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보이는 천황산 정상을 지나 하산길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광활한 가을 파도, 억새 군락지.


설악이 안부러운 비경지대에서 찰칵!


재약산 정상. 왼쪽 뒤 천황산, 오른쪽 샘물상회 뒤로 가지산과 중봉이 보인다.

억새 길 따라 낭만도 흐른다
붐비는 표충사 대신 배내골 주암마을 출발
두 산 잇는 사자평·천황재는 억새 탐승 '고전'
하산 갈림길에선 샘물상회 방향으로 걸어야



이름에서 연상되는 투박함과 달리 한줌 실바람이라도 스치면 파르르 몸살을 앓듯 가녀린 여인네의 자태마냥 서럽도록 아름다운 억새. 이 가을 한 철 화려한 나래를 펴기 위해 작열하는 뙤약볕과 세간의 무관심을 묵묵히 이겨낸 인내의 산실이다.

억새는 변신의 귀재이기도 하다. 바늘로 톡 찌르면 금방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듯한 어둠침침한 날에는 뼈에 사무칠 정도로 스산하다가 이내 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하다.

역광에 반사되면 찬란한 금빛 억새로 뽐내고 석양에 비치면 수줍은듯 홍조를 띠다 달빛에 젖으면 이내 푸근한 솜털억새로 옷을 갈아 입는다.

억새는 무리를 이루면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장관이라 예부터 '광활한 평원의 가을 파도'라 했을까. 억새밭에 가을 햇살이 엷게 비칠 때 스쳐가는 바람결이 빚어내는 억새들의 화려한 합창은 대자연의 교향악이다. 이 모습을 목도한 누군들 시인이 되지 않으리요.

  




변화무쌍하면서 장삼이사들의 속마음을 파고 드는 이 여러 해살이풀, 억새의 모습은 가을산에서 맛볼 수 있는 최상의 선물. 이달 하순부터 본격 피기 시작해 다음달 중순이면 잎이 마르며 하얀 억새꽃이 휘날린다.

억새 산행의 대명사는 누가 뭐래도 영남알프스. 이 영남알프스에는 신불평원과 간월재, 사자평과 천황재, 고헌산 등이 주요 억새 산행지로 손꼽힌다.

어디로 오르더라도 억새의 진수를 못볼까마는 그 중에서 재약산(1108m)과 천황산(1189m)을 잇는 사자평과 천황재가 억새 탐승의 고전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해서, 산행팀은 '광평추파(廣坪秋波)'의 실체를 확인하러 재약산과 천황산을 찾았다. 통상 호국대찰 표충사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산꾼들이 너무 붐벼 비교적 한적한 배내골 주암마을에서 올랐다.

산행은 주암마을 주차장~추모석판~심종태바위~주막(쉼터)~임도~재약산 갈림길~재약산(수미봉)~재약산 갈림길~천황재(잇단 쉼터)~천황산(사자봉)~샘물상회~임도~농막~주차장으로 돌아오는 100% 원점회귀 코스.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10분 안팎이지만 억새 탐승과 주변 조망을 감상하다 보면 7~8시간은 잡아야 한다.

들머리는 배내골에서 오지에 속하는 주암마을 주차장의 왼쪽 간이화장실. 흔히 이 화장실 우측 '천황산 재약산'이라 적힌 팻말 쪽으로 가기 쉽지만 이 길은 주암계곡을 거쳐 정상으로 가는 길. 산행팀은 심종태바위를 지나 정상으로 가기 위해 화장실 왼쪽 열린 길로 간다.

억새가 바람에 일렁이고 발 밑에는 며느리밑씻개 이질풀 등이 눈에 띈다. 4분 뒤 계곡합수점에서 계류를 건너 오른쪽 산길로 오른다. 본격 들머리다.

  


가파른 된비알의 연속. 10분 뒤 추모석판을 지나면서 경사는 더 급해진다. 밧줄도 매달려 있다. 이렇게 40분이면 심종태바위(777m)에 닿는다. 꽤 높아 직벽 100m는 족히 될 듯싶다. 효자 심종태의 전설이 깃든 이 바위 정상에 서면 정면에 천황산이, 그 우측으로 능동산 배내고개 오두산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등 영남알프스 주능선이 손에 잡힐 듯하다.

직진한다. 몇 차례 암봉을 만나지만 각각 좌우로 에돌아 간다. 15분 뒤 우측 시야가 트일 즈음 낭떠러지에 걸린 소나무의 자태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설악이 안부럽다. 여기서 한 방 찰칵!

이어 몇 번의 전망대를 에돈다. 우측 발 아래는 주암계곡이며 아직 재약산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호젓한 숲길도 이어진다. 고도를 서서히 올릴 즈음 예의 늘푸른 산죽이 길손을 맞는다. 심종태바위에서 1시간쯤 걸었을까. 시야가 뻥 뚫린 전망대(982m)에 선다. 방금 지나온 심종태바위와 능선길, 그 우측 배내골이 선명하게 보이고 비로소 정면에 재약산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부터 신바람이 난다. 억새길을 따라 거닐며 '좌 재약, 우 천황'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암계곡' 팻말이 보이는 갈림길을 지나면 이내 주막쉼터. 샘터도 있다.

잠시 목을 축인 후 주막 우측으로 간다. 곧 임도다. 왼쪽은 사자평을 거쳐 표충사 가는 길, 산행팀은 배내고개 방향으로 직진한다. 3, 4분 뒤 '재약산'이라 적힌 팻말을 보고 왼쪽으로 오른다. 영남알프스에서 보기 드문 소로이다. 이끼 낀 고색창연한 바위가 인적이 드문 길임을 암시한다.

