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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만세루.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하며 묵직하여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봉정사 만세루, 


안동시 천등산 아래의 봉정사는 일주문을 들어서면 여느 사찰에서 보는 천왕문 등은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길게 돌계단을 만들고 그 끝에는 2층으로 된 만세루가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한 채 묵직한 느낌을 주며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안동 봉정사와 인근 여행지 맛집 둘러보기 ◆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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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 만세루는 숙종 6년인 1680년 세워졌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면서 많은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건립하여 처음에는 덕휘루(德輝樓)라 불렸다는데 언제부터 만세루(萬歲樓)로 불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세루는 봉정사를 들어서는 출입문 격인 누문입니다. 특히 봉정사는 산비탈을 깎아내어 너른 평지로 다듬기 위해 축대를 쌓았는데 축대 가운데 만세루를 만들고 그 아래 출입하는 계단을 내어 자연스럽게 경내로 올라오게 했습니다.

 

 

 


만세루는 밖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경내의 지면과 똑같은 단층으로 보입니다. 봉정사 만세루는 앞면 5칸에 옆면 3칸이며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홑처마 맞배지붕 2층 누각입니다.

 

 

 

2층 누각이지만 1층은 그저 출입구 역할을 하는 계단이 전부이며 2층은 건물의 형태 등으로 보면 정자 역할과 강당 역할을 겸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2층 바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한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을 둘렀으며, 공포를 구성하는 부재중 기둥의 머리에 보 방향으로 중첩해서 설치하는 장방형 단면의 긴 부재인 살미의 끝은 직절하였으며 내부의 기둥과 보를 연결해주는 보아지는 평평한 면에 도드라지게 새기는 초각을 하였습니다.

 

 


봉정사 만세루의 내부는 일고주 5량의 구조이며 누각을 받치는 기둥은 자연 형태 그대로 휘어지고 섞고 세월의 때가 켜켜이 묻은 나뭇결이 고색창연하여 외관상 보면 봉정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같아 보입니다.

 

 


만세루는 봉정사의 다른 건물과 다르게 전체적으로 장식을 거의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입니다. 현재 만세루에는 운판과 북, 목어를 설치하여 봉정사의 일상적인 행사가 이루어지며 덕휘루 현판과 기문 등이 걸려 있다는데 빠듯한 일정으로 바빠서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요즘 같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반질반질 윤기 가득한 만세루 누마루에 올라 두 다리 쭉 뻗고 슬렁슬렁 불어오는 자연 숲 속 바람을 맞으면서 쉬고 싶은 그런 정자입니다. 2001년 11월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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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해운대해수욕장)2016년 해운대 모래축제. 사상누각인 모래로 만든 작품으로 믿기어려운 예술작품을  2016년 해운대 모래축제에서 만나다.


 어제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열리고 있는 모래축제를 보고 왔습니다. 모르시는 분은 모래로 무슨 축제를 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해운대 해수욕장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부산 해운대 모래축제와 해운대해수욕장 맛집◆

☞2013/06/10 - (해운대모래축제)사상누각도 옛말, 모래로 만든 작품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아. 해운대 모래 축제

2014/06/08 - (부산여행/해운대여행/해운대모래축제)이게 모래로 만든 작품이라 믿기 어려운 예술품. 제10회 해운대모래축제 보고 왔습니다.

2015/06/01 - (부산여행/해운대여행)2015년 해운대 모래 축제. 세계 명작 동화를 모래 작품으로 2015 해운대 모래 축제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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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 (부산맛집/해운대맛집)개그우면 이영자가 먹어보고 '진짜!.살이 풀린다"는 그 맛집. 해운대해수욕장 속시원한 대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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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현재 모래를 이용하여 모래 축제인 모래조각전을 열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모래축제가 5월 30일 오늘까지라 딱 반나절 남는 축제입니다.





흔한 말로 ‘사상누각(砂上樓閣)’이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사상누각은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을 말합니다. 그 속뜻을 보면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 오래가지 못할 일이나 사물에 비유”를 종종 합니다. 모래는 모래끼리 절대 뭉쳐지지 않고 허물어져 버리는데 그 모래로 조각전을 매년 해운대에서 열려 갈 때마다 모래로 만든 예술품에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모래로 이런 훌륭한 작품도 만드는 것을 보면 이승만 전 대통령의 “뭉치면 산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모래도 자기들끼리 뭉치니 사상누각이라는 사자성어가 무색할 정도의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하는데 우리도 뭉쳐 요즘 경제 난국을 타개해야겠습니다. 하찮은 모래도 뭉치면 안 되는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올해 해운대 모래축제에서는 우리나라, 미국, 캐나다 등 총 7개국에서 11명의 유명한 모래 작가분이 모였다 합니다. 올해도 모두가 훌륭한 대작이지만 그중에서도 ‘포세이돈’ ‘캐리비안 해적‘ ‘걸리버 여행기’ ‘크라켄’ ‘메두사’ 등 섬세한 예술작품이 풍성합니다. 특히 해운대해수욕장이 바다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바다와 탐험”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즘 가장 인기 있다는 3D 입체 조각 기법을 도입하여 작품이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쳐나 보였습니다. ‘해운대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는 야간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건물 모양 모래 작품에 3D 가상현실을 처음 도입한 ‘미디어 파사드’도 인기 짱이라 하는데 밤까지 기다릴 형편이 못되어 보지 못하고 온 것이 억수로 아쉽습니다.





2016년 해운대 모래축제는 5월 27일 금요일 시작하여 딱 4일간 열리는 중이며 진짜 모래바람처럼 후다닥 열려 어영부영하다 보면 모래축제 구경을 못 합니다. 하루 남은 오늘이라도 얼렁 세계 유수의 모래작품전을 보고 싶다면 빨리 해운대해수욕장으로 달려가세요. 그럼 시간관계로 가시는 못하는 분은 제 해운대 모래축제 포스팅을 보고 아쉬움을 달래야 겠습니다.

 

2016년 해운대 모래축제 사진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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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항 불꽃축제)부산항불꽃축제. 불꽃축제 명당자리로 헛심만 팔았던 부산항 축제 불꽃축제 ㅋㅋ. 부산항불꽃축제.


어제 제9회 부산항 축제가 개막했는데 그 전야제 행사로 밤 9시에 불꽃축제가 있었습니다. 그 전에 불꽃축제 명당자리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는데 작년 부산항 축제 때 수정동 산복도로에서 많은 인파에 뒤엉켜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올해 불꽃축제는 다른 불꽃축제 명당자리를 찾아 인터넷에 명당자리 검색을 했습니다.





◆부산불꽃축제◆

2015/10/26 - (부산여행/2015 부산불꽃축제) 일곱 빛깔 무지개가 가을 밤하늘을 수놓았던 부산 불꽃축제.




블로그를 보니까 주로 영도 청학 배수지 등 부산항대교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 추천장소로 나와 저도 잘 알고 있는 청학 배수지로 찜하고 출발했습니다. 1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촬영 포인트는 모두 선점하고 있어 어찌할까 생각하다 봉래산 중턱에 있는 불로초공원으로 올라갔습니다.







갑자기 한 등산하다 보니 등줄기에 땀이 뱄습니다. 이마의 땀도 훔치며 도착한 불로초공원 전망대 그곳도 사람들로 많은 사례였습니다. 모든 포인트마다 삼각대를 펼쳐 든 분들로 점령당해 할 수 없이 바로 위 전망 덱으로 갔는데 구경꾼들 틈에 끼여 저도 담아 볼 욕심에 대충 삼각대를 피고 설치했습니다.

 



시간은 9시가 조금 지나서 불꽃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단발식인 큰 축포만 몇 개 부산항 대교 아래에서 쏘고 나머지는 모두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쪽에서 불꽃축포를 쏘아대서 땀 흘리고 올라온 보람도 없이 헛심만 팔았습니다.




카메라 설치는 부산항대교 쪽으로 맞추었는데 엉뚱한 방향에서 쏘아대고 내뿜는 연기등 촬영 조건 등을 보면 영도 쪽 보다는 부산항 불꽃축제는 수정동 산복도로나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쪽이 최대 포인트 같습니다.






쪽에서 불꽃축포를 쏘아 올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불찰이었네요, 20분 동안 눈팅만하고 또 1년을 기다려 내년 부산항 불꽃축제를 기다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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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우리나라에서 고려 시대 건축물로 현존하는 목조 건물하면 저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이라 이때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안동의 천등산 봉정사를 찾고서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소백산과 뜬바위 부석사의 사명이 워낙 유명한 데다 무량수전 또한, 규모 면에서나 구조와 건축양식 등을 보면서 그리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고대 불전 연구에 봉정사의 극락전보다 무량수전을 아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니 무량수전이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물임은 틀림없습니다.




◆안동 봉정사 인근 맛집과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24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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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맛집 남안동 휴게소. 안동에서는 꼭 먹어야 할 음식 1호 안동 간고등어 맛집 남안동휴게소



 

그러나 봉정사 극락전 역시 누가 무엇이라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건축물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흔히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을 일컬어 우리나라 3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 시대 목재 건축물이라 합니다. 그중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 후기의 목조건물로 국보 제1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여 다른 말로 무량수전, 아미타전이라 합니다. 1972년 9월 해체하여 보수하면서 1625년(인조3년) 상량문에 쓴 기록을 찾았는데 1363년(고려 공민왕 12년)에 극락전 지붕을 수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연유로 지붕을 수리했다면 봉정사 극락전은 벌써 오래전에 건물이 지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보통 전통 목조 건물은 창건하여 100~150년은 지나야 지붕 수리를 통상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극락전은 1200년대 초에 세워졌다는 것을 가정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백 년을 살기도 힘든데 나무로 만든 우리 목조건축물은 7백 년~8백 년을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고려 시대 건물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후손에게는 아주 큰 행운이자 행복입니다.

 

 

 


불당에는 가운데 뒤쪽에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불당 벽을 만들고 그 안에 불단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닷집은 화려하지 않지만, 매우 인상적인 채색에 섬세하게 꾸몄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을 처음에는 대장정으로 불렀다가 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극락전은 앞면 3칸, 옆면 4칸의 단층 건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입니다. 양쪽 옆면이 직각으로 잘린 듯한 모습인 맞배지붕이며 고려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통일신라 시대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건물의 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이며 기둥머리 위에만 공포를 올인 주심포식으로 아주 간결한 모습에 힘이 있어 보입니다. 정면에서 보는 극락전은 단순해 보이는데 벽체는 흙벽이며 가운데 칸에 출입문을 내었으며 좌우 칸에는 살창을 넣은 판문을 달아 불전은 어두워 일반적인 사찰의 불전과는 완전 다른 모습입니다. 이는 극락전을 수리하면서 판문과 살창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였기 때문입니다.

 

 

 

 

 

 


극락전의 옆면은 4칸의 기둥에 9개의 도리가 나온 9량 집이며 맞배지붕 끝이 충분히 나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안정된 모습입니다. 

 

 

 


극락전 현판도 극락전과 함께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86년 병인년 6월에 쓴 송파동몽의 글씨인데. 송파는 안동 권씨 집안의 권인입니다. 그리고 동몽은 자신을 낮춘다는 뜻입니다. 그 옆의 ‘광서’는 청나라 덕종 광서8년을 뜻하고 1882년 임오년 4월에 현판을 채색했다 합니다.

 

 


1972년 극락전은 해체 수리하였지만, 다시 건물은 노후하여 처마와 공포 주재가 내려앉고 벽체에 균열이 발생하여 2001년 9월에 또다시 해체와 보수공사를 하였습니다. 극락전은 총 16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는데 1972년 5개의 기둥을 교체하면서 리기다소나무와 낙엽송을 사용했던 것을 이번에 모두 우리나라 소나무로 모두 바꾸었습니다.

 

 


부재와 기와 등은 전면교체와 재사용 등을 하여 보수공사를 완료했습니다. 이번에 만났던 극락전은 새 색시가 분단장을 예쁘게 하고 다소곳한 모습이었지만 깔끔한 게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 무엇인가 극락전을 보면서 단순하지만 강한 세월의 힘을 느끼는 봉정사 여행이었습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안내정보◆

봉정사 주소: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 연락처:054-853-4141 

★봉정사 락전 국보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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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 탑비. 보물에서 국보 제315호로 승격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 탑비의 웅장함에 깜짝 놀라다.  봉암사지증대사탑비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는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의 중심법당인 대웅전 왼쪽의 비각에 지증대사적조탑과 나란히 보호하고 있습니다.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는 보물 제138호였다가 2010년 1월 국보 제315호로 승격 지정될 만큼 귀부와 이수의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비신의 높이는 273cm, 넓이 164cm, 두께 23cm로 규모가 웅장하고 아주 큰 탑비입니다.





◆문경 봉암사와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25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통일신라 최고의 걸작품 지증대사 부도인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봉암사지증대사탑

2016/05/23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극락전. 잦은 화재로 봉암사 전각중 유이하게 남은 보물 제1574호 봉암사 극락전의 독특한 목탑양식 당우를 만나다. 봉암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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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대사는 신라 진골 출신으로 속성은 김씨이며 경주 출신입니다. 법호는 도헌이며 선종 구산선문의 하나로 희양산문을 개창한 개산조 입니다. 824년인 헌덕왕 16년에 출생하여 아버지를 여의게 되자 어머니께 불교에 귀의할 뜻을 비추며 9세에 출가하였습니다. 840년 (문성왕 2년)인 17세에 영주 부석사에서 경의율사를 은사로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헌강왕 6년에 심충이 희양산 용추동천의 땅을 희사하자 그곳에 봉암사를 창건하였습니다. 헌강왕은 지증대사를 왕사에 임명하지만, 대사는 거절하고 봉암사로 돌아가 882년인 헌강왕 8년에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의 나이 59세 법랍 43년 헌강왕은 애통해하며 시호를 지증이라 내리고 탑명은 적조라 하였습니다.



지증대사적조탑비는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증대사가 입적하고 11년만인 893년에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이 지증대사의 공적을 찬양하는 비문을 짓고 분황사의 석혜강스님이 글씨를 각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증대사 적조 탑비의 완공은 경애왕 원년인 924년입니다.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와 초월산 대숭복사비, 만수산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지리산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와 함께 최치원의 사산비문이라하며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의 비문 내용을 보면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면서 도신(道信)을 시작으로 쌍봉(雙峰), 법랑(法朗), 신행(愼行), 준범(遵範), 혜은(慧隱)에서 도헌(道憲)인 지증국사로 법통이 이어지는 신라 하대의 불교사 중에서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중요한 사료입니다.





또한, 탑비를 세운 연대와 비문과 글씨를 각자한 인물이 정확하게 알 수 있어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하겠습니다. 이 비문에서 최치원은 지증대사의 일생 행적을 여섯 가지 ‘신이한 사실’ 육이(六異)와 ‘여섯 가지 훌륭한 행적’인 육시(六是)를 예를 들어가면서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다른 비문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라 합니다.

 






또한, 신라 후기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의 정보와 사원에 토지를 기증하는 소소한 절차와 후원자가 구체적으로 기록된 신라 유일의 비입니다. 또한, 백제 소도(蘇塗·큰나무를 세우고 천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일, 솟대)의 정보를 알려주는 국내 유일한 비문으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탑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비신은 1090년이 넘는 동안 풍찬노숙을 겪어서 그런지 지금은 넘어지지 않게 비신을 떠받치는 지주대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신을 받치는 귀부의 머리는 용머리이며 몸은 거북 모양입니다. 등에는 비를 꽂는 비좌를 두었고 머릿돌인 이수는 연봉이 물결 위에 솟아나는 ‘앙연판문((仰蓮辦紋)’에 서로 경쟁하듯 얽혀 있는 8마리의 용이 장식되어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는 더욱 웅장해 보이며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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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통일신라 최고의 걸작품 지증대사 부도인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봉암사지증대사탑


문경 희양산 봉암사는 1100여 년 전 신라 헌강왕 5년에 지증대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입니다. 봉암사 경내에는 구산선문의 희양산문 개산조 지증대사의 사리탑인 부도와 탑비가 나란히 있습니다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무덤입니다.





