산행보다는 둘레길을 걷기 위함인데 제가 몸담은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를 위한 산행이기도 합니다.


 

 


거제시 일운면의 망산인데 거제 11 명산의 남부면 망산과는 같은 이름의 산입니다. 일운면 망산은 거제도에서 동남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주위에 너무나 유명한 구조라 해수욕장과 지세포가 있으며 그 중간에다 반도인 망산을 솟구쳤습니다. 산 정상에는 와현 봉수대가 자리하고 서이말 등대와 공곶이·예구마을·와현 해수욕장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아 걷는 내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줍니다.


 

 서불장수샘 



산행 경로를 보면 와현 고개~서불장수샘~전망데크~초소 삼거리~와현 봉수대 삼거리~와현 봉수대~봉수대 삼거리~서이말 삼거리~서이말 등대~서이말삼거리~돌고래전망대 갈림길~돌고래 전망대~공곶이·예구마을 갈림길~공곶이~예구마을~와현 해수욕장~와현 고개 순으로 돌아오는 원점산행과 둘레길로 15km 거리에 천천히 둘러보면 5시간~5시간 30분쯤 소요됩니다.



 


거제도 망산 와현 봉수대~서이말 등대~공곶이를 가기 위해서는 와현 고개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합니다. 버스정류장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은 둥근 아치 조형물이 있는 와현 해수욕장 방면인데 둘레길을 모두 걷고 이곳으로 올라와서 산행을 마칩니다. 그럼 망산 출발은 버스정류장에서 왼쪽 포장도로를 따라갑니다. 출발 전에 안내도를 미리 일별합니다.


 

 

 

 


안내도에는 등대 가는 길에서 천주교 순례길을 이어 타고 공곶이를 거쳐 예구마을은 해안탐방 길로 걷게 꾸며 단조로움을 없앴습니다. 입구 이정표의 ‘초소 960m' 방향입니다. 곧 서불장수(徐市長壽) 약수터입니다.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불이 이곳 거제도에 도착하여 해금강을 마주 보는 바위봉인 우제봉에 “서불이 이곳을 다녀가다”라는 서불과차(徐市過此) 각자를 남겼는데 서불장수 약수터가 그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먼저 약수 한 사발을 들이켜 봅니다. 크크~ 물맛을 보니 만약 서불도 이 물을 먹었다면 “물맛이 꽤 좋은데” 하며 엄지를 치켜세웠을 것 같습니다.


 

전망덱 


400m쯤 도로를 따르면 오른쪽에 와현 해수욕장과 구조라 해수욕장·수정봉·내도와 외도 멀리 점점이 떠 있는 해금강과 우제봉 등 다도해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최고의 전망 덱에 닿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전망이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망대에서 보는 내도는 손을 뻗으면 잡힐 만큼 가까이 있는데 꼭 호수에 떠 있는 돛단배같이 아름답습니다. 안쪽의 섬이라 내도라 하며 서이말 등대에서 보면 거북이가 외도를 향해 가는 모습을 하고 있어 거북섬이라 부릅니다. 필자가 봐도 흡사 목을 길게 내민 거북이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다시 포장도로를 따라 500m쯤 가면 초소가 있는 삼거리입니다. 오른쪽 “서이말 등대 3.8km·봉수대 2.1km·공곶이 4.6km” 이정표를 보고 갑니다. 이제부터 콘크리트 포장길이지만 그대신 산행 내내 하늘을 가리는 숲 터널입니다. 1.6km쯤이면 오른쪽에 망산으로 오르는 와현 봉수대 갈림길입니다.


 

 초소 삼거리

 

 

 

 

 

 망산 와현 봉수대 삼거리



임진왜란 때 이 산에 올라가서 망을 보았으며 정상을 연지봉이라 합니다. 500여 m 오솔길은 초록색 융단이 깔려 더욱 싱그러운 모습입니다. 봉수대는 최근에 복원을 마친 듯 새 옷으로 갈아입은 깔끔한 모습입니다. 봉수대에 올라서면 360도 조망이 시원하게 열립니다. 동쪽으로는 발아래 지심도가 보입니다.


 

 

 

 

 

 

 와현 봉수대가 궁금하다면 


2016/09/03 - (거제도여행/거제도가볼만한곳)거제와현봉수대. 거제 동쪽 끝 최고의 조망대, 거제 해금강. 보타니아 외도, 내도, 지심도, 가덕도, 대마도 전망대 와현 봉수대.



망산 와현 봉수대 

 

 

 

 


지심도는 섬 전체의 약 60~70%가 동백나무로 빽빽하게 숲을 이루어 동백섬이라고도 부르며 유인도중 자연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지심도는 12월 초부터 4월말까지가 동백꽃의 개화기로 최고의 절정은 3월경이며 이때쯤이면 추위를 뚫고 붉은 꽃을 피운 동백꽃이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지심도에서 머리를 들면 멀리 부산의 가덕도, 승학산 등 서부산권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서쪽으로는 외도와 해금강 그리고 학동과 망치·몽돌 해변 등 거제도의 명산이 하늘 금을 긋고 있습니다. 외도는 4만4천여평에 천연 동백숲 외에도 아열대 식물인 선인장·코코스 야자수·가자니아·선쌰인·유칼리·잎새란·용설란 등 3,000여 종의 수목으로 장관이며 한국의 파라다이스라 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이창호 최호숙 부부의 집념이 오늘날의 ’환상의 섬 ‘외도를 만들었습니다.


 

 

 

 

 

 

 

서이말 삼거리 


다시 삼거리로 돌아 내려와 2.2km 거리에 있는 서이말 등대로 향합니다. 공곶이 갈림길인 서이말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1.2km를 더 가서 서이말 등대를 보고 이곳까지 되돌아 나와야 합니다. 서이말((鼠耳末)은 쥐의 귀를 닮은 해안 끝을 뜻하는데 ’쥐 귀 끝‘인 서이말 등대라 부릅니다.


 

 


그러나 거제시 지명유래를 보면 “누우래재(와현고개)에서 동남으로 2km 반도의 땅끝이 쥐의 주둥이 형국으로 쥐 부리 끝 또는 서이말이라 하였다”로 되어 있어 쥐 귀든 주둥이든 쥐는 틀림없는가 봅니다.


 

 

 

 

 

 

 

 

 

 


서이말 등대는 1944년 1월 5일에 처음 등탑에 불을 밝혀 선박의 안전 운항을 지키다 1945년 8월 15일 때 폭격으로 그만 파괴되는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 뒤 1958년에 2년간의 복구공사로 오늘날의 원형 콘크리 등대가 완공되었습니다. 거제도 유일의 인공 등대로 3명의 등대지기가 있으며 37km 거리에서도 서이말 등대의 불빛이 보인다 하니 거제도 해안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서이말 등대 


서이말 등대가 긍금하다면


2016/09/08 - (거제도여행)거제 서이말등대. 거제도 동쪽 끝에 쥐의 귀 끝인 서이말에 있는 등대를 아세요? 서이말 등대를 찾아가다.


 

 


서이말 등대에서 일본의 대마도까지 거리가 54km로 맑은 날에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게 일본하고는 가깝고도 먼 이웃인 게 틀림없습니다. 다시 서이말 삼거리로 되돌아갑니다. 삼거리에서 왼쪽 공곶이(1. 8km) 쪽으로 꺾습니다. ’천주교 순례길‘로 명명된 푹신푹신한 흙길인 임도로 울울창창한 숲이 하늘을 완전히 가려 터널을 이룹니다.


 

 


이 길을 800m 정도 가면 갈림길입니다. 직진하면 바로 공곶이로 가는 길이며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돌고래 전망대로 향합니다. 급하게 500m쯤 내려서면 해안가에 우뚝 솟은 바위 전망대입니다.


 

 

 

돌고래전망대 

 

 

 

 


왼쪽 서이말 전망대와 망망대해, 내도가 손에 잡히는 거리에 있습니다. 4~5월에 멸치떼를 따라서 온 고래들이 가끔 나타나 이 바위에서 볼 수 있었다 하며 지금도 고래들이 나타나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합니다. 지금부터 여러 번의 갈림길과 만나지만, 이정표는 모두 공곶이(1.2km)를 보고 갑니다.





 

 

 

 

 

 


숲 터널이라 대낮인데도 어둑어둑할 정도이며 오솔길로 이어져 걷는 재미가 가장 쏠쏠한 구간입니다. 다시 천주교 순례길의 임도와 합해지면서 공곶이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직진하면 예구마을로 바로 내려가고 공곶이 농원은 왼쪽으로 꺾어 200m 거리에 있습니다.


 

 

 

 

 

공곶이 삼거리 

 



지형이 궁둥이처럼 툭 튀어나왔다는 공곶이는 내려서는 길도 급한 돌계단입니다. 공곶이는 낙향한 노부부가 평생을 피와 땀으로 일군 곳입니다. 오직 곡괭이·호미·삽으로만 일구었다는 공곶이 농원에는 동백나무, 종려나무, 수선화, 조팝나무, 팔손이 등 나무와 수선화 등 50여 종의 식물로 4만여 평을 가꾸었는데 워낙에 경사가 급해 돌을 쌓은 계단식의 다랑이로 만들어졌습니다.


 

 

 

공곶이 농원 삼거리 

 

 

 



공곶이 농원 삼거리에서 오른쪽은 바로 예구마을(1.17km) 가는 길이고 지척에 공곶이 쉼터가 있지만, 오롯이 공곶이를 보기 위해서는 농장 주택이 있는 왼쪽으로 향합니다. 봄에는 수선화를 재배하는 곳으로 연둣빛의 수선화가 장관입니다. 지금은 코스코스가 한들거리는 아름다운 돌담길을 걸으며 공곶이 해안에 닿았습니다.

 

 

 

 

 


공곶이 해변에는 아이 머리만 한 몽돌이 500여m의 해안에 지천으로 깔렸습니다. 바닥이 훤하게 드러난 에메랄드빛 해변은 특이하며 아주 이국적인 풍경입니다. 몽돌해변을 따라 공곶이 쉼터를 지나고 예구마을은 1.02km 거리입니다. 왼쪽 절벽으로 난 덱 계단을 오릅니다.


 

 

 공곶이가 궁금하다면 


2016/09/09 - (거제도여행)수선화 화원 공곶이. 거제도 새로운 관광 1번지 공곶이, 봄의 수선화는 천상의 화원이라면 몽돌과 파란바다도 최고.

 


 

 

 

 

 공곶이 쉼터

 

 

 

 


다시 숲 터널 사이로 난 자드락길을 걸으면 왼쪽 50m 앞에 전망 덱이 있습니다. 예구마을과 와현 해수욕장, 구조라의 수정봉 등 천애의 절경이 펼쳐집니다. 다시 삼거리로 나와 430m 거리인 예구마을로 향합니다.


 

 

 

해안 쉼터 

 

 

 

 

 

예구마을 선착장 


작은 어촌마을인 예구마을도 이제 펜션 등으로 마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구마을은 왜구미방(倭仇味坊)으로 왜구, 왜구미, 외기미라 불렀는데 대마도와 가장 가까운 포구다 보니 왜인의 잦은 노략질과 어선이 자주 출몰하여 '왜구미'라 하였습니다.


 

 

 



조선 말기인 1889년 고종 26년에는 조일통어장정(日通漁章程)을 체결하여 일인의 어선이 조선 연해에서 행해지는 조업의 합법적인 근거가 되어었는데 왜의 예인망이 포구에 들어와 예구(曳龜)라 하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작은 어촌마을의 포구는 선착장이 아주 넓었습니다.

 

 

 

 

예구마을 전경

 

 

 

와현해수욕장 

 


예구 선착장을 지나 도로를 따라가면 은빛 모래가 반짝이는 백사장인 와현 해수욕장입니다. 와현(臥峴)마을은 누우래·눌일·누우뢰·눌일티로 불렸는데 지세포에서 구조라로 넘는 고갯길이 워낙 낮아 고개 정상에 올라서 보면 남쪽은 구조라만과 북쪽에는 지세포만에 드나드는 고깃배를 누워서 그 광경을 보다 깜박 잠이 들었다 하여 ‘누우래’라 하였고 한자로 바꾸면서 와현마을이 되었습니다. 마을에서 출발지 와현 고개까지는 쭉 뻗은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와현고개


☞(거제도여행/거제도가볼만한곳)거제도 망산 와현 봉수대~서이말 등대~공곶이 둘레길 교통편


경남 거제시 일운면 망산 와현봉수대~서이말 등대~공곶이 둘레길은 와현고개 버스정류소까지 가야 한다. 부산에서 와현고개까지 대중교통편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부산에서 도시철도 하단역 3번 출구로 나와 하단역버스정류소에서 출발하는 2000번 거제 연초 방향 삼화여객버스를 이용해 거제소방서정류소에서 내린다. 오전 6시부터 약 하루 40차례 운행. 거제소방서정류소에서 내린 후 반대편 버스정류소에서 구조라 행 22번, 23번 버스를 이용해 와현고개 버스정류소에서 내린다. 산행 후 구조라해수욕장에서 출발하는 고현행 버스로 바꿔 타고 거제소방서정류소에서 내려 건너편에서 2000번 버스를 이용한다. 하단행 막차는 밤10시30분. 부산서부터미널에서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10~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직행버스를 이용해 거제 고현터미널로 이동한 다음, 여기서 22번, 23번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이후 교통편은 같다.

 

원점회귀 산행이라 자가운전도 편리하다. 가덕도 녹산대교를 이용해 거가대교를 탄다. 거제대로 장승포(남부) 방면으로 좌회전 한 후 두모 로터리에서 지세포(남부-해금강)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14번 국도를 타고 지세포를 지나 해금강 방면으로 직행하면 곧 와현고개입니다. 내비게이션에는 와현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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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여행/거제도가볼만한곳)거제 서이말등대. 거제도 동쪽 끝에 쥐의 귀 끝인 서이말에 있는 등대를 아세요? 서이말 등대를 찾아가다.



무엇인가 아련한 옛 추억이 뭉글뭉글 가슴에서 피어나게 하는 곳이 있다면 무인도에 외롭게 떠 있는 등대 한 조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눈을 감고 등대를 생각하면 항상 우리에게 정신적으로 그 무엇을 꼭 채워 줄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요.






2016/09/03 - (거제도여행/거제도가볼만한곳)거제와현봉수대. 거제 동쪽 끝 최고의 조망대, 거제 해금강. 보타니아 외도, 내도, 지심도, 가덕도, 대마도 전망대 와현 봉수대.



 


해안가에는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많은 등대가 있습니다. 특히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라 수많은 등대가 선박의 안전 길잡이를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거제도 내에서 유일하게 등대지기 3명이 상주하는 유인 등대가 있다 하여 찾았습니다.


 

 


거제도 동쪽 끝의 지세포와 구조라 사이에 있는 와현리 망산은 지도를 보면 꼭 해마를 닮은 듯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옛사람에게는 쥐의 귀로 보였는지 끄트머리에 쥐의 귀를 닮았다하여 ‘쥐 귀 끝’이라는 뜻인 서이말로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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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쥐의 귀 끝에 세워진 등대가 이번 등대 여행에 찾았던 서이말 등대입니다. 서이말등대는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1월 5일 등탑에 처음 불을 밝혔다가 1그 다음해인 1945년 8월 15일 광복 때 난데없는 폭격을 맞아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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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58년 2년여 공사 끝에 지금의 백색 원형 모양인 철근 콘크리트 등탑이 완공하였습니다. 등대의 높이는 대략 15m이며 20초 간격으로 한 번씩 불빛을 37km 바깥에서 볼 수 있게끔 비추고 있습니다.


 

 


서이말 등대는 거제도와 남해안을 운행하는 국내 선박과 멀리 일본과 태평양을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 항로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또한, 서이말 등대에서는 일본의 대마도도 지척입니다. 불과 54km 거리로 아주 가까워 날씨가 조금만 맑아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서 보입니다.


 

 


서이말은 일출과 일몰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해와 오후의 낙조인 일몰을 한자리에서 바라보는 곳으로 아침과 저녁이 풍요로운 곳입니다.


 

 


인근에 동백꽃으로 유명한 지심도와 사시사철 철 따라 꽃이 피는 남해의 유토피아 외도는 이미 전국적인 관광지이며 육지의 금강산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다는 바다의 금강산 해금강도 같은 선상에서 보여 서이말 등대 여행은 충분한 값어치를 합니다.


 

 


서이말 등대 가는 길은 와현 고개에서 서이말 등대까지 약 5km 거리이며 초소부터는 하늘을 가리는 짙은 떡갈나무 숲이라 두 발로 걸어도 전혀 힘든 줄을 모릅니다.


 

 

 

67년 동안 묵묵히 바다를 지켜온 서어말 등대를 여행한다는 것은 등대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하나의 거제도 여행이 됩니다. 인근에 와현 봉수대와 이른 봄 온 세상을 연둣빛으로 물들이는 수선화가 꽃동산을 이룬다는 공곶이도 있습니다. 


