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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모고헌, 독특한 누각이 돋보였던 MBC드라마 화정 촬영지 영천 보현산 아래 옛 태고와 누각 모고헌 여행


보현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은 계곡을 휘감아 보현산의 속살을 헤집으며 횡계천을 이룹니다. 이곳 횡계천에는 이름만큼 골이 깊어서 오래전부터 물 좋고 산수 좋은 곳이라 하여 많은 선비가 찾았습니다. 특히 영천 출신의 지수 정규양(1667~1732)과 그의 형인 훈수 정만양(1664~1730)형제는 부친이 숨지자 보현산의 횡계로 내려와 정자를 짓고 안빈낙도하며 세상과 담을 쌓고 학문에만 매진했습니다.





◆영천 모고헌(태고와)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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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형제는 이곳 횡계천에다 나란히 정자를 세웠는데 정규양은 태고와를 짓고 약200m 떨어진 옥간정의 형을 만나기 위해 빈번하게 왕래를 할 정도로 우애가 남달랐다 합니다. 이번 영천시 화북면 여행을 하면서 옥간정은 시간 관계로 보지 못했고 횡계서당과 그 부속건물인 정규양의 모고헌만 둘러보았습니다.

 

 

 

밖에서 보는 횡계서당은 무너졌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파란 방수천을 뒤집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입문은 꽉 닫혀 있었는데 왼쪽 담장 끝에서 내부로 들어가게끔 되어 있어 모고헌과 횡계서당을 볼 수 있었습니다. 횡계서당에 비계를 설치한 게 곧 수리하는 것으로 보였으며 모고헌인 태고와도 문짝이 떨어질 듯하였고 얼씬 서러워 폐가 같았습니다.


 

 

모고헌은 1701년 조선 숙종 27년 정규양의 나이 35세 때 대전동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태고와(太古窩) 정자를 건립했으며 1730년에 수리를 하고 그를 따르는 문인들이 모고헌이라 바꿔 불렀습니다. 모고헌은 횡계천의 암반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세웠는데 정자의 반은 암반을 걸치고 반은 계곡으로 건물을 밀어 넣고 기둥을 세워 단애에 고정된 중층의 누각입니다.



 크기는 앞면과 옆면이 각각 2칸인(일부 앞면은 3칸 표기)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건물의 앞면인 계곡 쪽에는 계자 난간을 달았고 그 외 3면은 판벽을 돌렸습니다. 모고헌은 앞쪽은 트이고 3면은 판벽으로 막은 구조는 횡계천에서 들어오는 물소리와 보현산의 바람소리 새소리를 항상 가두어 두려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되었습니다.


 

 

건물 좌우 판벽에는 쌍여닫이 문을 두었으며 뒷면에는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끔 했습니다. 또한 건물의 판벽 위로는 살창문을 달아 들어온 바람이 빠져나가는 환풍구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모고헌의 특징은 가운데에다 온돌방을 넣고 그 외 사면에는 우물 정(井)자 형태의 툇마루를 달아내었는데 툇마루에 앉아 횡계천을 보면 바람소리와 계곡의 물소리에 시구가 절로 나올 듯합니다.


 

정규양과 만양형제는 이곳에 앉아 횡계구곡의 3곡인 태고와를 주제로 한 시를 남겼는데

“삼곡심제가범선(三曲深堤可汎船)

와중태고시하년(窩中太古是何年)

진수일사수상면(進修一事須相勉)

다소영재아최련(多少英才我最憐)“으로 

‘영천문화관광해설사 카페’의 뜻풀이를 옮겨보면

“삼곡이라 깊은 제방 배를 띄울 만하고/움집 중에 태고와는 몇 년이 되었는가/진수재의 한 일은 모름지기 서로 힘씀이니/수많은 영재를 나는 가장 사랑하네”로 두 형제분이 이곳에서 후진양성을 하면서 키워낸 수많은 영재를 사랑한다며 진수재에서 한 일을 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앞쪽 툇마루 아래 아궁이

 

두 형제는 일평생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퇴계 이황의 학풍을 이어받은 남인 때문이었습니다. 숙종 때 남인과 노론의 정쟁은 최고조로 달했으며 1694년 남인은 소론이 폐비 민씨 복위를 꾀하는 것을 저지하려다 실패하자 도리어 남인이 몰락하면서 소론과 노론이 집권한 사건을 갑술옥사 또는 갑술환국이라 합니다. 갑술환국을 거치면서 당시 송시열이 이끄는 노론에 남인은 설 자리를 잃고 모두 낙향하여 은둔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했는데 이때 두형제도 당쟁에 환멸을 느꼈음을 짧은 식견으로도 짐작이 갑니다.


 

 

 

 

모고헌의 북쪽에는 횡계서당인 강당이 있습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3칸은 마루를 넣고 좌우 1칸은 온돌방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동재는 앞면 3칸, 옆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입니다. 1737년 훈수지수 두 형제를 배양하여 횡계서원을 세웠으나 당시 서원의 급격한 증설현상으로 나라에서 ‘서원남설’을 규제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교당에다 향사하였습니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이마저도 훼철되었고 1923년에 와서야 지역 유림과 후손에 횡계서당으로 다시 복향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지붕이 무너져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모고헌 옆에는 300년 된 향나무가 모고헌의 운치를 더하며 장관입니다. 이는 당시 정각사 스님이 향나무 두 그루를 주었는데 그중 한그루이며 남은 한그루는 대전동의 호수 종택에 심었다 합니다.


 

모고헌(태고와)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모고헌(태고와)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별빛로 106(횡계리 4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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