◆문경 봉암사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23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극락전. 잦은 화재로 봉암사 전각중 유이하게 남은 보물 제1574호 봉암사 극락전의 독특한 목탑양식 당우를 만나다. 봉암사 극락전

2016/05/20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무릉도원의 선경인 용추동천의 백운대에 자리한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을 만났습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2016/05/17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그러면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은 지증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을 뜻합니다.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은 보물 제137호에 지정되었으며 지증대사는 통일신라 말에 활동하던 승려입니다. 법명은 도헌(824~882)이며 자는 지선으로 김씨성에 경주사람입니다

 


아버지 찬괴와 어머니 이(伊)씨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 불가의 가르침를 따르겠다며 영주 부석사로 출가하여 840년 (문성왕 2년)에 그의 나이 17세에 경의율사에게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헌강왕 7년(881)에 왕사에 임명되지만 간곡하게 사양하고 봉암사에 돌아온 다음 해에 결가부좌로 입적하였습니다. 그의 나이는 59세에 법랍 43년. 헌강왕은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시호는 지증, 탑명은 적조를 내렸습니다.



지증대사 적조탑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승탑 양식인 8각원당형을 따랐습니다. 승탑의 전체적인 높이는 341cm, 지대석 너비가 228cm이며 옥개석이 일부 파손된 것을 빼면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하겠습니다.

 


문화재청의 자료를 보면 지대석은 넓은 돌을 여러 장 네모반듯하게 바닥 돌로 깔았으며 가운데 탑신부의 탑신에 사리를 봉안하고 위로는 옥개석을 덮어 부도의 상륜부인 머리 장식을 받치게 하였습니다.

 

 

 

 


이를 받치는 기단부는 하·중·상대석으로 나누는데 하대석은 구름무늬 조각인 안상에 사자를 조각했으며 중대석에는 비파, 피리, 북 등을 연주하는 주악 인물상과 연꽃으로 장식한 사리암, 공양천인상이 조각되었습니다.

 

 

 

 

 

가릉빈가 



그리고 중대받침석에는 각 모서리마다 구름이 새겨진 기둥 조각을 세우고 그사이에 우아하고 섬세하게 조각한 가릉빈가를 새겨 넣었습니다. 가릉빈가는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이며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상상 속의 새로 부처님이 설법할 때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대석은 탑신을 괴는 탑신 괴임을 두었고 각 모서리에는 작고 둥근 기둥 조각을 세워 난간을 나타냈습니다. 탑신은 팔각의 몸돌 각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앞뒤 두 면에는 사리를 보관하고 자물쇠가 달린 문짝 모양을 조각하였습니다.

 

 

 

 

 

 

 

 

 

 

 

 


문 문양 양옆으로는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조각하였고, 남은 두 면에는 보살을 돋을새김했습니다. 옥개석은 몸돌과 같은 팔각이며, 아래 면에 조각된 서까래는 두 겹으로 표현하여 겹처마 집을 연상하게 합니다. 처마는 살짝 들렸으며 그 끝에 꽃장식이 달렸습니다.

 


상륜부에는 노반인 연꽃받침 위로 복발, 보름, 보개, 보주 머리 장식이 차례로 얹혔습니다. 스님이 열반에 들자 시신을 현계산 안락사(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일대)에 모셨다가 다시 1년 후 인 883년 12월에 그의 제자들이 희양산 아래에다 대사의 시신을 장사 지내고 지금의 자리에 적조탑을 세웠다합니다.

 

 


봉암사 적조탑은 883년인 헌강왕 9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며 국보인 화순의 쌍봉사 철갑선사 부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그 조각수법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신라시대 부도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습니다. 정말 또하나의 아름다운 승탑을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만났습니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보물 제137호

문경 봉암사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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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경상북도 안동시에는 500m가량 높이의 천등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산의 높이와 품새보다 산이 지닌 품격은 여느 명산에 비교해도 부럽지 않습니다. 천등산 정상 아래에는 천년고찰을 두개씩이나 품고 있는데 봉정사와 개목사입니다.




◆안동 개목사 인근 맛집과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2014/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2014/02/0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맛집 남안동 휴게소. 안동에서는 꼭 먹어야 할 음식 1호 안동 간고등어 맛집 남안동휴게소



그중 봉정사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 현존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봉정사는 국보와 보물 등 작은 산에서 큰 사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는 앞으로 포스팅하겠지만 오늘은 소경 전설이 있는 개목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개목사는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스님이 창건하고 처음에는 흥국사라 하였습니다.




창건설화를 보면 천등산 정상아래 바위굴에서 능인스님이 정진수행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천녀는 스님의 수행을 시험하고자 온갖 감언이설로 파계하여 속세로 하산해 함께 살 것을 꼬시지만, 스님은 오직 부처님만 믿을 뿐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


천녀는 스님의 마음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님에게 부처님의 공덕을 시험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스님의 수도처인 동굴이 너무 어두워 옥황상제께서 보낸 등불로 환하게 밝혀 더욱 용맹정진하여 도를 이룰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능인스님은 더욱 정진하였고 마침내 크게 깨우쳐 하늘이 내린 등으로 도를 깨우쳤다 하여 대망산이라 불렸던 산은 천등산으로 바뀌었고 스님이 도를 깨친 굴은 천등굴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천등굴 아래 너른 터에다 99칸의 절을 세우니 이곳이 개목사의 전신인 흥국사입니다.




흥국사가 언제 무슨 연유로 개목사로 바뀌게 되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습니다. 조선 세종 때의 명제상이던 고불 맹사성(1360~1438)은 풍수지리에도 아주 밝았습니다. 그가 안동 부사로 부임하면서 안동 관내를 시찰하다가 유달리 소경(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 그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천등산에서 흐르는 지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당장 흥국사를 찾았고 개목사로 이름을 바꾸게했더니 더 이상의 소경은 없어졌다 합니다. 그와 비슷한 전설은 천등산의 지세로 인해 소경이 많았는데 능인스님이 도를 깨치고 흥국사를 세운 다음부터 소경이 없어졌다하여 개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보면 모두다 개목사로 인해 눈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는 똑같습니다.




개목사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1969년 해체하고 수리하면서 '천순원년(天順元年)' 글귀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1457년인 세조 3년에 처음 지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개목사 원통전의 규모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단층으로 맞배지붕형식에 풍판을 달았습니다.




내부의 천장은 뼈대가 드러난 연등 모양으로 윗부분이 노출되었으며 법당 안을 온돌방으로 구성하여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서는 아주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특히 개목사의 건물 형태는 안동의 많은 고가 종택을 닮았습니다. 사대부 문간채형식의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개목사 중심 건물인 원통전입니다.

 




문간채의 분위기를 보면 억겁의 세월이 내려앉은 듯한 무게 때문인지 원통전보다 더 오래된 모습입니다. 요즘같이 무더운 때 개방된 대청마루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았습니다. 낮은 돌담으로 넘어오는 바람은 오후의 나른했던 피로를 싹 삭혀주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 한다며 전국의 문화재를 찾아 쫓아다니고 눈도 충혈되고 피로했는데 소경을 치료했다는 개목사에서 잠시라도 눈을 감아보았습니다. 혹시 아나요? 개목사 이름답게 아픈 눈을 시원하게 낫게 해줄지요. 



 

◆안동 개목사 여행정보

★안동개목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362 

보물제242호 1963년 1월21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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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극락전. 잦은 화재로 봉암사 전각중 유이하게 남은 보물 제1574호 봉암사 극락전의 독특한 목탑양식 당우를 만나다.  


문경의 명산인 희양산 기슭 백운대 계곡을 끼고 천년사찰 봉암사가 있습니다. 처음 창건은 신라 헌강왕 5년인 879년에 지증대사 지선이 창건했으며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로 자못 웅대합니다.





◆문경 희양산 봉암사와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20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무릉도원의 선경인 용추동천의 백운대에 자리한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을 만났습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2016/05/17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일년에 딱 한번 부처님오신날만 산문을 개방하여 기쁜 마음으로 봉암사를 찾았다면 전체적인 봉암사 건물을 보고 실망 하게 됩니다. 여느 천년고찰처럼 빛바랜 당우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임진왜란 등 잦은 화재로 봉암사가 깡그리 소실되는 불운을 겪었는데 그래도 용케 남아 있는 당우가 있으니 그게 바로 일주문과 보물 제1574호인 봉암사극락전입니다.



이곳까지 쳐들어온 왜군은 봉암사 건물 하나하나에 불붙은 장작개비를 올려 불태웠으며 마지막 남은 극락전을 태우기 위해 장작개비를 올렸지만 장작개비만 타고 꺼져버려 극락전은 불타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단념하고 물러갔다합니다.


극락전 내주 천정모습

극락전 아미타불



 









봉암사 극락전은 앞면과 옆면이 각각 1칸이며 2층 건물입니다. 겹처마에 정사각형의 네모반듯한 평면 건물에 올린 사모지붕을 하였으며 그 가운데 정점에다 특이하게도 석탑의 상륜부을 올려 탑의 형식을 갖추었습니다.





봉암사 극락전은 창건당시의 기단석 위에 독특하지만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을 잘 표현한 건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락전 내부에는 ‘어필각(御筆閣)’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이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전란에 봉암사로 피신하면서 원당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봉암사 극락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1984년 화재로 소실된 보물 제163호 쌍봉사 대웅전 등과 같은 몇안되는 우리나라 목탑형식 건물 중 한곳입니다. 일제 강점기때에 들어 보수가 있었는지 옥개기와인 망와에 소화 16년(1941)이란 명문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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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여행/화순여행)화순적벽 옹성산 산행. 천하제일경 화순적벽을 품 옹성산과 쇠항아리인 난공불락의 요새 철옹성인 철옹산성을 산행하다. 화순 옹성산


화순옹성산

안성저수지

화순의 옹성산은 조금은 특별한 이름을 가졌습니다. 항아리를 엎어놓은 듯한 바위가 정상주변으로 여러 개 솟아 있어 옹성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주위 산세와 산성에 의해 일명 쇠항아리를 뜻하는 철옹산이라고도 합니다.





 ◆화순 옹성산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02 - (전남여행/화순여행)옹성산 철옹산성. 완벽한 철옹성을 뜻하는 옹성산 철옹산성 여행. 옹성산 옹성산성

2012/06/22 - (전남화순여행) 화순군의 유일한 국보가 있는 쌍봉사 둘러보기, 철감선사 탑과 탑비의 섬세함에 놀래

2011/03/02 - (전남여행/보성여행)대원사가 있는 천봉산 산행. 가을과 겨울이 공존한 보성 천봉산 낙엽 산행

2013/01/25 - (전남여행/광주여행)이것이 힐링 산행. 등급을 메길 수 없다는 국립공원의 막내 무등산 산행

2012/05/12 - 일주일만에 죽을고비에서 살아 돌아온 백구 그 후 뒷 이야기...

2012/05/08 - (전남화순)국보와 보물차이-왜 국보라 하는 지 알 것 같아요. 쌍봉사 철감선사 탑과 탑비

2012/05/06 - (전남보성) 신들도 시샘한다는 숨은 철쭉 명산 호남정맥의 보성 계당산




옹성산은 백아산에서 뻗은 능선이 흘러와 솟은 산으로 백아산과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백아산 정상부는 닭볏처럼 칼날 같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졌다면 옹성산은 자갈과 모래가 오랜 세월 퇴적작용을 거치면서 퇴적암이 솟아올라 천길 단애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퍼석한 바위 질로 인해 암석이 쉽게 떨어져 나가 산행시에는 주의 해야 합니다.

 


옹성산의 최대 볼거리는 동복호의 천하제일경인 화순적벽입니다. 옹성산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광주시민의 식수원인 동복댐이 있어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는 진경산수화가 따로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동복유격대 차단기

그리고 댐 상류의 7km 구간에는 바위가 단애를 이루었는데 물염적벽, 창랑적벽, 보산적벽, 장항적벽(노루목적벽)으로 각각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 4개의 적벽을 종합하여 화순적벽이라 하지만 그중 대표적인 게 노루목 적벽으로 불리는 장항적벽입니다.

 


벼랑의 높이가 90m를 솟구쳤고 직각으로 치솟은 바위기둥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빼어난 경관 덕분에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들어 적벽의 경관을 칭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중 1519년 기묘사와 이후 이곳에 유배 왔던 신재 최산두가 중국의 적벽보다 더 수려하고 아름답다고 감탄하면서 적벽이라 한 게 그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적벽을 여행하고 감탄을 마지않았던 시인묵객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중 제몽 고경명과 석천 임억령은 ‘유서석록’의 기행문에서 신선이 사는 곳이라며 적벽동천이라 불렀을 정도입니다.

 

 

정조 때인 1777년에는 16세의 정약용이 아버지 부임지인 화순에서 적벽을 둘러보고 적벽시를 남겼으며 전국을 떠돌던 방랑시인 김삿갓도 이곳의 경관에 흠뻑 취해 떠날 줄을 모르다 인근 구암리에서 숨을 거두었다합니다.


유격대바위 전망대 


옹성산 산행은 동복호 쪽에서는 오르는 등산로는 없으며 그 반대편인 동복면 안성리 신성마을에서 시작합니다. 옹성산 산행 경로를 보면 안성 저수지를 출발하여 유격훈련장~옹암~옹암삼거리~이정표 갈림길~독립가옥~쌍문 바위 갈림길~쌍문 바위~쌍문 바위 갈림길~백련암 터~이정표 갈림길~옹성산 전망대~옹성산 정상(573.5m)~정상밑 갈림길~황씨묘 전망대~안부삼거리(이정표)갈림길~철옹산성~쌍두봉(507m)~쌍두봉 이정표 갈림길~쌍두봉~쌍두봉 이정표 갈림길~독재~옹성산2주차장~안성저수지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으로 산행 거리는 약 7.2㎞, 총산행 시간은 3시간~3시간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옹암 정상

안성리 신성마을의 옹성산 주차장을 지나 군부대 정문에서 오른쪽 골짜기를 따라갑니다. 곧 안성저수지가 나오고 간이 화장실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화장실 맞은편 임도를 50m가량 들어서면 오른쪽 오솔길을 따라 산으로 파고듭니다.

 


곧 능선의 넓은 길과 만나고 오른쪽으로 진행합니다. 경고문이 붙은 차단기를 지나면 유격훈련장이고 연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모두 오른쪽으로 틀며 유격장을 벗어나면 옹성산 산길이 시작합니다.

 

 

직벽의 바위도 만나고 안전 시설물이 설치된 바위도 넘으면 유격장 전망대입니다. 다시 능선을 따라 더 큰 바위봉우리로 향합니다. 옹암이며 난공불락의 요새로 통하며 동서남북 사람을 발길을 거부하는 바위 절벽입니다.

 


밧줄에 의지하면서 오르면 전망이 확 트이는 옹암 정상입니다, 건너편에는 더 큰 암봉이 솟았는데 쌍두봉이며 그 왼쪽에 울퉁불퉁한 바위 능선이 백아산입니다. 그 오른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모후산이며 멀리 큰 덩치인 국립공원 무등산도 보이는 일망무제의 전망대입니다.