◆서이말 등대 정보 안내 ◆

 

★서이말등대 주소: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산 48-2

★서이말등대 연락처:055-681-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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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여행/문경가볼만한곳)문경 공덕산 윤필암과 묘적암 암자 여행. 경허, 성철, 청담 등 근대 선승의 수도처 문경의 사불산 윤필암과 묘적암 암자 여행


문경 공덕산에는 천년고찰 대승사와 부속암자인 윤필암, 그리고 묘적암이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윤필암과 묘적암입니다. 공덕산은 사불산으로 더 알려져서 그런지 우리나라 고승들의 수도처로 나옹선사, 근대의 선승인 경허, 성철, 청담스님 등이 머물렀습니다. 윤필암은 1380년인 고려 우왕 6년에 각관스님에 의해 창건하였습니다.






윤필암 주소: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17

윤필암 연락처:054-552-7110

 

2016/07/08 - (문경여행/문경 가볼만한곳)문경 대승사 마애여래좌상. 머리에 뿔처럼 꽃무늬를 돋을 새김한 이색적인 불상을 만나다. 대승사 마애여래좌상


2016/07/07 - (문경여행/문경 가볼만한 곳)공덕산·사불산 사불암. 그럴싸한 전설이 정말 잘 어울리는 신비의 세계 사불암 사면석불, 공덕산·사불산 사면석불 사불암을 만나다.


  

 


그러나 윤필암의 암자 이름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신라 시대 원효와 의상이 각각 사불산 자락의 화장사와 미연사에서 수행할 때 의상의 이복동생인 윤필거사가 머물렀던 인연 때문이라 합니다.


 

 윤필암

 

 


대승사 사적에는 1645년(조선 인조 23년)에 서조, 탁장, 양사에 의해 중건했으며 1765년(영조 41년)과 1806년에도 창영 장로와 취운 종백이 각각 중건하였다 합니다 1885년에는 고종의 명으로 창명 스님이 다시 중건했지만, 현재 윤필암 건물 대부분은 1980년대 초에 지어졌으며 비구니스님의 수도 도량입니다.


 

 

 

 


윤필암은 특이하게도 사불전이 있습니다. 사불전은 양산 통도사 등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처럼 부처님을 따로 모시지 않고 사불전의 큰 창문을 통해 내다보면 정면의 바위인 사불암의 네 불상을 주불로 모셨습니다.


 

 


 

사불암 

 



윤필암은 수덕사의 견성암과 오대산의 자장암과 함께 3대 비구니 승방으로 사불전과 관음전 외에는 참관할 수 없으며 사불전 뒤 바위 위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묘적암 


묘적암은 윤필암에서 대략 400m 떨어져 있으며 8부 능선에 위치한 빼어난 조망처로 오래전부터 이곳은 고승들의 수도처로 알려졌습니다. 646년인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부설 거사께서 처음 암자 터를 잡았으며 1339년에는 나옹화상 혜근이 출가했던 곳입니다. 나옹이 처음 이곳을 찾아 요연선사께 출가를 청하자 “여기 온 것이 무슨 물건이냐?” 하며 물었습니다. 나옹이 말하기를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습니다만 보려 하여도 볼 수가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가르침을 청했더니 요연은 자신도 아직 찾지 못했다며 ‘눈 밝은 스님’을 찾아가라 하였습니다.





 문경 묘적암 주소: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산 8

 문경 묘적암 연락처:054-552-7096



 

 

훗날 나옹은 깨달음을 얻어 이곳을 다시 찾아 화목 4그루를 심었다 합니다. 그리고 나옹의 신통력을 볼 수 있는 전설이 내려와서 옮겨 봅니다. 꼭 울산시 대운산 기슭의 큰바위 얼굴에서 불국사에 난 불을 껐다는 원효대사와 동자의 전설이 엇비슷하여 신기하기만 합니다.


하루는 나옹이 공양 준비로 상추를 한창 씻고 있는데 가야산 해인사에 불이 난 것을 보고 상추를 씻다 말고 물을 해인사 쪽으로 던져 불을 껐습니다. 공양을 기다리던 도반은 나옹이 헐레벌떡 뛰어오자 왜 늦었느냐고 나무라니 해인사에 난 불을 끄고 온다고 대답하자 장난친다며 나옹을 꾸짖었습니다. 이에 나옹은 실수하듯 물그릇을 방바닥에 엎어버리자 스님은 어서 물을 치우라고 나옹을 나무랐습니다. 나옹은 엎질러진 물을 모아 공중에 날리며 빙빙 돌게 한 다음 주걱으로 물을 내려쳤습니다. 물은 마당의 작은 바위에 부딪히며 마음 심(心)자를 새겼다 합니다. 나옹선사의 경지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묘적암입구의 지혜수 


묘적암은 꼭 한옥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입니다. 법당은 앞면 6칸에 옆면 3칸이며 가운데 3칸은 통칸으로 그 중앙에 문수보살을 봉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쪽에는 툇마루를 달았으며 좌측에는 종무소와 부엌을 내었고 건물 왼쪽 처마 끝에 증축하면서 1칸*2칸의 작은 건물을 달아내었습니다. 이는 스님의 거처로 사용하며 일반신도의 접객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왼쪽은 동봉당스님 부도이며 오른쪽은  동산당 일초선사 부도

 

묘적암은 1668년 성일 스님이 중건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00년 취원스님이 다시 중수하였다 합니다. 묘적암에는 1803년(순조 3년)에 조성한 공민왕사 나옹선사 진영과 조성연대가 알려지지 않은 동봉대화상진영이 있습니다. 그리고 묘적암 옆에는 나옹화상과 동봉화상의 부도가 있는데 안내판이 없어 정확하게 어떤 부도가 나옹화상의 부도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옹화상의 부도는 다시 확인한 결과 윗쪽에 홀로 고졸한 분위기를 한 부도라 합니다.



 

 

묘적암 나옹화상의 부도 

 


나옹선사 부도와 탑비는 여러 곳에 있는데 이는 아주 특이한 사례입니다. 여주 신륵사와 양주 회암사 터에 남아 있고  그리고 원주 영전사 터에 있던 부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왔으며 또 한곳이 이곳 묘적암입니다. 묘적암의 나옹선사 부도에는 “화상일완 장우도중 하유양공 접지유성(和尙一椀 藏于屠中 下有兩孔 接之有聲)”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는데 뜻을 풀이하면” 화상의 발우가 부도 속에 간직돼 있으며 밑면에는 두 개의 구멍이 닿으면 소리가 난다”라는 뜻입니다.



사불암에서 바라본 윤필암 전경

 

사불암에서 바라본 묘적암 전경 

 


나옹화상의 부도는 생각도 하지않고 건성건성 봐서 그런지 명문을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묘적암 주위에는 이외에도 심지바위, 안바위, 좌선바위와 1862년 조성한 나옹화상의 행적을 기록한 목각판 등이 남아 있는데 스님의 수행처라 볼 수 없는 게 정말 아쉬웠습니다. 묘적암은 스님의 수행처로 출입을 삼가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하게 문밖에서 사진만 몇 장 담고 돌아 나왔습니다.



 사불암에서 본 윤필암과 묘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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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여행/거제도가볼만한곳)거제와현봉수대. 거제 동쪽 끝 최고의 조망대, 거제 해금강. 보타니아 외도, 내도, 지심도, 가덕도, 대마도 전망대 와현 봉수대.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가장 큰 섬이 거제도입니다. 지금이야 거가대교와 거제대교가 사통팔달로 육지와 연결되어 섬이 아닌 육지로 대접할 정도로 교통이 정말 편리해졌습니다. 내가 사는 부산에서 거제도는 이제 부산 시내 외곽보다도 더 일찍 도착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거제도는 부산에서 좌석 시내버스가 운행할 만큼 가까운 곳입니다. 그런 거제도가 일본의 대마도와는 더욱 가깝습니다. 고려 시대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 왜구의 침탈이 잦아 우리나라 남해안은 왜군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거제도는 더욱 많은 피해를 당했습니다.


 

 

 

 


거제도의 해안가 봉우리에는 왜군의 동태를 감시하는 봉수대가 여러 곳에 생겼으며 왜구가 출몰하면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위험에 대비했습니다. 대마도와 약 50km 떨어진 와현 봉수대는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303m의 망상 정상에 있으며 조선 후기까지 군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여기서 올린 봉화는 지세포 봉수대와 연결되어 옥녀봉봉수대 그리고 강망산 봉수대로 연결하여 서울로 보내졌습니다. 거제도의 여러 봉수대 중 이번에 찾았던 곳은 와현 봉수대입니다. 와현 봉수대는 조선 시대 수군이 주둔했던 지세포리 지세포진성에 속한 봉수대로 아주 전략적인 요충지였습니다.


 

 


현재 와현 봉수대는 말끔하게 복원하였습니다. 와현 봉수대의 구조를 보면 2단으로 연대를 쌓고 윗면은 평면으로 된 원통형 구조입니다. 아랫단의 석축은 방호벽으로 쌓았으며 상단의 석축에 봉수를 피워 올렸던 단봉의 봉수구조입니다.


 

 


처음에는 붕괴하여 형체도 잘 알 수 없었으나 현재에는 복원되어 와현 봉수대의 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와현 봉수대는 다른 거제도의 봉수대에 비해 구모도 매우 크고 계단 시설, 석축의 보존 상태, 봉수군들이 머물렀던 건물터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또한, 와현 봉수대는 남쪽 바다를 직접 조망하며 내도와 외도 지심도, 해금강, 부산의 가덕도, 맑은 날에는 대마도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급 조망권을 가져 거제도에서 동쪽 끝이라는 와현리는 쥐의 귀를 닮은 형국인 서이말 등대와 함께 여행하면 좋습니다.


 

 

 

 

 

 

 

 

 

 

 

 

 


1944년 1월 5일 처음 등탑에 불을 밝혔다는 서이말 등대. 거제도 와현 봉수대와 서이말 등대를 함께 여행하면서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는 눈 호강의 호사를 누려보세요.


 

 


1944년 처음 불을 밝힌 서이말 등대



◆거제시 와현봉수대 정보 안내

경상남도 기념물 제243호

★거제 와현봉수대 주소: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산 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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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화림동계곡 동호정. 하늘의 선녀도 시샘할 풍경 동호정을 여행하다. 함양 선비길 동호정.



남강 상류 60리의 금천을 화림동 계곡이라 합니다. 그 화림동계곡의 가운데에 동호정의 정자가 있습니다. 선비들의 시와 담론장소로 이용하였던 자리에 정자라 하기에는 큰 동호정을 주춧돌도 없이 구불구불 다듬지 않은 나무를 너른 암반에다 그대로 세웠습니다.







2016/08/29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선비길 화림동계곡 거연정. 선비의 고고한 기풍이 느껴지는 함양 화림동 계곡 거연정에서 가을 하늘을 만나다. 함양 거연정

2016/08/26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층층이 포개어진 단애는 깊은 소를 이루어 함양 화림동 계곡에서 최고의 누각이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동호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크기의 중층 건물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입니다. 화림동 계곡의 거연정과 군자정, 농월정 등 여러 정자보다 더 크고 웅장하며 주변의 진경산수와 함께 한 폭의 한국화 소재로 가장 잘 어울립니다.


 

 

 

 


누마루를 오르는 나무 계단에서 동호정은 꾸밈이 없는 모습을 하였습니다. 통나무 두 개를 자연스럽게 붙여 도끼로 찍어내어 투박하게 계단을 만들었지만, 그 어떤 오성급 호텔의 이탈리아산 대리석 계단보다도 훨씬 좋으며 운치 있고 양복에 짚신이 아닌 삿갓과 짚신같이 한 몸을 이룰 정도로 동호정과 정말 잘 어울려 자연에 동화하는 선비정신을 닮았습니다.


 

 

 

차일암과 동호정 

 

 


군자정은 이마에 밭고랑이 움푹 팬 수더분한 시골 촌로와 닮았다면 거연정은 연지곤지 예쁘게 색칠하고 시골 오일장을 걷는 품새 있는 아낙네 모습입니다. 그에 반해 동호정은 예쁘고 화려하게 치장하고 잘나가는 도시녀의 모습이지만 화려함에 비해 추하지 않으며 주변의 녹색에 스며들어 자연과 동화된 모습입니다.


 

 

 

 

 

 


그만큼 단청이 화려한 동호정을 마주하면 이때까지 답답했던 가슴에 생기를 불어 넣어줍니다. 삐꺽 삐꺽 소리를 내는 투박한 계단을 밟고 누마루를 올라 단청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동호정을 지탱하는 대들보에는 용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두개의 나무를 가지런하게 붙여 도끼로 찍어 만든 투박한 나무 계단

 

 


여의주를 문 황룡과 청룡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이는 용이 물을 다스리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궁궐이나 서원, 누각, 사찰 등 주로 목재건물에 청룡과 황룡을 많이 조각해놓았는데 이는 불에 취약하기 때문이며 호랑이 두 마리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악귀로부터 막는 비보 역할로 보입니다. 그리고 연꽃과 화려한 꽃무늬를 돌려놓았고 공자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니구산에서 기도하여 태어난 공자부터 74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모습을 보면서 동호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동호정은 조선시대 학자였던 동호 장만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그의 9대손인 가선대부 오위장 장재헌과 지역 유림이 뜻을 모아 1890년에 건립한 정자로 공의 호를 따 동호정이라 하였습니다. 동호 장만리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몽진하는 선조를 등에 업고 피난하셨던 분입니다.


 

 

 

 

 

 


당시 충신이라 떠들던 신하들은 전란 통에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지만 장만리는 끝까지 선조 곁에 남아 주군을 보필하니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선조는 호국공신의 원조공신에 책록하셨습니다. 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선생은 그의 고향인 함양군 서하면 황산마을에 낙향하여 화림동계곡의 차일암에서 마음을 닦으며 가끔 낚시를 즐겼셨는데 그의 후손이 모여 선조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다 동호정을 건립했습니다.


 

 

 

 

 

 

 

 


1892년 조선 말기에 고종황제는 공을 좌승지에 추증하고 충신정려를 다시금 내려 그의 충절을 기렸습니다. 공이 유영하던 백옥같이 하얀 암반인 차일암에서 보니 파란 하늘과 울울창창한 녹색의 숲, 물감을 푼 듯 파란 옥수와 동호정의 붉은 단청이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이만한 모습이면 화림동 계곡의 동호정은 선녀도 시샘할 것 같습니다.


 

 

 

 

 


함양 동호정 주소: 경남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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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가야산 해인사.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전 불법종찰인 가야산 해인사를 여행하다. 합천 가야산 해인사. 



합천의 명산인 가야산은 해인사를 품고 있습니다. 가야산이 해인사고 해인사가 가야산으로 통할 정도로 서로 떼고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불교 성지로서 가장 신령스런 산중 한곳입니다. 가야산의 산 이름에서도 불교색채가 아주 강한데 '가야(Gaye)'의 뜻은 ‘최상의’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드신 ‘붓다 가야’에서 가야산을 따왔다고 하며 또한, 옛날 가야국이 있던 산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만큼 가야산은 성스러운 장소로 알려졌으며 이런 곳에 해인사가 창건한 것은 어쩜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2016/08/24 -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유정이 입적했던 암자 가야산 해인사 홍제암을 여행하다. 홍제암

2016/08/23 - (합천여행)가야산 홍제암 사명대사 석장비와 부도. 왜!! 사명대사 석장비는 쪼개졌을까요?, 부도에는 왜! 대사의 명문을 새기기 않았을까요? 사명대사 석장비와 부도

2016/08/20 -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가야산 홍류동천 농산정. 고운 최치원이 갓과 짚신을 걸어놓고 신선이되었다는 명경산수의 해인사 소리길 농산정을 여행하다. 농산정





해인사가 가야산에 창건하기 훨씬 이전에 중국 남북조시대의 지공(418~514)스님이 예언하기를 “해동의 가야산에 대가람이 세워져 불법이 번창하리라”고 하셨다는데 약 300년쯤 후인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해인사를 창건하여 오늘날까지 부처님의 법등은 꺼지지 않고 이어져왔습니다.





해인사의 이름을 보면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나왔다 합니다. 해인삼매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말할 때 들어간 선정의 이름으로 “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모든 형상이 온전히 비치듯이 법계의 실상을 본래 모습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 즉 ‘마음의 고요함’을 뜻합니다. 사부대중인 필자는 해인사 이름에서 벌써 복잡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내 마음이 평정심을 되찾은 듯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해인사는 창건과 함께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선원, 강원, 율원을 포함한 최초의 총림으로 지정했으며 국보인 고려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한 법보종찰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95년에 유네스코에서 고려팔만대장경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여 장경판전을 세계문화 유산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7년에는 고려팔만대장경경판과 해인사의 모든 경판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였습니다. 이런 문화재의 보고인 해인사를 늦었지만 여행하고 왔습니다.