25분 뒤 주능선. 산오이풀 마타리가 눈에 띈다. 왼쪽 재약산에 오른 후 이곳으로 되돌아와 천황산으로 향한다.

재약산 정상은 8분 뒤. 가파른 암릉길을 올라 정상에 서면 영남알프스 연봉이 한눈에 펼쳐진다. 정상석을 보고 정면에 가지산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중봉 상운산 고헌산 능동산 배내고개 오두산 배내봉이, 정상석 우측으로 간월산 신불산 신불평원 영축산 죽바우등 시살등 천성산 오룡산 염수봉과 부산의 금정산 장산이, 정상석을 등지고 남쪽으로 향로산 금오산 구천산 만어산이, 정상석 왼쪽으로 필봉 정각산 승학산 보두산 낙화산 화악산 남산 등이 그야말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정상석 우측 발밑에는 그 유명한 사자평원이 황금빛을 자랑하며 화려한 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경이로움과 함께 사뭇 장중함이 느껴진다. 직진하면 옛 고사리분교를 거쳐 표충사로 내려선다. 참고하길.

이제 천황산으로 향한다. 정면에는 천황산의 위용이, 좌우에는 억새의 군무가 장관이다. 25분 뒤 천황재. 왼쪽은 밀양쪽 표충사(내원암) 방향, 오른쪽은 울주군 배내골 방향이다. 잔소리 한 마디. 산꾼들을 위한 쉼터도 좋지만 억새군락지를 너무 많이 빼앗고 있어 흉물스럽기조차 하다.

직진한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크고 작은 공덕탑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천황재에서 30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정상석 바로 옆에서 비슷한 높이의 돌탑이 세워져 있다. 정면 가지산에서 왼쪽으로 운문산 억산, 가지산 아래 흰 암봉인 백운산이 보인다. 정상에서도 표충사(한계암)쪽으로 가는 길이 있다.

이정표 상의 얼음골 방향으로 직진한다. 이후 잇단 갈래길에선 '샘물상회' 이정표를 보고 간다. 정상에서 30분이면 샘물상회에 닿는다. 여기서 임도로 직진, 간이화장실을 지나 15분 뒤 왼쪽에 키 큰 측량 폴대가 서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 열린 산길로 향한다. 이 길만 찾으면 하산로 찾기는 사실상 끝. 참고로 계속 직진하면 배내고개 능동산 방향. 꽤 신경쓰이는 돌길의 연속이다. 30분쯤 걸으면 산길을 벗어난다. 왼쪽엔 농막. 여기서 포장로를 따라 18분쯤 걸으면 주차장에 닿는다.



# 교통편

- 언양 터미널서 배내골행 버스 하루 두 편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 첫 차를 시작으로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 걸리고 2900원. 배내골행 버스는 언양터미널 뒷문으로 나오면 만나는 시내버스정류장에서 탄다. 대우여객(052-264-2525) 328번으로 오전 6시20분, 10시에 있다. 900원.

날머리 베내통하우스 앞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후 5시40분 단 한 차례 있다. 언양에서 노포동행 시외버스는 역시 2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밤 9시.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서울산(삼남)IC~언양 35번 국도(가지산 석남사)~경주 봉계 직진~밀양 상북~밀양 석남사~궁근정리 상북농공단지~창녕 밀양~석남사 지나~배내골 신불산 억새평원 파래소폭포~베내통하우스에서 우회전~주암마을 입구, 금덕암 우회전~볼록거울 앞 갈림길서 왼쪽 금덕암 방향~금덕암 입구 지나~주차장 순. 주차비 3000원.



# 떠나기전에

- 심종태 바위, 도적 감복시킨 효자 이름 따

배내고개 인근 도로 상에서도 보이는 심종태바위의 '심종태'는 사람 이름이다. 그와 관련된 전설은 이렇다.

효성이 지극했던 심종태는 부모님 제사를 위해 송아지를 키웠는데 간밤에 도둑을 맞았다. 송아지를 찾아 근처 산을 샅샅이 뒤지던 그는 큰 바위의 동굴에 이르러 일단의 도적떼를 만났다. 심종태는 도둑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이에 감복한 도둑들은 송아지 대신 금은 보화를 선물로 줘 무사히 부모님 제사를 지낼 수가 있었다. 이후 사람들은 심종태가 금은 보화를 얻은 바위를 효의 상징으로 심종태바위라 부르고 있다. 이 바위에는 도적떼가 머물렀다는 동굴도 있다고 한다.

샘물상회(055-356-7664) 정지홍(55) 사장은 1980년대엔 가게 바로 아래 너른 터에서 목장을 운영하다 여의치 못해 10여 년 전부터 이곳에서 산꾼들을 위한 쉼터 및 민박(3만원)을 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지 대부분의 산꾼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래도 산꾼들을 위해 식수를 제공하고 있다. 주변에는 수입종으로 보이는 노란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와 관련, 그는 이곳이 사람 사는 곳임을 알리기 위해 그동안 국내의 야생화란 야생화를 모두 심어봤지만 바람이 워낙 세 모두 죽어 할 수 없이 바람에 강한 수입종을 심게 됐다고 말했다.

샘물상회 앞에는 제법 큰 누렁이가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지만 절대 겁먹을 필요가 없다. 눈만 멀거니 뜬 채 힐끗 쳐다보고는 딴청을 피운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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