 

옹암삼거리

 옹성산은 곳곳에 바위벼랑이 숨어있어 지정된 산길 이외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최 상책입니다. 혹시 발을 헛디뎌 추락하는 경우가 있어 조심해야 하며 옹성산 정상 방향은 왼쪽 소나무 숲길입니다. 꺾이고 휘어진 소나무가 바위와 어울려 보기가 아주 좋습니다.


 

 

정상갈림길

300m가량 소나무 숲길을 내려가면 옹성산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임도입니다. 오른쪽은 옹성산 2주차장 방향. 정상은 왼쪽입니다. 임도를 따라가면 다시 갈림길입니다. 오른쪽 넓은 임도 방향도 쌍문 바위를 거쳐 백련암 터로 이어지지만, 이정표가 있는 왼쪽 정상(0.9km)을 보고 따라갑니다.

 

 

 

독립가옥

약 200m 능선 길을 걸으면 갑자기 시야가 트이면서 넓은 빈터가 나옵니다. 오래전에는 절터였는지 축대도 보이고 민가도 한 채 있습니다. 조망이 정말 시원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산길은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200m가량 산사면을 오르면 쌍문 바위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입니다.

 

 

 

 

 쌍문바위 갈림길

쌍문바위


오른쪽으로 40m쯤 가면 큰 바위에 두 개의 구멍이 뚫린 쌍문 바위입니다. 남해 금산의 쌍홍문과 흡사한 쌍문 바위를 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코끼리 다리를 연상하게 하는 고성의 상족암과도 닮아 보였습니다. 참 이런 곳에서 자연적으로 구멍이 생긴 특이한 쌍문 바위를 만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백련암터

다시 쌍문 바위 삼거리에서 백련암터 방향으로 향합니다. 연두색의 대나무 숲길이 운치를 더하며 큰 바위가 절벽을 이룬 백련암 터입니다. 바위 밑에는 예전에 절터였음을 보여주는 기도터와 샘터가 있습니다. 백련암터를 직진하면 다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입니다.

 

 정상 갈림길

동복호전망대

오른쪽은 정상(0.4km)으로 향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우회길인 ‘옹성산 정상(1.0km)’ 왼쪽길로 향합니다. 산사면을 우회하여 동복호 전망대를 보기위해서입니다. 이날은 산허리까지 물에 잠긴 동복호를 보면서 희뿌연 날씨를 원망했습니다. 발아래가 화순적벽이며 멀리서 찾아간 저로서는 화창한 동복호의 모습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참 많은 산행이었습니다.

 

옹성산정상 

옹성산정상 밑 갈림길 

동복호전망대

정상으로 향하는 400m 능선 길은 호젓하니 편안하였고 헬기장이 조성된 옹성산 정상 한쪽에 검은 빗돌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정상에서 보는 동복호의 조망은 별로입니다. 바로 내려서면 백련암 터로 내려가는 삼거리입니다. 산행은 직진하는 옹성산성(0.8km) 방향입니다. 다시 작은 바위에 동복호 전망대가 있는데 동복호를 마지막으로 일별하고 옹성산성으로 향합니다.

 

 

 


원을 그리듯 내려서는 산길은 밀양박씨묘를 지나고 길은 다시 완만해지면서 바위 전망대가 있는 황씨무덤에 도착합니다. 옹암과 올라오면서 지나쳤던 민가의 편편한 분지를 보면서 전체 산성의 크기를 가늠해봅니다. 떨어지는 산길을 따라가면 이번에는 삼거리에 옹성산성 이정표가 있습니다. 오른쪽은 ‘주차장(1.7km), 옹암바위(1.1km)’ 가는 길이고 쌍두봉은 직진하는 주차장(1.5km) 방향입니다.

 

 

 옹성산성 삼거리


곧 큰 바위가 막아서며 그 위로 호박만 한 크기의 돌로 쌓았던 철옹산성이 있습니다. 철옹산성은 켜켜이 이끼가 붙어 있어 그 세월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철옹산성을 옹성산성이라고도 합니다.

 

옹성산성

동복면과 이서면, 그리고 북면에 걸쳐져 있으며 옹성산의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포곡식 산성(산성안에 계곡을 감싸고 형성된 산성)입니다. 4m 높이로 쌓은 산성은 그 길이만 해도 5,400m이며 해발 275m~550m 일대에 쌓은 철옹성입니다.

 


축성기법은 양 벽을 돌로 쌓은 협축법과 한쪽만 돌로 쌓은 편축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장성 입암산성, 담양의 금성산성과 함께 전남의 3대 산성으로 고려말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산성입니다. 산성을 지나면 연자방아(?)의 흔적 같은 둥근 바위가 깨져 길잡이 역할인지 갈림길에 세워져 있습니다.

 

 

 

 

 

쌍두봉 이정표

양쪽 모두 쌍두봉 이정표에서 만납니다. 왼쪽은 능선을 타고 507봉의 쌍두봉 정상을 넘어 가게 되며 오른쪽은 바로 쌍두봉을 오르지 않고 산사면을 가로질러 쌍두봉 이정표로 향합니다. 이정표에서 다시 오른쪽 작은 쌍두봉에 갔다 옵니다. 이제 옹성산 산행을 모두 끝내고 깔때기 같은 암반에 설치한 나무 계단을 내려갑니다.

 

 

 

 

독재

이 계단이 없었다면 아마 하산이 힘들 것 같습니다. 곧 옛 다곡리와 백아산 방향으로 넘어다녔던 독재에 무사히 닿으며 지나간 세월을 말해주는 큰 고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고개로 넘어 다녔을까? 수많은 민초들의 삶이 이 고갯길에 그대로 남아 있는 정겨운 옛길을 저는 좋아합니다.

 

 

 


오른쪽 동복유격대(2.0km), 주차장(0.8km) 방향 너른 길을 따라 하산합니다. 옛길이라 그런지 시나브로 여유를 가지며 내려갑니다. 곧 정면에 옹암의 바위 절벽이 까마득하게 치솟아 그림자를 드리웠고 옹성산 제2주차장에 닿습니다. 1km가량 동복유격대 방향으로 하산하면 산행 출발지 안성 저수지에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옹성산 2주차장 

 





옹성산고도표

옹성산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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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무릉도원의 선경인 용추동천의 백운대에 자리한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을 만났습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부처님오신날만 산문을 개방하는 봉암사를 방문하면서 여러 곳을 한꺼번에 보려니 가랑이가 찢어지게 바쁘게 쫓아 다녔습니다. 봉암사 경내인 극락전, 지증대사 탑비와 승탑, 그리고 봉암사 삼층석탑을 보고 난 뒤 돌아 나와 다시 침류교를 건넜습니다.





◆문경 희양산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17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백운대에 있는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마애보살좌상까지는 700m 정도를 용추동천를 따라 계곡을 거슬러 가야 합니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엊그제 같았는데 봉암사를 찾은 5월 14일은 완전 녹음방초가 우거진 초여름 날씨였습니다.

 



바위를 타고 구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그만큼 반가운 것을 보면 계절은 소리 없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와 덩달아 봉암사 백운대 계곡도 앙상한 나무였던 겨울의 잔상이 언제 그랬냐는 듯 연두색 나뭇잎으로 모두 갈아입었고 오랜만에 콸콸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를 보면서 백운대의 감흥에 취했던 하루입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은 석면 미륵불로 조선 시대 승려 환적의천선사(1603~1690)의 원불이라는 기록이 희산구법의 백운대 미륵비명에 실려 있습니다. 4m 높이의 편편한 바위에 조각하였는데 머리 부분을 깊게 파내어 감실 같은 느낌과 광배 역할을 겸하도록 처리했으며 몸통과는 달리 머리 부분은 눈에 띄게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조각하였습니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몸통과 결가부좌한 하체는 선처럼 홈을 파서 새긴 선각 기법으로 조각하였습니다. 머리에 쓴 보관의 중간에는 꽃무늬가, 양쪽 눈썹은 백호가 뚜렷하고, 반달 같은 눈썹에 반쯤 뜬눈을 하고 있습니다.




손상된 코는 후에 보수 하였으며 입은 아주 얇고 작으며 어깨 위까지 내려오는 긴 귀와 주걱턱 같은 턱, 목에는 삼도를 나타내었습니다. 법의는 양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을 얇은 선각으로 나타내었고 띠 매듭과 옷의 주름선은 유려하면서도 뚜렷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올려 두 손으로 연꽃을 들었으며 드러난 발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오른발을 위로 올린 결가부좌의 자세에 하체를 높게 하면서 그와 동시에 무릎 사이 간격을 넓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연화 문양의 대좌는 심한 마멸로 구체적인 모습은 확인이 불가하고 불상의 제작기법으로 보면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봉암사 경내에 있어 마애보살좌상이 있는 암반을 봉암사 백운대라 부르고 신라말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이 썼다는 백운대 각자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자료부족으로 백운대 각자는 만나지 못하고 내려와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백운대 너럭바위 위로 구르듯이 흐르는 물이 마치 옥과 같다 하여 옥석대라는 닉네임도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백운대의 너럭바위를 돌로 두드리면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난다 하여 목탁바위라고 도합니다. 이는 바위를 두드리면 속이 비어서 내는 공명음으로서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봉암사 마애보살상이 자리한 백운대는 용추동천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주위 경치가 매우 빼어나 누구나 이곳에 들면 신선이 산다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생각합니다. 아쉬운 봉암사 여행이지만 이제 또다시 내년 부처님오신날을 손꼽아 기다려야만 청정수도도량인 봉암사 여행을 할 수 있으며 백운대 마애보살좌상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시 백운대를 찾을 때는 최치원이 각자 한 백운대 글씨와 목탁소리를 낸다는 바위도 꼭 두드려 보아야 겠습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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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안동 봉정사를 오르는 왼쪽 계곡 건너에 날듯이 날개를 활짝 펼친 누마루 정자가 있습니다. 이는 안동지역의 대학자이자 퇴계학파의 영수인 이황(1501~1570) 선생이 봉정사에 머물면서 '계곡의 물소리가 마치 옥이 구르는 듯 아름답다' 하여 명옥대(鳴玉臺)라 부르고 후학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곳입니다.





◆안동 명옥대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와 맛집 ◆

2014/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2014/02/0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맛집 남안동 휴게소. 안동에서는 꼭 먹어야 할 음식 1호 안동 간고등어 맛집 남안동휴게소




처음 명옥대를 낙수대(落水臺)라 불렀습니다. 중국 진나라 육사형의 초은시인 “솟구쳐 오르는 샘이 명옥을 씻어 내리네”라는 비천수명옥(飛泉漱鳴玉)의 시구에서 빌려 1565년 명종 20년에 이황이 직접 명옥대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찾아갔을 때는 최근 잦은 비에도 명옥대 옆 계곡 수량은 보잘것없었습니다. 저로서는 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옥구슬이 구르는 그런 소리는 느끼지 못하고 그저 쫄쫄 소리 내며 바위를 타고 흘렀습니다.

 


일개 범부(凡夫)라서 그런지 퇴계 선생의 높은 덕을 따를 수야 없을 것 같습니다. 명옥대 옆 바위에는 퇴계 선생이 새겼다는 ‘명옥대’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명옥대에 세워진 정자는 퇴계 선생이 이곳에서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곳으로 조선 현종 6년(1665)에 지역의 사림들이 퇴계 선생의 강학장소를 기념하는 뜻에서 정자를 세웠습니다. 명옥대 정자는 앞면 2칸에 옆면 2칸의 사각 정자로 자연석 초석에다 둥근 기둥을 세우고 누마루를 깔았습니다.

 

 

 

 

 

 


사방이 모두 개방된 상태이며 마루 끝을 빙 돌려 계자난간을 달아 녹음방초(綠陰芳草)와 옥구슬 같이 구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즐기게끔 했습니다. 정자 내 기둥에 남아있는 흔적을 보면 건립 초기에는 2칸은 방을 넣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1920년경에 명옥대를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는데 그때 방을 헐어내고 현재 누마루형식으로 변형한 것은 아닌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1986년 12월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4호로 지정되었으며 원형이 훼손되어 건축적 가치가 떨어져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안동 명옥대 주소:경북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산7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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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보현산~보현산 시루봉 산행, 하늘바라기에 좋은 산행지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영천의 지붕 보현산 원점회귀 산행. 영천보현산


인간이 하늘을 보며 천문을 연구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구 위에 떨어져 집단생활과 함께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경천사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문헌과 전래하는 풍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의식이 있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삼국시대인 신라에서는 하늘이 궁금했는지 별자리를 연구했다는 경주의 첨성대도 남아 있습니다.




◆영천 보현산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11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모고헌, 독특한 누각이 돋보였던 MBC드라마 화정 촬영지 영천 보현산 아래 옛 태고와 누각 모고헌 여행.

2016/05/09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자천교회. 115년 역사를 가진 한국 기독교 사적 제2호인 영천시 화북면 자천교회 여행. 자천교회

2016/05/06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보현산의 상징인 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여행. 정각리 삼층석탑

2008/11/17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거동사. 단풍이 황홀한 영천의 거동사입니다.



절골마을 입구

그리고 조선시대 장영실이 하늘을 연구하는 기구인 ‘혼천의’를 세종 20년(1438년)에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종은 자격루와 혼상, 옥루기륜 등 천문관측기구로 하늘의 별자리를 연구하는 홈경각을 설치하면서 우리도 대국의 전유물이었던 하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하늘을 보는 연구는 꾸준하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나라까지 갔다 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50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

이제는 한 단계 더 나가 지구의 땅따먹기가 아닌 우주 공간의 보이지 않는 땅따먹기인 바야흐로 우주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천문 연구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시점입니다. 2016년인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에서 하늘을 연구하는 천문대가 여러 곳 세워져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소백산 천문대와 보현산 천문대입니다. 


별빛소년동상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우선 맑은 날이 많아야하며 일교차가 크고 건조하고 불을 밝히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최적지가 소백산과 보현산으로 모두 1000m를 넘는 산봉우리에다 한마디로 고약할 정도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또한, 모두 깊고 높고 척박한 환경의 외진 곳이라 하늘바라기에 최적입니다.



그중 보현산 천문대는 대전의 대덕전파천문대, 소백산 천문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천문관측소 중 한곳입니다. 그리고 보현산 천문대의 역할은 천체의 움직임과 변화를 관측하며 우주 생성과 진화를 연구하는 곳입니다. 특히 보현산 천문대는 국내 최대인 1.8m 광학 천체망원경이 설치해 있으며 신권화폐였던 일만 원권 뒷면에 혼천의와 함께 당당히 모델 자리를 꿰차기도 했습니다.


광대수염 

 

정각리 삼층석탑

 그래서 보현산 산행을 떠났습니다. 보현산은 천문대만 유명한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희귀야생화의 창고 같은 곳이 바로 보현산입니다. 보현산 정상인근에 멸종위기 2급 식물을 심심치 않게 만나는데 산행과 함께 이름 모를 풀과 나무 야생화는 덤입니다.


금정사 


보현산은 낙동정맥의 가사령에서 분기한 보현지맥 최고봉이며 석심산(750.6m)에서 보현지맥과 팔공기맥  두 능선으로 갈라집니다. 보현지맥은 비봉산을 지나 위천에서 끝나며 총 거리는 166.8km입니다. 석심산에서 왼쪽 대구 팔공산을 잇는 능선인 팔공기맥은 가산에서 다시 꼬리를 북으로 돌려 상주시 중동면 새띠마을까지 약 120km 가량 능선을 말하며 모두 그 중심에 보현산이 있습니다.