먼저 부도전을 지나면 독특한 유래를 가진 ‘길상탑’이 있습니다. 길상탑의 유래는 신라 진성여왕 9년인 895년을 전후하여 7년간 궁예와 견훤의 싸움에 흉년으로 굶주린 장병을 위해 해인사 훈혁스님이 탁발하여 군량미를 조달하고 그 나머지로 길상탑을 세워 문수사리보살의 가피를 빌고자 무명으로 전쟁터에 나가 죽은 승병 56위의 넋을 기린 위렵탑입니다.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른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약 3m이며 1965년 탑 속에서 최치원이 지은 ‘운양대묘길상탑지’와 157개의 소탑 등 유물이 나와 당시 사회 상황과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탑의 건립 내력을 소상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그리고 특이하게도 길상탑앞 도로에는 지금은 없지만 해방 이후까지 홍살문이 존재했으며 당간 석을 지나면 일주문이 나옵니다. 해인사 일주문은 1940년대 주지였던 변설호스님 때 대목장 이화백에 의해 중건하였습니다. 정면 현판의 ‘가야산 해인사’ 글씨는 해강 김규진이 섰으며 판각은 임환경 스님이 새겼고 뒷면의 ‘해동제일도량’ 현판은 박해근이 걸었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도 해인사를 찬미하였는데 “해인사의 사기는 가야산의 전국적 중심지로 그 자세가 당당하고 그 환경이 수려 명미 하여 아려한 위인이 칼을 잡고 설교하는 것 같다. 완연히 움직이는 활화일폭이다. 해인사는 명구라고 하느니보다 승지이며 승지라고 하느니보다 성경이다. 나는 국내외 사찰들을 많이 보았으니 해인사에 필적할만한 사기를 보지 못하였다. 거룩하다는 한 말 이외에 무슨 형용사를 붙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합천의 숨결 해인사의 향기/내암사상연구회)


 

 


 

 

 

 

 

 

 

 소원나무

 

 

 

 

 

 

 

 

 

 

 

 


해인사의 중심건물인 대적광전을 가기 위해서는 마당을 가로질러 갑니다. 그전에 먼저 석등을 만납니다. 석등은 부처님의 광명을 상징하며 사찰 경내를 어둠에서 밝히는 진리의 빛입니다. 해인사의 석등은 섬세하고 우아한 조각수법을 보면서 그 뒤쪽의 삼층석탑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여덟 잎 연꽃무늬가 엎어진 복련과 팔각의 화사석 아래에 연꽃무늬가 위로 향한 모양의 앙련 사이에 세운 팔각석간이 짧은 것은 1926년 석탑을 개축하면서 함께 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석등 북쪽에는 정중삼층석탑이 있습니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 등을 봉안하는 곳입니다만 정중삼층석탑은 불상을 봉안한 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아마 해인사가 창건하면서 함께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대적광전 앞마당 한 쪽에 석등과 함께 약간 비켜 서 있습니다.


 

 

 

 


비로탑은 높이 6m 삼층석탑으로 기단은 원래 통일신라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2층 기단이었지만 1926년 중수하면서 3층 기단으로 탑을 높이고 확장하였습니다. 석등과 석탑 사이에 바닥 돌이 놓여있는데 정례석으로 이는 멀리 부처님을 향해 이마를 땅에 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는 곳입니다.


 

 

 



비로탑과 석등이 있는 마당 좌우에는 궁현당과 관음전이 있으며 궁현당 뒤에는 적묵당, 진영전, 정수당 등 전각 대부분이 해인사 승가대학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사용합니다. 이제 대적광전이 있는 높은 축대를 오릅니다. 가운데 대적광전이 있으며 왼쪽으로 대비로전과 독성각, 오른쪽은 명부전과 응진전 등 예불공간입니다.


 

 


이제 해인사의 중심법당이자 큰 법당인 대적광전을 보겠습니다. 법당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셨습니다. 원래는 해인사를 창건하면서 비로전이 중심법당이었고 비로자나불을 모셨는데 6번이나 화재로 중창하면서 1488년에 대적광전으로 편액을 바꾸어 달았습니다. 지금의 대적광전은 단층이지만 겸재 정선(1676~1759)이 남긴 해인사 그림에 2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1817년 화재로 중창되기 이전에는 지금보다 더 큰 전각으로 추정됩니다.


 

 


대적광전의 의미는 비로자나불이 항상 계시면서 시공을 통하여 화엄경을 늘 두루 설하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대적광전의 수미단에는 모두 일곱분의 불보살을 봉안한 아주 특이한 사례입니다.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을 가운데 모시고 그 왼쪽으로 지장보살, 보현보살, 법기보살을, 오른쪽에는 이전의 본존불이었던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관세음보살입니다. 이중 관세음보살과 법기보살은 쇠로 불상을 만들었으며 그 외 불상은 모두 목조로 만들었습니다.


 

 

 

 


대적광전 수미단에 모셔진 본존 비로자나 부처님은 고려 시대 불상으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불상의 높이는 233.3cm이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과 함께 처음에는 경북 성주군의 금당사에 봉안된 부처님이었는데 절이 폐사하면서 가야산의 용기사로 옮겨갔고 용기사 마저 폐사하면서 1897년 법운스님이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해인사 대적광전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현재 해인사 대적광전은 팔작지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웅장하며 큰 규모입니다. 네 면의 대적광전에는 모두 각각의 현판을 달고 있는데 이는 앞면의 대적광전 현판 글쓴이는 현재 알 수 없으며 뒷면 대방광전, 동쪽 면의 금강계단, 서쪽 면의 법보전은 해강 김규진(1868~1933) 선생의 글씨입니다.


 

 


현재의 대적광전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17년 (순조17년) 제월당 스님과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로 경상도 관찰사였던 김노경에 의해 중수되었으며 상량문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이 직접 썼다 합니다 해인사의 주련은 당시 명필가로 이름을 떨쳤던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니 해인사의 대적광전은 당대 명필들의 글씨로 더욱 유명합니다.


 

 


해인사 대적광전의 흥선 대원군이 썼다는 주련을 옮겨보겠습니다.

“불신보방대광명(佛身普放大光明) 부처님이 큰 광명을 두루 놓으시니

색상무변극청정(色相無邊極淸淨) 색과 모양이 가없이 청정하네

여운충만일체토(如雲充滿一切土) 구름이 온 국토에 충만하듯이

처처칭양불공덕(處處稱揚佛功德) 곳곳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네

광명소조함환희(光明所照咸歡喜) 광명이 비치는 곳마다 넘치는 환희여

중생유고실제멸(衆生有苦悉除滅) 중생들의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지네“


 

 

 

고려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



2016/08/25 -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 대장경전, 고려각판. 부처님의 원력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려했던 고려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여행하다.



 

 

 


가야산이 있는 해인사의 지세는 거대한 방주형으로 가야산이 선체라면 해인사는 선실이고 중봉의 마애석불이 키를 잡는 선장이며 장경각 가운데에 큰 바위가 돛대바위였다 합니다. 그러나 1926년 대적광전 석축 보수를 하면서 이곳 바위를 깨어 사용하였습니다. 배의 돛대를 없애버렸는데 60년만인 1986년에 돛대바위 자리에 돛대를 대신하여 수미정상사리탑을 세워 이제 해인사는 앞으로 순풍에 돛단 듯이 순항할 일만 남았습니다.


 

 

 

 


여기는 학사대입니다. 신라말의 대문장가인 고운 최치원(857~?)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와 글씨를 쓰면서 보냈던 곳입니다. 그는 특히 가야금에도 능했는데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면 전나무에 수많은 학이 날아와 가야금 소리를 들었다고 전합니다. 학사대의 전나무는 최치원이 집고 다니던 지팡이를 거꾸로 꽂았는데 그게 살아남아 지금도 가지가 아래로 처져 거꾸로 자라는 듯 보인다고 합니다.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보신 법당입니다.  법당에는 중화 3년인 883년에 조성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동형쌍불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끝으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해인사를 찬미한 한시를 해석해 놓은 글을 옮겨 보겠습니다.

“옛 가야에 묻혀 있는 울창한 가람

천리 구름이 떠 있는 산을 대하며 참선을 한다

새가 내려 않은 정원에서 스님은 선정에 들고

담비가 나무를 타고 개염의 달콤함을 맛본다

글 바위 바둑 누각 어느 뉘 살고 있나?

잣나무 오동나무 소곤소곤 이야기 주고 받는다

객은 떠날 날 꼽으며 잠 못 이루고

깊은 밤 달빛은 소나무 탑 사이를 비춘다“


(참고:합천의 숨결 해인사의 향기/내암사상연구회 발행)

 



성철스님의 사리탑


2016/05/12 - (경남여행/산청여행)산청군 단성면 겁외사,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산은 산이요 물은물이로다" 성철스님 생가 율은고거와 겁외사 여행. 산청 겁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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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선비길 화림동계곡 거연정. 선비의 고고한 기풍이 느껴지는 함양 화림동 계곡 거연정에서 가을 하늘을 만나다. 함양 거연정

 

 

고고한 선비들의 묵향이 흐르지 않는 곳이 없다지만 그중에서도 영남의 안동과 함양을 선비의 고장 중에서 으뜸으로 꼽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남에서 두 고장을 좌안동 우함양하며 서로 사이좋게 양분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선비의 고장여행에서 우함양인 그것도 함양 선비들의 보루였다는 화림동 계곡을 여행했습니다.

 


 

 

2016/08/26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화림동은 원학동과 심진동을 합해 안음(안의 옛 지명) 삼동이라 합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1,580m의 남덕유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금천(남강 상류)의 화림동입니다. 삼각형의 조각칼로 후벼 판 듯 골짜기를 휘감으며 빚어낸 기이한 암반은 소와 담을 만들었고 그와 함께 산림 처사를 자처하던 선비들은 몸을 낮추는 은신처로서도 화림동은 최고의 조건이었습니다.


 

화림교


방화수류천


 60리의 화림동계곡을 선비들은 무릉도원에 비교할 만큼 많은 소와 정자가 있어 팔정팔담이라 불렀습니다. 그만큼 소와 정자가 많다는 뜻인지 아니면 화림동계곡에 거연정, 동호정, 농월정 등 진짜 여덟 정자와 소가 있어서 그런지 확인할 수 없지만 지금 남아있는 정자를 고려해도 화림동계곡은 많은 선비들이 정자를 짓고 시문을 서로 나누었을 듯합니다.







오늘날 화림동계곡에서 최고의 꽃은 거연정과 농월정입니다. ‘달을 희롱한다’라는 농월정은 2003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전소하여 최근에 다시 복원하여 새 옷을 갈아입어 아직은 어색한 모습입니다. 그에 반해 거연정은 화림동계곡의 수려한 풍광을 한몸에 담아 날아오를 듯 고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었습니다.


 



거연정이 새워진 자리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던 정선전씨 화림재 전시서공이 1640년경에 서산서원을 짓고 난 뒤 이곳에다 억새를 올린 작은 정자를 지었던 게 그 시초입니다. 전시서는 이곳에서 인근의 선비와 시문을 서로 나누며 유영하였습니다.







1853년에 서산서원이 화재로 전소하였고 그다음 해 새롭게 복원했지만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습니다. 그의 7대 후손인 전재학 등이 억새로 남아 있던 정자를 헐면서 대신에 서산서원를 철거하여 나온 부재로 전시서의 뜻을 받들어 현재의 거연정 정자를 세웠습니다.







거연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겹처마 합각지붕형식입니다. 거연정의 규모는 중층 누각 건물로 내부에는 뒷면의 1칸을 판재로 막아 따로 작은 마루방을 만들었습니다. 대청과 판재방 사이에 머름을 두어 구분하였고 판재 방은 뒷면을 뺀 3면은 모두 문이 없는 상태입니다.


 



 









누마루는 사면 기둥에서 30cm쯤 덧붙여 계자난간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자연 암반에다 나무를 대강 다듬은 누하주의 기둥을 세우다 보니 울퉁불퉁 바닥이 고르지 않아 높이를 맞추려고 나무 밑 둥을 깎아내고 주춧돌을 쓴 기둥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기둥도 있습니다. 마루 위의 기둥과 대들보 등을 보면 서산서원의 목재를 이용해서 지은 듯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연정의 편액은 주자의 시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의 12수 중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음을 취했는데 “물과 돌이 어울린 자연에 편안하게 살고 싶다”란 뜻입니다. 이곳 거연정에서 다리쉼을 하다 보면 누구나 물과 돌과 주변 자연에 꼭꼭 숨어 살고 싶다는 전시서 선생의 마음이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거연정은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하는 곳이다”







거연정을 들어서는 무지개다리는 화림교이며 그 밑을 흐르는 담은 ‘방화수류천’이라 따로 부르고 있습니다. 금방 이무기라도 솟아오를 듯 바위에 갇인 물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감청색이며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로 풀이하여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거연정 정자에는 구한말 유학자였던 은진 송병선(1836~1905) 선생의 편액이 걸려 있어 이곳 거연정에서 영호남의 선비와 함께 교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을사오적을 처형할 것을 고종에게 상소하고 을사늑약의 반대를 주장하다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음독 자결한 애국지사입니다.




 




학처럼 고결한 선비의 지조가 살아 있는 함양 화림동계곡의 선비길에서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올곧은 선비의 정신을 담아갑니다.

경남유형문화재 제433호이며 거연정을 위시한 이곳은 대한민국 명승 제86호에 지정되었습니다.






 


 

 

함양 화림동 계곡 선비길 거연정 정보 안내

 

★함양 거연정 주소: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2006

★함양 거연정 연락처:055-960-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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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경상남도 함양군의 화림동계곡은 남덕유산에서 흘러내려 온 물이 굽이굽이 에돌아 빚은 심산유곡으로 지금이야 너도나도 찾고 있지만, 오래전에는 절간이라 할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한 깊은 골짜기였습니다. 좌우로 1,000m 높이의 대봉산과 거망산, 황석산 등이 치솟아 빚어놓은 절경에 취하다 보면 화림동계곡에 세운 많은 누각처럼 나도 저절로 이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화림동계곡을 따라 많은 누각과 정자가 지어져 있습니다. 골골마다 암반마다 터 잡은 정자는 거연정과 군자정, 영귀정, 동호정, 농월정 등 특색있는 정자에 화림동은 새로운 정자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군자정은 거연정의 유명세에 찾지 못하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화림동 정자 여행에서 거연정과 불과 150m 거리에 있는 군자정을 먼저 만났습니다. 이곳 군자정은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불렀는데 1802년에 영귀대의 암반에 세워졌습니다. 군자가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어떤 분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군자정이 있는 서하면 봉전리 봉전마을은 일두 정여창 선생의 처가 동네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남자가 결혼하면 처가 입향을 하였는데 정여창선생도 이곳 처가에 내려와 있을 때는 영귀대 암반에 앉아 화림동계곡의 절경에 심취해 넋을 놓고 바라보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풍경도 이러한데 당시의 이곳 화림동 전경은 어떠했을지 짐작만으로도 흥분이 됩니다.









그럼 일두 정여창선생에 대해 조금은 알고가야겠습니다.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일두 정여창은 한훤당 김굉필과 함께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가 됩니다. 무오사화 아시죠. 1498년 연산군 4년에 연산군이 훈구파인 유자광 등과 합세하여 신진세력인 사림파를 제거한 사건으로 그 발단은 김일손의 ‘사초’에서 기인합니다.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성조 실록 사초에 넣었는데 내용의 속뜻을 보면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에 관한 문서입니다. 이 일로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게 됩니다. 또한, 정여창은 김종직의 문하라는 이유로 다른 사림파들과 함께 귀양을 가 함경도 종성에서 병으로 사망합니다.







무오사화 뒤 유자광의 권세는 날로 커졌고 폐출된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복위문제로 일어났던 갑자사화로 정여창은 다시 목이 베이는 부관참시에 처했습니다. 1506년(연산군 11년) 중종반정으로 신원이 회복되었으며 1610년(광해군 2년)에 정몽주, 김굉필, 이언적, 조광조와 함께 동방 5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었습니다.







군자정은 정선 전씨 입향조인 화림재 전시서의 후손 전세설, 세택 형제가 일두 정여창 선생을 기념하여 세운 정자입니다. 군자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규모로 앞면의 주칸은 5자, 옆면의 주칸은 4자로 규모는 화림동계곡의 여러 정자에 비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영귀대의 천연 암반에 세운 누각 건물로 사면을 개방하였고 앞쪽에다 판재로 출입하는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군자정은 네면의 기둥 바깥으로 15~18cm 정도를 달아내어 계자난간을 돌렸으며 현재 장마루가 깔렸는데 처음에는 우물마루였다 합니다. 건물의 수리 과정에서 변형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자정은 천연 암반 위라 초석을 쓰지 않았으며 둥근 기둥에다 누하주는 큰 나무를 원형 그대로 대충 다듬어 사용하여 계곡과 함께 너무 잘 어울려 더욱 운치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건물의 추녀 끝에는 활주를 각각 세워 건물의 무게감과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가구는 5량 구조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에 단청을 입히지 않은 수더분한 촌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두 정여창이 즐겨 찾았다는 영귀대 암반에 올라 군자정에서 지나가는 여름을 붙들어보세요. 계곡 물소리가 아직은 그리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함양 화림동 계곡 선비길 군자정 정보◆

★군자정 주소: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2006번지

★문화재자료 3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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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 대장경전, 고려각판. 부처님의 원력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려했던 고려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여행하다. 



합천에 가야산이 있다면 가야산에는 법보사찰 해인사가 있습니다. 그 해인사를 대표하는 게 법보사찰의 상징인 고려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입니다. 그 큰 해인사 경내를 둘러보면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관광을 했습니다. 그러나 해인사의 중심건물인 대광보전 뒤쪽 팔만대장경 현판이 걸린 전각 밑 계단에 올라서면 벌써 샤~ 하고 느끼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대장경의 엄숙한 분위기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대장경의 보안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었고 많은 경비원이 물샐틈없는 관리를 하고 있는게 역시 팔만대장경은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보배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팔만대장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려 때 부처님의 원력으로 오랑캐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국가적인 사업으로 두 차례 간행되었습니다.


