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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여행/진안가볼만한곳)마이산 금당사. 절집 여행 마이산 금당사


전라북도 진안의 마이산은 명승지 제1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조선의 태종이 붙인 이름으로 말의 두 귀를 연상하는 마이산은 그만큼 빼어난 산세를 자랑합니다. 그 마이산의 품 안에 자리한 금당사는 마이산도립공원 내에서 가장 큰 사찰로 남부 마이산의 대부분이 금당사의 경내에 포함합니다. 그 크기가 약 42만 8천 평으로 실로 대단한 규모입니다.

 





진안 마이산 금당사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39-1

진안 마이산 금당사 전화:063-432-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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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사의 기록은 삼국유사 제3권 홍법조에 나와 있습니다. 금당사는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광대봉 기슭의 암반에 서기 650년 백제 시대 의자왕 10년에 무상과 금취 두화상이 고금당에 있는 나옹굴(현재 나옹암 자리)에 금동사란 이름의 열반종 사찰을 창건하고서입니다. 현재의 고금당이 금당사의 시초가 됩니다.

 


그리고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이 나옹굴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이성계는 도장골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신인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권한인 금척을 받은 금척천명지가 마이산입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자연석굴인 동굴이라 혈암사란 이름으로도 나타나는 등 마이산의 이름과 같이 금당사도 다양하게 불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때에 절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금동사는 고금당으로, 새 절은 금당사로 절명칭을 교통정리 했습니다. 




마이산은 특이하게 생긴 만큼 신라 때는 서다산, 고려 때는 용출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면서 속금산이라 부르고 다시 태종이 마이산이라 한데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또한, 국난에 처했을 때마다 마이산의 금당사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의 사령부로 북상하던 왜군에 금당사에 주둔했던 승군은 전멸당하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많은 전각이 깡그리 불태워졌습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일어난 동학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녹두장군 전봉준의 딸은 마이산으로 몸을 피해 10년 동안 고금당에서 은신했으며 1906년 4월에는 마이산 주필대에서 정재 이석용장군에 의해 호남 최초의 항일의병인 창의동맹이 결성되는 등 마이산은 독특한 산세만큼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이 나라를 지키는 구국의 성지였습니다.

 




그런 금당사가 2000년 이후 사격을 갖추는 불사를 진행하여 대가람으로 변모했습니다. 현재 금당사 소유의 문화재는 먼저 보물 제1266호인 금당사 괘불탱입니다. 1692년인 숙종 18년에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높이는 약 9m에 폭이 약 5m 크기입니다.



천 가운데 관세음보살상을, 좌우에 20구의 작은 보살상을 배치했으며 우리나라 괘불 중에서 화관에 4마리의 봉황이 그려진 것은 금당사 괘불탱이 유일하다 합니다. 명원과 조지연 등이 그렸으며 그만큼 채색이 화려하고 유려한 모습입니다.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하면 탱화를 걸어두고 기우제를 지냈으며 그때마다 비가 왔다는 속설이 있는 신령스러운 괘불입니다.




그리고 대웅전의 주불인 금당사 목불좌상입니다. 이 불상은 처음 제작을 할 때 남원 부사의 도움을 받았으며 108명의 스님이 옮겨온 수령 천년된 금강산 은행나무로 조성했습니다. 한 때 도난당했다가 되찾았으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그 기념으로 중국 스님이 조각했다는 이야기도 전하는 불상입니다. 전북 지방문화재 제18호.





이번에는 금당사를 들어서는 입구에 조성된 고려 중기의 석탑입니다. 원래는 연못 가운데 있었으며 남아 있는 부재로 보면 석탑은 오층탑으로 임진란과 병자호란 때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숙종 때에 현재의 위치에 옮겨 고쳐 세웠습니다. 석탑을 보면 받침대 중간의 돌과 상륜부는 분실된 것을 후대에 새로 만들어 넣었고 구조와 제작수법에서 고려 시대 작품임을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22호.






그리고 금당사의 법고인데 현재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며 호남의병 창의동맹 결성 당시부터 3년 동안 의병활동에 북소리를 울렸다 합니다. 이외에도 금당사 주위로는 나옹화상의 전설이 남아 있는 명소가 여럿 있습니다. 용마봉은 나옹화상이 타고 다녔다는 말 이름에서 따왔으며 나도산은 나옹화상이 도를 깨우쳤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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