상수원보호구역 철망펜스

영천의 지붕인 보현산 산행 경로입니다.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절골입구 보호수 느티나무~정각리 삼층석탑~정각사·금정사 갈림길~금정사~상수원보호구역 철망~보현산·숲속교실길 갈림길~샘터 사거리 갈림길~천수누리길 덱~보현산 천문대~보현산 정상~ 보현산 시루봉~정자쉼터~정각마을(절골)·등산로입구(정각) 이정표~정각사~정각사·금정사 갈림길~보호수 느티나무순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입니다. 전체 거리는 7.5km가량에 산행시간은 약 3시간 30분~4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보현산 산행은 화북면 정각동에서 대부분 산행을 시작하여 부약산과 법룡사를 거처 용소리로 하산하는 보현산 횡단 코스를 많이 합니다. 약 10.5km에 6시간인데 초심자에게는 조금 부담이 가는 코스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각동 별빛마을 여행도 겸한 원점회귀 보현산 산행도 괜찮을 것 같아 보현산에서 유명한 야생화산행을 계획 했습니다.


 

보현산·숲속교실길 갈림길 


보현산 산행출발지 정각동은 “바르게 깨달음”의 뜻인 정각사란 절이 있었던 곳으로 절골로도 불립니다. 그러나 지금은 보현산천문대가 정상에 있어 천문대마을 또는 별빛마을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2003년 정부로부터 아름다운 마을로 인정받았으며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된 청정지역이라 보현산 천문대와 함께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샘터 사거리 이정표 갈림길

절골 마을 입구에는 수령 500년 된 큰 느티나무가 있으며 별빛마을을 상징하는 ‘별을 든 소년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배낭을 꾸려 출발합니다. 물소리가 경쾌한 절골을 끼고 마을을 빠져나가면 왼쪽 산비탈 과수원에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석탑을 보려면 콘크리트 포장길을 올라가다 과수원으로 진입하는 다리와 함께 석탑 관람 안내문이 있습니다.

 

노랑무늬붓꽃 

제비꽃 

피나물 

제비꽃 

고려초의 석탑이며 상륜부인 노반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시 나와 진행방향으로 직진하면 정각사 안내판이 있습니다. 왼쪽 정각사는 보현산 정상을 찍고 하산하는 길이며 보현산 정상은 직진합니다. 가정집 같은 금정사를 왼쪽으로 돌면 식수원을 알리는 철망펜스가 막고 있습니다. 산길은 오른쪽으로 꺾고 이곳이 본격적인 보현산 들머리입니다.

 

 


많은 등산객이 올라 산길은 고속도로같이 넓고 반잘반질합니다. 너른 길을 따라 오르면 곧 능선에 닿고 진행방향으로 능선 길 만 따라가면 보현산 정상입니다. 30여분 별 어려움없이 ‘숲속 교실길’ 갈림길까지 올라왔다면 이제부터 정상까지는 급한 오르막 산길이라 체력소모가 많은 구간입니다. 천천히 40분가량 오르면 샘터가 있는 사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천수누리길 데크 


이곳에서 숨을 돌리며 얼음장 같은 샘물로 목을 축입니다. 오장육부를 말끔히 씻어내는 느낌입니다. 샘터주위로 멸종위기식물 2급인 노랑무늬붓꽃, 피나물, 흰색과 분홍색 제비꽃 등 산 아래에서는 좀체 만나지 못하는 야생화가 노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다운 천상의 꽃밭을 이루었습니다.

 

 


 이곳에서 천문대·시루봉 가는 길은 왼쪽 두 코스 중 어느 곳을 가도 됩니다. 필자는 코스가 100m가량 더 긴 천문대·시루봉 방향인 가운데 길을 올랐습니다. 200m가량 오르면 나무로 만든 ‘천수누리길’입니다. 오른쪽은 천문대 주차장(0.3km) 방향, 왼쪽으로 꺾어 천문대(0.3km)·시루봉(0.7km)으로 300m쯤 가면 사거리가 나오고 왼쪽 천문대 가는길입니다.


보현산 천문대 

 

보현산 천문대 전시관

1.8m 광학망원경동

샘터 사거리에서 왼쪽 천문대·시루봉 코스도 여기에서 만납니다. 오른쪽 나무 계단을 오르면 이내 둥근 지붕을 한 보현산 천문대 앞입니다. 보현산 정상은 전시관 뒤 콘크리트 길을 올라갑니다. 하얀 건물인 1.8m 광학망원경동 맞은편에 보현산 정상석이 있습니다.

 


보현산을 불가의 산이라 합니다. 이는 관음보살과 함께 석가모니불을 협시하는 보현보살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각동에서 보면 보현산은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는 자애로운 어머니를 닮아 모자산으로도 부르고 있어 더욱 정감이 가는 산입니다.

 

보현산정상

정상에서 보는 경치는 영천쪽의 산세가 시원스러운데 건너편 기룡산과 운주산, 도덕산, 자옥산, 비학산, 내연산, 팔공산, 기상관측소가 있는 민봉산, 베틀봉 곰바위 등 대구, 포항의 산이 파노라마로 펼치며 하늘금을 긋습니다. 발아래는 처음 출발했던 절골마을이 까마득합니다.

 

 

 


보현산 시루봉을 가기 위해서는 되돌아와 전시관에서 직진합니다. 헬기장을 지나면 활공장인 시루봉이 막힘없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오른쪽은 보현지맥 또는 부약산, 법룡사 방향이며 원점회귀인 절골방향은 왼쪽 정자 쉼터 방향입니다.

 

 보현산 시루봉 정상

 보현산 활공장

 보현산 정자


정자 앞 갈림길에서 왼쪽은 천수누림길이며 정각리 절골(2.8km)은 직진합니다. 능선을 따라 넓은 길이 조성되었고 영천소방서에서 세운 현위치번호·긴급표지판이 하산 길을 안내합니다. 노랑제비꽃이 꽃밭을 이루는 산길을 따라 1.0km가량 내려가면 덱 전망대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절골마을(1.7km)은 반드시 왼쪽입니다.

 

 

 

전망덱 갈림길 

전망데크

오른쪽은 정각동 삼거리 방향으로 하산하니 참고하세요. 전망 덱에서 다시 한 번 주위 경관을 둘러보고 절골로 내려갑니다. 처음부터 미끄러지듯 급하게 떨어져 조심해야합니다. 다시 만나는 갈림길에서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 급경사 산 사면을 내려갑니다.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구간으로 정각사에 거의 다다라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기룡산

 

 

 

 할미꽃


길섶의 무덤가에는 할미꽃이 신세 한탄인 양 마지막 넋두리를 하며 바람에 몸을 맞기고 이리저리 춤을 주었습니다. 보현산 정상의 천문대 지붕은 햇빛에 더욱 반짝였고. 정각사 절집과 금정사 갈림길, 정각사 삼층석탑을 차례로 지나면 산행출발지였던 느티나무 보호수 앞입니다

 

정각사 

 

 

 

 

 절골 느티나무 보호수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보현산~보현산 시루봉 산행 대중 교통편.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종점인 노포역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서 오전 7시40분, 8시30분, 10시45분 등에 출발하는 영천행 시외버스를 타고 영천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립니다. 영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9시30분, 오후2시에 떠나는 정각·보현행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가다 정각삼거리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됩니다. 정각삼거리에서 산행출발지 절골까지 1.2km 거리 . 산행 후 귀가할 때는 다시 정각삼거리 정류장에서 오후 2시50분에 영천으로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꼭 타야합니다. 영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오후 3시35분, 4시10분, 4시40분, 6시20분, 7시50분(막차)에 있습니다. 교통이 불편하여 자가 운전이 편리하며 내비게이션 보현산 천문대입력


보현산 고도표

보현산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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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이번 부처님오신날 문경에 있는 희양산 봉암사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봉암사를 가기 위해 여러 번 벼루고 벼룬 절집여행인데 갔다 왔다는 행복감보다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쉬움이 많았던 여행이었습니다.




◆희양산 주변 가볼만한 여행지◆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포스팅을 보다가 아니 무슨 사찰을 찾아가는데 벼루로 가는 야고 저에 반문하겠지만, 이곳 희양산 봉암사는 여느 사찰처럼 가고 싶다고 해서 불쑥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년 중에 그것도 부처님오신날 딱 하루만 봉암사 산문을 개방하고 그 외에는 산문 폐쇄로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혹시나 못 보고 빠트리고 오지 않을까 싶어 미리 집에서 봉암사 여행을 위한 여러 문화재 자료를 찾아 준비를 꼼꼼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출발하면서 분명히 자료집을 챙겼는데 막상 봉암사 앞에서 문화재 자료집을 어찌했는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정진대사 원오탑비만 보고 승탑인 정진대사 원오탑은 찾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외 ‘함허당득동탑’, ‘환적당지경탑’ 등 조선시대 승탑도 빠트리고 오는 바람에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 봉암사 여행이었습니다. 첫술에 배불리 먹으려는 게 지나친 나의 욕심이었는지 아니면 내년에 다시 봉암사 여행을 계획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인지 모르지만 다시 한 번 봉암사 계획을 세워야겠습니다.



봉암사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이번에는 봉암사의 중흥기를 이끌었고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는 중창을 하여 오늘날 봉암사의 뿌리를 있게 했던 분이 정진대사입니다. 정진대사 원오탑비는 봉암사 일주문에서 계곡 건너편 묵밭 가운데 비각에 모셔져 있습니다.

 


승탑과 비문은 대부분 같이 세워져 있는데 정진대사 탑비와 비문은 서로 떨어져 있어 안내판이라도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아쉽지만 정진대사 원오탑비만 이번에 보겠습니다.

 

 


정진대사 원오탑비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스님으로 성은 왕 씨며 정진대사(878~956) 긍양의 공적을 각자하여 남긴 기록입니다. 정진대사탑비는 고려시대 965년인 광종 16년에 건립되었는데 높이가 273cm, 폭 161cm, 두께는 26cm로 당시 고려시대 초기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신은 청석이며 귀부와 이수는 일반적인 고려 초기의 탑비 방식을 따랐으며 귀부인 거북받침돌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인 머릿돌을 올렸으며 거북 등에 비를 꽂는 비좌가 큰 게 특징입니다. 이수의 끝에는 불꽃무늬에 둘린 연꽃봉우리 문양의 보주 장식이 정진대사탑비를 더욱 웅장하게 만듭니다.

 

 


 비문의 필체는 2cm 크기 구양순체 해서이며 당대의 문장가인 이몽유가 짓고 명필이었던 장단열이 쓴 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비는 정진대사 입적 9년 만에 세워졌으며 현재 비문은 대체로 양호하고 1행에 103글자를 새겨 53행으로 이루어진 규모가 꽤 큰 비신입니다.


 


정진대사는 공주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남혈원의 여해선사에게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양부선사를 스승으로 모시며 수학하였으며 900년인 효공왕 4년에 25년간 당나라에 유학하여 도연을 만났고 924년 신라 경애왕 원년인 7월에 귀국하여 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습니다.

 

 


 고려 태조, 혜종, 정종도 그의 높은 학식을 존경하여 선문에 들었으며 광종 또한 그를 존경하여 사나선원에 모셨습니다. 광종4년에 봉암사로 들어가 965년 8월에 향년79세로 입적하자 광종은 친히 ‘정진’의 법호와 ‘원오’라는 탑이름을 내렸습니다.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

★봉암사 정진대사탑비:보물제172호 

봉암사 정진대사탑비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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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서구여행)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부산 최고의 조망터에 자리한 부산 천마산 칠보사에서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만나다. 


부산시 서구 천마산에는 많은 절집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바다와 가깝고 뱃사람들의 무사 항해와 만선의 꿈을 위해서, 그리고 부산 서구는 근대에 아픈 사연이 가장 많은 동네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총알받이로 일본에 끌려갔던 분들이 광복과 함께 부산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다음은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자투리 땅이라도 비빌 언덕을 찾았습니다.





◆부산 서구 칠보사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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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0 - (부산여행/서구여행)동아대학교박물관 부산 전차 구경. 우리나라에 한량 남아 있는 미국제 전차를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박물관에 전시중입니다.

2016/04/05 - (부산여행/서구여행)암남동 천마마을. 재개발로 곧 사라지는 아름다운 달동네 천마마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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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비탈에 산을 깎아내었고, 일본인 공동묘지를 뭉개었고 눈만 붙이며 살 움막을 짓고 정말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했습니다. 누군가 붙잡고 하소연도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천마산에는 수없이 많은 사찰이 자리했나 봅니다.



가슴에 피멍이 든 귀환동포와 피난민의 가슴에 남은 아픈 상처는 가까운 사찰에서 풀었습니다. 답답한 현실과 지친 삶을 이들은 부모님의 그 부모님이 믿어왔던 부처님을 믿으며 어려움을 견뎠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한 번씩 집 뒤 천마산을 올라갑니다. 그러면 꼭꼭 여러 곳의 사찰을 거치게 되는데 하나같이 명산대찰도 부럽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만큼 시원한 조망과 함께 남북항의 모습을 동시에 보며 서구 천마산에서만 만나는 조망입니다. 서구의 전망 좋은 절집 중에서도 서구 남부민동 산복도로의 천마산로에 앉은 칠보사는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하는 시원한 조망터에 자리 잡아 아둔한 제가 봐도 부산 최고의 명당 같았습니다.

 


최근에 이곳을 지나면서 보지 못했던 문화재 안내판을 만났습니다. 이때까지 무의식으로 다니면서 못 보고 지나쳤는지 모르지만,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는 저로서는 내 고장의 문화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스마트폰으로 칠보사 외관을 몇 장 담았습니다. 그리고 경내로 갈까 하다가 다음에 가지하고 그냥 지나쳤다가 2주일 뒤 다시 칠보사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분홍색 연등이 달린 칠보사는 더욱 화려하며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영도다리와 부산항대교 남항대교를 연등과 함께 사진을 담았습니다. 칠보사는 이름에서 보듯이 일곱 가지 보물이 있는 사찰입니다. 그중 첫 번째가 조망이라 생각할 만큼 압권입니다. 그럼 칠보사 경내를 둘러보기 위해 먼저 긴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작은 출입문이 있고 대웅전이 앞에 떡 버티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관음보살상이 아직은 은빛 모습으로 반짝입니다. 부산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126호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된 대웅전을 향합니다.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출토된 복장유물인 ‘제불복장범서’에 인경시기가 1730년 10월이라 밝혀 그때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1730년경 창녕 포고당 목조여래좌상과 1927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의 목조삼세불좌상과 그 조각기법 등이 흡사하여 정확하지 않지만, 하천이 조성했던 작품이 아닐까 하며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앞으로 약간 구부린 자세이며 넓은 어깨와 무릎이 높고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습니다. 오른손은 무릎에 올리고 왼손은 어깨높이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형식이며 삼존불을 모시는 왼쪽 협시보살상으로 추정됩니다.




머리에는 화려한 장식의 보관을 썼고 가운데는 화불, 그 좌우로 봉황문과 화염 보주 문을 장식하였습니다. 네모난 얼굴에 가늘게 뜬 눈, 큼지막한 코, 도드라진 인중, 얇고 긴 입술 등을 나타내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단정한 인상을 줍니다.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전체적인 얼굴윤곽, 목 밑의 삼도, 오른쪽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가린 옷, 다리 앞의 옷 주름과 편삼 처리, 어깨 뒤로 넘어간 옷자락의 표현, 엄지중지 둘째 마디를 맞댄 수인 형식이 당시 하천이 조성한 불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문화재 안내판의 해설입니다.




