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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의 병산서원 여행. 병산서원


안동 풍천면 하회마을 뒷산인 화산과 서애 류성룡의 본가가 있는 하회마을에서 서애 류성룡선생이 병산서원을 오가며 낙동강을 끼고 걸었을 선비길을 다녀왔습니다. 

선비길 입구에 병산서원이 있습니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며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안동 병산서원 주소:경산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안동 병산서원 전화:054-858-5929

사적 제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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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하면 가장 대표적인 게 징비록입니다. 

징비록은 영의정과 도체찰사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하여 임진왜란이 끝나자 임란(1592~1598) 당시의 기록을 남겼는데 이게 ‘징비록’입니다. 

징비록은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등 임진란의 전반을 수기한 사료로 현재 국보 제132호에 지정했습니다.

 

복례문


서애선생을 배향한 병산서원의 방문은 더욱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병산서원은 도동서원·도산서원·소수서원·옥산서원과 함께 조선시대 5대 서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성 때문인지 병산서원을 보는 내내 외적인 화려함 보다는 고고한 소나무처럼 선생의 우국충정을 서원의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이며 고려 때부터 존재했던 사립기관입니다. 

류성룡선생이 1572년(선조5년)에 현재의 장소로 옮겨 왔으며 그 뒤 1607년 선생이 타계하자 지역유림들에 의해 1613년 존덕사를 세우고 위패를 모시면서 이듬해 병산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병산서원에는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선생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병산서원은 1863년인 철종 14년에 ‘병산’이란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868년(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한곳입니다. 

병산서원도 일반 서원과 마찬가지로 강학공간을 앞에 두고 배향공간인 사당을 뒤에 배치하는 전학후묘의 양식을 따랐습니다.

 

광영지


이와 함께 서원은 강학과 제향 공간, 그리고 부속건물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유생의 강학 건물은 복례문, 만대루, 동·서재, 입교당, 장판각이라면 제향건물은 내삼문, 존덕사, 전사청이 있으며 병산서원을 관리하는 부속건물로는 고직사, 뒷간, 광영지 등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병산서원의 주 출입구는 솟을 대문인 북례문입니다. 

‘복례’는 논어의 『극기복례위인』에서 따왔으며 “자기를 낮추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인 자기절제의 정신을 함축해 놓았습니다. 

최초의 복례문은 만대루 동편에 있었다고 하며 낙동강 건너 험준한 산세인 병산의 지세를 피하려는 풍수지리에 따라 지금의 장소로 옮겨 세웠습니다. 

솟을 삼문인데 특이하게 좌우는 벽체로 막았으며 가운데 칸만 판문을 달았습니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만대루와 사이에 작은 연못인 광영지가 왼쪽에 자리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 정원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게 연못인데 서원에서는 처음 보는 듯했습니다. 

병산서원에는 작은 규모지만 연못이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연못이라 부르기에도 너무 작아보였으며 그 규모는 많이 축소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작은 연못이지만 많은 뜻이 있습니다. 

연못은 사각모양인데 이는 땅을 의미하며 연못 가운데 섬은 둥글며 이는 하늘을 상징합니다. 

글 읽던 유생들이 이곳에 나와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바람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닦아 학문에 정진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게 만대루입니다. 

강당인 입교당과 마주한 건물로 2층의 누각형태로 병산서원에서 가장 웅장하며 분위기 있는 건축물로 서원의 대표건물입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은 앞면 7칸, 옆면 2칸의 건물이며 병산서원에서 가장 빼어난 조형미를 가진 건축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만대루를 보면 무채색의 웅장함이 가슴을 팍팍하게 만듭니다.

 


‘만대’는 당나라 시인인 두보의 시 ‘백제성루’인 ‘취병의만대 백곡회심유(翠屛宜晩對 白谷會深遊)’에서 따왔습니다. 

그 뜻을 보면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늦을 녘 마주 대할만하고, 흰바위 골짜기는 여럿 모여 그윽이 즐기기 좋구나”를 뜻합니다. 

저녁무렵 팔작기와지붕에 홑처마 건물로 된 누마루에 올라서면 낙동강에 비친 병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 폭의 수채와 같은 선경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입교당은 병산서원의 중심건물인 강당이며 숭교당 또는 명륜당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가르침을 바로세운다”는 뜻인 입교당은 앞면 5칸에 옆면 2칸인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의 5량가건물로 유생들의 강학장소였습니다. 

가운데 3칸은 마루를 두고 왼쪽에는 경의재, 오른쪽은 명성재인 1칸 온돌방을 각각 넣었습니다.

 



명성재는 서원의 원장이 머물렀으며 경의재는 교무실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입교당과 만대루 사이에 마당을 두고 좌우에 건물은 동·서재이며 유생들이 머물던 기숙사로 사용한 공간입니다.

 











장판각

입교당 뒤 존덕사 왼쪽에 책을 찍을 때 사용했던 목판 유물을 보관하던 장판각 건물이 있습니다. 

서원에서 강당건물과 함께 가장 중요한 건물이 추모공간인 존덕사입니다. 

존덕사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만나지만,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아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잠금 된 상태입니다.



존덕사 내삼문

서애 류성룡선생과 수암 류진선생의 위패를 모셨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인 익공양식의 겹처마로 옆면에 풍판을 달았습니다.


전사청





병산서원에서 가장 특별하게 보인 곳이 뒷간입니다. 

뒷간이라 하면은 화장실을 말하는데 흙담장을 마치 달팽이형태로 말 듯이 쌓아 여러 서원을 여행했지만 이런 형태의 화장실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 화장실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머슴)이 사용했다고 하며 하늘을 지붕 삼았으며 400여 년 전에 서원건물과 함께 지어졌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대나무로 벽을 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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