 

 

 

 


먼저 1011년 간행된 대장경판은 구판대장경이라 합니다. 거란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부처님의 원력으로 1087년까지 77년간 작업을 하여 완성하였습니다. 구판대장경은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에 보관하던 중 1232년(고종 19년) 몽골군이 침입하여 그만 불타고 말았습니다. 그 뒤 1236년 재차 대장경판 간행 작업을 추진하여 16년만인 1251년 완성하였습니다. 그때의 대장경판이 지금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중인 고려대장경이며 팔만대장경으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왜 팔만대장경이라 할까요? 경전이 새겨진 장경판 수가 팔만 장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아주 많은 숫자를 가르칠 때 팔만 사천이라 쓰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법문이라 하는 데서 기인한다 합니다.


 

 

 

 


팔만대장경은 정확하게 81,350판이며 목판에 양각으로 새겼습니다. 이는 한역 경전에서 가장 오래된 원판 본으로 수정할 곳이 없이 완벽하다고 합니다. 총 1,514 경전에 52,382,960 글자, 6,791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경판으로 해인사를 모두 법보종찰이라 알고 있습니다.


 

 

 

 


대장경판에 사용된 나무는 산벚나무 등이며. 해충의 피해를 막고 조각을 쉽게 하기 위해 펄 밭에 담그거나 바닷물에 오랫동안 통째 쪘다 합니다. 대장경을 만들던 곳이 경남 남해군 고현면 대사리로 추정하는데 이곳은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밀물 때는 나무 운반이 쉽고 뻘밭과 소금물, 조각에 사용하는 칼과 쇠붙이를 만드는 대장간, 인쇄에 필요한 한지를 만드는 한지마을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대패로 곱게 다듬은 판자에 경문을 새겼는데 먼저 붓으로 한지에다 경문을 쓰고 경판에 다시 글을 쓴 한지를 풀칠하여 조각칼로 하나하나 깎아내었다니 그 작업의 정밀도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을 듯합니다.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을까요? 아차 하는 한 번의 실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이며 한글자 한글자 새길 때마다 절을 한번 했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하여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구양순체로 붙여진 글자는 꼴이 한결같으며 아름다워 꼭 한 사람이 쓴 듯 일정하다 합니다. 이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재주가 정말 뛰어난가 봅니다. 손으로 하는 기술이나 양궁, 골프 등 운동은 세계 최고인 게 이를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글자가 새겨진 경판 면과 경판 양 끝에 각목으로 덧댄 마구로로 만들어졌는데 경판의 총 길이는 약 70cm, 폭은 약 24cm, 두께는 약 2.8cm이며 무게는 대략 3.25kg입니다. 글자는 경판 양면에 돋을새김하였으며 한 면에다 글자를 새긴 새로 줄 수는 23행이며 행마다 14자 정도의 글자를 새겼습니다.


 

 

 

 


그런데 이리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팔만대장경판은 보관이 가장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은 대적광전 뒤 가파른 계단 위에 네 동의 건물로 이루어졌습니다. 팔만대장경 현판이 걸린 출입문을 지나면 먼저 한일(一)자로 길게 이어진 건물은 수다라장이고 그 뒤 같은 길이의 건물은 법보전입니다.


 

 

 

 


고려팔만대장경은 이 두 건물 안에 봉안되었으며 두 건물 사이의 동서 양쪽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은 고려 각판을 안치한 사간판전입니다.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장경판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장식을 갖추지 않은 그저 평범한 건물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건물에 장경판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놀라운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하나 보면 장경판전이 자리한 위치부터 건물의 배치와 좌향 그리고 건물의 구조와 창호 처리 및 판가의 구조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따졌으며, 경판 배열은 원활한 통풍과 적당한 일조량 등 목판을 보존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도록 힘썼습니다. 목판 보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항온, 항습의 상태 유지를 위해서 판전 외벽의 앞뒷면에 크기가 다른 살창이 칸마다 아래위로 나 있어서 건물 뒤쪽에서 들어오는 습기는 억제하고 판전으로 들어온 바람은 건물 안에서 골고루 퍼진 다음 바깥으로 나가도록 설계되어 오늘날까지도 팔만대장경판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장 한장입니다.   


요즘 전자동 전자동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곳 장경판전이 모든 기후 환경에 가장 잘 조절되는 전자동 시스템으로 설계된 것 같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선조의 혼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조각을 했던 것을 하늘도 알았는지 해인사에 7차례나 불이 났어도 장경판전은 화마로부터 안전했다 합니다.


대장경판 국보 제32호, 대장경전 국보 제52호, 고려각판 국보 제206호, 보물 제734호


 


팔만대장경판은 현재 아무나 관람할수 없습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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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가야산 홍류동천 농산정. 고운 최치원이 갓과 짚신을 걸어놓고 신선이되었다는 명경산수의 해인사 소리길  농산정을 여행하다. 농산정


빼어난 가야산 홍류동계곡 하면 얼른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857~?)으로 시대의 풍운아이자 대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분입니다. 필자는 고운 선생을 여행가라 말하고 싶습니다. 부산, 지리산, 가야산 등 영남에서 고운의 발자취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00년도 훨씬 넘은 지금도 전국의 명산 대천에는 해운이니 고운이니 임경이니 하면서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고운 선생은 말년을 가야산에서 보냈습니다. 가야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물은 섬섬옥수가 되어 바위를 돌고 넘고 뚫고 휘몰아쳐 빼어난 절경을 연출합니다.


 



선생은 가을 단풍이 붉게 온산을 뒤덮어 흐르는 계곡 물까지 붉게 물들인다 하여 홍류동천이라 이름 짓고 이곳에서 은둔하며 수도하고 유유자적한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곳이 오늘날의 농산정입니다.


 



농산정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칠언절구 둔세시 ‘제가야산독서당(濟伽倻山讀書堂)“에서 따왔는데 그 한시를 보면

“광분첩석후중만(狂奔疊石吼重巒)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늘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고교류수진농산(故敎流水盡籠山) 짐짓 흐르는 물로 온산을 둘러버렸네“





지금의 농산정 건너편에 치원대 또는 제시석으로 불리는 암벽에 새겨져있습니다. 그 한시의 맨 끝부분 ‘농산(籠山)’의 한 구절을 따와 농산정이라 하였는데 맨 끝에 ‘우암’이란 각자가 남아있어 우암 송시열의 한시가 아닌지 의문을 품기도 합니다.







정자는 앞면 2칸에 옆면 2칸 크기의 정방형 목조기와 건물입니다. 농산정은 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1936년경 후손과 이 지역 유림에 의해 중건되었고, 여러 번 수리를 거치면서 1990년에 전체적인 보수공사를 하였습니다. 지금도 단청이 입혀지지 않은 서까래 등을 보면서 최근에 다시 한 번 부분적인 수리를 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농산정 현판에는 김영한이 쓴 농산정기와 찬양사 4수가 새겨져 있으며 고운 선생의 둔세시를 차운한 시 8수도 있습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12세에 홀로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그곳에서 빈공과에 급제하여 지방관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 후 산동에서 황소가 난을 일으키자 선생은 ‘토황소격문’를 지어 최치원이란 이름을 널리 각인시켰습니다.





선생은 17년만인 29세에 고국 신라에 돌아왔으나 나라의 국운이 쇠퇴함을 알고 자천으로 변방을 전전하다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조’을 상소하였습니다. 신라의 국운은 난세로 세상이 혼탁해지자 894년 가솔을 거느리고 가야산으로 은거했습니다. 그때 입산하면서 남긴 시가 있습니다.





“승호막도청산호(僧乎莫道靑山好) 스님아! 푸른 산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

산호여하복출산(山好如何腹出山) 산이 좋은데 무슨 일로 다시 산을 나오는가!

시간타일오종적(試看他日吾踪跡) 시험 삼아 이다음에 나의 종적을 보아라.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한 번 푸른 산에 들어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지금 농산정 옆 계곡에 홍류동 각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어느 해 엄청난 물난리로 ‘홍류’ 두 글자는 떨어져 나가고 지금은 ‘동’ 자만 남아 계곡에 남아 있습니다.


선생은 “다시는 시류에 얽매이어 속세로 나가지 않겠다”는 시처럼 그의 결연한 의지를 들어내었습니다. 고운은 가야산 홍류동계곡과 해인사. 매화산의 청량사 등에서 신선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는데 갓과 짚신만 지금의 농산정 자리에 남아있었습니다. 후세사람들은 이를 보고 농산정 뒤 골짜기로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며 최취밭골로 부릅니다.





농산정은 많은 선비가 이곳을 찾아들었으며 고운 최치원을 흠모하며 많은 차운시를 남겼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시 몇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점필재 김종직의 농산정 차운시입니다.

“청시광염사창만(淸詩光焰射蒼巒) 맑은 시의 광염은 푸른 봉우리 내쏘는데

묵지여흔궐륵간(墨漬餘痕闕?間) 먹으로 쓴 흔적은 새긴 바위에 희미해라

세상단운시해거(世上但云尸解去) 세상에서는 신선 되어 떠났다고 말을 할 뿐

나지마렵재공산(那知馬?在空山) 빈산에 무덤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네“





그리고 가야산 홍류동 계곡의 농산정에는 예은 최동식 거사의 칠언절구가 있습니다.

“何日文昌入此巒(하일문창입차만) : 최치원께서 언제 이 산에 들어왔던가?

白雲黃鶴渺然間(백운황학묘연간) : 흰 구름과 황학이 아득히 어우러진 때였도다.

已將流水紅塵洗(이장유수홍진세) : 이미 흐르는 물로서 세상의 때를 씻었으니

不必中聾萬疊山(불필중농만첩산) : 만 겹산으로 귀 막을 필요는 없으리라“




‘고운최선생둔세지’





선생은 1918년 해인사 이회광 주지스님의 부탁을 받고 홍류동 계곡에서 가야산 정상인 상왕봉에 이르기까지 19 명소를 설정하고 칠언절구의 시를 남겼는데 ‘가야십구명소제영’에서 유래한다 합니다 허목선생의 ‘가야산기’에서 “홍류동, 취적봉, 광풍뢰, 음풍뢰, 제월담, 분옥폭, 완재암, 낙화담, 첩석대, 무릉교, 칠성대, 채필암 등 무흘 12곡 모두 고운 선생이 이름을 붙였다”고 했습니다.




갓과 짚신을 벗어 놓고 최취밭골로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는 농산정.





농산정에는 사방으로 농산정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그 중 한 곳에 걸린 최영하의 ‘농산정’ 칠언절구입니다.

“流水聲中聳翠巒(류수성중용취만) 흐르는 물소리에 푸른 산 우뚝하니

淸風百世在斯間(청풍백세재사간) 맑은 바람 백 세 동안 여기에 있네

詩登雅譜亭名擅(시등아보정명천) 시의 족보에 등재되어 이름을 떨치니

長使人○仰若山(장사인○앙약산) 오래도록 사람이 산을 우러르게 하네“





이외에도 고운 최치원의 농산정 차운시는 여러 사람이 남겼습니다. 그중 영재 이건창(1852~1898)과 매천 황현(1855~1910)선생의 한시를 옮겨보겠습니다.

영재 이건창 선생은 당시 부친인 이강학이 안의 현감으로 재직 중에 이곳 농산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百丈紅流萬疊巒(맥장홍류만첩만) 백 발의 홍류동 만 겹 봉우리인데

神仙詩句墮人間(신선시귀타인간) 신선 시구가 인간 세상에 떨어졌네

白雲一片孤飛去(백운일편고비거) 흰구름 한 조각 외로이 날아가니

疑是先生尙在山(의시선생상재산) 선생이 아직 이 산에 계시는가“





그리고 매천 선생은 광양에서 태어나 구한말 나라의 주권이 일본에 빼앗기게 되자 통분하여 구례의 매천 정사가 있는 서재에서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애국지사입니다. 매천 황현 선생은 1887년 이곳 농산정을 올라 차운시를 남겼는데

“雷?百折鎖重巒(뇌랑백절쇄중만) 구불구불 겹겹 산 잠긴 속을 울리며

玉洞春流紫翠間(옥동춘류자취간) 옥동의 봄물이 붉고 푸른 사이로 흐르네

山自孤雲詩益著(산자고운시익저) 산은 고운의 시로 더욱 드러났지만

(籠山未必善藏山(농산미필선장산) 산을 에워쌌으나 반드시 산을 잘 감춘 건 아니구나“.





옛 선인들은 홍류동 계곡의 정취와 농산정의 빼어난 절경을 흠모하며 많은 시와 차운시를 남겼습니다. 실제 농산정을 여행하면 올곧은 소나무의 자태와 함께 비류낙화하는 계곡에서 고운 최치원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역시 선인은 명경산수를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이제 입추도 지났고 다시 처서를 지나면 곧 홍류동천은 하늘과 나무와 바위와 흐르는 계곡 물이 온통 이름처럼 붉은 단풍이 드는 장관을 연출합니다.


농산정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1

농산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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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우도여행/제주가볼만한곳)우도여행 비양도, 홍조단괴 해빈 해수욕장. 우도에서 비양도의 현무암과 독특한 해수욕장인 홍조단괴 해빈 해수욕장을 만나다.



제주에서 섬 속의 섬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우도입니다. 우도는 “물소가 머리를 내민 모습”을 하고 있어 우도라 하며 “물에 뜬 두둑”이라 하여 안평리로도 불립니다. 우도는 제주도의 여러 섬중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2016/08/16 - (제주우도여행)삼천만의 관광지 제주 우도를 가다. 제주도 여행에서 우도 필수 관광지 검멀레해변 동안경굴, 우도봉, 우도등대를 여행하다,

2016/08/04 - (제주에서 우도 배타는 곳)성산항여객터미널. 우도가는 배는 성산항여객터미널에서 타면 됩니다. 성산 우도 여객선 시간표 참고


 



그 우두에는 비양도란 돌섬이 부속 섬으로 있습니다. 본섬인 우도 비양동에서 약 120m 거리에 있으며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왜구의 침입을 본섬에 알렸던 봉수대와 바다에서 비양동 주민의 무사 안녕을 빌었던 해신당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제주도에는 두 곳의 비양도가 있습니다. 동쪽 우도면의 비양도와 서쪽 한림읍의 비양도로 동비양은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곳이며 서비양은 해가 지는 곳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자연의 오묘함은 보면 볼수록 더욱 신기합니다.



해신당


동비양의 비양도는 이글거리는 일출의 기상을 느끼는 곳입니다. 비양도의 이름 또한 일출과 무관하지 않는데 섬에서 해 뜨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수평선에서 해가 날아오르는 것 같다 하여 비양도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비양도에는 전복, 소라, 해삼, 오분작이, 문어 등 해산물이 풍족하여 제주도 내에서도 많은 해녀마을이 있지만 비양동을 첫 번째 해녀마을로 꼽고 있습니다. 남다른 기를 자랑한다는 비양도는 배로 건너는 게 아니고 다리가 가설되어 누구나 쉽게 건너갈 수 있습니다.


 



돌의 기운도 받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면 먼저 만나는 게 해신당인 ‘돈짓당’입니다. 마을의 모든 걱정과 액운, 무사 안녕과 풍어를 용왕신께 기원하는 곳으로 이곳은 이 지역 여성들의 공동체 참여공간으로 삶의 애환을 기원하던 독특한 장소입니다.


 



현무암이 펼쳐진 비양도에는 현재 펜션과 해녀들이 문을 연 횟집을 겸한 조그마한 식당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소원성취 돌의자가 있는데 아침 일출의 기운과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로 인해 몸 안의 나쁜 독소를 정화해주고 또한 반대로 좋은 에너지를 받아들여 기쁨과 건강을 안겨준다 합니다. 돌의자에 한번 앉아보세요.


 



이제는 비양도의 끝자락인 등대로 가는 길입니다. 이곳은 밀물과 썰물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하다가는 바닷물에 갇혀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등대주위의 울퉁불퉁한 바위 구경도하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크게 심호흡을 하며 짭쪼름한 바닷냄새를 맡아도 봅니다.











이제 되돌아 나와 다시 봉수대 쪽으로 갑니다. 유일하게 초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1653년 조선 효종 14년에 염소를 사육했다는 기록이 탐라지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보기보다 염소의 먹이가 많았나 봅니다.











이곳의 봉수대는 망루 기능도 겸했는데 조선 시대 세종 때 봉수 시설 정비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군사적 통신시설로 이용하다가 1895년 봉수제가 폐지되면서 비양도의 봉수대도 함께 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순환버스로 이동하여 우도 홍조단괴 해빈인 백사장을 찾았습니다.


 



비양도 봉수대












천연기념물 제438호이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두면 연평리 해안에 있습니다. 이곳은 우도와 본섬인 성산 사이의 넓은 해역에서 광합성 작용을 일으켜 바닷물 속에서 석회조류 중의 하나인 홍조류가 탄산칼슘을 침전시켜 홍조단괴를 형성하였습니다.