부산시 서구에서는 오래된 불상 문화재는 제가 알기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리 집과 가까운곳에서도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재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개금 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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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산청여행)단성면 엄혜산~겁외사 둘레길. 부처님오신날 걷기좋은 엄혜산~겁외사 둘레길에서 성철스님을 생각하다. 산청 엄혜산~겁외사 둘레길

 

강과 강이 서로 만나 한 몸을 이루는 곳이 우리나라에는 여럿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경상북도에 있는 삼강나루입니다. 내성천과 낙동강이 서로 만나는 이곳은 우리 민족의 많은 애환을 주렁주렁 달고 최근까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럼 필자가 사는 부산과 가까운 곳에는 어떤 곳이 있을까 찾아보았습니다.

 

 

 

 

 

 

◆산청 겁외사 엄혜산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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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6 - (경남여행/산청여행)산청 적벽산~백마산~월명산 산행. 낮지만 천혜요새를 이룬산 산청 적벽산~백마산~월명산

2013/03/02 -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국립공원)지리산 천왕봉 전망대인 황금능선 구곡산 산행을 즐기다.

2013/03/14 - (경남여행/산청여행)산림처사 남명조식선생이 강학한 시천면 덕천서원

2013/06/03 - (경남여행/산청여행)천왕봉을 닮고자 한 남명조식선생 올곧은 선비의 기개를 보다. 산천재와 남명매

2013/06/13 - (경남여행/산청여행)남명선생 사적지 남명기념관. 시천면 덕산에서 그의 선비정신을 옅보다.

 

 

겁외사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 삼랑진이 있습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나루와 매봉산, 그리고 무척산 등 수려한 경치를 자랑합니다. 또한,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창녕 남지의 창날 나루는 어떠하고요. 건넛마을의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편안한 산길을 마다하고 마분산 천길 단애를 뚫고 매일 젖을 먹여 다닌 길이 지금은 동네 사람들의 통행로가 되었고 급기야 개가 길을 뚫었다 하여 ‘개비리길’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엄마와 자식 간의 모정 못지않게 젖먹이 강아지에 대한 어미 개의 모정 또한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산청의 원지와 마주한 단성면 엄혜산 산행과 겁외산을 연결한 겁외사 둘레길을 걷고 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양천강과 경호강이 서로 만나 남강을 이루며 진양호에서 먼저 숨을 잠깐 돌렸다가 큰 강줄기를 이룬 남강은 굽이굽이 흘러 낙동강에서 몸을 섞어 한몸이 됩니다.

 

 

엄혜산 아래인 단성면 묵곡리에는 근대 선종의 선승인 성철대종사의 생가인 겁외사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4월에 출생하여 1936년 합천 해인사의 하동산 스님을 스승으로 사미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1955년부터 팔공산 파계사의 산 내 암자인 성전암에서 철조망을 치고 10년 동안 암자 밖을 나오지 않고 동구불출 하며 장좌불와의 수행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성철스님은 1981년 종정 수락 법어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또한번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1993년 11월 어느 늦가을날 스님은 출가했던 해인사에서 “참선 잘하라”는 말씀만 남기고 입적하셨습니다. 겁외사는 2001년 3월에 성철스님의 혈육인 불필 스님의 원력으로 창건과 생가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항상 겁외사를 가야지하며 세월만 보내다가 이번 부처님오신날을 기회로 엄혜산 산행을 겸해서 찾았습니다.

 

 

일주문은 따로 없으며 벽해루 누각이 일주문을 대신합니다. 겁외사와 복원한 생가인 ‘율은고거’를 둘러보고 산문인 벽해루로 다시 나와 엄혜산과 겁외사 둘레길을 시작합니다.

 

 

 

엄혜산 산행 경로를 보면 겁외사 주차장~묵곡 생태 숲 맞은편 마을 주차장 통영~대전 고속도로 굴다리 통과~수로 옆 엄혜산 이정표~큰재골 나무다리~원지·엄혜산 이정표 갈림길~원지·도내고개 갈림길~252m봉~해룡사 입구 도로~토현교 갈림길~인도교갈림길~엄혜산정상·법륜암갈림길 이정표 갈림길~잠수교 갈림길~법륜암~원지·엄혜산 이정표 갈림길~수로 옆 이정표 갈림길~겁외사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원점산행이며 산행 거리는 약 9.6km에 산행시간은 3시간 30분~4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겁외사 벽해루 앞에서 왼쪽 겁외사 담장을 끼고 난 도로를 300m쯤 따라갑니다. 남강 수변에 묵곡 생태 숲이 있으며 맞은편 마을 주차장에는 엄혜산 등산로 안내판이 있습니다.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제일 안쪽 연두색 철망 울타리 집 오른쪽 골목길이 엄혜산 가는 길입니다.

 

 

200m가량 콘크리트길을 가면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고 독립가옥입니다. 독립가옥 앞에 물이 흐르는 콘크리트 관로가 놓여 있고 그 아래 엄혜산 등산길 이정표가 있습니다. 엄혜산 정상(1.89km)가는 산길은 왼쪽입니다. 곧 큰재골을 건너는 나무다리를 건너고 조릿대를 통과하면 무덤입니다.

 

 

 

이곳에서 구릉지 같은 능선을 따라갑니다. 크지 않은 소나무가 예쁘며 왼쪽 남강 건너 호랑이가 살았다는 석대산과 지리산의 동쪽 끝 웅석봉이 큰 덩치로 눈길을 확 사로잡습니다. 200m대의 높이도 그렇고 절대로 빠르게 걸을 이유가 없습니다.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의 솔향을 맡고 느끼며 쉬엄쉬엄 걸어갑니다.

 

 

 큰재골

 

 

 엄혜산 등산로 입구에서 약 1.2km 가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나중에 엄혜산을 한 바퀴 돌고나면 이곳에서 하산하는 길입니다. 눈여겨보고 직진하여 엄혜산 정상을 향합니다. 다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입니다. 왼쪽은 원지(1.39km) 방향이며 산행 막바지 법륜암에서 이쪽으로 올라옵니다. 참고하세요.

 

 

엄혜산 정상(0.69km)은 오른쪽 산길입니다. 205m 봉을 돌아 곧 능선길을 탑니다. 500m가량이면 평상이 놓인 삼거리봉이 나오며 정상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왼쪽은 원지(0.81km) 방향 하산길, 이곳에서 직진하는 도내고개(2.03km) 방향이 정상가는 길입니다. 엄혜산 정상은 200m쯤 더 가면 아담한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습니다.

 

 

 

엄혜산 정상까지는 원지에서 많은 주민이 운동 삼아 올라오는 듯 길이 뚜렷하고 잘 나 있지만, 정상부터 도내고개 산길은 조금은 주의해서 걸어야 별 무리 없이 고개로 하산할 수 있습니다. 정상을 출발하자마자 숲에 가려 길이 잘 보이지 않아서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가기가 쉽습니다. 이곳에서 반드시 왼쪽 길입니다.

 

 

 

 

 여기만 잘 지나면 한동안 능선을 따라 난 뚜렷한 발자국을 따라갑니다. 252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조금씩 능선은 높이를 낮춥니다. 곧 직진 길이 뚜렷하지만, 반드시 오른쪽 길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곳만 잘 통과했다면 산길은 임도에 내려서고 왼쪽 방향 하산, 곧 앞이 열리면서 통나무집인 선원을 지나 도로에 내려섭니다. 지금이야 새로운 3번 국도가 시원하게 뚫렸지만 원지를 잇는 옛 3번 국도입니다.

 

 

 

 

오른쪽 큰 도로가 도내고개. 겁외사 둘레길은 왼쪽 해룡사 안내판을 보고 쌍천강 옆으로 난 옛 도로를 갑니다. 정말 운치 있는 길입니다. 도로 좌우로 대나무가 쭉쭉 뻗어 조금이라도 바람이 불면 사각사각 댓잎 소리를 내는 엄청난 대나무 숲에 놀랐습니다.

 

 

 

 

한참을 걸어야 대나무 숲길을 벗어나고 오른쪽에 양천강이 역류하는 듯 흐릅니다. 그래도 높은 건물인 아파트도 보이고 꽤 규모 있는 신안면소재지의 모습입니다. 30분이면 원지를 연결하던 옛 3번국도 토현교 갈림길입니다. 이곳에서 강을 따라 엄혜산(1.3km)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콘크리트 강변길을 가면 아름다운 모습을 한 인도교가 눈길을 끕니다. 이곳에서 산행을 끝내고 싶다면 인도교를 건너 원지 시외버스정류장으로 바로 가도 됩니다. 겁외사 방향은 계속 직진합니다. 엄혜산 정상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법륜암(0.65km) 이정표를 보고 강변길을 걷습니다. 양천강과 경호강이 서로 합류하여 하나의 큰 줄기인 남강이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바위 절벽에 놓인 덱 길을 걸어면 곧 잠수교 앞 갈림길입니다. 필자가 찾은 이 날은 전날 많은 비가 내려 잠수교가 물에 잠겨 건널 수 없었습니다. 겁외사는 엄혜산 정상(1.13km)방향 이정표를 보고 직지합니다. 300여m 긴터널을 이루는 대숲과 빼어난 경치는 힘든 산행을 상쇄하고 남으며 법륜암에서 계곡을 건너 가파른 능선을 탑니다.

 

 

 

 

 

 

원지에서 묵곡마을로 향하는 옛길로 이곳의 드러난 전망대는 벼랑과 단애, 양천강과 경호강의 합류, 웅장한 대지리산 등 엄혜산은 산 높이에 비해 아주 높은 큰 산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주이씨 무덤을 지나고 20분이면 엄혜산 산행에서 처음 만났던 원지·엄혜산 정상 이정표 갈림길입니다. 이곳에서 오른쪽 겁외사(1.76km) 방향, 다시 만나는 ‘Y’자 갈림길에서 왼쪽 편안한 길로 하산하면 산길은 합천이씨묘를 지나고 일사천리로 겁외사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산청 겁외사로 가기위해서는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함양행 시외버스를 탑니다. 버스는 오전 5시40분부터 30~5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진주터미널을 지나 원지에서 내립니다. 다시 원지정류장에서 원지~묵곡행 군내버스를 바꿔 타고 겁외사 앞 검내골 정류장에서 내리면 산행 출발지입니다. 원지에서 묵곡행 버스는 오전 8시5분과 11시30분에 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겁외사 앞에서 원지로 나가는 버스는 오후 3시10분에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내비게이션 겁외사 입력

 

 

 

 

 

 

 

 

 

 

 

 

 

 

 

 

 

엄혜산 고도표

엄혜산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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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백양산 선암사. 천년고찰 백양산 선암사 여행.


부산시 진구 부암동에는 천년고찰 백양산 선암사가 있습니다. 675년 신라 문무왕 15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견강사로 불렸는데 선암사 뒤 바위벼랑에서 신라의 국선 화랑도가 수련 장소로 이용하면서 선암사로 고쳐 불렀다 합니다.






◆백양산 선암사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와 맛집 ◆

2015/05/11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부산시민공원 송상현광장 부산 연등축제. 부처님 오신 날 광명으로 온세상을 비추는 부산 연등축제를 보다.

2015/05/26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천태종 삼광사. 단일 사찰 최대의 연등 축제 부산 천태종 삼광사 연등 축제.

2015/05/27 - (부산맛집/부산진구맛집)삼광사 맛집 시골보리밥. 3,000원에 먹는 맛있는 보리밥 삼광사 앞 시골보리밥.시골보리밥

2015/11/09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돌산공원과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우리의 삶이 벽화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여행.

2016/05/10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부산 정중앙 표지석. 부산의 정중앙인 부산의 배꼽이 궁금하다면... 금계포란형의 명당인 부산 정중앙 표지석을 만나다.




백양산 선암사는 지금 한창 초록색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의 화려한 연등이 울긋불긋 하늘에 걸렸고 5월의 선암사는 초록과 붉디붉은 물이 뚝뚝 떨어져 아슴아슴한 모습입니다.



선암사는 긴 계단에 올라서면 경내를 알리는 무채색의 작은 문이 있습니다. 이문을 들어서면 대웅전이 마주하고 왼쪽으로 관음전 명부전이 오른쪽에는 요사채가 있습니다. 관음전 뒤 좁은 계단을 오르면 극락전, 칠성각, 산신각이 자리하고 또다시 선암사에서 가장 높고 안쪽 계단 끝에 조사전이 있습니다.



제비 둥지 같은 좁은 터를 적절하게 비집고 들어선 선암사의 모습은 화려하지 않은 수더분한 어머님의 모습이 듯 짜임새를 갖추었습니다. 선암사의 입구는 당감동입니다. 오래전부터 백양 산신을 모시는 신성한 곳으로 인식하였고 또한 물맛 좋은 감로수가 사시사철 흘러내려 선암사를 오르는 기도객은 끝이 없었습니다.




선암사의 감로수는 지금까지도 유명하여 백양산을 오르는 시민의 목을 축여주는 생명수 역할을 합니다. 선암사의 중심건물은 당연히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법당입니다.








여기는 용왕단인데요 아주 험상궂은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 그냥 바다나 물을 지키는 단순한 용신의 뜻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사찰에서 용왕 또는 용신을 모신 사당은 사람이 불법을 믿지 않는 세상이 오면 용왕이 세상의 모든 불경을 용궁에 모아다가 그것을 지킨다고 합니다.

 





극락전은 서방 극락세계에 살면서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을 말하며 무량수전으로도 부릅니다. 아미타불은 석가여래의 덕을 칭송하고 보살이 닦는 온갖 행을 닦아 중생 제도의 원을 세워 아미타불이 되었습니다.



선암사기에는 고려말에 왜구가 선암사의 불상을 훔쳐가 절을 세우고 불공을 드렸지만,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자 왜구는 그 불상을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있는 성흥사로 보냈고 다시 선암사로 돌아와 지금 극락전에 모시고 있다 합니다.



칠성각은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에, 상단 좌우에는 칠 여래를, 하단좌우에는 칠원성군을 배치하였습니다. 칠성은 자손에게 만덕을 주고 , 사람에게 장애와 재난을 없애주고, 업장을 소멸해주고, 구하는 모든 것을 얻게하고, 100 가지 장애를 없애주고, 보덕을 두루 갖추게 하며, 무병장수 하게하는 칠성신도 도교에서 유래하여 불교에 흡수되었습니다. 산신, 독성, 칠성신을 모시고 삼성전 또는 삼성각이라합니다. 그러나 선암사에서는 칠성신만을 모신전각입니다.




칠성각 앞에는 삼층석탑의 옥개석만 남은 석탑이 남아 있습니다.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3호로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을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단석과 탑신부 상륜부등은 모두 소실되었지만 남아 있는 석탑부재만으로도 선암사의 사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산신각입니다. 산신을 모신 전각으로 도교에서 유래하였으며 우리나라 불교와 접목한 토착신앙의 형태입니다.





조사전은 선암사의 가장 깊고 높은 곳에 모셔져 있는데 선종사찰에서 그 종파를 연 조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선암사 조사전은 원효, 의상, 윤필거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왼쪽의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인데 ‘원융통’을 갖추고 중생의 고뇌를 업장 소멸해 주는 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사찰에는 원통전이라 하지만 선암사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인 대웅전이 주불이라 원통전이 아닌 관음전이라 합니다.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는 명부전은 지장전으로도 부르는데 ‘지옥계의 심판관’으로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정하는 10위의 왕입니다. 진광왕, 초강왕, 송제왕, 오관왕, 염라왕, 변성왕, 태산왕, 평등왕, 도시왕, 오도전륜왕이 있으며 좌우에 오도존자와 무독귀왕이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지옥에는 염라대왕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죄짓지 맙시다. 







지금까지 백양산 선암사의 전각를 알아보았습니다. 조선시대로 들어서는 1483년 성종 14년에 각초선사, 1568년 선조1년에 신언스님, 1718년 숙종 대에는 선오스님님이 여러 번 중창 중수하였고 근세에 들어와 혜월선사와 석암스님이 주석하면서 오늘날의 선암사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른 봄이면 선암사를 두른 80여그루의 붉은 동백꽃이 장관입니다.  

 


부산 백양산 선암사 주소: 부산시 부산진구 부암3동 628.

부산 백양산 선암사 전화:051-803-7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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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산청여행)산청군 단성면 겁외사,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산은 산이요 물은물이로다" 성철스님 생가 율은고거와 겁외사 여행.


곧 부처님오신날이라 산청군 단성면 성철스님 생가가 있는 겁외사에 다녀왔습니다. 겁외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성철스님은 어떤 분인지 조금은 알아야 했습니다. 성철스님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4월 6일 현재 묵곡리 겁외사 생가에서 출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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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서의 이름은 이영주이고 법명은 성철, 법호는 퇴옹이며 스님은 1936년 해인사의 하동산 스님에게 사미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1939년 도를 깨치고 1955년 가을에 성철스님은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에서 철조망을 둘러치고 1964년까지 두문불출하며 외부인의 출입도 막고 ‘장좌불와“의 뼈를 깎는 수행으로 10년간 동구불출 하였습니다.


 

이는 불교 지식에 문외한이던 저도 훗날 성철스님의 10년 동구불출과 장좌불와의 수행을 듣고 큰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사람이라면 도저히 흉내도 못 낼 수행법입니다. 그리고 1981년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대 종정에 취임하면서 종정수락법어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산시산수시산·山是山水是水)”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법어입니다. 친구와의 대화나 어떤 자리에서나 회자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간단명료한 말과 글이지만 이 속에는 깊은 철학이 숨어 있어 세속의 한 사람은 그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겁외사 벽해루

 1993년 11월 4일 오전 7시 30분 가야산 해인사 퇴설당에서 “참선 잘하라‘는 말씀과 함께 세수 82세에 법랍 58세로 입적하셨습니다. 겁외사를 방문하고 생가를 둘러보면서 필자는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생가의 규모는 당시에 볏짚을 이은 초가집이 아닌 양반가의 꽤 규모 있는 기와집입니다.


 

함께한 일행에게 성철스님 생가의 규모가 이 정도인데 왜 출가하셨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면서 생가에 사실 많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출가하기 전 스님의 생가는 단성면에서 큰 부잣집으로 집 주위로 남의 땅을 밟지 않고 다닐 정도였다 합니다.


 

그리고 보면 석가모니도 인도 카필라바스타의 왕자님으로 출가했다 하니 세상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분들이 왜 출가를 하는지 저 같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하기야 그것을 깨우치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도사라는 소리를 듣겠지요.


 

겁외사는 2001년 3월에 창건했으며 그 뜻은 “상대유한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라합니다. 그리고 성철스님이 출가 전에 세속에서 맺은 인연인 딸 불필스님의 원력으로 겁외사는 세워졌으며 가람배치는 일반 사찰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절집과 성철스님 생가가 함께 갖추어진 모습입니다.


 

 겁외사 대웅전

 

겁외사와 생가를 들어서는 출입구는 누각 형태인 벽해루입니다. 정면 마당 한가운데 성철스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은 왼쪽에 치우쳐져 있습니다. 법당 내부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과 성철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으며 대웅전의 벽화는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그려 부처님의 일대기를 벽화로 그린 일반사찰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대웅전의 주련은 성철스님의 오도송인 황하서류곤륜정(黃河西流崑崙頂)/일월무광대지침(日月無光大地沈)/거연일소회수립(遽然一笑回首立)/청산의구백운중(靑山依舊白雲中)을 달았습니다. 그 뜻을 보면 ”황하수 역류하여 곤륜산에 치솟으니/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 도다/문득 한번 웃고 고개 돌려서니/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있네


 

혜근문

 대웅전과 마주하며 겁외사의 부속건물인 심검당, 정오당, 공양간인 요사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성철스님의 생가를 복원하고 스님의 선친 호를 따서 ’율은고거‘라 했습니다. 성철스님 동상 뒤편 솟을대문이 생가 출입구인 혜근문입니다.


 

 포영당

정면에 안채가 자리하고 왼쪽에는 포영당이며 오른쪽의 율은재는 성철스님의 부친께서 거처한 사랑채입니다. 그러나 지금 복원된 율은고거는 성철스님의 유품 전시공간으로 이용하고 입구를 모두 통유리로 막고 있습니다.


 

 율은재

 율은고거 안채

 

 

이곳의 전시품은 책과 도첩, 스님의 상징이 된 누더기 두루마기, 고무신, 주장자, 스님의 필기구와 안경, 승려신분증 등 스님께서 가까이 두고 사용하셨던 유품을 전시중입니다. 다른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서 겁외사와 성철스님 생가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았으며 또한 벽해루를 마주한 성철스님기념관도 찾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큰 것 같아 조만간 다시 한 번 산청 성철스님 생가와 겁외사 여행을 계획해야겠습니다.


 

 

 

 

 

 

 

 

 

 

 

성철스님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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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모고헌, 독특한 누각이 돋보였던 MBC드라마 화정 촬영지 영천 보현산 아래 옛 태고와 누각 모고헌 여행


보현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은 계곡을 휘감아 보현산의 속살을 헤집으며 횡계천을 이룹니다. 이곳 횡계천에는 이름만큼 골이 깊어서 오래전부터 물 좋고 산수 좋은 곳이라 하여 많은 선비가 찾았습니다. 특히 영천 출신의 지수 정규양(1667~1732)과 그의 형인 훈수 정만양(1664~1730)형제는 부친이 숨지자 보현산의 횡계로 내려와 정자를 짓고 안빈낙도하며 세상과 담을 쌓고 학문에만 매진했습니다.





◆영천 모고헌(태고와)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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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형제는 이곳 횡계천에다 나란히 정자를 세웠는데 정규양은 태고와를 짓고 약200m 떨어진 옥간정의 형을 만나기 위해 빈번하게 왕래를 할 정도로 우애가 남달랐다 합니다. 이번 영천시 화북면 여행을 하면서 옥간정은 시간 관계로 보지 못했고 횡계서당과 그 부속건물인 정규양의 모고헌만 둘러보았습니다.

 

 

 

밖에서 보는 횡계서당은 무너졌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파란 방수천을 뒤집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입문은 꽉 닫혀 있었는데 왼쪽 담장 끝에서 내부로 들어가게끔 되어 있어 모고헌과 횡계서당을 볼 수 있었습니다. 횡계서당에 비계를 설치한 게 곧 수리하는 것으로 보였으며 모고헌인 태고와도 문짝이 떨어질 듯하였고 얼씬 서러워 폐가 같았습니다.


 

 

모고헌은 1701년 조선 숙종 27년 정규양의 나이 35세 때 대전동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태고와(太古窩) 정자를 건립했으며 1730년에 수리를 하고 그를 따르는 문인들이 모고헌이라 바꿔 불렀습니다. 모고헌은 횡계천의 암반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세웠는데 정자의 반은 암반을 걸치고 반은 계곡으로 건물을 밀어 넣고 기둥을 세워 단애에 고정된 중층의 누각입니다.



 크기는 앞면과 옆면이 각각 2칸인(일부 앞면은 3칸 표기)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건물의 앞면인 계곡 쪽에는 계자 난간을 달았고 그 외 3면은 판벽을 돌렸습니다. 모고헌은 앞쪽은 트이고 3면은 판벽으로 막은 구조는 횡계천에서 들어오는 물소리와 보현산의 바람소리 새소리를 항상 가두어 두려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되었습니다.


 

 

건물 좌우 판벽에는 쌍여닫이 문을 두었으며 뒷면에는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끔 했습니다. 또한 건물의 판벽 위로는 살창문을 달아 들어온 바람이 빠져나가는 환풍구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모고헌의 특징은 가운데에다 온돌방을 넣고 그 외 사면에는 우물 정(井)자 형태의 툇마루를 달아내었는데 툇마루에 앉아 횡계천을 보면 바람소리와 계곡의 물소리에 시구가 절로 나올 듯합니다.


 

정규양과 만양형제는 이곳에 앉아 횡계구곡의 3곡인 태고와를 주제로 한 시를 남겼는데

“삼곡심제가범선(三曲深堤可汎船)

와중태고시하년(窩中太古是何年)

진수일사수상면(進修一事須相勉)

다소영재아최련(多少英才我最憐)“으로 

‘영천문화관광해설사 카페’의 뜻풀이를 옮겨보면

“삼곡이라 깊은 제방 배를 띄울 만하고/움집 중에 태고와는 몇 년이 되었는가/진수재의 한 일은 모름지기 서로 힘씀이니/수많은 영재를 나는 가장 사랑하네”로 두 형제분이 이곳에서 후진양성을 하면서 키워낸 수많은 영재를 사랑한다며 진수재에서 한 일을 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앞쪽 툇마루 아래 아궁이

 

두 형제는 일평생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퇴계 이황의 학풍을 이어받은 남인 때문이었습니다. 숙종 때 남인과 노론의 정쟁은 최고조로 달했으며 1694년 남인은 소론이 폐비 민씨 복위를 꾀하는 것을 저지하려다 실패하자 도리어 남인이 몰락하면서 소론과 노론이 집권한 사건을 갑술옥사 또는 갑술환국이라 합니다. 갑술환국을 거치면서 당시 송시열이 이끄는 노론에 남인은 설 자리를 잃고 모두 낙향하여 은둔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했는데 이때 두형제도 당쟁에 환멸을 느꼈음을 짧은 식견으로도 짐작이 갑니다.


 

 

 

 

모고헌의 북쪽에는 횡계서당인 강당이 있습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3칸은 마루를 넣고 좌우 1칸은 온돌방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동재는 앞면 3칸, 옆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입니다. 1737년 훈수지수 두 형제를 배양하여 횡계서원을 세웠으나 당시 서원의 급격한 증설현상으로 나라에서 ‘서원남설’을 규제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교당에다 향사하였습니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이마저도 훼철되었고 1923년에 와서야 지역 유림과 후손에 횡계서당으로 다시 복향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지붕이 무너져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모고헌 옆에는 300년 된 향나무가 모고헌의 운치를 더하며 장관입니다. 이는 당시 정각사 스님이 향나무 두 그루를 주었는데 그중 한그루이며 남은 한그루는 대전동의 호수 종택에 심었다 합니다.


 

모고헌(태고와)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모고헌(태고와)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별빛로 106(횡계리 4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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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부산 정중앙 표지석. 부산의 정중앙인 부산의 배꼽이 궁금하다면... 금계포란형의 명당인 부산 정중앙 표지석을 만나다.


사람이 살다 보면 궁금한 게 참 많습니다. 여러 가지 호기심도 느끼면서 어려운 문제를 풀었다면 큰 성취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부산의 배꼽에 해당하는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먼저 한반도의 정중앙이 어디인지 대다수 국민은 궁금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부산 정중앙 표지석 주위 부산진구 가볼만한 여행지와 맛집


☞2015/05/11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부산시민공원 송상현광장 부산 연등축제. 부처님 오신 날 광명으로 온세상을 비추는 부산 연등축제를 보다.


2015/05/26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천태종 삼광사. 단일 사찰 최대의 연등 축제 부산 천태종 삼광사 연등 축제.


2015/05/27 - (부산맛집/부산진구맛집)삼광사 맛집 시골보리밥. 3,000원에 먹는 맛있는 보리밥 삼광사 앞 시골보리밥.시골보리밥


2015/11/09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돌산공원과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우리의 삶이 벽화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여행.


2016/02/27 - (부산여행/황령산·금련산산행)황령산~금련산 산행. 부산의 중심에 자리잡은 황령산~금련산을 부산국제금융센터·부산은행역에서 출발하는 코스.


2016/02/29 - (부산여행/황령산봉수대/황령산 쉼터·카페)황령산봉수대, 황령산 쉼터·카페. 부산을 한눈에 보기 딱 좋은 곳은 황령산봉수대와 황령산 쉼터·카페 입니다.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한반도의 중심은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에 있습니다. 한반도의 배꼽인 정중앙에는 통일신라시대 7층 석탑이 있으며 이탑을 일명 국토의 정중앙이란 뜻인 ‘중앙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사는 부산의 정중앙이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부산의 배꼽인 정중앙에 표지석이 있다는 것도 최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의 배꼽을 확인하기 위해 부산진구 부암동 백양산 인근에 확인 차 갔습니다.

 

부산의 정중앙 입구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정중앙에는 ‘정중앙 표지석’이 있습니다. 처음 부산의 정중앙은 어디일까 하며 아주 궁금하게 생각했던 곳은 역시나 서울방송국 SBS ‘호기심 천국’ 담당자였습니다.


 

 

2001년 부산대 도시문제연구소에 부산의 정중앙을 찾아달라고 의뢰하였고 연구소에서는 부산시 부산진구 백양순환로95번길 47-10호임을 밝혀내었습니다. 북위 35도 10분 4초, 동경 129도 2분 17초에 2012년 8월 1일 부암3동에서 부산의 정중앙을 알리는 표지석을 설치하여 이곳이 부산의 정중앙임을 알렸습니다.


 

현재 부산 지형 전체를 놓고 보면 닭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인 금계포란형의 모습이며 부산의 정중앙은 닭이 알을 낳는 자리라는 풍수가의 설명입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에는 첫새벽을 알리는 계명봉이 있습니다.


 

그 계명봉 아래에는 암·수한쌍인 닭의 형상을 한 바위를 옛날부터 ‘자웅석계’ 라 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은 한반도의 기를 꺾는다며 암탉을 무참히 파괴하였고 지금은 수탉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부산은 금계포란형의 명당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설에는 대마도는 지네 형이라 닭과는 상극인데 금정산 계명봉 때문에 대마도는 한국에 힘을 못 쓴다고 합니다. 그게 다 부산의 풍수가 금계포란형의 명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표지석을 둥근 형태로 조성한 게 닭의 알을 뜻하고 정중앙 표지석을 만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소원을 빌면 각 가정에 건강과 행복 그리고 만사형통은 물론이며 재물 운까지 따라온다 합니다.

 

 


 부산의 정중앙을 찾아 표지석을 한 번씩 안아보세요. 하하 저는 정중앙 표지석을 만지지 않고 그냥 사진만 찍고 왔네요. 다음에 꼭 다시 방문하여 정성을 다하여 만져봐야겠습니다. 혹시 또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일이 술술 풀릴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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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자천교회. 115년 역사를 가진 한국 기독교 사적 제2호인 영천시 화북면 자천교회 여행. 자천교회

 




◆영천 자천교회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


2016/05/06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보현산의 상징인 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여행. 정각리 삼층석탑


2008/11/17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거동사. 단풍이 황홀한 영천의 거동사입니다.



 

익산의 두동교회를 여행하기 전에는 우리나라 개신교인 기독교 문화재는 사실 거의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두동교회를 보고 난 뒤 100년 넘은 교회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았고 남녀 유별한 당시의 유교적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 신도를 분리하여 예배를 봤다는 공간을 실제로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상북도 영천에도 100년 넘은 개신교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꼭 찾고 싶었는데 우연히 영천시 화북면을 찾게 되면서 자천교회를 가장 먼저 방문했습니다.