 






얕은 바다에서 성장하던 홍조단괴는 태풍 등에 의해 바닷가로 운반되어 해빈 퇴적물로 쌓이게 되었으며 우도 홍조단괴 해빈에는 지름 4~5m에 이르는 혼조단괴가 해안선을 따라 수백 미터 길이에 폭이 15m 정도로 퇴적되어 있습니다.


 







국내와 해외에서도 해빈 퇴적물이 홍조단괴로만 이루어진 경우는 매운 드문 일로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어 보존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주우도의 비양도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육지 해안에서 볼 수 없는 연평리 홍조단괴해빈의 특별한 해수욕장을 만났습니다. 또한, 우도의 명물인 땅콩아이스크림을 맛보며 시원한 우도 여행을 즐겼던 하루입니다.


 




우도여행시 교통편은 우도관광순환버스가 입니다. 1인 5천원이며 우도 관광시에 아주 편리합니다. 필자일행도 순환관광버스를 이용하여 우도관광을 했으며 간격은 대략 30분, 시즌에는 엄청 자주 오는것 같았습니다. 우도에서는 섬이 작아서 그런지 차와 오토바이 자전거등 여러 이동수단이 서로 엉켜 복잡합니다. 그래서 안전운행에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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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우도여행/제주가볼만한곳)섬속의섬 우도를 가다. 제주도 여행에서 우도 필수 관광지 검멀레해변 동안경굴, 우도봉, 우도등대를 여행하다, 제주 우도



요즘 제주여행의 대세는 ‘섬 속의 섬’을 여행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퍼뜩 이해가 안 간다고요 아! 그럼 설명하겠습니다. 원래 제주도는 섬인데 제주도에서 또 다른 섬을 찾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2016/08/04 - (제주에서 우도 배타는 곳)성산항여객터미널. 우도가는 배는 성산항여객터미널에서 타면 됩니다. 성산 우도 여객선 시간표 참고



 


제주도에서 삼천만의 관광지하면 우도입니다. 성산포 여객터미널에서 아주 가까워 쉽게 우도로 갈 수 있습니다. 우도 선착장에 내리면 제주 본섬만큼 차량과 관광객으로 정신이 없습니다. 저도 일행과 함께 우도 관광을 위해 먼저 우도를 순환하는 관광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우도 마을버스도 있지만 5,000원에 순환 환승하는 관광버스가 정말 편리합니다, 우도 관광지마다 내렸다. 다시 구경하고 돌아와서 다른 관광버스를 타면 되니까 예. 관광버스는 30분 간격으로 계속 있습니다.


 

 

 

 


먼저 우도를 알아야겠습니다. 우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 년 전~1만 년 전인 신생대 제4기에 홍수와 빙하를 몇차례 거쳐 생성되었는데 이를 홍적세 또는 빙하시대라 합니다. 이때를 인류의 조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우도도 이때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며 1697년 조선 숙종 23년에는 우도에다 국마장을 설치하여 군마를 관리했습니다. 그 후 차츰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었고 1842년 헌종이 입경 허가가 시행하여 2년 뒤에 김석린 진사 일행이 처음 입도하여 정착하였습니다.


 

 

동안경굴, 검멀레 해변입구  


 

 


1900년에는 향교 훈장 오유학선생이 연평이라 불렀으며 입도한 주민들이 늘자 영일동, 비양동, 고수동, 주흥동, 우목동, 천진동 등 8개 동으로 마을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우도의 뜻을 보면 “물소가 머리를 내민 모양”이라 했는데 탐라지 기록에는 1651년 효종 2년 이원진 목사가 명명하였다합니다.


 

우도봉 입구 

 

 


처음 우도는 ‘물에 뜬 두둑’이라하여 연평리로 불리며 구좌읍에 속했습니다. 차차 인구가 늘자 1986년 4월 우도면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우도에는 우두만의 볼거리가 있습니다. 이를 우도8경이라 합니다. 주간명월, 야항어법, 천진관산, 지두청사, 천포망도, 후해석벽, 동안경굴, 서빈백사입니다.


 

 


그중 관광버스를 타고 첫 번째 만나는 게 우도봉과 동안경굴이 있는 검멀래입니다. 검멀래에서 보는 우도봉과 해안절벽을 이루는 석벽, 동안경굴 등 볼거리에서 가장 좋습니다. 시간도 시간이고 해안가로 내려가지 않고 그냥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겼습니다.


 

 


동안경굴과 후해석벽을 보려면 바닷가에 있는 보트를 타야합니다. 우리 일행도 보트타고 싶었지만, 우도봉 트레킹과 시간 제약으로 원하는 만큼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연둣빛과 시꺼먼 해안 절벽이 무시무시하면서 장관입니다.


 

 


생생 달리는 보트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완전 더위를 잊게 합니다. 그래도 우도 8경의 경안동굴은 알아야겠죠. 안내판을 보면 1601년 김사헌이 쓴 남사록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동쪽 바다 가운데 있으며 해안까지 거리는 10리, 섬의 둘레는 100리이며 닥나무가 많은 섬이라 합니다. 섬의 동쪽에 돌구멍이 나있어 배 한 척이 숨을 만하다 하였고 조금 더 가면 5~6척의 배가 숨을 수 있는 동굴이 있으며 왜선이 이곳으로 몰래 숨어들면 며칠 동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합니다.


 

 


돌구멍, 해식동굴, 고래굴, 코구멍동굴로도 불립니다. 이곳은 신령한 용이 사는 곳으로 7~8월경에는 고기잡이 배가이곳을 지나면 용이 노하여 갑자기 큰바람이 일고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쳐 나무를 뽑아내고 농사도 망가뜨리게하였습니다. 건너면 오소포에서도 북소리, 악기 소리, 개와 닭 등 짐승의 소리라도 들리면 바람과 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했습니다. 참으로 성질이 고약했던 모양입니다.


 

 


세종 2년 조선왕조실록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는데 “우도봉에는 왜선이 숨는 가장 요해 지역으로 왜적이 밤을 타고 들어오면 군사가 의지할 곳이 없어 대응하기 어려우니 성을 쌓게 하여 적에 대응하게 하였다” 했습니다. 이곳 일대를 검멀레 해변으로 부르는데 검은 모래를 뜻합니다. 우도에 왔다면 우도 등대가 있는 우도봉을 안 가볼 수 없습니다.


 

 

 

 


입구의 나무계단을 오릅니다. 우두 등대에서 먼저 만나는 게 등탑입니다. 1906년 처음 설치하여 97년간 우도 부근의 안전항해를 책임졌으며 2003년 11월 임무를 마치고 등탑은 은퇴했습니다. 그러나 그 항로표지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원형대로 영구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도봉 우도등대 역사관

 

 

 

 


제주도 최초의 등대인 우도 등간은 우도 등대 점등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5년 12월 원형대로 복원하여 1906년 3월 점등하였으며 그 후에 전면에 있는 벽돌을 쌓은 조적조 등대(구동탑)로 변경했습니다. 우도의 많은 여행지중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검멀레해변과 동안경굴, 석벽, 우도등대와 우도봉에서 우도의 모든 것을 알아보세요.


 

 

 

 

 

 

 

 

 

 

 

 

 

 

 

 

 

 

 

 


 옛 우도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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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제주도의 사진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을 바쳤던 김영갑의 사진세계를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서 접하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았습니다. 요즘 제주도의 필수 여행지이며 사진으로 주는 감동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는 곳입니다., 내가 아시는 분 중에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서 김영갑님의 대형 작품과 마주 했는데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합니다.





 



 

 


저도 제주만을 사진으로 담았다는 김영갑님 갤러리 두모악이 궁금했습니다. 눈물이 저절로 주르르 흐르더라는 감동을 느꼈다는데 저는 그저 무덤덤했습니다. 살아오면서 그만큼 감정이 메말란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영갑님은 1957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서울에서 거의 생활했습니다. 1982년 처음 제주도를 찾아 오름을 오르내리면서 사진 작업을 하였고 급기야 제주의 자연에 빠져 1985년에는 제주도에 거처를 잡고 정착하였습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다 그러하듯이 선생님은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당근과 고구마로 허기를 채웠고 제주의 구석구석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선생은 제주도에서의 사진 작업을 수행이라 할 만큼 그의 모든 영혼을 바쳤다 합니다.


 

 

 

 


제주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사진으로 승화시킨 김영갑님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구해 잠자든 제주도의 살아있는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하였고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병마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누르려면 손이 떨렸고 허리가 아파와서며 나중에는 걷지도 먹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병명은 루게릭병이며 3년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았습니다.


 

 

 

 


선생은 절망 앞에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주어진 삶을 살기 위해 폐교를 사진전시관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2002년 여름에 개관하였습니다.


 

 

 

 

 

 


선생님은 투병생활을 한 지 6년만인 2005년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계절인 5월 꽃피는 두모악에서 영원한 제주인으로 영면했습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들어서는 입구부터는 제주 특유의 화산 돌로 담장을 만들었고 화단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손으로 이 모든 나무와 풀, 돌이 아름답게 하나의 자연 정원으로 가꾸어져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2006년 잘 가꾼 자연·문화유산”에 선정되었습니다. 전시관 내부는 현재 일체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부 사진은 입장권 대신 지급해주는 김영갑 선생님의 작품을 담은 기념엽서를 올렸습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서 김영갑님의 작품사진을 보면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의 감동을 느껴보세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영업정보 안내◆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주소:제주시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삼달로 437-5)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전화:064-784-9907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홈페이지:http://www.dumoak.co.kr/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관람시간:

봄(3월~6월) 가을(9월~10월): 9:30~18:00, 여름(7월~8월) 9:30~19:00,

겨울(11월~2월) 9:30~17:00, 관람시간 30분전 입장마감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휴관일: 매주 수요일, 신정, 추석, 설 당일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입장요금: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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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두산 순교자 기념탑


 ☞(서울마포구여행/서울마포구가볼만한곳)절두산천주교순교성지. 병인박해로 천주교 순교현장인 절두산순교성지를 여행하다. 절두산천주교순교성지



서울 양화대교 인근인 절두산 순교 성지를 보고 왔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로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했습니다. 원래 잠두봉으로 불렸던 봉우리입니다. 병인년에 9명의 선교사 처형 책임을 묻는다며 프랑스함대는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하였습니다. 

서울 양화대교 인근인 절두산 순교 성지를 보고 왔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로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했습니다. 원래 잠두봉으로 불렸던 봉우리입니다. 병인년에 9명의 선교사 처형 책임을 묻는다며 프랑스함대는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하였습니다. 

대원군은 “양으로 더럽혀진 이곳을 천주교 신자인 서학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원군은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쇄국정책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 전국에다 척화비를 세우고 수많은 천주교인을 잡아다 이곳 잠두봉에서 목을 잘랐습니다. 그 후 신자들 사이에서 잠두봉을 절두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대원군은 신자들을 이곳 절두산에서 처형함으로 프랑스함대의 조선 침략 책임을 신자에게 돌리려 하였으며 그 본보기를 보이려 했습니다. 

현재 기록으로 남아 있는 절두산 순교는 무명 5인을 합해 29명이지만 이외에도 많은 순교가 있었다 합니다. 1956년 순교터 확보운동의 목적으로 그해 12월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이곳 잠두봉 부지를 확보하였으며 1965년에 순교기념탑을, 병인박해 100주년인 1967년에 절두산 순교자를 위한 기념성당과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 24명의 시복이 이루어졌으며 기념성당 지하에는 순교자 유해 안치실을 설치하였습니다. 1997년 11월에 양화진·잠두봉이 국가사적 제39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양화진공원과 양화진 외국인 묘원등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

주소 서울 마포구 합정동 96-1(토정로6길)

전화:02-3142-4434



 

 

 

 

 

 

 

 

 

 

 


팔마를 든 예수상

“죽음으로써 믿음을 증언한 순교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음을 상징하는 팔마를 손에 들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상(최봉자 수녀 작품)”



 

 

 

 

성 오한 바로로 2세 교황 

 

 

 

 


'절두산성지에서 첫 순교한 가족상'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천주를 섬긴다는 이유로 이땅에서 약 100년간에 걸쳐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한 수많은 순교자의 신앙을 공경하기 휘하여 세운 기념상. 절두산에서 처형된 첫가족 순교자로 병인박해때 순교한 이의송(프란치스코)와 그의 처 김이쁜(마리아), 아들 봉익(베드로)을 형상화 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최종태 교수 작품”



 

 

 

 

 

 

 

 

 

 

 

 

 

 

 

 

 

 

 

 

 

 

 

 

 

 

김대건신부 

 

 


오성 바위로 다섯 성인이 잠시 쉬어 갔다는 바위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인 다블뤼(1818~1866) 주교, 위앵(1836~1866)신부, 오메트로(1837~1866) 신부, 황석두(루카, 1813~1866), 장주기(요셉, 1803~1866)는 처형지인 갈매못으로 끌려가면서 아산군 음봉면 길가의 넓은 바위에서 쉬면서 신앙을 다짐했던 바위로 ‘복자 바위’로 불리다가 1984년 다섯분 모두 성인품에 오르면서 ‘오성 바위’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문지방돌

 


 대원군척화비

 

 김대건신부님상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 옛 십자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요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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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숙박)제주한화리조트. 자연공원 같은 휴식공간에서의 제주숙박을 원한다면 제주 한화리조트도 괜찮을 듯....제주한화리조트.


이번 여름에 8명이 제주 여행을 하면서 2박 3일 묵었던 숙소는 한화 리조트였습니다. 역시나 여러 사람이 묵고 생활하기에는 리조트가 편했는데 내부에서 모든 게 해결되는 완벽한 부대시설이 좋아 여름 휴가차 겸사겸사 떠났던 여행이 더욱 즐거웠습니다.







 



먼저 여행에서 잠자리가 편해야 합니다. 한화리조트는 한라산 기슭의 더 넓은 부지에다 조성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침에 일어났더니 창문으로 들려오는 온갖 새소리는 “어서 빨리 일어나세요? 여행을 떠나야죠”하는 듯이 쫑알쫑알 소리를 내며 우리를 깨우는 것 같았고 맑은 공기와 제주도만의 자랑인 삼다수인 청량수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본관건물




그리고 한화리조트가 위치한 곳이 조금 높다 보니 내려다보는 해안선의 분위기가 역시나 최고였습니다. 밤바다의 야경과 도심의 불빛을 내려다보는 맛은 한화리조트만의 자랑입니다. 또한, 주차장도 워낙에 넓어 공원 같은 분위기라 이른 아침에 나왔더니 산책하는 투숙객 정말 많았습니다.





우리는 숙소에 들기 전에 먼저 본관 건물에서 수속을 밟았습니다. 참고로 한화리조트는 동관과 서관 그리고 본관인 3동의 건물이며 390개의 객실을 갖추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서 여름 휴가철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한화리조트 숙박이 내 걸렸는데 수많은 사람이 지원하여 일행이 행운을 얻어 한화리조트 숙박권을 차지하게 되어 이번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여행 경비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게 숙박비인데 덕분에 여행경비의 부담감을 ‘팍’ 줄여주는 효과를 했습니다.







 

 

안내데스크 수속밟기


한화리조트는 모두 5인과 2인실이 기본인데 한사람 추가시 추가 요금과 침구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합니다. 5인 객실 구성을 보면 방 2개에다 거실과 욕실이 기본이며 우리가 묵었던 방은 온돌방 구조였습니다. 2인 객실은 방 1개, 욕실, 거실이 기본으로 럭셔리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한화리조트는 온돌형과 침대형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한롸리조트 부대시설




 한화리조트내부 휴식공간

 

거실


거실과 큰방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었고 티브이, 냉장고, 전기밥솥, 드라이기, 전기포트등 기본적인 가전제품과 식기류가 갖춰져 아침은 리조트에서 든든하게 해결하고 나올 수 있어 정말 좋았고 전체적인 공간이 넓어 편리했습니다.



주방




여럿이 친구 또는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 숙박시설을 찾는다면 복잡한 시내 숙박시설보다 한적하고 멋스러운 한화리조트 숙박도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5인에 맞는 요와 이불 


큰방 화장대와 오른쪽 드라이기


우리는 직장에서 당첨되어 숙박요금을 잘 몰랐지만, 주말과 주중, 준성수기 성수기, 극성수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리조트는 회원제 운영으로 일반 투숙객은 정상요금이 적용되며 회원요금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큰방


작은방




지인중에 한화리조트 회원분이 카드를 대여해주면 대여요금이 적용되는 방벙도 있어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 한화리조트 객실은 예약이 기본입니다. 제주 한화리조트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hanwharesort.co.kr/irsweb/resort3/resort/rs_room.asp?bp_cd=1100&rm_cd=FAM

5인 객실과 2인(럭셔리)객실은 같은 요금이 적용됩니다.



욕실




 

제주 한화리조트 객실 요금표입니다. 참고하세요



◆제주한화리조트 영업정보 안내◆

☞제주한화리조트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575-107(프라자 CC 옆)

제주한화리조트문의 전화:064-725-9000

제주한화리조트 구성:5인객실 340개, 2인객실 40개.

온돌방과 침대방

제주한화리조트 예약 홈페이지:http://www.hanwharesort.co.kr/irsweb/resort3/resort/rs_room.asp?bp_cd=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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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산굼부리. 제주도의 숨구멍은 어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 산굼부리 여행. 