 

자천교회는 1903년에 처음 지어졌는데 이곳에 자천교회가 생기게 된 유래를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경북을 위시한 영천 지방의 초기 개신교는 대부분 선교사가 지역민에게 일일이 전도하여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대구도 아니고 아주 소규모인 시골 마을인 이곳에 왜 100년이 훨씬 넘은 교회가 들어서게 된 것인지 궁금하였습니다.


 

 

자천교회의 설립자인 권 헌중(1865~1925) 장로는 경주에서 서당 훈장님을 하면서 의병활동에 관여하다 쫓기게 되었습니다. 일본인의 눈을 피해 청송에 숨어 지냈고 다시 거처를 대구로 옮기기 위해 청송과 영천의 경계인 고갯마루 노귀재를 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청송지역에 선교 활동을 떠나던 미국 북장로 출신의 아담스 선교사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스의 전도로 권헌중은 대구행을 그만두고 노귀재 아래 동네인 화북면의 자천리에다 교회를 짓고 정착한 게 오늘날의 100년 전통 자천교회입니다. 당시에는 서양종교라며 개신교를 ‘야소교’라 불렀고 특히 유교적 색채가 강했던 경북에서는 더욱 개신교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저 어릴 때까지도 부모님은 개신교를 ‘야소교’라 불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권헌중은 서당을 겸한 교회를 세웠고 각고의 노력에 신도가 점차 늘어나면서 작은 교회의 규모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904년에 현재의 모습인 16칸 규모 예배당을 신축하였습니다. 건물의 형태는 우진각 지붕을 한 단층 목조 한옥 건축 양식을 따랐는데 내부 공간은 그리스도교 양식인 바실라카식 교회 양식을 일부 반영하여 한옥과 서양 건축을 절충한 구조입니다.


 

 

우진각지붕의 장점은 예배당 안의 넓은 공간 활용은 물론이고 바깥의 지붕 또한, 넓고 평평한 구조입니다. 그만큼 공간을 확보하는데 좋은 구조라 한옥에 많이 이용합니다. 넓은 지붕 덕택에 일어난 실화입니다. 6.25가 일어나자 이곳에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미군 비행기의 공중 폭격으로 자천리의 많은 건물이 붕괴하고 마을은 잿더미가 되었는데 자천교회만은 말짱하게 살아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넓은 지붕 위에다 횟가루로 ‘교회(CHURCH)' 건물이라고 영어로 표시했고 이를 알아본 비행기 조종사는 교회 건물을 피해 폭격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천교회는 장방형으로 앞면 2칸, 옆면 4칸의 구조이며 실내 구조는 2칸 통간인 강단과 4칸 통 칸인 예배실로 꾸며졌습니다. 특이한 것은 예배실 뒤로 2칸의 온돌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중앙의 네 기둥은 우진각지붕을 떠 바치는 역할도 하지만 자천교회는 당시 우리 풍습인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적 관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네 기둥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얼굴을 대하지 않도록 분리하는 칸막이를 지르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부뿐만 아니고 건립 초창기에는 남녀가 예배당 출입을 따로 하게끔 문도 분리하여 있었습니다. 그러다 1948년에 건물 뒤편에 남녀 함께 사용하는 하나의 출입문을 새로 만들면서 남녀를 구분했던 두 문은 폐쇄했습니다. 지금 현재 낮은 굴뚝 쪽에 두 개의 방문이 옛날 남녀 구분했던 출입문의 흔적 같으며 2005년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천교회와 함께한 신성학당 건물도 사연이 있습니다. 100년이 넘은 고가는 처음 자천교회 설립자인 권헌중 장로 소유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가세가 기울면서 빛을 대신하여 집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다 2007년 집주인은 다시 교회에 기증하였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한몫하였습니다. 미군의 비행기 폭격 때 자천교회 덕분에 자천리에서 이 가옥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다며 집주인은 숨을 거두면서 교회에 기증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합니다.


 

 

아쉬운 점은 평일 방문이라 그랬는지 자천교회는 문이 꼭꼭 닫혀 있었고 예배실 내부와 남녀를 구분하여 예배를 보았다는 그 공간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내내 남습니다. 자천교회는 일(一)자형 건물로서도, 1900년 초 한옥교회당으로서도 영천 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교회건물입니다. 경북문화재자료 제452호.


영천 자천교회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773(자천8길)

영천 자천교회 전화:054-337-2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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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보현산의 상징인 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여행. 


영천시 화북면 보현산은 석가여래 불을 오른편에서 협시하는 보살로 불교의 이치와 수행과 실천을 관장하는 보살인 보현보살에서 그 이름이 유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영천에서는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보현산과 팔공산을 불교의 성지로 여기고 많이 찾고 있습니다.





◆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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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현산 아랫마을을 형성한 정각동(正覺洞)은 불교용어에서 나왔는데 “바른 깨달음”이란 뜻입니다. 부처님의 성지라 할 이곳 정각리는 보현산 정상에서 두 가닥 흘러내린 깊은 골짜기 중 왼쪽 골짜기로 절골이라 합니다. 절골이란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절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보현보살의 화신이라는 보현산에 사찰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이곳 절골 중간쯤인 왼쪽 언덕바지에 신라 말 때쯤에 절이 있었다는 흔적인 정각동 삼층석탑이 하늘을 받치는 기둥인 양 위풍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삼층석탑에는 석탑을 옮겨왔다는 노승의 전설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정각사로 추정되는 절은 화재로 타버렸고 그것을 아쉬워한 어느 노승이 영천의 자양면 보현리 탑전마을의 석탑을 칡덩굴에 묶어 메고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전설입니다.


 

원래 이곳에 있었던 석탑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구전이지만 보현보살의 성지인 이곳에 정각리 삼층석탑은 신의 한 수인 화룡점정이며 보현산과 불교와의 관계를 정각리 삼층석탑 하나만으로도 그 뜻을 충분히 대변하고도 남습니다.


 

 

그만큼 보현산에서는 정각리 삼층석탑의 위상은 대단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정각리 삼층석탑은 사유지로 주위에 과수원이 들어서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천 화북면 정각리 삼층석탑의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탑의 형태 등을 보면 고려 시대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탑 전체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고 3층의 지붕돌은 땅바닥에 나뒹굴던 것을 1981년 해체 복원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석탑의 높이는 3.8m에 지붕돌을 받치는 상륜부인 노반 이상은 사라지고 없고 기단과 탑신부만 남아 있습니다.


 

 특히 지대석과 면석갑석은 한 돌로 조각하였으며 면석 모서리의 기둥 사이에 버팀 기둥인 탱주를 두 개씩 조각하였으며 양 기둥 사이의 면은 총 12면입니다. 각 면마다 안상(구름무늬)이 새김 되었고 중대석의 면석 받침은 다른 석탑하고 달리 몰딩이 아닌 복련인 연화문을 돌려 새겼습니다.


 

 


 상층 기단과 지붕돌을 보면 상층기단은 면석과 갑석으로 4매의 석재를 구성하였고 면석마다 모서리에 기둥(우주)을 조각했습니다. 2매의 석재로 결구한 상대갑석의 아랫면은 1단의 부연과 윗면에 2단의 탑신 받침을, 1, 2, 3층 탑신 모서리마다 기둥인 우주를 각각 조각하였습니다.


 


 1, 2층의 지붕돌은 아랫면에 4단의 층을 두었고 윗면은 1단의 받침인데 3층만은 아랫면에 3단 층을 두었습니다. 추녀 끝에 풍탁 장식을 다는 풍령공은 뚫려 있지 않습니다. 영천 화북면 정각리 삼층석탑은 1992년 7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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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사마소. 출입문을 닫아 까치발로 목을 쭉빼고 눈도장만 찍었던 젊은 선비들의 강학소 경주 사마소 여행. 


경주 최씨고가 앞에는 경주 사마소(司馬所) 건물이 이건 되어 있습니다. 사마소 많이 들어봤던 이야기로 ‘사마소 유생들이 궁궐밖에 모여 상소 어쩌고 저쩌고~~’조선시대 사극드라마에서 꼭 빠지지 않는 대사입니다. 그럼 사마소는 도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사마소는 조선시대에 과거에 합격한 그 지방의 생원과 진사들이 유학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던 장소였습니다. 고려말과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지방수령에 자문을 하던 유향소를 당시 훈구파들이 장악했는데 그에 맞서서 사마시 출신의 젊은 유생들이 만들었습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아주 좋은 의미로 친목 도모와 학문연구 정치토론 등 향리의 교화와 지방관청의 행정 보조를 자임하며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차차 세력화가 되면서 폐단이 생기게 되었고 유향소처럼 지방관청의 업무 간섭은 물론이고 심지어 수령을 능멸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한, 권력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취하고 백성을 마구 잡아들여 벌을 주는 등 행패도 서슴지 않아 이를 보다 못한 류성룡이 선조에 사마소 폐지 상소를 올렸을 정도였습니다. 경주 사마소는 처음 세워진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것을 1741년인 영조 17년에 다시 세워 풍영정이라 불렀습니다.


병촉헌.


그런데 사마소 현판과 풍영정 현판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는데 필자가 찾았을 당시 아마 사마소 수리가 있었는지 두 현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마소 현판은 1762년 부윤이었던 홍양한의 글씨이며 병촉헌은 1832년에 생원 최기영이 지었습니다.


 

사마소는 경주향교와 옛 월정교 터 인근에 세워져 있었는데 1984년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경주최씨 고가를 둘러보기 전에 이곳을 찾았는데 출입문이 꼭! 잠겨 있어 까치발로 눈도장만 찍어 정말 많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경주 최씨 고가와 같이 경주를 찾는 많은 관광객에게 개방하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1985년 8월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호 지정


 

그리고 사마소 담벼락에 영광대란 안내판이 있습니다. 영광대는 그 옆에 놓인 돌기둥을 말하며 처음에는 사마소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1860년 경주 선비들이 하천에 나뒹굴던 월정교 석재를 모아 대를 쌓아 영광대라 불렀으며 이는 송나라 주희의 시인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한다”는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에서 따왔습니다. 뜻을 풀이하면 “책을 읽으면 그 속에 성현의 아름다운 말과 잘못하지 않게 타일러 주의를 시키는 글귀가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합니다.


◆경주 남산 여행지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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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7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입을 닫고 살기 위함인지 마스크를 한 열암곡석불좌상.열암곡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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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금강계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중 제1 적멸보궁 통도사 금강계단 여행하기.


 

양산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습니다. 왜 양산 통도사에 금강계단이 있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를 두고 말하며 이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면서 가져온 불사리와 부처님 가사를 나누어 봉안한 곳입니다.





◆양산 통도사와 함께 둘러보기 좋은 여행지


2016/04/15 - (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당간지주. 사찰을 표시하며 행사를 알리는 깃발을 걸었던 당간과 지주가 양산 통도사에도 있습니다. 통도사 당간지주


2012/01/05 - 암, 스님의 밥그릇이 이정도는 되어야지. 통도사 봉발탑


2012/04/28 - (경남양산) 영남 알프스 통도사 서운암 들꽃 축제에서 넋을 빼앗기다....봉화봉~늪재봉


2008/09/30 - (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자장암 금개구리. 통도사 자장암 금개구리를 보섰나요


2008/10/01 - (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자장암 여행.금와보살이 산다는 통도사 자장암 찾아가기...


2016/03/23 -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용연사 금강계단. 통도사 금강계단의 진신사리가 비슬산 용연사 석조계단에 모시게된 유래가 궁금하다면. 용연사 금강계단


2012/01/24 - 부처님 불상이 없는 대신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 통도사 금강계단


2012/01/18 - 임진왜란때 왜구가 활시위를 당겼다가 주변 경치에 반해 그만 두었다는 통도사 안양암


2011/08/16 - 천년동안 통도사의 경계를 표시했던 국장생석표가 보물로 남아 있네요.





 

이중 태백산 정암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구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 금강계단의 진신사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봉안하게 되었으며 통도사는 5대 적멸보궁에서 제1 적멸보궁으로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에 따로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상을 모시지 않습니다. 이곳 영축산 통도사의 대웅전인 금강계단도 똑같은 구조인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자장율사는 선덕여왕 때인 643년에 왕명을 받고 신라로 귀국하게 되는데 그때 부처님의 두골과 치아 등 진신사리 100과와 부처님이 입었던 가사 한 벌을 가져와 사리는 삼등분하여 황룡사탑과 울산 태화사 탑, 그리고 남은 사리와 가사는 646년에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만들어 보관했습니다.


 

처음 자장율사가 만들었다는 통도사 금강계단은 정방형인 2층 돌계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상층 가운데 범종 모형을 한 부도를 안치하였습니다. 계단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였으며 기단의 1, 2층 면석에는 비천상과 불상 그리고 보살상을 조각하였는데 그중에서도 1층 계단의 면석에는 총 32구의 불상, 보살상이 부조되어 매우 정교하며 화려하여 전체적으로 하나의 예술작품입니다.


 

연화대좌 위에 사리를 봉안한 2층의 석종 부도를 안치하였고 앞쪽에는 향로와 비천왕상을 배치하였습니다. 금강계단은 여러 번 중수과정을 거쳤는데 특히 1645년 임진왜란 때 화재로 불탄 금강계단 앞의 대웅전을 우운대사에 의해 새로 중수하였습니다. 그때 정(丁)자 건물로 장중함과 위엄을 갖춘 모습이 되었습니다.


 

동서남북 모두 정면으로 보이는데 동쪽은 대웅전, 남쪽은 금강계단, 서쪽은 구룡지가 있는 대방광전, 금강계단을 마주한 북쪽은 적멸보궁의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1652년과 1705년 정인과 성능 두 대사에 의해 금강계단은 대대적인 중수과정이 있었고 지금 금강계단 주위에 설치된 석조난간과 석문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습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 오대산에서 노승으로부터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00과 머리뼈와 손가락뼈, 염주, 경전 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축서산(지금의 영축산) 기슭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사는 연못이 있는데 비바람을 일으키고 곡식을 상하게 하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쁜 용이라며, 문수보살이 화한 노승은 연못을 메우고 그곳에다 금강계단을 짓고 가사와 사리를 봉안하라 일렀습니다.


 

자장율사는 신라로 귀국하여 독용이 산다는 구룡지를 찾았습니다. 설법으로 용들을 일깨워 아홉 마리의 용 중 8마리는 지금의 영축산 옆 오룡산과 삼동 곡으로 떠나고 눈이 먼 한 마리의 용만 떠나지 않고 이곳을 지키며 사는 게 소원이라 청하였습니다. 자장율사는 용의 소원을 들어주며 귀퉁이에 작은 못을 남겨놓고 살게 하고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쌓았습니다.


 

지금도 대웅전 옆에는 구룡지라 부르는 작은 연못이 남아 있습니다. 통도사 금강계단은 국보 제290호이며 높이는 3m, 넓이는 9m 90cm입니다. 이곳에서 받은 계율이 금강과 같이 단단하다는 뜻으로 매년 초하루와 보름날에 수계가 이루어졌습니다.


 

통도사 대웅전 적멸보궁 기단석에 부조된 무늬


 

 

 

 

 

 

 

 

 

 

 

 금강계단 입구는 대웅전 오른쪽에 있으며 여기는 왼쪽 출구입니다. 참배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참고하세요.

현재  통도사 금강계단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이하 사진은  2012년 촬영한사진입니다.

 

 통도사 금강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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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백계산~제비추리봉산행. 한 많은 여자의 넋이 환생했다는 동백꽃이 아름다웠던 옥룡사지 동백숲과 백계산~제비추리봉 산행.


광양하면 백운산을 모두 떠올리겠지만, 도선국사께서 35년 동안 주석했다는 옥룡사의 주산인 백계산도 있습니다. 백계산은 지네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다는 비천오공의 형상이며 그 명당에 옥룡사지가 자리합니다. 옥룡사는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에 도선이 창건했는데 풍수의 대가였던 도선이 전국을 유람하며 참선과 수행을 하다 마침내 명당을 발견하고 절을 세웠던 곳입니다. 그 터의 유명세는 두말하면 잔소리겠습니다. 그런 만큼 이곳 절터가 도선의 마음에 들었는지 864~898년 입적 때까지 무려 35년을 이곳에서 주석하셨습니다.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4/09/13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면 망덕포구. 섬진강과 호남정맥의 끝과 시작인 망덕포구 가을 여행을 떠나보세요.망덕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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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5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 백운산~신선대 산행. 뼈에 이롭다는 고로쇠와 매화꽃 산행지 광양 백운산~신선대 산행


2016/04/21 - (전남여행/광양여행)백운산자연휴양림. 걷기 좋은 솔숲길과 산막에서 즐기는 휴식이 꿀맛일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여행. 광양백운산 자연휴양림


2016/04/30 - (전남여행/광양여행)폐사지를 찾아서 옥룡사지 동백림. 도선국사의 마지막 수도처 광양 옥룡사지와 절터의 기운을 도우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림을 만나다. 옥룡사지동백림


 


천하명당인 옥룡사도 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1878년 고종 15년에 원인 모를 화재로 천년고찰의 옥룡사는 불타버렸고 그와 함께 천 년 동안 살아 숨 쉬든 법통도 꺼져버렸습니다. 그 후인 1920년 구례의 청주한씨 문중에서 옥룡사 땅을 매입하여 재실과 선조의 무덤으로 사용하였고 경작하면서 천 년의 흔적은 그 원형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게 있었는데 도선국사께서 옥룡사의 지기를 북돋우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나무입니다. 수령 100~300년 된 동백나무 7,000여 그루는 겨울을 이겨내며 2월~4월까지 붉은 동백꽃을 피우는데 이는 내륙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동백꽃 하면 생각나는 글귀가 있습니다. 대하소설 조정래의 ‘한강’에서 “동백꽃의 절정의 아름다움은 낙화에 있었다. 꽃이 지되 벚꽃처럼 꽃잎이 낱낱이 흩어지지 않고 꽃송이 그대로 무슨 슬픔이나 서러움의 덩어리인 양 뚝뚝 떨어져 내렸다. ~사무친 한을 풀 듯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번, 땅 위에서 또 한 번, 두 번 피어나는 꽃이었다”며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동백꽃은 우리 민족의 처절한 아픔을 표현할 때 많이 비교합니다.


 

 

조정래는 한강에서 다시 동백꽃을 “한 많은 여자의 넋이 환생했다는 꽃” 이라했습니다. “그래서 저리도 선연한 핏빛으로 곱고 처연한 느낌으로 아름다운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강’에서는 동백꽃의 아름다움은 낙화에 있다 했지만 동백꽃이 질 때 꽃송이가 통째 뚝 하고 떨어져 사형수의 목이 달아나는 모습과 닮았다며 동백꽃을 불길하게 여기는 꽃으로도 많이 생각했습니다. 이제 백계산 옥룡사지의 그 붉은 동백꽃은 모두 떨어졌지만, 그 아름다움만큼은 또다시 내년을 기다리게 합니다.


 

광양 백계산~제비추리봉 산행 경로입니다. 옥룡사지동백림 주차장을 출발하여 옥룡사지~옥룡사지·운암사 갈림길~도선국사 천년숲길~새우암자터 갈림길~눈밝이 샘 갈림길~눈밝이 샘~(눈밝이 샘 갈림길)~금목재·백계산 정상 갈림길~백계산 정상~(금목재·백계산 정상 갈림길)~금목재~ 738봉 삼거리~제비추리봉 밑 갈림길~제비추리봉 정상~휴양림(삼나무숲길·생태숲길) 갈림길~산막2지구·중점시설지구 이정표~백운산자연휴양림 케빈하우스(산막)앞~자연휴양림 입구~옥룡사지동백림 주차장 순으로 원점회귀 산행입니다. 전체적인 산행 거리는 약 12.5km이며 산행시간은 5시간~5시간 30분이면 충분합니다.



 먼저 산행은 옥룡사지·동백림 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관광안내소와 넓은 주차장, 산행 안내도 등 주변 시설이 잘 정비된 것을 보면 옥룡사지와 동백림의 유명세를 알 것 같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콘크리트 포장길을 700m 쯤 따라갑니다. 백계마을을 지나면 옥룡사 동백나무 숲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오른쪽은 ‘선의 길’방향, 300m 직진하여 옥룡사지를 보고 갑니다.

 

 

 

 

축대를 보면서 얼마 전까지 경작지로 이용했던듯 하였고 지금은 문화재 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을 뒤로하고 동백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갑니다.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동백숲을 벗어나면 옥룡사지입니다. 광양시에서 옥룡사 정비복원계획을 1994년에 세우고 토지매입을 하면서 1996년 옥룡사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옥룡사지

도선국사와 동보대사의 비석과 부도가 있었던 비석거리 발굴조사과정에서 탑비와 부도를 보호했던 2개의 비각 흔적을 찾아내었습니다. 도선국사의 부도전으로 추정되는 8각 바닥 돌 밑에는 돌로 만든 관을 발견하였고 사람의 인골이 나와 도선국사와의 연관성을 추정하며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 외 동진대사 비석조각과 옥룡사의 흔적인 기와 파편등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옥룡사지 주위로 동백숲이 장관입니다. 그리고 가장 눈길이가는 곳이 절개지의 토굴입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토굴을 보면서 혹시 도선국사와의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 생각하지만, 이곳은 땅 주인이 경작한 감자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용으로 팠다합니다. 필자도 혹시나 싶었지만 대실망이었으며 도선국사와 다른 어떤 여타 연관관계도 없다 합니다.


 

 

 옥룡사지 옆 백계산 등산로 입구

이제 백계산 산행을 시작합니다. 토굴 왼쪽 운암사로 넘어가는 고개가 백계산 등산로 입구입니다. 이정표에는 왼쪽 ‘도선국사 참선 길’ 방향입니다. 운암사 구경은 직진하여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운암사도 도선이 창건했지만 폐사되었고 모든 당우는 최근에 다시 복원하였습니다. 필자는 시간 관계상 운암사 탐방을 생략하고 바로 ‘도선국사 참선 길’인 백계사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세우암자터 갈림길

옥룡사와 주변 암자가 많았고 찾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산길은 넓고 뚜렷합니다. 약 900m가량 가면 백계산 정상(1760m)과 세우암자터(850m) 갈림길입니다. 세우암자터는 출가한 도선국사가 어머니를 모시고 봉양했던 곳이라 합니다. 백계산방향 직진하는 외길을 약 40분가량 오릅니다.


 눈밝이 샘 갈림길

산길은 조금씩 고도를 높이지만 평이한 옛길로 쉬엄쉬엄 오르면 곧 ‘눈밝이 샘’ 갈림길입니다. 왼쪽 사면 길을 약 100m 가면 오른쪽 계곡에 ‘눈밝이샘’이 보입니다. 백계산 정상 아래에서 많은 수량이 나온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눈밝이 샘

이곳 ‘눈밝이 샘’은 옥룡사 창건설화가 있습니다. 도선이 백계산에 천하명당인 비천오공(飛天娛蚣)의 혈지를 찾아내고 절을 세우려고 했으나 터 가운데 연못이 있어 상심하다 묘책을 짜내었습니다. 숯가마니를 지고와 연못에 넣고 백계산의 샘물을 마시면 눈병이 말끔하게 낫는다는 소문을 내었는데 그 소문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숯가마를 지고 눈병 환자가 몰려들었고 연못은 순식간에 메우고 옥룡사를 지었습니다. 숯을 넣고 샘물을 마셨더니 눈병은 물론이고 침침하던 눈까지 밝아져 사람들은 ‘눈밝이 샘’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샘은 비천오공의 지네 생식기에 해당하고 동향서출하는 형세라 특히 눈병에 약효가 있다는 설명. 그런데 눈 밝은 것은 잘 모르겠고 완전 시원한 게 꿀맛처럼 달곰한 느낌으로 약수는 약수였습니다. 다시 ‘눈밝이 샘’ 갈림길로 돌아갑니다.


백계산 정상 밑 갈림길

 백계산 정상 금목재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정상 못 미쳐 ‘T’자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왼쪽은 금목재·휴양림 방향이지만 먼저 오른쪽 백계산 정상 개현마을 방향으로 10분쯤 갑니다. 백계산 정상을 찍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금목재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백계산 정상을 향하는 왼쪽에는 호남정맥의 최고봉이자 광양의 진산인 백운산이 우뚝 솟아 억불봉으로 능선이 이어집니다. 백계산 정상은 유명세와 달리 주위 잡목으로 조망은 없습니다. 다시 제비추리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휴양림·옥룡사지 방향인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좀전에 만났던 삼거리에서 금목재·휴양림 쪽으로 직진합니다.


 

 금목재

금목재까지 산길은 굴곡 없는 편안한 능선길입니다. 20분쯤 가면 금목재 임도에 도착합니다. 오른쪽 임도는 백운학생수련장(2.4km) 방향이며 왼쪽 임도는 백운산 자연휴양림과 옥룡사지 방향입니다.


 

 

 

 

금목재에서 제비추리봉은 임도를 건너 능선을 계속 탑니다. 곧 나무덱 쉼터가 나오고 30분가량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제비추리봉과 도솔봉 방향으로 갈리는 738봉 삼거리 입니다.


 738m봉 삼거리

이곳에는 ‘post 3, 백운학생야영장’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며 참고만 하세요. 오른쪽은 따리봉 또는 백운산 상봉 방향이고 오늘의 최종목적지 제비추리봉은 왼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입니다. 다시 능선 길은 솟구치고 마지막 힘을 쏟아 넣으면 제비추리봉 직전 갈림길입니다.


 

 

 

왼쪽도 백운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지만 무시하고 직진하면 곧 제비추리봉입니다. 여기도 백계산과 같이 정상 조망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자연휴양림 하산은 정상에서 직진합니다.


 

 

생태 숲길(휴양림)과 삼나무 숲길(휴양림) 갈림길 이정표에서 조금이라도 빠른 하산을 위해 왼쪽 ‘생태숲길방향’으로 내려갑니다. 곧 철탑을 지나고 1㎞가량 하산하면 산막2지구·중점시설지구 이정표를 만납니다. 산막2지구 쪽으로 직진하여 15분쯤 내려가면 백운산자연휴양림 시설지구입니다. 먼저 소나무 숲에 산막인 캐빈하우스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높이 20m 이상 곧게 자란 소나무들이 우거진 휴양림은 쾌적하며 정신을 맑게 해주었습니다. 곧 쭉쭉 뻗은 소나무숲 속에 설치된 평상 야영지를 지나고 휴양림 입구로 나오는데 솔숲을 잠시 걸어와도 산행에 지친 피로를 풀어주었습니다.


 

 

 

 

휴양림 버스정류장을 지나 동백림 주차장까지는 1.5km 거리에 약 20분이 소요됩니다. 먼저 도선국사 마을인 양산마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동백림 주차장이 나오고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백계산~제비추리봉산행 교통편.

광양 백계산 산행은 출발지인 옥룡사지·동백림 주차장에 가야합니다. 부산에서 출발은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광양행 시외버스를 탑니다. 오전 6시30분 7시 7시20분 8시20분 9시20분 9시40분 10시5분 10시10분 등 운행합니다. 광양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나와 ‘광양역입구교차로’정류장에서 광양교통 21번 백운산자연휴양림행 버스를 타고 옥룡사지 정류소에서 내립니다. 광양교통 차고지를 출발하는 광양백운산자연휴양림 버스시간은 오전 6시30분 8시10분 11시20분이며 ‘광양역입구교차로’정류장에서 5분쯤 기다리면 됩니다. 산행을 마치고 백운산자연휴양림버스정류장에서 광양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2시50분 6시50분 등 2차례 뿐입니다. 광양터미널에서 부산서부터미널로 돌아오는 버스는 오후 4시20분, 4시40분(동래노포동), 5시15분, 6시10분, 6시40분, 7시10분, 7시25분, 8시50분, 9시50분(막차)

내비게이션 옥룡사지입력


백계산~제비추리봉 고도표

백계산~제비추리봉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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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화순여행)옹성산 철옹산성. 완벽한 철옹성을 뜻하는 옹성산 철옹산성 여행. 옹성산 옹성산성


우리나라에는 어디를 가드라도 많은 산성이 원래 모습은 잃고 허물어져 남아 있습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시대, 더군다나 임진왜란 때는 왜적이 쌓았다는 왜성까지도 해안가 주위로 있는데 방어와 공격, 지원을 위해 전략적 요충지마다 돌과 흙으로 쌓은 산성의 흔적입니다.




◆화순군 가볼만한 여행지◆


☞2012/06/22 - (전남화순여행) 화순군의 유일한 국보가 있는 쌍봉사 둘러보기, 철감선사 탑과 탑비의 섬세함에 놀래



 

그중 일전에 ‘하늘이 내려준 산성’이란 뜻인 구미 천생산성을 본적이 있습니다. 사방팔방 360도가 까마득한 절벽이라 완전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라남도 화순에서도 도저히 깰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완벽하여 철옹성이라 부르는 산성이 있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완벽하다는 ’철옹성‘을 뜻하여 산성의 이름까지도 철옹산성(鐵甕山城) 또는 옹성산성(甕城山城)이 되었습니다. 철옹은 ’쇠가마‘를 뜻합니다. 쇠로 만든 가마솥을 무쇠솥이라고도 합니다. 잘 깨지지도 않고 찌그러지지도 않으며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솥으로 그와 같은 난공불락의 산성을 철옹성이라 합니다.


 

 

이번 화순여행에서 발품을 팔아 옹성산에 쌓은 옹성산성의 애칭인 철옹산성을 만나고 왔습니다. 철옹산성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전남 화순의 동복호에 솟은 적벽 주위를 막은 산성입니다. 동복면과 북면, 이서면에 걸쳐 있는 해발 약 583m 옹성산에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쌓은 포곡식 산성입니다.


 

산은 높지 않으나 깊은 계곡을 적절히 이용하여 쌓은 철옹산성은 높이가 약 4m에 산성의 길이는 약 5,400m입니다. 산성은 양쪽 벽을 돌로 쌓은 협축법과 한쪽은 돌로 쌓고 다른 쪽은 흙을 쌓은 편축법을 적절히 이용한 산성은 해발 275m~550m에 아직 그 형태가 남아 있습니다. 철옹산성의 축성연대는 고려말로 보고 있으며 바다 건너 찾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성의 입암산성과 담양의 금성산성과 함께 전남의 3대 산성에 꼽을 정도로 풍부한 수원과 넓은 활동 공간 그리고 바깥의 적에 노출되지 않으며 유사시 군사는 물론이고 인근 주민도 산성으로 몸을 피해 싸울 수 있는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옹선산은 옹암과 쌍두봉, 바위 병풍인 적벽 등 좌우로 옹립한 바위 절벽으로 사람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철옹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에 옹성, 옹성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습니다.


 

화순옹성산


전라남도 기념물 제195호.

철옹산성(옹성산성)주소:전남 화순군 동복면 안성리 산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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