제주에서 가장 큰 분화구는 어디일까요??? 정답 한라산 백록담요 땡!!! 아니 그럼 제주도에 한라산 백록담보다 더 큰 분화구도 있습니까?. 예 물론 있지요. 그곳은 바로 산굼부리이며 일명 제주도의 숨구멍이라 부릅니다.










 


사람마다 모두 머리에 숨구멍을 두고 있듯이 제주도는 이곳 산굼부리가 숨구멍이라는 사실……. 이곳을 확 막아뿐다면 제주도는 그만 팍 죽고 말 정도로 깊이와 넓이에서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산굼부리는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해발 400m에 위치합니다. 정확하게 해발 438m이며 제주의 360개 기생화산에서는 제법 높은 축에 들어갑니다. 분화구의 외부 둘레가 2,067m이며 분화구 내부 둘레는 756m 그리고 그 깊이는 자그마치 132m로 꼭 절구통처럼 깊게 푹 파여 그 넓이가 자그마치 30㎡에 달해 한라산 정상 백록담보다도 크고 깊다고 합니다. 이제 그 궁금증이 풀렸습니까.


 

산굼부리 요금/운영시간 

 

 

 

 


일반적인 제주 화산의 형태는 대부분 분화구를 갖고 있지 않는데 또한, 분화구를 갖고 있더라도 넓은 대접 이를 엎은듯하거나 말굽의 형태입니다. 산굼부리 분화구는 기존의 분화구와 다르게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 없이 폭발만 일어나 구멍만 남게 되는 마르(Marr)형 분화구로 우리나라 뿐만 아닌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형태입니다.


 

 

 

 


이곳 분화구 내부에 서식하는 식물은 제주도와 한라산에서 자라는 식물과도 격리 상태로 오랫동안 살아와서 차이가 나 식물 분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분화구와 주위도 지질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어 천연기념물 제263호에 지정보호 관리되고 있습니다.


 

 

 

 


특히 산굼부리를 오르는 오른쪽 사면에는 참억새가 군락을 이루는데 가을에는 한들거리는 억새군무로 장관을 연출합니다. 분화구 내 사면에는 햇볕이 잘 드는 쪽과 그러지 못한 곳이 식생 분포의 차이를 보이입니다.


 

 

 

 


일조량이 좋은 북쪽 사면에서는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생달나무 등 난대림의 상록활엽수가 자라며 그 아래층으로는 금새우난, 자금우, 겨울딸기 등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조량이 충분하지 않은 남쪽 사면에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산딸나무, 단풍나무 등 온대성 낙엽수 군락입니다.


 

 

 

 

 

 


이외에도 산굼부리에는 이른 봄부터 온갖 식물이 다투어 피는데 세복수초, 변산바람꽃, 고란초, 눈괴불주머니난, 벌깨냉이, 각시족도리 이외 약 450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왕쥐똥나무 군락, 상산 군락, 복수초군락, 변산바람꽃이 군락을 이루고 노루와 오소리 등과 조류 파충류 둥 다양한 동식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굼부리에는 그럴 뜻한 전설이 있습니다.

공주와 사랑에 빠진 은하 세계의 한감 청년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는 하늘의 별도 다스렸는데 그중에는 한감이라 불리는 청년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옥황상제는 여러 공주중에 특히 셋째딸을 귀여워했습니다.


 

 

 

 

 

 


예쁘고 착하며 총명하고 상제의 말을 잘 들어 누구보다도 말잣딸(셋째공주)을 귀여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옥황상제의 생일이 되었고 많은 손님을 초대했는데 한감 청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잔칫날 공주와 한감은 서로 한눈에 마음이 끌렸으며 사랑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청춘남녀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로 만나기를 반복하다 그만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물어 옥황상제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상제는 진노하였으며 급기야 공주와 한감이 상제 앞에 잡혀 왔습니다. 공주와 한감은 용서를 빌었지만, 좀체 상제의 화가 풀리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상제의 화가 풀릴 때까지 귀양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들은 인간 세상의 경치 좋은 곳을 찾아보다 제주도의 산굼부리에 자리를 잡고 부부가 되어 귀양살이를 시작하였습니다. 한감은 산을 쫓아 다니며 사냥을 하였고 공주는 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았는데 이들은 식성이 서로 맞지 않아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어쩔 수 없이 둘은 따로 살기로 하였습니다.


  

 

 

 

 

 

 


공주는 마을로 내려왔는데 오늘날의 제주시 남문 밖 천년 팽나무 아래에 거처를 정했으며 현재 각시당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각시당을 보고 지금도 옥황상제의 셋째딸인 말잣공주가 귀양을 왔다고 마을 주민은 믿고 있습니다. 각시당은 마을 사람들에게 복과 건강과 행복을 내려주는 마을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한감은 산굼부리에 남아 산짐승들을 돌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제주도에는 사냥이 성행했는데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내야만 별다른 사고 없이 큰 사냥감을 잡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산굼부리에서는 시끄럽게 큰소리로 웃고 떠든다든지, 부정한 짓을 하면 산굼부리 일대에 순식간에 안개가 내려앉아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데 이는 산신으로 변한 한감이 노해서 부리는 조화라고 합니다. 

(제주민속박물관장 진성기님 제주도 전설집중에서 정리....)




 

 

 

 

 

 

 

 

 


실제 산굼부리는 여행해보면 야트막한 둔덕같은 높이로 정상에서 분화구를 내려다보면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주위 조망도 시원하고 멀리 한라산의 백록담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곳은 말목장으로 운영하였으며 지금은 초록색 융단이 깔려 있어 한여름 제주여행에서 빠질 수 코스입니다. 제주의 산굼부리 내국인보다 유커가 더욱많아 꼭 중국 관광지를 걷는 기분입니다.


 

 

 

 

 

 

 

 

 

 

 

 



 

◆제주 산굼부리 영업정보◆

 

제주 산굼부리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768

☞제주 산굼부리 문의전화:064-783-9900

☞제주 산굼부리입장료

일반 6,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3,000원

☞제주 산굼부리 관람시간

3월~10월 09:00~18:40

11월~2월 09:00~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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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우도 배타는 곳)성산항여객터미널. 우도가는 배는 성산항여객터미널에서 타면 됩니다. 성산 우도 여객선 시간표 참고



제주를 찾는 여행객은 섬 속의 섬이라며 찾게되는 대부분의 섬이 우도입니다. 우도는 소가 드러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평지로 이어지다 한쪽에 우도봉을 세운 독특한 모습입니다. 이런 우도를 가기 위해서는 출발지와 출발시각 요금 등이 정말 궁금합니다.








 


환상의 섬 우도 출발은 성산항 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성산항이 우도 입도의 주 통로로 이용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주차장하며 접안시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도도항선매표소는 현재 한곳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우도↔성산 입도 배편은 계절별로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아래 우도 성산 여객선 시간표를 참고하세요.

 

 

◆우도↔성산 여객선 시간표

 

 

 

 


그리고 우도 입도 운임은 선박요금이 편도 2,000원에다 도립공원이라 우도 입장료 1,000원 여객 터미널 이용료가 500원 붙어 총 3,500원입니다. 우도에서 성산으로 나오는 요금 2,000원을 합산하여 요금을 징수합니다. 우도 입도 선박요금에 나오는 운임을 함께 5,500원씩 받습니다. 참고하세요.



 


여름철 시즌이라 우도 입도 관광객으로 여객터미널이 혼잡합니다. 우도에 일찍 들어가서 일찍 나오는 게 좋을듯합니다. 아니면 복잡해서 사람과 차에 치여 왕짜증.




 

 

매표 전에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게 승선신고서입니다. 들어갈 때와 우도에서 나올 때 모두 필요해서 2부를 작성해야 하며 우도 입도 관광객은 모두 자신을 나타내는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등 사진이 붙은 증명서를 꼭 지참해야만 배를 탈 수 있습니다. 아니면 배 못 타요.


 

 


여름철 시즌이라 사람들과 자동차가 한 테 엉켜 들어가지만, 워낙 많은 배가 우도로 들락거려 그래도 배는 덜 혼잡했습니다. 우도 사랑 1.2호, 우도랜드 1호 등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큰 배였습니다.



 


성산항에서 우도까지 빤히 보이는 가까운 거리라 금방 데려다줍니다. ㅎㅎ 순식간입니다.



 


저기 보이는 곳이 우도 대표 항인 천진항입니다.





높은 산 보이지요. 저곳이 우도에서 최고봉인 우도봉이며 우도 등대가 있습니다.


 



우도 여행을 끝내고는 본섬인 성산항으로 나올 때는 딱히 출항시간이 승차권에 기재된 게 아니라 표시된 승차권을 가지고 천진항 배 타는 입구에서 인원 확인 후에 바로 탈 수 있습니다.





개인 생각이지만 우도에 차를 가지고 들어오는 분이 있던데 그것보다는 천진항 왼쪽으로 우도관광버스인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합니다. 우도의 절경마다 모두 정차를 하는데 첫번째가 우동등대가 있는 검멀레해변입니다. 이곳에서 우도봉과 동굴 구경을 하고 다시 오는 관광버스를 타고 다음 관광지로 가면됩니다. 요금은 1인당 5000원이며  괜찮았습니다. 그러면 이곳저곳 주차 걱정 없이 둘러볼수 있습니다. 또한 섬이 복잡해서요. 참고하세요.



 

 


◆우도행 베타는곳은 성산항종합여객선터미널◆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347-9

전화::1544-8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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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제주김녕미로공원. 거미줄 같이 얽혀있는 오리무중의 김녕미로공원 미로 탈출기. 제주김녕미로공원


제주시에 있는 김녕미로공원은 요즘 제주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미국인 더스틴이 제주대학교 관광학과에서 근무하면서 정년퇴임을 하면 제주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고자 1983년부터 직접 땅을 일구고 나무를 심으며 조성한 공원으로 1995년 처음 개장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미로(迷路)는 “어지럽게 여러 갈래로 갈라져 섞갈리기 쉬운 길”을 뜻합니다…. 그만큼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김녕미로공원. 국내 미로 공원으로서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수익금은 교수님의 뜻에 따라 지역사회와 후학들의 장학금으로 기부된다니 정말로 제주도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는 분 같습니다.


 

김녕미로공원의 입장요금표 

 

 


김녕미로공원의 미로 찾기를 디자인한 사람은 세계적인 미로디자이너인 영국의 애드린 피셔(Adrian fisher) 씨가 3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여기에는 “제주 역사 기행”을 담아내었다 합니다


 

 

 

 

 

 


미로 공원의 평면도는 제주도 모양을 하고 있으며 아시아권의 음양문화와 제주 섬사람들의 샤머니즘으로 숭배했던 뱀도 형상화하여 담아내었다 합니다. 이외에도 고인돌과 조랑말,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할 때 타고 온 배의 모습도 형상화 했다 하니 미로 공원은 단순한 하나의 놀이가 아닌 제주도의 역사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김녕미로공원 입구. 여기가 출발점입니다. 

 

 


우리 일행도 그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 덩달아 미로 공원을 찾게 되었는데 매표소에서 팀마다 지도를 나누어 주면서 미로 공원에서 주의사항과 입구를 출발하여 짧게는 10분, 길게는 60분이 소요된다는 설명을 곁들었습니다.


 

 

 

 


8명의 일행은 총 4팀으로 나누어 누가 먼저 종을 치느냐며 꼴찌팀은 아이스크림 내기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한사람이 딱 걸어가게끔 랠란디(Leylandii)로 나무벽을 만들었는데 양쪽 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갑니다.


 

 

 

 

 

 


렐란디의 특징은 사계절 푸른 상록수로 내 뿜는 향기는 사람의 정신을 맑고 청량하게 해주며 심리적인 입박감을 완화해주어 항상 좋은 기분을 들게 한다고 합니다. 또한, 바닥에는 붉은빛의 화산석 송이를 깔아 오염된 공기 정화는 물론이며 인체의 혈액 순환을 돕는 효과가 있다 합니다.


 

 

 

 


미로 공원을 걷는 것만 해도 상쾌한 기분을 들게 하며 랠란드의 초록색 나무 위로 정말로 에메랄드빛 파란 하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원이 미로 길을 빠져나왔으며 물론 꼴찌 팀은 아이스크림을 돌려야 했습니다.


 

 

 

 

 

 


제주여행을 하면서 팀을 나누어 미로게임을 한다면 단합도 되고 그저 눈으로 보고 웃고 즐기는 것보다 실제 동참하면서 그 속에 빠져들어 즐기는 것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와 어르신도 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미로 공원의 미로 길을 팀원 간의 조만 잘 짠다면 가족끼리도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나무벽을 이루는게 랠란디

 

 

 

 


미로 공원에는 “고양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는 세상-김녕미로공원”이란 케치 프레이로 미로의 고양이와 친해지는 방법 등 고양이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혹 미로 길에서 고양이를 만난다면 당황하지 마세요.


 

 

 

 

 

구불구불 뱀 같아 보이나요?  

 

 

 

저기 보이시죠! 저 종을 치면 됩니다.  

 

 

 

 

 

 미로공원의 야옹이. 팔자 늘어졌습니다. 

 

 


◆김녕미로공원 정보 안내

 

김녕미로공원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산 16번지(만장굴길 122)

김녕미로공원 전화:064-782-9266

미로공원이용요금: 성인 3,300원, 청소년·노인 2,200원, 어린이 1,100원

미로공원운영시간: 3~6월 08:30~18:30. 7~8월 08:30~19:00(야간개장시 22:00), 9~11월 08:30~18:00, 12~2월 08:30~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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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서귀포가볼만한곳)이중섭문화거리 이중섭미술관,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화가 이중섭, 서귀포에서 이중섭문화거리와 이중섭미술관으로 만나다. 이중섭거리 이중섭미술관



제주여행에서 쇠소깍의 수상체험은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하여 타지 않아 시간의 여유가 많이 생겼습니다. 천지연 폭포를 관람한 후 저녁 식사시간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겨 어디로 갈까 하다가 일정에 없던 여행지인 이중섭(1916~1956) 미술관과 문화거리를 찾았습니다.







◆부산 범일동 이중섭 거리


2014/10/09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이중섭거리. 한국의 고흐 '이중섭 범일동 풍경'으로 만나다.



 

 


마침 우리가 식사하기로 했던 쌍둥이 횟집 옆이라 딱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화가 이중섭은 ‘한국의 고흐’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의 독특한 화법과 은지화 등의 작품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화가 이중섭은 제가 사는 부산의 범일동에도 ‘이중섭 거리’가 만들어져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중섭은 평남 평원군에서 출생하여 오산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의 도쿄문화학원 미술과에 유학합니다.


 


 


그곳에서 일본 여성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1943년 홀로 귀국길에 올랐고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그와 함께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은 모두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돌아가던 상황에서 마사코는 도리어 목숨을 걸고 사랑을 찾아 바다를 건너 이중섭을 찾아왔습니다.


 

 


마사코는 이중섭을 만나 결혼했지만, 그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끝내는 1950년 6.25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1·4 후퇴 때 원산에서 피난길에 올라 그는 부산 범일동에 정착했습니다 다시 1951년 1월 제주 서귀포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때 가족과 함께 피난했던 모습이 ‘길 떠나는 가족’이라는 작품 속에 남아 있습니다. 서귀포에서의 삶은 궁핍 그 자체였습니다. 두 아들과 함께 1.4평 크기의 방에서 그의 가족이 그해 12월까지 생활했으며 ‘바다가 보이는 풍경’ 등 제주에서의 많은 작품이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두 노동 등의 힘든 생활 속에 어쩔 수 없이 호구지책으로 1952년 부인 이남덕은 친정인 일본으로 두 아이와 함께 떠나갑니다. 그런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이중섭의 예술혼을 식지 않고 작품으로 승화되었고 전쟁이 끝나자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1955년 미도파 화랑과 대구 미 공보원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그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1956년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만 40세로 쓸쓸히 눈을 감았습니다. 제주 서귀포에는 전국 최초인 1996년 3월 2일 화가 이중섭을 명명한 거리가 생겼습니다.


 

 


당시 이중섭이 생활했던 초가집을 복원하였으며 이중섭 미술관을 개관하였습니다. 또한, 1998년부터 매년 9월~10월경 이중섭 거리에서 예술제를 4일간 열고 있습니다. 학생미술실기대회, 설치미술, 풍물놀이, 거리무용, 관악연주와 테마행사 등 지방문화예술의 저변 확대와 관광객과 시민이 한마당이 되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합니다.


 

 


먼저 이중섭이 1년간 생활했다는 초가집이 복원되어 있으며 왼쪽 끝 골방에는 이중섭과 그의 가족이 살았던 1·4평 크기의 방을 구경합니다. 이중섭의 흑백사진과 함께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소의 말’ 시를 보면서 당시의 흔적을 느껴봅니다.



 

 

 

 


그의 조카가 이중섭의 시를 보면서 ‘삼촌 시도 씁니까?’ 하자 그냥 웃으며 “소가 하는 말을 받아 적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는 인간 이중섭을 만닉 위해 ‘이중섭 미술관’으로 향합니다. 이중섭 미술관은 1층에는 그의 미술작품이 전시 중이며 2층에는 이중섭과 일본의 가족과 나눈 편지와 근래 이중섭 가족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 전시실 1, 2층 모두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아쉽지만 담을 수 없었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의 황소 그림만 기념으로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이중섭이 부인과 두 아이가 보고 싶었던 내용은 편지와 아이에게 그려 보냈던 그림에서 절절히 나타나 있습니다.


 

 


이중섭의 작품을 “야수파적인 강렬한 색감과 선묘 위주의 독특한 조형 등 서구적인 표현이지만, 향토적인 숨소리와 꿈을 표현하고 한국적이면서도 웅장하고 무한한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라 평가합니다.


 

 

 

 


가장 한국적이자 서정적인 우리의 모습을 잘 나타낸 이중섭의 ‘소’, '흰 소‘, ’투계‘, ’집 떠나는 가족 ‘담뱃갑속의 은박지에 그린 수많은 그림을 이중섭미술관에서 만나 보세요. 제주 서귀포 여행에서 꼭 둘러보면 좋습니다.

 


 

 

'이중섭 문화거리' 풍경 


 


 

 

 

 

 

 

 

 

 

 폐관된 옛 극장입니다. 지금은 문화공연이 열리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중섭 미술작품 거리

 

중섭 식당도 있네요 

 

 

 

 

 

 길거리의 맨홀 뚜껑에서도  



 

 

 

 

 

 


 

 

 

 

보도블럭에서도 

 

 

 

 

 

 

 


 

 

 

 

이중섭 공원의 모습 

 

 


필자가 구입했던 이중섭 그림 엽서입니다. 미술관 내부를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 엽서를 대신 찍어 올려봅니다.  



 

 

 



 

파란 게와 어린이 

 

 

 

 

 


 

 

 

 

 

 

 

 

 

길 떠나는 가족 

 


 

은지화(게와 가족)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 정보 안내◆

상호:이중섭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27-3(서귀동)

★이중섭미술관 전화:064-760-3567

★이중섭미술관 관람시간:개관시간 09:00~18:00(매표마감 17:30), 

하절기(7월~9월):09:00~20:00(매표마감 19:30)

★이중섭미술관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이중섭미술관 관람료:어른 1,000원, 청소년및 군인 500원, 어린이 300원

★주차장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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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에코랜드. 환상의 섬 제주에서 환상의 여행은 조천읍 에코랜드 기차여행. 에코랜드테마파크



여행의 최고성지라는 환상의 섬 제주도에서 가장 환상적이라는 에코랜드 기차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네

~중략~

꿈을 좇는 방랑자의 가슴에선 찬바람 일고

엄마 잃은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있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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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주제가가 생각나는 제주 조천읍 에코랜드 테마파크에 철이가 되어 기차 여행을 왔습니다. 사춘기 시절 엄마를 찾는 소년은 아니지만, 제주도의 자연 여행에 흠뻑 빠져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곳 곶자왈 에코랜드 테마파크는 그 크기가 무려 30만 평이며 1800년대 증기기관인 볼드윈 기종을 모델로 하여 영국에다 수제품으로 주문 제작된 일명 링컨 기차입니다. 곶자왈의 독특한 지형과 원시림은 꼭 ‘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은하수를 건너듯 생태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된 숲을 기차와 걷기로 힐링하는 체험공간입니다.


 



제주에서는 ‘곶자왈’ ‘곶자왈’하는데 곶자왈의 뜻부터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곶’은 숲을 말하며 ‘자왈’은 바위와 나무 풀이 뒤엉킨 모습을 뜻해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하면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 쪼개지면서 다양한 크기의 암석이 요철지형을 만들어 형성된 제주만의 독특한 숲을 말합니다.





에코랜드는 모두 곶자왈로 이루어져 교래 곶자왈이라 부릅니다. 이곳은 풍부한 지하수와 보온·보습효과가 높아 북방한계와 남방한계의 식물이 서로 공존하는 그야말로 신비의 숲이자 제주도 동·식물의 보고입니다. 이곳을 둘러보는 4.5km 기차 여행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코스입니다.





특히 에코랜드 곶자왈 숲은 조성할 때부터 ‘자연 그대로를 원칙으로’ 정하고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도 홀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었으며 곤충과 동물, 식물과 인간이 공존하고 즐기는 체험공간을 만드는 데 노력하여 오늘날의 에코랜드 테마공원이 되었다 합니다. 이런 좋은 곳은 제주 여행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기차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에코랜드 기차 여행은 총 5개 역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출발역인 메인역과 에코브리지역, 레이크사이드역, 피크닉가든역, 라벤더·크린티&로즈가든역이며 다시 메인역인 출발역에 도착합니다. 운행 간격은 8~10분이며 각 간이역에서 하차하여 휴식도 즐기며 걷기 체험 등 다양하게 즐기다 오는 기차를 이용해서 다음 역으로 가시면 됩니다.


 



출발역인 메인역은 도넛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에코랜드 열차의 출발과 종착역으로 매표소, 대기실, 스낵바,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중앙분수대와 광장 등 이곳에서부터 다양한 볼거리와 편의시설인 즐길 거리가 준비되어 많은 기대가 됩니다. 이제 다음 역인 에코브리지역으로 출발합니다.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덜컹덜컹 출발합니다. 에코브리지역은 물이 주제입니다. 2만여 평 크기의 호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수 가운데에 300m의 수상 데크가 설치되어 호수 위를 걷게끔 되어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지만 선선한 바람이 호수를 타고 불어와 더운 줄 모르고 즐겼습니다. 코끼리 코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며 각종 볼거리와 체험 놀이가 준비되어 아이에게도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기차를 타지 않고 바로 걸어서 레이크사이드역에 도착했습니다.


 













레이크사이드역은 예전에 말을 기르던 목장이 있어 완전 초원지대입니다. 원래 지형지물을 그대로 이용하여 조성하였고 호수 감상은 물론이며 내부를 볼 수 있는 풍차와 2013년 문을 연 디스커버리 존은 모래와 탐험선이 어우러져 꼭 해골 깃발을 펄럭이는 해적선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이곳은 사진찍기 정말 좋은 곳이 많습니다. 또한, 역사의 전망대에서 역 주위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시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 피크닉가든역입니다.


 



































이곳은 꼭 소풍오는 기분입니다. 특히 제주도 보존자원 1호인 신비의 물질 화산 송이로 전 구간을 포장하였는데 길이 모두 붉은색을 띠고 있습니다. 화산 송이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화산 알갱이를 말합니다.









전체 구간이 생태 탐방로이며 지하의 마그마가 만들어준 화산 송이를 밟고 자연의 향기를 폐부 깊숙이 들어 마시면 아주 좋습니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길이라 머리가 아주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에코 로드는 400m 거리에 10분이 소요되는 단거리 코스와 1.9km에 약 40분이 소요되는 장거리 코스가 있습니다. 빨리 걷는 것 보다는 자연의 숲길을 천천히 아주 맛을 음미하며 토피어리 체험, 에코 카페&송이 맨발체험, 영국산 미니 말 포니, 에코테라피 족욕 등을 즐기다 보면 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키즈타운’이 있어 마음 것 뛰어놀 수도 있습니다. 이곳까지 충실하게 체험을 즐겼더니 많은 시간을 소비하여 다음 여행지를 위해 체력비축을 하면서 라벤더·크린티&로즈가든역은 통과했습니다.


 



















라벤더·크린티&로즈가든역은 2013년에 새롭게 오픈했다 합니다. 가든 브리지를 건너면 허브, 장미, 녹차가 어우러진 유럽식 비밀의 정원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또한, 라벤더와 더 넓은 초원이 펼쳐진 모습이 환상이라며 보지 않고 온 게 막급 후회가 됩니다. 그래도 다음일 정도 있으니까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에코랜드 곶자왈 기차 여행은 넉넉한 시간을 생각하고 편안하게 휴식도 즐기며 가족여행을 하면 최고일 것 같습니다. 느리게 걷는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세계가 새롭게 보입니다. 에코랜드에서 ‘슬로우 슬로우’로 새로운 세상을 느껴보세요.

 



 

◆에코랜드 영업정보 안내◆ 


☞에코랜드 상호;에코랜드


☞에코랜드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번영로 1278-169


☞에코랜드 전화:064-784-8990


☞에코랜드 이용요금:성인 12,000원, 청소년 10,000원, 어린이 8,000원

30인이상은 단체요금 적용


☞에코랜드 이용시간:하절기 08:30~18:00, 동절기 08:40~17:00


☞에코랜드 기차 운행간격 7~12분,막차시간은 일몰시간에 따라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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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여행/포항가볼만한곳)동해면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선바위~하조대. 딸에게 권해주고 싶은 여름 캠핑 휴가지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선바위~하조대 정말 좋아요.,



찜통더위인 여름 휴가철에 계곡이 있는 산, 그것도 아니면 에메랄드빛이 반짝이는 바다에서 몸의 열기를 식히려고 너도나도 무더위를 피해 떠납니다. 하기야 오늘 얼마나 더웠던지 딸한테 카톡이 왔습니다. “아빠 우리 텐트 있어요”하며 물었는데 답장은 텐트가 너무 오래되어 원단이 다 삭았을 것이다 며 그 텐트가 네 나이보다도 더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참고로 딸은 올해로 24살이니까 여러 동 가지고 있는 텐트 모두 그 이상은 된 것 같습니다. 날씨가 얼마나 무더웠으면 24년 동안 캠핑 간다는 말이 없던 딸이 더위를 피해 1박 2일 캠핑이라도 가야겠다며 텐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진짜 올해 엄청나게 더운가 봅니다. 그런 딸에게 이번 1박 2일 캠핑하며 휴가를 즐기기 좋은 곳 한곳을 소개해줄까 합니다.






◆포항여행/포항가볼만한곳◆


2016/02/17 -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청하면 월포해수욕장 용산 산행. 동해 해돋이 명소로 소문난 낮지만 옹골찬 용의 전설을 간직한 포항 용산 산행. 포항 용산

2016/02/04 -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달전리 주상절리. 200만년전 땅속의 불기둥이 굳어져 독특한 모습의 돌기둥으로 변한 포항 달전리 주상절리 여행

2014/12/21 - (포항여행/구룡포여행)구룡포항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2. 구룡포 공원과 일본가옥인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를 여행하세요.

2014/11/03 - (경북여행/포항여행)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 호미곶 가는 길에 있는 구룡포해수욕장 옆에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가 있습니다.

2013/08/20 - (경북여행/포항여행) 내연산 12폭포. 금강산도 부럽지 않은 소금강 내연산 보경사 산행.





 


간단하게 더위도 식히며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바닷물과 해안 풍경이 있는 포항 동해면의 입암리와 마산리를 잇는 700m의 해안인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입니다. 이래서는 얼른 장소 등 이해가 퍼떡 안 간다고요. 호미곶은 다 아시죠. 왜 호랑이 꼬리라고 하면서 새해 일출 때는 장터같이 왁자지껄하며 매스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 동해의 정동진과 함께 유명세를 떨치 곳이며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쳐들고 있는 곳 말입니다. 포항 시내에서 이곳을 갈려면 오천읍과 동해면을 거쳐 가는데 입암리는 그 가운데 있으며 호미곶 가는 영일만 해안 옛길을 따라가야만 합니다.


 

 


영일만의 오밀조밀한 해안선을 따라가면 바다와 가까워졌다가 또한 멀어 졌다를 반복하는데 그속에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에 숨은 비경지에 데크길을 만들어 천혜의 비경 보따리를 세상에 풀어 놓았습니다. 연오랑과 세오녀, 이육사의 청포도만 생각해도 벌써 무더위의 반은 삭혀질 것 같습니다. ㅎㅎ 상큼한 포도 향이 가득한 청포도의 이육사 고향이 이곳 동해면입니다. 


이 바위는 두눈이 툭 불거진게 완전 외개인을 닮았습니다.

 

 


선바위와 하선대 코스는 약 700m이며 거의 해안가 바닷속으로 기둥을 박아 데크길을 만들었습니다. 결국은 바다를 걷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 입구에 떡 버티고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선바위입니다. 선바위는 높이가 6m쯤 되며 한자로 바꾸다 보니 입암이 되었고 마을 지명이 되었습니다. 평택 임시가 처음 이곳에 정착했다 하니 딱 전망 좋은 곳을 단박에 알아채 뿌렸습니다.


요 바위가 불끈 힘이 솟는나는 남근바위 ㅋㅋ 자꾸 밑이 깎이면 예류지질공원의 여왕바위가 되는것은 아닌지 ㅎㅎ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지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시원한 데크로드가 정말 좋습니다. 해무가 왔다리 갔다리하는게 신비감이 듭니다.



 


입구의 수문장인 선바위는 꼭 시멘트에다 큰 돌 작은 돌을 함께 섞어 버무려 어기어 놓은 모습인데 이는 화산활동으로 인한 뜨거운 화산 열로 벤토나이트 성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다는데 벼락을 맞아 지금은 아담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선바위를 지나면 같은 지질의 바위가 불끈불끈 솟아 독특한 지형을 보여줍니다. 꼭 기분으로 치면 지질은 다르지만 느낌이 대만의 예류지질공원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저한테 그만큼 특별한 모습입니다.


 

 


요 바위는 남근석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울퉁불퉁한 게 꼭 도깨비방망이 같아 보입니다. 수정같이 맑은 바닷물이라 그런지 바닥까지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포항시에서 바다를 뚫고 길을 만든다고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요바위는 제가 이름을 붙혔습니다. 미륵바위 어떤가요 아니면 사람바위?????ㅎㅎ



 

 

 

 

 

 

 

여기는 폭포바위입니다. 바위가 떨어지는 물줄기로 보였는지 아니면 틈마다 물이 흘러 내리는지 ㅎㅎ

그래도 폭포바위 이름을 어울리게 잘 지었습니다. 


 

 

 

 

 

 

 

 


여기도 미끈한 여인이 왕관을 쓴 여왕바위가 있습니다. 화산활동으로 생겼지만 지질이 참 특이합니다. 

 

 

 

 

 

 

 



킹콩바위.입니다. 두팔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ㅋㅋ 킹콩을 닮았습니까. ㅎㅎ 밑의 사진을 보면 제가 보기에도 염팡 닮아 보입니다. 

 

 

 

  

 

 

 

 

 

 

힌디기


 


힌디기는 노씨 성을 가진 분이 처음 정착하여 살면서 “흥하게 되기를 바래서” 흥덕(興德)이라 했는데 그게 음이 변해 힌덕, 힌디기로 불렸다 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암질이 다른 곳 보다 유난히 흰색인데 이는 화산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화산성분이 백토로 형성되어 흰 바위가 많아 흰 언덕 또는 흰덕으로 불렸으며 흰덕에서 힌디기로 바뀐 게 아닌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자갈이 많이 몰려 있어 하선대를 잇는 데크길에서 유일하게 자갈길로 이루어졌습니다.


 

 

 

 

 

 

 

 

 

 

 

 


저 멀리 한 점으로 보이는 편편한 바위가 하선대입니다. 파도가 심하게 칠 때는 하선대는 물에 잠길듯합니다. 동해면 입암리와 마산리의 경계지점을 황옥포라하는데 속칭 한미끼에 있는 암초입니다. 이곳에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놀고 갔다 하여 ‘하선대’또는 ‘하잇돌’이라 불렀습니다. 아주 옛날 칠석날만 되면 동해의 용왕이 하늘의 선녀를 이곳에 초청하여 춤과 노래로 신나게 놀았는데 그 선녀 중에서 유독 얼굴이 예쁘고 마음씨 착한 선녀에게 용왕은 마음이 끌려 왕비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선녀는 옥황상제의 허락이 있어야만 결혼을 할 수 있어 용왕은 옥황상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태풍을 없애는 등 바다를 항상 고요하게 하여 인간을 이롭게하는 일을 하면서 근심걱정을 없게 해주었습니다. 황제는 용왕의 마음씨에 감복하면서 선녀와의 결혼을 허락하였고 용왕과 선녀가 자주 이곳에 내려와 밀월을 즐기고 갔다 합니다.


 

 

 

 

 

 



이 바위는 먹바위 또는 검둥바위라 부르는데 제가 보기에는 꼭 돌배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곳 해안에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그 전설이 정말 이 돌배 모양인 먹바위와 잘 어울립니다. 이 이야기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연오랑과 세오녀 편에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영일만 해안에 부부로 살았습니다. 하루는 남편인 연오랑이 바닷가로 나와 바위에 붙은 해조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더니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습니다.


 

 


일본에서는 돌배를 타고 온 사람이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비범한 사람으로 여겨 그들의 왕으로 모셨습니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바닷가로 나와 바위에 벗어 놓은 남편의 신발을 보고 바위에 올랐습니다. 바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세오를 싣고 쏜살같이 달려 대한해협을 건너갔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보고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연오는 세오와 만나게 되었고 귀비로 삼았는데 이때부터 신라에는 해와 달이 모두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일관이 말하기를 이런 기이한 현상은 해와 달의 정기가 지금 모두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왕은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어 두 사람을 찾았으며 연오는 하늘의 뜻이라며 신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세오가 짠 명주 비단을 내어주면서 이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된다 하였습니다. 사신은 고국으로 돌아와 왕에게 고하고 비단을 놓고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그전과 같이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왕은 비단을 나라의 보물로 삼고 창고에다 보관했는데 그 창고를 귀비고라 하였으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곳은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했습니다. 이 먹바우가 연오랑과 세오녀를 태우고 간 그 배가 아닐까 하며 1000년 전의 퍼즐조각을 맞추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2012/11/18 - (경북포항산행)비학산 산행.학이 알을 품어 하늘을 나는 형상인 '학포지란'인 천하명당 포항 비학산 산행

2008/11/22 - (경북여행/포항여행)죽장 두마리 곰바위봉~베틀봉산행. 낙엽산행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포항 곰바위산~베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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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귀포여행/제주서귀포가볼만한곳)천지연폭포. 시원한 물줄기가 거침없이 내리꽂히는 서귀포 천지연폭포로 무더운 여름나기를 했습니다. 천지연폭포

 


무더운 여름철 가장 그리운 곳이 시원한 물이 거침없이 떨어지는 폭포입니다. 특히 제주도 여행에서 그것도 서귀포 여행에서는 매번 여행 때마다 꼭 가게 된다는 곳이 시원한 물줄기가 거침없이 내리꽂히는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이며 그중 이번 제주 서귀포에서 천지연 폭포를 보고 왔습니다.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


2016/07/26 -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제주여행에서 꼭 가봐야할 곳 서귀포시 쇠소깍.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쇠소깍에서 수상레저 체험도 즐기고 무더위를 이기는 휴가지로 최고.

2016/07/22 - (제주맛집)제주공항맛집, 용두암맛집 도두해녀의집. 그 맛에 반하게 된다는 제주 현지인이 추천한 물회 맛집 도두해녀의 집, 특별하다는 특물회 먹고왔습니다.

2015/07/03 - (제주여행/서귀포여행)사려니오름, 사려니 숲길. 제주 사려니 오름 경이로운 삼나무 숲길을 걷다.

2015/07/02 - (제주여행/서귀포여행)성산읍 섭지코지. 드라마, 영화 단골 촬영지 제주 섭지코지 여행.

2014/10/19 - (제주여행/서귀포여행)쫄븐갑마장길과 따라비오름 걷기. 억새 군무가 좋은 제주 오름 가을이 최적이라는 따라비오름을 오르다. 갑마장길

2014/10/15 - (제주여행/조천여행)거문오름. 2007년 세계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 탐방.




 


제주여행에서 찾았던 천지연폭포는 하늘에서 시원한 물기둥이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게 무더위와 높은 습도에 지친 내 몸에 활기를 팍팍 밀어 넣어 주었습니다. 참말로 신기한 게 물이 귀하다는 제주에서 강력한 굉음을 내는 폭포가 있다는 게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폭포가 서귀포에 몰려 있다는 게 더욱 신기합니다. 천지연폭포의 규모를 보면 폭포의 높이는 약 22m, 넓이는 12m에다 소의 깊이는 20m라 합니다. 폭포 주위로 천길 단애를 이루는 바위 절벽에 난대림의 수목이 울울창창하여 사계절 내내 푸르르 육지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라 더욱 아름답고 신비스럽습니다.


 


물허벅 


물허벅입니다. 주로 제주도에서 만 볼 수 있는데 사람이 물을 길어 나르는 물동이를 말합니다. 제주도가 화산섬인 것은 다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비가와도 물은 고이지 않고 땅속으로 모두 스며들어 가 버리고 그 물이 해안에 다다라 땅 위로 솟는 용출수입니다. 그때문에 제주도는 육지보다 물은 더욱 귀하게 여겼지만, 수질은 전국최고의 맛을 자랑합니다. 그 귀한 용천수가 흐르는 샘터에서 물을 길어 나르던 물통이가 물허벅이며 또한 잔칫날이라 던 지 흥겨운 날 남녀가 모여 물허벅을 악기로 사용하여 놀았는데 지금 허벅장단으로 남아 있습니다. 물허벅의 생김새는 주둥이는 좁고 아랫부분은 볼록하며 굽은 세워도 넘어지지 않게 평평하며 지고 다녀도 물이 세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허벅은 참대나 싸리로 만든 물구덕에 넣고 등에다 지고 다녔는데 물구덕 바깥쪽은 바닥에다 대나무를 쪼개어 받침을 만들었습니다. 아낙이 물허벅을 메고 가는 조형물을 천지연 폭포가는 길에 만났는데 돌하르방과 함께 제주에서만 볼수 있습니다.



 

 


생물권 보전 지역, 세계지질공원, 세계 7대 자연경관를 알리는 안내판 

 



 

그에 걸맞게 천지연 폭포 아래 검푸른 소에는 신령스러운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가뭄에는 천지연폭포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 합니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며 주변 경치에 취해 놀다 올라갔다는 신비의 폭포인 천지연폭포, 깊이를 알 수 없는 소에는 무태장어(천연기념물 제27호)가 서식하고 폭포주위로는 담팔수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63호)이며 제주 천지연 난대림(천연기념물 제379호)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곳 일대는 생물권 보전 지역, 세계지질공원,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지정되어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관광지입니다. 천지연폭포의 절벽을 보면 윗부분은 단단한 용암이라면 아랫부분은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무른 암석입니다. 


 

 

 

 


폭포수에 의해 아래쪽 암석이 깎여 지금과 같은 크고 깊은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신생대 지층인 서귀포 층에 노출되었으며 또한, 서귀포 층의 조개류 화석 산지입니다. 천지연폭포를 보고 나오는 길에 새롭게 조정된 여의주 조형물이 있습니다. 천지연에 살았다는 용의 전설입니다.


 

 


이곳 인근 마을에 마음씨 착하고 예쁜 ‘순천’이란 처녀가 살았는데 동네 남정네 모두가 그 처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천은 건넛마을의 총각에게 시집을 가버렸습니다. 어느 날 순천은 천지연 폭포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자기를 짝사랑했던 사내가 나타나서 위협하며 겁탈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천지연폭포에서 살던 용이 나타나서는 사내를 입에 물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순천이 깨어나서 보니 사내가 물려갔던 자리에 오색빛깔이 영롱한 구슬인 여의주가 있는 것을 보고 집에 들고 왔습니다.


 


 천지연폭포

 

 

 

 

 


그 후로 순천의 집안은 번창하고 후손들 또한 모두 다 잘되었다는 천지연 폭포의 용 전설입니다. 이곳 조형물이 설화를 형상화하여 만들었으며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지키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 여의주를 만지면 전설처럼 집안에 건강과 번창을 가져다준다 하니 믿거나 말거나 용의 기운을 한번 느껴보세요.


 

 

 

 

 

 

 

 


저기 바위 보이시나요. 천지연의 미소 바위입니다 물결이 잔잔한 날이면 반영이 꼭 미소를 띤 사람형상으로 나타난다고 하니 한번 두 눈을 부라리고 찾아보세요. 그리고 천지연폭포에 발전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폭포의 낙차를 이용하여 수력발전을 했다고 하는데 그 터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서귀포 천지연폭포 수력발전소 터를 알리는 표지석입니다.

  

 

 


요기가 미소바위입니다. 반영과 함께 미소짓는 모습이라 생각됩니까 ㅎㅎ 자세히 함 보세요.


 

 

 



용의 전설 여의주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합니다.  

 

 

 

 


1943년 11월 20일부터 1972년 8월 4일까지 총 915kW의 소비 전력을 생산하여 서귀포시 일부에 전기를 공급했다 합니다. 1970년대 제주·한림발전소에서 전력공급이 원활해지면서 폐쇄되었지만 지금도 당시 흔적인 수로관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천지연 폭포는 장마로 인해 일대 장관입니다. 많은 수량으로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을 울리며 시원한 물줄기를 마구 쏟아내는 폭포구경은 제주 여행에서 큰 행복입니다.


 


 

 



무태장어가 서식한다는 천지연 폭포

 

 


◆천지연폭포 정보 안내◆

천지연폭포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973-1

천지연폭포 전화 064-760-6304

천지연폭포 관람료:어른 2,000원, 어린이 청소년 군인 1,000원

천지연폭포 관람시간:일출시~22시까지

천지연 폭포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소도 있습니다. 



☞2014/09/29 - (제주맛집/신제주맛집)제주공항맛집 이가촌. 이가촌은 엄마의 손맛으로 만든 고등어 조림이 맛있습니다.

2014/09/21 - (제주여행/제주숙박)서귀포 표선면 숙박 유채꽃 프라자. 한라산을 가슴에 담고 숙박을 할 수 있는 유채꽃 프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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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8 - (제주여행/용눈이 오름)지금부터 제주여행의 대세는 오름 오르기... 용눈이 오름에서 제주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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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제주여행에서 꼭 가봐야할 곳 서귀포시 쇠소깍.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쇠소깍에서 수상레저 체험도 즐기고 무더위를 이기는 휴가지로 최고.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온도계의 수은주를 마구마구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이번 불볕더위가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한 해가 된다니 올해 무더위 정말 걱정됩니다. 정말 더운 날씨라고 방콕만 하기에는 젊은 청춘이 너무 아깝고 어디 시원하게 피서도 하면서 여름나기에 좋은 여행지가 없을까 싶어 떠났던 제주여행입니다.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



2014/01/30 - (제주여행)제라진과 함께하는 제주렌트카 퍼시픽랜드 서귀포잠수함 선녀와나무꾼 제주도여행 여행블로거기자단 팸투어

2014/03/11 - (제주여행)신비의 섬 제주도 2박3일 여행알차게 꾸미기. 제주도 여행 2박3일 남들보다 재미있게 돌아보기.

2014/03/12 - (제주도 여행)돌하르방은 제주인의 얼굴, 제주도 여행에서 북촌 돌하르방 공원를 만나다.북촌돌하르방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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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1 - (재주도여행)제주 성산일출봉 숙박지 휴리조트. 일출과 함께 꿈 같은 휴식을 즐길수 있는 제주 휴 리조트.

2014/03/23 - (제주여행/중문관광단지)퍼시픽랜드 요트투어 샹그릴라. 드라마 '꽃보다 남자' 준표 되기 너무 쉽지용. 샹그릴라에서 보트와 요트 투어를 즐기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이름인 쇠소깍을 여름 피서지로 정말 좋을 것 같아 추천합니다. 이름도 특이합니다. 제주도 방언인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지명과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바다로 들기 전에 빚어놓은 절경으로 바다와 계곡이 서로 만나는 곳입니다. 먼저 ‘쇠소깍’의 전설이 궁금합니다.


 

 


대략 3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근방의 하효마을 이야기입니다. 이곳 마을에 머슴 총각과 주인집 외동딸이 살았는데 어려서부터 서로 오누이처럼 소꿉장난도 하고 신랑·각시 하며 자랐습니다. 세월이 흘러 주인집에서는 혼기가 찬 외동딸을 이웃 마을에다 시집을 보내려 하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머슴은 주인어른께 둘이 사랑하고 서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라며 혼인을 허락해 달라하였습니다.


 

 


주인어른은 격노하여 머슴 가족을 내쫓아 버렸고 총각은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남내소’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습니다. ‘남내소’는 워낙 소가 깊어 사람이 한번 물에 빠지면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건질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주인집 외동딸은 밤마다 ‘남내소’의 기도 바위에 올라 비를 내려 달라고 빌었고 100일째 되던 날 밤에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구름이 몰려와 큰비가 내렸습니다.


 

 


‘남내소’에도 물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물속에 잠겨 있던 총각의 시체가 떠올라 쇠소의 모래밭에 닿았습니다. 처녀는 총각을 안고 슬피 울다 그도 기도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고 말았습니다. 마을에서는 총각과 처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처녀의 높은 정절을 기려 하효마을 용지동산에 할망당을 마련하고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신당이 되었습니다.


 

 


쇠소깍의 형성과정을 보면 제주도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만 년 전에 화산활동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쇠소깍은 약 70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도 하는데 10만 년 전 정지 상태에서 다시 화산활동이 이루어지면서 제주 현무암의 분출로 인해 하효리의 현무암 지대인 쇠소깍이 형성되었습니다.


 

 

 

 


하효리 현무암지대는 암석표면에 커다란 구멍을 형성하였는데 이를 ‘타포니’라 합니다. 타포니는 암석의 틈으로 스며든 물이 동결과정을 반복하면서 암석의 틈을 넓혀 점차 커다란 구멍으로 만드는데 쇠소깍의 발달한 타포니는 주로 화학적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쇠소깍은 조면암질 현무암으로 현무암의 표면과 내부에는 빠져나가지 못한 가스에 의해 만들어진 기공이 수없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지금도 쇠소깍의 타포니 현상은 중지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이라 합니다.


 

 


여기가 어디라고요????? 하와이도 아니고 괌도 아니고 우리나라 제주도  쇠소깍 해변입니다. 분위기가 짱입니다. ㅎㅎ


 

 


제주도에는 비가 오면 빗물이 바다로 흘러가면서 반은 땅속으로 스며드는데 스며든 물은 현무암 속에서 용천 하여 바닷물과 만나 호수인 쇠소깍을 형성하게 되고 또한 바닷물이 에메랄드빛 아름다움을 띠는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라 합니다.


 

 

 

 

쇠소깍이 있는 효돈천은 '유네스코 제주 생물권보전지역'입니다.  우리가까이에서 만날수 있는 '유네스코 제주 생물권보전지역' 구경한번 해보세요. 쇠소깍의 물이 완전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입니다


 

 



쇠소깍은 효돈마을의 지명에서 유래했는데 효돈의 옛 이름이 쇠돈이었습니다. 쇠돈의 ‘쇠’와 연못을 뜻하는 ‘소’, 그리고 끝을 뜻하는 접미사 ‘각’의 옛말인 ‘깍’이 합쳐져 ‘쇠소깍’이 되었습니다. 쇠소깍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으로 제주도에서는 좀체 보긴 힘든 현상입니다.



 

 


지금 쇠소깍은 테우, 수상자전거, 카약 등 바다 체험과 힐링 승마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필자 일행도 이곳 쇠소깍에서 바다 체험을 하려고 매표 했더니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습니다.


 

 


쇠소깍 해신당과 기우제 제단인 큰당


 

 


그대신 꿩대신닭이라고 쇠소깍 주위로 조성된 약 250m의 데크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데크길 중간중간에 전망대를 설치해 놓아 천길 단애인 쇠소깍의 아름다운 풍경과 바다 체험을 즐기는 관광객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쇠소깍 데크 길 중간쯤에는 하효동 쇠소깍 해신당과 쇠소깍 기우제 제단인 큰당이 있습니다. 해신당은 예로부터 하효동 해녀들이 물질하면서 무사 안녕과 풍요를 관장하는 성소로서 용녀부인(요왕또)을 모시면서 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쇠소깍의 기우제 제단과 큰당은 밭농사가 폐작될 정도로 심한 가뭄이 들면 집집이 쌀을 모아 제물을 마련하고 제관을 뽑아 기우제를 거행하던 곳입니다. 기우제를 거행할 때는 용지 동산 여드레당의 용지 부인석을 업어다가 제단에 모시고 제를 올리면 이곳 쇠소의 용이 승천하여 비를 내린 게 한다고 합니다.


 

 

 

 


 


일기예보로 그날 일주일의 날씨도 미리 알고. 가뭄에는 비를 내리게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 인간은 자연 현상 앞에서는 미미한 존재입니다. 요즘은 좀체 볼 수 없는 해신당과 기우제를 지냈던 제단를 이 곳 쇠소깍에서 만나보고 제주여행에서 무더위를 날려 보세요. 시원한 여름나기에 최적인 곳입니다.


 

 

 

 

 

 


◆쇠소깍 정보◆

★쇠소깍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효동

쇠소깍  전화:064-732-1562

쇠소깍수상레저 전화: 064-767-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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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금정산 금샘. 금정산과 범어사의 유래가 된 금정산 금샘 여행. 



부산과 금정산은 따로 생각할 수 없는 부산의 진산이자 종산입니다. 이곳 금정산에는 정상인 고당봉과 범어사를 긋는 일직선 상에 금정산과 범어사의 유래가 된 금샘이 있습니다. 금샘은 북문에 있는 금정산 탐방지원센터에서 정상인 고당봉 쪽으로 300m가량 오르면 고당샘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른쪽 숲 속 길을 따라가면 금샘으로 향합니다. 금정산 금샘의 유래를 보면 1432년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의 동래현 산천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금정산 석정(金井山 石井). 현의 서북쪽 산정에 바위가 있는데 높이가 3장쯤 된다. 바위 위에 샘이 있는데 둘레가 10여 척이고, 깊이는 7촌 가량 된다. 물이 항상 가득하여 비록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빛깔은 황금색과 같다. 그 아래 범어사가 있는데, 세상에서는 옛날에 금색 물고기 한 마리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으로부터 내려와 그 속에서 헤엄치며 놀았으므로 그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금정산과 범어사가 탄생하였습니다. 금샘이 있는 바위는 자못 웅장하며 신비감까지 들게 합니다. 금샘 여행은 범어사에서 출발하여 금정산 산행을 최소한 1시간 30분 이상은 해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산을 상징하는 금정산의 금샘을 만난다는 행운은 그 수고로움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부산 금정산 금샘에서 금어를 만나는 행운을 느껴보세요.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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